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놈! 그게 무슨 헛소리야!”서북후가 음침한 어조로 말했다.“하하! 대단한 서북후가, 서북의 황제가, 강씨 가문에 놀아나서 죽으러 왔는데도 정작 본인은 모르고 있다니. 웃겨서 정말.”이도현은 서북후를 비웃었다.“건방진 놈, 장군님이 고작 네 놈의 말에 속을 것 같아?”서북후 뒤에 있던 젊은이가 불쑥 큰 소리로 외쳤다.“주인과 말하는 데 개가 짖네?”이도현은 안색이 싸늘해지며 말했다.“너......”남자는 이도현의 기세에 그대로 눌려버렸다.“한 번만 더 짖으면 넌 죽는다.”“이 자식이, 너 같은 애송이가 날 죽이겠다고?”젊은이는 콧방귀를 뀌었다.이도현은 대답 대신 손을 휘둘렀고, 이내 은침 하나가 날아가 젊은이의 목구멍을 관통했다.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사람들은 미처 반응도 하지 못했다. 젊은이가 바닥에 쓰러져 숨을 멈추자 그제야 그들은 사태 파악을 할 수 있었다.“네 이놈!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서북후는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포효했다.“죽여라!”서북후가 명령을 내리자, 그의 뒤에 있던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상대는 마치 구름처럼 허공에 떠오르더니 삽시에 이도현을 향해 돌진했다.노인의 수단은 아주 악독했고 그의 모든 움직임은 치명적이었다. 세 수를 주고받은 뒤, 이도현이 말했다.“영감이니까 내가 세 수는 봐줬지만, 이젠 봐 주지 않아.”앞선 세 수에서 이도현은 모두 한 손만 사용했다.그의 말에 노인은 모욕당한 듯 안색이 달아올라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이도현은 노인의 심장을 정확히 가격했다.엄청난 힘은 노인의 심맥을 파열시켰고 그 자리에서 바로 숨을 거두었다.“이공호!”서북후는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노인은 서북후가 키우는 두 명의 천급 강자 중 한 명이다. 전체 서북에서도 으뜸가는 실력을 갖춘 고수가 이렇게 쉽게 죽어버렸다.“너 대체 뭐 하는 놈이야? 서북에서 소란을 피우는 속셈이 대체 뭐냔 말이다!”서북후가 경계하며 물었다.그는 이도현이 소란을 피우는 데는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이고,
두 여인은 바로 비행기에서 이도현과 서로 오해가 있었던 한지음과 이설희다.한지음은 이도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우리 또 보네요. 비행기 내리고 그렇게 가버리시더니, 힘들게 찾았어요.”이도현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서북후 이 장군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한지음, 다른 사람이 그녀의 신분을 모를지라도, 서북후는 똑똑히 알고 있다.하지만 그런 신분을 가진 한지음이 이도현과 서로 아는 사이라니, 서북후가 알기론 이도현은 그저 과거 강씨 가문의 개보다 못한 데릴사위였을 뿐이다.이런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이 어떻게 한지음같은 인물을 알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한지음은 이도현에게 정중한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이도현은 조금 어이없다는 듯이 두 여자를 바라봤다.‘왜 하필 지금 온 거지? 시간 하나 기막히게 골랐네. 하필 내가 포위됐을 때, 하필 이 밤에. 이 늦은 밤에 두 여자가 말이야, 집에서 잠이나 잘 것이지 겁도 없이 날 찾아와? 뭐 하려는 짓이야......설마 또 발병한 거야?’“두 여성분이 이 늦은 밤에 여기까지 웬일이죠?”“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고맙다는 인사도 못 했어요. 여기 계신 걸 알았으니 당연히 인사드리러 와야죠.”한지음은 이도현을 향해 방긋 웃었다. 어둠 속에서 이도현은 마른침을 삼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서북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한지음 씨, 이 자식 알아요?”“삼촌, 오랜만이네요. 전보다 더 위엄있어 보여요. 염경에서도 서북후라는 이름이 들리던데요?”“과찬입니다, 한지음 씨.”서북후 이 장군은 한지음 앞에서 놀라울 정도로 공손했다.“삼촌의 실력을 누가 몰라요?근데 이 폐허까진 어쩐 일로 오셨어요? 사람도 많이 대동했네요? 어우, 살벌해. 삼촌 설마 이도현 씨와 오해라도 생겼어요?”한지음은 예쁜 눈을 크게 뜨며 호기심에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바닥에 시신이 널브러져 있는 처참한 광경이, 그녀 눈에는 오해일 뿐이었다.“한지음 씨가 모르는 게 있어요. 이 건
