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왔다. 신연주는 잠자고 있는 이도현을 깨워 호신용품을 사러 가야한다면서 그의 팔목을 끌었다.이도현은 그녀가 아주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북후의 배후에 있는 늙은 독수리가 만만한 상대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하지만 그게 누구든 만약 시비를 걸어온다면 목을 따버릴 자신이 있었다.그는 자신이 어느정도 강한지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빌어먹을 스승이 그를 산에서 쫓아낼 때 넌 무적이 되었다는 말을 믿었다.한지음과 이설희는 아직 자고 있었다. 어젯밤 한지은은 완성에 며칠 머무르며 치료에 집중할 거라고 했다. 이도현이 괴사한 심맥을 다 복구한 뒤에야 떠나겠다는 말이었다.이도현은 뭔가 귀찮은 일에 엮여버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지난번에 골수를 기증하면서 계속 여자들과 엮인다는 생각을 뿌리칠 수 없었다.한편, 서북후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은 하룻밤 사이에 서북 전역에 퍼졌다. 서북구 전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완성 강씨 가문의 호화저택. 강 회장 역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그는 두려웠다.서북후의 죽음이 그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서북후의 손을 빌려 이도현을 제거하고 아들과 손자손녀의 복수를 하려고 했는데 서북의 최고 통치자 서북후 이 장군이 이렇게 힘없이 죽음을 맞이할 줄은 몰랐다.서북후의 죽음을 위에서 추궁한다면 결국 강 회장은 화를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어떡하지? 이제 어떡해? 서북후를 죽인 여자는 도대체 누구야?”강 회장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제가 알아봤는데 그 여자는 이도현 그 자식의 선배라고 하더라고요. 신연주라고 했나?”강 회장의 맏아들 강석림이 말했다.“이 여자의 배후와 신상에 대해 낱낱이 조사해.”강 회장이 소리쳤다. 그는 어떻게든 피해를 복구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그래야 서북후의 윗선에서 조사가 내려오면 그들에게 할 말이 있었다.“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이 여자를 추적했는데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이 여자 만만한 상대
“당신 설마 신영성존의 사람이야?”강 회장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가끔은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어.”남자가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네, 그럼요. 어서 앉으세요. 아는 건 전부 대답해 드리리다!”강 회장은 급격히 태도를 바꾸고 공손하게 남자를 대접했다.하지만 남자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볼 뿐이었다.“이 장군은 죽인 범인은 신연주와 그녀의 후배인 이도현입니다.”“신연주? 역시 그 여자였네!”남자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지금 놈들은 어디 있지?”“그건 몰라요. 어제 저택에서 이 장군을 살해한 뒤에 차를 타고 도시를 벗어났습니다. 어디로 갔는지는 우리 애들도 추적하고 있으니 곧 좋은 소식이 있겠지요.”강 회장이 말했다.“멍청한 것들!”남자가 욕설을 퍼부었다.“내가 그 여자를 찾아내기를 기도해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 목숨을 내놓을 각오해.”“서북후의 죽음은 당신들에게도 책임이 있어. 스승님의 처분을 기다리면서 지금 살아 있는 순간을 즐기도록 해. 시간이 얼마 남지는 않았지만!”말을 마친 남자는 안색이 창백해진 강 회장 일가를 뒤로하고 어딘가로 사라졌다.“끝장이야, 이제 우린 끝장이라고!”남자가 떠난 뒤, 강학연 회장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아버지! 저 인간은 누군데요? 그렇게 무서운 존재인가요?”강석림이 그를 부축하며 물었다.“더 이상 묻지도 마! 아는 게 적을수록 안전하니까! 지금 당장 가족들에게 연락해서 염국을 떠나야 해. 해외로 나가서 숨어 살고, 내 지시 없이는 절대로 돌아오지 마!”강 회장이 다급히 말했다.“아버지! 그래서 그 인간이 도대체 누군데 그렇게까지 해야 해요?”강석림이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따지듯 물었다.“알 필요 없다니까? 지금 당장 떠나! 안 그러면 늦어. 모든 재산을 챙겨서 이 나라를 떠나!”강 회장은 굉장히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아버지….”“어서 가! 불효자식 같으니라고! 이제 아비 말도 안 듣겠다는 거야? 우리 가문 대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도복을 입은 한 중년 남자가 입에 담배를 물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행색이 꼬질꼬질한 것이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모습이었다.“영감, 나한테 또 구미호라고 하면 그 수염 다 뽑아버릴 줄 알아!”신연주가 짜증스럽게 대꾸했다.꼬질남은 어느새 그들의 앞으로 가까이 다가오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도현을 아래위로 훑었다.그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뭐야? 