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말을 말아야지! 원래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일수록 외로운 법!이도현은 이런 생각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후배야, 산을 내려왔으면 산 아래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게 당연해. 할 일을 찾아서 하지 않으면 많이 따분할 거야. 너도 돈을 벌어야지. 이 세상은 돈이 없으면 안 돌아가는 세상이야.”“하고 싶은 게 뭔지 잘 생각해 봐. 이 선배가 다 도와줄게!”신연주가 웃으며 말했다.이도현은 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의미마저 잃게 된다.비록 돈이 궁한 것도 아니고 사부가 준 카드만으로 평생 일을 안 하고 먹고 살 수는 있지만 그래도 뭔가 할 일을 찾아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선배, 난 무공 제외하면 별로 아는 게 없어요. 의술도 조금 하지만 다른 건 아무것도 몰라요. 예전에 대학은 나왔지만 8년 동안 산에서 살면서 이미 현실 사회와 멀어져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이도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남들이 취직하고 스펙을 쌓고 있을 때 8년을 산에서 보냈으니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괜찮아. 네가 할 줄 아는 걸 다른 사람은 못 하니까. 작은 진료소 하나 차리는 건 어때? 그러면 시간도 자유롭고 네 성격이랑도 잘 어울릴 것 같아.”신연주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그건 나중에 얘기해요. 도착했네요.”이도현은 애써 화제를 돌렸다.진료소를 차리기 싫은 건 아니지만 작은 진료소에 얽매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는 아직 세상을 더 돌아보고 싶었다. 예전에는 그럴 능력도 없고 기회도 없었지만 지금은 충족한 돈도 있고 자신을 지킬 무공도 있으니 한곳에만 머물러 있기는 아쉬웠다.여자에 미친 그의 스승마저 산을 내려오기 전에 그에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수련에도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가자. 이따가 일꾼을 고용해서 별장 내부를 청소해야겠어. 후배 넌 마음껏 즐겨. 지음이 병만 치료하면 이 선배가 중매를 서줄게.
색골 스승의 말에 따르면 교룡은 원래 색에 미친 종족이라고 했다. 이도현은 교룡의 척추를 소유했기에 매번 여자와 근거리에서 접촉할 때면 몸에 이상반응이 생길 거라고도 말했다.그는 이제야 그 이상반응이 어떤 건지 경험하게 되었다.별장을 나온 이도현은 옛날 기억을 되짚어 가며 한 한의원 쪽을 향해 걸어갔다.8년을 떠나 있는 사이 완성은 천지개벽의 변화를 이루어냈지만 대체적인 위치는 기억이 났다.그는 느긋하게 느낌을 따라 걸었다. 한 시간 뒤, 그는 여기저기 알아보면서 드디어 한의원 거리에 도착했다.이곳은 완성에서 한의원이 가장 밀집한 곳이었다.이도현은 이 도시를 설계한 사람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하필 의사들을 한 거리에 집중하게 했을까? 멀리 있는 사람들도 불편하고 의원간의 경쟁도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설계한 건지.이도현은 거리를 둘러보다가 환자가 가장 많은 한 병원으로 들어갔다.의사는 거짓말을 해도 환자들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곳에 사람이 많이 몰렸다는 건 의사의 실력이 아무리 못해도 다른 의원의 의사들보다는 낫다는 것을 설명했다.이도현은 신농관이라는 한의원으로 들어갔다.병원 안에는 온통 약을 보관하는 서랍으로 배치되었는데 각 서랍마다 약재의 명칭이 상세하게 표기되어 있었다.옆에 있는 항아리에서는 약이 끓고 있었다.병원 내부는 진한 한약 냄새가 진동했다.벽에는 많은 상장이 걸려 있었는데 온통 원장의 실력을 찬양하는 상장들이었다.본관에는 한 노인이 책상에 앉아 환자의 진료를 보고 있었다.약을 사려고 줄을 선 사람도 꽤 많았다. 이 일대에서는 꽤 잘나가는 한의원으로 보였다.이도현은 느긋하게 사람들 뒤에 줄을 섰다. 그러면서 의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다.한참 관찰하다 보니 이 의사는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대부분 환자들의 병명을 제대로 진단하고 정확한 처방을 내렸다. 아마 몇십 년의 시간을 거쳐 축적한 경험에서 나온 실력일 것이다.한의학은 서의학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 있었다.
