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강해숙은 몇 개의 붉은 봉투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새해라 선물은 준비하지 못했지만 대신 세뱃돈을 준비했어.” 그러고는 가장 큰 봉투 하나를 꺼내 장화연에게 내밀며 말했다. “장 집사, 이건 당신 거야. 강후와 온다연을 잘 보살펴줘서 고마워.” 장화연은 눈가가 살짝 붉어지며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강해숙은 다시 가장 두툼한 봉투를 뽑아 온다연에게 건넸다. “온다연, 이건 너한테 주는 거야.” 온다연은 잠시 멍하니 있더니 이내 마음 깊은 곳에서 복잡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몇 년 동안 세뱃돈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세뱃돈을 받은 건 아마도 십수 년 전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손을 옷에 여러 번 닦아내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봉투를 받아 들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강 대표님.” 봉투는 묵직했고 안에 무언가 꽉 찬 느낌이었다. 온다연은 살짝 열어보니 두툼한 현금 다발과 몇 장의 금색 신용카드가 들어 있었다. 온다연은 낮게 속삭였다. “강 대표님, 이건 너무 많아요.” 강해숙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많지 않아.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직접 사. 난 요즘 젊은 사람들 취향을 잘 모르거든.”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덧붙였다. “이 카드는 내가 따로 준비한 거야. 유강후가 막으려 해도 소용없으니 마음껏 써.” 유강후는 얼굴을 찌푸리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온다연에게 왜 그렇게 많은 돈을 주시는 거예요?” 강해숙은 그를 한 번 쳐다보고는 약간 불만 섞인 어조로 말했다. “네가 뭘 알아? 네가 모든 걸 준비해도 온다연에게 필요한 게 없을 것 같아?” 그녀는 온다연을 한 번 바라보고 담담하게 말했다. “다연아, 강후가 뭐라 하든 신경 쓰지 마. 이 카드는 강후와 무관해. 사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사. 너는 우리 강 씨 가문의 며느리야. 건물 하나 사는 것도 별일 아니니까.” 온다연은 고개를 숙이고 눈가가 살짝 붉어지며 작게 속삭였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강해숙이 다시 방에 들어왔다. 그녀는 잠시 아들을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 나와 보겠니?” 유강후는 온다연을 조심스럽게 옆에 눕히고 담요를 덮어주었다. 그녀가 여전히 손에 꼭 쥐고 있는 세뱃돈을 빼내려 했으나 온다연이 너무나 단단히 쥐고 있어서 몇 번을 시도해도 안 되자 결국 포기했다. 아들이 미련 가득한 눈빛으로 온다연을 쳐다보는 모습을 본 강해숙은 가늘게 한숨을 쉬며 조용히 말했다. “여기서 얘기하자.” “아이의 일은 언제 온다연에게 말할 생각이니?” 유강후는 온다연을 내려다보며 부드럽게 그녀의 뺨을 쓸어내리며 아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번 생엔 절대 알지 못할 거예요.” 강해숙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양준구의 일에 너무 깊이 관여하지 말아라. 그쪽은 상황이 복잡해서 한 번 발을 들이면 무사히 빠져나오기가 힘들어.” 유강후는 담담하게 답했다. “저는 제 선을 지킬 겁니다.” 강해숙은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네가 뭘 하든 내가 간섭할 순 없지만 절대로 강 씨 가문을 끌어들이지 말아야 한다. 네 외할아버지도 이젠 연세가 꽤 되셔서 너더러 빨리 손주를 안겨달라고 하시니...” 그녀는 잠들어 있는 온다연을 한번 흘끗 바라보고는 말을 멈췄다. 한참 침묵이 흘렀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다시 물었다. “결혼 날짜는 정해졌니?” 유강후는 짧게 답했다. “다연이가 퇴원하면 바로 혼인신고를 하고 이후에 결혼식을 할 예정입니다.” 강해숙은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그녀는 소파 쪽으로 가더니 길고 가느다란 담배를 한 개비 꺼내어 불을 붙였다. 한참 후, 그녀는 낮게 속삭였다. “미래 그룹 본사를 북아메리카로 옮기고 싶어 한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유강후는 대답하지 않고 온다연의 등을 천천히 두드려 주었다. 강해숙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건 간단한 일이 아니야. 네가 정말로 그렇게 할 생각이라면 서둘러 계획해야 해. 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너를 많이 도와줄 수는 없