연하남 취향이었어? 선수라지만 그래도 아무의 손을 타지 않은 새것이니 땡잡았네, 미호야.”그 말을 들은 이도현은 당장 녀석을 걷어차고 싶은 욕구를 억지로 참았다. 진지한 표정을 짓길래 무슨 대단한 말을 하려는 건 줄 알았는데 이 무슨 헛소리인가!‘내가 여자한테 빌붙어 사는 관상이란 말이야? 이런 미친놈이!’“꺼져, 선수는 무슨! 얘 내 남자야!”신연주는 정색하며 이도현을 두둔했다.“아! 그랬어? 눈이 정수리에 달려서 남자 보는 눈이 까다로운 줄 알았는데. 그럼 제대로 한번 봐야지!”꼬질남은 충격에 빠진 표정을 짓더니 다시 이도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괜찮네. 아주 괜찮은 녀석이야.”그러더니 갑자기 이도현을 괜찮은 녀석이라며 치켜세웠다.“어린 친구! 만나서 반가워! 난 동현자 선생의 36대 제자, 현동자야. 첫만남에 주는 선물이니 받아둬. 필요할 것 같아서 준비했어.”꼬질남은 아주 진지하게 자기소개를 하더니 주머니에서 약병을 하나 이도현에게 건넸다. 약병에는 큼지막하게 “석가모니 방망이”라고 쓰여 있었다.그 글자만 봐도 좋은 물건 같지는 않아 보였다.“자, 어린 친구. 이거 받아. 좋은 거야! 정말 구하기 힘든 거라고.”이도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현동자는 기름때가 덕지덕지한 손으로 이도현의 손에 약병을 쥐여주었다.“영감! 그 더러운 물건 당장 안 치워? 내 남자 더럽히면 죽여 버릴 거야!”신연주는 다급히 이도현의 손을 낚아채고는 혐오스럽다는 듯이 말했다.이도현은 이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이 선배라는 여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과 접
이도현은 그들이 대화에 단 한 마디도 낄 수 없었다. 하지만 보아하니 두 사람 사이는 줄곧 이래왔던 것 같았다.“이 친구를 준다고? 아쉽네….”이도현에게 준다는 말에 현동자는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당장 가져와. 그건 내 후배가 입어야 가치가 있는 거라고!”“남자가 왜 그런 걸 입어? 아니, 설마 얘 남자가 아니었어?”현동자가 부루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이 영감이 오늘따라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내가 정말 아끼는 후배거든? 얘 무시하면 영감은 내 손에 죽어!”신연주가 이를 갈며 경고했다.“아끼는 후배가 남자라… 정말 난잡하군.”현동자는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리며 두 사람을 이끌고 가게로 왔다.이곳은 수많은 가게가 줄지어 선 지하상가였다. 방문하는 손님들도 꽤 많았는데 겉으로 보이는 것들은 비교적 정상적인 물건이었지만 가게 안쪽에는 아주 이상한 기물만 모아놓고 있었다.고대의 서적이나 약재, 그리고 고대인의 무덤에서 발굴한 금은보화에 비싼 명화와 골동품, 심지어 여자나 아이들, 총기와 보검까지 없는 게 없었다.현동자를 따라 가게로 들어가자 현동자는 그들을 가장 안쪽에 있는 방으로 안내하더니 박스를 하나 들고 왔다.“여기. 지난번에 사가라고 할 때는 못생겼다고 안 산다면서?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직접 찾아나섰대? 게다가 이걸 남자 후배에게 선물한다니! 미호야, 남자한테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지 않게 조심해.”현동자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그 말에 이도현은 참고 있던 분노가 폭발했다.아무리 선배의 지인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너무 예의를 밥 말아 드신 것 아닌가!“그 입 조심해! 선배 지인이라고 계속 참고만 있었는데 대놓고 사람 무시하네! 당신, 죽고 싶어?”이도현이 싸늘하게 경고했다.“어린 녀석이 성깔 있네? 이마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허세는.”현동자는 눈을 가늘게 뜨며 이도현을 쳐다보더니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한번 붙어볼래?”이도현이 말했다.“아이고, 무서워라. 그런다고 내가 무서워할 것 같아? 어디 한번
“내가 전에 이 갑옷을 입어본 적 있거든? 이거 정력 상승에도 아주 탁월해! 신기하지?”현동자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젠장. 이 변태 같은 영감이! 자꾸 헛소리 지껄이면 영원히 남자구실 못 하게 만들어 버린다?”신연주는 혐오스럽다는 듯이 욕설을 퍼부었다.“아니, 진짜라고! 돌아가서 한번 체험해 보는 것도….”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도현이 진한 살기가 담긴 눈으로 쏘아보자, 그는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어쨌든 효능에 대한 소개는 끝났으니 이제 돈 얘기를 해야겠군. 우린 오래 알고 지낸 사이지만 친할수록 계산은 똑바로 해야 하는 법이지. 이 갑옷은 지난번에 얘기했던 그 가격에 저 어린 친구 체면을 생각해서 20프로 할인해 줄게.”현동자가 탐욕스럽게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영감 주제에 욕심은! 그래! 우리 예쁜 후배한테 선물하는 거니까 가격 후려치기는 하지 않을게. 이건 그 가격대로 주고 내가 쓰는 표창은 20만 원에 줘.”신연주가 말했다.“젠장! 그건 너무하잖아! 그 표창 하나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자원이 소비되는지 알아? 게다가 주재료가 운석이라고! 얻기 힘든 재료야. 그걸 어떻게 20만 원에 달라고 할 수 있어? 이 강도야!”