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골 스승의 말에 따르면 교룡은 원래 색에 미친 종족이라고 했다. 이도현은 교룡의 척추를 소유했기에 매번 여자와 근거리에서 접촉할 때면 몸에 이상반응이 생길 거라고도 말했다.그는 이제야 그 이상반응이 어떤 건지 경험하게 되었다.별장을 나온 이도현은 옛날 기억을 되짚어 가며 한 한의원 쪽을 향해 걸어갔다.8년을 떠나 있는 사이 완성은 천지개벽의 변화를 이루어냈지만 대체적인 위치는 기억이 났다.그는 느긋하게 느낌을 따라 걸었다. 한 시간 뒤, 그는 여기저기 알아보면서 드디어 한의원 거리에 도착했다.이곳은 완성에서 한의원이 가장 밀집한 곳이었다.이도현은 이 도시를 설계한 사람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하필 의사들을 한 거리에 집중하게 했을까? 멀리 있는 사람들도 불편하고 의원간의 경쟁도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설계한 건지.이도현은 거리를 둘러보다가 환자가 가장 많은 한 병원으로 들어갔다.의사는 거짓말을 해도 환자들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곳에 사람이 많이 몰렸다는 건 의사의 실력이 아무리 못해도 다른 의원의 의사들보다는 낫다는 것을 설명했다.이도현은 신농관이라는 한의원으로 들어갔다.병원 안에는 온통 약을 보관하는 서랍으로 배치되었는데 각 서랍마다 약재의 명칭이 상세하게 표기되어 있었다.옆에 있는 항아리에서는 약이 끓고 있었다.병원 내부는 진한 한약 냄새가 진동했다.벽에는 많은 상장이 걸려 있었는데 온통 원장의 실력을 찬양하는 상장들이었다.본관에는 한 노인이 책상에 앉아 환자의 진료를 보고 있었다.약을 사려고 줄을 선 사람도 꽤 많았다. 이 일대에서는 꽤 잘나가는 한의원으로 보였다.이도현은 느긋하게 사람들 뒤에 줄을 섰다. 그러면서 의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다.한참 관찰하다 보니 이 의사는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대부분 환자들의 병명을 제대로 진단하고 정확한 처방을 내렸다. 아마 몇십 년의 시간을 거쳐 축적한 경험에서 나온 실력일 것이다.한의학은 서의학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 있었다.
주인장의 싸늘한 태도에도 이도현은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그가 자리를 뜨려는데 한 여자가 휠체어를 밀고 입구로 들어왔다.“좀 비켜주세요. 감사합니다!”이도현이 옆으로 비키자, 여자는 휠체어를 밀고 안으로 들어왔다. 휠체어에는 한 노인이 타고 있었는데 의식은 또렷해 보였으나 안색이 좋지 않았다.이도현이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신농관 관주 장지민은 진지한 표정으로 노인의 맥을 짚었다.잠시 후, 장지민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한의원에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의사가 표정이 좋으면 아무 일 없는 것이고 의사가 미간을 찌푸리면 큰병에 걸린 것이 분명하다! 아니나 다를까, 장지민은 손을 내려놓더니 말했다.“어르신, 상황이 좋지 않네요.”노인은 전혀 슬퍼하는 기색 없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어요. 많은 전문가를 찾아가서 보였지만 속수무책이더군요. 난 괜찮다는데도 애들이 포기를 못해서 따라온 거예요.”장지민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어르신, 저는 실력이 부족해서 이 병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이따가 약을 지어드릴 테니 병증을 조금 완화할 수는 있을 겁니다.”“그래요. 솔직히 말해주세요. 나한테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요?”노인이 물었다.“어르신, 아마 3개월 정도의 시간밖에 안 남은 것 같아요. 이런 말씀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장지민은 정중한 얼굴로 말했다.“3개월이라… 충분하네. 난 이 정도 산 거로 만족한다네.”노인은 죽음 앞에 초연한 태도를 보였다.하지만 그와 함께 온 여자는 눈시울을 붉히며 울먹이고 있었다.“울긴 왜 울어? 사람이 늙으면 병 들고 죽는 게 당연한 이치 아니냐? 울지 말고 이제 돌아가자. 바깥 공기를 좀 마시고 싶구나.”노인은 자애로운 눈빛으로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주었다.여자는 눈물을 닦고 억지 미소를 지으며 장지민에게 고개를 숙인 뒤, 휠체어를 끌고 문밖으로 향했다.옆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이도현은 갑자기 가슴에서 뭉클한 감정이 치솟았