온다연은 한참 동안 말없이 그를 안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조용히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그 강한 심장 박동 소리를 들었다. 이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저씨, 이게 정말인가요?” 오늘 하루 동안 일어난 모든 일이 마치 꿈같이 느껴졌다. 얼음 같은 세상에 오래 머물다가 갑자기 따뜻한 방으로 들어와 따끈한 음식을 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너무나도 오랜 시간 외로움에 익숙해져 있던 그녀에겐 마치 한낱 환상처럼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부드러운 손으로 유강후의 허리를 감싸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정말 오랫동안 누구와 함께 새해를 보내본 적도 같이 불꽃놀이를 본 적도 없어요. 설날에 세뱃돈을 받아본 것도 언제가 마지막인지 기억이 안 나요. 마지막으로 받은 건 아마도 주...” “아저씨, 저 정말 행복해요. 오늘이 참 좋아요.” 그녀의 말은 마치 작은 바늘들이 그의 가슴에 하나씩 박히는 것처럼 아프게 다가왔다. 그는 온다연에게 자유로운 삶을 준다고 생각했었지만 오히려 그 자신이 그녀를 지독한 악몽 속으로 떠밀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그녀의 곁에 머물러 준 사람은 다름 아닌 다른 남자였다. 그 남자는 그녀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아 유강후조차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는 온다연을 더 강하게 끌어안고는 그녀를 꼭 안은 채 다급하게 입을 맞추고 싶어졌다. 마치 그렇게 해야만 그녀가 자신의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온다연은 손을 입술 위에 대며 막았다. “안 돼요. 양치도 안 했는데!” 그때, 밖에서 또다시 불꽃놀이가 시작되는 소리가 들렸다. 온다연이 고개를 들어 다시 불꽃을 보려 하자 유강후가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만 봐. 우리 방에 가자.” 그는 불꽃놀이 따위는 이제 보이지 않길 바랐다. 더 이상 주한이라는 이름이 떠오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안 돼요, 조금만 더 보고 싶어요!” “안 돼. 착하지. 방에 가서 양치하자!” “아저씨, 안 돼요..
유강후는 온다연이 도망칠 틈을 절대 주지 않았다. 그녀를 단단히 무릎 위에 고정하고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다시 한번 깊게 물었다. 고통에 온다연은 가볍게 몸을 떨었다. “으... 조금만 부드럽게... 너무 아파요…” 유강후는 그녀의 부드러운 허리를 힘껏 감싸며 가빠진 숨소리로 속삭였다. “다연아, 내가 누군지 말해봐.” 그의 단단한 손이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고 깊은 눈빛이 그녀를 사로잡고 있었다. 온다연은 그의 강렬한 시선과 동작에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숨이 가빴다. 그녀는 입을 열어 힘겹게 대답했다. “유강후... 아저씨 유강후잖아요...” 그는 그녀의 손을 자신의 손에 얹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다른 사람은 절대 생각하지 마. 오직 나만 생각해, 알겠어?” 온다연은 그의 강한 손길에 놀라 손을 재빨리 빼려 했지만 그는 놓아주지 않고 부드럽게 그녀의 귀를 물었다. “다연아, 내가 누구라고?” 몸이 자연스레 떨리며 온다연은 대답했다. “유강후!” “틀렸어!” 하지만 그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그녀의 귓불을 살짝 물고 속삭였다. “그게 아니야. 넌 ‘내 남자’라고 해야지.” “다시 대답해 봐. 내가 누구라고?” 그녀는 그 몇 글자가 입에서 떨어지지 않아 입술을 세게 물었다. 유강후의 손아귀 힘은 더욱 거세졌고 그녀의 허리를 잡아 아래로 눌렀다. 몸에 닿는 온도에 그녀는 두려워졌고 유강후에게 애원했다. “안돼요. 아저씨, 이러지 마요.” 그는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착하지? 얼른 얘기해 봐, 내가 네 남자라고. 말하면 안 할게.” 그녀는 차마 그 말을 입에 담을 수 없었고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눈앞이 흐릿한 게 곧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유강후는 그녀의 표정에 잠시 흔들렸지만 이 순간을 놓칠 수 없었다. 그때, 온다연은 저항을 포기하고 그를 받아들였다. 유강후는 온다연의 마음속에 자신의 존재를 깊이 새기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자신의 것이라는 걸 인지할 수
그는 해열제를 가져와 그녀에게 먹이고 뜨거운 물과 우유도 마시게 했다. 그녀의 얼굴은 열이 올라 분홍빛이 돌았고 눈빛은 흐릿했지만 그는 결코 그녀를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녀를 아래에 눕히고 나직하게 계속 그녀에게 물었다. “다연아, 내가 누구라고?” 온다연은 열로 인해 몸이 불편하고 졸리기도 했지만 그가 계속 강요하는 바람에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몇 마디 말도 여러 번 반복하니 점점 더 쉽게 대답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그녀는 희미한 의식으로 답했다. “유강후...” 그는 그녀의 귀를 살짝 깨물며 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래, 유강후는 누구지? 너한테 어떤 사람이야?” 온다연은 몸을 살짝 떨며 대답했다. “남자... 