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정서적 변화를 감지한 김서진은 그녀가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이내 말했다. "말하고 싶지 않다면 말하지 않아도 돼요."그의 배려에 너무 감사했다. 그와 함께 있는 동안 그의 배려심은 정말 세심했으며 그래서 그녀가 마음을 완전히 열 수 있었다.사실 생각해 보면 노형원은 그녀에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한 적이 없고, 그녀도 어찌 그렇지 않은가.두 사람이 이렇게 오랫동안 같이 있으면서 스킨십이 없는 것도 그만이고, 서로에 대해 비밀도 있고, 뭔가 숨기고 보류하고 있으니, 그들이 오늘에 이르게 된 것도 필연적이다."우리 가족에 대해 당신에게 말한 적이 없어요.” 그의 손을 잡고 소파 쪽으로 가서 앉자 그녀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이런 담담한 말투, 아주 온화한 대화방식에 김서진은 곧 조용해져서 도리어 그녀의 손을 잡고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응."“사실 나는 강성 출신이에요.”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강성 차씨.""차 씨 가문?”"차 씨 가문.”얘기하면 강성 차 씨 가문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소성의 김 씨 가문, 해성의 윤 씨 가문, 제성의 정 씨 가문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차 씨 가문이 아무리 검소해도 결국 유일하게 알려진 고대 무술 가문이기 때문에 다른 세 가문보다 더 신비롭고 호기심을 느끼게 한다.차 씨 가문은 너무 검소해서 몇몇 유명한 인물만 알려지고, 다른 방계 자제들과 차씨 가문의 일부 자녀들에 대해서는 바깥사람들이 잘 모른다.사실 이런 이유 때문에 노형원은 그녀가 차 씨 가문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줄곧 몰랐다."차 씨 어르신은 내 외할아버지이기 때문에 나의 성이 차씨 아니에요."그의 눈을 보면서 그녀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둔 얘기를 모두 털어놓았다.그녀는 성이 차 씨 아니면서 또 차 씨이기도 하다. 18살까지 그녀는 차해인이라고 불렸고 그 후에 차씨 가문을 떠나 대학에 들어갔고, 나중에 조향 업계에서 웃음거리가 되었고, 그리고 또 노형원과 같이 있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가족들과 결
“나는 다른 뜻이 없어요!” 그는 콧방귀를 뀌며 매우 츤데레했다."그런데 생신 선물은 준비했는데 어떻게 보낼지 아직 생각을 못 했어요."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문지르면서 이것도 괜히 신경 쓰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돌아갈 생각은 없어요?"이 말을 들으니 그녀가 직접 갖다 드릴 생각은 없다는 건가?고개를 살살 저으며 한소은은 한숨을 내쉬었다.”아직 모르겠어요.”"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잠깐 멈추었다가 그는 말했다.”집에 당신이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이에요?다시 생각하더니 또 말했다. "부모님…"그녀가 부모님 얘기를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애초에 그녀의 자료를 조사할 때 이런 관계를 조사하지 못했으며 몰래 손쓴 것으로 보였다.“두 분 다 돌아가셨어요. 비행기 사고로 같이 돌아가셨어요."그녀는 아주 차분하게 말했다.“......”그녀의 태도가 너무 차분해서 김서진은 매우 마음이 아팠다. 이것은 어떤 심정이길래 이렇게 차분한 태도로 이런 잔혹한 일을 말할 수 있을까.손을 뻗어 그녀를 품에 안고 너무 안쓰러웠다. "다 지나간 일이에요. 앞으로는 내가 있어요!"그의 품에 안겨 그녀의 마음은 매우 안정되었다. 맞다. 앞으로는 그가 있다!그녀는 가끔 자신이 왜 이렇게 빨리 빠져들었는지 생각했다. 왜 그에 대해 전에 없던 뜨거움과 온 마음을 다해 신뢰할 수 있었는지, 아마도 그가 그녀에게 전에 없던 안정감을 주었을지도 모른다.이런 안정감은 지난 몇 년 동안 느끼지 못했던 것이며 차 씨 집안에 있을 때도 없었다."만약 당신이 가고 싶지 않다면, 내가 사람을 보낼게요. 만약 당신이 가고 싶은데 고민이 된다면 내가 같이 가줄게요.”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한소은은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고 그를 쳐다보았다.그녀의 놀란 눈빛을 바라보며 그는 웃기 시작했고,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눈빛은 유난히 부드러웠고 그 부드러운 눈빛은 그녀의 마음속의 혼란과