말을 마친 그는 바로 노인의 앞으로 다가갔다.“어르신, 제가 병을 고쳐드릴 수 있습니다. 저를 한번 믿어보시겠습니까?”“어르신, 저 녀석 말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실력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습니까?”“어르신도 자신의 상황을 이미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큰 병원에서도 포기한 병을 저 녀석이 고칠 수 있다면 제 손에 장을 지지겠습니다!”장지민은 다급히 다가와서 노인을 설득했다.조금 전 그가 진찰한 결과를 보면 노인의 간 상태는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상태였다. 간 동맥이 좁아지면서 혈류가 혈관을 막았고 이미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서의학에서는 노령화로 인한 간경화 말기라고도 이야기한다. 이미 이 상태까지 진행되었으면 이식해도 다시 재발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다.만약 이도현이 정말 이 병을 완벽히 치료한다면 그거야 말로 세상이 미쳐돌아간다는 증거인 것이다.처음부터 이도현을 믿지 않았던 여자는 그 말을 듣고 더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당연히 할아버지의 목숨을 가지고 도박할 생각이 없었다.“마음은 감사하지만 됐어요. 할아버지를 당신에게 맡길 수는 없어요.”상대의 단호한 거절에 이도현은 어색한 표정으로 코끝을 매만졌다.현재 그의 의술이 세간에 알려진다면 아마 수많은 중증 환자들이 줄을 서서 치료해달라고 애걸복걸할 텐데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을 당하다니.솔직히 자존심이 상했다.그런데 이때, 잠자코 있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아가, 저 젊은 친구도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자신하는 거겠지. 난 한번 시도해 봐도 좋을 것 같구나. 어차피 3개월 뒤에 죽을 목숨인데 기적에 기대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만약에 완치가 가능하다면 잘된 일 아니냐.”“하지만 할아버지….”“걱정 마. 실패해도 지금보다 상황이 더 악화되겠어?”노인은 손녀의 말을 끊고 이도현에게 말했다.“젊은 친구, 염치 없지만 이 한 목숨 자네에게 부탁해도 되겠나? 성공만 하면 보수는 섭섭지 않게 주리다!”
진짜 고수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법이다.이도현은 태극 침술로 눈 깜빡할 사이에 정확하게 노인의 간경맥을 연결하는 혈자리에 침을 꽂았다.“꽂았어! 저 자식 용기가 대단한데?”“여자를 위해 사람 목숨을 이용하다니!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저러다가 인명 사고라도 나면….”사람들의 술렁이는 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하지만 그들 중에 이도현의 성공을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다들 닥쳐!”갑자기 들려온 근엄한 목소리가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장지민을 바라보았다.장지민은 그런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격앙된 표정으로 이도현에게 물었다.“이거 혹시 태극 침술입니까?”이도현이 오히려 당황하며 그에게 물었다.“태극 침술에 대해 아십니까?”“20년 전에 운이 좋게 한번 본 적이 있지요. 의학 학술 교류회에 참석한 적 있었습니다. 그때는 서의학자들이 한의학자들을 무시할 때였지요. 그때 얼굴에 가면을 쓴 도사 한분이 나타나셔서 태극 침술을 시전하셨습니다. 작은 금침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정확한 혈자리에 침을 놓는 모습은 모두를 놀라게 했지요.”“침을 놓았다 하면 불치병 환자들이 완치가 되어 생기를 회복했습니다. 그야말로 기적이었지요. 그때 그 도사님은 모든 환자를 치료한 뒤,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다시 그분을 뵙지 못한 게 제 평생 유감이 되었지요.”“죽기 전에 그 침술을 다시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네요. 제가 고수를 못 알아보고 아까는 실례가 많았습니다.”말을 마친 장지민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저를 제자로 받아주시겠습니까? 저는 평생 한의학을 위해 인생을 바쳤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게 제 기쁨입니다. 제자로 받아주세요!”장지민의 모습은 현장에 있던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60세가 넘은 한의사가 20대 청년 앞에 무릎을 꿇고 제자로 받아달라니!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장면이었다.장지민은 완성, 나아가서 염국에서도 꽤 유명한 한의사였고 사람들은 그를 신이 내린 손이라고 불렀다. 염국 전체를 통틀어도 그보
장지민은 신성한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두 손으로 받아 다급히 노트를 펼쳤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 떠지더니 감격에 겨워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이 노트에 기재된 처방과 약학은 그가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차원의 한의학이었다.이 노트만 있다면 자신의 의술은 지금보다 더 높은 경지까지 돌파할 수 있다고 그는 굳게 믿었다.두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시간이 다 되었다. 이도현이 허공에 손을 뻗자 노인의 혈자리에 꽂혔던 침들이 다시 그의 손으로 돌아왔다.침을 제거하자 여자는 다급히 다가가서 노인의 상태를 살폈다.“할아버지! 괜찮아요? 좀 어때요?”노인의 얼굴에는 혈색이 돌아오고 표정도 한결 편해졌다.