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이라는 시간이 이도현에게는 아주 길게 느껴졌다.원래 이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데 이도현이 잠깐 당황하는 바람에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한지음 몸의 모든 병마와 염증들을 다 치료하고서야 침을 뽑았다.큰 병을 고치니 염증도 다 없어졌는지, 한지음의 몸은 한결 편해졌다. 바늘을 뽑을 때 자기도 모르게 살짝 신음이 나왔다."뭐야! 이런 걸로 날 시험하는 거야?”이도현은 하마터면 이성을 잃을 뻔했다. 한지음의 신음이 너무 매혹적이었다.원양을 무너뜨릴 수 없었기에 꾹 참았지, 아니면 진작에 이성을 잃었을 것이다.“진정하자, 진정해! 지금 아주 중요한 시기야! 참아!”가까스로 진정하고 그는 재빨리 침을 뽑고 등을 돌렸다. 자신의 이성을 가까스로 잃게 한 그 몸에서 시선을 뗐다."한지음 씨, 이젠 일어나서 옷 입으셔도 됩니다.”어색하게 말했다.“한지음 씨라고 하지 말고, 그냥 지음이라고 불러요.”한지음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침대에서 일어나며, 등을 돌리고 있는 이도현을 보고 살짝 웃었다.“지음이라고 불러라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이도현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 설명하지 못할 장면들이 떠올랐다.“좀 쉬어요!”이도현은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이도현의 당황한 뒷모습에 한지음의 입꼬리가 올라갔다.“겁쟁이! 이 정도 했는데 날 건드리지도 못하네!”한지음은 자신의 우월한 몸매를 한번 보고는 옷을 입기 시작했다.마음이 주인을 찾아서인지 아니면 병이 나아서인지, 한지음은 지금 더할 나위 없이 홀가분했다.옷을 다 챙겨입고 방에서 나오자마자 신연주와 마주쳤다.신연주가 실실 웃으며 자신을 쳐다보는 모습에 한지음의 얼굴이 다시 빨개졌다.“연주 언니, 왜 그렇게 쳐다봐요!”“어디 보자! 누가 너 건드린 건 아니지?”그녀를 놀리는 듯한 말투였다. ;“언니... 언니...”그 말에 한지음은 발을 동동 굴렀다.“에이! 아깝다. 저 멍청한 녀석이 이런 기회도 잡지 못하니, 내가 언제야 조카를 볼 수 있겠어!”신연주의 표정은 손자를 기다리는
이도현도 궁금했다. 그는 서북후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노구치 가문의 소행이라니, 그것도 자기한테서 뭔가를 얻어내기 위해서!게다가 태허산과 관련이 있다니, 그는 의아한 동시에 흥미로웠다.“선배, 제가 그 사람들 찾아가서 알아볼게요. 아니면 번거로운 일이 끊이지 않을 거예요.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넘보는 사람들이 있을수도 있잖아요. 그게 정확히 뭔지 알아내야 우리도 거기에 대비하죠.”이도현은 자진해서 그들을 찾아가기로 했다.“나랑 같이 가!”신연주가 말했다.“선배! 선배는 집에 있어요! 우리가 다 가면 한지.... 지음이가 혼자 집에 있어야 하잖아요. 하인들도요. 만약 또 자객들이 들이닥치면 이들을 보호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하잖아요.”“이것 봐라! 이젠 지음이라고 부르네. 아까 진짜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니야?”신연주가 오글거린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이도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내가 그럴 사람인가?“언니, 무슨 말이에요! 무슨 일이 있었다니요! 자꾸 이러면 언니랑 말 안 할거예요!” 한지음은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랐다.“그래, 그래! 알았어. 아무 일도 없었다고 쳐.” 말속에 말이 있다.이 말은 그녀와 이도현 두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하긴, 한지음이 지나치게 순진한 탓도 있었다.“선배! 그만 좀 해요! 진짜 못 말려!” 이도현은 머리를 저으며 자리를 떠났다.그녀랑 있으면 순진한 척하기도 참 어려운 일이다.노구치 가문 세력이 완성의 서북후에 있다니! 거기에 노구치 무관이라고 하는 지국식 건물이 하나 있기는 했다.이 건물에 외부인의 출입은 금지되어 있다. 특히 염국인에게는 더 엄격하게 굴었다. 멀리에서 건물을 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지국 민족의 나쁜 근성 중 하나가 염국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들은 염국 땅에 있으면서도 자기 민족의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항상 염국 사람들을 무시하며 역겨운 행동을 해댔다.다만 염국의 일부 사람들이 자진해서 그들에게 조아리며, 조상을 모시는 것 마냥 그들을 떠받들