하지만 이 아름다운 꿈에서 너무 빨리 깨어났다!노형원은 그를 맞이하는 것이 매출이 두 배가 되는 것이 아니고 이윤이 두 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연속 큰 타격일 줄 생각하지 못했다.아침 9시에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3개의 영상을 올렸다. 첫 번째 영상은 사실 매우 평범하며 아주 오래전 비즈니스 인터뷰 영상이다. 당시 인터뷰에 응한 노형원은 매우 득의양양했다. 사회자 앞에서 향수 산업의 비전에 대해 크게 이야기했고, 국내 일류 조향사가 부족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그가 신제품 개발에 대해 중시한다는 것을 강조했고 매번 조향사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을 때마다 그와 논의하고, 그도 또한 향수의 연구개발과 조제 전 과정에 참여하였으며 동시에 조향사의 고생에 감탄했다.두 번째 영상은 당시 한소은이 시원 웨이브를 떠나려고 할 때 시원 웨이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그 현장에서 한소은의 사과 거부, 노형원의 경미한 당황, 강시유의 작은 움직임과 눈빛 교환, 그리고 어수선한 사후 처리 등등, 무엇으로 찍었는지 모르겠지만 마치 확대경을 사용한 것처럼 미세한 부분까지 그대로 찍혔다.그리고 세 번째 영상은 노형원이 아래층에서 고백 풍선을 날리는 바보 같은 모습이었다. 마지막에 그의 사과 성명도 첨부했다. 단지 위에 몇 가지 요점을 빨간 펜으로 표시했다. 예를 들어 그는 전혀 몰랐고, 그는 속았다. 그는 회사의 업무 때문에 바빴으며 연구실을 지켜볼 시간이 어디 없다. 모두 강시유가 말했다. 그는 그녀에게 향수의 연구개발을 전적으로 맡겼으며 그렇게 그녀를 신뢰했는데 그녀가 이렇게 할 줄은 몰랐다… 이런 말들이다.그리고 동그라미 친 후에는 아무런 메모도 없이, 마치 구경하는 네티즌들에게 ‘봐. 요점을 표시했으니 다들 알아서 판단하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모두 그가 말한 것이다.’라고 보여주는 것 같았다.하지만 이것이 바로 핵심이다. 이 몇 개의 동영상에는 댓글과 입장이 없고 단지 한 줄의 피상적인 글이 있었다. 인터넷은 기억이 있다.노형원: "!!!!"인터넷은 기억
한소은은 한 마디도 할 필요 없이 그녀는 이미 이겼고 모두에게 인정받았다.예전에 그녀를 의심했던 사람들은 모두 나와서 사과했고, 한소은에게 사과하는 것이 화제가 되어버렸다.이날 오전은 노형원에게는 악몽이었다.그는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끝나지 않았고, 퇴근시간 무렵에 몇 가지 정보가 더 터져 나왔다.이 몇 가지 정보는 사실 한 개이며 바로 그와 한소은이 정말 사귀었는지 아니면 짝사랑하고 일방적으로 매달렸는지에 관한 것이다.전에 그와 강시유는 대학 동창들을 찾았는데, 몇몇은 그들의 친구였고, 또 몇몇은 진실을 모르지만 한소은과 같은 독보적인 성격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당시 그들은 한소은과 노형원이 사귀었는지 몰랐다며 모두 강시유와 그가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극적인 반전이 왔다!이 동영상은 여전히 그들의 대학이지만, 이번에 나온 사람은 당시 그들의 지도 교수이자 전공 과목 교수이다.원래 한소은이 이런 영예를 얻게 된 것은 선생님으로서 당연히 기쁘고 영광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기꺼이 인터뷰에 응했다.이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 교수는 그와 한소은이 연애하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녀가 당시 공부의 신이었고, 그가 그녀가 필요할 때가 너무 많았으며, 나중에 그녀의 조향 잠재력을 알아차리고 자신을 위해 써먹으려고 했다.다른 친구들은 몰랐지만 한소은이 교수님을 도와 실험을 할 때 그가 자주 마중을 나와서 교수님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이제 제3자의 증언조차 성립되지 않았다.두 사람을 비교했을 때 당연히 교수님이 거짓말을 하지 않으실 거라고 믿는다.동창들끼리는 사이가 좋거나 나쁘거나,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있을 수 있어서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 있겠지만 교수님은 그런 일에 거짓말을 할 수 없다.게다가 이날 노형원은 이미지가 계속 무너지고, 평판과 신뢰도는 더욱 곤두박질쳤고, 더 이상 증거가 필요 없었으며 인터넷 전체가 그를 극도로 싫어했다.노형원=사기꾼=인간말종=쓰레기.이것이 바로
