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진 쪽에서 금방 답장을 보냈다. 아주 간단하게 한 글자만: 응.그가 답장을 보내자 한소은은 기분이 좋아서 신발을 벗고 소파에 몸을 기울여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오늘 꽃밭에 갔었는데 마침내 내가 찾고 싶은 것을 찾았어요."붉은 백단향 나무?""……" 그녀는 휴대폰 화면의 글을 노려보자 미소가 굳어지고 입을 삐죽거리면서 원망 가득하여 답장을 보냈다. "당신은 또 알고 있었네요. 재미없어요."“장부에 기록된 거예요.” 이 말 뒤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펴 보이는 이모티콘을 같이보냈다.한소은은 2초 동안 빤히 쳐다보더니 깨닫게 되었다. 그의 말은 이건 장부에 기록되어 있는 항목이니 자기가 모를 리 없다는 뜻이었다.하긴, 작은 금액의 지출이 아니니까 장부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어야 하며 구매 목록도 기재하여야 하고 재무와 대표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 거 알겠는데 그 소식이 그에게 이렇게 빨리 전달될 줄은 몰랐고, 위까지 한 단계씩 보고해도 시간이 걸리는 거 아닌가.그의 정보망이 얼마나 많고 얼마나 무서운지 가늠할 수 없었다!"왜요?"아마 그녀가 한참 답장을 하지 않으니 그가 먼저 톡을 보내 물었다."아니요. 당신은 언제 들어갈 예정이에요?"그녀는 손가락이 날아다닌 듯 재빨리 문자하면서도 가끔 눈을 들고 조현아 쪽을 살펴보았다.조현아는 노트북에 머리를 파묻었고 그녀의 손가락도 엄청 빨랐다.다만 메일과 타이핑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한소은이 뭘 하는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휴대폰 화면을 다시 내려다보니 그가 이미 여러 줄 답장했다. "급할 게 없어요.""그렇게 급하게 나를 쫓아내고 싶어요?""다 썼으니 버려요?"한소은:"…."앞에 문자는 그렇다 치고 다 썼으니 버린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그녀가 어떻게 다 썼고, 또 어디에 버렸다고요!이 사람은 이제 감히 아무 소리나 막 하네요.!"다…썼다고요?"그녀는 잠깐 생각했다가 일부러 그의 말투를 따라 해서 답장을 보냈다. 누가 무서워할까 봐!휴대폰을 넘어 저쪽에 있던 김서
"쓸데없는 소리! 대표님이 안면마비도 아닌데 당연히 웃으시죠!""아니, 제 말은 대표님이 정말 웃으셨다고요. 진짜예요!""그럼 진짜가 아니면 가짜겠어요? 그 말을 대표님이 들을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아니면 잘릴 수도 있어요.""제 말은, 예전에 대표님이 웃으실 때는 소름이 끼치고 분명 좋은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방금은 진짜 웃으셨어요. 우리 일반인들처럼 엄청 달콤하게 웃으셨는데 못 알아봤어요? 다들 못 봤어요?"그는 한사람 한사람 둘러보면서 공감하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다른 사람들은 침묵하고 있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같은 생각이었다. 대표님이 웃으시다니, 심지어 그 웃음이 정말…수상했다!——한소은은 한참 기다렸지만, 김서진의 답장을 기다리지 못하고, 휴대폰에 있는 몇 줄의 뜨거운 귓속말을 보니 스스로 얼굴이 붉어졌다.아이고, 이 남자한테 물 들어서 점점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네."여기서 고개를 흔들고 한숨 쉬면서 뭐해요?"그녀는 너무 집중해서 조현아가 이미 바쁜 일을 다 처리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노트북을 덮고 한소은에게 다가와서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별거 아니에요. 심심해서 휴대폰 가지고 놀고 있었어요." 한소은은 황급히 대답했다. "다 끝났어요?""응." 조현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정색을 하며 말했다. "오늘 꽃밭 기지에서구매한 리스트를 전송하면서 당신 거도 같이 위에 보고했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맞춰 볼래요?"“?”"위에서 이미 결재를 해줬어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순조로웠어요. 내가 회사에 들어온 지 이렇게 오래됐어도 이렇게 빨리 결재받고 통과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거든요. 정말 효율적이었어요! 이번 출장이 정말 순조롭네요."그녀는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네."한소은은 당연히 통과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꼭대기에 계신 분이 이미 알고 있는데 통과는 금방 해결될 일이었다.그녀의 반응이 너무 담담했는지, 조현아는 그녀를 곁눈질하며 자세히 살펴보았다. "솔직히 말해봐요.
