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왔을 때, 김서진은 아직 집에 없었고, 한소은은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타고 나서야 앉아서 그 서류봉투를 천천히 뜯었다.차성재가 약간의 자료라고 했지만, 그녀도 그에게 자료를 달라고 한 적이 없어서 그게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자료를 뜯어서 몇 번 훑었을 때 노형원이라는 세 글자를 날카롭게 들어왔는데, 그와 관계가 있는 것 같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놀랍게도 이것은 노형원의 신상에 관한 조사였으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와 그의 어머니 사이의 관계였다.안에는 그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현재 신분지위 등이 자세히 적혀 있었고, 로젠은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소개했다는 일을 포함한 모든 것이 안에 다 적혀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에 친자확인서가 첨부되어 있는데, 그것은 노형원과 그의 어머니의 것이었다.이 물건은 한소은을 매우 놀라게 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는 노형원과 오랫동안 함께 있었지만 그의 신세도 몰랐고, 줄곧 그의 부모도 모두 죽은 줄 알았었다.그렇기 때문에 그의 근면한 노력에 대해 지나친 호감을 가졌었고 그가 불행하게 태어났지만 그래도 열심히 노력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많은 것들을 숨기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요영……이 이름은 그녀에게 조금 익숙했다.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는 와중 자료에 자세히 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예전에 여우주연상을 한 번 받은 적이 있는 아주 유명한 여배우였는데 나중에 은퇴한 뒤 윤 씨 집안의 둘째와 결혼했지만 그 누구도 그녀가 밖에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이건 정말, 엄청난 추문이었다.차성재가 대충 말했었지만 이 자료는 노형원에게는 치명적이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그의 어머니에게는 매우 중요한 자료였다.윤 씨 집안은 의젓한 부잣집이었고 주로 상업을 했는데, 여러 세대에 걸쳐 노력했기 때문에 지금의 부를 이뤘고, 가문은 더욱 거대하고 복잡해졌다.요영은 윤 씨 집안의 둘째 아들과 결혼했지만 윤 씨 집안의 진정한 권력은 첫째 쪽이었으며 윤 씨 집안의
손가락으로 인형을 만지작거리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작은 목각 인형아, 작은 목각 인형아, 그 젊은이는 어디로 갔니?"목각 인형은 그녀를 보고 웃고만 있었다.——노형원은 집에 돌아와 한시도 지체할 수 없어 요영에게 두 번이나 전화를 걸었는데 둘 다 연결이 안 되고 끊어졌다. 아마 요영이 전화를 받지 못할 상황이라 생각되어 세 번째 전화를 걸지 못했다. 컴퓨터를 켜서 오늘의 판매 수치를 보고, 또 인터넷 상황을 살피며 전혀 앉아 있지 못하고, 뜨거운 냄비 위의 개미처럼 뱅글뱅글 주변을 돌았다. 매출은 여전히 하락하고 있었고, 반품률은 다소 낮아졌지만 여전히 적지 않았다.그는 이미 말을 꺼냈는데, 이제 와서 취소할 수도 없고 그저 일부러 판매 쪽에 일손을 늦추고 명성을 회복하는 동시에 손실을 최소화할 뿐이었다.동시에 몇 명의 신입사원을 수용하여 실험실에 진도를 빠르게 할 것을 촉구했으며, 품질에 관계없이 과거의 분쟁 제품을 대체하기 위해 적어도 몇 가지 신제품을 출시하게 했고, 새로운 제품을 출시해야 회사가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20여 바퀴를 돌자 드디어 휴대전화가 울렸고, 그는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는 듯 달려들었다.“엄마, 저…”"입 다물어!"저쪽에서 호되게 질책하는 소리가 들렸고 분명히 목소리를 억누르는 듯했다.노형원은 멍해졌다가, 곧 다시 정신을 차렸다. "요영 여사님......”"내가 네 체면을 세워줬지? 요즘 조금의 분수도 모르게 된 거야? 아무 때나 나한테 전화 걸기나 하고! 내가 전에 뭐라고 했지?!"그녀는 잔뜩 화가 난 듯 목소리를 억제하면서도 욕설을 참지 못했다."저는…" 노형원은 욕설을 듣고 가슴이 찔렸다.예전에 요영이 여러 번 부탁한 적이 있었다, 먼저 전화하지 말고, 일이 있으면 메시지를 남기라고, 시간 될 때 답장할 것이라고. 엄마라고 부르지 말고 꼭 요영 여사라고 불러서 꼬투리 잡히지 말라고도 했었다.예전엔 그도 확실하게 그렇게 했지만, 최근 들어 그녀가 그에 대한 태도가 많이 누그러졌고, 그를
