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후의 반응을 보니 믿지 않는 게 분명하다. 오랜 세월을 함께 보냈고 목숨을 내어줄 정도로 소중한 사람인데 아무 관계가 아니라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유강후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온다연의 부드러운 입술을 쓰다듬어며 물었다. “그 사람이랑 몇 번이나 입맞췄어?” 온다연은 그의 엄지손가락을 잡으며 말했다. “한 번도 없다고 하면 안 믿을 거죠? 아무튼 아저씨가 생각하는 것과 달라요. 주한이는 특별한 사람이거든요.” 그녀의 목소리는 가볍고 부드러우면서도 그 속에 담겨있는 무언의 슬픔이 느껴졌다. “이 세상에서 제일 깨끗하고 따뜻한 사람이에요. 목숨 걸고 저랑 주희를 지켜준 사람이기도 하고요.” 이 세상에서 주한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게 유강후라 해도 불가능하다. 유강후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뭐가 다른데?” 사진 속의 주한은 확실히 청초하고 깔끔하게 잘생겼다. 하지만 외모만으로 봤을 때 유강후는 본인이 주한을 능가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온다연이 주장하는 차이점이 뭔지 이해하지 못했다. 온다연의 눈에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무의식적으로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쥔 채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냥 달라요. 이제 그만 물어봐요... 정말 신경 쓰이는 거면 날 이렇게 붙잡아둘 필요가 없잖아요. 차라리 그냥...” 유강후는 입술로 그녀의 말을 막고선 벌을 주듯 세게 깨물었다.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그런데 생각 없이 함부로 말하는 그 버릇 좀 고쳐.” 온다연은 겉보기에 부드럽지만 실제로는 고집이 엄청 세서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은 칼로 입을 비틀어도 절대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유강후에게는 다른 방법이 있었다. 온다연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호소했다. “아파요. 살살해요.” 유강후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또 함부로 말하면 다음에는 이렇게 안 넘어간다?” 그 말을 끝으로 유강후는 온다연에게 입맞춤했다. 이어진 키스는 유강후처럼 격렬했고 온다연이 숨을
유강후는 그녀가 얼굴을 붉히는 모습을 가장 좋아해서 참지 못하고 그녀를 꼭 붙들어 찐하게 입을 맞추고 나서야 말했다. “계약 세 가지 맺자고 했지? 남은 두 가지는?” 온다연은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그리고 저도 제 친구가 있는데 제가 친구들을 사귀는 걸 막지 말아 줘요.” 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그래.” 입으로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천만 가지 대책들이 떠올랐다. 각각의 계획이 그녀를 벗어날 수 없는 덫으로 가둘 생각이었다. “세 번째는 뭐지?” 온다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기가 좀 더 괜찮아지면 저도 정상적으로 일을 하거나 학교에 다니고 싶어요...” 마치 유강후가 동의하지 않을까 두려운 듯 온다연은 얼른 덧붙였다. “만약 아저씨가 허락하지 않으면 아기를 데리고 아저씨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갈 거예요.” 유강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일하거나 학교에 다니는 거 허락할게.” 그에게는 친구 사귀는 문제보다 일이든 학교든 훨씬 통제하기 쉬운 일이었다. 특히나 임혜린 같은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친구는 온다연에게서 멀리 떨어지게 할 생각이었다. 온다연은 그가 너무 쉽게 동의하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동의한다고요? 그렇게 빨리요?” 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소용이 있어? 어차피 몰래 할 거잖아.” 온다연은 가느다란 손가락을 꼬며 조용히 대답했다. “알고 있다면 됐어요.” 그때 이권이 밖에서 들어왔다. “셋째 도련님, 주희 씨의 상태가 좀 나아졌습니다. 헌혈자도 몇 명 도착해서 이제 온다연 씨도 안심하셔도 됩니다. 또한, 혈액 전문의도 국내에 도착했습니다. 앞으로 두 시간 정도면 경원시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주희 씨도 운이 참 좋네요. 이 정도로도 살아남다니!” 온다연은 그 말을 듣고 가슴에 걸려 있던 돌이 한순간에 내려앉았다. 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꽉 쥐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안심됐어?” 온다연은 침대에 무릎
