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번에는 비오 그룹에서 새로 개발한 의약품 금오단을 보시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미리 알고 계시겠지만 이 약품은 만병통치약이라고 불리는 획기적인 의약품입니다. 우리 다 함께 큰 박수로 비오 그룹 송해인 대표님을 모십시다!”짝짝짝!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대표님, 우리 차례에요.”이세영이 흥분 조로 말했다.송해인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무대의 눈부신 스포트라이트와 뜨거운 박수 소리까지, 오늘 밤, 그녀는 송주 상업계의 여왕으로 거듭날 것이다.지난날과 완전히 작별하고 새로운 미래를 맞이할 서막이 곧 열릴 것이다.후...송해인은 숨을 깊게 몰아쉰 후 맞은편 구석에서 여전히 차분한 얼굴로 앉아있는 서강빈을 힐긋 보았다.오늘 밤이 지나면 그녀와 서강빈은 하늘땅 차이를 이룰 것이다.그녀는 송주 전체에 이름을 널리 알릴 테니까.송해인은 시선을 거두고 차분한 눈빛으로 뭇사람들의 박수 속에서 한 걸음씩 무대에 올랐다.이세영이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쳤다.“대표님, 화이팅!”진기준도 구석에 있는 서강빈을 흘겨보며 속으로 사악한 미소를 날렸다.‘강빈아, 송해인은 결국 내 여자야. 비오 그룹도 이젠 다 내 거야.’그 시각 서강빈은 미간을 살짝 구기고 무대에 오르는 송해인을 바라봤다.화려한 불빛 속에서 그녀는 더할 나위 없이 도도하고 넘볼 수 없는 아우라를 내뿜었다.마치 설산 속의 아름다운 꽃처럼.“강빈 씨, 송해인 씨한테 아직 미련이 남아 있나요?”권효정은 그가 송해인을 바라보는 눈빛을 보더니 떠보듯이 물었다.서강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없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우린 이젠 남남이에요.”“네...”권효정은 머리를 긁적이고 무대 위의 송해인을 쳐다봤다.그녀는 유창하게 금오단을 소개했고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움과 의논의 연속이었다.권효정마저 지금 이 순간의 송해인은 자신감에 차 넘친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정말 상업계의 여왕이 될 기질을 갖고 있었다.게다가 금오단도 오늘 밤 압도적인 우세로
스읍!장내가 충격에 휩싸였다!거의 한순간, 홀 안의 모든 이의 시선이 구석에 앉아있는 서강빈에게 쏠렸다.놀라움과 의아함, 분노, 야유, 그리고 깨 고소함까지 모든 표정이 얼굴에 드러났다.이 녀석은 대체 누굴까?감히 이토록 중요한 자리에서 이런 말을 내뱉다니, 죽고 싶어 환장한 걸까?권효정마저 마음이 찔린 듯 몸을 움츠렸다. 모두의 주목을 받는 이 느낌은 실로 불편할 따름이었다.그녀는 살며시 서강빈의 옆에 기대 작은 손으로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속삭였다.“강빈 씨, 말 함부로 하지 마요. 저분은 무려 중앙 군관구 우남기 어르신이라고요. 우리 가족들도 저분 앞에선 공손해져요...”우남기의 옆에 있던 강지원은 서강빈을 알아보고 살짝 의아한 눈빛으로 변했다.‘저 사람이 왜 여기 있지? 배짱은 있네. 감히 어르신 앞에서 이런 말을 내뱉고 말이야.’강지원의 아름다운 눈썹이 살짝 구겨졌다. 그녀는 어떻게 서강빈을 위해 해명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한편 송해인은 서강빈의 말을 들은 순간 멍하니 넋 놓고 있다가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그녀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가까이에 있던 이세영이 뛰쳐나가 서강빈을 한바탕 질책했다.“서강빈 씨!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에요? 오늘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는 알고 있어요? 어르신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있냐고요? 감히 그런 천박한 말을 내뱉다니. 지금 어르신을 저주하는 거예요 아니면 손 신의가 직접 평가한 만병통치약 금오단을 의심하는 거예요?!”이세영이 버럭 화를 냈다!‘서강빈 이 새끼가 하필 이 타이밍에 헛소리를 지껄여!’송해인의 예쁘장한 얼굴에도 싸늘한 한기가 감돌았다.인파들 속에서 진기준이 깨고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서강빈은 이혼했다고 송해인에게 일일이 맞서는 걸까?이건 그냥 대놓고 송해인을 진기준에게 떠미는 셈이다.“그래요! 서강빈 씨, 거울이나 좀 보고 와요. 찌질이 주제에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떠들어대요?”진기준도 잇따라 나서며 사납게 쏘아붙였다.“어르신,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저 녀