내 남자…” 그러나 유강후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녀를 유혹했다. “너의 남자는 누구야?” 온다연은 반사적으로 그에게 답했다. “유강후…” 유강후는 마치 보상이라도 하듯 그녀에게 가볍게 입 맞추며 말했다. “다시 말해봐. 너의 남자는 누구야?” “유강후…” 마치 의도적인 훈련처럼 여러 번 반복하며 연습을 계속했다. 결국 그 답이 그녀의 영혼에 각인된 듯이 익숙하게 되었다. 밤이 거의 밝을 때까지 유강후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온다연은 오후까지 푹 잠을 자고 나서 전날 밤의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유강후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가 다가오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고개를 숙이며 한쪽으로 숨기 바빴다. 정면으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대답하지 않았다. 정말 그가 너무 몰아붙일 때만 방으로 숨어버렸다. 유강후는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전날 밤에 너무 강하게 몰아붙여서 이런 반응이 나온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녀가 여전히 주한을 마음속에 담아두는 기회를 줄 생각이 없었다. 그녀의 몸과 마음은 그의 흔적만으로 가득 채워지고 그의 낙인이 찍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날 밤 같은 훈련을 반복해서 계속할 생각이었다. 그녀의 영혼
그러나 그는 여전히 부드럽게 달래며 말했다. “다연아, 착하지?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면 데리러 갈게.” 온다연은 여전히 침묵했다. 유강후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온다연, 벌써 저녁이야. 어디에 있는지 말해줘. 데리러 갈게.” 드디어 저편에서 온다연의 약간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는 항상 저를 강요해요.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요.” 말을 마친 그녀는 전화를 끊었고 다시 전화를 걸자 이미 꺼져 있었다. 이때 개를 산책시키는 이웃 아주머니 두 분이 지나갔다. 그중 한 분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옆 단지에서 어제 사람이 죽었대요. 어떤 어린 아가씨가 남자친구랑 싸웠는데 화가 나서 싸우고 나서 바로 뛰쳐나갔대요. 남자는 화가 나서 쫓아가지 않았다잖아요. 그 아가씨는 아픈 와중에 얇게 입고 나갔는데 결국 단지 뒷문에서 쓰러졌대요.” “요 며칠 날씨가 추웠잖아요. 밤에는 나가는 사람도 없으니 쓰러진 아가씨를 아무도 못 봤던 거지. 하룻밤 동안 그렇게 있었다가 얼어 죽었대요. 남자는 그걸 보고 후회해서 바로 기절하고 정신을 차려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 기절하고...” 골목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에 유강후의 가슴이 싸늘해졌고 손발까지 점점 차가워졌다. 그는 즉시 이권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이권, 온다연의 휴대폰 위치를 확인해 줘.” “온다연 씨는 병원에 있어요. 왜 위치를 확인하려고 하시죠?” 유강후는 그제야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온다연을 잘 지켜봐. 밖에 못 나가게 해. 바로 갈게.” 병원에 도착한 그는 온다연을 찾으려 이곳저곳 돌아다닌 끝에 아기 병실 옆에 있는 장비 보관실에서 그녀를 발견했다. 유강후를 보자마자 그녀는 일어서서 문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그의 품에 붙잡혔다. 그녀의 눈이 빨갛게 부어있는 것을 본 유강후는 살짝 가슴이 아팠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기를 보러 오려면 나에게 말해줘야지. 밖은 이렇게 추운데 혼자 걸어온 거야?” 온다연은 얼굴이 붉어지며 전날 밤
유강후는 잠시 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그리고 더 있어?” 온다연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오늘은 절대 저한테 키스하지 마요. 제가 직접 내려갈 거니까 안아주지도 마요!” 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주며 모든 요청을 다 들어주었다. “이제 나랑 같이 갈 수 있겠어?” 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유강후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어 나갔다. 아기가 있는 무균실을 지나갈 때 온다연은 문 앞에서 몇 번이나 서성였다. 얼굴을 문에 기대어 안을 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결국 아쉬운 마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유강후는 병원과 가까워 서둘러서 차를 직접 몰고 왔기에 차는 병원 입구에 대충 세워져 있었다. 차에 타고 나서 유강후는 습관적으로 그녀의 안전벨트를 채워주려 몸을 기울였다. 