“아주 좋아. 몸이 많이 가벼워지고 숨을 쉬는 것도 예전처럼 힘들지 않아. 근육통도 사라지고 온몸에 힘이 차고 넘치는 것 같아.”말을 마친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서려 힘을 주었다.그는 거짓말처럼 자리에서 일어서서 부축이 없이 신농관 안을 빙 돌았다.예전에는 간경화 때문에 다리가 퉁퉁 부어 걷기도 힘들던 노인은 마치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육안으로 봐도 노인의 상태는 많이 호전된 것처럼 보였다.“젊은 친구, 정말 고마워. 난 소창열이라고 하네. 앞으로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주저 말고 나한테 연락하게. 내가 이래 봬도 염국에서는 힘 좀 쓸 수 있거든.”노인이 이도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노인이 이름을 밝히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바뀌었다.소창열이라는 이름은 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소 장군님…?”“맞아! 저분이 바로 진북 장군 소창열 장군님이셔! 어쩐지 얼굴이 낯이 익다 했는데 장군님이셨어!”모두가 경외에 찬 시선으로 소창열을 바라보았다.진북 장군 소창열, 염국을 위해 위대한 공훈을 세운 노장군이었다. 오랜 시간 염국의 북부를 지키며 수많은 적들을 물리친 불후의 명장!노인은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는 위대한 인물이었다.이도훈은 비록 속세를 8년
“저기… 어르신, 일단 앉으세요. 병이 다 나은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너무 흥분하시면 안 좋아요.”이도현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노인에게 자리를 권했다.그는 조금씩 이 자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할아버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소유정도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삐죽였다.사람들이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장지민이 약 보따리를 들고 나오더니 공손히 말했다.“사부님, 요구한 약재는 여기 넣었습니다.”약재를 확인한 이도현은 흐뭇한 표정으로 장지민을 바라보았다.‘눈치는 빠르다니까!’이 약재만 있으면 한지음의 막힌 혈관을 치료할 수 있었다.약재를 확인한 이도현은 소창열에게 작별인사를 한 뒤, 도망치듯 신농관을 떠났다.여기 계속 있다가는 소창열 손녀와 약혼식 날짜라도 잡힐 것 같았다.‘남자는 자기를 보호할 줄 알아야 돼!’신농관을 나온 이도현은 곧장 옛저택으로 향했다.어제 마당에 널브러져 있던 시체는 모두 사라지고 바닥에 흥건하던 핏자국도 사라졌다. 결전 중에 갈라진 벽과 땅이 파괴된 자국들만 간간이 남아 있었다.이도현은 가족의 위패를 챙겨 재빨리 저택을 나왔다.주변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저택을 나온 뒤에도 그 시선은 집요하게 따라붙었다.이도현은 속으로 냉소를 지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굳이 붙잡고 물어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것 같았다.어차피 피해갈 수 없는 일이라면 부딪히는 게 나았다.별장으로 돌아와 보니 저택에는 젊고 예쁜 여자들이 메이드 복장을 하고 집안을 청소하고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저 굶주린 시선들을 보고 있자니 이도현은 머리털이 곤두섰다.굳이 묻지 않아도 신연주가 데려온 고용인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저 차림새는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누님 머리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음란마귀들이 살고 있는 거야?“어때? 이 선배가 직접 선별한 고용인들이야. 괜찮지?”이도현을 본 신연주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다가오며 물었다.이도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선배님,
메이드복을 입은 여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도련님을 외치자 이도현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들어도 절대 적응할 수 없는 호칭이었다.마치 테마 업소에 들어갔는데 업소녀들이 손님을 부르는 호칭 같았다.‘나와는 절대 안 어울리는 호칭이야!’“멍청한 자식!”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연주가 입을 틀어막으며 꺼이꺼이 웃음을 터뜨렸다.“가자! 식사 이미 준비됐어. 밥부터 먹자. 그런데 손에 그건 뭐야?”신연주는 그제야 이도현의 손에 든 보따리를 발견하고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한지음 씨 치료에 필요한 약재들이에요.”이도현은 보따리를 테이블에 놓으며 덤덤히 말했다.“이런. 그래도 약혼녀라고 챙기는 걸 보니 기특하네? 여자를 아껴줄 줄도 알고. 철 들었어.”신연주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도현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반박했다.