“감히 우리 장군님한테 이딴 식으로 말해?”서북후 곁에 있던 여자가 불쑥 입을 열었다.“닥쳐!”서북후가 여자를 훈계했다.“감히 한지음 씨에게 무례하게 굴다니.”이내 그는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한지음 씨, 한지음 씨의 생명의 은인을 놓아주지 않는 게 아니라요, 이 자식이 제 구역에서 제 고수들을 죽였어요. 서북을 책임진 사람으로서 어떻게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있겠어요.”한지음의 귀엽던 얼굴은 어느새 쌀쌀하게 변했다.“이도현 씨는 제 생명의 은인이죠. 그런데 삼촌이 굳이 이렇게 나오신다면...... 우리 아빠 체면이 말이 아니네요.”“제가 어찌 감히! 부디 제 어려움을 이해해 주시길 바라요. 살인자를 내버려 둔다면 서북은 점점 더 혼란에 빠질 거예요.어르신의 체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대국을 위해서 내린 결정이니 어르신도 이해해 주실 거라고 믿어요.”서북후는 미소 속에 칼날을 숨긴 채 해명했다.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옆에 있던 이도현은 한지음의 신분이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하지만 그는 여자의 도움이 하나도 필요 없다.고작 서북후 따위가, 그리고 한 무리의 잔챙이들은 절대 이도현의 앞길을 막을 수 없다.“흥! 웃기시네. 내가 가겠다는데, 고작 당신들 따위가 날 막을 수 있겠어?더 많은 사람을 죽이기 싫어서 잠시 당신들을 살려두지만, 언제까지 살려둘지는 나도 장담 못 해. 한지음 씨의 체면을 봐서 다시 한번 묻는다. 꺼질래, 안 꺼질래?”이도현이 쌀쌀맞게 말했다.그 말에 서북후는 사나운 웃음을 짓더니 언성을 높이며 대답했다.“네 이놈! 넌 오늘 그 건방짐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거야. 아주 고통스럽게 죽여줄 것이다!”“죽고 싶다면 원하는 대로 해주지.”말을 끝낸 이도현은 도깨비처럼 빠른 속도로 서북후의 면전까지 다가와 그의 목을 조른 채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순간,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장군님 내려놔! 아니면 당장 죽여버릴 거야!”“장군님 내려놔......”서북후 산하의
“그쪽은?”“하하하! 자식, 난 네 여덟째 선배야. 어서 예의를 차리지 않는다면 빵댕이를 찰싹 때려줄 거야.”여자는 활짝 웃으며 엉큼한 말을 내뱉었다.그 말에 이도현은 입을 삐죽였다.‘보아하니 또 엉큼한 여자네. 어떻게 빵댕이를 함부로 입에 올려. 예쁜 여자들 하나같이 다들 왜 이래? 힙이라고 하면 될걸.’하지만 이도현은 이미 눈앞의 여자가 바로 그의 여덟째 선배라는 걸 확신했다.다른 이유는 없다. 엉큼한 스승이 가르친 제자가 엉큼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하도 내가 지조가 있으니 말이지, 아니면 똑같이 물들었을걸.’이건 태허노도를 욕보이는 말이 아니라 증거도 있는 사실이다.몇 년 전 이도현은 태허노도가 사는 동굴에 갔다가 의도치 않게 뻘겋게 얼굴이 달아올라 숨을 헐떡이는 태허노도를 발견했다.이도현은 이 늙인이가 혹시라도 죽을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달려갔지만, 이내 두 사람은 서로 난처한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태허노도는 몸이 편찮은 것이 아니라 등초스님이라는 책을 보고 있었다. 적당히 일러스트가 있는 그런 책이다.이도현은 그 생동감이 넘치는 그림을 보며 난처함이 극치로 도달했다.게다가 태허노도는 뻔뻔스럽게 그에게 음양 교태의 비밀을 연구하고 있으며 이름하여 남녀의 삼십육묘기라고 했다.터허노도는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 이도현은 척추를 잃었지, 눈을 잃은 게 아니다.그 책은 등초스님이 아닌 등채스님이었다.이도현이 아무리 고문을 모른대도 그 몇 글자는 똑똑히 알아봤다.하지만 태허노도의 뻔뻔한 태도에 이도현은 마치 자기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정말 그 말이 맞았다. 내가 창피함을 모르면, 상대방이 대신 창피하다는 말.태허노도의 응큼함과 눈앞에 서 있는 이 여자의 엉큼한 단어를 연결해 보니 빼박이다. 역시 그 스승에 그 제자.“여덟째 선배? 여긴 어떻게 왔어요?”이도현은 어이가 없었다.“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영감탱이한테서 소식 들었어. 내 후배가 완성으로 내려왔으니 많이 도우라고. 내 도움이 아주 많이 필요할
신연주는 염국에서 전설과도 같은 존재였다. 염국의 고위관료이자 권력의 중심에 있는 여자였기에 무림고수 중에 그녀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다른 건 다 제쳐두더라도 황성의 한씨 가문은 몇 년 전까지는 권력과는 거리가 있는 돈 좀 있는 사업가 가문이었다. 그런데 이 여자가 한씨 가문에 손길을 내밀면서 한씨 가문은 수많은 권력을 손에 쥐게 되었고 서북후 같은 권력자도 그 가문 사람들은 함부로 무시하지 못할 정도에 이르렀다.상류사회 사람들은 신연주는 본인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녀가 가진 신분이나 배경이 만만치 않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소문에 그녀가 염국의 여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그녀는 아름다운 외모와 혜안,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잔인한 성격까지 갖춘 사람이었다.“신연주가 이 자식의 선배라고?”서북후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어쩐지 기고만장하더라니, 감히 서북에서 소란이란 소란은 다 일으키고 말이에요! 등 뒤에 신연주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던 거로군요.”서북후의 또다른 부하가 중얼거렸다.“군위님, 이번 일은 쉽지 않겠어요!”“흥! 배후에 누가 있든 오늘 아무도 이 자식을 못 데려가!”