그가 다가오는 순간 온다연은 또다시 그가 키스를 하려는 줄 알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손바닥으로 그의 뺨을 쳤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사실 이건 온다연의 무의식적인 반응이었다. 어젯밤에 너무 심하게 키스를 당해 지금도 입술이 부어 있고 입안과 입술 가장자리도 상처가 나서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아팠다. 그런데 그만 손이 먼저 반응했고 마치 뺨을 한 대 내리친 것처럼 소리가 꽤 크게 울렸다. 유강후는 그녀의 행동에 화가 치밀었다. 얼굴과 눈빛이 달라졌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온다연, 내가 너무 너를 봐줬나? 기회만 되면 내 뺨을 때리는 건가?” 온다연도 깜짝 놀랐지만 이미 때린 것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게다가 먼저 키스하려고 다가온 건 그였으니 말이다. 그의 차가운 눈빛에 겁을 먹었으면서도 온다연은 용기를 내어 말했다. “당신이 먼저 저한테 키스하려고 했잖아요!” 유강후는 인내심이 그녀로 인해 거의 소진될 지경이었다. 그는 강렬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말했다. “온다연, 나는 너의 남자야. 너와 키스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 온다연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젯밤의 무서운 기억이 다시 떠올라
경찰은 곧바로 무전기를 들며 말했다. “인평 개인 병원 입구에서 경찰을 공격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원을 요청합니다. 지원을 요청합니다!” 유강후의 얼굴은 더 어두워졌고 다가온 경호원들에게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뭘 하려는 거야? 당장 물러서!” 경호원들은 그제야 물러섰지만 경찰은 여전히 유강후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경찰은 온다연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아가씨, 겁먹지 마세요. 제 동료들이 곧 도착할 거고 우리가 당신을 보호할 겁니다. 지금 차에서 내려 제 쪽으로 오세요.” 그는 차 문을 단단히 잡으며 유강후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이건 단순히 불법 주차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불법 사건에 연루된 혐의가 있어요. 경찰서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유강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며 말했다. “불법 주차는 분명 제 잘못입니다. 처벌을 받고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다면 제 변호사가 연락을 드릴 겁니다.” 경찰은 비웃으며 말했다. “변호사 하나로 날 겁먹게 하려고? 내가 당싱 같은 쓰레기들 무서워할 것 같아? 내가 입고 있는 이 제복을 괜히 입고 있는 줄 알아?” 그러고는 엄격하게 소리쳤다. “내려!” 이때 온다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경찰 아저씨, 오해하신 거예요. 이 사람은 변태가 아니에요.” 온다연은 방금까지 울어서 눈이 붉게 물들었고 목소리도 가늘고 여리게 들렸다. 경찰은 이를 보고 그녀가 협박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경찰은 다정하게 말했다. “아가씨, 겁내지 마세요. 이 변태들이 당신을 어쩌지 못할 겁니다. 혹시 사진을 찍어서 당신을 협박하면서 좋은 말을 하라고 시킨 건 아닌가요?” 경찰의 판단에는 근거가 있었다. 그는 병원에서부터 이 남자가 계속해서 이 어린 아가씨를 껴안으려 하고 아가씨는 계속해서 그를 피하며 거절하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온다연의 말을 듣고도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온다연이 고등학생처럼 어려 보였기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녀는 무려 임산부였다.게다가 그 남자의 품에 안겨 가냘픈 목소리로 아저씨를 찾기도 했다.남자는 그녀가 숨이 딸릴 정도로 입을 맞춘 것도 모자라 그녀에게 손을 쓰라고 강요하기까지 했다...그 꿈은 꽤 오랫동안 지속하였다. 바람이 사납게 불고 엄청난 천둥소리와 함께 내린 폭우가 쉼 없이 창문을 거세게 두드릴 때야 온다연은 몽롱한 상태로 잠에서 깨어났다.하지만 눈을 뜨자마자 본 광경은 키 큰 남자가 창가에서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었다.온다연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고 사람을 부르려던 찰나 그 남자가 다급히 제지했다.“부르지 말아요, 저예요!”낮은 목소리는 익숙했다.온다연은 잠시 멈칫한 끝에 남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그는 다름 아닌 꿈속의 그 남자였다!창문을 통해 들어온 것인지 의문이 가득하던 찰나 온다연의 인기척을 느낀 경호원이 밖에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아가씨, 무슨 일이라도 생기신 겁니까?”온다연은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아무 일도 아니에요!”