주인장의 싸늘한 태도에도 이도현은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그가 자리를 뜨려는데 한 여자가 휠체어를 밀고 입구로 들어왔다.“좀 비켜주세요. 감사합니다!”이도현이 옆으로 비키자, 여자는 휠체어를 밀고 안으로 들어왔다. 휠체어에는 한 노인이 타고 있었는데 의식은 또렷해 보였으나 안색이 좋지 않았다.이도현이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신농관 관주 장지민은 진지한 표정으로 노인의 맥을 짚었다.잠시 후, 장지민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한의원에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의사가 표정이 좋으면 아무 일 없는 것이고 의사가 미간을 찌푸리면 큰병에 걸린 것이 분명하다! 아니나 다를까, 장지민은 손을 내려놓더니 말했다.“어르신, 상황이 좋지 않네요.”노인은 전혀 슬퍼하는 기색 없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어요. 많은 전문가를 찾아가서 보였지만 속수무책이더군요. 난 괜찮다는데도 애들이 포기를 못해서 따라온 거예요.”장지민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어르신, 저는 실력이 부족해서 이 병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이따가 약을 지어드릴 테니 병증을 조금 완화할 수는 있을 겁니다.”“그래요. 솔직히 말해주세요. 나한테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요?”노인이 물었다.“어르신, 아마 3개월 정도의 시간밖에 안 남은 것 같아요. 이런 말씀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장지민은 정중한 얼굴로 말했다.“3개월이라… 충분하네. 난 이 정도 산 거로 만족한다네.”노인은 죽음 앞에 초연한 태도를 보였다.하지만 그와 함께 온 여자는 눈시울을 붉히며 울먹이고 있었다.“울긴 왜 울어? 사람이 늙으면 병 들고 죽는 게 당연한 이치 아니냐? 울지 말고 이제 돌아가자. 바깥 공기를 좀 마시고 싶구나.”노인은 자애로운 눈빛으로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주었다.여자는 눈물을 닦고 억지 미소를 지으며 장지민에게 고개를 숙인 뒤, 휠체어를 끌고 문밖으로 향했다.옆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이도현은 갑자기 가슴에서 뭉클한 감정이 치솟았
말을 마친 그는 바로 노인의 앞으로 다가갔다.“어르신, 제가 병을 고쳐드릴 수 있습니다. 저를 한번 믿어보시겠습니까?”“어르신, 저 녀석 말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실력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습니까?”“어르신도 자신의 상황을 이미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큰 병원에서도 포기한 병을 저 녀석이 고칠 수 있다면 제 손에 장을 지지겠습니다!”장지민은 다급히 다가와서 노인을 설득했다.조금 전 그가 진찰한 결과를 보면 노인의 간 상태는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상태였다. 간 동맥이 좁아지면서 혈류가 혈관을 막았고 이미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서의학에서는 노령화로 인한 간경화 말기라고도 이야기한다. 이미 이 상태까지 진행되었으면 이식해도 다시 재발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다.만약 이도현이 정말 이 병을 완벽히 치료한다면 그거야 말로 세상이 미쳐돌아간다는 증거인 것이다.처음부터 이도현을 믿지 않았던 여자는 그 말을 듣고 더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당연히 할아버지의 목숨을 가지고 도박할 생각이 없었다.“마음은 감사하지만 됐어요. 할아버지를 당신에게 맡길 수는 없어요.”상대의 단호한 거절에 이도현은 어색한 표정으로 코끝을 매만졌다.현재 그의 의술이 세간에 알려진다면 아마 수많은 중증 환자들이 줄을 서서 치료해달라고 애걸복걸할 텐데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을 당하다니.솔직히 자존심이 상했다.그런데 이때, 잠자코 있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아가, 저 젊은 친구도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자신하는 거겠지. 난 한번 시도해 봐도 좋을 것 같구나. 어차피 3개월 뒤에 죽을 목숨인데 기적에 기대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만약에 완치가 가능하다면 잘된 일 아니냐.”“하지만 할아버지….”“걱정 마. 실패해도 지금보다 상황이 더 악화되겠어?”노인은 손녀의 말을 끊고 이도현에게 말했다.“젊은 친구, 염치 없지만 이 한 목숨 자네에게 부탁해도 되겠나? 성공만 하면 보수는 섭섭지 않게 주리다!”