이날 밤 온다연은 깊이 잠들어 있어 유강후가 언제 떠났는지도 몰랐다. 동이 트기 직전, 여러 대의 헬리콥터가 병원 옥상에 요란하게 착륙했다. 유강후는 인큐베이터를 직접 안고 급히 헬기에서 내려 미리 대기하던 그웬에게 상자를 건넸다. 그웬을 제외하고는 병원의 모든 인원이 회의에 불려간 상태였기 때문에 작은 아기가 언제 무균실에 들어왔고 언제 구조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그웬뿐이었다. 사무실에서 로운이 옷을 갈아입고 나왔고 유강후를 보자마자 키가 190cm에 달하는 큰 체격의 로운이 즉시 무릎을 꿇었다. “셋째 도련님, 우리 어린 주인님은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유강후는 그를 일으켜 앉히고 상황을 물었다. 새벽에 유강후는 갑작스레 전화를 받았다. 양준구에게 사고가 발생하여 공항으로 사람을 맞이하러 와달라는 것이었다. 양준구는 유강후의 생사를 함께한 친구이자 동남아시아 최대 부동산 사업자이자 조직을 이끄는 인물이었다. 이 전화가 오자마자 유강후는 큰일이 생겼음을 직감하고 공항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가 공항에 도착했을 때 마주한 것은 아기 인큐베이터를 품에 안은 양준구의 측근 로운뿐이었다. 로운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저희 주인님께서 사촌 동생 양시안에게 배신당했습니다. 부인 하이연 씨는 독을 먹고 위험에 처했으며 주인님께서는 그저 어린 주인님이라도 구하기 위해 아기를 조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인님께서는 어린 주인님을 당신께 맡기고 부인 곁으로 가셨습니다...” 로운은 울음을 참지 못하고 이어 말했다. “지금 양 씨 가문은 양시안이 장악했습니다. 그 자는 원래 주인님이 키운 사람이었는데 결국 악랄한 늑대를 키운 셈이 되었습니다. 저는 구 어르신을 대신해 반드시 복수를 해야겠습니다!” 그는 열쇠 모양의 옥패를 꺼내어 두 손으로 정중히 내밀며 말했다. “이것은 구 어르신과 부인께서 어린 주인님에게 남긴 유품입니다. 이는 양 씨 가문의 삼대에 걸친 재산이 보관된 금고의 열쇠이니 어린 주인님이 성인이 되면 꼭 전해주십시오.” “구 어르신께서 말
잠시 후 소형 헬리콥터 한 대가 병원 옥상에서 빠르게 이륙해 하늘로 사라졌다. 이곳은 유강후의 개인 병원이라 헬리콥터의 이착륙이 잦았기에 이번 이륙도 특별한 주목을 끌지 않았다. 헬리콥터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이권이 말했다. “셋째 도련님, 그 조직은 십 년간 심혈을 기울여 쌓아 오신 것입니다. 그 가치는 말로 다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유강후는 먼 하늘을 보며 말했다. “양준구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준구가 이토록 나를 신뢰하며 아기를 맡겼으니 계정 하나쯤은 별것 아니야.” 이권이 무언가 더 말하려 했지만 유강후가 가로막았다. “다연이는 깼어?” 이권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직 아닙니다. 장 집사가 막 만든 아침 식사를 가져왔으니 조금 드시죠.” 유강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 쪽으로 향했다. 병실에 들어서자 온다연이 침대에 기대어 멍하니 앉아있는 게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유강후를 보자 약간 더 정신이 들었는지 먼저 그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작게 속삭였다. “어디 갔었어요?” 유강후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좀 일 있어서 회사에 갔었어. 왜? 나 보고 싶었어?” 온다연은 고개를 저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아요.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거든요.” 그녀는 유강후의 옷자락을 잡고 불안한 듯 물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해 줘요. 아기 지금 어떻게 된 거예요?” 유강후는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안심시켰다. “많이 좋아졌어. 아까 가서 그웬 박사와 얘기했는데 아기도 조금 더 자랐고 상태도 훨씬 안정됐대.” 온다연은 금세 기운을 차리며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럼 문밖에서라도 아기를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요?” 유강후가 대답이 없자 급해져서 말했다. “한 번이면 돼요! 딱 한 번만!” 하지만 의외로 유강후는 바로 동의했다. 온다연은 믿을 수 없었다. “진짜요?”