서북후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신연주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지금 뭐라고 했어?”서북후는 신연주의 기습 질문에 몹시 당황했다. 그녀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카리스마에 완전히 압도당한 그는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아주 작게 자기들끼리만 들리게 말했는데 도대체 저 여자는 어떻게 들었을까?잠시 고민을 거듭한 서북후 이 장군은 긴 한숨을 토하며 입을 열었다.“거기 아가씨, 아가씨는 돌아가도 좋지만, 저 녀석은 두고 가세요. 아가씨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서북에서 살인사건을 저지르고 다닌 놈인데 이대로 돌려보낼 수는 없습니다!”서북후는 부하들 앞에서 체면을 세우기 위해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고 또박또박 말했다. 신연주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기를 속으로 기도하며.하지만 그 말을 그대로 들을 신연주가 아니었다. 그의
털썩!서북후가 쓰러지는 소리에 현장이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서북후가 죽었어!”서북 지역의 왕으로 군림하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이 장군이 한 여자의 손에 반항 한번 못해보고 죽었다.“선배님, 이건 좀….”이도현마저 말을 잇지 못했다.무슨 여자가 이렇게 살벌하담?그 역시 서북후를 죽일 실력은 충분하지만, 병권을 장악한 자를 잘못 건드렸다가 나중에 귀찮은 일이 생길까 봐 참고 또 참았는데!이 변태 같은 선배는 칼을 빼드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신연주는 담담한 표정으로 손을 훌훌 털고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가자! 이제 널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서북후? 그게 뭔데? 자기가 무슨 큰 벼슬이나 되는 줄 아나 본데 벌레만도 못한 자식이야. 내 후배를 건드리는 녀석들은 다 내 손에 죽어!”“형님!”슬픔에 찬 비명소리와 함께 사람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서북을 지탱하고 있던 기둥이 무너진 것이다.슬픔에 차 분노의 고함을 지르고 있는 남자는 서북후의 동생 이유진이었다.그는 그렇게 믿었던 형님이 이렇게 쉽게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도 서북 신군이 있는 자리에서 살해를 당한 상황.“미친년! 죽여 버리겠어!”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이유진은 검을 빼들고 신연주를 향해 달려들었다.“감히 내 선배에게 칼을 겨눠? 죽고 싶구나!”이도현의 눈빛도 싸늘하게 빛나더니 번쩍이는 은침을 빼들었다. 두 갈래의 은침은 공중을 날아 이유진의 두 눈을 관통했다. 눈동자가 터지며 이유진은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도현의 실력은 막강했다. 이유진 같은 자를 제거하는 건 바닥을 기어다니는 벌레를 밟아죽이는 것처럼 쉽고 간단했다. 어떻게 죽이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내 앞에서 꺼져!”이도현은 살기를 번뜩이며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사람들은 그와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이도현은 그녀를 힐끗 흘겨보며 속으로 불만을 터뜨렸다.‘저 불같은 선배한테 걸렸으니, 앞으로 조용히 살기는 글렀군!’하지만 그래도 자신을 위해 나서준 신연주에게 고마웠다.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를 위협하는 서북후의 목을 따버리다니.이런 관심은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감동이었다.“언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엮이다뇨? 도현 씨는 제 생명의 은인이에요. 비행기에서 처음 만났다고요! 도현 씨를 만나지 않았으면 저 큰 사고를 당했을지도 몰라요!”“언니도 참. 의술이 이렇게 뛰어난 후배가 있으면 진작에 소개를 해줬어야죠! 제가 병마에 몇 년이나 시달렸는데요! 언니가 나빴어요!”한지음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역시 인연은 인연이네. 목숨을 살려줬으니, 사랑으로 갚겠다는 건가? 귀찮은 소개를 덜어서 좋네. 분명히 월하노인이 너희를 인연으로 묶어주신 거야. 인연이 다가올 때는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법이지!”“지음아, 이 후배 녀석이 바로 내가 너한테 소개해 주고 싶다고 했던 남자가 바로 애야! 어때? 이 몸매 좀 봐. 죽이지?”신연주는 중매쟁이로 둔갑해서 한참을 떠들어댔다.하지만 이도현은 들을수록 불편했다. 소개팅 현장이 아니라 무슨 노예로 팔려가는 느낌이었다.“선배! 말 좀 정상적으로 할 수는 없어요?”듣다못한 이도현이 끼어들었다.“뭐가? 이도현, 너 복 받은 줄 알아? 이 하늘 같은 선배가 너한테 여자친구를 소개해 준다잖아! 그것도 이 나라 최고의 미인인데다가 돈도 많아. 넌 얘랑 결혼하면 아무것도 할 필요 없고 마누라한테 용돈이나 타서 쓰면 돼!”“아… 그러신가요….”이도현은 욕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아무리 예전에 궁핍한 생활을 좀 했다지만 지금 그의 실력으로 여자한테 빌붙어 사는 건 인력낭비가 아닌가?“언니! 그만해요! 더 얘기하면 화낼 거예요!”한지음이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며 다급히 말했다.“그래, 그래. 알았어! 남녀 사이의 일은 당사자끼리 얘기해야지. 어쨌든 지금은 이곳을 벗어나야 할 것 같으니 나중에