예전에 그녀가 과음한 적이 있었는데 그 후부터 김서진은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해서 그후로 그녀도 적당히 마신다.“오늘처럼 이렇게 즐거운 자리에서는 아무래도 술을 좀 마셔야지! 마셔. 취하면 내가 데려다줄게." 오이연은 그녀가 쥐고 있는 컵을 가져갔다."됐어. 나 자신을 믿는 게 나아."지난번에 그녀가 데려다 줄 때, 하마터면 문도 못 들어갈 뻔했으며 다행히 입구에서 김서진을 만났다.오이연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다."지난번엔 다르지. 이번에도 못 들어가면 전화해서 사람을 부르면 되지."조현아는 계속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렸다. "말리지 마요. 과음하면 확실히 일을 망쳐요. 그런데 소은씨, 난 당신이 도대체 뭘 기다렸는지 궁금해요. 이 증거들은 이제 손에 넣은 것도 아니잖아요? 왜 꼭 오늘까지 기다려서 터뜨렸죠?"노형원 그 쓰레기 같은 남자를 며칠 동안 우쭐거리게 한 후에 비참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기분을 느끼라고?"영상 자료는 있는데 대회 수상, 그리고 상품을 보내주시는 날이 마침 요 며칠이니까요."그녀는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는 천천히 말했다.침착하고 담담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두 사람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러니까 프랑스 대회 쪽 소식을 기다렸던 거구나!""사실 대회 소식이 있느냐 없느냐의 영향은 크지 않지만, 이왕 사람을 망가뜨리려면 제대로 끝까지 망가뜨려서 더 이상 날뛰지 못하게 해야죠.”그래서 그녀는 모든 증거와 자료를 모아서 한꺼번에 노형원에게 보냈다.만약 하나하나씩 보내면, 그는 방법을 생각해서 대응할 것이며, 그러면 또 어떤 나쁜 짓을 꾸밀지 모른다. 하지만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증거를 터뜨리면 생각할 기회조차 없어지고 망가진다.이제 그가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을 거고 아무리 발뺌하려 해도 소용없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소은은 매우 공식적으로 자신의 SNS 계정을 운영했을 뿐이며, 모두 신제품이나 회사 관련 콘텐츠를 전달했고 어떠한 주제 논의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막연히 휴대폰을 들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지만 번호를 누르려는 순간, 그녀의 엄한 꾸지람이 떠올랐다. 나한테 전화하지 마!맞아. 그렇게 바쁜데 자기 전화를 받을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받을 수 있다고 해도 어쩔 수 있겠는가.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멈추었다가 결국 통화 화면에서 나와 대신 문자 화면을 열고 한 줄 입력했다. “저 망했어요. 죄송합니다. 안녕히 계세요.”"노 대표님…" 그의 비서는 상자를 안고 문 앞에 서서 머뭇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그는 힘없이 손을 흔들며 그녀가 떠나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가요. 다 가요!"억지로 버티고 일어나서 통유리창 앞에 가서 밖을 내다봤다.이 도시는 여전히 차량의 왕래가 끊이지 않고, 여전히 그렇게 번화하고 눈부시지만, 이 모든 것은 그의 것이 아니다.그는 어렴풋이 이 사무실로 처음 이사할 때 광경을 떠올렸다. 그때 회사가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한소은이 개발한 향수의 판매량은 매우 좋았고, 출시하자마자 폭발적이었다. 당시 제품의 가격은 비싸지 않고 실속형이었지만, 향수의 품질이 좋고, 구매자들이 다양하고 많아서 장사는 나날이 번창했다. 주문이 계속 늘어서 오늘날 신생 같았다.그때 그는 많은 돈을 벌었고, 투자도 받았고, 주주들이 투자를 해서 회사는 나날이 발전했다. 그는 사업에서 득의양양했고, 사랑도…. 한소은이 뒤에서 그를 위해 목숨 걸고 일했으며, 강시유처럼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여자가 품에 안겨 있어 그야말로 인생의 위너였다.그는 이 모든 것이 더 나은 방향으로만 발전할 것이며 부와 지위, 명예와 권력 모두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는 어머니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그녀의 도움이 없어도 자신의 힘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고!재벌이면 어때서? 노형원도 언젠가 그 대열에 들어갈 것이다.여기가 그는 시작인 줄 알았는데, 여기가 끝인 줄은 몰랐다.