경호원들은 여전히 걱정되어 물었다.“아가씨, 천둥소리에 놀라셨습니까? 같이 있어 줄 사람이라도 필요하십니까?”“필요 없다니까요!”“아가씨,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거셉니다. 문을 열어주시면 창문에 문제가 생기진 않았는지 저희가 검사해드리겠습니다!”온다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필요 없다고 말했잖아요. 귀찮으니까 더 말 시키지 말아요!”온다연이 언성을 높이자 그제야 경호원들도 잠잠해졌다.유강후의 옷과 바지는 모두 반쯤 젖어있었고 머리카락에서도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유강후의 기세만큼은 가려지지 않았다.게다가 옷이 젖은 탓에 거의 보일락 말락 한 그의 탄탄한 몸매에 온다연은 얼굴이 붉어졌다.“강 대표님이 왜 창문으로 들어오는 거죠?”유강후는 창문을 닫고 몸을 돌려 온다연을 바라보며 물었다.“깼어요?”온다연은 여전히 유강후가 창문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다는 듯 말했다.“여긴 2층이라고요!”유강후는 여
남자는 안윤희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잡아채며 그녀의 뺨을 세게 때렸다.“평범한 사람이라고?”“안 아가씨, 10년 전 금우역에서 불을 지른 일을 기억하나? 내 얼굴 좀 봐. 이 흉터, 네놈들이 지른 불 때문에 생긴 거야!”남자의 눈에는 증오가 가득했다.“우리 부모님은 그저 평범한 농민이었어. 그들의 가장 큰 소원은 나를 잘 키워 공부를 시켜 성공하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그분들은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부모였어. 아무 잘못도 없었는데, 너희는 지나가다가 웃는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그분들을 악의 화신이라 규정했지! 그러고는 우리를 집 안에 가둔 채 불을 질러 집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어. 우리 부모님은 필사적으로 날 품에 안으셨고, 덕분에 나는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어. 하지만 부모님은 그만 온몸이 새까맣게 타버리고 말았지.”“그분들이 무슨 죄가 있었지? 단지 못생겼다는 이유로, 살아갈 자격조차 없었다는 거야? 몇 년 동안 너희를 찾아 헤맸어. 그렇게 한 명씩 제거했지. 너희가 세상을 정화한다고? 난 너희 같은 악마들을 정화할 거다!”남자는 안윤희의 목을 세게 움켜쥐었고 두려움으로 일그러진 안윤희의 얼굴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너희들 정말 잘 숨어 있더구나. 한 놈을 찾는 데 꼬박 반년에서 일 년이 걸렸어. 그런데 오늘은 누가 너를 직접 내게 데려다주고 돈까지 준 거야. 세상에 이렇게 좋은 일이 있을 줄이야!”그는 안윤희를 거칠게 바닥에 내던지며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짓했다.“형님들, 배 위에서 고기 구경 못한 지 오래됐지? 오늘 마음껏 즐겨보자!”“저기요, 이 아가씨는 신국 안씨 가문의 큰 아가씨입니다.”“걱정하지 마. 방금 뉴스에서 이 아가씨가 이미 죽었다고 나왔어. 심지어 시신도 확인됐다고 하더라고. 그러니 이 여자는 그저 안씨 가문의 아가씨를 닮은 여자일 뿐이야.”사람들이 크게 웃으며 허리띠를 풀기 시작했다.안윤희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안 돼! 나는 안씨 가문의 큰딸이야! 너희가 날 건드리면 우리 이모부가
유강후는 진시현의 볼록하게 나온 배를 한 번 바라보며 웃음을 띠고 말했다.“얼마나 됐어?”진시현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거의 다섯 달 됐어요.”그러면서 무의식적으로 배를 쓰다듬으며 덧붙였다.“움직이기도 해요.”유강후의 눈에 잠시 어두운 빛이 스쳤다. 예전에 자신의 아이도 딱 이 정도였을 때...유강후는 곧 미소를 짓고 로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로운, 대단하네. 이제 아빠가 됐구나. 결혼식 때 참석 못한 게 많이 아쉬웠는데 나중에 네 아들 태어나면 큰 선물로 보답할게.”항상 무표정하던 로운의 얼굴에 드물게 미소가 번졌다.“괜찮습니다. 이미 충분히 많은 걸 받았습니다.”유강후는 말했다.“전에 준 건 모두 준구 것이었지. 지난 몇 년 동안 잘 관리해서 자산을 두 배로 늘렸더라. 하지만 이제 아내도 있고 아이도 생겼으니 너 자신을 위해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그걸 나눠서 20% 지분을 네가 가져. 내가 네 아들에게 주는 첫 번째 선물이라고 생각하고.”로운은 잠시 망설이다가 뒤돌아 진시현의 볼록한 배를 몇 초간 바라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받아들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 대표님.”“며칠 동안 도련님을 데리고 가서 함께 지내고 싶습니다. 조상님께 향도 한 번 올리고요.”유강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똑똑한 아이이니 지금처럼 잘 키우면 성년이 되기 전에 양씨 가문으로 돌아가 일을 맡길 수 있을 거다. 데려가는 건 좋지만 아직은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해.”로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물론입니다.”유강후는 다시 물었다.“내가 찾으라고 한 자료는 확인했어?”로운은 묶어둔 자료를 꺼내 유강후에게 건넸다.“이것은 성염 조직에 대한 정보입니다. 인원은 많지 않지만 굉장히 단결되어 있습니다. 한 번 목표로 삼으면 끈적한 반창고처럼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조직은 크게 두려워할 것은 없지만 상대하기엔 매우 불쾌한 존재입니다.”유강후는 자료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안윤희는 여기서
