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이상 무의미한 살생은 하고 싶지 않다. 광명왕에게 직접 나오라고 전해라.”이도현이 똑같은 말을 다시 한번 반복했다.“죽고 싶구나... 모두 덤벼라. 창으로 저놈을 찔러 죽여라.”“죽여버리자.”이도현의 선언이 병사들의 체면을 구기기라도 했는지 그들은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돌진했다.“네놈들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다니... 그럼 어쩔 수 없지. 죽어라...”이도현이 냉랭하게 말한 다음 순간 아주 강대한 기운이 순식간에 그의 주먹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허공을 가르는 주먹에서 수십 마리 맹수와 맹금의 환영이 쏟아져 나오더니 곧바로 병사들을 향해 돌진했다.이도현의 십흉공법은 내공이 높아짐에 따라 위력도 한없이 강해졌다. 이 주먹 한 방에 하늘과 땅이 뒤흔들릴 정도였다.수백 명의 병사는 맹수와 맹금의 환영이 자기의 몸을 관통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뼛조각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이 온몸을 휘감았다. 곧 시야가 점점 흐려지더니 몸이 피안개로 터져 공중에 흩날렸다.“이건 너희가 자초한 거야.”이도현은 손으로 피안개를 휙휙 휘저어내고는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다.그가 한 발짝 나아갈 때마다 병사들이 막아섰고 어둠 속에 숨어있던 고수들이 튀어나왔다.그러나 주제도 모르고 덤벼드는 마법사들을 이도현은 모조리 즉사했다.“다시 한번 말한다. 광명왕에게 나오라고 전해. 나는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다. 나를 자극하지 마라. 모두 물러서... 그리고 광명왕더러 나오라고 해.”이도현이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천한 버러지 같은 놈.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이곳이 어디인지 알기나 하고 감히 광명왕의 성채에서 난동을 부리는 거야? 광명왕의 병사를 죽이다니. 네놈은 끝장이다.”격분에 찬 목소리가 갑자기 튀어나왔다.“이 버러지 같은 놈아. 네놈은 곧 제일 위대한 마법사 오트라오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영원히 사라져라...”한 마법사가 손에 든 지팡이를 휘두르며 이도현을 향해 번개를 쏘아냈다.그러나 이도현의 눈에 그 공격은 마치 어린
“목숨을 부지하려거든... 즉시 물러나라...”이도현이 갑자기 포효했다.폭발한 음파에는 엄청난 힘이 실려있었다. 맨 앞줄 병사들은 음파에 스치는 순간 사지가 분쇄되었고, 후방 병사들은 고막이 터져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천둥 같은 고함에 병사들은 심장이 콩알만 해졌다.그들은 미친 듯이 후퇴하며 이도현과 거리를 벌렸다.“저놈 대체 뭐야? 왜 저렇게 강해? 너무 강하잖아. 근데 어르신들은 왜 아직도 안 나오시는 거야? 우리가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막을 생각은 버려. 저자가 바로 마룡 천왕의 성채에서 날뛴 그 동방인이야. 너희 따위가 무슨 재주로 막아?”“맙소사... 어떻게 이런 악마 같은 놈이 여기에 있는 거야? 광명왕께서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이런 걸 지껄일 시간에 목숨 부지할 방법이나 생각해.”한 차례 포효에 더 이상 그에게 덤벼드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병사들은 무의식중에 몸을 부르르 떨며 뒷걸음질 쳤다.과거 마룡 천왕 성채의 소문을 믿지 않던 자들도 이제야 현실을 깨달았다.‘이 정도 마왕이면... 마룡 천왕 성채를 초토화했다는 것도 이해가 가.’이도현은 꿈쩍 않고 서서 냉엄한 눈빛으로 먼 곳을 응시했다. 그는 강대한 신기를 펼쳐 한 무리의 강자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으며 그들을 향해 외쳤다.“광명왕. 당장 나와.”목소리가 성채 전체를 진동시켰고 거대한 음파 때문에 인근 건물들이 흔들렸다.잠시 후, 광명왕이 고수들을 거느리고 모습을 드러냈다.“네 이놈... 건방이 넘치는구나. 죽어라...”광명왕의 뒤에서 중년 남성이 포효하며 날아오르더니 넓적한 검을 휘두르면서 이도현에게 돌진했다.“죽어라...”이도현이 코웃음을 치며 은바늘 한 개를 날렸다.이도현에게 닿기도 전에 중년 남성의 몸은 공중에서 팡 하고 터져버렸고 심지어 그의 검조차 산산조각이 되었다.“다음은 누구냐?”이도현이 차갑게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광명왕 일행은 숨을 삼켰다. 이도현의 오만함과 살기는 상상을 초월했다.방금 이도현의 손에 죽은