말을 마친 신연주는 다짜고짜 이도현을 끌고 욕실로 들어가며 한지음을 향해 소리쳤다.“올케는 아무데나 앉아서 쉬고 있어.”그러더니 이도현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당황한 이도현은 다급히 그녀의 손을 잡으며 소리쳤다.“선배! 지금 뭐 하는 거예요?”“무슨 이상한 상상을 한 거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꿈은 야무지네?”신연주는 매력적인 미소를 짓더니 이도현의 어깨를 툭 쳤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도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변태 같은 녀석! 선배가 널 잡아먹기라도 해? 몸에 온통 피잖아.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으라고!”“아니! 선배, 이상한 상상한 적 없으니 씻는 건 내가 알아서 할게요!”이도현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풉! 뭐야? 부끄러워하는 거야? 이 선배가 강호를 평정하며 무슨 장면을 못 봤겠어? 뭘 선배 앞에서 쑥스러워하고 그래?”신연주는 애써 당당한 척했지만, 토마토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은 숨길 수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이도현을 놓아줄 생각은 없는 듯했다.“자! 도대체 무슨 거물을 숨겼기에 그리 쑥스러워하는지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어!”말을 마친 그녀가 이도현의 아랫도리로 손을 뻗었다.당황한 이도현이 옷깃으로 몸을 감싸며 뒷걸음질쳤다.“선배, 이러지 마세요! 밖에 사람이 있잖아요! 알아서 씻을 테니까 제발 나가요!”이도현은 다급히 신연주를 밖으로 밀어내고 문을 잠갔다.“저 여자는 미친 여자야. 스승님 말씀이 다 맞았어. 여자가 미치면 남자가 당해낼 수 없어!”이도현은 문에 기댄 채, 가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순결을 잃을 뻔했다.밖에서 신연주의 악마 같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어린 녀석이 무슨 부끄럼이 그렇게 많아? 너 나 밀어낸 거 나중에 후회한다?”한편, 욕실 안의 이도현은 드디어 옷을 벗고 딱딱하게 솟아오른 자신의 분신을 손으로 툭 치며 욕설을 퍼부었다.“자존심도 없는 녀석! 미친 여자한테 반응하다니! 나까지 다 창피하잖아! 여자 맛을 못 본 것도 아니고 이렇게
대부분 사람들은 이도현이 주육 스님에게 살해됐다고 믿었다.심지어 다른 고수들조차 그렇게 생각했다. 주육 스님의 명성은 이미 오래전에 널리 퍼져 있었고 그의 강력함을 경험한 이들도 많았으니까.이도현에 대해 아는 건 주로 다른 사람들을 통해 들은 말일 뿐, 실제로 본 적이 없었기에 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눈으로 직접 본 것이 아니면 믿을 수 없었다.그렇기에 이런 상황에서 모두의 첫 반응은 이도현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주육 스님이 죽었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모두가 숨죽여 지켜보던 그 순간, 먼지가 서서히 흩어졌다.다음 순간 모든 사람들의 눈이 믿기지 않는 듯 커졌다.“뭐?”“이럴 수가?”“아니, 이건 말도 안 돼! 이도현이 어떻게 살아있지?”“주육 스님은 어디 갔지?”모든 사람이 눈을 크게 뜬 채 그들은 중앙에 서 있는 이도현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이도현은 등에 검을 진 채 한 점의 상처도 먼지도 없이 완전무결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그리고 주육 스님의 뚱뚱한 몸뚱이는 마치 증발한 것처럼 사라져 있었다.이도현의 발아래에는 끔찍하게 붉은 피가 흩어져 있었다! 그 피 옆에는 몇 개의 보석이 반짝이며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찢어진 살덩이와 피가 묻어 있었는데 왠지 기이해 보였다.멀리서 부서진 석장이 보였고 그것 역시 피범벅이었다.“저... 저건 주육 스님의 석장이잖아... 주육 스님이... 이도현에게 살해당한 거야?”“헉...”모든 이들이 숨을 들이켰고 현장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그들의 시선은 이도현을 주시하며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특히 이전에 큰소리쳤던 고수들조차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바닥에 한가득 퍼진 피들을 보며 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주육 스님이 패배했어? 죽은 거야?”“어떻게 이런 일이...?”하얀 머리의 마도가 손에 쥔 보검이 끊임없이 떨리며, 마치 서로 싸우려는 듯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자신의 보검을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저 검이야!
