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윤설아에 대한 첫인상이 별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한소은에게 있어서 노형원이란 사람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그랬군요.”한소은은 이제야 모든 걸 알아차렸다는 표정으로 윤소겸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당신네 윤씨 가문은 정말 복잡하네요.”그런 한소은의 말에 윤소겸은 말문이 막혔다.“그리고 당신.”한소은이 고개를 들어 노형원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그에게 한발 다가가 노려보며 물었다.“이 사건에서 당신은 무슨 역할이었죠? 대신 싸워주는 사람? 공범? 아니면 정의의 사자라도 되나요?”“그저 조사하다 우연히 사실을 알게 된 것뿐이에요. 이 사건에 억울한 사람이 휘말리는 걸 보고 싶지 않았어요. 당신이 나에게 편견이 있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이 말들은 믿어줬으면 해요. 모든 일은 윤설아가 혼자서 꾸민 일이에요.”“맞아요, 다 그 여자가 꾸민 일이에요.”윤소겸도 옆에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그래. 다 윤설아 그 여자 때문이라고!’윤소겸은 속으로 생각했다. 윤설아만 아니었다면 자기가 이렇게 고생하지도, 하룻밤 사이에 나락으로 떨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며칠 동안 경찰서에 수감되어 죄수의 삶까지 체험하게 되었으니, 윤설아를 증오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 여자가 그랬을 수도, 아닐 수도 있죠.”한소은이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이건 당신네 집안일이에요.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죠.”말이 끝나자, 한소은이 그들을 지나쳐 갔다. 노형원을 지나칠 때 그녀가 나지막이 물었다.“윤씨 가문의 일인데 당신은 왜 참견하는 거죠?”소리가 아주 작았지만 가까이에 서 있던 윤소겸이 그녀가 노형원에게 묻는 물음을 들었다. 순간 그의 가슴이 철렁하는 것 같았다.“그러게. 노형원 당신이 왜 참견하는 거지?”윤소겸이 의문을 품고 고개를 돌리자 노형원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얼굴에는 의미심장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내가 왜 참견하는 건지 곧 알게 될거에요.”——윤설아는 아직도 윤백건과 윤 부인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
윤백건의 소식인 줄 알고 윤설아는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그녀의 안색이 삽시간에 흐려졌다.“뭐라고?!”“무슨 일인데 그래?”그녀의 안색이 안 좋게 변하자, 윤중성이 바로 물었다.“혹시 네 큰아버지 쪽......”윤설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흐려진 안색으로 상대방의 말을 듣더니 핸드폰을 바닥으로 던져 버렸다.“이 개자식이!”요영은 윤설아가 이렇게까지 이성을 잃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윤설아의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그녀의 낯빛은 더욱 안 좋게 변했다.“설아야. 무슨 일인데 그래?”요영이 하던 일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물었다.“엄마가 키운 그 잘난...... 허!”윤설아가 요영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 그녀의 눈빛에 요영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요영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뭐라고?”사실 요영을 당황하게 한 건 윤설아의 말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윤중성이 있는 방향을 한번 슥 보았다.윤중성은 어리둥절 한 듯 두 여자를 연달아 바라보며 윤설아에게 물었다.“설아야. 방금 그게 무슨 말이야?”윤설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복잡한 눈빛으로 요영만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원망과 증오가 가득 서려 있었다.그녀의 눈빛은 요영을 놀라게 했다. 묻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감히 묻지도 못했다.이때, 경찰이 윤설아를 찾아왔다.“윤설아 씨, 당신을 시장 교란, 타인을 위협, 비방 및 납치한 혐의로 고발한 사람이 있습니다. 저희와 함께 경찰서로 가서 조사에 협조해 주십시오.”경찰이 이렇게 많은 혐의를 말하니 윤중성과 요영은 놀라서 정신이 멍해졌다.“이게 어떻게 된 거야?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윤씨 가문이 어떤 집안인지 몰라? 우리 설아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막 지껄이는 거야? 내가 경찰청에 가서 당신들 모두 고소할 줄 알아!”윤중성이 큰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저희는 그저 절차에 따라 사건을 조사 하려는 것뿐입니다. 공무집행 방해를 하시면 당신도 함께 경찰서로 이송하겠습