노구치 가문이 이도현의 살인 청부를 한데는 강학연의 공이 컸다.다만 예전에는 위풍당당했던 완성의 거물 강학연이 지금은 지국의 노예가 되었다. 그들의 충성스러운 개 역할을 하고 있었다.“알았네! 강 씨, 자네 말이 맞네. 자네의 우리 지국에 대한 충성심을 잘 알겠네!”노구치는 마치 자신의 애완동물처럼 강학년의 어깨를 두드리며 만족해했다.강학연은 재빨리 허리를 굽혀 머리를 조아렸다. 그는 노구치의 손길에 더욱 아양을 떨며 말했다.“노구치 선생을 위해 일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그래! 하하하!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만 한다면 우리 지국에서 자네에게 큰 장려를 내려주겠네! 절대 자네를 박대하지 않을 거네. 앞으로는 이 완성은 자네의 것이네!”노구치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예! 알겠습니다! 노구치 선생의 보살핌을 감사히 생각합니다! 저 강학연 앞으로도 노구치 가문에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하지만 노구치 선생, 그 이도현은 큰 골칫거리라 그를 죽이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저번에 그를 죽이러 간 자도 도리어 이도현 살해당했고 내부 시스템도 해킹당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시스템을 복구하지 못했고요. 이도현은 상대하기 어려운 대상입니다!”강학연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하하하 그건 염국인이 너무 무능해서야. 그깟 이도현을 상대하는 건 우리 지국인에게 일도 아니야! 내 무사를 출동시켜 이도현을 처리할 거야!” 아주 간단한 일이야!”"그럼, 그 것도 우리 손에 들어오게 돼 있어! 그것만 손에 얻으면 이 세상은 이제 우리 지국이 지배하게 될 거야. 하하하.......”노구치는 끝없는 탐욕을 드러내며 말했다.그런데 그때 그의 오만방자한 웃음소리가 채 없어지기도 전에, 갑자기 문이 사분오열되고 웬 사람 그림자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젠장! 무슨 일이야!”노구치는 소리를 지르며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한 젊은이가 그의 시선에 들어왔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이…이도현!”강학연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두려움에 찬
”뭘 내놓으라는 거야?”이도현이 물었다.“지금 분위기 파악이 잘 안되나?”“너희 염국인의 옛말에 그런 말이 있잖아. 눈치가 빠른 자가 곧 영웅이라고! 내 생각엔 당신도 일이 번거로워지길 원하진 않잖아!”노구치가 손을 털며 말했다.이때 갑자기!그의 바로 뒤에서 검은 복면을 하고 온몸을 꽁꽁 싸매고 두 손에는 칼을 든 수십 명의 무사가 나왔다.“확실해? 겨우 이런 부하들을 데리고 날 죽이겠다고?”이도현은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그는 그들의 기운을 느끼기만 해도 잘 알 수 있었다. 이 수십 명의 무사 중에 가장 센 사람이래야 봤자 고작 몇 명의 지급 무인이라는 걸.“반쯤만 죽여놓거라!” 노구치가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십 명의 무사가 이도현을 향해 돌진 했다.“죽고 싶어서 환장했네!”이도현은 코웃음을 쳤다. 두 손을 바깥쪽으로 털자, 수십개의 침바늘이 동시에 그들을 향해 날아갔다.그러자 그들은 마치 무슨 저주라도 받은 것처럼 갑자기 멈춰 제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죽여! 죽이라고! 다들 왜 멈춰 선 거야! 이런!”노구치는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저 부하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해, 노발대발하여 앞에 있는 한 무사의 몸을 걷어찼다.그런데 서 있을 때의 동작을 그대로 유지하며 바닥에 꼿꼿이 쓰러졌다.“뭐야? 죽었어?”노구치는 이 상황을 이해할수 없었다. 그가 앞으로 나서 자세히 보니 모든 무사의 미간에 쇠털처럼 가느다란 피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순간 짙은 공포가 그의 가슴을 덮쳤고 이마에 식은땀이 절로 났다.이 갑작스러운 상황이 그에겐 너무 낯설었다.이도현이 손만 흔들었을 뿐, 심지어 제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이 수십 명의 무사가 이렇게 죽어가고 있으니.이게 사람인가!이 수십 명의 무사는 모두 무술에 능하고, 최강실력을 가진 지급 무사도 있는데. 만약 십여 명의 지급 무사를 합치면, 천급 무사를 상대하는 거나 마찬가지다.근데 지금!이 강자