진짜 고수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법이다.이도현은 태극 침술로 눈 깜빡할 사이에 정확하게 노인의 간경맥을 연결하는 혈자리에 침을 꽂았다.“꽂았어! 저 자식 용기가 대단한데?”“여자를 위해 사람 목숨을 이용하다니!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저러다가 인명 사고라도 나면….”사람들의 술렁이는 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하지만 그들 중에 이도현의 성공을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다들 닥쳐!”갑자기 들려온 근엄한 목소리가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장지민을 바라보았다.장지민은 그런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격앙된 표정으로 이도현에게 물었다.“이거 혹시 태극 침술입니까?”이도현이 오히려 당황하며 그에게 물었다.“태극 침술에 대해 아십니까?”“20년 전에 운이 좋게 한번 본 적이 있지요. 의학 학술 교류회에 참석한 적 있었습니다. 그때는 서의학자들이 한의학자들을 무시할 때였지요. 그때 얼굴에 가면을 쓴 도사 한분이 나타나셔서 태극 침술을 시전하셨습니다. 작은 금침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정확한 혈자리에 침을 놓는 모습은 모두를 놀라게 했지요.”“침을 놓았다 하면 불치병 환자들이 완치가 되어 생기를 회복했습니다. 그야말로 기적이었지요. 그때 그 도사님은 모든 환자를 치료한 뒤,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다시 그분을 뵙지 못한 게 제 평생 유감이 되었지요.”“죽기 전에 그 침술을 다시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네요. 제가 고수를 못 알아보고 아까는 실례가 많았습니다.”말을 마친 장지민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저를 제자로 받아주시겠습니까? 저는 평생 한의학을 위해 인생을 바쳤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게 제 기쁨입니다. 제자로 받아주세요!”장지민의 모습은 현장에 있던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60세가 넘은 한의사가 20대 청년 앞에 무릎을 꿇고 제자로 받아달라니!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장면이었다.장지민은 완성, 나아가서 염국에서도 꽤 유명한 한의사였고 사람들은 그를 신이 내린 손이라고 불렀다. 염국 전체를 통틀어도 그보
장지민은 신성한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두 손으로 받아 다급히 노트를 펼쳤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 떠지더니 감격에 겨워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이 노트에 기재된 처방과 약학은 그가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차원의 한의학이었다.이 노트만 있다면 자신의 의술은 지금보다 더 높은 경지까지 돌파할 수 있다고 그는 굳게 믿었다.두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시간이 다 되었다. 이도현이 허공에 손을 뻗자 노인의 혈자리에 꽂혔던 침들이 다시 그의 손으로 돌아왔다.침을 제거하자 여자는 다급히 다가가서 노인의 상태를 살폈다.“할아버지! 괜찮아요? 좀 어때요?”노인의 얼굴에는 혈색이 돌아오고 표정도 한결 편해졌다.“아주 좋아. 몸이 많이 가벼워지고 숨을 쉬는 것도 예전처럼 힘들지 않아. 근육통도 사라지고 온몸에 힘이 차고 넘치는 것 같아.”말을 마친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서려 힘을 주었다.그는 거짓말처럼 자리에서 일어서서 부축이 없이 신농관 안을 빙 돌았다.예전에는 간경화 때문에 다리가 퉁퉁 부어 걷기도 힘들던 노인은 마치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육안으로 봐도 노인의 상태는 많이 호전된 것처럼 보였다.“젊은 친구, 정말 고마워. 난 소창열이라고 하네. 앞으로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주저 말고 나한테 연락하게. 내가 이래 봬도 염국에서는 힘 좀 쓸 수 있거든.”노인이 이도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노인이 이름을 밝히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바뀌었다.소창열이라는 이름은 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소 장군님…?”“맞아! 저분이 바로 진북 장군 소창열 장군님이셔! 어쩐지 얼굴이 낯이 익다 했는데 장군님이셨어!”모두가 경외에 찬 시선으로 소창열을 바라보았다.진북 장군 소창열, 염국을 위해 위대한 공훈을 세운 노장군이었다. 오랜 시간 염국의 북부를 지키며 수많은 적들을 물리친 불후의 명장!노인은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는 위대한 인물이었다.이도훈은 비록 속세를 8년