“음양검으로 네 이 늙은 놈을 죽이면 검만 더러워져.”이 말을 들은 주육 스님은 화를 내지 않을뿐더러 뚱뚱한 얼굴에 거만한 미소를 띠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비천한 잡종 놈. 네가 대단한 건 인정해. 방금 그 검술도 좋았어. 하지만 그 검술에 이미 온 힘을 다 했을 거야.”“고작 그 정도 실력으로 날 죽이려고 한 거야? 어림도 없어.”“원래 자비를 베풀어 네 놈의 목숨만은 남겨줄 생각이었는데 그 기회를 제 발로 차버리다니. 이토록 완고하게 나오면 너를 저승으로 보내는 수밖에 없다. 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주육 스님은 자상한 얼굴로 역겨운 소리를 지껄였다. 만약 그가 주육 스님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이 말을 들었더라면 그를 득도하신 스님으로 생각했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이 말을 뱉은 그는 역겹기 그지없었다.뒤이어서 불호 소리와 함께 주육 스님은 발을 세게 내디디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꽝 소리와 함께 그가 서 있던 곳에 크고 깊은 웅덩이가 생겼다.불문 천근 낙. 이 기술은 내공이 낮은 무사를 충분히 죽일 수 있었다.하지만 현장에는 약자가 한 명도 없었다.허공에 떠 있는 주육 스님은 끊임없이 수법을 바꾸었다. 몸에서 금빛을 내뿜고 있는 그는 멀리서 보면 금신 나한처럼 두 손으로 석장을 휘두르며 이도현의 머리를 향해 공격을 날렸다.이번에 주육 스님은 물리적인 공격을 날릴 생각이었다. 그는 원력을 밖으로 내뿜지 않고 석장에 주입해서 석장으로 이도현의 머리를 때리려 했다.이도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손에 든 보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달려들었다.솔직히 말해서 이도현은 검기로 싸우는 것보다 이렇게 근신해서 싸우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는 이 세상에 아직 음양검과 맞서 싸울 수 있는 병기가 없다고 굳게 믿었다.짧은 병기로 교전하는 것은 제일 직접적이고 그가 제일 좋아하는 방식이었다.오행검술에 음양신공이 더해지자 이도현은 오행검술의 공격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었다.쿵...굉음과 함께 음양검과 주육 스님의 석장이 공중에서 서로 맞닿았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죽으려고 작정했냐? 감히 나한테 손을 써? 살기 싫구나.”노스님의 분노가 폭발하자 손에 들고 있던 석장에 불이 번쩍 들어왔다. 그는 씩씩거리며 이도현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석장은 특수한 재료로 만들어졌다. 위쪽은 빛이 반짝반짝했고 중간에는 주먹만 한 진주가 박혀있었는데 딱 봐도 가격이 어마어마했다.노스님이 원력을 끌어올리자 석장은 마치 신기처럼 휘황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이도현을 향해 달려들었다.그의 석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색 빛은 거대한 무늬를 이루었다.거대한 卍 표시는 눈부신 금색 빛을 내뿜었는데 멀리서 보면 정말 부처가 강림하여 이 세상의 모든 귀신을 거두어들일 것만 같았다.마치 이 세상을 정화하는 불빛 같았다.비록 주육 스님은 스님의 자격이 부족한 것 같지만 불문의 공법을 나름대로 능통하고 있었다.방금 사용한 기술은 아주 정규적인 불문 공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번의 공격만 봐도 사찰에서 장로급 존재라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하지만 이렇게 강한 스님이 왜 하필 금방 아이를 낳고 아직 모유도 떼지 않은 여자를 좋아하는지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정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머리 위에 卍 표시가 떨어지는 것을 본 이도현은 체내에서 오행검법을 작동했다.그러고는 체내의 원력을 극치로 끌어올렸다.그는 강대한 고수들을 상대로 길게 싸우고 싶지 않았다. 반드시 상대방의 요해를 지르고 속전속결 해야 했다. 그래야만 이 사람들의 손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그는 머리를 쓰지 않고 막무가내로 싸울 생각이 하나도 없었다.진원을 다 써버린 무사는 세 살짜리 어린애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이도현은 잘 알고 있었다.쿵.삽시에 오색의 힘이 이도현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그의 몸 뒤에서 붉은색 교룡이 날아오르는 것을 은은하게 볼 수 있었다. 교룡은 그의 몸을 한 바퀴 빙 두르고 나서 사라져버렸다.막강한 오색 빛이 폭발한 순간, 하늘과 땅은 순식간에 오색영롱한 빛으로 물들었고 주육 스님의 금색 빛을