”노구치 선생.....”강학연은 분노에 찬 얼굴로 노구치를 쳐다봤다.필요할 땐 잘 이용해 먹더니! 이젠 필요 없으니 가차 없이 내치다니.아무런 보상도 없이! 적어도 돈이라도 주고 그럴 것이지!“괜찮소! 허허!”이도현은 코웃음을 쳤다. 그가 말이 되지도 않는 거짓말로 둘러대는 게 가소로웠다."그래요! 괜찮죠! 이도현 씨도 잘 알고 있을거라 생각해요!”노구치는 이도현이 더 이상 말하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얼른 그의 말에 대꾸했다.“당신네 지국인들은 참 이상해. 강하게 나가지 않으면 자기 주제를 잘 파악하지 못하니 말이오. 괜찮소! 내가 아주 큰 소리로 말하게 해주지!”이도현이 차갑게 말했다.“뭐라고요?”노구치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이 굳어지면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돌변했다.협상이 실패하니, 다시 손을 쓰는 수밖에!노구치는 재빨리 허리춤에서 검을 빼 들어 이도현에게로 돌진했다.그 또한 천지 강자이며, 검을 쓰는데 능통하고, 검을 뽑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상대가 그의 칼에 반응할 때면 이미 목숨을 잃은 때이다.칼을 뽑는 속도가 너무 빠르기에, 상대는 그의 공격을 피할 새도 없이 손 놓고 당하게 된다.다만, 이번에 그의 상대는 이도현이다.그가 검을 뽑아 이도현의 목을 베려고 할 때, 이도현은 손을 살짝 들어 검을 두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그가 아무리 힘을 써도 이도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곧이어 이도현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강철로 만든 그의 검이 바로 부러졌고, 이도현은 부러진 검을 손가락으로 살짝 튕겼다.순간 그는 검으로부터 오는 강한 기운을 느꼈고, 반응할 새도 없이 한쪽으로 거꾸로 날아가 엎어졌다.그리고 그의 손에 든 검은 작은 조각으로 변했다!“당신... 푸...”노구치는 공포에 질려 덜덜 떨었다. 그가 입을 열자마자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이도현의 손가락 하나로 그를 제압해 버렸다.이도현의 힘은 상상 그 이상이다!“개자식! 빌어먹을 놈, 빌어먹을 염국인, 감히 나에게 이런 수를 써, 노구
“어떻게 이런 일이?”“총알을 다 받아내다니, 이건 일반 총이 아니라 특수 제작된 총인데.”노구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는 걸 믿고 싶지 않았다.사람이 어떻게 총알을 손으로 받을 수 있겠는가. 아무리 천급 강자라 할지라도 불가능한 일이다!노구치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 고요한 공기에 그의 땀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선명히 들렸다.“불가능한 건 없어!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 도대체 뭘 원하는 거야?”이도현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이... 이... 오해예요! 오해!” 방금 농담한 거예요. 신경 쓰지 말아요...!” 오해...”노구치는 억지로 웃으며 덜덜 떨며 말했다.“당신은 이미 한 번의 기회를 낭비했다. 더는 기회를 낭비하지 않길 바라.”“저... 저는 진짜 몰라요...”이도현은 픽하고 웃으며 말했다.“모른다고! 그럼 내가 알게 해주지!”“쓱!”허공을 깨뜨리는 소리와 함께 이도현은 부러진 검의 날을 빨아들이더니 노구치 쪽으로 내던져 그의 한쪽 팔을 잘랐다.“악!”고통의 비명이 정적을 깨뜨렸다.노구치는 거의 기절한 상태였다.“농담? 오해? 지금은 기억나? 아직도 기억이 안 나면 내가 도와주지!”이도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아.... 빌어먹을 자식! 악마! 넌 악마야, 넌 죽어 마땅해, 우리 노구치 가문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널 꼭 죽일 거야!”노구치는 한 손으로 왼팔을 잡은 채 창백한 얼굴로 이도현을 향해 한바탕 욕을 퍼부었다.이도현은 대답도 하지 않고 다시 땅에서 검날 한 조각을 빨아들이며 노구치의 남은 팔도 잘라버렸다."악!”노구치는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뒹굴었다. 그의 팔뚝에서 피가 뿜어져 나와 좌우 벽을 붉게 물들였다.심한 고통에 노구치는 계속 경련을 일으키고,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이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과다 출혈로 죽을 수도 있었다.지국의 당당한 천급 무사이지 완성의 지도자가 지금은 마치 개가 된 것처럼 바닥에 엎드려 덜덜 떨고 있다.그들의 조상들
“그래?” 그럼 당신들의 무사도 정신이 대단한지, 아니면 염국국의가 강한지 두고 보자고. 죽기보다 못한 삶이 뭔지 똑똑히 알려주지!”이도현은 웃으며 품에서 은침 몇 개를 꺼내서는 손을 흔들어 노구치의 몸 몇 군데에 찔렀다.얼마 지나지 않아, 노구치는 갑자기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짐승처럼 땅에서 뒹굴며 비명을 질렀다.“아... 간... 간지러워... 차라리 죽여... 죽이라고! 빌어먹을 놈아... 차라리 죽이라고!”1분도 안 된 사이에 노구치는 이미 탈진한 상태로 바닥에 누워있었다.마치 수천 마리의 개미가 몸 속을 돌아다니는 것처럼 느껴졌다.칼로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간지러웠다.“이것도 못 견뎌? 이제 시작인데? 보아하니 너의 무사도 정신도 그다지 대단하진 않구나! 고작 이런 간지러움도 못 참으면서 무사도 정신을 논하다니. 웃기지 않느냐?” 이도현은 비웃으며 말했다.“죽여... 날 죽여! 제발 날 죽여줘... 