“저기… 어르신, 일단 앉으세요. 병이 다 나은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너무 흥분하시면 안 좋아요.”이도현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노인에게 자리를 권했다.그는 조금씩 이 자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할아버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소유정도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삐죽였다.사람들이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장지민이 약 보따리를 들고 나오더니 공손히 말했다.“사부님, 요구한 약재는 여기 넣었습니다.”약재를 확인한 이도현은 흐뭇한 표정으로 장지민을 바라보았다.‘눈치는 빠르다니까!’이 약재만 있으면 한지음의 막힌 혈관을 치료할 수 있었다.약재를 확인한 이도현은 소창열에게 작별인사를 한 뒤, 도망치듯 신농관을 떠났다.여기 계속 있다가는 소창열 손녀와 약혼식 날짜라도 잡힐 것 같았다.‘남자는 자기를 보호할 줄 알아야 돼!’신농관을 나온 이도현은 곧장 옛저택으로 향했다.어제 마당에 널브러져 있던 시체는 모두 사라지고 바닥에 흥건하던 핏자국도 사라졌다. 결전 중에 갈라진 벽과 땅이 파괴된 자국들만 간간이 남아 있었다.이도현은 가족의 위패를 챙겨 재빨리 저택을 나왔다.주변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저택을 나온 뒤에도 그 시선은 집요하게 따라붙었다.이도현은 속으로 냉소를 지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굳이 붙잡고 물어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것 같았다.어차피 피해갈 수 없는 일이라면 부딪히는 게 나았다.별장으로 돌아와 보니 저택에는 젊고 예쁜 여자들이 메이드 복장을 하고 집안을 청소하고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저 굶주린 시선들을 보고 있자니 이도현은 머리털이 곤두섰다.굳이 묻지 않아도 신연주가 데려온 고용인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저 차림새는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누님 머리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음란마귀들이 살고 있는 거야?“어때? 이 선배가 직접 선별한 고용인들이야. 괜찮지?”이도현을 본 신연주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다가오며 물었다.이도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선배님,
메이드복을 입은 여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도련님을 외치자 이도현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들어도 절대 적응할 수 없는 호칭이었다.마치 테마 업소에 들어갔는데 업소녀들이 손님을 부르는 호칭 같았다.‘나와는 절대 안 어울리는 호칭이야!’“멍청한 자식!”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연주가 입을 틀어막으며 꺼이꺼이 웃음을 터뜨렸다.“가자! 식사 이미 준비됐어. 밥부터 먹자. 그런데 손에 그건 뭐야?”신연주는 그제야 이도현의 손에 든 보따리를 발견하고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한지음 씨 치료에 필요한 약재들이에요.”이도현은 보따리를 테이블에 놓으며 덤덤히 말했다.“이런. 그래도 약혼녀라고 챙기는 걸 보니 기특하네? 여자를 아껴줄 줄도 알고. 철 들었어.”신연주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도현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반박했다.“제발 그 약혼녀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요? 상의할 일이 있어요.”“무슨 일인데?”신연주는 금세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부모님과 여동생 위패를 여기 모시고 싶은데 괜찮을까요?”이도현이 위패를 꺼내며 그녀에게 말했다.“상의할 필요도 없지. 어차피 널 위해 구매한 저택이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신연주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도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장 작은 방으로 가서 위패를 꺼내 놓고 향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부모님 위패에 절을 올린 뒤, 밖으로 나왔다.밖으로 나오자 향긋한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신연주는 벌써 식탁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한지음과 이설희는 외출하고 돌아오지 않았기에 식탁에는 둘만 남았다.“후배, 빨리 와서 밥 먹어!”신연주가 그를 재촉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마쳤다. 대부분은 신연주가 질문하고 이도현이 대답하는 식이었다.가장 많이 대화를 나눈 건 이도현의 산에서의 생활과 스승님에 관한것이였다.이도현은 소통에 크게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성격 급하고 곤란한 질문만