뜨헉!홀 안이 떠들썩해졌다.뭐라고?이혼?!저자가 바로 비오 그룹 송해인 대표의 남편이란 말인가?3년 전 비오 그룹을 설립하고 송주 10대 뛰어난 청년 리더로 선정된 천재 사업가 서강빈이라고...다만 2년 전에 그는 송주 상업계에서 은퇴했고 심지어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처지에 이르렀다. 송해인이 언급하지 않으면 그를 알아볼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지경이다.소문에 따르면 비오 그룹의 전임 대표 서강빈은 현술에 혹해 비오 그룹을 포기하고 빈둥거리며 놀더니 가게를 열어 관상을 봐주고 점사나 보는 일을 하고 있다던데 아마도 팩트인 듯싶었다.홀 안의 대부분 사람들은 그해 서강빈의 위엄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그랬던 그가 이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렸다.눈앞의 서강빈은 투지도 없고 막말이나 내뱉으며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찌질이에 불과했다.다들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돌변했다.비아냥거리고 시큰둥하고 깨 고소해하며 분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에이 설마, 고작 이혼했다고 이런 장소에서 송 대표를 괴롭힌단 말이야?”“지금 이건 일부러 비오 그룹을 깎아내리는 거잖아!”“아무리 그래도 비오 그룹은 한때 서강빈이 설립한 회사인데, 은퇴했다고 이렇게 하는 건 너무 지나치지 않아?”“역시 남자들이란, 등 돌리면 이판사판 볼 것 없네. 송 대표가 어쩌다가 저런 인간이랑 결혼했대?”주위에 의논이 끊이지 않았다.강지원의 낯빛도 살짝 변했다. 그녀는 의아한 듯이 서강빈과 송해인을 번갈아 봤다.서강빈은 송해인의 질문을 들은 후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쏘아붙였다.“내가 일부러 널 겨냥한다고 생각해?”“그럼 아니야?”“나 원 참.”서강빈은 고개를 내저으며 두 눈에 막연한 슬픔이 내비쳤다.“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네 마음이지만, 이봐요 송해인 대표님, 어르신이 금오단을 이렇게 삼키시면 독약이나 따로 없다고! 반드시 내 침술과 결부해야 약효를 발휘할 수 있어, 알아?! 이건 마지막 경고야. 끝까지 내 말 안 믿으면 그냥 내가 오지랖 넓은 셈
홀 안의 뭇사람들은 우남기를 빤히 쳐다보며 금오단을 먹은 후 그의 반응을 살펴보았다.강지원도 쪼그리고 앉아 나지막이 속삭였다.“할아버지, 느낌 어때요?”우남기는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괜찮은 것 같구나. 몸도 훨씬 가벼워지고 가슴 답답하던 증상도 많이 나았어. 미지근하게 아프던 것도 사라지고 머리도 훨씬 맑아졌어. 금오단이 좋긴 좋네.”말을 들은 장내의 손님들이 더할 나위 없이 흥분했다!금오단이 정말 대단하긴 한가 보다!우남기도 이렇게 인정하니 송주 의학계에 곧 거센 파도가 일렁일 듯싶다!송해인은 우남기의 말을 듣더니 가슴을 짓눌렀던 큰 돌덩어리를 내려놓은 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금오단이 드디어 위세를 떨쳤다!그녀는 이미 비오 그룹이 장차 송주 의학계의 거물이 되는 모습까지 상상하고 있었다.송해인의 뒤에 있던 이세영도 흥분을 금치 못한 채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대표님, 우리가 해냈어요!”이세영이 감격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녀의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오늘 밤이 지나면 비오 그룹은 널리 명성을 떨칠 것이고 송해인도 송주 상업계의 차기 여왕으로 거듭날 것이다!그리고 이세영도 몸값이 제일 높은 비서가 될 것이다.“그래.”송해인이 힘껏 머리를 끄덕이며 대문 입구를 바라봤다.‘강빈아, 네가 이 광경을 못 보다니, 참 아쉽네. 오늘부로 우린 서로 레벨이 달라져. 난 더 높이 날아갈 것이고 넌 영원히 제자리걸음이야.’송해인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서강빈이 말했던 모든 것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방금 그가 한 말은 전부 헛소리이고 일부러 시비를 걸기 위해서였다.현장에 있던 여러 재벌들도 흥분을 금치 못하며 거액으로 송해인에게서 금오단을 사겠다고 했고 그녀도 일일이 대답했다.하지만 갑자기 이변이 일어났다!“으악...”휠체어에 앉아있던 우남기가 가슴을 꽉 부여잡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우남기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졌고 입술도 새파랗게 질렸다. 그는 두 눈을 뒤집으며 선홍빛 핏물을 내뿜고는 휠