못디겠으니까... 차라리 죽여줘.”짧은 시간 내에 욕하고 비명을 지르고 하던 노구치는 더 이상 말할 힘조차 없었다.그는 마치 한 마리 구더기처럼 피바다 속에서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있다! 사람 같지도 않았다.“다시 묻는다! 뭘 원하는 거야?”이도현은 몸을 숙여 낮은 소리로 물었다."난 정말 몰라. 그러니 날 죽여.”노치구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하하! 아직도 부족한가 보네 그럼 내가 더 도와주지! 네가 만족할 때까지!”이도현은 은침 두 개를 손에 들고 노구치의 앞에 서서 말했다.“안돼... 하지마... 나... 뭐든 말할게. 제발 그만해...”노구치는 완전히 무너졌다.무사도 정신이고 뭐고 잊은 지 오래다. 지금, 이 순간 그딴 건 쓸모없다.“진작에 그러지! 날 이렇게 까지 하게 만들고 말이야! 이러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잖아!”이도현은 악마 같은 얼굴로 말했다.지금의 이도현과 신연주 앞에서의 이도현은 그야말로 다른 사람이다.하긴, 그를 컨트롤할수 있는 사람은 신연주뿐이니 말이다.“말해봐!
이 소리를 듣고 노구치는 마치 다시 희망의 빛이 비치듯 힘이 불끈 솟았다.“어서 와서 날 구해줘!”생명의 희망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감격에 겨워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올챙이가 제 어미를 찾은 것보다 더 기뻐했다.한 남자가 한 무리의 남자들을 데리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이도현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바로 지난번에 그의 집 앞에 찾아가 신연주를 한바탕 혼내고 달아났던 왕주영이었다.그의 별명은 작은 독수리!“왕주영!”이도현은 눈을 돌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왕주영은 지난번보다 자신감 있는 모습이었다.그의 새하얀 양복과 번들거리는 머리 스타일은 다소 경박스러워 보였다.왕주영은 당당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주 천진한 모습이었다. 아무런 어려움 없이 순조로운 인생을 산, 가족들이 오냐오냐 기른 그런 아이의 모습 말이다.“이도현! 우리는 또 만났네. 그날 너의 집 앞에선 널 보호 해주는 사람이 있었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이번엔 어디로 도망가나 두고 보지!”“왜? 너도 도전해 보고 싶어?”이도현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하! 노구치 선생은 내 친구야! 노구치 무관도 네가 함부로 행패를 부릴 곳이 아니야! 그를 풀어줘. 이건 명령이야!”왕주영은 차가운 목소리로 이도현에게 명령했다.“네가 뭔데.”이도현도 물러서지 않았다.“너도 죽고 싶어? 지금 상황을 잘 보고 말해!”왕주영이 말하며 뒤로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그의 좌우에 다가섰다.두 사람 모두 강한 기운이 뿜고 있었다.이도현도 이 두 사람을 알고 있다. 바로 지난번 신연주에게 뺨을 맞고 도망간 참매와 늙은 독수리였다.그 두 사람이 틀림없었다.이 두 사람 모두 종사 경지의 강자들이다.“상황 파악 제대로 해. 오늘은 널 도와줄 사람이 없어. 순순히 풀어주고 나랑 함께 가. 번거로운 일 만들지 말고 말이야.”왕주영은 당당히 말했다.이 광경이 노구치에게 큰 희망으로 느껴졌다. 그는 오늘 그가 죽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두 팔은 잃었지만, 목숨은 잃고 싶지 않
이날 밤, 이도현은 여전히 노영식네 집에 머물렀고 주현진이 잠자리를 정리해주었다. 하지만 그의 잠자리는 침대가 아니라 온돌 바닥이었다.도시 사람들에게는 낯선 온돌방이지만 농촌 지역에서는 보기 흔한 것이었다. 온돌방은 구들장 밑이 비어있어 날이 추워지면 아궁이에 불을 피우기 시작하는데 뜨거운 열기가 구들장 밑을 지나면서 머지않아 집이 따뜻해지게 된다.이도현은 온돌방이 정말 편하게 느껴졌다. 특히 형수가 준비해 준 우유 향이 나는 꽃무늬 이불을 덮으니 더욱 편안했다.형수가 수유 기간에 있어서인지 아니면 이도현이 나쁜 마음을 품어서 심리작용이 생겨서인지 오늘따라 이불에서 나는 우유 향이 그날 밤보다 더 짙게 느껴졌다.게다가 불빛 아래에서 그는 하얀 이불 위에 지도 같이 생긴 자국이 한 둘레 한 둘레 있는 것을 보고 우유 향이 그 자국에서 풍겨 나오는 것 같이 느껴졌다.“헐! 설마 형수가 이 이불을 계속 덮었던 거 아니지? 이것이 설마 모유의 흔적이 아니겠지? 세상에나! 이건...”이도현은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아주 많이 혼란스러웠다!‘형수는 이 이불을 덮고 도대체 무슨 짓들을 한 거야? 설마... 내가 그 상대는 아니겠지!’이날 저녁 이도현은 잠을 설쳤다.이튿날 아침 일찍 이도현은 얼떨결에 방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생각하지 않아도 주현진인 것이 분명했다.노영식이 이토록 적극적일 리가 없었다.“지안이 양아버지! 일어나셨어요? 아침 식사하셔야죠!”주현진의 제법 부드러운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형수님,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하네요! 얼른 일어날게요!”이도현은 아무렇지 않은 척 눈을 뜨면서 말했다.“양아버지도 참, 무슨 별말씀을요! 얼른 일어나서 세수하고 식사하세요! 아침상 다 차려놨어요!”주현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이도현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녀의 초롱초롱한 큰 눈을 보고 이도현은 마음이 뒤숭숭해졌다.다행히도 주현진은 몇 마디만 하고 방을 나갔다. 아니면 이도현은 몸 둘 바를 몰랐을 것이었다.아침 식사를 마친 뒤, 다섯 사람은 다
