겨우 말 한마디였지만 그 파급력은 대단했다.약혼녀?송해인은 동공이 심하게 떨렸다. 그녀는 서강빈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냉소를 흘렸다.“서강빈, 대단하네. 약혼녀까지 생겼어? 어쩐지 이혼할 때 그렇게 쉽게 사인한다 싶더니, 이 사람 때문이었어?”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권효정을 흘겨봤다.권효정은 못 본 척하면서 혀를 빼꼼 내민 뒤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비켜!”송해인은 서강빈을 툭 밀친 뒤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씩씩거리면서 펜션 안으로 들어갔다.이세영도 괘씸하다는 듯이 서강빈을 노려보다가 욕했다.“정말 역겹네요. 여우를 데리고 와서 일부러 대표님 앞에서 시위하는 거예요? 아쉽지만 별로 효과는 없었던 것 같네요. 이제 대표님 마음속에 서강빈 씨 자리는 없으니까요.”이세영은 발을 쿵 구르더니 곧바로 먼저 떠난 송해인을 뒤쫓아갔다.서강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허탈한 듯 웃으며 한숨을 쉬었다.권효정은 그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서강빈 씨, 괜찮아요?”“괜찮아요.”“미안해요. 난 그냥 강빈 씨 전처를 좀 약오르게 하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설마 화난 건 아니죠?”권효정은 입을 비죽이며 고개를 숙이고 뒷짐을 진 채로 자책했다.서강빈은 웃음을 터뜨렸다.“화 안 났어요. 우리도 들어가요.”“정말요?”권효정은 곧바로 활짝 웃으며 서강빈을 데리고 함께 펜션 안으로 들어갔다....펜션 홀 안에는 송주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 있었다.그들은 술을 마시면서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눴다.사람들 사이에서 정장에 넥타이를 한, 아주 멋지게 꾸민 진기준은 안으로 씩씩거리면서 들어오는 송해인을 단번에 발견했다.진기준은 송해인의 열렬한 추종자였다.그는 송해인이 결혼했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 그녀에게 작업을 걸었고 그로 인해 서강빈과 꽤 많이 충돌했었다.“해인아, 왔어?”“진 대표?”송해인은 미간을 살짝 구기면서 차갑게 말했다.“송 대표나 송해인이라고 부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우리 아직 서로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기준은 서강빈의 곁에 청순하고 귀여운 여자가 요염한 자세로 서 있는 걸 발견했다.그 여자는 여신처럼 아름다웠고, 몸매든, 외모든, 분위기든 송해인에게 뒤처지지 않았다.게다가 그 여자는 송해인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었다.그 순간 진기준은 마치 마음속에 불꽃이 타오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빌어먹을! 서강빈 이 자식은 어떻게 또 이런 완벽한 여자를 손에 넣은 거야?’“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죠?”서강빈이 맞받아쳤다.진기준은 의대를 나온 고학력자에 송주의 가장 걸출한 청년 10명 중 1명으로 뽑혔었다.그는 의약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몸값이 2,000억에 달했다.특히 그는 의학계에서 많은 학술 논문을 발표하여 명성이 자자했고 송주에서 가장 잘나가는 젊은 청년이었다.그러나 서강빈은 그에게 전혀 호감이 없었다.첫 번째 이유는 송해인이 결혼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진기준은 송해인에게 계속해 작업을 거는 귀찮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그가 거만하고 잘난 척하며 뒤끝도 있는 데다가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진기준은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분노했다.송해인은 차갑게 코웃음 치더니 질투하며 불만스레 말했다.“결국엔 여자 덕이지, 뭐.”송해인은 왠지 모르게 자꾸만 짜증이 났고 참을 수 있었던 말도 그냥 내뱉었다.심지어 그 말을 하고 난 뒤 바로 후회했다.‘이미 서강빈과 이혼까지 했는데 난 왜 자꾸 얘 일에 간섭하는 거지?’서강빈은 미간을 구겼고 옆에 있던 권효정은 웃으며 대답했다.“송 대표님께서는 제 약혼자에게 뭔가 하실 얘기가 있으신가 봐요?”약혼자?진기준의 표정이 삽시에 달라졌다.처음엔 서강빈을 혐오하고 깔보고 불만이 가득했다면, 지금은 놀랍고 부럽고 질투가 났다.‘서강빈은 대체 여자 운이 왜 이렇게 좋은 거야? 또 결혼한다고? 게다가 이렇게 완벽한 여자랑. 내 잘생긴 얼굴은 전혀 쓸모없네. 저런 무능력한 자식보다도 못하다니...’송해인은 그 말을 듣자 울컥 화가