그들은 천사국에서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이들이었다. 여태까지 이런 무시를 당한 적이 없었기에 더는 참을 수 없었다.특히 광명왕과 그의 십이 대천사는 분노를 겨우겨우 억누르고 있었다. 그들은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이도현을 차갑게 노려보았다.“내가 광명왕이다. 날 왜 찾는데?”광명왕은 격분을 간신히 참으며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이는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의 대군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기 위해서였다.출발하기 전 그는 이미 군대를 소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그는 수만 명의 대군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기 위해 분노를 참으며 시간을 끌었다. 대군이 도착하기만 하면 이도현을 진이 빠지게 할 생각이었다.‘네 기역이 소진되면 난 단숨에 널 쓰러뜨릴 것이다. 그리고 네 머리를 베어 마룡 천왕의 저택에 가져가 마룡 천왕에게 자랑 좀 해야겠다. 마룡 천왕의 남성을 상징하는 ‘근본’을 잘라낸 놈의 머리를 들고 가면 누가 더 센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잖아.’“네가 광명왕이냐? 야나기 고로오는 네 부하가 맞지?”이도현이 단호하게 물었다.“그렇다. 내가 바로 광명왕이고 야나기 고로오는 내 부하다.”광명왕이 계속해서 말했다.“우린 원한도 없고 오늘 처음 만난 사이거늘, 어찌 이리 무례하단 말이냐?”“원한이 없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해?”이도현이 비웃으며 반문했다.“초면인 건 사실이지만 당신은 내 물건을 가지고 있어. 야나기 고로오가 당신의 부하가 맞다면 일찍이 십여 년 전에 야나기 고로오랑 함께 동방에 가서 신침을 얻은 적이 있을 거야. 하지만 그 신침은 본래 태허산의 신물이고 너희들이 손댈만한 물건이 아니야. 그리고 태허산의 제자인 내가 우리 파벌의 신물을 돌려받으려고 이렇게 찾아왔어.”이도현이 차분히 설명했다.“너에게 기회를 줄게. 지금 당장 선학신침을 내놓으면 이 일을 묻어주마. 그렇지 않으면 이 성채를 뒤져서라도 찾아낼 것이다.”협박이 아닌 단순한 선언이었다.“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십여 년 전에 염국에서 야나기 고로오를 만난 기억은 있지
광명왕의 득의양양한 웃음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수만 병력이 이도현을 에워싸며 철통같은 포위망을 형성했다.멀리서 바라보니 검은 물결처럼 사방이 군사들로 뒤덮여 있었다.수만 대군이 내뿜는 압도적인 기세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몸서리쳤다. 비록 이 병사들은 한 명 한 명이 모두 강한 무사가 아니지만 수만 명이 뭉치니 살기가 엄청 강렬했다. 이들이 강자 한 명을 상대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그 어떤 강자라도 이렇게 숨 막히는 포위망 속에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강렬한 기세에 주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싸움이 시작되면 그사이에 휘말릴까 두렵기도 했다.“들어라. 이 천한 놈을 죽여라. 한칼이라도 베는 자에게 관직 세 단계 승진을 내리고, 살점을 베는 자는 다섯 단계 올려주마. 팔을 자르는 자는 자작 작위를 하사받을 것이며, 다리를 베는 자는 백작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저놈의 목을 취하는 자에게는 공작의 작위를 내리겠다.”광명왕이 포효하며 병사들에게 유혹의‘미끼’를 던졌다.본래 살기등등하던 병사들의 눈동자는 순식간에 욕망으로 물들었다.광명왕의 제안은 지나칠 만큼 달콤했다. 직위가 제일 낮은 사람이라도 단 한 번의 베기로 대장군 직위에 오를 수 있었다. 운 좋게 팔을 자르기만 해도 자작 작위를 얻어 귀족의 반열에 들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목숨을 걸고 싸울 필요 없이 영화를 누리게 될 터였다.‘그 이상은 상상도 못 하겠어. 난 많이 바라지도 않아. 그저 이도현의 팔 한쪽만 잘라내기만 하면 돼. 그럼 운명을 바꿀 수 있어. 자작이 되는 것도 어디야.’천사국에서 자작은 최하위 작위이지만, 자신의 영지와 사병을 거느릴 수 있는 절대 권력자였다. 비록 영지가 작고 병사도 수천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는 자작의 말이 곧 법이고 그 구역의 황제나 마찬가지였다.영지 내의 모든 자원과 인력은 모두 자작의 소유물이 되며 누구도 이 권위를 건드릴 수 없었다.광명왕의 후한 상금에 병사들은 광기에 사로잡힌 듯 이도현을 노려보
“죽이자...”“저놈을 죽여서 같이 팔자 펴자...”“아니... 저놈은 내가 죽일 거다. 공작자리는 내 거야.”“젠장. 공작은 내 거야.”“난 저놈의 한쪽 팔을 가져야겠어...”“그럼 한쪽 다리는 내 거... 죽이자...”상금에 환장한 병사들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들은 이 엄청난 공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이도현은 중앙에 서서 사방에서 몰려드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조금도 겁을 먹지 않았다.그는 오히려 이 병사들이 안쓰럽고 불쌍하게 느껴졌다.그들의 우두머리는 목숨을 잃을까 봐 싸움을 피하고 부하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이도현 정도의 무도 경지에 이르면 아무리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달려들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의 한 방은 천군만마라도 막을 수 없었다.