“그래도...”이도현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으면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 같은 기세라 그는 하는 수없이 잠시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요! 이름은 제가 지어줄게요. 지안 어때요? 지혜롭고 평안하게 자라라는 뜻이에요!”“지안! 노지안, 좋아요. 뜻도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사람은 일생에 무슨 일을 하든 돈을 얼마나 갖고 있든 권력이 얼마나 크든, 지혜롭고 평안하게 지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죠! 지안, 좋은 이름이네요!”노문호가 제일 먼저 말했다.“지안! 좋아요! 그럼 이 녀석을 앞으로 지안이라고 부릅시다!”노영식도 기뻐하며 말했다.“지안! 우리 아기 앞으로 지안이라고 불러야겠네! 지안, 지안아, 얼른 와서 양아버지께 절을 올려야지!”주현진은 아이를 안은 채 흥분하며 말했다.“그래! 지혜롭고 평안하게! 지안! 참 훌륭한 이름이야!”노영식의 부모는 모두 착실한 시골 사람이라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주현진은 아이를 안은 채 이도현에게 절했다. 시골 사람들에게 있어서 절하는 것은 성의를 표시하는 제일 성실한 행동이었다.이번에 이도현은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피할 수 없으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형수가 아이를 안고 절도 올렸으니 이도현은 빼도 박도 못 하고 양아버지를 하게 되었다. 그러니 아이에게 첫 대면 선물을 안 줄 수가 없었다.만약 무사 집안이었다면 이도현은 반드시 자신의 무도 비법 또는 담약, 보검 같은 것을 아이에게 선물해줬을 것이었다.하지만 그의 양아들은 평범한 사람이고 일반 백성인 만큼 제일 현실적인 것을 선물해주는 것이 좋았다.이런 생각이 들자 이도현은 손을 옷 안으로 넣고는 음양탑 에드워드 가문의 보물 창고에서 챙긴 황금 두 덩어리를 찾아냈다.그러고는 손으로 주물럭주물럭하여 한 개의 금덩이로 만든 후 그들 앞에 꺼냈다.“형수! 제가 아이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어요. 당장은 이 금덩이밖에 드릴 게 없네요. 나중에 훌륭한 장인을 만나면 이 금덩이로 아이에게 장수 목걸이나 만들어
“도현 씨! 전에 약속했잖아요! 우리한테 아이가 생긴다면 도현 씨가 아이의 양아버지가 되겠다고. 지금 이렇게 아이를 안아 왔어요! 도현 씨가 싫지 않다면 우리 아이를 양아들로 받아주시죠!”주현진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이도현에게 말했다.“이건...”이도현은 조금 난감했다.만약 이도현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양아버지가 되는 건 별문제가 없었을 것이었다. 배은망덕한 사람만 아니라면 양아버지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문제는 이도현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원수가 수없이 많았다. 만약 원수들에게 그한테 양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지게 된다면 노영식네 가족은 괴롭힘을 당할지도 모른다.만약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도현은 그들의 은인이 아니라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될 것이었다.“형수, 먼저 일어나세요! 이 일은 제대로 말해두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저는 형수네 가족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이도현은 허리를 숙여 주현진을 일으켜 세웠다.“영식이 형, 형수, 두 사람은 저의 처지를 모르세요. 모든 걸 얘기해 드릴 수는 없지만, 저한테 많은 원수가 있다는 것만 알려드릴 수 있어요. 그 사람들이 저를 건드릴 수는 없지만, 형네 가족을 괴롭힐까 봐 걱정이에요!”“제가 형네 가족을 하찮게 여겨서 형의 아이를 양아들로 삼지 않는 것이 아니에요. 저는 두 사람에게 민폐를 끼칠까 봐, 이 아이에게 피해를 줄까 봐 걱정되어서 그래요!”이도현은 잔잔하게 얘기를 꺼냈다.이 말을 들은 노영식 부부는 서로를 마주 보더니 이어서 단호하게 말했다.“도현 씨, 우리는 두렵지 않아요!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생길 수 있는 것도 다 도현 씨가 만들어 준 것이잖아요. 도현 씨와 우리는 이미 정해진 운명인데 두려울 게 뭐가 있겠어요?”형수의 이 말은 오해의 여지가 컸다.‘아이가 생길 수 있는 것이 내가 만들어 준 것이라니... 무슨 말을...’“저기... 형수... 형! 저는 정말로 두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요. 이런 말을 하면