유강후는 마치 죽은 사람을 보듯 차갑고 무심한 시선으로 안윤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성염 조직, 너랑 무슨 관계야?”안윤희는 고개를 확 들어 올리며 눈빛에 불안함을 담고 대답했다.“무, 무슨 성염이요?”성염 조직은 국제적인 테러 집단으로 극단주의자들로만 이루어진 조직이었다. 그들은 불이 모든 것을 정화한다고 믿으며 자신들이 악으로 간주한 대상은 무엇이든 태워 세계를 정화하려 했다.그들의 활동은 선과 악을 가리지 않았고 그들의 눈에 악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정화의 대상이 되었다.이로 인해 암흑가뿐만 아니라 정계에서도 성염 조직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했다.유강후는 안윤희를 똑바로 응시하며 한 글자 한 글자 분명히 말했다.“네가 어떤 조직에서 왔든 상관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아둬. 만약 네가 온다연에게 손이라도 대려 한다면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거야. 너희 안씨 가문과 성염 조직 모두 비참하게 끝날 테니까.”안윤희는 고개를 숙이며 두 손을 꽉 쥐고 말했다.“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요.”유강후는 더는 대꾸하지 않고 뒤돌아 걸어 나갔다.안윤희는 그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천천히 일어섰다.방금 발에 차여 바닥에 나가떨어진 그녀는 무릎이 긁혀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통증을 느끼는 기색은 없었다.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사라져가는 유강후의 뒷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난 분명히 널 선택했어. 그런데 날 거부하고 그 재수 없는 여자만 원한 대가가 뭔지 제대로 보게 될 거야. 다연이가 그렇게 좋다면 두 사람 다 함께 끝장내주지.”“이모, 이모부. 저는 다연이를 해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애가 먼저 제 선택을 빼앗았어요. 뻔뻔한 사람은 다연이지 제가 아니에요. 그러니 저를 탓하지 마세요.”안윤희의 낮은 혼잣말은 복도를 스치는 바람 속에 흩어졌다. 그러나 그중 일부가 안심의 귀에 닿았다.안심은 다친 채 서 있는 안윤희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된 거니? 왜 이렇게 엉망이야?”안윤희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제가 실수로 넘어
두 사람은 오랜 시간 함께한 연인처럼 자연스러운 호흡과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들만의 공간은 다른 누구도 끼어들 수 없을 만큼 특별했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평소 고고한 태도를 유지하던 유강후가 온다연 앞에서 이렇게까지 낮은 자세를 보일 줄은.유강후는 온다연을 마치 손바닥 위에서 소중히 감싸 보호하는 것 같았다. 유강후는 모든 일을 직접 나서서 처리하며 온다연을 위해 최선을 다해 보살폈다. 그녀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정성과 인내를 아끼지 않았다.그리고 온다연은 그런 그의 행동을 마치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그러다 부모님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끼고서야 온다연은 자신이 유강후의 옷소매를 잡고 있었다는 것과 방금 그 소매로 입을 닦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지며 황급히 손을 놓고 어쩔 줄 몰라 했다.방 안에는 묘한 침묵이 감돌았다.안윤희만 질투 어린 눈빛으로 온다연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하지만 유강후는 이 어색한 분위기에 개의치 않는 듯 즉시 사람을 시켜 과일을 준비하게 했다.게다가 그가 준비한 과일은 전부 온다연이 좋아하는 것들이었다.과일이 준비되고 나서 진수현은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강 대표, 당장 나가!”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제가 너무 오래 있었다는 거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일을 준비했으니 다연이가 다 먹는 걸 보고 나가겠습니다.”진수현은 조금의 인내도 없이 문을 가리키며 소리쳤다.“다연이 부모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데, 우리가 충분히 지켜줄 수 있어. 그러니까 네 도움은 필요 없어. 지금 당장 나가!”유강후는 움직이지 않고 과일 접시를 들어 올려 깎은 과일 하나하나에 이쑤시개를 꽂았다. 심지어 샤인머스캣조차도 빠뜨리지 않았다.그는 과일을 다 준비한 뒤 온다연 앞에 과일 접시를 내밀며 낮게 말했다.“먹어.”온다연은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과일 접시를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왜 딸기까지 반으로 잘랐어요?”유강후는 온다연의 머리를