“제발 그 약혼녀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요? 상의할 일이 있어요.”“무슨 일인데?”신연주는 금세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부모님과 여동생 위패를 여기 모시고 싶은데 괜찮을까요?”이도현이 위패를 꺼내며 그녀에게 말했다.“상의할 필요도 없지. 어차피 널 위해 구매한 저택이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신연주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도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장 작은 방으로 가서 위패를 꺼내 놓고 향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부모님 위패에 절을 올린 뒤, 밖으로 나왔다.밖으로 나오자 향긋한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신연주는 벌써 식탁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한지음과 이설희는 외출하고 돌아오지 않았기에 식탁에는 둘만 남았다.“후배, 빨리 와서 밥 먹어!”신연주가 그를 재촉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마쳤다. 대부분은 신연주가 질문하고 이도현이 대답하는 식이었다.가장 많이 대화를 나눈 건 이도현의 산에서의 생활과 스승님에 관한것이였다.이도현은 소통에 크게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성격 급하고 곤란한 질문만
산 아래로 내려간 신연주는 대문 앞에 뒷짐을 지고 서 있는 한 청년을 발견했다.남자는 그녀를 보자마자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마녀, 오랜만이야!”“왕주영? 새끼 독수리 이 녀석 살아 있었구나? 네가 어쩐 일이야?”신연주는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상대를 노려보았다.“알면서 왜 물어? 서북후 피살 사건 때문에 왔지. 그 녀석을 나한테 넘기면 넌 건드리지 않을게.”왕주영이 웃으며 말했다.“그럴 수는 없지.”신연주는 단호하게 거절했다.자신이 살기 위해 후배의 목숨을 내놓는 일은 할 수 없었다. 이도현에게 해를 가하는 자는 그게 누구라도 용서할 수 없었다.“마녀, 난 한가하게 의논이나 하려고 여기 온 거 아니야. 성존 사부님의 명령이다. 너와 녀석을 같이 데려오라고 하셨지만 너까지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스승님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너한테 기회를 준 거라고. 착각하지 마.”왕주영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독수리 영감이 선 넘었네. 이건 우리 태허산의 일이다. 너희는 간섭할 자격이 없어. 서북후 그 녀석이 죽음을 자초한 거야. 놈이 먼저 내 후배 녀석을 건드렸다고.”신연주도 지지 않고 차가운 기세로 응수했다.“완강하네. 그럼 어쩔 수 없지. 나중에 날 원망하지나 마!”왕주영이 분노하며 으르렁거렸다.“창영 어르신, 노사 어르신, 저 여자를 제압하세요!”왕주영의 지시가 떨어지자 뒤에 있던 머리가 히끗한 노인 두 명이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며 앞으로 나섰다.그들은 왕주영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신연주에게 다가갔다.두 사람을 알아본 신연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신영성존을 모시는 그 창영과 노사?”“그렇다!”한 중년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순순히 투항하면 목숨은 살려주지.”다른 남자가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들며 한마디 덧붙였다.그들은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된 것처럼 가소로운 눈빛으로 신연주를 바라보았다.“고작 둘이서 나를 무릎 꿇리려고? 독수리 영감이 수족을 보냈다는 건 그만큼 날 존중한다는
이도현은 이 가족의 감사 인사를 마다하고는 남자에게 앞으로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신앙이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너무 지나치지 않는 것이 좋다.어떤 일이든 도가 지나치면 본연의 가치를 잃기도 하는데 좋은 마음에서 출발한 일도 나쁜 일로 만들 수 있었다.특히 이번 일처럼, 만일 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면 그것은 신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해치는 것이었다.이튿날 아침이 되자마자 남자는 사람을 불러 아내와 아이를 들것에 싣고 산에서 내려왔다. 떠날 때 그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절의 스님을 쳐다보았다.그 표정은 마치 앞으로는 이곳에 두 번 다시 발을 들이지 않을 것이고, 돈을 어디에 쓰든 절대 너희 같은 양심 없는 가짜 스님에게 바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이도현도 떠나갔다. 그는 재물을 탐내고 하마터면 사람까지 죽일 뻔한 이곳에 1분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머무르다가 사람을 죽이고 싶어질까 두려웠다.