풍성한 요리에 술안주도 많이 장만했다. 그리고 평소에 거들떠보지도 않던 좋은 술을 오늘 특별히 두 병이나 샀다.물론 형수는 이도현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커서 이처럼 진수성찬을 준비한 것이었다.이도현은 이 집안의 가장 큰 은인이라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에게 아이가 생기고 이 한의원에서 일할 수 있게 한 일등 공신이었다.지금 매달의 수입은 이 집안 예전의 일 년 수입에 가까웠다. 요 몇 개월 동안 그녀는 이미 이삼백만 원정도 모았다.이삼백만 원이 도시에서는 큰돈이 아닐 수 있지만, 그들이 생활하는 시골에서는 목돈이었다.게다가 그 금액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집에서 일하고 평소에 돈 쓸 곳도 별로 없었기에 한 달 생활비는 십만 원이면 충분했고 나머지는 전부 저축했다.그녀는 행복해지는 길에서 희망을 찾은 것 같았고, 집안의 살림살이도 갈수록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이도현이 그녀에게 가져다준 것이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품어서는 안 될 생각 외에 무엇보다 이도현에게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었다.노영식 부부의 아이는 노영식의 부모가 돌보고 있었다. 두 노인이 고대하던 손자가 세상에 태어난 거라 두 사람은 아이를 엄청 애지중지했다.두 노인이 계속 아이를 돌보았기에 노영식 부부는 아이를 안고 싶어도 안을 수 없었다. 주현진이 아이에게 수유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동안 거의 두 노인이 아이를 돌보았다.두 사람은 이도현이 온 것을 보고 보살님이 강림하신 것처럼 대했다. 그들은 하마터면 이도현 앞에서 무릎 꿇고 그를 맞이할 뻔했다.영감은 이도현이 자기 집안의 큰 은인이자 구원자라고 하면서 집에서 억지로 이도현에게 장생의 위패를 하나 세워주었다. 그러고는 매일 향을 피워 이도현을 위해 축복을 빌었고 그가 오래오래 백 살까지 살 수 있기를 기도했다.이도현은 저주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현재 내공으로는 몇백 살까지 거뜬히 살 수 있건만, 백 살까지 살라는 것은 수명을 단축하는 것이었다.이도현도 당연히 이것이 그들의 제일 진심
이도현은 형수가 차린 밥상을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밥을 먹다가 문제라도 생길까 봐 다급하게 말했다.“형수, 저 먹고 왔어요! 번거롭게 차리지 않으셔도 돼요!”이도현은 말을 마치고 급히 노문호에게 눈길을 돌렸다.그는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수유 중인 형수의 가슴이 너무도 풍만하여 이도현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 기세는 이도현이 침을 놓을 때보다 더 매서웠다.“노 선생, 그동안 잘 계셨나요? 집안에도 별일 없으시죠?”이도현은 급히 화제를 돌렸다.“그럼요, 무탈합니다! 그저 한의원이 너무 바쁠 따름이죠. 게다가 도현 씨의 명성이 자자하여 한동안 많은 사람이 도현 씨의 명성을 듣고 찾아왔다가 없다니까 그냥 돌아갔어요.”“그래도 우리 한의원이 이제 많이 유명해져서 예전보다 훨씬 바빠졌어요. 도현 씨가 오지 않았더라면 이 늙은 몸이 곧 쓰러졌을 거예요.”“좋은 소식이네요. 이건 노 선생의 의술이 뛰어나기에 백성들이 다 믿고 맡긴다는 거잖아요.”이도현이 웃으며 대답했다.“에잇! 놀리지 말아요! 저의 의술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도현 씨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얼른 가서 좀 쉬다가 일하러 와요! 저는 계속 일해야 하니까 이만 가볼게요. 도현 씨가 돌아온 걸 축하할 겸 우리 저녁에 영식이네 집에 모여서 밥 먹어요!”“그... 괜찮을까요? 또 형수를 귀찮게 해야 하는데.”솔직히 말해서, 이도현은 형수 집에 가서 밥 먹고 싶지 않았다. 형수의 요리가 맛없는 것도 아니고, 꽃무늬 이불이 푹신하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그저 형수가 무서울 뿐이었다.“귀찮을 게 뭐 있어요. 도현 씨는 아이의 양아버지이고, 한집안 식구끼리 이런 말을 하면 섭섭하죠! 계속 그런 말을 하면 저희를 무시하는 거로 여길 거예요!”이도현이 거절하려는 기미를 보이자 형수가 다급하게 말했다.이도현은 형수가 다급하게 그런 말까지 하는 것을 보고 더는 거절하지 못했다. 더 거절하면 그가 찔리는 것이 있어서 초대에 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도현 씨, 현진
