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그녀가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고, 노형원은 어리둥절해하며 그녀를 불렀다. "한소은이 왜 레시피에 손을 댔지? 걔가 너와 같이 지낸 지가 몇 년인데? 네 그 작은 회사 제품 중 몇 개가 한소은의 손에서 나온 거더라? 한소은은 항상 네 말을 잘 듣고 고분고분했는데, 너는 왜 그 아이를 쫓아내려 한 거니?” 그녀는 마치 엄한 선생님이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학생에게 질문하는 것처럼 말하면서 테이블 위를 가리키며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노형원은 넋을 잃었고, 멍한 표정으로 땀을 흘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어머니……”"로젠에게 널 도우라고 한 건 네가 내 아들이기 때문이야, 네가 이렇게 오래 고생하는 걸 보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네가 맞는다는 건 아니다. 형원아, 이 일은 네가 아주 크게 잘못을 저질렀어!” 그녀는 인정사정없었고, 지금 가장 난처하고 난감한 것은 바로 강시유였다.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노형원을 따라 미래의 시어머니를 만나러 온 것인데, 이 미래의 시어머니는 분명히 그녀를 안중에 두지 않았고, 그녀를 제대로 본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뿐만 아니라 그녀 앞에서 아들의 전 여자친구를 극찬하는 것은 무슨 시추에이션이지! 그녀는 자리에 앉아 얼굴이 하얗게 질려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듯했다. 그러자 노형원은 불만인 듯 그녀의 말에 반박했다.“어머니, 감정적인 일은 원래 통제할 수 없어요.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시유예요. 전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평생을 살 수 없어요. 그래요, 한소은은 조향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그것 때문에 반드시 제가 그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요! 나도 내가 그 사람을 이용한 걸 인정해요, 하지만 나도 그 사람에게 많은 걸 줬습니다. 어머니도 오랫동안 알고 계셨잖아요, 그 여자는 잘 바뀌고 얼마나 몰인정한 사람인지 이번에 보여줬어요.” “그런 여자는 이번만 아니더라도 언제 또다시 뒤바뀔지 몰라요. 나는 지금, 미리 위험을 제거한 거예요.”
노형원은 매우 기뻐하며, 한 손에는 카드를 쥐고 다른 손으로는 강시유의 손을 잡고 말했다."시유야, 우리 드디어 결혼할 수 있어!”그의 손에 든 카드를 흘겨보더니, 그녀는 유난히 차갑게 그의 손을 뿌리쳤다.“그래?”"이거 봐, 우리 어머니가 우리에게 준 축의금이야, 이건 어머니가 이미 너를 인정했다는 뜻이고. 어머니가 방금 한 말이 너를 불쾌하게 했다는 걸 나도 알아, 너도 너무 깊게 생각하진 말고. 어머니는 다른 뜻이 없었고 그저 날 생각해서 그런 말씀을 하신 거야.” "당연히 널 위해서겠지, 심지어는 네 아내까지 직접 골라주시니 말이야. 하지만 그 분 눈에는 내가 적합한 며느릿감이 아니고 말이야.” 방금 예비 시어머니가 한 말을 생각하자 그녀는 매우 화가 났다. 그녀는 말끝마다 한소은을 언급했고, 눈앞에 떡하니 자신이 앉아 있으며 자신의 아들과 결혼하는 것은 한소은이 아닌데 말이다! 그녀의 눈에는 자신이 전혀 없었고, 눈에서 나오는 경멸의 의미는 강시유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이것 봐, 너 또 삐졌어? 내가 말했잖아, 내 어머니는 무심하다고. 그리고 다시 말해서 어머니가 아무리 한소은을 좋아한다고 해도 내가 좋아하지 않는데 뭐 어떡하겠어, 어머니가 한소은과 평생을 살아? 결혼하는 사람은 나고, 아내를 고르는 것도 나야, 어머니의 의견은 그저 의견일 뿐이지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다고!”그는 참을성 있게 그녀를 달랬고, 노형원도 이 일에 있어서 그녀가 확실히 억울한 감정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정말이야?"고개를 돌려 그를 보며 강시유가 말했다."그런데 만약에 네가 마음이 바뀌면?”"내가 어떻게 마음을 바꾸겠어! 몇 년 동안 함께 했는데 내 마음을 아직도 모르니? 내가 줄곧 좋아했던 것은 너였고, 너밖에 없었어! 이제 우리 아이도 있으니 때려죽여도 변치 않을 거라고."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노형원은 그녀의 손을 잡고, 그 은행 카드를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앞으로, 우리 집의 돈은 모두 네가 관리하고 나도 네가 관리하는 거