물론 그는 아무것도 폭로하지 않았다. 마치 하늘과 땅에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있는 것처럼, 이 세상에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기 마련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천지의 도리를 이루었다.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나쁜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만약 모두가 좋은 사람이라면 이 세상은 완전하지 못할 것이었다.만물이 존재하는 데는 그만한 도리가 있는 법이고, 하물며 나쁜 사람은 그들보다 한층 더 나쁜 사람에게 응징받을 것이기에 이도현은 쓸데없는 일에 참견할 필요가 없었다.게다가 이도현이 보기에는 이 스님들이 구제 불능한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어젯밤 이도현이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면 임산부는 결국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었다. 게다가 스님이 이 모든 것을 초래한 것도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결국은 여자의 남편이 너무 미신을 믿어서 출산을 앞둔 아내를 데리고 부처님께 예배드리러 왔다가 이런 일이 생겼던 것이었다.누가 옳은지 그른지, 또 누구의 책임인지 분명히 따질 수 없었다. 다행
이게 그들이 말한 보호란 말인가! 보호해 준다고 해놓고, 아내는 이 절에서 죽을 뻔했다니.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남자는 정말 후회스러웠다. 과거의 자신이 그저 미련한 바보 같았다. 자신의 월급 절반을 절에 바치고 돈을 그렇게 냈는데, 결과가 이 모양이었다. 바로 그때, 막 정신을 차린 여자가 배를 움켜잡고 비명을 질렀다. “여보. 나 배가 너무 아파. 아마 곧 낳을 것 같아. 여보 나 좀 살려줘.” 이도현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휴. 하느님! 당신이 나를 이렇게 시험에 들게 하시나요!” 그는 미칠 것만 같았다. 의술은 자신 있지만, 출산 경험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그는 남자다. 그러나 여기에서 의사라곤 그 혼자뿐이었다. 발가락으로 생각해도 이 일은 그의 몫이었다. “세상에 대체 어떻게 이 타이밍에 애를 낳겠다는 거야? 조금만 더 참아서 내일 병원에서 낳으면 안 되나? 이 시점에서 출산이라니, 너무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거 아니야?” 이도현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건 단순한 치료가 아니다. 그는 해본 적도 없는 출산을 도와야 했다. “신의여! 제발 제 아내를 구해주세요! 그녀가 곧 아이를 낳아요!” 남자는 이도현 앞에 달려와 애원했다. “어서 뜨거운 물을 다시 준비해라. 정말 너희 집안에 큰 빚을 져서 갚는 것 같은 기분이다! 너는 남고 나머지는 다 나가라!” 이도현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네.”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급히 방을 나갔고, 겁먹은 동생만 남았다. “뭐 하려고 멀뚱히 서 있어! 얼른 산모의 바지를 내려! 안 내리면 입으로 애를 낳게 하려는 거야? 아이고! 너도 여자이면서 아무것도 모르냐?” 이도현은 짜증을 내며 그녀를 나무랐다. 당황한 여자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언니의 바지를 내렸다.그 후 이도현의 지시에 따라 침대 시트로 여인의 하체를 가렸다. 그는 여인에게 침을 놓으며 기를 돌게 했다. 정신없이 손을 움직인 지 약 30분
어떤 것들은 정말 믿을 수밖에 없다. 특히 여러 번 그런 경험을 한 이도현은 지금은 깊이 믿게 되었다. 이런 것들은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다행히 이도현은 얼마 전 주씨의 아내와 그의 장인과 관련된 일을 겪고 나서, 미리 대비해 몇 가지 부적을 더 준비해 두었다. 음양탑에 보관해 두면 급하게 필요할 때 주사와 황지를 찾아다녀야 했다. 주사는 약국이나 특수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이 집에 비축해 둘 법한 물건이다. 그러니 대비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지금처럼 바로 쓸 수 있게 말이다. 이도현은 임산부의 동생을 돌려세우고 그녀를 방에서 잠시 나가게 한 후, 황색 부적 한 장을 꺼내 임산부의 몸에 대고 몇 번 그리며 주문을 중얼거렸다. 임산부의 기운이 변하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지자, 그는 비로소 멈췄다. 이 과정을 거친 그는 상당히 지쳤다. 몇십 분 동안 정신과 체력이 크게 소모되어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제 언니는 어떤가요? 왜 아직 깨어나지 않는 거죠?” 여동생은 이도현의 치료가 끝나자 조급히 물었다. “나는 의사이지, 신선이 아니야. 모든 일에는 과정이 있는 법이야. 가서 그녀의 남편을 불러 몸을 따뜻한 물로 닦아 주게 해.” 이도현은 피곤한 얼굴로 답했다. 