방금 까지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던 윤중성은 윤설아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정확히 이해했다.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금방 설아가 당신 아들이라고 했죠? 무슨 아들?”윤중성이 떨리는 목소리로 요영에게 물었다. 두 눈을 부릅뜨며 그녀를 노려보았다.“모두당신을 만나기 전의 일이라고 해도 이렇게 화낼 거예요?”어차피 모두 들통난 마당에 요영은 더 이상 숨길 마음이 없었다. 자리에 앉고는 평온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나와 만나기 전 말인가요? 허, 참. 요영, 당신이란 여자 정말 대단해요.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날 속이다니. 이것 말고 더 숨기는 거 있어요? 아들이 몇 명이나 더 있는 거예요?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던 거예요? 이러니 다들 그 바닥 여자는 만나지 말라고 한 거였군요 당신 정말 대단해요. 요영, 정말 대단해!”윤중성은 비틀거리며 뒤로 뒷걸음질 쳤다. 충격적인 말들의 연속에 윤중성은 순간 확 늙어 보였다.그런 그를 보던 요영은 그가 조금 안쓰러워졌다. 그래도 몇십 년 함께한 부부인데 안쓰럽지 않을 리가 없다.그런데도 요영은 움직이지 않았다.“이렇게 상처받은 얼굴 하지 마세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당신을 만나기 전의 일이었고 당신과 결혼한 후 에는 단 한 번도 당신에게 미안한 일 한 적 없어요. 당신에게 충성을 다했다고요. 그런데 당신은요? 오랜 시간 동안 진고은 그 여자와 함께했잖아요. 아들까지 낳은 것도 모자라 집에까지 데려와 놓고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런 말을 해요?”“내 탓 하는 거예요? 나 몰래 다른 남자와 아들까지 낳아놓고 내 돈으로 그 아들을 키웠을 거잖아요. 이 천한 여자 같으니라고!”윤중성은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가장 악독한 말로 그녀를 모욕했다.요영은 오히려 담담해졌다. 가볍게 웃더니 그의 말에 대답했다.“그래요. 난 천한 여자예요. 그런 당신은 뭔가요? 일이 닥치면 숨기만 하는 겁쟁이잖아요. 일이 생기면 그저 내가 방법을 생각해 낼 때까지 기다리고. 윤씨 가문이 이렇게 된 건 모두 당신이 벌 받는
나이를 먹은 윤중성은 노형원의 발길질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사람 불러. 이 자식 좀 어떻게 해보란 말이야!”하지만 아무도 그를 구하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노형원이 데려온 사람들이 이미 윤중성의 집을 통제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저 돈 받고 일을 하는 하인에 불과한 그들이 선뜻 나서서 그를 도우려 하지 않았다.한참을 발로 차다 화가 잦아들고 힘도 빠진 후에야 노형원이 멈추었다.그러는 동안 요영은 그를 말리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찬 수건으로 얼굴에 갖다 대며 차가운 눈빛으로 윤중성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낯선 사람을 보는 듯 했다.소파에 앉아 숨을 헐떡이던 노형원이 손짓하자 바로 물을 따라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었다.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그제야 조금 진정이 되었다.몇 년 동안 그는 지금처럼 이렇게 통쾌한 적이 없었다. 마음속에 꾸역꾸역 담아두었던 억울함과 분노가 드디어 터져 나오니 너무도 상쾌했다.“괜찮아요?”노형원은 맞은 편에 앉은 어머니를 슥 보더니 물었다.그가 갑자기 쳐들어왔을 때 요영은 무슨 일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윤중성을 마구 걷어차고 있을 때 비로소 알아차렸다.“이 모든 게 다 네가 꾸민 거지?”사실 아직 이해가 가지 않은 부분이 있었지만, 현재로선 그가 꾸민 일인이 분명했다.하필 이런 상황에 노형원이 쳐들어와서 대놓고 윤중성에게 이런 짓을 한다는 건 그가 이미 모든 걸 손에 쥐고 있다는 걸 말한다.“다는 아니에요.”노형원이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고는 가볍게 웃었다.“어머니의 귀한 딸 덕도 있어요.”윤중성의 집은 정말 컸다. 밖에서 지나갈 때 노형원은 여러 번 눈여겨보았었다. 좋은 위치에 넓은 면적, 지금 이렇게 들어와 보니 인테리어와 가구들도 모두 호화로워 보였다. ‘이런 집에서 사는 게 정말로 인생을 누리는 거지.’노형원이 살던 집은 비집고 낡았다. 여름에는 온갖 벌레가 나오고 겨울에는 추워서 벌벌 떠는 작은 집이었다. 그가 그런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이 사람들은 넓고 편한 집에서