선학신침을 몇 개밖에 제련하지 못했던 시절에도 이도현은 남한나라에서 영강국의 수만 대군, 최첨단 무기, 심지어 금지된 무기들과 맞서서 살아남았다.그렇게 악랄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았으니 이도현은 지금의 상황을 두려워할 리가 없었다. 설령 눈앞의 병사들이 모두 무사여도 그들의 무기는 최첨단 무기보다 위력이 떨어졌기에 이도현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이도현은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았지만, 현재 그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죽어라...”이도현은 차갑게 말하며 주먹을 내뻗었다. 순간 엄청난 힘이 주먹에서 뿜어져 나왔다.마치 사나운 짐승이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강력한 힘이 밖으로 분출되고 있었다.주먹이 나가는 순간, 각종 맹수의 허영이 포효하며 공간을 뛰쳐나왔고 병사들 사이를 휩쓸고 지나갔다.일 계 병사들이 이도현의 이런 공격을 받아낼 리가 없었다. 앞장서던 병사들은 이도현이 주먹을 내밀자마자 강력한 힘에 당해 피안개로 변해버렸다.운이 나쁜 병사는 순간 재가 되었고, 운이 그나마 좋은 병사는 팔이 부러지거나 다리가 분쇄되어 땅바닥에 쓰러져 비명을 질렀다.그리고 일부 병사는 몸이 반쪽만 남아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며 몹시 괴로워했다. 그들은 차라리 이도현의 주먹 한 방에 목숨을 잃는
음양검에서 빛이 번쩍이자 이도현은 마치 신성한 불꽃을 품은 보검을 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이도현은 이미 이 사람들에게 도망칠 기회를 충분히 줬고 충고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끝까지 죽음을 자초한다면 더 이상 자비를 베풀 이유가 없었다.“죽어라.”이도현이 크게 고함을 지르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수중의 음양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붉은 빛이 점점 커지더니, 마치 수십 미터 길이의 거대한 검처럼 보였다. 그 모습은 실로 위압적이었다.그리고 다음 순간, 이도현이 하늘에서 땅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거센소리와 함께 수십 미터 길이의 거대한 검기가 지면을 향해 날카롭게 베어갔다.쾅.바닥에서 굉음이 들리더니 곧이어 병사들의 비명이 전해졌고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튕기며 잘린 팔다리가 하늘로 솟구쳐 비처럼 내려앉았다.엄청난 위력의 검기는 수만 명의 병사를 가로질렀고 검기가 스쳐 간 곳은 엉망진창이었다.중앙에 있던 병사는 순식간에 피안개로 되어 사라졌고 나머지 병사들은 육신이 찢기고 팔다리가 잘렸다. 그 장면은 그야말로 끔찍하기 그지없었다.거대한 검기는 땅에 수백 미터 되는 긴 균열을 남겼다. 성채 앞까지 이어진 검기는 그제야 힘이 다 닿아 빛이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 만인 대군은 어느새 흐지부지해졌다. 지면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겼고 핏물은 강이 되어 균열로 흘러 들어갔다. 균열은 악마처럼 지면에서 흘러드는 피를 있는 대로 삼켜버렸다.조금 전의 수만 명 대군은 단 한 번의 검격에 반 이상이 잘려나갔다.살아남은 병사들은 눈앞의 참상을 보고 넋을 잃고 말았다.방금 이도현의 검기가 날아올 때 그들은 세상이 멸망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꼼짝 못 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그들의 무기와 무공은 그 강력한 검기 앞에서 무용지물이 된 것만 같았다.그 순간,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깨달았다. 아무 힘없는 땅강아지처럼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맙소사... 악마... 저건 악마야...”“끔찍해... 너무 소름 돋
방금 이도현의 그 한 검은 그들의 모든 신념을 산산조각 내버렸다.“저건... 절대 이길 수 없어...”광명왕은 얼굴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허공에 서 있는 이도현을 바라보며 그는 깊은 두려움에 빠졌고 등 뒤로 가져간 손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다. 그은 그제야 비로소 마룡 천왕이 느꼈을 그 절망감을 실감할 수 있었다.‘이 동양인은 절대 이길 수 없는 존재야...’천사국 천사 황제 밑의 십이 대천왕 중 한 명으로써 그는 큰 장면도 겪어봤고 수많은 고수도 상대해 봤다. 하지만 저토록 무시무시한 강자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단 한 번의 검격으로 수만 명의 병사를 베어버리다니. 이건 인간이 아닌 신조차 불가능한 일이야...’공포... 극도의 공포가 그의 전신을 감쌌고 머리 위로 짙게 드리웠다.그는 뼈저리게 후회스러웠다.모두 그 망할 자존심 때문이었다. 만약 체면을 따지지 않고 이도현과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그는 이미 이도현의 요구에 따라 순순히 선학신침을 내주었을 것이다.