”다시 걸어! 안 되면 오이연 집을 찾아가, 정말 대담한 사람 같으니라고!”그는 언성을 높였지만 화가 풀리지 않았고, 생각을 하더니 이내 말했다.“됐어, 내가 직접 하지!”그는 회사로 돌아가 곧장 인사부로 갔다."오이연의 자료를 나한테 넘겨주고, 또 법무부는 직원이 무단으로 퇴사하면 어떤 처벌과 배상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해.”그러자 인사부 직원이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노 대표님, 오이연 씨는 이미 한 달여 전에 사직서를 냈고 근로계약법상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만 30일 이후에는 자진 퇴사할 수 있습니다.” "무슨 놈의 규정이 그래, 그런 규정이 있다는 말을 왜 나는 못 들었지!”노형원은 매우 놀랐다, 이것은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그는 줄곧 자신이 하루라도 서명하지 않고 하루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오이연은 계속 여기에 남아서 계속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인사부의 말은 그를 크게 화나게 했다."이건……계약법에 규정돼 있습니다.”직원의 소리가 작아졌고, 대표가 아무리 화를 낸다 한들 국가 규정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럼……오이연이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회사를 나갈 수 있다는 말인가? 회사는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그는 믿을 수 없었다, 일개 직원이 이렇게 큰 회사에서 그녀를 어떻게 할 수도 없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그녀의 지난달 월급과 복리후생은 아직 정산되지 않았습니다.”직원이 고개를 숙이고 자료를 뒤적거리며 말했다. "깎아 버려!”노형원은 망설임 없이 명령을 내렸다. "또한, 그녀가 이전에 근무했던 업무의 특수성 때문에 그녀에게 경업 금지 협약을 이행하도록 요구할 수 있습니다."노형원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게 좋겠군! 그렇게 처리하도록 해, 다른 동종 업계에 취직하지 못하게 하고, 만약 듣지 않는다면 법적 절차를 밟아서 회사의 경제적 손실을 배상하게 해!” 그는 이 계집애가 회사를 나가기로 결심한 것은 한소은의 손을 잡은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고, 그녀의 뜻대로 되
"늦잠을 잤어요, 죄송합니다.”그녀는 오이연을 보며 말했다."보아하니, 내가 다시 서로를 소개할 필요도 없을 것 같네요.” “앞으로 다 같은 식구들인데 소개할 게 뭐가 있겠어요!”오이연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조현아는 웃어 보였다. “팀장님, 태도가 너무 차이 나는 것 아닌가요. 처음에 저한테 그렇게 친절하지 않으셨잖아요.”고개를 저으며 한소은은 불평했다. "그거랑은 다르죠, 처음에 나는 당신이 낙하산인 줄 알고 그랬고 지금은……내가 동의한 낙하산이잖아요.”그녀는 농담 섞인 어조로 말하며 오이연의 어깨를 툭 쳤다. “정말 태도가 상반되네!”한소은은 감탄을 하며 말했다.“자, 다 왔으니 이제 일을 하죠. 빨리 신제품을 출시하고 싶었는데 마침 일손이 부족했거든요.”“그래요, 그럼 일들 보세요. 오이연 씨 입사 수속은 이틀 후에 인사부에 가서 다시 하면 되니까요. 문제없죠?”뒤에 나온 말은 오이연에 물은 것이었고, 그녀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문제없어요.” 입사 절차 같은 건 언제든지 보충할 수 있고, 가장 중요한 건, 누구를 따라 일을 하던지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 너무 좋은데!”실험실에 들어선 오이연은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했다."그동안 있던 곳보다 시설이 더 잘 갖춰져 있네. 와, 이런 것도 있어?!”한소은은 작업복으로 갈아입으며 말했다.“신생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환아가 뒤에서 받쳐주기 때문에 장비 같은 건 매우 여유가 있어. 게다가 업무 중에 필요한 기계 설비가 있으면 회사에 직접 요청을 넣을 수도 있고 말이야.”"역시 대기업이 좋네! 정말 잘 왔어!”오이연 역시 함께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손을 깨끗이 씻은 뒤 작업 준비를 했다."참, 네가 회사를 나온 거……노형원이 널 곤란하게 한 건 아니지?”그녀의 홀가분한 모습을 보니 그쪽의 일이 해결된 것 같았지만 한소은은 여전히 안심하지 못하고 물어봤다. "난 그 사람 얼굴도 못 봤어.”오이연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어차피 근로계약법상 난 퇴사를