같은 시각 이도현은 이미 지하실에 3일이나 박혀있었다. 이 3일 동안 그는 쉬지 않고 담약만 제련하였기에 수량이 얼마나 나왔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저 그의 앞에 수많은 옥병이 놓여 있고 안에는 여러 가지 담약들이 잔뜩 들어있다.“수거.”이도현은 눈을 뜨고 두 손으로 담결 매듭을 지었다. 이어서 두 손의 담결이 끊임없이 바뀌더니 향로의 뚜껑이 툭 튀어 올랐다.뚜껑이 열리는 순간 그윽한 향기가 확 퍼져 나왔다.별안간 금황색의 담약이 향로 안에서 튀어나왔으며 이도현이 손으로 탁 잡았다.“좋아. 또 현급 상품 담약이네. 내 담약을 만드는 기술은 정말 으뜸가는 정도라니까. 다른 사람들이 비할 수가 없어.”“무술도 높고 재능도 좋고 자원도 넉넉하고 운수도 좋으며 여자도 예쁜 데다가 담약 만드는 기술까지 뛰어난 사람이 바로 나지. 이렇게 훌륭한 것이 말이 돼? 이러다가 날 벼락 맞는 거 아니야?”“천선자. 만약 천선자가 있다면 나 빼고 또 알맞은 사람이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지. 내가 바로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니까.”이도현은 몸을 일으켜 앉고는 한편으로 담약을 거두며 한편으로 자아도취에 빠졌다. 잘난 체하는 표정은 정말 아주 꼴 보기 싫은 정도였다.문득 그는 갑자기 마음이 뒤숭숭하고 아무 이유 없이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두렵고 긴장한 느낌이 들었다.“대박. 설마 잘난 체를 너무 해대서 하나님마저 봐줄 수가 없어 나에게 경고를 하는 건가?”이도현이 작은 소리로 중얼중얼했다.“그러지 마시죠. 그저 아무 말이나 해봤을 뿐이에요. 잘난 체 좀 해봤어요. 나 같은 어린놈이랑 똑같이 굴지 마시죠. 잘난 체한 것이 뭐 법에 어긋난 것도 아니잖아. 천하만사를 보살펴야 하는 하나님께서 저 같은 놈 하나를 주시하고 경고하는 건 좀 너무 과한 거 아닌가?”“하나님은 얼른 가서 해야 할 일이나 하시죠. 날벼락을 맞아야 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놈들이나 찾아가시죠. 날 주시해서 뭐하나? 나처럼 착한 사람이 천하를 망치는 짓을 하기라도
젊은 도련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본적이 없다고? 본적이 없어도 괜찮아. 아가씨 두 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 결혼하셨는지?”이놈은 바로 주제를 바꾸었으며 중매쟁이 말투로 변했다.“흥... 당신들은 뭐 하는 사람인데?”인무쌍에게 치료를 해주던 여자가 분노하며 물었다.이 여자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태허산의 제자이자 이도현의 여섯째 선배 양주희였다.“미인이라도 그렇지. 난 이런 사람이 제일 싫어. 지금은 도련님인 내가 당신들에게 질문하는 시간이지 네가 나한테 질문하는 시간이 아니야. 내 말을 끊어먹는 게 얼마나 예의가 없는 행동인지 알아?”젊은 도련님이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도련님. 이 궁전 안만 빼고 나머지 곳은 우리가 다 찾아봤습니다. 고서적에서 기재한 데 따르면 음양탑은 이 비경 안에 있습니다. 이 두 여자 몸에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아니면 소인이 현혹대법을 써서 두 여자더러 고분고분 말하게 할까요?”노자가 말참견하였다.“미인들, 들었죠? 내 부하는 나처럼 여자를 아끼지는 않아. 엄청나게 거칠어. 현혹대법이 무엇인지 알아? 저자의 명령을 듣게 두 사람의 영혼을 공제하는 거지. 공제를 당하면 저자가 시키는 대로 다 하게 될 거야. 저자가 옷을 벗으라고 하면 둘은 스스로 옷을 벗을 거야. 어때? 한번 체험해볼래?”젊은 도련님의 음탕한 눈길은 단 한 번도 인무쌍과 양주희의 가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19금 상상이 펼쳐지고 있었다.“감히 우리가 누군 줄 알고 그러는 것이야?”양주희가 화를 내며 말했다.“아니지. 아니지. 난 너희들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 필요가 없어.”젊은 도련님은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왜냐하면, 당신들이 어떤 사람이든, 어떤 세력이든, 어떤 파벌이든 내 앞에서는 다 쓰레기에 불과해.”“솔직히 말해서 난 두 사람 같은 미인에게 현혹대법을 써서 내가 원하는 걸 말하는 것보다 미인들이 주동적으로 말하는 걸 바라지.”젊은 도련님은 전혀 도리를 따지지 않