‘일반인이 어떻게 저렇게 침착할 수 있어?’‘겁먹고 정신이 나간 거 아니야?’‘그런 걸 수도 있겠다. 겁에 질리면 바보같이 웃는 사람도 있다던데 이 자식이 지금 딱 그 모습이잖아.’이도현은 사람들이 자기가 강자들 때문에 겁먹고 정신을 잃은 거로 생각하고 있을 때 입을 열었다.“이 사람들은 모두 공작제국에서 찾은 조력자들인가?”이도현이 덤덤한 목소리로 물었다.“흥. 여기에 있는 선배들은 다 퇴마하려고 온 사람들이다. 모두 대의를 행하려고 온 것이야. 우리 공작제국이 아무리 선배들을 모시고 싶다고 해도 그럴 만한 자격이 되지는 않아. 이 선배들은 모두 능력이 세고 품위가 있으신 분들인데 오늘은 네 이 마귀를 해치우려고 온 것이다.”주왕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지만 아첨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당신들은 그럴 자격이 없긴 하지. 신용이 없는 제국은 그저 한 무더기의 쓰레기에 불과해. 짐승들도 너희랑 같이 있는 걸 꺼릴 거다.”이도현이 냉랭하게 말했다. 말을 마친 뒤 그는 앞에 있는 강자들에게 눈길을 돌려 싸늘하게 말했다.“이왕 먼 걸음 오신 거 다들 죽을 각오 단단히 하시죠.”이도현의 말에 현장은 삽시에 들끓었다.“미친 거 아니야?”“방금 뭐라고 한 거야?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네. 잘난 체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해야지. 지금은 그럴 분위기가 아닐 텐데.”거의 모든 사람이 이도현의 거만한 말에 깜짝 놀랐다.여기에 있는 강자 중 어느 한 명이라도 고무계를 뒤흔들어놓을 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이도현이 죽을 각오를 하라고 한 것이다.‘죽고 싶어서 환장한 건가?’아니나 다를까 이도현의 말이 끝나자, 안 그래도 주육 스님 때문에 화가 잔뜩 난 백손도인이 큰소리로 외쳤다.“어디서 주제도 모르는 건방진 짐승 놈이. 주제를 알면 어서 빨리 곤륜옥의 열쇠를 이리 내놓거라. 그럼 황천길은 건너게 해 주지. 아니면 지옥으로 내려보낼 거다.”“그래? 그럼 당신은 지옥 갈 준비가 됐어?”이도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짐승 같은 자식.
수많은 눈동자가 순식간에 다 칼날 방향을 바라보았다.뒤에 있던 사람들은 다 순순히 그에게 길을 내주었다. 백발이 성성하고 긴 수염의 노자 한 명이 신풍도골한 모습으로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노자는 정신이 말짱해 보였고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었는데 마치 한 자루의 보도 같이 사람에게 무궁한 위력을 가져다주었다.“그분이다...”“정말로 그분이셔.”“그 마 같은 남자가 정말로 이 세상에 아직 있었어.”그 순간 모든 사람의 눈길은 다 이 노자의 발걸음을 따라 움직였다.마치 눈길이 이 노자에게 단단히 사로잡힌 것만 같았다.“형님... 이 늙은이가 누구예요? 왜 다들 이런 표정을 짓는 거예요?”옆에서 구경하던 한 젊은이가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서 물었다.“대박... 어떻게 이분을 몰라? 너 설마 멍청이야? 무술을 다스리는 사람이 어떻게 이분을 모를 수 있어?”옆에 있던 남자는 바보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젊은이를 바라보았다.“그게 아니라... 제가 무술을 늦게 시작한 데다가 2년 전에야 정식으로 파벌에 입문했어요. 이전에는 산 밑에 사는 나무꾼의 아들로 살아서 모르는 것이 많아요.”젊은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오. 그럼 그럴 수도 있지.”“이보게. 알려줄게. 이분이 바로 60여 년 전에 고무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천하제일도, 마도라네.”쿵.남자의 말에 현장은 순식간에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삽시에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이 시각 거의 모든 사람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고 노자에게 눈길 한번 주지 못했다.마도라는 사람은 정의롭다면 정의롭고 사악하다면 사악한 존재였다. 그는 마도공법을 사용하기만 하면 바로 입마 상태에 빠져 육친도 몰라보고 마귀든 신이든 만나는 족족 다 죽여버리곤 했다.듣는 말에 의하면 은퇴하기 전 마도는 자기 아들과 칼질 솜씨를 겨루던 중 부주의로 마도공법을 사용하여 순식간에 입마 했고 그 자리에서 자기 아들을 단번에 두 동강 냈다고 한다.이 일로 마도는 후회막심했고 결국에는 은퇴하여 고무계에서 자취를 감췄