송해인이 화들짝 놀라서 물었다.“취소됐다니? 대체 어떻게 된 거야?”“저도 잘 모르겠어요. 방금 전해 들은 바로는 우리의 절차가 규범에 맞지 않는다고 하네요.”“얼른 알아봐,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송해인은 마음이 초조했다.이 시점에 갑자기 수시 모집 합격자 명단에서 제외당하는 것은 비오 그룹에 작지 않은 타격이다!이번 수시 모집 합격자 명단을 위해 송해인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돌아치고 온갖 인맥과 자원을 동원하며 거액을 투입했다.심지어 뒤에 있을 프로모션도 다 준비해 놓았다.근데 인제 와서 제외당하면 적어도 몇십억은 손해 본다.게다가 일단 수시 모집 합격자 명단에 들어가지 못하면 금오단의 홍보 효과도 크게 떨어질 것이다!이세영은 재빨리 여러 군데 전화했지만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대표님, 이젠 어떡하죠? 아무래도 권씨 일가의 뜻인 것 같습니다.”송해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권씨 일가? 우리가 언제 그 집안을 건드렸었나?”이세영이 머리를 내저었다.송해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휴대폰을 꺼내 한쪽 옆으로 걸어가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리조트 3층 서재에서.권 어르신은 휠체어에 앉아 손에 쥔 명단을 보았고 그의 옆엔 권영우가 서 있었다.한참 후 어르신이 흰 눈썹을 살짝 구기며 물었다.“수시 모집 합격자 명단은 확정됐어?”“네.”권영우가 대답했다.어르신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불쑥 물었다.“서 신의 아내의 비오 그룹도 명단에 있지?”“네.”권영우가 웃으며 명단의 제일 마지막 장을 펼쳤다.하지만 그는 곧장 멍하니 넋을 놓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지?”권영우가 어리둥절한 채로 물었다.명단이 바뀌었고 비오 그룹은 명단에서 사라졌다!이때 권효정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턱을 치키고 말했다.“아빠, 안 봐도 돼요. 그거 내가 바꿨어요.”“왜 그런 허튼짓을 꾸며?!”권영우가 차갑게 쏘아붙였다.“비오 그룹은 서 신의 아내분의 회사인데 대체 왜 제외한 거야?”권효정이 어깨를 들썩거렸다.“아빠
“진짜야?”송해인은 애가 타서 미칠 지경이었다.진기준은 멋있게 머리를 뒤로 넘기며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우리 아빠가 권씨 일가랑 친분이 좀 있거든. 아빠가 입만 여시면 수시 모집 합격자 명단에 관한 일은 바로 해결될 거야.”“그럼 잘 좀 부탁할 게, 진 대표. 이번 일만 해결해 주면 진 대표는 나의 은인이야.”송해인은 간절하게 말하면서 진기준의 팔을 잡아당겼다.진기준은 금세 흥분하기 시작했다.“알았어, 지금 바로 아빠한테 전화할게.”그는 말하면서 한쪽 옆으로 걸어가 한참이나 통화하더니 살짝 구겨진 얼굴로 돌아왔다.“어떻게 됐어?”송해인이 서둘러 물었다.진기준은 조금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전화상으로 아빠한테 된통 혼난 진 대표였다.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다고, 귀신에 홀린 게 아니냐고, 밖에서 제멋대로 허세만 부린다고 가차 없이 욕했고 수시 모집 합격자 명단에 관한 일은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이때 마침 이세영의 휴대폰도 울렸다. 전화를 받은 후 그녀는 희열에 찬 미소를 짓더니 곧 울 기세로 얘기했다.“대표님, 수시 합격자 명단 3개 중에 우리가 아직도 남아 있대요!”송해인은 매우 기뻐하며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진기준의 인맥이 이렇게 넓을 줄이야. 전화 한 통에 바로 해결해 버리다니.“진 대표, 정말 너무 고마워!”진기준도 의아했다. 설마 아빠가 일부러 놀리신 걸까?“하하, 뭘 이런 거로 새삼스럽게.”진기준은 웃으며 겸손한 척했다.이세영은 눈물을 닦고 문득 서강빈을 바라보며 말했다.“보세요, 대표님. 이게 바로 진 대표님과 서강빈 씨의 차이예요! 진 대표님은 전화 한 통에 이번 일을 해결했지만 서강빈 씨였다면 우린 막중한 타격을 입었을 거예요. 진 대표님 참 괜찮은 분이신 것 같아요. 한번 고려해 보세요. 두 분이 만약 함께한다면, 혹은 결혼까지 간다면 분명 송주 상업계에서 레전드로 남으실 겁니다!”진기준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미소 지었다.“이 비서, 나 너무 띄우는 거 아니야? 단지 사소한 일 하나