등자월이 나간 뒤 이도현은 또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는 생각할수록 도대체 왜 그렇게 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결국 그는 생각을 멈추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내버려 두기로 했다. 등자월의 말처럼 그렇든 아니든지 그에게는 다 별로 상관이 없었다. 그렇다면 좋은 일이고 아니어도 상관이 없었다.그냥 서프라이즈로 생각하기로 했다.이렇게 생각을 바꾸자 이도현은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그는 지하실의 문을 닫고는 붉은색 향로를 꺼내 들어 담약을 만들 준비를 했다....같은 시각, 고무계의 어느 은밀한 곳에서 인무쌍과 한 여자가 궁전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이때 느닷없이 궁성의 문밖에서 에너지 파동이 느껴졌다.“선배. 누군가가 우리가 설치해놓은 진법을 공격하고 있어요.”“일단 상관하지 마. 우리는 선학신침부터 찾아야 해. 만약 저 사람들이 죽으려고 달려들면 바로 죽여버려.”인무쌍이 차갑게 말했다.“네.”여자가 인무쌍의 말에 대답한 뒤 두 사람은 또다시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바로 이때 밖에서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궁전의 대문이 아예 폭격하여 날아갔다.곧바로 노자 한 분이 손에 장창을 든 채 살벌하게 뛰쳐 들어왔다.“꺼져. 아니면 죽인다.”인무쌍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어린 계집애가 감히 어디서 입을 함부로 놀리냐? 죽으려고.”노자가 싸늘하게 말했다.“아이고. 이 두 미인이 괜찮아 보이네. 한씨 영감, 아니면 이 두 여자를 죽이지 말고 제압해. 이 두 여자가 마음에 들어.”장창을 든 노자는 허리를 굽신하더니 명을 받들었다.“네.”노자는 곧바로 날아올라서 손에 든 장창을 들고 두 여자를 향해 공격을 날렸다.노자의 속도가 너무 빨랐기에 손에 든 장창은 순식간에 독룡으로 변했으며 강대한 기운은 삽시에 두 여자를 안에 감쌌다.속도가 너무 빠른 나머지 고수인 인무쌍도 전혀 대처할 시간이 없었으고 검을 뽑을 시간조차 없었다.강대한 기세는 두 사람의 방어벽을 깨부쉈다. 인무쌍은 바로 다른 한 여자의 앞을 가로막았
“자월아! 몰라봤는데 너도 벌써 천급 경지에 이르렀구나. 넌 정말로 천재 소녀구나.”인무쌍이 등자월을 데려와서부터, 그가 등자월에게 무술을 가르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등자월이 벌써 이런 성과를 이뤄내다니 정말 천재가 따로 없었다.만약 종파의 제자로 들어갔다면 절대 인재로 취급을 받으며 그녀를 정성스럽게 배양했을 것이다.등자월이 웃으며 말했다.“그건 다 도련님이 잘 그르쳐 줘서 그렇죠. 저에게 공법을 알려주고 담약을 주시고 제일 좋은 것들로 주셨잖아요. 제가 노력을 하지 않으면 도련님의 체면을 깎는 거잖아요.”“게다가 다른 사모님들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매번 도련님과 합방을 한 뒤면 제 내공이 어느 정도 높아졌다는 것이 느껴져요. 특히 처음으로 합방한 뒤, 거의 한 경지가 올라갔었어요.”등자월은 얼굴이 붉어진 채 자기 마음속의 작은 비밀을 털어놓았다.“뭐? 이렇게 좋은 일이 있어?”이도현은 자기도 깜짝 놀랐다.만약 등자월의 말이 진짜라면 그건 너무 신기한 일이다. 그런 일로도 내공을 올릴 수 있다면 세상에 이처럼 좋은 일이 있을 수가 없다.이도현이 수련한 것이 복수공법도 아닌데 합방을 한 뒤에 내공이 오르다니! 첫 번째 경험 후에 심지어 경지가 한 단계 올라가다니.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말이 안 되었다.“헐. 합방으로 좋은 무술을 해낸다고?”이도현은 자신도 어이가 없다고 생각되었다.정말 어이가 없었다. 만약 나머지 선배들도 이런 감각을 느꼈다면 그럼 앞으로 합방을 하는 것만으로도 고수를 한 무리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대박. 너무 미친 짓이잖아. 할리루야.”놀랍고 충격스러우며 믿어지지 않았다.“도련님... 뭐라고 하셨어요?”등자월은 이도현의 말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좋은 일이잖아. 자월아, 올라간 뒤 빨리 가서 지음이랑 선배들도 다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교류해봐. 만약 그것이 진짜라면 앞으로 내가 열심히 수련하고 당신들은 누리면서도 충분히 내공을 올릴 수 있어.”이도현은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것만 같
선배를 업고 집에 도착했을 때, 다들 조용히 잠들어있었다. 낮에 한지음을 하도 괴롭힌 탓에 한 번 잠이 들더니 그 뒤로 깨어나지 않았다.등자월은 그나마 좀 나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무척 힘들었는지 지금은 곤히 잠들었다. 그러고 보면 준급 강자인 연진이만 상태가 제일 좋았다.비록 고무계에서는 고수에 속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세속계에서는 꽤 높은 편이다. 게다가 무술 기초까지 있었으니 신체 소질이 남보다는 조금 뛰어났고 감당 능력도 당연히 나머지 두 선배보다는 나았다.이도현과 연진이는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 않고 슬그머니 연진이의 방으로 돌아와서 잤다. 밖에서 한 바퀴 돌았으니 흥미가 넘쳐나서 자기 전에 또 한바탕 깨를 볶을 것이 분명했다.이래저래 시간이 또 한 시간이 지났다. 두 사람이 다 기진맥진해진 뒤 서로를 꽉 끌어안고 편안하게 잠들었다.이튿날 아침, 네 사람 모두 생기가 넘쳐났다. 