처음으로 야나기 고로오의 손에서 작디작은 은바늘을 봤을 때, 그는 은바늘에서 강력하고 신비로운 기운을 느꼈다. 그래서 보물인 줄 알고 야나기 고로오를 천사국으로 데려와 높은 지위를 주는 대가로 그 은바늘을 받았다.하지만 은바늘을 받은 후 수없이 연구해봐도 결국 그 안의 비밀을 알아내지 못했다. 은바늘은 그저 뜨거운 기운이 있을 뿐, 다른 특별한 점이 전혀 없었다.결국, 그는 은바늘이 쓸모없는 물건이라고 판단했고, 보물 창고 어딘가에 던져 넣고 감쪽같이 잊고 있었다. 그렇게 몇십 년이 흘렀다.만약 이번에 이도현이 찾아와서 그 은바늘과 야나기 고로오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그는 자신의 보물 창고에 그런 물건이 있다는 것을 계속 잊고 있었을 것이다.그런데 바로 그 쓸모없는 은바늘 때문에 그는 이런 무시무시한 강적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존엄성과 권위를 지키겠다고 버티다가, 이런 두려움까지 겪게 되었다.그는 몹시 후회스러웠고 지금이라도 당장 멈추고 항복하고
이도현은 한 걸음 한 걸음 광명왕을 향해 다가갔고 아무도 그의 앞길을 막아 나서지 않았다.광명왕이 몸을 바르르 떨고 있을 때 이도현은 그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거기서 멈춰. 이 비천한 벌레 같은 놈아... 당장 멈추지 못해? 감히 내 앞으로 한 걸음이라도 더 다가오면 용서하지 않겠다.”“멈추란 말이다... 이 녀석, 더 다가오지 마...”광명왕 밑의 한 천사가 용기를 내어 광명왕에게 다가가는 이도현을 노려보며 소리쳤다.이는 몹시 위험한 행동이기도 하지만 절찬의 기회이기도 했다. 만약 이도현을 멈출 수 있다면 그는 광명왕의 마음속에 특별한 존재로 자리 잡을 것이었다.만약 이도현을 물리칠 수 있다면 그는 광명왕의 최측근에서도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될 것이 분명했다.광명왕은 어쩌면 그에게 공작의 작위를 내려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그는 진정한 귀족이 될 수 있었다.비록 그는 지금 천사국에서 큰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작위가 없고 자기만의 영토가 없었다.천사국에서 귀족의 대우를 받으려면 반드시 작위가 있어야 했다. 작위가 있으면 영토를 받을 수 있고, 영토가 있어야 그 안에서 왕의 행세를 부릴 수 있었다.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그는 작위를 위해 위험을 무릎 쓰고 나섰다.“죽고 싶으냐?”이도현은 그를 흘겨보며 차갑게 말했다.“너... 너 이 무례한 놈, 여기가 어디인지 알고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리는 거야? 이곳은 네가 맘대로 행동해도 되는 곳이 아니란 말이다. 눈치 있는 놈이라면 당장 광명왕께 사죄해라. 존귀하신 천왕님께서 너의 무례한 행동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그 천사는 두려움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최대한 침착한 말투로 말했다.그는 심호흡하며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고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노력했다.“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데?”이도현이 비아냥거렸다.“그렇지 않으면... 네놈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것이다.”“그래? 네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이도현이 경멸에
“말은 통하지 않지만, 저랑 신기로 간단히 교감할 수는 있어요. 의식이 막 깨어난 정도라 어린아이처럼 단순한 대화만 가능해요.”이도현이 담담히 설명했다.“세상에. 이건 전설의 신물과 똑같잖아. 정말 믿기지 않아.”윤선아와 서명월이 또다시 놀라며 탄성을 자아냈다.작은 향로 하나가 단 몇 분 만에 그녀들을 수차례나 경악시켰다. 이 짧은 시간에 벌어진 일은 그동안의 모든 경험을 무색하게 할 만큼 경이로웠다.“내가 직접 시도해봐야겠어. 향로를 크게 만들어볼 거야.”서명월이 즉시 눈을 감고 신기를 펼쳐 향로와 교감하기 시작했다.“정말 반응하고 있어. 내 말에 응답하고 있어. 마치 나를 ‘선배’라고 부르는 것 같아. 너무 귀여워. 너무 신기해.”서명월은 향로에서 전해지는 의식의 파동을 느끼며 흥분해서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그녀는 한 번도 이런 기이한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지금이 상황은 그녀의 상식을 깨뜨렸고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이제 키워볼 거야.”서명월의 교감에 따라 향로 표면에 불꽃이 타오르는 것처럼 붉은빛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잠시 후 향로는 그녀의 손을 떠나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공중에서 서서히 커졌다.“커졌어. 정말 커졌어. 세상에, 이건 진짜 신기한 일이야. 신물이라니까. 확실히 신기야.”서명월이 흥분에 겨워 펄쩍 뛰며 소리쳤다.“둘째 선배. 보셨어요? 제가 직접 조종했어요. 제가 향로를 키웠어요.”“봤어. 어서 잘 간직해둬. 이런 걸 드러내면 안 돼. 누군가 보기라도 하면 위험해져...”흥분하던 윤선아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면서 이런 신물이 밖으로 알려지면 천하가 피바다로 변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땐 이 신물을 빼앗으려는 자들로 인해 또다시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이도현이 가장 먼저 타깃이 될 것이 뻔했다.“제 능력을 보세요.”서명월이 우쭐대며 신기를 펼쳐 향로와 교감했다.그녀의 조종하에 향로는 손바닥 크기로 줄어들어 그녀의 손에 떨어졌다. 표면의 붉은 빛도 사라지면서 다시 평범한 모습으로