수시 모집 합격자 명단에 들어간 게 서강빈 때문이라고?서강빈이 말을 마친 순간 몇몇 사람은 멍하니 넋 놓고 말았다.다들 망연하면서도 의심에 찬 눈길로 서로를 마주 봤다.“서강빈 씨, 참 뻔뻔스러우시네요. 어떻게 이런 말까지 입밖에 내뱉을 수 있죠?”이세영이 하찮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그녀는 광대를 바라보듯 서강빈을 힐긋 노려봤다.진기준도 웃다가 사레 걸릴 뻔했다.“서강빈 씨, 과대망상증이라도 걸리셨나 본데, 내가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하는 일은 당신이 평생 해낼 수 없는 일이에요. 내키지 않으면 참던가!”서강빈이 눈썹을 들썩거리다가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남의 공로를 빼앗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죠. 언젠가 들킬라, 조심하셔야겠네요.”“그게 지금 무슨 말이에요? 이 공로가 내 게 아니면 뭐 설마 당신 거라도 된다는 건가요?!”진기준이 버럭 화내며 음침한 얼굴로 돌변했다.이세영도 따라서 꽥꽥 소리 질렀다.“서강빈 씨, 질투에 완전히 눈이 멀었군요! 진 대표님이 당신보다 능력 있다고 인정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요?”서강빈은 미간을 구겼다.“이 비서, 정 그렇게 못 믿겠으면 전화해서 물어보던가!”“누가 못 할 줄 알아요?”진기준은 흠칫 놀라서 속으로 전전긍긍했다.이번 일은 그가 해결한 일이 아니니 그도 감히 확신이 안 섰다.“저기, 이 비서, 전화할 필요까진 없어. 체면 좀 주자고, 어찌 됐든 한때 송 대표 남편이었잖아.”진기준이 웃으며 말했다.이세영은 눈썹을 찌푸리며 옆에 있는 송해인을 바라봤다.송해인은 인상을 찌푸린 채 싸늘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흥! 서강빈 씨, 얼른 진 대표님한테 감사드리지 않고 뭐 해요? 계속 이러시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서강빈 씨라고요!”이세영이 지시하듯 그에게 쏘아붙였다.“감사를 드려?”서강빈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는데 웃음 속에 야유가 살짝 묻어났다.수시 모집 합격자 명단은 권씨 일가에서 서강빈의 체면을 봐서 올려준 건데 인제 와서 공로를 뺏은 소인배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라고?
“자, 이번에는 비오 그룹에서 새로 개발한 의약품 금오단을 보시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미리 알고 계시겠지만 이 약품은 만병통치약이라고 불리는 획기적인 의약품입니다. 우리 다 함께 큰 박수로 비오 그룹 송해인 대표님을 모십시다!”짝짝짝!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대표님, 우리 차례에요.”이세영이 흥분 조로 말했다.송해인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무대의 눈부신 스포트라이트와 뜨거운 박수 소리까지, 오늘 밤, 그녀는 송주 상업계의 여왕으로 거듭날 것이다.지난날과 완전히 작별하고 새로운 미래를 맞이할 서막이 곧 열릴 것이다.후...송해인은 숨을 깊게 몰아쉰 후 맞은편 구석에서 여전히 차분한 얼굴로 앉아있는 서강빈을 힐긋 보았다.오늘 밤이 지나면 그녀와 서강빈은 하늘땅 차이를 이룰 것이다.그녀는 송주 전체에 이름을 널리 알릴 테니까.송해인은 시선을 거두고 차분한 눈빛으로 뭇사람들의 박수 속에서 한 걸음씩 무대에 올랐다.이세영이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쳤다.“대표님, 화이팅!”진기준도 구석에 있는 서강빈을 흘겨보며 속으로 사악한 미소를 날렸다.‘강빈아, 송해인은 결국 내 여자야. 비오 그룹도 이젠 다 내 거야.’그 시각 서강빈은 미간을 살짝 구기고 무대에 오르는 송해인을 바라봤다.화려한 불빛 속에서 그녀는 더할 나위 없이 도도하고 넘볼 수 없는 아우라를 내뿜었다.마치 설산 속의 아름다운 꽃처럼.“강빈 씨, 송해인 씨한테 아직 미련이 남아 있나요?”권효정은 그가 송해인을 바라보는 눈빛을 보더니 떠보듯이 물었다.서강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없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우린 이젠 남남이에요.”“네...”권효정은 머리를 긁적이고 무대 위의 송해인을 쳐다봤다.그녀는 유창하게 금오단을 소개했고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움과 의논의 연속이었다.권효정마저 지금 이 순간의 송해인은 자신감에 차 넘친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정말 상업계의 여왕이 될 기질을 갖고 있었다.게다가 금오단도 오늘 밤 압도적인 우세로