옛날에 시원 웨이브에 있었을 때도 오이연은 한소은의 어깨를 자주 주물러 줬었는데, 정말 오랜만이었다. 한소은도 사양하지 않고 살짝 몸을 돌려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긴 채 갸름한 목을 드러냈고, 오이연은 두 손으로 어깨를 잡고 살짝 힘을 주면서 어깨를 풀어주니 한결 편해진 느낌이 들었다. “네가 있으니 정말 다행이야, 요 며칠 정말 힘들었거든. 네가 오니까 한결 편해졌어.”고개를 젖히고 눈을 감은 그녀는 졸음이 몰려왔다. 신제품의 진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았지만 어쨌든 반복적인 실험을 거쳐야 했기에 지금은 오이연이 왔으니 그녀는 너무 바쁘지 않게 됐다. "그러니까 내 월급을 올려주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어?"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오이연은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너 같은 신입이 어딨어, 입사 첫날부터 월급을 올리면 대표님이 가만히 있겠니!”한소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임금 인상을 자청하지 않는 직원은 좋은 직원이 아니지.”오이연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고, 그녀의 눈동자가 다른 곳을 향하자 마사지를 하던 손동작이 갑자기 멈췄다. 이상함을 눈치챈 한소은은 눈을 뜨고 물었다.“왜 그래?”“언니……”오이연은 머뭇거리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고, 그녀의 시선은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에게 잘못된 점이 있나 봤지만 보이지 않았고, 그녀가 본 것은……오이연은 손을 들어 한소은의 목을 토닥이며 대충 위치를 가리켰고, 그녀가 가리킨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한소은은 순간적으로 생각났다!터틀넥 셔츠를 입고 목을 가리고 있었는데, 작업복으로 갈아입으니 가린 것이 드러난 것이다.그런데 계속 일을 하다 보니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지금 오이연이 마사지를 하면서 목덜미가 드러나자 그녀 목에 있던 키스마크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아, 이거……”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오이연도 어른이었기에 굳이 숨길 필요는 없었다.그녀는 오이연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그게 있지, 너도 알잖아.”그녀의 반응에 오이연은
"대충 안다는 게 또 뭐예요? 이름이 뭔데요? 내가 아는 사람인지 알아볼게요.""나중에 알게 될 거야!" 한소은은 손을 들고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일어섰다. 그녀는 이 문제에 너무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 "이연, 이번 신제품의 난이도가 높을 것 같으니까 작업이 많이 힘들 수도 있어!”"예전엔 쉬웠던 것처럼 말씀하시네. 걱정 안 해도 돼. 언니가 앞장 서면 내가 뒤에서 반드시 지원해 줄 거야!" 이연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네가 가장 현명한 내조인인 줄 알고 있었어!"연구실로 돌아가서 우선 추출한 샘플을 보았지만, 과연 예외 없이 그녀가 원하는 그런 결과가 아니었다.좋은 원료도 매우 중요하지만 분리 추출하여 이물질을 제거하고 원하는 향만 남기는 것도 매우 복잡한 과정이므로 항상 수많은 테스트를 거쳐야 성공할 수 있다.매번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조향사가 얼마나 많은 심혈과 노력을 기울이는지 모르겠지만, 염치없이 다른 사람의 노동 성과를 빼앗아 가는 사람은 정말 얄밉다."또 실패했어!"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다소 실망스러웠다."실패하는 게 정상이지, 언제 그렇게 쉽게 성공했나. 하물며 이번 원료는 워낙 신상품이라서 향도 복잡해서 당연히 난이도가 더 높겠지! 왜 벌써 물러서려고 해?"그녀의 옆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이연은 그녀가 자신이랑 농담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도전 난이도가 없는 실험은 실험이라고 할 수 없지. 어렵지 않을까 봐 걱정이야!"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다음 실험을 진행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한소은은 손을 뻗어 그녀를 막았다. "됐어.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계속하자!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도 아닌데."시간이 좀 늦었다. 아침에 누군가 더 이상 이렇게 늦게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간곡하게 타일렀는데, 듣기에 매우 심한 거 같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의 관심을 받는 느낌은 정말 좋았다."알았어. 그럼 들어가서 생각해 볼게."두 사람이 환복하고 계단으로 내려가 대문을 나서려 할 때, 조현아가 급하게 달려왔다.
