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마디는 모든 사람의 가슴을 찔렀다. 현장에 있던 만 명의 고수들은 모두 임서우에게 한 대 심하게 맞은 느낌이 들었다.임서우는 이렇게 말하면 모든 사람의 미움을 살 것 같았다. 옆에 서 있던 백호와 하연도 놀라서 온몸을 떨었다. 그들은 수만 명의 고수들이 동시에 덤빌까 봐 두려웠다.임서우의 오만함은 그들의 상상을 초월했다. 이 고수들은 모두 각 세력의 최고 타자들이다. 모든 사람은 화경 이상의 실력을 갖췄고 후천 대사만 수천 명이 있었다. 그리고 선천 대사도 수백 명이 있었다.만약 이 사람들이 함께 움직인다면 아무리 강한 세력도 멸망할 것이다. 임서우의 말은 정말로 모두를 격분시켰다!“저 미친 자식이 감히 우리를 모욕하다니!”“혼 좀 제대로 내줘야겠어!”“그러니까! 우리를 뭐로 보고!”...사람들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휙! 휙! 휙!그들은 모두 자신의 무기를 꺼냈다. 그리고 흉악한 눈빛으로 임서우를 노려보았다.“이 자질구레한 것들 다 덤벼봐!”임서우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한마디에는 자신감과 경멸로 가득 차 있었다.백호와 하연은 옆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임서우가 어떻게 만 명을 상대하려고 이러는 걸까?“아가씨, 임서우가 너무 잘난척하네요.”“비록 저 자식이 무술 총회를 물리쳤지만 이렇게 날뛰면 안 되죠.”“아가씨, 이대로 참으실 거예요? 우리도 같이 싸웁시다!”민씨 가문의 고수들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오만한 임서우가 감히 그들을 이렇게 모욕하다니.민씨 가문은 청주에서 명망이 높은 가문이다. 다른 세력들도 민씨 가문 사람들을 만나면 공손히 대한다. 하지만 임서우처럼 무례한 사람은 처음이었다.만약 임서우에게 본때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떻게 청주에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닥쳐! 내 명령 없이는 누구도 움직이지 마!”민예슬이 차갑게 말했다. 그러자 민씨 가문 고수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민예슬은 민씨 가문에서 지위가 매우 높아서 다른 사람들이 감히 그녀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그들은 민예슬
“쓸모없는 것들!”임서우는 피식 웃었다. 이 고대 무술 고수들은 드래곤 네이션 각지에서 왔다. 그들은 서로 원한이 있어 누구도 앞장서서 임서우에게 덤빌 수 없었다. 아무런 이득이 없으니깐 말이다. 지금 제일 급한 일은 현용도를 얻는 것이다.백호와 하연은 혈투를 벌일 준비를 다 했는데 지금 고수들이 모두 철수하는 것을 보니 의외였다.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임서우를 따라다니니 정말 무서웠다.“아가씨, 우리도 갈까요?”사람들이 물러가는 와중에 민예슬만 제자리에 서서 임서우를 바라보자 부하들이 물었다. 그리고 그녀는 시선을 거두었다. 임서우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않아서 그녀는 너무 실망했다.‘내가 그렇게 싫은가?’민예슬은 눈물이 핑 돌았지만 심호흡 몇 번 하며 애써 감정을 추슬렀다.“가자!”민예슬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그리고 애틋하게 고개를 돌려 마지막으로 임서우를 바라보았다.떠들썩하던 산봉우리가 순식간에 텅텅 비었다.하운산 봉우리에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보아하니 현용도가 곧 나타날 것 같았다.그때가 되면 분명 치열한 싸움이 있을 것이다. 이때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돌진해 왔다.신정훈이었다. 신정훈을 보자 임서우는 피식 웃었다.“태숙조, 왜 이제야 왔어요. 제가 이미 다 해결했습니다.”신정훈은 임서우보다 먼저 왔지만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문제가 해결된 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늙은 여우!’“하하, 젊은이는 좀 단련해야 해. 이 늙은이를 내세울 수는 없지. 게다가 그 고수들은 모두 수단이 악랄해서 나는 견디지 못해. 난 좀 더 살고 싶어.”신정훈이 웃으며 말했다. 임서우는 어이가 없었지만 할 말이 없었다.“태숙조,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만 명 넘는 사람들을 어떻게 할 계획입니까? 모두 죽일 수는 없겠죠?”임서우가 물었다. 현용도 쟁탈전은 잔인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사람들은 무슨 미친 짓을 저지를지도 모른다. 이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아깝지 않지만 그들이 미친 짓을 하며 주