윤선아와 서명월은 많은 걸 겪어본 사람이라 신기한 것들을 잘 아는 편이었다.그러나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녀들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었다.크기를 자유자재로 변환하고 불꽃을 뿜어내며 심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붉은 향로는 전설 속의 신물과 다름없었다.신기한 병기들도 보았고 결계, 비경도 겪어봤던 그녀들은 이렇게 신기한 보물을 보기는 또 처음이었다.전설로만 듣던 신물과 다를 게 없었다. 이런 신물은 신선 빼고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후배야... 빨리 작게 해봐. 이럴 수가... 너무 신기해. 이 세상에 이런 보물이 있다니... 정말 보고도 믿기지 않아.”서명월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신대륙을 발견한 탐험가처럼 반짝였다.“신화는 진실을 가리키는 나침반이었어... 그 말이 맞았어. 신화는 허구가 아니라, 숨겨진 진리를 드러내는 열쇠일지도... 신이 실제로 존재했을지도 몰라.”윤선아가 붉은 향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그녀는 고금의 비경 속에 감춰진 고서들이 떠올랐다. 그 고서들에는 신선에 관한 기이한 기록이 담겨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마치 신화나 전설처럼 느껴지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런 고서들은 대부분 봉건 왕조 시대 황실의 금고에 간직된 것이라,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것들이었다.심지어 일부는 지금도 국가의 서고에 보관되어 있다. 만약 정말로 쓸모없는 미신이라면 백성들에게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보통 사람이 미신이라 여기는 것들을 은밀히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왜냐하면, 세상 모든 것들이 겉면에 보이는 것처럼 단순한 것은 아니었다.윤선아는 고전 서적들에서 봤던 ‘신화는 진실을 가리키는 나침판’이라는 구절이 떠올랐다.지금 이 문장을 되새기니, 그 말의 무게가 확 와닿았다. 마치 말속에 엄청난 지혜와 진리가 담겨 있고 세상 사람들에게 모종의 진실을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이도현은 윤선아의 혼잣말에 정신이 확 들었다. 그는 뭔가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것 같으면서도 제대로 알아내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하하하. 장난이야.”서명월이 가볍게 웃어넘겼다.이도현은 분위기가 어색해지기 전에 얼른 화제를 돌렸다.“일곱째 선배. 저한테 방어용 보물이 한 개 더 있는데 이것도 가지고 계세요. 위급할 때 목숨을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또 보물을 주다니... 후배한테서 이미 많은 걸 받아서 더는 부담스러워. 이건 네가 잘 간직해라.”서명월이 단칼에 거절했다.“선배. 이 보물은 지금 당장 저한테 필요 없어요. 위험한 상황이 지나면 다시 찾으러 올게요. 선배도 태허산 의술과 담약 제조에 능통하시잖아요. 그러니 이 향로는 선배께 딱 맞는 물건이에요.”이도현이 음양탑에서 붉은빛의 향로를 꺼내며 말했다.“후배... 이 조그만 물건이 바로 네가 말한 그 보물이야?”서명월은 이도현의 손바닥에 있는 자그마한 향로를 유심히 바라보면서 빙그레 웃었다.“선배, 보기엔 작아도 정말 특별한 보물이에요. 한때 제 목숨을 구해준 적도 있어요.”이도현이 향로를 어루만지면서 신기로 향로와 교감했다.‘잠시만 선배에게 빌려드리는 거야. 내가 없는 동안 위험한 일이 생기면 나 대신 선배를 잘 지켜줘.’하지만 향로는 싫다는 듯 빙글빙글 돌며 반기를 들었다. 이도현은 간절히 향로를 달래며 설득해야 했다.‘부탁이야... 내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꼭 도와줘. 선배가 위험에 처할 때만이라도... 제발.’결국 이도현의 애원에 향로가 못 이기는 척 받아들였다.“이 작은 향로가 네 목숨을 구해줬다고? 장난치는 거지?”서명월이 안 믿는다는 말투로 되물었다.서명월뿐만 아니라 윤선아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두 사람은 이도현의 손에 든 향로를 보면서 일반 향로랑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선배들. 이게 전부가 아니에요. 지금 보여드릴게요.”이도현이 원력을 주입하자 향로에서 붉은 불꽃이 치솟았다. 순식간에 향로가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책상만 한 크기로 변했다.향로는 붉은빛을 번쩍이면서 하늘로 끊임없이 불꽃을 뿜어댔고 강렬한 기운이 사방을 에워쌌