언제부터 시작된 거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지금 이 순간, 그는 이미 그렇게 많은 것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단지 자신이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밤이 되자 눈이 내렸다. 하지만 일 년 내내 눈이 잘 내리지 않는 소성의 경우, 눈이 내려도 그리 크지 않고 나무 위에 얇은 한 층이 쌓이고 조금 더 쌓이기도 전에 녹았다.소성에서 빠져나와 강성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면 풍경은 눈에 띄게 변하고 있다.소성의 눈은 정확히 말하면 모두 진눈깨비, 빗물에 싸락눈이 섞여 있어 투명해 보이지만, 강성은 다르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눈이 점점 커지며 싸락눈이 아니라 큰 눈송이다. 게다가 땅 위에 쌓인 눈도 점점 깊어지면서, 차 씨 집안에 도착할 때쯤에 길가에 쌓인 눈은 이미 발목을 넘었다."강성은 소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 이렇게 큰 차이가 있을 줄은 몰랐어요. 이렇게 큰 눈이 내릴 줄이야."차에서 내리자 한소은은 손을 뻗어 눈송이를 받았다.흩날리는 눈이 그녀의 머리 위에, 어깨 위에, 손바닥에 떨어져도 바로 녹지 않았다. 그녀는 몇 년 동안 눈을 보지 못했다. 지금 이 눈밭에 서 있으니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바로 앞이에요. 오랜만에 돌아오는 거죠?"그녀에게 숄을 걸쳐주고 김서진은 또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건네주었다.차에는 보온병에 뜨거운 물이 있었고 뜨거운 코코아는 향이 매우 진했다. 비록 집에 있는 것과 비교할 수 없지만 밖에서 마시니 매우 편안했다.한 모금 마시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한 ......6, 7년쯤 되었을 거예요!" 그녀는 대충 회상해 보았다.대학 다닐 때부터 돌아오지 않았다. 어차피 평일에는 학교에 있었고, 방학이 되면 실험하고 자료 조사도 하고, 각지에서 채취도 하고, 어쨌든 온갖 핑계를 찾아서 돌아오지 않았다.어르신의 성격은 그녀가 돌아오지 않아도 절대 재촉하지 않는다. 그분의 말로는 그녀가 돌아오지 않는다는데, 자신이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청해야 되는 법은 없다고 한다.그리고 그녀도 사실 외할아버지가 자신을 별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기억에는 전부 끝없는 연습, 공부, 각종 시련과 시험이며 집에 있어도 쉴 수 없었고 편안히 한번
차 씨 가문 집의 위치는 시중심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교외인 셈이다. 교외에 있는 아주 큰 장원은 넓은 면적의 부지를 차지하고 산과 강에 인접해 있으며 풍수에 따르면 기운이 넘치는 땅이다.그런데 차 씨 가문이 언제 이곳에 뿌리를 내렸는지,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차 씨 가문이 고대 무술 가문이라고 대대로 전해 내려온 것도 모두 전설이다. 차 씨 집안사람들이 정말 무술을 할 줄 아는지 직접 본 사람도 없고 검증한 사람도 없다.오늘날 차 씨 가문은 주로 사업을 경영하고 있다. 물론 사업뿐만 아니라, 공부해서 교수가 된 사람도 있고 의사가 된 사람도 있다. 워낙 대가족이라 방계가족도 비교적 많아서 차 씨 가문을 언급하면 자연스럽게 숙연하고 경건해진다. 하지만 진짜 직계가 어느 집인지도 잘 구분되지 않는다.그래서 더 신비롭게 느껴지는 것 같다.어르신 생신이라 그런지 차가 많이 와 있었다. 도로에 바큇자국이 뚜렷하고 눈이 오가는 차들에 눌려 다 녹아버렸다.차가 문 앞에 이르렀을 때 누군가 막았으며, 초대장을 제시해야 했다.김서진은 옷깃을 조금 열고 초대장을 꺼내려는데, 한소은은 이미 차창을 내리고 상대방을 쳐다보았다. ”나예요.”아마 오래간만에 돌아와서 문지기 하인은 어리둥절했지만 자세히 보더니 금방 알아보았다. "아가씨?! 아가씨 돌아오셨어요.”“네, 할아버지 생신 축하드리러 왔어요.”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얼른, 얼른 들여보내!"그 사람은 손을 흔들었다. "어서 어르신께 아가씨가 돌아오셨다고 말씀드려!"그들은 모두 매우 흥분해 보였으며 그녀가 돌아온 것을 환영한 것 같았다.김서진은 그녀가 차창을 천천히 들어 올리는 것을 보고 안색이 매우 엄숙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한쪽 손만 살짝 잡았다.장원 입구로 들어가 10분 정도 더 운전해서 독채 집 앞에 멈춰 섰다.입구의 주차장에 이미 많은 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한소은은 밖을 내다보니 차성재의 차도 있었다.오늘 같은 날, 그는 당연히 있을 것이다.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