송해인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마음이 복잡해졌다.이세영이 재빨리 그녀를 부축하며 울먹거렸다.“대... 대표님, 이젠 어떡해요? 어르신이 정말 잘못되기라도 하면 우린 끝장이에요. 모든 게 끝장이라고요...”인파들 속에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서강빈 씨 말이 맞았네...”서강빈?!송해인은 몸을 움찔거리더니 문밖으로 시선을 돌렸다!“대표님, 서강빈 씨가 수작을 부린 게 틀림없어요! 이 약 처방은 서강빈 씨가 준 거잖아요. 일부러 대표님을 해치고 비오 그룹을 무너뜨리려고 그런 거예요!”이세영이 또다시 머리를 굴리며 모든 책임을 서강빈에게 뒤집어씌웠다. 그녀는 고래고래 소리 지를 뿐 서강빈의 거듭된 경고는 아예 뒷전이었다.“정말 강빈의 짓이라고?”송해인은 여전히 머뭇거렸다.아무리 이혼했어도 서강빈은 굳이 이렇게까지 그녀를 해칠 이유가 없으니까.단지 최근 2년 사이에 퇴폐해졌을 뿐 성품은 전혀 문제없었다.“대표님, 아직도 그런 자식을 믿으시는 거예요? 서강빈이 아니면 이 금오단은 어떻게 해석할 건데요? 이건 서강빈이 일부러 우리에게 파놓은 함정이에요! 이 기회에 대표님을 해치고 우리 비오 그룹을 해치는 거라고요!”이세영이 조급해하며 말했다.송해인은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심란해졌다.설마 진짜 서강빈의 짓일까?“하지만... 강빈이가 왜?”송해인은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지만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이세영이 말했다.“방금 서강빈 씨가 나갈 때 하는 말 못 들었어요? 대표님더러 직접 찾아가서 빌어야 한다잖아요! 이렇게 많은 유명 인사들 앞에서 망신 주려고 작정한 거예요!”철퍼덕!송해인은 가슴이 움찔거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이때 진기준이 기회를 노리고 재빨리 달려와 그녀를 부축하며 나지막이 말했다.“송 대표, 이 비서 말이 맞아. 이 모든 건 서강빈 씨가 작정하고 파놓은 함정이야.”“흑흑, 대체 왜? 왜 나한테 이러는 건데?!”송해인은 멘탈이 무너져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바로 이때 몇
송해인은 흠칫 놀라더니 처참한 미소를 지었다.“이게 바로 네가 원하는 거야?”서강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그녀에게 되물었다.“무슨 뜻이야?”“일이 이렇게 됐는데도 시치미 떼려고? 너 이렇게 하는 거 사람들 앞에서 나 망신 주기 위해서잖아. 내가 너한테 구걸하길 바라는 거 아니었어? 너의 그 더럽고 이기적인 마음을 만족시키려고 이러는 거잖아!”송해인은 비참하게 웃으며 눈가에 고인 눈물을 쓱 닦았다.3년이나 함께했던 남자가 이런 식으로 나오다니. 그녀는 납득할 수 없었다.서강빈은 저절로 미간이 구겨졌다.그녀는 고작 이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는구나!3년이란 감정은 차라리 개나 줘버리고 말지!“네 눈엔 내가 고작 그런 사람으로밖에 안 보여?”서강빈이 진지하게 물었다.송해인은 침묵하며 싸늘한 표정으로 그에게 해답을 건넸다.서강빈은 저 자신이 우스울 따름이었다.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그렇다면 나도 더 이상 할 말 없어. 내가 어르신 구해주길 바라는 거면 빌어 나한테.”“드디어 본모습 드러내는 거야?”송해인이 싸늘하게 웃으며 그를 째려봤다.이때 이세영이 홀에서 뒤쫓아오더니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서강빈! 적당히 해. 아무리 우리 대표님과 이혼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몰아붙이는 건 아니지. 정말 대표님이 구걸하는 걸 봐야만 속이 시원하겠어?”서강빈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이세영을 노려봤다.“지금 이 상황은 당신이 자초한 거 아니야? 내가 뭘 몰아붙였다는 거지? 이 비서, 애초에 금오단을 가져가려 할 때 내가 미리 일깨워주지 않았어?”그의 물음에 이세영은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다만 여전히 본인은 아무 잘못 없다는 듯 막무가내로 소리칠 뿐이었다.“서강빈 씨, 잔말 말아요. 이번 일은 당신도 책임이 있어요! 대표님께 빌라고 할 자격 없다고요. 옛정을 생각한다면 대표님을 돕는 게 마땅해요. 이렇게 기회를 틈타 협박하는 게 아니라! 사내대장부가 돼서 왜 그렇게 속이 좁아요? 남자로서 대표님 한 번 돕는 게 뭐가 그리 힘들어요? 우리도 더