“이것 봐! 내가 뭐라고 했어! 내가 방금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했지. 이 젊은이는 부귀의 상이고 걸음걸이도 씩씩한 데다가 온몸에서 은은한 보라색 빛을 반짝이고 있어. 딱 봐도 부귀영화를 누릴 상이지, 절대 그렇게 소질 없는 사람이 아니야! 이제야 믿겠어? 내 말이 맞는다는 거!”제일 먼저 반응한 할아버지께서 나서서 이도현을 가리키며 듣기 좋은 단어만 골라서 칭찬했다.그러나 이도현은 계속 입을 삐죽거렸다. 바로 이 할아버지께서 조금 전까지 그를 파렴치한으로 몰았는데, 지금에 와서 말을 바꾸다니 참으로 낯가죽이 두꺼운 사람이었다.“그러니까! 나도 그랬지. 이 젊은이는 딱 봐도 복이 있고 부귀한 사람이라고. 근데 너희는 귓등으로 듣기만 했어!”다른 사람도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이신의, 만나서 반갑네. 난 이춘식이야. 우리 같은 이씨로서 오백 년 전에 한 가족이었을 거야. 넌 정말 우리 이씨 가문에 큰 체면을 세워줬어!”“이신의, 난 김두만이라 하고 나의 외할아버지도 성이 이씨야. 우리도 한 집안이라고 볼 수 있어!”“이신의, 나도 이씨 성을 가진 외할아버지가 있는데, 자네와 똑같이 생겼어!”수염이 새하얗고 이가 싹 빠진 한 할아버지가 말했다.이도현은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몸을 파르르 떨었다.‘연세가 이렇게 많으신 분이라면 이분의 외할아버지는 진작에 돌아가셨을 건데, 이렇게 나와 친한 척한다고! 자기 외할아버지더러 날 저승으로 데려가라는 거야 뭐야!’ “퉤! 뻔뻔스럽기는! 고아 주제에 어디 감히 외할아버지가 있다고 이신의와 친한 척하려고 해! 우리 어머니의 외할아버지야말로 이씨야!”뻔뻔한 사람이 또 한 명 나타났다.이도현은 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었다. 이 어르신들이 너무 무서웠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거짓말할뿐더러 그럴듯하게 말하여 진짜인 줄 알았다. 이것도 모종의 경지라고 볼 수 있는 정도였다.이도현은 황급히 한의원 안으로 도망쳤고 그제야 고요함을 되찾았다.“도현 씨, 돌아왔군요! 하하하... 이 자식, 왜 이제야 돌아왔
이도현은 더는 말을 하지 못하고 쭈뼛쭈뼛하게 내디딘 걸음을 도로 거두었다. 그는 성급 고수보다 눈앞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이도현이 자신이 이곳의 의사라고 설명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 노영식이 한 할머니를 부축하면서 걸어 나왔다.“할아버지, 할머니들, 그만 떠드세요! 다 진료해드릴 테니까 새치기하지 말고 줄 서서 기다리세요.”“신의 양반, 우리가 진료 보는 데 방해하려고 떠들어댄 것이 아니라, 반반하게 생긴 도시 사람이 염치없이 새치기하려고 해! 규칙을 어기려고 해!”한 할아버지가 울분을 터뜨리며 말했다.이도현은 이 말을 듣고 얼굴색이 확 어두워졌다.‘이런! 내가 언제 염치없이 굴었어?’“새치기! 누가 새치기했어요?”노영식이 물었다.“이 사람이요!”“바로 저 젊은이예요. 도덕심이라고는 일도 없어요!”“맞아요! 염치가 전혀 없어요! 우리가 온 오전 줄을 서도 새치기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저 사람은 오자마자 새치기했어요. 그러고도 도시 사람이라고! 퉤!”또 한차례의 비난을 받은 이도현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그냥 들어가서 일하려는 것뿐인데,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잠깐 사이에 벌써 세 번이나 욕을 먹었어. 게다가 한의원에 발을 들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욕먹을 일인가? 설사 내가 진짜 진료받으러 왔다고 해도, 새치기하면 어때서? 한번 욕하면 그만이지, 끝없이 욕할 줄이야. 시골 사람이 제일 순박하다고 들었건만 왜 이 어르신들은 이렇게 다르지?’“이도현 씨... 돌아왔어요...”노영식은 이도현을 보고 깜짝 놀라더니 기뻐하며 그에게 달려갔다.이도현은 손을 뻗으며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는 오늘 운이 안 좋았다.“언제 돌아온 거예요? 미리 전화하지 그랬어요. 저희가 알았으면 마중하러 가는 건데! 어서... 안으로 들어가요... 삼촌이 이도현 씨를 오랫동안 그렸어요... 그리고 저의 아내도 거의 매일 밤 이도현 씨 얘기를 했어요. 도현 씨가 돌아오기만 하면 아이의 양아버지로 모시겠다고!”노영식은 감