현동자는 과장된 표정으로 손짓발짓 섞어가며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두 사람에게는 그냥 협잡꾼이 돈을 더 뜯어내려는 노력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그만! 그따위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 이거 제외하고 은침 천 개까지 주문할게. 재료는 내가 쓰는 표창이랑 똑같은 재료로 부탁해.”신연주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냥 날 죽여!”현동자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으며 절규했다.옆에 있던 이도현마저 이건 너무하다 싶었다. 신연주가 사용하는 표창을 한번 본 적 있는데 정말 값비싼 재료로 만들어졌다. 부피는 작지만, 무기를 잘 다루는 사람에게는 보검에 견줄만한 값어치 있는 물건이었다.신연주가 20만 원이라고 딱 잘라 얘기했지만 재료 값만 어마어마하게 들어갈 것이다.“선배, 침은 백 개 정도면
“비열한 연놈들! 내가 석가모니 방망이까지 줘가며 호의를 표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평생 남자구실, 여자구실 못 하며 살게 될 거야! 내가 재수가 없어서 너희 같은 인간을 만났지.”현동자는 바닥에 주저앉아 온갖 욕설과 저주를 퍼부었다.하지만 이도현은 들어도 못 들은 척, 그렇게 지하상가를 벗어났다.“선배, 이 갑옷은 정말 좋은 물건 같아요. 그 변태 도사가 거짓말은 안 했네요. 하지만 난 별로 필요가 없으니 선배가 입어요.”돌아가는 길에 갑옷을 뜯어본 이도현이 말했다.산에서 생활할 때 그의 스승은 그에게 온갖 잡기술을 가르쳤다. 그중에는 보물을 감별하는 기술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골동품과 명화는 물론이고 영기가 깃든 물건들까지 한번 보면 진위를 감별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이 비단 갑옷은 세상에 얼마 없는 정말 귀한 보물이었다. 이런 게 현대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만 해도 기적인 셈이었다.갑옷에는 특수한 힘이 깃들어 있었는데 총탄과 칼날을 막아줄 수 있고 정기를 안정시키는 효과도 있었다. 그걸 제외하고도 갑옷에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그 기운을 받아들이자 갑자기 체내에 열기가 솟구치고 입안이 타들어가더니 여자를 안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이런 젠장!’이도현은 다급히 진기를 운용해서 사악한 기운을 쫓아 버렸다. 그제야 숨쉬기가 좀 편해졌다.현동자가 말했던 정력을 향상시켜 준다는 말은 사실이었다.“왜 필요가 없어? 서북후가 죽었어! 그 배후가 곧 우리를 찾아올 거라고. 아마 최근이 될 거야. 최대한 조용한 곳에 몸을 숨기고 대비하고 있어야 해. 그러다가 영감이 표창과 침 제작이 끝나면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지만!”“어쨌든 무기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이거 꼭 입고 있어. 만일을 대비해야지! 넌 스승님 제자 중에서도 가장 약골이었으니 네가 다치지 않으려면 이걸 입는 게 맞아.”“그래도 너무 걱정하지는 마. 이 선배가 있는 한 이 천하에서 널 다치게 할 인간은 많지 않아. 내가 스승님 밑에서 괜히 수련한 게 아니거든? 걱정하
그냥 말을 말아야지! 원래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일수록 외로운 법!이도현은 이런 생각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후배야, 산을 내려왔으면 산 아래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게 당연해. 할 일을 찾아서 하지 않으면 많이 따분할 거야. 너도 돈을 벌어야지. 이 세상은 돈이 없으면 안 돌아가는 세상이야.”“하고 싶은 게 뭔지 잘 생각해 봐. 이 선배가 다 도와줄게!”신연주가 웃으며 말했다.이도현은 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의미마저 잃게 된다.비록 돈이 궁한 것도 아니고 사부가 준 카드만으로 평생 일을 안 하고 먹고 살 수는 있지만 그래도 뭔가 할 일을 찾아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선배, 난 무공 제외하면 별로 아는 게 없어요. 의술도 조금 하지만 다른 건 아무것도 몰라요. 예전에 대학은 나왔지만 8년 동안 산에서 살면서 이미 현실 사회와 멀어져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이도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남들이 취직하고 스펙을 쌓고 있을 때 8년을 산에서 보냈으니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괜찮아. 네가 할 줄 아는 걸 다른 사람은 못 하니까. 작은 진료소 하나 차리는 건 어때? 그러면 시간도 자유롭고 네 성격이랑도 잘 어울릴 것 같아.”신연주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그건 나중에 얘기해요. 도착했네요.”이도현은 애써 화제를 돌렸다.진료소를 차리기 싫은 건 아니지만 작은 진료소에 얽매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는 아직 세상을 더 돌아보고 싶었다. 예전에는 그럴 능력도 없고 기회도 없었지만 지금은 충족한 돈도 있고 자신을 지킬 무공도 있으니 한곳에만 머물러 있기는 아쉬웠다.여자에 미친 그의 스승마저 산을 내려오기 전에 그에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수련에도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가자. 이따가 일꾼을 고용해서 별장 내부를 청소해야겠어. 후배 넌 마음껏 즐겨. 지음이 병만 치료하면 이 선배가 중매를 서줄게.