강지원은 안색이 어두워졌고 아름다운 눈썹마저 확 구겨졌다.이때 서강빈이 대답했다.“어르신이 5분 안에 못 깨어나면 내가 책임져요!”“그래요! 이건 본인이 한 말이니까 나랑 해인 씨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진기준이 이 기세에 힘입어 쐐기를 박으며 속으로 비웃었다.서강빈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해인이랑 상관없어요.”마침 송해인과 이세영도 들어오며 이 말을 듣고 안색이 돌변했다.진기준은 칭찬이라도 받고 싶은 듯 쪼르르 송해인에게 다가가며 웃었다.“송 대표도 들었지? 서강빈 씨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했어. 어르신께 무슨 일 생겨도 더 이상 송 대표랑 상관없으니 이만 시름 놓아도 돼.”“고마워요, 진 대표님.”이세영이 나지막이 말했다.송해인과 비오 그룹만 이 사태에서 빠져나온다면 모든 게 쉽게 해결된다.‘서강빈 넌 이젠 끝장이야. 모든 책임을 짊어질 준비나 해!’다만 송해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서강빈, 착한 척하지 마. 어르신께 문제 생기면 내가 전부 책임질 거야! 우린 이미 이혼했으니까 너도 더는 나 대신 책임질 필요 없고 나도 그런 건 바라지 않아!”이건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이다.서강빈은 몸을 돌려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송 대표, 실망스럽겠지만 내가 있는 한 어르신은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리고 나도 너 대신 뭘 더 책임질 거란 생각은 안 했어. 혼자 김칫국 마시지 말아 줄래?”“너!”송해인은 울화가 치밀었다.한편 서강빈은 이미 몸을 돌려 태연자약하게 한쪽 옆에 앉아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휴식했다.방금 침을 놓느라 기력을 너무 많이 소모한 듯했다.권효정이 얼른 눈치껏 물 한 잔 따르며 그의 곁에 앉아 조심스럽게 그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주었다.이 광경을 본 송해인은 울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라 고개를 홱 돌리고 휠체어에 앉아있는 우남기를 쳐다봤다.지금 제일 중요한 인물이 바로 우남기 어르신이다!만약 어르신이 깨어나면 모두가 기뻐할 일이고 깨어나지 못하면 비오 그룹과 송씨 일가 전
우남기는 눈을 뜨고 보니 온몸이 개운하고 가슴이 답답하던 증상도 사라졌으며 몸에 따뜻한 기류가 흘렀다.“나 괜찮아.”우남기가 웃으며 말했다.강지원은 눈물을 닦고 한숨을 돌리면서 재빨리 서강빈에게 말했다.“정말 고마워요, 서 신의님.”서강빈이 차분하게 웃었다.“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에요.”그 시각 장내의 모든 이가 어안이 벙벙해졌다.서강빈이 의술에 능통할 줄이야.인파들 속에서 진기준의 얼굴이 한껏 일그러졌다. 그가 방금 내뱉은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았으니 제 발등에 찍힌 격이 아니겠는가.“고맙네 서 신의,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어.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나한테 연락하게. 지원이 찾아도 되고.”우남기가 감사의 뜻을 표했다.서강빈은 서둘러 그에게 말했다.“과언입니다. 어르신은 나라를 위하고 서민을 위해서 수없이 전장을 누비셨어요. 제가 마땅히 도와드려야죠.”우남기가 머리를 끄덕이며 온화하고 자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서강빈이란 젊은이가 몹시 마음에 든 모양이다.이 겸손한 태도만 봐도 미래가 빛날 인재였다.옆에 있던 강지원이 또다시 어르신께 나지막이 속삭였고 외손녀의 말을 들은 어르신은 흥분을 금치 못했다.“뭐라고? 너의 고질병을 치료한 신의가 바로 서강빈 씨란 말이야?”우남기는 화색을 띠며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말했다.“서 신의의 의술은 신의라는 두 글자에 걸맞은 실력일세. 지원아, 앞으로 서강빈 씨에게 제대로 고마움을 표하고 이분과 친하게 지내거라.”강지원이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네, 할아버지.”그녀는 어린 소녀처럼 수줍게 미소 지었다.우남기가 되살아나니 뭇사람들도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송해인의 안색도 훨씬 밝아졌다.한편 이세영은 여전히 혀를 끌끌 차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허세 부리는 것 좀 봐. 그냥 얻어걸린 거잖아. 칫.”“이 비서, 말 가려서 해.”송해인이 냉큼 그녀를 째려봤다.지금 이런 말을 하는 건 대놓고 심기를 건드리는 거나 다름없다.“제 말 맞잖아요. 대표님도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