스읍!장내가 충격에 휩싸였다!거의 한순간, 홀 안의 모든 이의 시선이 구석에 앉아있는 서강빈에게 쏠렸다.놀라움과 의아함, 분노, 야유, 그리고 깨 고소함까지 모든 표정이 얼굴에 드러났다.이 녀석은 대체 누굴까?감히 이토록 중요한 자리에서 이런 말을 내뱉다니, 죽고 싶어 환장한 걸까?권효정마저 마음이 찔린 듯 몸을 움츠렸다. 모두의 주목을 받는 이 느낌은 실로 불편할 따름이었다.그녀는 살며시 서강빈의 옆에 기대 작은 손으로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속삭였다.“강빈 씨, 말 함부로 하지 마요. 저분은 무려 중앙 군관구 우남기 어르신이라고요. 우리 가족들도 저분 앞에선 공손해져요...”우남기의 옆에 있던 강지원은 서강빈을 알아보고 살짝 의아한 눈빛으로 변했다.‘저 사람이 왜 여기 있지? 배짱은 있네. 감히 어르신 앞에서 이런 말을 내뱉고 말이야.’강지원의 아름다운 눈썹이 살짝 구겨졌다. 그녀는 어떻게 서강빈을 위해 해명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한편 송해인은 서강빈의 말을 들은 순간 멍하니 넋 놓고 있다가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그녀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가까이에 있던 이세영이 뛰쳐나가 서강빈을 한바탕 질책했다.“서강빈 씨!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에요? 오늘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는 알고 있어요? 어르신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있냐고요? 감히 그런 천박한 말을 내뱉다니. 지금 어르신을 저주하는 거예요 아니면 손 신의가 직접 평가한 만병통치약 금오단을 의심하는 거예요?!”이세영이 버럭 화를 냈다!‘서강빈 이 새끼가 하필 이 타이밍에 헛소리를 지껄여!’송해인의 예쁘장한 얼굴에도 싸늘한 한기가 감돌았다.인파들 속에서 진기준이 깨고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서강빈은 이혼했다고 송해인에게 일일이 맞서는 걸까?이건 그냥 대놓고 송해인을 진기준에게 떠미는 셈이다.“그래요! 서강빈 씨, 거울이나 좀 보고 와요. 찌질이 주제에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떠들어대요?”진기준도 잇따라 나서며 사납게 쏘아붙였다.“어르신,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저 녀
뜨헉!홀 안이 떠들썩해졌다.뭐라고?이혼?!저자가 바로 비오 그룹 송해인 대표의 남편이란 말인가?3년 전 비오 그룹을 설립하고 송주 10대 뛰어난 청년 리더로 선정된 천재 사업가 서강빈이라고...다만 2년 전에 그는 송주 상업계에서 은퇴했고 심지어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처지에 이르렀다. 송해인이 언급하지 않으면 그를 알아볼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지경이다.소문에 따르면 비오 그룹의 전임 대표 서강빈은 현술에 혹해 비오 그룹을 포기하고 빈둥거리며 놀더니 가게를 열어 관상을 봐주고 점사나 보는 일을 하고 있다던데 아마도 팩트인 듯싶었다.홀 안의 대부분 사람들은 그해 서강빈의 위엄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그랬던 그가 이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렸다.눈앞의 서강빈은 투지도 없고 막말이나 내뱉으며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찌질이에 불과했다.다들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돌변했다.비아냥거리고 시큰둥하고 깨 고소해하며 분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에이 설마, 고작 이혼했다고 이런 장소에서 송 대표를 괴롭힌단 말이야?”“지금 이건 일부러 비오 그룹을 깎아내리는 거잖아!”“아무리 그래도 비오 그룹은 한때 서강빈이 설립한 회사인데, 은퇴했다고 이렇게 하는 건 너무 지나치지 않아?”“역시 남자들이란, 등 돌리면 이판사판 볼 것 없네. 송 대표가 어쩌다가 저런 인간이랑 결혼했대?”주위에 의논이 끊이지 않았다.강지원의 낯빛도 살짝 변했다. 그녀는 의아한 듯이 서강빈과 송해인을 번갈아 봤다.서강빈은 송해인의 질문을 들은 후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쏘아붙였다.“내가 일부러 널 겨냥한다고 생각해?”“그럼 아니야?”“나 원 참.”서강빈은 고개를 내저으며 두 눈에 막연한 슬픔이 내비쳤다.“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네 마음이지만, 이봐요 송해인 대표님, 어르신이 금오단을 이렇게 삼키시면 독약이나 따로 없다고! 반드시 내 침술과 결부해야 약효를 발휘할 수 있어, 알아?! 이건 마지막 경고야. 끝까지 내 말 안 믿으면 그냥 내가 오지랖 넓은 셈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