색골 스승의 말에 따르면 교룡은 원래 색에 미친 종족이라고 했다. 이도현은 교룡의 척추를 소유했기에 매번 여자와 근거리에서 접촉할 때면 몸에 이상반응이 생길 거라고도 말했다.그는 이제야 그 이상반응이 어떤 건지 경험하게 되었다.별장을 나온 이도현은 옛날 기억을 되짚어 가며 한 한의원 쪽을 향해 걸어갔다.8년을 떠나 있는 사이 완성은 천지개벽의 변화를 이루어냈지만 대체적인 위치는 기억이 났다.그는 느긋하게 느낌을 따라 걸었다. 한 시간 뒤, 그는 여기저기 알아보면서 드디어 한의원 거리에 도착했다.이곳은 완성에서 한의원이 가장 밀집한 곳이었다.이도현은 이 도시를 설계한 사람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하필 의사들을 한 거리에 집중하게 했을까? 멀리 있는 사람들도 불편하고 의원간의 경쟁도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설계한 건지.이도현은 거리를 둘러보다가 환자가 가장 많은 한 병원으로 들어갔다.의사는 거짓말을 해도 환자들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곳에 사람이 많이 몰렸다는 건 의사의 실력이 아무리 못해도 다른 의원의 의사들보다는 낫다는 것을 설명했다.이도현은 신농관이라는 한의원으로 들어갔다.병원 안에는 온통 약을 보관하는 서랍으로 배치되었는데 각 서랍마다 약재의 명칭이 상세하게 표기되어 있었다.옆에 있는 항아리에서는 약이 끓고 있었다.병원 내부는 진한 한약 냄새가 진동했다.벽에는 많은 상장이 걸려 있었는데 온통 원장의 실력을 찬양하는 상장들이었다.본관에는 한 노인이 책상에 앉아 환자의 진료를 보고 있었다.약을 사려고 줄을 선 사람도 꽤 많았다. 이 일대에서는 꽤 잘나가는 한의원으로 보였다.이도현은 느긋하게 사람들 뒤에 줄을 섰다. 그러면서 의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다.한참 관찰하다 보니 이 의사는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대부분 환자들의 병명을 제대로 진단하고 정확한 처방을 내렸다. 아마 몇십 년의 시간을 거쳐 축적한 경험에서 나온 실력일 것이다.한의학은 서의학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 있었다.