그의 의술은 뛰어났지만, 이 여인의 상태는 이미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것은 억지로 생명을 구하는 것이었고, 마치 염라대왕과 생명을 놓고 다투는 것과 같았다. 만약 그렇게 빨리 효과가 난다면, 그는 진정 신선이 된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여동생은 무언가 할 말이 있었지만, 방금 이도현이 보인 위엄을 떠올리며 입을 다물고 언니의 남편을 불러왔다. 두 사람은 이도현의 지시에 따라 여인의 몸을 따뜻한 물로 닦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 덕분에 여인의 미약했던 숨소리가 점차 강해지더니, 마침내 여인이 신음하며 눈을 떴다. “살았다! 내 아내가 살아났어. 그녀가 죽지 않았어.” 남자의 격한 말에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
곧 이도현의 차가운 시선이 절 안의 스님들에게 향했다. 그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사람을 살리는 동안 방해라도 한다면, 즉시 지옥으로 보내주겠다!”“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다. 너희들이 듣든 말든 상관없지만, 감히 방해하려 한다면, 그 순간 너희의 마지막이 될 거다!”이도현은 말을 마치며 손을 휘저어 은침 하나를 던졌다. 은침은 대전 앞에 서 있는 돌사자를 명중했다.쿵!큰 소리와 함께, 거대한 돌사자가 순식간에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이 광경을 본 절의 스님들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다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방금까지 하고 있던 생각들은 한순간에 머리 속에서 사라지고, 마치 귀신을 본 듯한 얼굴로 이도현을 바라보며 뒤로 물러섰다.이 정도로 강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작은 침 하나를 사용했을 뿐인데 돌사자가 산산이 부서져 버리다니, 이게 그들의 몸에 닿기라도 한다면 무사할 리 없었다.아무리 그들이 뚱뚱하다 해도 이런 강한 힘을 버틸 수는 없었다.“뭘 멍하니 서 있느냐! 빨리 방을 찾아서 이 사람을 안으로 옮겨!” 이도현은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이도현의 위압적인 분위기 아래, 스님 몇 명이 거의 숨이 끊어질 듯한 여인을 한 방으로 옮겨놓았다.“모두 나가라! 그리고 따뜻한 물을 준비해라. 내 허락 없이 누구도 들어오면 안 돼!”“너는 따라 들어와라!” 이도현은 사람들 가운데 있는 한 여인을 가리켰다. 아마도 이 부부의 친척일 터였다.“저요?” 여인은 자신을 가리키며 놀란 듯 물었다.“들어와! 내가 하는 말 잘 듣고 따라 해! 산모와 어떤 사이냐?” 이도현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그녀는 제 언니예요.” 여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방금 돌사자를 산산조각 내는 이도현의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려 몸을 떨고 있었다.대답을 들은 이도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여인을 한 번 더 보고, 남편을 보며 더욱 할 말을 잃었다.아내가 이 지경인데,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아내와 처제를 데리고 산속으로 오다니, 대체
“스님. 제 아내는 아직 죽지 않았어요! 심장이 뛰고 있어요! 제발 그녀를 살려주세요...”남자는 거의 무너질 듯한 목소리로 떨며 외쳤다.보아하니, 아내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왜 이 사람은 이런 스님들을 믿는 걸까? 그리고 아내가 이렇게 배가 부른데, 병원이 아닌 이 산으로 온 이유는 뭘까?요즘 같은 시대에 아이를 낳으면서 병원에 안 가는 경우가 있을까? 산간 마을이라고 해도 최소한 마을 의사나 경험 많은 산파나 어르신을 부르기라도 할 것이다.이 남자는 참으로 용감한 건지 무모한 건지, 아내를 데리고 이 깊은 산속에 와서 아이를 낳으려 하다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걸까.“아미타불! 시주님, 이 여 시주는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음을 편히 하세요. 이번 생의 죄업은 이미 갚았고, 업보도 끝났으니, 다음 생엔 반드시 큰 부귀와 건강을 누릴 것입니다!”“시주님, 이제 길을 비켜주세요. 이 썩은 껍데기를 태워버리게 해주세요. 아미타불, 꽃이 피고 지고, 사람이 나고 죽고,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생로병사는 모두 정해진 법입니다. 이 모두가 전생의 업이고 현세의 결과입니다. 시주님, 왜 그리 집착하십니까?”스님은 두 손을 합장하고 눈을 감고선 진지한 표정으로 계속 중얼거렸다. 이를 본 이도현은 속이 끓어올랐다. 대체 이게 무슨 허튼소리인가.스님의 신호를 받고, 젊고 힘센 스님 몇 명이 무릎을 꿇고 울고 있는 남자를 억지로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여인을 다른 곳으로 옮겨 불태우려는 참이었다.이쯤 되자, 이도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이건 두 생명이 달린 일인데, 이렇게 두고 볼 수는 없었다.“멈춰!” 이도현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치며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단번에 여인을 태우려는 스님들을 발로 차며 막아섰다.“뭐 하는 거에요!” 여인을 태우려던 스님이 분노하며 소리쳤다.“뭐 하는 거냐고? 사람을 구하려는 거지. 저 여인은 아직 죽지 않았는데도 네가 사람을 태우려 하니, 정말 출가한 사람 맞는 거냐? 출가한 자는 자비를