노형원은 한소은에게 화가 나고 원망스럽지만, 지금은 그녀를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오이연을 괴롭히는 것이고 어쨌든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는 것이다."그럼 어떡해요?"그 종이를 움켜쥐고 있던 이연은 기분이 급격히 다운되었다. "나 입사할 수 없네요?"조현아는 난처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신생의 신입사원 한 명을 뽑는 일은 원래 그녀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만약 노동분쟁에 연루된다면 그것은 그녀의 말 한마디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급할 거 없어. 내가 방법을 찾아볼게." 한소은이 위로의 말을 꺼냈다.모든 일에는 해결 방법이 있는데, 이 일은 갑자기 일어난 탓에 다들 잠시 얼떨떨해졌다.노형원의 움직임이 정말 빨랐다. 오늘 오이연이 도와주러 온 첫날인데, 그쪽에서 금방 뒤를 따라왔다는 것은 그가 항상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말로는 완전히 깨끗하게 청산이 끝났다고 하지만 사실 끝까지 밀어붙이고 있었+다. 청산이 끝났다고? 어떻게 끝날 수 있겠어!그녀는 아직 그들과 결판을 내지도 않았는데, 그들이 오히려 먼저 기회를 타고 기어오르다니, 이렇게 된 이상, 그녀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이연 씨, 이틀 동안 집에서 쉬어요. 방금 이사하지 않았어요? 마침 시간 내서 정리하고 있어요. 내가 알릴 때까지 기다려요.”"하지만…" 오이연은 여전히 걱정되었다. 결국 이 일은 그녀 때문에 일어났고, 자신은 괜찮지만, 만약 그녀 때문에 한소은, 심지어 신생에게 폐를 끼친다면 너무 미안하게 될 것이다.한소은은 그녀를 위로했다. "됐어. 별거 아니야! 그 사람도 방법이 없으니까 이런 걸로 너를 협박하면서 나한테 시위하는 거야. 결국 이 일의 타겟은 나고 너랑 큰 상관이 없어. 너는 그냥 마음 편하게 이틀 쉬어. 좋은 소식 있을 테니까 기다려봐!"그러자 조현아도 덧붙여 말했다. "맞아요! 이 일은 한소은의 말을 듣는 게 맞으니까 당신도 조급해 하지 말아요. 이 경업금지 계약은 심각하다면 심각한 거고, 심각하지 않다면 또 별거 아니에요. 아무튼 하루 이틀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선택만 있는 게 아니다. 아무래도 그 범위를 벗어나서 자신에게 세 번째 선택을 줘야 한다.그녀도 늘 수동적으로 당하고 나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먼저 반격하여 그 두 사람이 자신도 역시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줘야 한다!김서진이 집에 들어가자 그의 아내가 소파에 엎드려 노트북을 앞에 놓고 유연한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두 발을 겹겹이 꼰 채 엄청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그는 그녀가 집에서 이렇게 컴퓨터를 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별로 없다.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내려놓고, 신발을 갈아 신고, 그녀 앞에 다가가서 머리를 내밀고 보니 그제야 그녀의 화면에 여러 페이지가 열려 있는 것을 똑똑히 보았으며 지금 이 순간에는 어느 카페에 가명으로 등록하고 있었다."그렇게 재밌어요?" 그는 물 한 잔 따르는 김에 그녀에게도 한 잔 따라 가지고 왔다.한소은은 소파에서 일어나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으며 노트북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손을 뻗어 물을 한 모금 마셨지만 시선은 컴퓨터 화면에서 떼지 않았다. "누군가가 재미있어하니까 어쩔 수 없이 정신을 차리고 함께 놀아주는 거예요."이 말투와 표정, 누군가 그의 아내를 화나게 한 것 같았다."누가 이렇게 대단해서 우리 집 한소은 님을 건드렸을까요?" 김서진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잡아당기고, 옷깃의 단추 두 개를 풀어서 하루 종일 긴장했던 신경을 제대로 풀 수 있게 됐다.예전엔 돌아오거나 안 돌아오거나 별 차이가 없으며 어차피 잠자는 곳에 불과했지만, 그녀가 생기면서부터 '집'에 대한 기대가 생겨서 매일 집에 들어오면 그녀를 볼 수 있고,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녀와 함께 여러 가지 기분 좋은 일과 기분 나쁜 일을 나눌 수 있어서 매우 기대되는 일이 되었다.하지만 보아하니, 그녀는 자신만만해서 그의 도움이 전혀 필요 없는 것 같았다."또 어떤 나쁜 놈이겠어요!"그녀는 물컵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인 채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김서진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