그 정은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블랙홀처럼 많은 불을 삼켜버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열기를 뿜어내던 불은 점점 작아졌다. 육각형 건물에서 쏘아져 나오던 불빛도 모두 정 안으로 흡수되었다.이도현을 밀어붙이던 그 태양 그림도 점점 작아지더니 점점 정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그 장면을 본 태양대전 밖의 태양신전 사람들은 멍해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태양왕과 에릭도 마찬가지였다.그들은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그렇게 크지도 않은 정이 태양대전의 커다란 불을 다 흡수해 버렸다니. 게다가 진법의 위력까지 줄어들게 만들다니.“오마이갓... 저건 뭐야! 정이 어떻게 불을 흡수할 수가... 이럴 수가! 이게 설마 동양 전설 속의 그 성물이야?”“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오마이갓... 정말 너무 무서운 녀석이야! 정말 무서워... 도대체 뭐 하는 놈인 거야.”“동양은 대체 뭐 하는 곳이지? 염국은 참 신비로운 나라야... 이런 신비한 힘을 눈앞에서 직접 보다니...”“전하, 이제 어떡하죠? 이러다가는 태양대전이 무너질 겁니다. 태양대전이 무너지면 끝장입니다. 얼른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엥겔스 마법사가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얘기했다.“어떡해! 이제 어떡해! 누가 좀 얘기해 봐. 저 동양인 손에 든 물건이 대체 뭔지! 왜 태양대전의 불을 흡수할 수 있는 건지! 이게 대체 무슨 일인 거야! 설마... 정말 이 세상에 신이 존재하는 거야? 염국의 그 신화들이 정말 실제 이야기인 거야? 말도 안 돼... 이게 어떻게...”태양왕은 정을 들고 있는 이도현의 행동에 겁을 먹고 말았다. 태양왕은 세상에 이렇게 무서운 물건이 존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자그마한 정이 모든 것을 삼킬 수 있다니. 정말 두렵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 정은 결국 블랙홀처럼 태양대전의 모든 불을 다 삼켜버렸다. 그러니 놀랍지 않을 수가 없었다.“전하, 지금은 놀랄 때가 아닙니다. 얼른 수단을 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태양대전이 파괴되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넌 내가 이 태양대전 안에서 죽을 거라고 생각해? 왜 그렇게 자신만만해? 이 태양대전에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해?”이도현이 차갑게 웃으면서 물었다.“오마이갓. 지금 이 멍청한 원숭이가 뭐라는 거야.”태양왕이 과장한 액션으로 웃으면서 말했다.“벌레만도 못한 주제에 우리 태양신전의 태양대전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려는 거야? 오마이갓. 농담도 참. 엥겔스 마법사, 들었어? 이건 내가 올해 들은 가장 웃긴 농담이야. 하하하.”태양왕은 웃으면서 고꾸라질 것만 같았다. 그 표정과 동작은 절대 연기가 아니었다.“전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건 제가 들은 가장 웃긴 농담입니다.”엥겔스 마법사가 옆에서 거들었다. 다만 말투는 약간 어쩔 수 없이 대답하듯 가식적이었다.왜냐하면 엥겔스는 진법에 대해서는 염국인들이 더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진법은 애초에 염국에서 시작되기도 했고 실력과 이해 또한 염국이 가장 뛰어나니까 말이다.그리고 이 태양대전도 사실은 아주 오래전 염국인이 만든 진법이었다.엥겔스 마법사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염국인인 이도현이 그들보다 진법에 능통하여 태양대전을 풀어버릴까 봐서였다. 태양대전이 무너지면 태양신전은 꼼짝없이 죽을 것이다.하지만 이내 엥겔스 마법사가 가장 걱정하는 일이 일어났다.태양대전 속의 이도현이 차갑게 웃으며 얘기했다.“그러면 두 눈 똑바로 뜨고 잘 봐. 내가 너희들이 아끼는 태양대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말을 마친 이도현은 정을 하나 꺼내 들었다. 정은 염국인들의 성물이었다. 왜냐하면 염국인들의 이해에 따르면, 정에는 자연의 섭리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염국에는 정과 얽힌 신화들도 많았다.이도현은 음양탑에서 이 정을 얻은 후 딱 한 번 사용했다. 그것도 연단을 하기 위해서 쓴 것이었다. 그리고 이 정을 받을 때, 이도현은 이 정의 특점을 기억했었다. 이것은 전 세계의 어떠한 불도 집어삼키는 정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지금 이 태양대전의 불을 삼키는 것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이... 이