“그 여자는 어머니가 이 남자와 낳은 딸이잖아요. 전 아닌걸요. 이러는데 어떻게 남매가 될 수 있는 거죠?”노형원이 자기를 가리키며 피식 웃었다.“그리고 친남매라 해도 계산 할 때는 똑바로 계산해야 하죠. 나와 그 여자는 친남매도 아닌걸요.”“너희들이 같은 아버지가 아니라 해도 모두 내가 낳았어. 엄마를 봐서라도 잘 지낼 수 없는 거니?”남매끼리 서로 칼을 겨누고 있는 모습은 그녀가 원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요영이 말을 이어갔다.“네가 설아를 모함해 회사에서 밀어낸다고 회사를 얻을 수 있을 줄 알았어? 잊었나 본데 대윤 그룹은 결국엔 윤씨야. 윤씨도 아닌 네가 쉽게 회사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노형원의 낯빛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가 픽 웃으며 대답했다.“거봐요. 어머니도 날 남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이러는데 내가 어떻게 윤설아와 손을 잡고 회사를 얻겠어요? 그리고 이 대윤 그룹도 곧 윤씨가 아니게 될 거예요!”“개소리하지 마”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윤중성이 노형원의 말들 듣고는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노형원은 그런 윤중성을 슥 보았다. 일어설 힘도 없이 바닥에 널브러져 누워있는 그를 보더니 이내 헛웃음을 터뜨렸다.“어디 마음껏 욕해봐. 아무튼 대윤 그룹이 곧 윤씨의 것이 아니게 되는 걸 보게 될 테니.”“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잠시 생각하던 요영이 입을 열었다.“어쩌면 네가 계획을 잘 짰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하지만 네가 모르는 게 있어. 우리 가족을 모두 나락에 떨어뜨려도 넌 대윤 그룹을 가질 수 없을 거야. 대윤 그룹 절반 이상의 지분은 윤백건이 가지고 있어. 지금 윤백건과 윤 부인이 자취를 감춘 이상 넌 그들 손의 지분을 가질 수도 주주들의 지지를 얻을 수도 없어. 그러니......”“내 손에 없다고 어떻게 확신해요?”노형원은 요영의 말을 가로챘다. 자신감 넘치게 말하는 그의 모습은 득의양양해 보였다.“그럴 리가!”요영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윤백건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분을 자기 목숨보다도 더 중
아들이 노형원의 손에 있다는 말에 윤중성은 펄쩍 뛰었다.“너, 너 이 자식 겸이에게 무슨 짓 했어?”“쯧쯧.”노형원이 웃긴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역시 아들이 중요하긴 한가 보네. 내가 말했잖아. 당신이 협조만 잘해준다면 무사할 거라고.”노형원은 속으로 윤설아가 고마웠다. 그녀는 정말 말 잘 듣고 유능한 수하들을 키워냈다.하지만 그녀가 간과한 게 한 가지 있었다. 그건 바로 그 사람들이 평생 자기에게 충성할 거란 착각이었다. 이 세상에서 절대적인 충성은 없다. 목숨을 아끼지 않는 충성은 그저 ‘이익’에서 나오는 것뿐이다.이익만 보장된다면 언제든지 충성하는 대상을 바꿀 수 있는 게 사람이다.대윤 그룹은 하룻밤 사이에 주인이 바뀌었다. 윤씨 가문에서 회사 경영권을 두고 싸우고 있을 때 대주주들은 어느 라인을 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러다 갑자기 노형원이란 사람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더니 회사 경영권을 가져가 버렸다.대부분 주주들이 그의 손을 들어주었고 어디서 가져온 건지 모를 지분 양도 계약서까지 들고 있었다. 계약서에는 윤백건의 사인과 인감이 찍혀 있었고 검증 결과 조작한 것이 아니라는 판정이 나왔다.물론 부분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이것도 그가 예상했던 문제들이다. 이제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하나씩 회사에서 내쫓기만 하면 된다.노형원이 대윤 그룹으로 들어와서 그저 놀기만 한 것은 아니다. 누가 어떤 약점을 가지고 있고 누가 어느 라인에 탔는지 정도는 꿰고 있었다.윤설아 그 멍청한 여자는 자기가 회사에서 매일 놀고먹으며 그녀의 옆에 빌붙어 사는 줄로만 안다. 나중에 그녀가 회사를 얻으면 한자리 해주겠다고도 말했었다.‘웃기고 있어!’어려서부터 세상 인정 모두 겪어본 노형원은 눈치가 정말 빨랐다. 이렇게 많은 일을 겪고 다른 사람의 발밑에 굴복할 그가 아니었다. 고작 한자리 해주겠다는 말이 그의 마음에 찰 리가 없다.노형원은 대윤 그룹뿐만 아니라 환아에게도 손을 뻗을 생각이었다.대윤 그룹의 주인이 바뀐