심리적으로나 아니면 신체적으로나 모두 큰 긴장을 풀었기에 다들 기운이 넘쳐나 보였다.아침 식사를 마친 뒤, 이도현은 신영성존을 불러왔다. 당연히 조혜영과 문지해 두 사람도 따라서 같이 왔다.조혜영은 오자마자 선배 3명과 함께 방으로 들어가서 수다를 떨었고 문지해와 신영성존은 이도현과 얘기를 나누었다.이도현은 선학소대에 관한 일을 조금 물어보면서 지금 선학소대의 훈련상황도 알아보았다.얘기를 조금 나눈 뒤 이도현은 신영성존과 문지해를 돌려보냈다. 그는 신영성존더러 선학소대에게 요 며칠 동안 최적의 상태로 조절해서 내공을 돌파할 준비를 하라고 전하라고 하였다.동시에 신영성존과 문지해 두 사람에게도 상태를 조절해서 때가 되면 같이 돌파하라고 얘기했다.이도현은 어젯밤에 이미 결정을 내렸다. 그는 담약을 한 무더기 제련해내서 자기 주변 사람들의 내공을 높이려고 마음을 먹었다.지금 날이 갈수록 적이 점점 더 강대해지지만, 이도현 주변 사람의 내공으로는 당연히 모자랐다. 그러기에 내공을 높이는 것만이 그들에게는 정답이었다.게다가 문지해와 신영성존 같이 다년간 수련을 해온 사
“말해! 쓸데없는 소리 한마디라도 지껄였다가는 목이 날아가는 수가 있어.”“말할게요. 말할게요. 어르신. 저는 고무계 자미각의 제자입니다.”“이도현의 소식을 알아 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도현이 세속계에서 지내는 거처를 확인하고 이도현과 관련된 모든 사람을 조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매 사람의 이름을 다 기록하고 어디에서 사는 지까지 다 기록해서 자미각으로 보내라고 하셨습니다.”이 말을 듣자 이도현의 안색은 더욱 싸늘해졌다.“난 너희 자미각과 원수를 진 적이 전혀 없는데 왜 나를 미행하고 내 신변의 사람들까지 조사하는 거야?”남자는 조급하게 대답했다.“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어르신. 저는 그저 봉각주의 명령을 받아 여기로 온 것뿐입니다.”“모른다고? 기회를 다시 한번 더 주마. 잘 생각해보고 답변하는 것이 좋을 거다. 나도 인내심에 한계가 있다.”이도현은 쌀쌀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몇 푼 더 강해진 살기로 남자를 감싸 안았다.“저... 저 진짜... 어르신. 며칠 전에 성역에서 도련님 한 분이 저희 자미각으로 오셨는데 반드시 이도현 님을 찾아서 몸에서 어떤 물건을 꼭 가져와야 한다고 한 것밖에 저는 모릅니다.”“그리고 저희 자미각의 장로님들이 곤륜옥인가 뭔가를 찾고 계신 것 같습니다. 옥새도 찾고 있습니다.”“어르신 제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이정도밖에 없습니다. 이것들도 각 내의 제자들이 의논하는 것을 들어서 아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정말 잘 모릅니다. 제발 살려주세요.”“성역?”이도현은 처음 듣는 단어라 어안이 벙벙했다.“어르신. 성역은 고무계 중의 아주 특별한 곳입니다. 그곳은 세력이 있는 가문들에게 공제되었으며 그곳 안의 사람들이야말로 고무계에서 제일 강한 사람들입니다.”남자는 다급하게 설명했다.이 말을 듣자 이도현은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그건 아마도 성안의 성 같은 거겠지.’“꺼져! 가서 자미각의 사람, 그리고 도련님이란 자에게 날 건드리지 말라고 전해. 아니면 죽을 각오를 하고 있으라고 해. 얼른 꺼져!
두 사람은 방안에서 슬그머니 나와 손을 잡고 표묘 걸음으로 허공을 날아다녔다.두 사람은 마치 신선 커플처럼 달빛 아래서 아주 여유로웠다.다행히도 한밤중이라 길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사람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어디서 신선이 내려온 줄 알 것이다.머지않아 두 사람은 완성의 중심 번화가에 도착했다. 이미 한밤중이지만 번화가여서 그런지 야시장은 대낮 시장과 별반 차이가 없이 시끌벅적했다.대 밤중에 돌아다니는 사람 중에 젊은이가 확실히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양아치가 조금 있었고 한창 열애 중인 소년 소녀가 있었으며 나머지는 야간작업하거나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었다.어찌 됐든 저녁 늦은 시간이면 사람은 쉽게 자기의 본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이도현과 연진이는 서로 손을 잡은 채 거리에서 걸어 다녔다. 길거리의 번화한 모습을 보면서 두 사람은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두 사람은 야시장을 한 시간 넘게 걸어 다니면서 각종 맛있는 음식들을 다 한바탕 먹어보았다. 결국에는 배가 너무 불러서 돌아갈 준비를 하였다.돌아가는 길에 이도현은 연진이의 가녀린 허리를 끌어안았고 연진이는 머리를 이도현의 어깨에 기대면서 느긋느긋하게 산장으로 걸어갔다.인적이 하나도 없는 곳을 지날 때, 두 사람은 갑자기 모두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도현의 눈빛에는 한기가 쓱 스쳐 지나갔고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선배. 우리가 미행을 당한 것 같아요.”“맞아. 나도 느꼈어. 어떻게? 잡아낼까?”연진이가 장난스럽게 말했다.“선배 기다려봐요. 내가 딱 잡아내서 어떤 놈인지 볼게요.”이도현은 말을 하면서 아주 아쉽다는 듯이 겨우 연진이의 허리를 놔주었다.말을 마친 뒤 삽시에 그는 제자리에서 사라졌다.이도현이 사라지는 순간, 뒤의 멀지 않은 어두운 곳에서 당황스러워하는 소리가 들렸다.“큰일 났어. 들켰어. 얼른 가...”곧이어 두 개의 검은 그림자가 어둠 속에서 나타나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재빠르게 달아났다.하지만 이도현의 속도 앞에서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한 명은 두 발짝도 채