신정훈은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다며 환하게 웃었다.“앞으로 며칠 동안 조심해. 아무 일 없길 바래.”신정훈은 혼자 중얼거렸다.“태숙조, 저는 다른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임서우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백호와 하연의 그의 뒤를 따랐다.저녁.신가구 마을 사람들은 모두 방 안에 숨었다.임서우는 주민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신가구 초등학교 안에 묵었다.저녁에는 학교가 텅 비어서 아무도 그를 방해하지 않았다.“서우 씨, 오늘 500명을 처리했습니다. 이제 신가구에서 감히 소란을 피우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김서윤이 말했다. 임서우는 의자에 앉아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김서윤은 철갑 부대를 데리고 신가구를 순찰했다. 소란을 피우는 자가 있으면 모조리 죽을 것이다.“잘했어, 소란을 피우면 처리해! 그리고 순찰을 강화해야 해.”임서우가 말했다.“네! 철갑 부대에 순환 당직을 안배했습니다. 반드시 신가구의 안전을 책임질게요.”김서윤이 대답했다. 임서우는 눈을 감았다. 오늘 아주 피곤했던 모양이다.은은한 달빛이 사당을 비췄고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검은 그림자 하나가 조용히 사당으로 잠입했다. 신정훈은 혼자 사당에 살고 있다. 비록 밤이 깊었지만 신정훈은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는 신가구의 일을 계속 생각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누구야! 당당하게 나와!”신정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면을 쓰고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암영문?”그 남자를 보자 신정훈의 얼굴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암영문 사람들이 감히 사당에 쳐들어오다니.’“태숙조, 저예요.”가면을 쓴 남자는 나지막이 말했다.“헛소리 그만해. 나는 너를 몰라. 누가야?”신정훈이 차갑게 말했다.그가 어떻게 암영문의 사람을 알 수 있겠는가?암영문의 사람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태숙조, 저를 잊으셨어요?”그는 가면을 벗으면서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흉터가 몇 개 있었다.“신수호!”신정훈은
신정훈의 몸에 있던 에너지가 갑자기 들끓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자 신수호는 어리둥절해졌다. 평범한 늙은이로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강한 실력을 갖추고 있을 줄이야.어릴 때 신수호는 신정훈을 한두 번 본 적이 있는데 그는 신정훈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에야 알았다. 신정훈이 이렇게 오랫동안 자기 실력을 숨겨왔다는 것을.“태숙조, 화내지 마세요. 제가 비록 암영문에 들어가긴 했지만 저도 신씨 집안 사람입니다. 할머니께서 태숙조에게 이 편지를 드리라고 했어요.”신수호는 공손하게 말하면서 편지를 건넸다. 신정훈은 편지를 대강 훑어보았다. 신주옥의 말로는 신수호가 암영문에 가입한 것은 단지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서라고 한다.그리고 신씨 가문이 더 성장하려면 누군가가 나서야 한다고 했다. 지금 임서우는 신씨 가문의 부흥 계획을 막고 있기에 신정훈이 신수호를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편지에서 말했다.“말도 안 되는 소리! 이 할머니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신정훈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리고 손에 든 편지를 갈기갈기 찍었다.“태숙조...”신수호는 표정이 굳어지면서 신정훈이 이렇게 가문의 체면도 봐주지 않는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꺼져! 절대 도와주지 않을 거야!”신정훈이 차갑게 말했다.“이 늙은이가...”그는 지금 암영문을 대표해서 부탁하고 있는데 신정훈이 이렇게도 체면을 세워주지 않자 신수호는 버럭 화를 냈다.“신정훈! 좋은 말 할 때 잘 들어. 신가구 마을 사람들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거지? 암영문을 화나게 하면 신가구 전체 주민들이 그 피해를 볼 거야.”신수호가 매섭게 말했다.짝!말이 끝나자마자 신정훈은 신수호의 뺨을 때렸다.“감히 나한테 손을 대?”신수호는 화가 나서 온몸을 떨었다.‘신정훈, 이 늙은이가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게다가 신정훈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신수호는 무슨 일인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자기를 신싸 가문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부끄럽지도 않아? 이젠 가족까지 위협해? 그러고도 사람이