안윤희는 눈가가 붉어진 채 무언가 말하려다 문득 들어오는 유강후를 바라보았다.유강후는 잠을 제대로 못 잔 듯 피로가 얼굴에 드러났지만 강렬한 분위기와 또렷한 외모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그는 방 안에 있는 안윤희를 힐끗 바라봤고 단 한 번의 시선만으로도 안윤희의 온몸에 서늘한 전율이 퍼졌다.그의 눈빛은 차갑고 어두웠으며, 마치 독을 품은 칼날처럼 사람의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안윤희는 자신이 수많은 남자를 만나봤다고 자부했지만 이렇게 무서운 눈빛을 가진 이는 유강후가 유일했다.안윤희의 마음이 급격히 흔들렸고 유강후가 뭔가를 눈치챘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그러나 이내 스스로를 다독였다. 모든 일을 빈틈없이 처리했으며 관련된 사람들은 이미 모두 사라졌으니 불안할 필요가 없었다.죽은 사람은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 법이다.안윤희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머리를 매만지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강 대표님, 안녕하세요.”유강후는 더 이상 안윤희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곧장 온다연 앞으로 다가가 작은 약병을 건네며 말했다.“이건 곽 의사가 방금 보내준 약이야. 먹어봐.”그의 목소리에는 특유의 부드러움과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마치 세상에 수많은 아름다움이 있어도 그의 눈에는 온다연만이 유일하게 특별한 존재인 듯했다온다연은 병을 받아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았다. 특이한 향이 풍겼고 어딘가 피 냄새와도 비슷한 기운이 섞여 있었다.온다연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유강후는 병을 다시 가져가 약을 꺼내 직접 하나 삼켰다.“봐, 문제없어. 이 약 총 20알이야. 곽 의사가 그러는데, 재료가 워낙 귀해서 자기한테도 40알밖에 없었대. 그중 절반을 나한테 준 거거든. 이거 먹으면 건강 진짜 좋아질 거야. 어쩌면 앞으로 약 안 먹어도 될지도 몰라.”그가 말을 마치자 진수현은 얼굴을 굳히며 차갑게 말했다.“약이 20알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 하나를 먹었다고? 대체 무슨 생각이야?”유강후는 아무 대꾸 없이 옆에 있던 곶감을 집어 온다연의 입가로
“너도 명색에 안씨 가문의 큰딸이야. 가문이 조금 어려운 상황이라지만, 여전히 명문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좋은 물건이 부족할 리도 없는데 왜 이러는 거니...”안심은 말을 멈추고 온다연의 손을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다연아, 그저 한 세트의 장신구일 뿐이야. 너무 기분 상하지 말고, 엄마가 더 좋은 걸로 새로 준비해 줄게.”온다연은 안윤희 눈에 잠깐 스친 뚜렷한 분노를 보고는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배은망덕하다는 말이 딱 적합했다.“엄마, 더 큰 금고를 하나 마련해 주세요. 귀중한 물건들은 거기 보관하고 제가 직접 관리할게요.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어요.”안심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 물건은 네가 직접 챙기는 게 맞지.”안윤희의 얼굴은 금세 붉어졌다.이건 분명 안윤희를 경계하려는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안윤희는 개의치 않았다. 고작 몇 개의 장신구일 뿐이었고 갚지 못할 정도의 거금도 아니었다. 대진 그룹의 부대표가 된다면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그때가 되면 아무것도 모르는 온다연은 바보처럼 자신의 손에 놀아나게 되어 있을 것이다.안윤희의 눈에 스친 냉소는 온다연도 똑똑히 읽을 수 있었다.지난 3년간 아버지 진수현 곁에서 많은 것을 배운 온다연은 속으로 생각했다.회사 관리를 원하지 않는 것과 관리 능력이 없는 건 엄연히 다른 거라고.비록 회사를 직접 관리하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았지만 가족의 사업을 결코 남의 손에 넘기고 싶지는 않았다.온다연은 진수현을 바라보며 결심한 듯 말했다.“아빠, 이제 제 신분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대진 그룹을 정식으로 이어받아 앞길을 열어가고 싶습니다.”온다연의 말에 안윤희는 순간 얼굴이 창백해졌다. 안윤희는 당황한 표정으로 서둘러 말했다.“다연아, 아직 몸이 좋지 않잖아. 건강을 회복한 뒤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 않아. 회사 일은 우리한테 맡겨도 되잖아.”온다연은 안윤희의 말을 무시한 채 진수현을 향해 말했다.“아빠, 언제까지 아빠 뒤에만 숨을 수는 없어요. 이