등자월은 이도현의 여자들 중 잠자리를 제일 많이 같이 한 여자였기에 서로 익숙하기 그지없었다.두 사람은 서로 부끄러워할 새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불꽃이 사방으로 튀겼다. 한바탕 통쾌한 대전 후, 등소월은 노곤한 몸으로 이도현을 씻겨주었다. 그리고 자신도 대충 간단하게 씻은 뒤 침에 드러누워 잠들었다.이도현은 가운을 하나 두르고는 연진이의 방으로 갔다.연진이는 오랫동안 방에서 이도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도현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그녀는 어여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간드러운 미소를 지었다.“나쁜 놈아! 얼른 올라와. 오늘 저녁에는 네가 맘껏 볼 수 있도록 할게. 오늘에는 진정으로 네 여인이 되어줄게.”“지난번에는 네 몸을 치료해주느라 몸을 너에게 받쳤거늘 너는 하나도 기억을 못 하지. 오늘 저녁에는 네 열째 선배인 내가 어떤 모습인지, 내 몸이 어떤지 똑똑히 잘 기억해둬.”연진이는 아주 부드럽게 말했다. 얼굴이 불그스름한 것이 참으로 귀엽고 아름다웠다.“선배. 참말로 아름다워요!”이도현은 연진이의 미모에 깊이 미혹되었다.“그걸 말이라고? 얼른 올라와.”연진이는 이불 한 쪽을 치켜들고는 이도현더러 이불 속으로 들어오라고 눈치를 주었다.이렇게 된 이상 이도현도 내뺄 이유가 없었다. 여기서 딱딱하게 나오면 그건 분위기를 깨는 것이다.이도현은 선배의 이불 속으로 슉 기어들었다. 들어가서야 선배가 아무것도 안 입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두 사람의 피부가 맞닿은 순간, 이도현은 감전된 것처럼 찌릿찌릿한 느낌을 받았다.“나쁜 놈...”연진이는 어여쁜 눈으로 이도현을 한눈 바라보고는 드러눕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이 동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는 충분히 잘 알았다. 만약 이것을 모른다면 그건 정말 멍청이나 다름이 없었다.이도현은 거침 숨을 몰아쉬면서 몸을 뒤척인 뒤 연진이의 몸 위로 덮쳤다.한참 동안, 연진이의 방에서는 깨 볶는 소리가 흘러나왔고 그 속의 별미는 방안의 두 사람만 알고 있다....꼬박 한 시간이 넘어서야 방 안의 소
춘몽은 한 시간 후에야 겨우 끝이 났다.이도현이 방안에서 걸어 나왔을 때 음식은 다 이미 식었고 등자월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똘망똘망한 그녀의 눈빛에 담겨있는 뜻을 이도현은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이도현더러 편애하지 말고 골고루 평등하게 대하라는 뜻이었다.“나쁜 놈. 오자마자 바로 나쁜 일을 저지르다니. 그것도 대낮에, 해가 저물기를 기다렸어야지.” 연진이는 볼이 사과처럼 빨개졌고 눈빛에는 애정이 담겨있었다.“저기... 선배... 저는...”이도현은 뻘쭘하기 그지없었다.“뭐? 수줍어하기는? 저녁에 내 방으로 와. 나도 네가 보고 싶었어...”연진이는 아주 직설적으로 말했다.“네...”이도현은 살짝 부끄러웠지만 내심 기대가 되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등자월과 하녀 복장을 한 도우미 몇 분이 음식을 들고 올라왔다. 두 여자는 이도현이 식사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주었다.한지음은 진이 빠져 이도현의 침대에 누운 채 내려오지 않았다. 곤히 잠든 그녀를 도무지 깨울 수가 없었다.식사를 마친 뒤 이도현은 한지음의 방으로 가서 휴식을 취하였다. 침대에 누운 뒤 그는 야노 요시코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선학신침의 행방을 알아보라고 알려주었다.마찬가지로 이도현은 여덟째 선배 신연주와 다섯째 선배 기화영에게도 전화를 걸어 두 선배가 용팀과 봉황팀의 사람을 동원하여 선학신침을 찾는 데 도움을 줬으면 했다.고무계에 한 번 다녀왔더니 천사국의 사람들이 또 나타났다. 이도현은 날이 갈수록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게다가 심경의 문제도 해결되었으니 그는 하루빨리 선학신침을 찾아내서 자기의 힘을 최대한도로 올리고 싶었다.고무계의 세력들이 절대 그를 가만히 놓아둘 리가 없다. 어쩌면 머지않아 그를 찾으러 올 것이다. 게다가 천사국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곤륜옥의 비밀은 정말 너무 유혹스러운 것이기에 고무계의 강자들은 무조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도현을 찾으러 올 것이다. 고무계의 비밀을 위해서라면 그들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