노형원은 냉수욕을 하고 나와서 많이 진정된 모양이었다. 그는 강시유가 침대에 반쯤 누워 한 손을 펴고 잠이 든 것을 보았고 테이블에는 그가 주문한 음식이 놓여 있었지만 조금도 먹지 않았다.그는 그녀를 가볍게 아래로 움직여서 편한 자세로 눕힌 다음, 이불을 잘 덮어주고 혼자 앉아서 음식을 먹었다.그는 급하게 오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배가 조금 고프긴 했다. 최근 공장과 실험실 일로 바빠서 세 끼를 제대로 먹지 못하고 거를 때가 많아 위도 별로 안 좋아져서 배가 고프거나 배가 너무 불러도 아팠다.너무 많이 먹지 못하고 대충 몇 입 먹고 그만뒀다. 다시 잠든 강시유를 바라보니까 그녀가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그녀와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지냈는데 오늘 처음 코 고는 소리를 들으니 최근 그녀도 많이 피곤한 것 같았다.어쨌든 임산부니까 체질이 좀 달라졌을 거고 눈 밑에 다크서클이 생긴 것도 보였다. 그녀는 멋쟁인데도 얼굴이 까칠해졌으니 요즘 정말 힘들었을 텐데 그는 오히려 그녀를 의심하고 있었다.그는 미안한 마음으로 다가가서 그녀 옆에 누워서 뒤에서 그녀를 안아주었다. 생각해 보니 아예 이렇게 같이 있으면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앞으로도 같이 열심히 시원 웨이브를 경영하고, 한소은의 도움이 없더라도 다른 사람 구하면 되니까! 아내를 찾을 거면 착하고 부드럽고 말 잘 듣는 여자를 찾아야 한다. 한소은은…이젠 그녀만 생각하면 그의 목이 은근히 통증이 느껴진다. 생각할 때마다 그날 골목서 만났던 그녀는 평소와 다른 사람이었다."응."아마 안기는 게 불편했는지 강시유는 끙끙대며 돌아서 자연스럽게 그를 감싸 안았다.그러면서 잠에서 깼다."아, 나 잠들었어요?"그녀는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들었으며 그녀의 졸린 눈은 여전히 매우 사랑스러웠다."너무 피곤한 거 같아요. 자요."말하고 나서 그는 또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니면 일어나서 뭐 좀 먹을래요?"그가 이렇게 일깨워 주자 뱃속에서 정말 꼬로로록하는 들려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일어나서 가보
"방 안에서 답답해서 바람 좀 쐬고 싶은데 같이 먹으러 갈래요?" 강시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좋아요. 내가 옷 갈아입을 테니까 좀 기다려요. 어디 가서 먹고 싶어요?"그는 얼른 일어나면서 물었다.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얼굴 전체가 피곤해 보였다. “나 많이 피곤해서 멀리 가고 싶지 않아요. 호텔에 레스토랑이 있는데 우리 차라리 호텔 안에서 먹어요.”"그래요!" 노형원은 로젠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모두 그녀의 뜻대로 했다.옷을 갈아입은 후, 그녀는 노형원의 팔짱을 끼고 호텔의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어쨌든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서 문을 들어서자 그녀는 한 바퀴 둘러보고 금방 로젠의 위치를 찾아냈고, 무의식적으로 팔짱을 낀 그 팔을 붙잡고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두 명요." 노형원이 웨이터에게 말했다.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갈 때 강시유는 일부러 갑자기 발견한 듯 그를 툭툭 쳤다. "형원 씨, 저기 로젠 씨 아니에요?""……" 그를 보고 노형원은 다소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어쨌든 어머니가 직접 소개해 주신 사람이고 또 확실히 큰 도움이 되어 회사 쪽 일도 겨우 해결했는데 다리를 건넌 뒤 그 다리를 부숴 버리는것은 배은망덕해서 정말 좋아하지 않았다.그리고 이 사람을 비록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아무래도 능력이 있고 진정한 기술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만약 정말 자신을 위해 이용할 수 있다면, 그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그래서 자신의 작은 사욕을 억누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기 우리 인사하러 가요."두 사람은 방향을 돌려 곧장 로젠의 자리를 향해 걸어갔다."안녕하세요, 로젠 씨."노형원이 먼저 인사말을 건넸다.강시유도 따라서 예의를 갖추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로젠 씨, 우연이네요."우연?! 로젠은 눈꺼풀을 치켜들고 그의 파란 눈동자에는 의미심장한 웃음이 가득했다. 강시유를 한번 보고 다시 노형원에게 시선을 돌렸다. "노 대표님.""노 대표님은 언제 오셨어요? 여자친구 쫓아온 거예요?"그는 야유하며 말