유강후는 그녀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참지 못하고 살짝 고개를 숙여 붉어진 그녀의 귀 끝을 가볍게 깨물며 속삭였다. “더한 것도 이미 했는데 이 정도는 괜찮잖아?” 그는 그녀를 들어 올려 세면대 위에 올려놓고 젖은 머리카락을 천천히 정성껏 닦아주며 말했다. “그리고 네가 내 아기를 낳아주었으니 내가 직접 돌봐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아기가 언급되자 온다연의 눈에 작은 반짝임이 더해졌다. 그녀는 기쁜 듯이 말했다. “빨리 먹고 우리 가서 문밖에서라도 아기를 잠깐 봐요.” 그녀가 아기를 기대하는 모습이 어딘가 가슴 아팠던 유강후는 손을 그녀의 부드러운 뺨에 올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연아, 앞으로도 우리에겐 아기가 더 생길 거야.” 온다연은 그의 말이 어딘가 이상하게 들려 긴장된 눈빛으로 물었다. “혹시 아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죠?” 유강후는 그녀를 바라봤고 눈빛에는 슬픔이 담겨있었다.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 나중에 아기가 더 많이 생길 거라고. 너도 아기를 무척 좋아하지 않아?” 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었다. “아기들은 너무 귀여워요. 정말 착하고 사랑스러워요.” 유강후는 그녀의 귀에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우리 두 명 더 낳을까?” 그의 따뜻한 숨결이 온다연의 목덜미를 간지럽히자 그녀의 얼굴은 더욱 빨개졌다. “세 명은 너무 많지 않나요?” 유강후는 부드럽게 그녀를 유혹하듯 말했다. “아니야. 내 아기는 네가 낳아줘야만 해. 그러니까 몸을 잘 회복하고 우리 함께 노력하자.” 온다연은 얼굴이 더욱 빨개졌고 목까지 빨개졌으며 부끄러운 듯 작게 말했다. “제발 그만 말해요...” 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가 그녀의 입술을 가볍게 덮으며 깊은 키스를 나눴다. 공간 안은 속삭임과 그의 낮고 부드러운 유혹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한참 후 유강후의 품에 안겨 나온 온다연은 입술이 빨갛게 부풀고 한쪽이 살짝 트여 있었다. 죽을 한 입 마셨지만 아픈 듯이
그러면서 유강후는 온다연을 안고 병실 밖으로 나섰다. 온다연은 문 앞에서 간호사가 입을 가리고 몰래 웃고 있는 걸 보고 얼굴이 확 달아오르며 몸부림쳤다. “내려줘요! 저 혼자 걸을 거예요!” 그러나 유강후는 온다연을 절대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팔에 힘을 더 주며 차가운 눈길로 간호사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웃기나?” 간호사는 깜짝 놀라 급히 고개를 저었다. 유강후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우리 얘기 소문내는 소리 한 번이라도 더 들리면 다들 일하지 말고 나가요!” 간호사는 겁에 질려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온다연은 작게 속삭이며 말했다. “너무 무섭게 굴어요!” 유강후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내가 아무에게나 이렇게 참을성이 많을 거라 생각해?” 그는 키가 크고 다리가 길어서 얼마 안 가 아이가 있는 병실 앞에 도착했다. 이번엔 그웬의 표정이 이전보다 부드러워 보였다. 그는 다소 어눌한 한국어로 말했다. “온 아가씨, 아이 상태가 많이 나아졌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는 온다연을 바라보는 눈에 깊은 동정과 연민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유강후가 경고하는 눈빛을 보내자 다시 냉정을 찾았다. “오늘은 여기서 조금 더 오래 볼 수 있지만 안에 들어가지는 마세요. 아직 인큐베이터를 떠나기엔 이릅니다.” 온다연은 문에 기대어 거의 눈도 깜빡이지 않고 인큐베이터 안을 들여다보았다. 인큐베이터가 커진 듯했고 특수 제작된 투명 덮개를 통해 안의 작은 존재가 제법 뚜렷하게 보였다. 정말 조금은 커진 것 같았다. 아직 빨갛고 몸에 여러 관이 꽂혀 있어서 구체적인 모습은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온다연은 그저 가슴 벅찬 기쁨을 느꼈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아이를 바라보며 잠시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가득 차 있었다. 온다연은 두려움과 긴장감에 휩싸였다. 두 번이나 꾼 악몽이 그녀를 절망의 끝으로 몰아넣었고 그동안 이 아이를 잃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도 현대 의학