"이 일은…." 노형원이 머뭇거리며 말했다."제가 걔를 건드린 것이 아니라, 걔가 저를 못살게 군 거예요. 지금은 여론이 한쪽으로 기울어서 여사님이 말한 약자를 동정하는 건 전혀 소용이 없어요, 모두가 한소은을 믿기 시작했어요. 지금 회사에서 매일 반품 물량이 넘치는데 이러다 회사가 망할 것 같아요.""너는……" 그녀는 노형원에게 너무 화가 나서 말문이 막혔고, 요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발자국 소리만 들렸다. 아마도 말하기 편한 곳을 찾은 듯했고, 그러고 나서야 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너에게 준 방안에는 개랑 관련된 것이 없었어, 너는 걔의 배후 세력이 무엇인지 뻔히 알면서도 그녀를 건드리려 하다니, 죽음을 자초한 거야?!""아뇨, 제가 건드린 게 아니라 걔가 굳이 저를 건드린 거라니까요. 제가 아무리 약자로 분장해도 이젠 사람들이 날 못 믿잖아요!” 그도 어쩔 수 없었다.요영은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봤을 때 네가 꾸민 건 전혀 약자가 아니라 멍청이야!""….""알겠어, 일단 더 말 하지 마, 내가 돌아가서 무슨 일인지 확인해 볼 게. 별일 없으면 나한테 전화하지 말고.” 요영은 전화를 끊기 전에 또 뭐가 생각난 듯 말을 보충했다. "일이 있어도 걸지 마, 요즘 너무 바빠! 시간이 있으면 답장할 거야."“......”전화를 끊는 소리를 들으며 노형원은 잠시 묵묵히 있더니 더욱 우울해졌다. 원하는 답을 아예 못 얻었고, 아무 아이디어도 내지 못했으며 욕만 먹었을 뿐이었다.그는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했고, 특히 현재로선 입소문을 조금 만회한 것으로 보였으며 최근의 인터넷 논쟁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네티즌들의 집중적인 이슈는 다음과 같았다.첫 번째는 시원 웨이브 이전의 향수 시리즈가 한소은의 손에서 나온 것인지 강시유의 손에서 나온 것인지, 그가 강시유와 함께 그녀의 성과를 훔쳤는지이다.둘째는 그와 한소은이 도대체 연애를 한 적이 있는지 없는지, 한소은이 제3자인지, 아니면 강시유가 제3자인
"그래, 그래, 뭐 큰 거 샀어?""이렇게 큰 거면, 가구구나!"많은 동료들이 호기심으로 물었고, 심지어 누군가가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았지만, 나뭇조각으로 밀봉되어 있어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는 없었다."내가 산 게 아니야!"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무 상자에 한 손을 얹었다. “경비원이 또 뭐라고 했어? 누가 보냈는지는 말 안 했어?"동료들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누가 보낸 것인지 이상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열어야 할지도 걱정됐다. 이렇게 단단한 물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알겠는가.요즘 그녀가 너무 나서서 누가 그녀에게 보복성 물건을 보낸 건 아니겠지?머릿속이 번뜩이자, 그녀는 안에 있는 물건에 물릴 것처럼 손을 뒤로 재빠르게 뺐다."와, 이렇게 큰 상자라니!"오이연이 전을 먹으며 들어와서는 큰 상자를 보자 신기하다는 듯이 덤벼들었다.“무슨 물건이야?”그녀를 흘겨보자, 한소은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폭탄!"이라고 말했다."……" 본능적으로 뒤로 두 발짝 뛰었지만, 손에 든 전은 버리지 않은 채 오이연이 눈을 부릅떴다. "진짜야?""당연히 가짜지, 진짜라면 우리가 여기 앉아 있겠냐!"옆에 있던 동료가 비웃으며 말했다."우리도 여기에 뭐가 들어있는지 몰라요, 다 궁금해하는 중이에요. 소은 씨, 소은 씨가 산 게 아니라면 남자친구가 준 거죠?"다른 사람이 반 농담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한소은은 오히려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설마, 정말 서진 씨가 준 거야?핸드폰을 들고 돌아서서 복도로 가서 조용한 곳을 찾아 전화를 걸었고 몇 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김서진이 전화를 받았다. 김서진의 그 자성적인 목소리에는 약간의 조롱이 섞여 있었다."왜요, 아침에 헤어졌는데, 벌써 내가 보고 싶어진 거예요?""그래서, 이게 당신이 선물을 준 이유예요?” 한소은이 되물었다.김서진은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선물? 무슨 선물? 누구한테 선물할 거예요?""당신이 준 거 아니에요?" 그의 말투만 들어도 그가 준