마음속으로는 결단을 내렸지만 강시유는 여전히 태연하지 못했고, 음식이 나온 후부터 그녀는 계속 자신의 앞에 있는 스테이크를 쳐다보며 나이프와 포크로 천천히 잘게 썰었다.이에 비해 두 남자는 오히려 더 제멋대로였다."전에 도와주신 일에 대해 로젠 씨에게 감사할 겨를이 없었어요. 당신 말이 맞았어요. 당신의 처방에 따라 조정한 후 예전과 똑같아졌어요. 현재 공장은 정상적인 생산 가동에 들어갔어요. 비록 납품시간이 며칠 지연되었지만, 어쨌든 아직 보충할 시간이 있고, 고객도 이해해 주기로 했어요. 이 모든 것이 당신 덕분이에요. 정말 제대로 감사의 뜻을 전달하고 싶어요.” 노형원은 술잔을 들고 진심으로 감사했다.로젠은 담담하게 웃었다. "수고라고 할 것도 없어요."그도 잔을 들었고, 유리잔이 가볍게 부딪치는 소리에 강시유는 갑자기 몸을 곧게 앉았다."왜요?"그녀의 반응을 예리하게 알아차린 노형원은 바로 잔을 내려놓고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웃었다. "그냥 좀 피곤해서요. 괜찮아요. 얘기들 나누세요.”“당신은 좀 더 쉬어야 해요.”그는 그녀 앞에 놓인 접시를 한 번 쳐다보았다. "커팅만 하지 말고 당신도 먹어요! 자!"그는 포크로 스테이크를 한 조각 집어 그녀의 입에 가져다 주자 강시유는 조금 망설였다.옛날 같았으면 주저하지 않고 먹었을 텐데 지금은…… 눈의 여광으로 로젠도 그들을 보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를 보고 있다.그는 웃고 있었지만, 그런 웃음이 그녀를 약간 소름 끼치게 했다."괜찮아요. 형원 씨, 내가 먹을게요."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거절하려고 했지만, 노형원은 고집했다. "말 들어요. 입 벌려요!""……" 할 수 없이 그녀는 착하게 입을 벌리고 스테이크 한 조각을 먹었다.노형원은 즐거움에 피곤한 줄 모르고 계속 먹이고 그녀는 계속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몇 번을 먹었더니 스테이크를 절반 넘게 먹었다. 그녀는 정말 더 이상 먹을 수 없어서 고개를 저었다. "됐어요. 정말 못 먹
돌이켜 생각해 보면, 로젠은 명예, 지위, 권력과 재산을 다 가진 사람인데 만나는 예쁜 여자들이 많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어머니가 소개해 주셨으니 어머니의 친한 친구일 텐데, 어떻게 그의 여자친구에게 딴마음을 품을 수가 있겠어요. 아마, 정말 자신이 도량이 좁았던 거 같았다.이렇게 생각하자 노형원은 갑자기 마음이 풀리고 그에게 당당하게 웃으며 잔을 들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다음 고개를 들어 잔을 비웠다.로젠의 의미심장한 미소, 금테 안경 렌즈 뒤의 눈, 그리고 눈 밑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참, 로젠 씨는 국내에 얼마나 머물 예정인가요? 우리나라에서 활동할 의향이 있으신지 모르겠네요."그는 마음속의 벽을 허물고 본론으로 들어가 인재를 잡으려고 했다."모르겠어요."그는 다시 술을 따르고 잔을 흔들며 잔의 물결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있었다."모르시겠다는 것은 아직 의향이 있다는 뜻이 아닌가요. 맞죠?"노형원은 일부러 그의 뜻을 틀리게해석해서 말했다. "만약 그럴 의향이 있다면 로젠 씨는 국내 어느 회사가 맘에 들어요? 가능하다면 우리 시원 웨이브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로젠은 눈을 들어 그를 흘겨보고 입꼬리가 치켜 올리면서 참 세상을 모르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자기 회사가 얼마나 작은 규모인 회사인지 몰라서 감히 그를 스카우트한다는 말인가."네?"로젠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물었다. "노 대표님께서 연봉을 얼마나 주실 건가요?"노형원도 멍청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다소 비웃는 뜻을 알아들었지만 화내지 않았다. 시원 웨이브의 크기는 크지 않았고 대기업들과 비교할 수 없으며 나름대로의 단점이 있다.하지만, 지금 로젠과 여기 앉아서 서로 친구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히 조건을 협상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다."물론 우리 시원 웨이브의 크기가 아직 크지 않아서 당신에게 주는 대우가 아마 대기업들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에요.""그렇다면 노 대표님은 무슨 근거로 내가 당신들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해요?"그의 손가락은 술잔을 잡고 무