유강후의 눈동자에 잠시 고통의 기색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웬이 그러는데 이전 검사 결과가 약간 부정확했을 수도 있대. 아기가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약간 더 컸던 것 같아. 네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성장이 더뎠을 뿐이고 지금의 특별한 환경에서는 아기가 좀 더 빨리 자랄 수 있는 것 같아...” 유강후 본인도 이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온다연은 그의 말을 믿었다. 그렇지만 온다연은 여전히 의문스러워했다. “병원 검사도 이렇게 부정확할 수 있나요?” 유강후는 단호하게 말했다. “모든 건 그웬의 말을 따르자. 그는 이 분야에서 최고 권위자니까.” 온다연은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아기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그 후 그녀는 주희를 보러 갔다. 주희는 여전히 혼수상태에 있었고 의사에 따르면 내출혈이 심해서 최소 보름 정도는 지나야 깨어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래도 다행히 제때 치료받아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온다연은 그제야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모든 일이 점점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며칠 뒤, 드디어 섣달그믐날이 찾아왔다. 유강후는 온다연을 데리고 전통 한옥으로 돌아갔다. 강해숙도 함께였다. 작은 전톡 한옥은 소란스럽지 않았지만 무척이나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였다. 노란색 전등 불빛이 커다란 창문을 통해 흰 눈으로 덮인 마당을 따스하게 물들였다. 저녁 식사는 풍성하게 차려졌고 장화연이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요리를 준비해왔다. 그녀는 또 직접 담근 과일주까지 꺼내놓았다. 온다연은 한 입 맛보자마자 과일 향이 가득한 달콤한 맛에 빠져들었고 그만 술잔을 놓지 못했다. 그러다 결국 한 잔을 비우고는 장화연에게 술을 더 따라달라고 졸라댔다. 유강후는 온다연의 얼굴이 붉어지자 곧바로 그녀의 술잔을 빼앗아 더 이상 마시지 못하게 했다. 온다연은 아무 말 없이 촉촉한 눈망울로 그를 바라보며 약간의 간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유강후의 얼굴을 차갑게 변했
이때 강해숙은 몇 개의 붉은 봉투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새해라 선물은 준비하지 못했지만 대신 세뱃돈을 준비했어.” 그러고는 가장 큰 봉투 하나를 꺼내 장화연에게 내밀며 말했다. “장 집사, 이건 당신 거야. 강후와 온다연을 잘 보살펴줘서 고마워.” 장화연은 눈가가 살짝 붉어지며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강해숙은 다시 가장 두툼한 봉투를 뽑아 온다연에게 건넸다. “온다연, 이건 너한테 주는 거야.” 온다연은 잠시 멍하니 있더니 이내 마음 깊은 곳에서 복잡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몇 년 동안 세뱃돈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세뱃돈을 받은 건 아마도 십수 년 전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손을 옷에 여러 번 닦아내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봉투를 받아 들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강 대표님.” 봉투는 묵직했고 안에 무언가 꽉 찬 느낌이었다. 온다연은 살짝 열어보니 두툼한 현금 다발과 몇 장의 금색 신용카드가 들어 있었다. 온다연은 낮게 속삭였다. “강 대표님, 이건 너무 많아요.” 강해숙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많지 않아.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직접 사. 난 요즘 젊은 사람들 취향을 잘 모르거든.”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덧붙였다. “이 카드는 내가 따로 준비한 거야. 유강후가 막으려 해도 소용없으니 마음껏 써.” 유강후는 얼굴을 찌푸리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온다연에게 왜 그렇게 많은 돈을 주시는 거예요?” 강해숙은 그를 한 번 쳐다보고는 약간 불만 섞인 어조로 말했다. “네가 뭘 알아? 네가 모든 걸 준비해도 온다연에게 필요한 게 없을 것 같아?” 그녀는 온다연을 한 번 바라보고 담담하게 말했다. “다연아, 강후가 뭐라 하든 신경 쓰지 마. 이 카드는 강후와 무관해. 사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사. 너는 우리 강 씨 가문의 며느리야. 건물 하나 사는 것도 별일 아니니까.” 온다연은 고개를 숙이고 눈가가 살짝 붉어지며 작게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