손가람은 진법에 갇힌 이도현을 보면서 속이 풀리는 것 같았다.밖에 앉은 손가람은 큰 소리로 웃으면서 아까 쌓인 울분을 토해냈다.“어때? 그 자식이 진법에 갇혔나?”손가람이 화를 풀고 있을 때 태양왕이 태양신전의 장로들을 데리고 도착했다.“태양왕 전하를 뵙습니다. 이도현은 이미 진법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손가람이 공경하게 얘기했다.“하하하, 잘됐네. 수고했어, 손 장로. 이 공은 내가 잊지 않으리. 누구든지 이 태양진법 안에 갇히게 되면 저절로 고분고분해질 거야. 하하하.”태양왕이 흥분해서 얘기했다.“존경하는 태양왕 전하. 축하드립니다!”에릭이 얼른 아부하면서 입을 열었다.“하하하, 좋아. 얼른 가서 다른 장로와 마법사들에게 알려라. 진법을 잘 제어하라고. 이 동양인에게 살 희망조차 주지 말라고 말이야!”태양왕이 으스대면서 얘기했다.“알겠습니다, 존경하는 태양왕 전하. 충신인 이 에릭이 지금 당장 명령을 전하겠습니다.”에릭은 태양왕의 개처럼 바로 시키는 일을 하러 갔다.개노릇도 오래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숙련된다. 에릭은 태양왕의 개로 오랜 시간 일하며 이미 이 모든 것에 익숙해졌다.태양왕은 불에 휩싸인 이도현을 보면서 웃음을 지었다.“이도현, 나는 태양신전의 왕이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유감이군. 너를 이곳에 가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일이다. 널 해치고 싶은 건 아니야. 그저 너한테 얘기할 게 있어서 그래. 만약 네가 가만히 있어 준다면 너를 꺼내주지.”진법 안의 이도현은 날아오는 공격들을 피하면서 물었다.“무슨 얘기지? 한 번 들어나 보자.”“그래, 역시 시원시원해서 좋아. 나는 너처럼 단도직입적인 사람이 좋아. 그러니 나도 솔직하게 얘기하겠어. 칠색 동백꽃을 내놔. 그리고 곤륜옥에서 얻은 모든 물건을 다 나한테 내놔! 네가 모든 비책과 보물들을 꺼내놓는다면, 그리고 곤윤옥의 신비한 힘도 꺼내놓는다면 널 살려주도록 하지. 어때?”태양왕이 큰 소리로 물었다.진법 안의 이도현은 불빛을 상대하면서 소리쳤다.“
손가람은 미간을 찌푸리고 진중한 시선으로 이도현을 쳐다보았다. 그는 눈앞의 이도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이도현은 모든 것을 다 알면서 자진하여 태양대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이걸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이도현은 개의치 않고 태양대전 중의 선학신침으로 걸어갔다. 태양대전이 무슨 진법인지 알아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절대적인 실력 앞에서 다른 술수들은 소용없으니까 말이다.테이블 앞에 온 이도현이 바로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붉은색의 선학신침이 놓여있었다. 태양의 빛을 받은 선학신침은 익숙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이도현이 손을 휘저어 선학신침을 손에 넣었다.그리고 그가 선학신침을 갖게 된 그 순간, 육각형 건물의 각 위에서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이윽고 그곳에서 불같은 빛이 하늘로 치솟더니 공중에서 커다란 구 모양의 불을 만들어냈다.그 불은 마치 태양처럼 이글거리며 뜨거웠다.불은 그치지 않고 점점 커갔고 너무 뜨겁고 밝아서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리고 어느새 육각형의 건물은 이 불로 뒤덮여버렸다. 이도현도 그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하지만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용암 같은 비가 하늘에서 내려와 태양 그림 위에 쏟아졌다. 이도현은 빠르게 그 용암들을 다 피해버렸다.용암을 맞은 태양 그림은 갑자기 각성한 것처럼 점점 더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의 힘까지 흡수해 더욱 많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어느덧 건물뿐만이 아니라 건물 주변의 바닥도 불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태양대전은 이 불로 완벽히 감싸져 있었다.쿵.태양 그림에서 불빛이 쏘아 나오더니 이도현을 공격했다.이도현은 또 빠르게 몸을 놀려 피했다. 발밑은 이미 불바다가 되어 이도현은 공중에 떠 있을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태양대전은 이도현에게 쉴 틈도 주지 않았다. 제단에서 또 불빛이 쏘아져 나와 이도현을 공격했다.“젠장...”이도현은 놀라서 욕설을 뱉으며 또 공격을 피했다.하
그리고 태양 그림 중앙에는 테이블이 놓여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상자 하나가 있었다.그 상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에 이도현은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이도현은 바로 알게 되었다. 이건 선학신침의 기운이라고 말이다. 이도현은 선학신침의 기운을 잘 알고 있었다.드디어 찾았구나!이도현은 속으로 기뻐했다.손가람이 이도현에게 태양신전에 선학신침이 있다고 했을 때, 이도현은 믿지 않았다. 그저 본인을 유인해 가려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태양신전에 진짜 선학신침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태양신전에서 이도현에게 던진 미끼가 진짜 미끼여서 다행이었다.함정을 만드는 데 있어서 동양인은, 그중에서도 특히 염국인들은 세상의 인정을 받을 정도로 강했다. 염국인이 만든 함정 앞에서 다른 사람들은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헤실헤실 웃으면서 덫에 걸려들 것이다.하지만 그것도 예전의 일이 되었다.이제는 서양인들이 기술 면에서 발달하여 염국인들을 넘어서게 되었다.그 당시의 염국에는 부패한 관료들이 많았다. 그리고 국왕이 백성을 통치하기 위해 폐관 쇄국을 실행하며 사람들의 사상을 통제했고 발전을 싫어했다. 