"그래요, 알겠어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요."그녀는 전화를 끊고 돌아가면서, 여전히 큰 나무상자에 대해 걱정했다. 경비원이 어떻게 가져다줬는지도 몰랐고, 그녀는 자신의 두 손으로 그것을 감싸는 것도 좀 힘들다고 느꼈다. 김서진이 다른 사람에게 빈 장소로 옮겨 달라고 하라고 했는데, 누구보고 옮기라고 할 수 있을까.그녀는 서서 걱정했지만, 옆에 있던 오이연은 오히려 흥분해서 아침을 다 먹고 손을 씻으러 갔다가 그녀가 서서 상자를 노려보는 것을 보고 다가와 말했다. "아직 안 열었어?""누가 못된 장난을 친 걸 수도 있으니까 무서워서."공교롭다는 듯이 그녀를 보고, 한소은이 말했다."게다가, 이걸 어떻게 뜯지?""이거 뜯는 건 쉽지 않나? 펜치 하나 찾아보고 드라이버도 하나 찾아서 이래저래 열면 되잖아!"오이연이 손짓을 하며 말했는데 아주 능숙한 모습이었다."….""네가 할 수 있으면 네가 해!"한소은이 해달라는 자세를 취하며 오이연을 시켰다.오이연은 소매를 쓸어 올리려다 멈칫 웃으며 말했다."나는 이론 파야. 실천해 본 적은 없어. 하지만 내 생각에는……언니가 전문가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사실이 증명하듯 이 건의는 그래도 비교적 믿을만 했다.그녀는 분해와 조립을 전담하는 전문 인력을 구했는데, 전문적인 공구상자를 메고 와서는 망치로 살짝 두드리고는 말했다. “간단해요!”이 말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겉포장을 뜯어냈다.1층 전체가 긴장되어 있었고, 관건은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호기심도 있었고 두렵기도 했으며 모두 머리를 내밀고 보고 싶어 했지만, 또 무서워서 그러진 못했다.하지만 겉포장이 철거되는 순간 모두가 '와' 하는 탄성을 질렀다.무슨 악의적 장난이나 시비를 거는 물건이 아닌 전혀 상상치도 못한 물건이 들어있었다. 안에는 아주 멋진 나뭇조각이 있었고, 조각된 것은 날개를 펼친 선학 한 마리였다. 한 발은 들고 다른 한 발은 움츠린 모습이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를 듯했다.나뭇조각은 본래
”이건 노형원이 준 게 아니라…. 남자친구가 준 거야." 오이연이 그녀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 안에, 그녀만이 그녀의 남자친구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한소은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다시 생각 해보니 자신이 다시 부인한다면 그들은 분명 선물을 준 사람이 누구인지, 심지어 선물 자체에 대한 관심을 넘어설 수도 있었다.그녀는 끝까지 꼬치꼬치 캐물음을 당하고 싶지 않아 말을 빙빙 돌리며, "응!"이라고 얼버무렸다.“우와, 남자친구 좀 봐, 너무 창의적인걸!” "맞아, 난 꽃 선물, 초콜릿 선물, 화장품 선물, 가방 선물 같은 건 많이 봤어도 나뭇조각을 선물하는 건 처음 봐.""그나저나 소은 씨 남자 친구라면 소은 씨에게 희귀한 향료 같은 것을 주고 마음에 들게 해야 하지 않나요?"동료들은 이러쿵저러쿵 아무 말이나 다 했다. 떠들썩한 꼴을 못 보겠기에 조현아는 두 번 기침을 했다."회의할 때는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것을 보지 못했죠?"그녀의 이 한마디는 사람들을 일깨워 주었다. 지금은 사무실이었고, 아직 근무 시간이라 사람들은 모두 빨리 자리로 돌아가 앉았고 더 이상 왈가불가하지 않았다.한 바퀴 둘러본 후에야 조현아는 눈길을 돌려 한소은을 바라보았다.“이 물건은……”조현아가 망설이며 말했다. "아니면 제 사무실에 두고 퇴근 후에 가져가는 게 어때요?"한소은은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포장을 뜯고 다시 운반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고 조심하기만 하면 됐다.사실 선학 자체는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부딪혀 부서지는 것을 방지해야 하기 때문에 포장을 크게 하고, 통째로 나무틀로 틀 안에 넣어 놨는데, 다행히 제거했을 때 손상되지 않았다.사무실로 옮겨 구석에 놓아두고 보는데 볼수록 생동감이 넘쳤다.조현아는 여러 번 보고 아주 마음에 든다는 듯이 말했다. "남자친구한테 어디서 샀는지 물어봐 주세요, 나중에 저도 하나 사야겠어요, 정말 예쁘네요!""….""왜요? 어디서 샀는지 물어보면 안 돼요?