“지난 몇 년 동안 도대체 어디서 지냈던 거야? 내가 널 얼마나 찾아다녔는데. 난 네가 이미 저 도사 양반이랑 혼인을 맺은 줄 알았어. 자옥아,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정말 기쁘구나...”자옥 여승을 본 순간, 주육 스님의 눈빛은 온통 다정함과 애틋함으로 가득 찼다. 이 순간 그의 눈에는 여승밖에 안 보이는 것만 같았다.“오라버니, 아직 살아 계셨군요... 이... 몇 년 동안 저는 줄곧 혼자였어요. 이 사람이... 계속 저를 피해 다녔어요...”주육 스님을 바라보는 여승의 얼굴에는 쑥스러움이 조금 생겨났다.“백손. 이 영감탱이. 나쁜 자식. 자옥이에게 상처를 주면 내가 널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했어? 안 했어? 그런데 지금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거야?”여승의 말을 듣자 주육 스님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잔뜩 화난 얼굴로 백손도인을 째려보며 물었다.“빤대머리, 이건 나와 자옥의 일이지 당신이 끼어들 일 아니야. 남남인 주제에 무슨 상관이야?”백손도인은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말했다.“자옥아, 이 일을 설명하자면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나중에 말해 줄게. 하지만 나를 꼭 믿어 줘. 나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어. 절대 너를 버리려고 한 게 아니야. 나 그런 사람 아닌 거 너도 잘 알잖아.”“그래요. 오빠. 오빠를 믿을게요.”자옥 여승은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말했다.“자옥아. 절대 이 도사 양반의 빈말에 속아 넘어가지 마. 나랑 가자. 내가 너를 행복하게 해 줄게.”주육 스님은 앞으로 나서서 여승의 손을 덥석 잡고는 격동하며 말했다.“빤대머리야. 얼른 자옥이의 손을 놓지 못해? 어디 감히 내 여자를 뺏으려고 하는 거야? 죽고 싶어...”백손도인은 노스님이 여승의 손을 꽉 잡은 것을 보고 대뜸 질투가 나서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내가 너를 두려워할 것 같아? 지난번에는 자옥이를 봐서 물러났지만, 이번에는 누가 뭐라고 해도 절대 물러나지 않을 거야. 반드시 자옥이를 데리고 가야겠어...”주육 스님도 성을 내며 말했다.
“능력에 따라 가진다면 곤륜옥의 비밀은 내 것이 되겠군.”소리와 함께 청색 도포를 입은 노자가 손에 불진을 들고 등에 보검을 멘 채 음험하고 흉악한 얼굴로 맨 앞에 걸어 나왔다.“헐... 말도 안 돼. 백손도인이잖아. 헐... 이분은 백 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설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건가?”소문에 죽은 지 백여 년도 되는 도인이 눈앞에 있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은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숨이 막혔다.백손도인. 도사지만 바른 면과 사악한 면을 겸비한 존재, 도문의 규율은 전혀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었다.절대 규칙대로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움직이며, 한번 마음먹은 일은 극악무도한 일이라도 해내는 사람이었다.반대로 하기 싫은 일은 도가의 조상이 와서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쉽게 말하면 아주 철저한 고집불통이었다.남이 시키는 일은 절대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일은 또 기필코 하고 마는 성격이었다.다른 사람의 말은 쥐뿔도 듣지 않는 고집불통이었다.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의 고집에 내공이 강해서 망정이지, 아니면 그는 집 문을 나서기도 전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백손도인, 자네 드디어 나왔군. 왜? 곤륜옥의 비밀 앞에서 더 이상 겁쟁이 행세를 하고 싶지 않나 봐?”한 사람이 앞으로 걸어 나왔는데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뚱뚱한 노스님이었다. 그는 온몸에 금빛이 반짝이었고 손에는 석장 한 자루를 들고 있었다.석장 위에는 술병이 달려 있었다. 피둥피둥 살진 얼굴에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것을 보아하니 술과 고기를 끊지 않은 스님이었다.“주육 스님. 헐... 이 골칫덩이도 나타났어.”“젠장. 또 수많은 고무계 여자가 봉변을 당하겠네.”“듣자 하니 이 주육 스님은 평생 세 가지 취미가 있다고 해. 술, 고기 그리고 막 아이를 낳은 수유 중인 산모.”“이런 쓰레기가 아직도 멀쩡히 살아있다니. 하나님이 왜 눈감아주고 있는 거야.”구경꾼들 속에서 누군가가 분노하며 말했다.이 스님은 심성이 나