조금 거친 섬섬옥수로 능수능란하게 계산기를 눌렀는데 그런 진지한 모습이 여자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듯했다.그 여자는 다름 아닌 노영식의 아내, 이도현의 형수였다.한의원이 확실히 아주 바빠 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를 낳은 지 몇 달도 안 되는 형수가 이렇게 나와서 일을 도울 리 없었다.그러나 형수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한 것을 보아하니 그녀가 이 일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알 수 있었다.하긴 한의원에서 일하면 한 달에 오십만 원의 월급을 받을 수 있고 게다가 지금 월급이 올랐을지도 모른다. 이건 농촌에 있어서 아주 훌륭한 일자리였다.그리고 지금 부부가 모두 한의원에서 일하기에 한 달에 최소 백만 원의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정도는 무조건 농촌에서 고소득이라고 볼 수 있었다.더군다나 부부가 다 저녁에 집에 돌아가서 가정을 돌볼 수 있었다. 일도 지체하지 않고, 돈도 벌 수 있으니, 이 일자리는 그야말로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것 못지않았다.이도현은 이 부부가 하는 일이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을 잔뜩 받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질투에 눈이 멀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이 부부도 충분히 빡세게 살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형수는 아이를 낳은 지 겨우 몇 달밖에 안 되는데 벌써 일하러 나왔다.백성들은 역시나 응석받이로 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1년은 쉬었을 것이었다.물론 도시 사람들의 생활 조건이 좋으니 휴식을 많이 취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거 아니겠어?이도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의원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겨우 두 발짝 걸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그를 불러 세웠다.“에잇! 거기! 앞에 총각! 너 뭐 하는 거야! 양심이 있다면 뒤에 가서 줄을 서라. 이렇게 많은 사람이 줄 서고 있는 게 안 보이냐? 빨리 가서 줄 서!”“맞아! 맞아! 뒤에 가서 줄 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줄을 서는 거 못 봤냐! 어디서 새치기야! 뒤에 가서 얌전히 줄 서! 참! 요
이도현은 이 가족의 감사 인사를 마다하고는 남자에게 앞으로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신앙이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너무 지나치지 않는 것이 좋다.어떤 일이든 도가 지나치면 본연의 가치를 잃기도 하는데 좋은 마음에서 출발한 일도 나쁜 일로 만들 수 있었다.특히 이번 일처럼, 만일 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면 그것은 신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해치는 것이었다.이튿날 아침이 되자마자 남자는 사람을 불러 아내와 아이를 들것에 싣고 산에서 내려왔다. 떠날 때 그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절의 스님을 쳐다보았다.그 표정은 마치 앞으로는 이곳에 두 번 다시 발을 들이지 않을 것이고, 돈을 어디에 쓰든 절대 너희 같은 양심 없는 가짜 스님에게 바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이도현도 떠나갔다. 그는 재물을 탐내고 하마터면 사람까지 죽일 뻔한 이곳에 1분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머무르다가 사람을 죽이고 싶어질까 두려웠다.물론 그는 아무것도 폭로하지 않았다. 마치 하늘과 땅에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있는 것처럼, 이 세상에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기 마련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천지의 도리를 이루었다.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나쁜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만약 모두가 좋은 사람이라면 이 세상은 완전하지 못할 것이었다.만물이 존재하는 데는 그만한 도리가 있는 법이고, 하물며 나쁜 사람은 그들보다 한층 더 나쁜 사람에게 응징받을 것이기에 이도현은 쓸데없는 일에 참견할 필요가 없었다.게다가 이도현이 보기에는 이 스님들이 구제 불능한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어젯밤 이도현이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면 임산부는 결국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었다. 게다가 스님이 이 모든 것을 초래한 것도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결국은 여자의 남편이 너무 미신을 믿어서 출산을 앞둔 아내를 데리고 부처님께 예배드리러 왔다가 이런 일이 생겼던 것이었다.누가 옳은지 그른지, 또 누구의 책임인지 분명히 따질 수 없었다.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