하지만 세 사람은 사과문을 다 읽고는 아연실색했다.이건 사과 성명이 아닌 그야말로 발뺌 성명이라고 할 수 있다.이렇게나 많은 글자를 썼지만 요약하면 몇 가지 의미만 있었다. 첫째, 그는 지난 두 달 동안 이전의 실험 기록을 잘 검사하고, 또 많은 신경을 써서 찾아냈고, 마침내 원래의 작품들은 확실히 한소은의 손에서 나온 것이지 강시유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이전에 그런 오해가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강시유의 기만이 있었고, 그도 속았기 때문에 진상을 몰랐으며 이제 알게 되자 매우 후회스러웠기 때문에 한소은에게 사과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둘째, 그와 강시유, 한소은 사이의 감정 문제는 원래 사적인 감정 문제일 뿐이고, 이렇게 공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모두가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도 사랑을 했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많은 글을 썼고, 마지막으로 요약하자면, 한소은에게 가장 진지한 태도로 사과하고, 그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에게 어떻게 복수하든, 혹은 어떤 보상을 원하든, 그는 기꺼이 협조하고 그녀를 만족시킬 것이며 결국 이것은 그가 그녀에게 빚진 거라고 말이다. 한 편의 글은 정말로 정이 가득해 보이지만, 실상은 거짓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물론, 사람들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하며, 이 중 몇 가지가 진짜인지 모를 수 있다. 예를 들어 과거 작품은 모두 한소은의 손에서 나온 것은 확실히 사실이지만 노형원도 강시유의 기만에 속은 것이라고? 정말 그는 전혀 이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제기랄!”오이연은 따끔한 말 한마디를 내뱉었고, 이 사과 성명에 가장 진실되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나는 정말 조금, 그 사람을 존경해!”조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실소했다. "노형원을 존경해요? 이 사람처럼 파렴치한 사람이 존경할 게 뭐가 있다고요!”오이연은 분통을 터뜨렸다.“뻔뻔한 사기꾼 같으니라고!” "이렇게까지 뻔뻔할 수 있는 것도 인재죠! 게다가, 그 사람의 두뇌회전은 정말
"맞아, 못 본 걸로 해."한소은은 고개를 돌려 그곳에 놓인 선학 나뭇조각을 바라보았다.“쉬는 셈 쳐, 한가로운 시간은 얼마 못 가고 곧 새 작품에 들어갈 거니까.” "또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긴 거야?"그녀는 매우 흥분했고, 어쨌든 한동안 한가해서 손이 좀 가렵던 찰나였다. 실험을 시작하면 매우 힘들긴 하지만 항상 충실히 임했다. "곧이야!"——김서진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거실에 세워져 있는 그 선학 나뭇조각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건…." 그가 머뭇거리며 말했다.막 자리를 비우고 목각을 옮기려던 한소은은 그가 돌아온 것을 보고 손짓하며 말했다."마침 잘 돌아왔네요, 이것 좀 같이 옮겨줘요.” “……”이 물건을 옮기는데에 그녀의 도움은 필요없었다.그는 외투를 벗고 소맷부리를 걷어 올리고는 그녀에게 비키라고 손을 흔들고, 혼자서 목각을 들어 올린 다음, 그녀가 비운 자리에 놓았다."당신이 산 거예요?” "다른 사람이 줬어요."고개를 흔들며 한소은은 자세히 살펴보았고, 수공은 정말 좋았고 선이 매끄러웠으며,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다."아침에 전화로 말한 게 이거예요?"김서진은 의아해하며 손가락으로 목각을 가리켰고, 남의 장난인 줄 알았는데 이런 물건이라니, 매우 신기했다. 하지만 이런 물건을 여자에게 보내주는 건 다른 생각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네."그녀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생각에 잠긴 듯한 그녀의 모습에 김서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남자가 보낸 건가요?""네."여전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소년이 이 물건을 보내주었으니 소년은 또다시 나타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김서진은 소매를 다시 위로 걷어올리고 뒤돌아서서 다시 그 목각을 안았다. 그러자 한소은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앗, 뭐 하는 거예요?”“버리려고요!” 그가 떳떳하게 말했다.“……”"그러지 마요, 선물로 줄 거예요!” 그녀는 곧장 그의 팔을 잡아당겨 만지지 못하게 했고, 그가 다시 건드릴까 봐 아예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