“일곱째 선배. 곧 떠나야 하는데 이렇게 가면 둘째 선배와 제가 너무 불안할 것 같아요. 제가 없는 사이에 적들이 찾아와 선배한테 시비를 걸 수 있어요. 이걸로 몸을 보호하는데 보탬이 되세요.”이도현이 진지하게 말하며 품에서 담약들을 꺼냈다.“이 바보 같은 녀석아.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준 공간 반지와 담약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데 이렇게 귀한 걸 또 어떻게 받아.”서명월이 토라진 척했지만, 속은 뭉클했다. 두 번 만난 후배가 자신을 이토록 챙기니 마음이 따뜻했다.‘좋은 물건이 생기면 내 몫도 챙겨주고 위험한 길 떠나기 전에는 목숨을 지킬 물건까지 주다니.’“선배. 저를 남으로 생각하면 섭섭해요. 선배는 저에게 친누나처럼 소중한 분이에요.”이도현은 음양탑에서 구현단과 영모단 열 알씩을 꺼내 일곱째 선배에게 건넸다.“선배, 이건 구현단과 영모단이에요. 충성스러운 고수 제자들에게 나눠주시면 복용 후 수행 경지가 한 단계 도약할 거예요.”이도현이 또 다른 병을 꺼내며 말을 덧붙였다.“이 담약들은 제가 직접 제련한 거예요. 구현단보다는 약하지만, 경지 돌파에 충분히 도움이 될 거예요. 재능 있는 이들은 한 경지쯤은 거뜬히 뛰어넘을 테니, 백 알을 전부 드릴게요.”이 담약들은 이도현이 직접 제련해낸 거라 얼마든지 더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있는 만큼 먼저 일곱째 선배에게 모두 드렸다.“아니... 후배야... 이렇게 과분한 선물을... 마음은 고맙지만 받기도 거절하기도 어렵구나.”서명월이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쯧쯧, 이 녀석아. 이렇게까지 할 거면 내가 네 아이를 낳아야 마음이 편해지겠는데? 그래. 담약은 받겠다. 하지만... 너무 많이는 바라지 마. 많아봤자 아이 둘만 낳아줄 거야.”선배의 돌직구에 이도현은 얼굴이 단박에 붉어졌다.“일곱... 일곱째 선배. 그건 좀... 그게...”“호호호. 얼굴이 빨개졌네. 왜? 설마 내가 너한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야?”서명월이 장난치자, 이도현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아니
“그래. 모두 네 뜻대로 하자.”윤선아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지금 당장 돌아간다고? 안 돼. 둘째 선배와 도현 후배가 이렇게 먼 길을 왔는데 며칠 더 놀다 가야지. 벌써 가지 마.”서명월이 아쉬움을 드러내며 손사래를 쳤다.“명월 후배. 우리가 천사국에서 이토록 난동을 부렸는데 더 이상 이곳에서 지내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겠어? 차라리 우리와 함께 동방으로 돌아가는 게 어때? 네가 혼자 이 먼 곳에 있는 게 항상 마음에 걸렸어. 우리랑 같이 돌아가자. 그래야 우리도 마음이 놓여.”윤선아가 설득에 나섰다.“맞아요, 일곱째 선배. 이런 외딴곳에 계실 게 뭐가 있어요? 같이 돌아가요.”이도현도 거들었다.“안 돼. 내가 이곳에 온 것은 태허산을 위한 거점을 세우기 위해서야. 이제 막 기반을 닦았는데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어.”서명월이 단호하게 말했다.“둘째 선배도 알잖아요. 동방과 서방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에요. 그저 천하의 한구석일 뿐이죠. 도현 후배가 강해질수록 우리는 더 넓은 세상을 마주하게 될 거고... 이곳에 거점을 두는 것은 앞으로 우리 태허산에 이득이 될 거예요.”서명월의 눈빛이 갑자기 깊어졌다.“일곱째 선배...”이도현이 더 말하려 하자 서명월이 단호히 그의 말을 막았다.“됐어, 이놈아. 너는 네 길을 가고, 나는 내 사명을 지킬 거야. 사명을 다하면 나도 자연스럽게 떠날 거야. 둘째 선배랑 돌아가야 한다면 조금 있다가 가.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나도 이곳에서 지낸 세월이 있으니 내 앞가림은 할 수 있어.”서명월이 평소답지 않게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네...”이도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이도현은 선배가 얘기한 사명이 뭔지는 모르지만 평소 장난기 가득한 일곱째 선배의 얼굴에서 진지하고 확고한 다짐을 보았다.“됐어, 도현 후배. 더 이상 명월 후배를 난감하게 하지 마.”윤선아가 갑자기 말머리를 돌렸다.‘사명'이라는 말에 그녀의 눈동자에 잠깐의 그림자가 스치더니 더는 서명월을 설득하지 않았다.그녀는 이도현