그래서 어느덧 이런 것들은 미신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도현은 그런 사람들이 웃겼다. 폐관을 실행하여 외부의 것은 배우지 않으려 하지만 또 선조들이 남겨준 지혜는 미신이라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서양인들의 과학기술이 얼마나 발달했던지, 함정과 책략 면에서는 동양인을, 특히 염국인을 이길 수 없었다. 그리고 역사를 되짚어 올라가 보면 서양에서 쓰는 무기들도 원래는 다 동양에서 만든 것이었다.물론 서양인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아니지만, 책략과 함정 면에서는 동양인을 따라올 수 없었다.“이도현 씨, 아마 이도현 씨도 뭔가를 느꼈을 겁니다. 제가 이도현 씨를 속인 게 아니에요!”이도현의 표정을 본 손가람이 웃으면서 얘기했다.“속인 게 아닌지 맞는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 거예요. 원래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정말 못 참겠네요. 이런 비열한 수는 세
“도착입니다. 이도현 씨, 이 앞이 바로 태양신전의 대문입니다.”손가람은 자만하는 이도현을 못 봐줄 정도였다. 다행인 것은 이제 태양신전에 거의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손가람은 인내심이 다 해 이도현에게 주먹을 날렸을지도 모른다.“벌써 도착이라니. 그러면 길을 안내해요. 나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것도 다 꺼내고 덤비세요. 굳이 숨기면서 연기할 필요 없어요.”이도현이 직설적으로 얘기했다.“이도현 씨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태양신전은 그저 이도현 씨와 친구가 되고 싶은 거랍니다. 그래서 이번에 발견한 선학신침을 이도현 씨에게 드리려는 것이고요. 그러니 이렇게 자꾸만 태양신전을 모독하거나 깔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손가람이 약간 화가 난 것처럼 얘기했다.“하하하, 그래요? 연기 좀 그만해요. 힘들지도 않아요? 여기까지 오는 동안 당신은 나한테 화를 7번 냈고 15번이나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그 감정들을 다 억눌렀죠. 불편하지도 않아요? 참을 인 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데. 당신은 도합 21번이나 참았어요. 정말 대단하네요. 다른 사람이었다면 진작 나한테 손을 댔거나 화병으로 죽었을 겁니다.”이도현은 손가람의 연기에 같이 놀아나 줄 생각이 없는 듯 바로 얘기했다.손가람은 그 말을 듣고 놀라서 그대로 굳어버린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도현을 쳐다보았다.손가람은 이도현이 이렇게 무서운 사람인 줄 몰랐다. 여기까지 오면서 이도현은 손가람의 호흡, 느껴지는 기운을 다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소름이 돋아서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였다.손가람은 본인이 오는 길에 화를 몇 번 냈는지, 몇 번이나 살기를 품었는지 몰랐다. 하지만 이도현은 그걸 모두 알아차리고 기억했다.“하하하, 이도현 씨, 오해입니다. 저는 이도현 씨에게 그런 감정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농담도 참. 제가 만약 분노하거나 살기를 가졌다면 그건 이도현 씨를 향한 감정이 아니라 이도현 씨를 위협하는 사람들을 향한 감정일 겁니다.
“설마 태양신전에 잡혀가는 사람인가?”“그럴 리가! 저 이도현이라는 사람, 꽤 대단한 사람 같던데. 손가람 혼자서 이도현을 이길 순 없을 거야!”“그건 모르는 일이지. 손가람도 쉬운 사람은 아니야.”한 사람이 얘기했다.“얼른 소문을 내. 그 동양인이 태양신전의 사람과 같이 태양신전으로 가고 있다고.”“어서... 가서...”...어느새 수많은 사람들이 이도현을 먹잇감 보듯이 지켜보았다. 하지만 손가람의 뒤를 따르는 이도현을 보면서, 아무도 이도현을 건드리지 못했다.태양신전과 척을 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지금 이도현을 건드리는 것은 태양신전의 지위에 도전하는 것과 같았다.태양신전과 사탄 지옥 조직은 성지의 양대세력이다. 두 조직이 양대세력으로 불리는 것은 다른 세력들에 비해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래서 태양신전의 사람들이 이도현을 데리고 가니 다른 사람들은 뭐라 할 수 없이 그저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태양신전으로 향하는 길, 이도현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도현을 지켜보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이도현을 훑어보고 있었다.이도현은 손가람이 속한 조직이 성지에서 영향력이 있는 조직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도현을 가만히 두지 않았을 것이다.이도현은 지금 이 상황이 나름 만족스러웠다. 손가람 덕분에 불필요한 걱정을 덜었기 때문이다.“이도현 씨! 바로 앞이 태양신전입니다. 곧 도착할 수 있어요.”손가람이 뒤를 돌아 이도현을 보면서 얘기했다.손가람의 말투에는 오만함과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래서 이도현은 손가람이 쓸데없이 나댄다고 생각했다.“왜 그렇게 자신만만해하는 거죠?”이도현이 싸늘한 말투로 물으면서 불만을 드러냈다.손가람은 이도현이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줄 몰라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대답을 이어 나갔다.“이도현 씨, 오해입니다. 우리 태양신전은 성지에서 가히 1등이라고 할 수 있는 실력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