최만수는 전에 임서우와 겨루어봤으니 분명 임서우의 실력을 대충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변우현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 때문에 변우현은 많은 고수 앞에서 망신을 당하게 되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일로 변우현을 비웃을까?“대장로 님!”이때,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누구야?”“저 최만수입니다. 다친 데는 괜찮습니까?”최만수가 왔다는 것을 확인하자 변우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최만수가 분명 걱정되어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어쩌면 변우현이 죽으면 제일 기뻐할 사람이다. 최만수는 지독하고 악랄하여 남겨두면 큰 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다.만약 회장님이 아니었다면 변우현은 진작에 최만수를 죽이려고 했을 것이다.“들어와.”변우현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대장로님, 괜찮습니까? 상처는 어때요?”최만수는 걱정스레 물었다. 변우현은 속으로 매우 불쾌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자네가 나를 걱정해 주니 별문제 없어.”변우현은 덤덤하게 말했다.“무사하다니 다행입니다. 임서우 이 자식이 이렇게 지독하게 손을 쓰다니.”최만수는 실망한 눈빛으로 변우현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됐어. 일 없으면 꺼져. 일찍 쉬고 싶어.”변우현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최만수는 눈치가 없어 변우현이 듣기 싫은 소리만 하였다. 변우현이 보기에 최만수는 그저 병신일 뿐이다.그러자 최만수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입을 함부로 놀리면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하지만 그 역시도 고대 무출 총회의 호업인데 변우현이 이렇게 자신을 대하면서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다니.최만수는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대장로 님, 암영문 사람들이 뵙고 싶어 합니다.”최만수는 공손하게 말했다.“암영문?”변우현은 살짝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리고 분위기는 갑자기 엄숙해졌다.암영문과 무술 총회는 줄곧 적대적인 관계였는데 지금 암영문의 사람들이 갑자기 그를 찾아왔으니 틀림없이 일이 있을 것이다.“암영문 사람들이 왜
드래곤 네이션의 경외, 만리 전장에서 거위 털 같은 함박눈이 흩날렸다.백만 장병은 혹한의 추위도 두려워하지 않고 일제히 수천 개의 대진을 만들었는데 국경의 새하얀 설산에 새까맣게 뒤덮여 장관을 이루었다!광풍이 휘몰아치고 거센 눈보라가 일어도 백만 영웅이 함께 모인 거대한 행렬 앞에서는 빛바랠 따름이었다!살벌한 기운이 하늘을 찌를 것만 같았다!백만 명의 최정예 병사는 바로 드래곤 킹덤의 엘리트이다.5년 동안 그들은 염라 판관처럼 드래곤 네이션 변방에서 과감한 살육을 펼치고 누차 혁혁한 공을 세워 이웃 나라 적들의 악몽으로 거듭났다!전장에서 그들은 막강한 공격으로 백전백승을 이루어 적의 위엄을 짓누르고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오늘날 드래곤 킹덤은 국경을 평정 짓고, 백전백승의 용사들은 만천하를 제패하여 널리 이름을 떨쳤다!1년 전, 여러 이웃 나라들이 다른 가문의 세력과 연합하여 구룡산맥에 천라지망을 설치했는데 그 목적은 바로 드래곤 네이션의 드래곤 킹덤 오너 임서우를 매복 공격하기 위해서였다.임서우는 여러 나라 세력과 피 튀기는 사투를 벌여 적들을 대거 학살했다. 그는 각 나라 수장과 여러 세력의 지배자들을 전부 교살하여 구룡산 최고봉에 시신을 내걸었다.전 세계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드래곤 킹덤은 이 기회를 틈타 변방을 침략한 잔당을 일거에 소탕하여 드래곤 네이션 변경을 평온하게 회복시키고 국경의 통일을 이루었다.다만 임서우는 이 전투가 끝난 뒤 종적을 감췄다!반년 전, 임서우가 신변의 장교들에게 문자 한 통 보냈는데 내용은 이러했다. 국경에 전란이 없고 그도 곧 결혼하여 평범한 삶을 살 터이니 변방이 무사한 한 절대 서울에 찾아와 그의 안일한 생활을 방해하지 말라고 했다.현재 적국은 1년간의 원기회복을 마치고 또다시 국경선에 병력을 추가 파병하며 꿈틀거리고 있다.드래곤 킹덤에서 임서우는 그들의 유일한 킹이다.드래곤 네이션에 국군이 없으면 안 되듯이 드래곤 킹덤에 더 킹이 없으면 안 된다.호크아이 전투기가 하늘을 가르며 무서운 속