안씨 가문도 명문가이긴 하지만 겉만 번지르르할 뿐 이미 속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만약 진씨 가문이 뒤에서 받쳐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안윤희는 제대로 된 옷 한 벌도 마련하지 못했을 것이다.게다가 예전에 온다연에게서 가져간 물건 중 상당수는 이미 팔아버려 이제 와서 돌려줄 수도 없었다.그때 밖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안윤희의 눈빛이 잠시 차갑게 빛나더니 곧바로 울음을 터뜨렸다.“다연아, 이러지 마. 예전에 네가 선물로 줬던 물건들을 이제 와서 돌려달라니, 말이 돼? 난 우리를 자매처럼 생각했는데, 네가 이렇게까지 나를 몰아붙일 줄은 몰랐어...”온다연은 아무 말 없이 안윤희를 차갑게 바라보았고 그녀에 대한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잠시 후, 진씨 부부가 방으로 들어왔다.안심은 안윤희가 온다연의 병상 앞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곤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온다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안윤희가 먼저 말했다.“이모, 다연이가 제가 예전에 받았던 장신구들을 다 돌려달라고 해요. 그런데 제가 뭘 받았는지 기억도 잘 안 나고, 일부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줬어요... 어젯밤에 제가 다연이를 제대로 따라다니지 않고 혼자 둔 걸로 저를 원망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도 제 일이 있었는데 말이에요...”안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안심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온다연을 바라보며 물었다.“다연아, 정말 그런 거야?”온다연은 상체를 일으키며 안윤희를 차갑게 쳐다봤다. 보면 볼수록 짜증이 치밀었다.“언니, 연기 그만해. 그동안 언니가 내 물건 가져간 건 전부 언니 멋대로였잖아. 빌린다고 말했지만, 내가 준 적은 한 번도 없었어. 그리고 어제 언니가 가져간 건 내가 결혼식 때 쓰려고 준비해 둔 장신구였어. 한 번도 착용하지 않은 건데, 그냥 가져가더라. 난 허락한 적이 없었는데. 아니면 진씨 가문 물건은 언니가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뜻이야?”온다연의 말투에는 서늘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언제부터 진씨 가문이 안씨 가문과 한 식구가 됐는데?”
그때 유강후의 전화가 울렸다. 그는 화면에 표시된 번호를 확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다.몇 분 후, 안윤희가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병실로 들어왔다.안윤희는 연한 하늘색 발목 길이 드레스를 입고 하얀 장미 꽃다발을 품에 안고 있어 청순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그러나 침대 위에서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온다연의 모습이 훨씬 더 사람들의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안윤희의 마음속에 묘한 질투심이 피어올랐다.안윤희는 방 안을 둘러보고는 유강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안윤희는 장미꽃을 창가에 올려놓으며 말했다.“다연아, 몸은 좀 괜찮아졌어?”하지만 온다연은 원래부터 백장미를 싫어했다. 온다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안윤희를 쏘아보며 물었다.“왜 왔어?”안윤희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깨어났다고 해서 와봤어. 그런데 아직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혹시 누가 진씨 가문을 노리기라도 했어?”온다연은 이번 일에 안윤희가 직접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내가 깨어난 게 언니랑 무슨 상관인데? 어젯밤에 일어난 일은 언니가 더 잘 알지 않아?”안윤희는 순간 당황했다.온순했던 온다연이 요즘은 마치 가시가 돋은 듯 상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다연아, 혹시 어제 내가 목걸이를 빌려 간 것 때문에 아직도 화난 거야?”안윤희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어제 급해서 미처 말 못 했을 뿐이야. 그리고 우리 사이에 이런 일은 예전에도 많았잖아.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거야?”온다연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빌린 거라고? 그럼 어제 가져간 장신구 다시 돌려줄래? 내가 다시 쓸 일은 없겠지만, 그건 어머니가 내 혼수를 위해 준비해 주신 거라 남에게 줄 수는 없어.”안윤희는 속으로 분노가 치밀었다.돌려달라고 요구하다니, 감히!원래 그 장신구는 안윤희,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온다연이 중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