그의 난처한 얼굴을 무시한 로젠은 세손가락을 그의 눈앞에 보이며 말했다.“세 번째, 나는 친구 같은 거 안 만듭니다!”말을 마친 그는 외투를 챙겨 입고 몸을 일으켰다.“결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노십시오.”“......”체면이 구겨진 노형원은 화가 잔뜩 나있었다.그는 로젠과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안면이 있는 사람이 이렇게 자신의 체면도 생각하지 않고 무시할 줄 그는 꿈에도 몰랐다!비록 그의 능력이 아주 출중하다지만, 이 세상에 훌륭한 조향사가 한 사람 뿐인가? 세계적으로 대단한 조향사와 비겨보지도 못하는 주제에....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난 그는 술잔을 비웠다. 로젠이 간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그의 눈동자에 익숙한 그림자가 밟혔다. 한소은?그녀도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강시유가 회사에 출근한 첫날 그에게 울면서 하소연했다.눈을 가늘게 뜬 그의 자리에서 그녀의 옆모습이 아주 잘 보였다. 홀로 자리에 앉아 휴대폰으로 열심히 타자를 하는 그녀는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화장실 방향을 힐끗거린 노형원은 강시유가 아직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은 것을 확인한 후 한소은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휴대폰을 손에 꼭 쥔 한소은은 김서진과 즐겁게 문자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집 근처 편의점에 내려오는 동안 누군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 은밀하게 숨은 위치에 앉아 누구에게도 들킬 일이 없었다. 그녀가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들면 그가 보이고 그도 자신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공공장소에서 대범하게 같이 앉을 수는 없지만 가까이에 앉아 휴대폰으로 문자를 주고 받을 수는 있었다.휴대폰 화면에 있는 의미심장한 글씨를 본 한소은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뭐야?그의 반응을 살피려고 고개를 든 한소은의 눈앞에 익숙하고도 낯선 얼굴이 나타났다.“한소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뒤로 젖힌 한소은은 깜짝 놀랐다.그녀의 놀란 표정을 본 노형원은 즐거웠다. 그를 발견한 그녀가 아무
“아니요, 너무 싫네요, 도와주지도 않고요.”“제 도움이 필요해요? 지금 갈까요?”그는 그녀와의 관계를 만 천하에 알리고 싶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오지 마세요!”한소은이 다급하게 보낸 삼연타 거절 이모티콘, 그녀의 당황한 모습에 김서진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도움이 필요하면 말해요!”그는 그녀에게 답장을 했다.진짜로 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밖에서 노형원은 그녀의 손끝 하나 건드릴 수 없다. 그의 든든한 문자를 본 그녀는 달콤한 미소를 띠었다.노형원은 얼이 빠진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를 알고 지낸 몇 년 동안, 그는 그녀가 그의 곁에 있는 모습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실험복을 입은 그녀가 실험실에서 여러 가지 이상한 냄새를 묻치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너무 익숙했고, 그녀의 무표정한 말투와 표정이 너무 익숙해 질려버렸다.애교를 부리는 모습도 보지 못하였고 섹시한 모습도 보지 못했다. 다정다감한 모습은 그녀와 더더욱 어울리지 않았다. 여자가 이렇게 재미없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의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녀의 조향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 그의 사업에 큰 도움만 주지 않았다면 그녀와 이렇게 오랜 시간 알고 지내지 않았을 것이다.방금 전, 그녀의 웃음이 그의 생각을 바꿔 놓았다.사랑스럽고 달콤한 웃음이 진짜 한소은이라고? 누구에게 보여준 웃음이지? 누구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일까? 그녀 앞에는 내가 있는데 왜 그녀는 나를 보지 않고 휴대폰을 보고 환하게 웃는 것일까?노형원은 그녀가 자신을 무시했다고 믿지 않았다. 답은 하나. 그녀가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그가 그녀 앞에 나타났을 때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자신을 무시하고 싶었다면 그런 표정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부러 자신의 눈길을 끌려고 하는 행동이 확실하다.헛기침을 한 그는 손을 들어 책상을 두드려 소리를 냈다. 한소은이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자 노형원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었다.이것 봐! 연기하기는! 아직도 날 좋아하면서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