임서우는 변방에서 현실 사회로 돌아와 진짜 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했다.그는 23살 생일에 허민서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그녀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주겠다고 다짐했다.그런데 정작 그녀는 임서우가 힘들게 돈 버느라 흘러내린 땀을 싫어했다.고생해서 흘린 땀인데 그녀는 땀 냄새가 역겹다고 한다!그럼에도 임서우는 1년 동안 그녀와 함께한 정을 그리며 진지하게 대답했다.“네가 원하는 거 내일 다 주려고 했어. 날 믿어, 민서야. 네가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줄게!”허민서는 한숨을 내쉬며 살짝 지친 듯이 말했다.“서우야, 나 그만할래. 넌 그저 가난한 남자였어. 돈도 권력도 집도 차도 없는데 대체 네가 나한테 뭘 해줄 수 있겠니? 우린 여기까지인가 봐. 내일 바로 가서 이혼하자.”말을 마친 허민서는 무표정한 얼굴로 침실에 들어갔다.이어서 임서우는 침실문을 안으로 잠그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는 거실에 걸린 두 사람의 결혼사진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안으로 잠긴 침실문을 보면서 저도 몰래 한숨이 새어 나왔다.그가 늘 자랑스럽게 여겼던 ‘진짜 사랑’이 결국 돈 앞에서 무너지다니.하늘이 선택한 행운의 여신 허민서는 불과 한두 시간을 앞두고 곧 다가올 행운을 제 손으로 무너뜨렸다.임서우는 30분 동안 멍하니 소파에 앉아있었다.오늘 밤엔 침실에 못 들어갈 듯싶으니 소파에서 하룻밤을 때우는 수밖에.이때 침실문이 열리고 허민서가 예쁜 얼굴을 내밀었는데 표정은 한없이 차가울 따름이었다.임서우는 내심 기뻤다. 그녀가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미련을 못 버리는 줄로 여겼다.하지만 곧이어 핑크 하트 모양의 박스가 임서우의 발 옆에 내동댕이쳐졌다.이 박스는 그가 허민서에게 주려고 침대 머리맡에 놔뒀던 선물이다.그녀는 지금 쓰레기를 버리듯 그의 선물을 매정하게 내팽개쳤다.임서우는 허리를 숙이고 박스를 주우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물었다.“이 안에 뭐 들어있을지 열어보지도 않네?”“필요 없어. 난 더이상 이런
다음날 이른 아침, 임서우와 허민서는 나란히 집에서 내려와 그들이 사는 낡고 허름한 대문 앞에 도착했다.두 사람이 길가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임서우가 허민서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더 생각해보지 않을 거야?”허민서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이미 다 결정했어.”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그녀가 새로 산 구찌 가방에서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그녀는 최신형 아이폰을 꺼내 들었다.허민서는 발신자 표시를 보더니 옆에 있는 오동나무 아래로 걸어가 부드러운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몇 달 전만 해도 그녀의 이런 부드러운 목소리는 오직 임서우 전용이었는데 지금 이 순간, 어느덧 전화기 너머의 딴 남자에게 돌아갔다.임서우는 두 사람의 감정이 끝났다는 걸 확인한 후 더는 집착하지 않았다.곧이어 버스가 도착하고 차 문이 열리자 임서우가 이제 막 통화를 마친 허민서에게 얼른 차 타라고 곁눈질했다.버스 앞에 도착한 허민서는 그를 힐긋 쳐다봤는데 눈빛 속에 가여움과 야유, 경멸이 살짝 담겨있었다.“서우야, 몇 달 전에 우리 결혼할 때 버스 타고 혼인 신고하러 갔는데 오늘 이혼하는 것도 버스 타고 가네. 잘 들어, 이게 바로 우리가 이혼한 이유야.”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 가면 구청이다.둘은 앞뒤 좌석으로 앉아 아무런 교류도 없었다.구청에 곧장 도착했고 직원이 두 사람을 자리에 안내한 후 각종 서류를 요구했다.직원은 서류를 검토하며 그들에게 물었다.“두 분 모두 충분히 생각하셨죠? 재산분할은 마치셨나요?”허민서가 지체 없이 말했다.“네, 이미 결정했으니 얼른 절차 진행하세요. 우리는 딱히 나눌 재산이 없어요. 집은 셋집이고 차 살 돈도 없어요.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이 전 재산이에요. 얘가 산 것도 있고 내가 산 것도 있는데 전부 다 얘한테 남겨줄 거예요. 적금도 몇만 원 정도 있겠는데 그것도 얘한테 다 주겠어요. 난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허민서는 아주 관대한 척하며 말했지만 정작 경멸에 찬 그 표정은 전남편에게 동전이라도 쥐여주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