김서진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을 맞추며 그동안의 그리움을 달랬다.그녀가 너무 바쁜 탓에 며칠 동안이나 스킨십을 하지 않았다. 매일 피곤한 얼굴로 집에 돌아오는 그녀를 볼 때마다 너무 안쓰러운 마음에 그냥 자게 내버려 뒀다.하지만 지금 활기찬 그녀의 모습을 보니 더 이상 욕구를 참을 수가 없었다."서진 씨, 그만…… 시간 없어요."주위의 온도가 점점 뜨거워졌고 분위기도 묘해졌다.'비행기 따위 내가 알 게 뭐야.'얼마나 지났을까. 한소은은 침대에 누워 몸을 한번 뒤척였다. 당장 일어나야 한다는 걸 알지만 너무 피곤해서 꿈쩍하기도 싫었다.이때 김서진이 그녀의 허리 만지며 서서히 손을 앞으로 갖다 댔다.화가 난 한소은은 그의 손을 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배를 살살 어루만져 주는 그의 손길에 그녀는 다시 얌전해졌다."비행기 정말 놓치겠어요."그녀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정말 유란이랑 합작할 생각이에요?"김서진은 그녀에게 다가가더니 그녀 등 뒤에 딱 붙어서 물었다.그러자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목을 스쳤다. 그 간지러움에 그녀는 목을 움츠리며 고개를 끄덕였다."네.""개인 브랜드를 세울 생각 아니었어요?"그녀는 이 얘기를 몇 번이나 했었다. 사무실을 차린 것도 이 이유 때문이었다."그건 상관없어요. 브랜드는 여전히 제거니깐요. 만약 유란 쪽에서 마음이 있다면 투자나 혹은 다른 방식으로 합작해도 되고요. 예를 들어서 콜라보 상품을 내던가."그녀는 몸을 돌려 그와 마주 누었다.김서진은 손을 놓지 않고 여전히 그녀를 품에 안고 있었다.한소은은 김서진이 아주 품위 있고 속이 넓은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의 소유욕이 만만치 않다는 걸 느꼈다. 다만 그가 자신을 억제하고 있을 뿐이었다."유란이 당신의 요구를 동의할 것 같아요?"유란은 유명한 국제 브랜드인데다가 그들과 합작하고 싶은 사람은 너무나도 많았다. 그들이 찾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상황에 그녀가 요구를 제기했으니. 그녀가 무슨 근거로 유란이
윤설아는 자신이 질 거란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게 자신의 예상대로 진행될 줄 알았고 팔만 뻗으면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큰아버지가 유일한 변수라고 생했는데 결국에 자기가 키운 짐승한테 물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맞은편에 앉아 있는 요영은 하룻밤 사이에 부쩍 늙은 얼굴이었다."설아……."그녀의 두 눈은 부어있었고 이런 초라한 모습은 처음이었다."내가 이 꼴 되니까, 좋지?"윤설아가 바짝 마른 입술을 열며 물었다."당신 아들 믿고 살면 되겠네, 이제. 아빠도 당신도 다 똑같아. 다들 아들만 생각하잖아? 그럴 거면 날 왜 낳은 거야?"그녀가 피식 웃었다."역시 내가 바보였어. 도와줄 거라고 믿었던 내가 바보지. 안 그랬으면…….""설아, 그런 거 아니야. 나도 형원이가 그럴 줄 몰랐어. 나도 속고 있었어. 설아, 엄마 한번 믿어줘!"그녀가 다급하게 설명했다. 딸의 실망스러운 눈빛이 그녀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윤설아와 노형원중 누가 대윤을 물려받든 그녀는 상관없었다. 다 그녀의 자식이고 그녀도 둘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그리고 그땐 모든 걸 얻은 설아가 형원을 가만두지 않을까 봐 겁이 났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됐어!"그녀가 언성을 높였다."그런 변명도 이제 지겨워. 가서 사랑하는 아들한테나 해! 난 이미 쓸모없으니까, 더 이상 내 앞에서 연기하지 마."그녀가 짜증을 부리며 말했다."그 눈물 아껴서 아들한테나 보여줘!""설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엄마는 진짜……."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설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설아, 설아, 내가 해결해 볼게! 참, 정하진, 정하진이 도와주면 돌이킬 방법이 있을 거야!"지금, 이 상황에서 그녀를 도와줄 수 있는 건 정하진 밖에 없었다.둘이 약혼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자기 약혼녀를 도와주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이 이름을 들은 윤설아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비웃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