이도현의 진심 어린 마음과 성의 가득한 기부금 덕에 뚱뚱한 스님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띠었다. “아미타불! 시주님도 신앙심이 깊고 지혜의 뿌리를 가진 분이시군요!” 예기치 않은 큰돈을 받은 뚱뚱한 스님은 한층 더 자비로워진 말투로 말했다.“혜명아! 이 시주님을 위해 방 하나를 깨끗이 청소해 드리거라! 부처님의 자비는 만인을 구원하니, 고통받는 이를 외면할 수 없다, 아미타불...” 이 뚱뚱한 스님은 매우 자비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만 듣자면 훌륭한 고승 같았지만, 비싼 차를 타고 다니는지는 알 수 없었다.그때, 모여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갑자기 외쳤다. “안 되겠어요! 빨리 응급 전화를 걸어야 해요! 이 아가씨는 지금 심장 박동이 거의 없고, 호흡도 많이 약해졌어요. 이러다 목숨이 위태로워질 거예요!” “스님!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제 아내가 대체 어떻게 된 거죠? 아내를 살릴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왜 이렇게 된 겁니까! 제발 제 아내를 살려주세요!” “아미타불. 시주님! 빈승이 보니 아내의 뱃속에 있는 태아가 업장이 깊어 부처님께서도 구제할 수 없음을 아뢰오니, 마음을 추스르세요.” 이 스님이 내뱉은 말은 이도현을 놀라게 하였다. 이게 대체 무슨 시대인데 이런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니, 이 사찰은 역시 정통 스님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요! 처음에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잖아요. 전에 아내와 함께 이곳에 와서 향을 피우며 기도했을 때, 당신들은 제 아내 뱃속의 아이가 문곡성의 환생이라 앞으로 부귀영화를 누릴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나요?”“또한 우리가 진심으로 부처님께 기도하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마다 향을 피우러 오면 부처님께서도 우리 아이를 보호해 주어서 평안히 태어나고 성장하게 해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지금 와서 이러시는 거죠?”이도현은 이 남자의 말을 듣고 어이없었다. 이런 시대에 아직도 이런 말을 믿는 사람이 있다니, 문곡성 환생이라니. 이 사기꾼 스님 이런
“소령사!”이것이 이 사찰의 이름이었다. 규모로 보아 크지 않은 사찰이었지만, 입구의 문은 꽤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문만 보더라도 이 사찰의 재정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돈이 없다면 이렇게 화려한 문을 짓지 못했을 것이다.“안에 있는 이들도 술과 고기를 먹는 스님들은 아니겠지?”이도현은 속으로 생각했다.아마 대학 시절, 몇몇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부유하고 살찐 스님들이 고급 차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본 영향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그는 부유한 자들에 대한 반감이 있었는데 이것은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는 스님들에게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웠다.그래서 그의 마음속에 스님들은 늘 좋지 않은 인물로 각인되어 있었다.그렇기에 속으로 살찐 스님을 보자마자 "좋은 사람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자동으로 떠올랐다.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 사찰 안에서 갑자기 여자의 비명이 들려왔다.“아!”“이런!”그 소리를 듣는 순간, 이도현은 깜짝 놀랐다. 그 비명은 그의 머릿속에 불길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민간 여자를 납치한 건가? 음탕한 도적들인가?”이런 단어들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갔다. 상상 속에서 뚱뚱하고 음탕한 웃음을 짓는 스님이 벌거벗은 채 한 공포에 빠진 여성을 앞에 두고 그녀에게 다가가는 장면이 그려졌다.“이런 빌어먹을 것들! 그 여자를 놓아라!”악에 받쳐 이도현은 소리쳤고, 사찰의 문을 단숨에 발로 차 열어젖히며 분노에 찬 채 뛰어 들어갔다.그는 한 명의 영웅이 되어 위기에 있는 미녀를 구해내고자 했다!그러나 그가 안으로 뛰어든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멍해지고 말았다.사찰은 정말로 크지 않았다. 정문 맞은편에는 부처님을 모신 대전이 있었고, 양쪽에는 작은 방과 자그마한 뒤뜰이 있었다.그리고 대전의 한쪽에는 몇 명의 뚱뚱한 스님과 다른 사람들이 둘러서 있었는데, 틈 사이로 보니 그들이 한 여성을 둘러싸고 있었다. 여자는 바닥에 누워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이도현은 깜짝 놀라며 급하게 멈춰 섰다. 조금만 더 나아갔다면 뚱뚱