이도현은 선배들을 제외하면 두려움을 모르는 자였다.그러니 마룡 천왕이나 광명왕 같은 자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든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천사국 땅에서 그들이 감히 덤빈다면 그는 단칼에 죽여버리면 그만이었다.싸움을 건다면 맞서 싸우면 그만이지, 두려울 게 하나도 없었다.이도현이 자신의 물건을 되찾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고 누구에게도 미안할 필요가 없었다.상대를 죽이는 것은 그들이 제 발로 죽음을 자초했기 때문이다.이도현은 이런 일들을 전혀 마음에 담지 않았다.게다가 그는 서양인들이 득실대는 이 땅에 더 머무를 마음이 없었기에 이미 돌아갈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이도현은 광명왕의 성을 나와 황량하게 펼쳐진 산과 들판에 이르자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더니 텅 빈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둘째 선배, 일곱째 선배. 인제 그만 나타나시죠. 제가 성안으로 들어갈 때부터 두 분이 뒤따라오셨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더 숨을 필요가 있나요?”사실 광명왕의 성채 안으로 들어갈 때부터 이도현은 이미 두 선배가 자신의 뒤를 따랐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선배의 체면을 생각해 모르는 척 연기했던 것이었다.이도현이 광명왕의 성채에서 행동을 자제한 것도 선배들 때문이었다. 일을 크게 만들었다가 선배들까지 나서면 그녀들이 위험에 빠질까 봐 걱정되었다.그래서 광명왕의 성채에 있을 때, 이도현은 마구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 참았다.그렇지 않고 그의 성격대로 했으면 광명왕은 아마 이렇게 가벼운 상처만 입는 것이 아니라 마룡 천왕보다 더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다.“히히히... 결국 네놈한테 들통났구나. 이 못된 놈아, 조금만 더 모르는 척해주지. 굳이 나와 선배를 드러내 체면을 구겨야만 했어?”서명월과 윤선아가 먼 산봉우리에서 모습을 드러내면서 날아내려 왔다. 서명월이 이도현을 바라보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선배들도 참. 제가 따라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다행히 위험한 상황은 없었지만...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일어났다면 제가 선배들을 위험에 빠뜨린 셈이 되잖
“안 됩니다... 천왕 전하, 어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제발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사람들은 순식간에 경악하며 소리쳤다.광명왕의 한 마디에 그들은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들은 오늘의 지위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광명왕의 단 한마디로 무너져 버렸으니, 누구도 이 결과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왜냐고? 그런 질문을 할 면목이 아직도 남아 있더냐? 무슨 이유인지 너희가 더 잘 알 텐데.”광명왕은 비꼬듯이 말했다.“존귀하신 천왕 전하, 설령 우리에게 잘못이 있다 해도 이렇게까지 하시는 건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는 지금껏 천왕 전하의 곁을 묵묵히 지켜왔습니다.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이렇게 매정하게 나오시면 안 됩니다...”한 마법사가 분노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그들은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부터 챙기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죽을 거 뻔히 알면서 무턱대고 달려드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의 정? 하하하. 너희들이 날 위해서 뭘 그렇게 많이 했는데? 내가 매정해? 내가 왜 너희들을 여태까지 곁에 끼고 살았는데? 강적이 나타났을 때 누군가가 나를 위해 앞장서서 방패가 되어주길 바라기 때문이지. 그런데 너희들이 방금 무엇을 했더냐? 뒤로 물러선 것도 모자라 내가 자존심을 내려놓고 적을 돌려보내니까 그제야 나서서 염치없는 빈말이나 하지 않았더냐? 정말 역겨워서 못 들어주겠더라.”“본 왕은 조금 전의 명령을 거두어들일 생각이 없으니까 남고 싶은 사람은 남고 떠나고 싶은 사람은 떠나도 좋다. 나는 더 이상 쓸모없는 자들을 먹여 살릴 생각이 없으니까 떠나고 싶은 사람은 지금 당장 떠나라.”광명왕은 말을 마치고 더 이상 그들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오늘 광명왕은 체면을 완전히 잃었다. 하지만 그는 이 굴욕을 그냥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이도현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반드시.’그는 다른 천왕들과 손을 잡고 이도현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는 이