이도현은 여자가 단번에 병사 몇 명에게 끌려가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냉랭하게 말했다.“좋은 말로 할 때 당장 그 여자를 풀어줘.”“이도현, 넌 네 앞가림도 못 하게 생겼는데 오지랖 그만 좀 부려. 네 앞길이나 많이 걱정해.”왕후는 거들떠보지 않고 말했다.이도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자네도 공작제국의 사람인가?”“맞다고 하면 어쩔 건데? 난 공작제국의 주왕이다. 감히 우리 공작제국에서 나대다니 정말로 이 공작제국에 널 혼내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이 짐승 같은 놈아, 오늘 똑똑히 가르쳐 주마. 누구든 감히 공작제국의 천위를 건드리는 자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선배 여러분, 손쓰시죠.”주왕의 말이 끝나자 사면팔방에서 수십 명이 불쑥 튀어나와 순식간에 이도현을 에워쌌다.거리를 거닐던 사람은 상황이 이상한 것을 보고 진작에 멀리 도망갔다. 지금 거리에 남아있는 사람은 이도현과 그를 죽이러 온 사람들뿐이었다.이 광경을 지켜본 여자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그녀는 이도현이 살려준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고무계의 각 종파가 연합하여 이도현을 상대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몰래 그를 찾아가 빨리 이곳을 떠나라고 귀띔해주고 싶었다.그러나 여전히 한발 늦을 줄이야.이도현은 지금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가 없었다.주변에 빼곡히 늘어선 수천 명의 무사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기운을 느끼며 그녀는 영혼마저 바들바들 떨리는 것 같았다.그녀는 무서운 살기에 눌려 고개를 쳐들지도 못했다.이도현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수천 명의 무사를 상대로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그러나 이도현은 겁먹은 기색 하나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공작제국. 허허허. 신용을 안 지키다니. 그럴 줄 알았으면 그 노스님의 말을 믿지 않고 단칼에 황제를 죽이는 거였는데.”이 말을 듣자 주왕은 버럭 화를 냈다.“이 녀석, 당장 죽게 생겼는데 아직도 막말하다니. 오늘이 너의 제삿날이다.”“너뿐만 아니라 세속계에 있는 너의 가족 모두가
이도현은 귀령문을 떠나 곧장 고무계의 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는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었다.이 시국에 그는 더 이상 고무계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선학신침도 채 찾지 못한 마당에 계속 있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지금 잃어버린 18개의 양침에서 겨우 5개 찾았을 뿐이다.하여 반드시 외계로 돌아가 나머지 선학신침을 전부 찾아야 했다.이도현은 이번 일 때문에 공작제국이 당분간 그를 귀찮게 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그는 한동안 조용하게 지내면서 선학신침을 찾는데 몰두할 생각이었다.그러나 이도현이 인심을 좋은 쪽으로 생각했던 것뿐이다. 사실 고무계의 크고 작은 세력은 그의 얘기를 전해 듣고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고 수많은 강자는 그를 타깃으로 삼고 달려오고 있었다.그들은 모두 이도현이 몸에 지닌 곤륜옥의 비밀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특히 공작상제가 이도현이 귀령문을 소멸했다는 얘기를 퍼뜨린 후에 이 강자들은 자발적으로 한곳에 뭉치기 시작했다.그들은 합심하여 이도현을 제패한 뒤 곤륜옥의 보물을 어떻게 나누어 가질 지에 대해 논의할 생각이었다.그리하여 퇴마 소조가 탄생했다.그러나 이 일을 모르고 있는 이도현은 빠른 속도로 입구를 향해 달려갔다.귀령문에서 옥경산에 있는 고무계 입구로 가려면 반드시 공작제국의 도성을 거쳐야 했다.이 시각 이도현 사건을 겪은 공작제국의 도성은 인심이 흉흉했고, 게다가 곤륜옥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각 세력의 강자들이 모두 도성에 몰려드는 바람에 도성은 하룻밤 사이에 강대한 무사의 기운으로 가득 찼다.바로 이도현이 공작제국의 도성에 들러 몇 명의 여자한테 고무계의 희귀한 물건을 선물로 사 가려고 할 때였다.검은 그림자 한 개가 그를 향해 빠르게 달려왔다.“이 자식아, 빨리 도망가... 도망...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 빨리 가... 이곳을 떠나.”검은 그림자는 다름 아닌 이도현이 막 고무계에 도착했을 때 그를 습격하던 여자였다.또한, 이도현에게 공작제국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준 그 여자이기도 했다.“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