이런 깨달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에 타인에게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이었다. 같은 사물이라도 사람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게 되고, 같은 사람이라도 시기에 따라 다르게 보게 된다.이것이 도가에서 흔히 말하는 산을 볼 때 산이 아니고, 물을 볼 때 물이 아니며, 마침내 산은 산이고 물은 물로 보인다는 경지다. 요컨대 이건 아주 오묘한 개념으로, 스스로 깨달아야 하며 명확히 설명하기는 어렵다.이도현은 길을 따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이동했다. 아침노을과 하얀 이슬, 저녁의 노을과 산바람, 둥지로 돌아오는 피곤한 새, 풀 속에 울리는 풀 벌레 소리, 하늘을 유유히 떠다니는 구름.이 모든 것이 이도현에게 아주 특별하게 다가왔다. 낮에는 초목 사이를 거닐고, 밤에는 큰 바위 위에서 잠을 청했다. 모든 것이 마치 생명력이 깃든 듯했다. 귀 기울여 듣고 있으면, 그들이 자신들의 세계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이도현은 걸음에 걸음을 더하다가, 어느덧 산 위에 도착했다. 밤의 산은 참으로 고요했지만, 산 정상에는 몇 개의 등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산 정상으로 향했다. 이 깊은 산속에 어떻게 불빛이 있을 수 있을까? 혹시 누군가 살고 있는 걸까?이도현은 지금처럼 물욕이 넘치는 세상에서 산으로 들어와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속담에 “산을 보고 달리다 말 한 마리가 죽는다”는 말이 있듯이, 눈에 보이는 불빛이 그리 멀지 않아 보였지만, 한참을 걸어야만 닿을 것 같았다.그는 한 시간이 넘어서야 불빛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목적지에 도착한 이도현은 그곳이 민가가 아닌 사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사찰이면 이해가 되었다. 산속에 사는 사람은 없을 수도 있지만, 사찰이 산에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게다가 요즘 스님들은 현대화되었고, 대부분 큰돈을 가지고 있어 사찰도 화려해지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최대 사찰인 소림사 주지는 나올 때 수십억 원짜리 고급 차를 타고 나온다는 소문이 있다.예전에는 돈
이와 같은 일이 영강국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이도현과 갈등이 있었던 다른 서방 국가들에서도 거의 영강국과 동일한 결정을 내렸다.이들 국가의 국왕들은 각국에서 논의를 거친 후, 서로 만났다. 그리하여 몇몇 국가가 연합하여 염황에게 공동으로 비난서를 보냈다.이들의 태도는 매우 강경했다. 비난서에는 이도현의 수많은 죄악이 기록되어 있었으며, 그들의 말에 따르면 이도현은 용서받을 수 없는 악의 화신이었다. 그의 존재는 이미 세상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으며, 반드시 제거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또한 이도현이 염국 출신이므로 염황에게 막대한 책임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염황이 이도현을 처형하지 않으면, 그들은 세계 평화를 위협한 죄목으로 연합해 염국에 전쟁을 선포해 멸망시키겠다고 위협했다.하지만 그리 놀랄 것은 없었다. 영강국은 이런 일을 자주 해왔기 때문에 영강국 국왕은 그저 큰소리만 치는 개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지만, 실상은 별것 없었다.그를 달래면 달랠수록 더욱 오만해지고 점점 더 자신이 강하다고 착각하며 위세를 떨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그를 무시하고 그와 맞서면 그는 곧바로 자기의 꼬리를 내리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이런 상대에게 맞설 때는 단호한 태도로 대응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한 방 크게 때려 주어 그의 이빨을 부러뜨리면, 이내 겁에 질려 순한 강아지가 될 것이다.염황은 이런 영강국의 행태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비난서를 받자마자 염황은 읽어보지도 않고 바로 찢어버렸다. 그러고는 싸우고 싶으면 끝까지 상대해 주겠다고 말했다. 염황의 이 강경한 발언에 영강국 국왕과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은 모두 어리둥절했다. 염황의 이런 대응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태도였다. 과거에는 염국이 이런 상황에서 그냥 비난을 받아내는 데에 그쳤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강하게 맞서니, 그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해졌다.정말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걸까? 그들도 사실 감히 나서지 못했다.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