“선학신침?”이도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손가람이 선학신침을 알고 있을 줄 몰랐다.“그렇습니다! 바로 선학신침입니다!”손가람은 이도현의 표정이 변한 것을 보고 환한 웃음을 드러냈다.“저는 이도현 씨가 태허산의 제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태허산은 의술에 능하여 죽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죠. 태허산은 또 아주 대단한 침술을 갖고 있는데, 그게 바로 대대로 내려오는 선학신침입니다! 선학신침은 몇 년 동안 보이지 않아 사라진 줄로만 알았지만 마침 태양신전에서 우연히 선학신침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이도현 씨가 성지에 왔다는 것을 알고 찾아온 겁니다. 이도현 씨와 함께 태양신전에 가서 이 신침이 정말 선학신침인지 알아보려고 말입니다.”손가람은 아주 조리 정연하게 얘기했다.사실 손가람도, 이도현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선학신침을 이용해 이도현을 유인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하지만 그런 더러운 본질을 그럴싸한 말로 감싸니 꽤 듣기 좋았다.“그러면 앞장서요.”이도현은 더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길을 떠났다.이도현이 성지에 온 원인이 바로 선학신침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이제 선학신침이 어디 있는지 알았으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상대방이 이도현을 위해 함정을 짜놓았다고 해도 두렵지 않았다.“하하하, 역시 이도현 씨는 말이 잘 통하는군요. 태허산의 제자라서 그런 모양입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십쇼. 전 그저 이도현 씨와 친구가 되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다른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손가람은 반복해서 얘기하며 강조했다.“말 다 했습니까? 얼른 앞장서요!”이도현이 귀찮다는 듯 얘기했다.손가람은 그저 입술을 비죽 내밀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동양인, 특히 염국인들은 예의를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손가람은 예의가 없는 이도현이 불쾌하게 느껴졌다.억지로 가식적인 미소를 짓느라 어느새 얼굴 근육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할 줄 아는 아부란 아부는 다 했지만 이도현은 여전히 그대로였다.그런 이도현을 보면서 손
손 장로는 꽤 오래전에 이곳에 왔었다. 지금은 6, 70대로 보이지만 실제 나이는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 살았다.“당신은 누굽니까.”이도현이 차갑게 물었다.“저는 손가람이라고 합니다. 이도현 씨를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이네요.”손 장로가 대답했다.“손가락?”이도현이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뭔 이런 이상한 이름이 다 있지?’“하하하, 역시 농담도 재밌군요. 제 이름은 손가람입니다. 손 씨에 가자, 람자를 쓰고 있죠.”손가람이 해명했다.하지만 속으로는 예의 없는 이도현을 욕하고 있었다.‘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노인을 상대로 이름으로 놀리는 게 재미있나? 누가 미쳤다고 이름을 손가락이라고 지어! 정말 어이없군.’“당신도 동양인이네요?”이도현이 물었다.“네. 맞습니다. 전 연경시 출신입니다. 하지만 이곳에 온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죠. 지금 그곳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 이도현 씨 같은 훌륭한 고수를 만나서 영광입니다. 젊은 나이에 이런 기능을 익혔으니 정말 자랑스럽네요. 동방에서는 천년에 한 번씩 천재가 나온다고 하더니, 그게 바로 이도현 씨인 것 같습니다!”손가람은 이도현을 칭찬하면서 얘기했다. 원래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손가람은 온화한 얼굴로 웃으면서 이도현과 얘기했다.하지만 이도현한테는 먹히지 않는 것 같았다. 이도현은 그저 차갑게 손가람에게 대답했다.“쓸데없는 말이 많네.”“하하하, 이도현 씨는 말이 적은 편인가 봅니다. 다 같은 출신 사람으로서 타지에서 만난 것도 인연이 아니겠습니까? 저를 그리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손가람은 가볍게 웃으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했다.“난 당신이랑 친하지 않은데 왜 굳이 그래야 하죠? 이곳에 온 목적을 얘기해 봐요!”이도현은 체면을 봐주지 않고 밀어붙였다.왜냐하면 이 시점에 나타난 낯선 사람은 의심스러웠으니까 말이다. 이도현은 손가람에게 불순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곳은 성지다. 사람 사이의 불신이 가득한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