“아... 천왕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천사는 충격에 빠진 얼굴로 광명왕을 바라보며 혹시나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광명왕이 나를 죽이려 한다니, 그것도 참살하겠다니... 믿을 수가 없어.’천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못 들었나? 다시 한번 말해줄까? 네놈을 참살하겠다고 했다.”광명왕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아… 천왕님…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존귀하신 천왕 전하,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저를 죽이려 하시는 겁니까… 제발…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천사는 그제야 비로소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오늘의 행동이 지나쳤음을 알아차렸다.“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른다고? 네 놈이 본 왕을 얼마나 오랫동안 속이고 기만했는데 어떻게 모른다는 말이 나와? 내가 정말 바보로 보이냐? 너희들이 평소에 나를 속이던 것은 한 눈감아줄 수 있어. 그런데 강적이 나타났는데도 어떻게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아? 그저 자기에게 피해가 갈까 봐 하나같이 머리를 숙이고 나를 앞세우고는 뒤에서 조용히 숨어 있었지.”“본 왕이 자존심을 버리고 이도현을 돌려보내니까 그제야 나서서 너희들이 얼마나 잘났고 용감한지 보여주겠다고? 조금 전에는 왜 나서지 않았어? 이도현이 있을 때는 왜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겁에 질려 벌벌 떨기만 했는데, 이제 와서 공을 세운 것처럼 굴고 있느냐?”“끌어내서 참살해라.”광명왕은 격앙된 목소리로 병사들에게 명령했다.그러자 병사 몇 명이 쏜살같이 달려들어 그 천사의 팔다리를 끌고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천왕님… 존귀하신 천왕 전하, 제발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을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천왕 전하께 충심을 다하겠습니다. 위대하신 전하…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천사는 발버둥 치며 애걸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 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처참한 비명이 들려왔다. 참살당한 것이 분명했다.
과거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광명왕은 늘 싸우려는 자들을 말리면서 진정시키곤 했다.그래서 사람들은 겉으로만 분노를 표현하며 형식적으로 열의를 보이다가, 광명왕이 달래주면 마지못해 물러나는 척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의 용기와 충성을 동시에 과시할 수 있었고, 광명왕 역시 그들의 충성심과 용기를 칭찬하며 인정해 주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싸우지도 않고 광명왕에게 잘 보이는 목적을 달성한 셈이었다.이번에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흘러갈 줄 알고 다른 사람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가장 먼저 나서서 전쟁을 청한 것이었다. 또한, 첫 번째로 나서서 눈도장도 찍으려 했다.하지만 그는 광명왕의 태도가 바뀔 줄을 꿈에도 몰랐다. 광명왕이 평소대로 움직이지 않고 뜻밖에도 승낙해버린 것이다.그는 갑작스러운 응답에 당황한 나머지 이미 준비했던 말을 결국 꺼내지 못했다.솔직히 말해서 그는 광명왕이 자신을 말릴 때 어떤 감정으로 어떻게 대답할지까지 다 예상해 놓았다.하지만 광명왕이 갑작스럽게 승낙하자 그는 준비했던 말을 모두 할 수 없게 되었다.한순간 그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저 멍한 얼굴로 광명왕을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쩍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광명왕은 그런 부하의 모습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머릿속에 과거의 같은 장면들이 떠올라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그는 예전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부하들에게 바보처럼 속여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뿐더러 그것을 자랑으로 여겼으니 말이다.만약 이번에 이도현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는 계속해서 저들에게 속이며 어리석게 살아갔을 것이다.이전에 충성심과 용기가 있다고 여긴 자들을 지금 다시 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역겹기 그지없었다.“가라고 했다. 왜 아직도 거기 서 있는 거냐? 본 왕이 허락했으니까 당장 가서 이도현의 머리를 베어라. 어서...”광명왕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존경하는 광명왕 전하. 저는... 저는...”그 천사는 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