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생각해 보면, 로젠은 명예, 지위, 권력과 재산을 다 가진 사람인데 만나는 예쁜 여자들이 많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어머니가 소개해 주셨으니 어머니의 친한 친구일 텐데, 어떻게 그의 여자친구에게 딴마음을 품을 수가 있겠어요. 아마, 정말 자신이 도량이 좁았던 거 같았다.이렇게 생각하자 노형원은 갑자기 마음이 풀리고 그에게 당당하게 웃으며 잔을 들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다음 고개를 들어 잔을 비웠다.로젠의 의미심장한 미소, 금테 안경 렌즈 뒤의 눈, 그리고 눈 밑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참, 로젠 씨는 국내에 얼마나 머물 예정인가요? 우리나라에서 활동할 의향이 있으신지 모르겠네요."그는 마음속의 벽을 허물고 본론으로 들어가 인재를 잡으려고 했다."모르겠어요."그는 다시 술을 따르고 잔을 흔들며 잔의 물결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있었다."모르시겠다는 것은 아직 의향이 있다는 뜻이 아닌가요. 맞죠?"노형원은 일부러 그의 뜻을 틀리게해석해서 말했다. "만약 그럴 의향이 있다면 로젠 씨는 국내 어느 회사가 맘에 들어요? 가능하다면 우리 시원 웨이브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로젠은 눈을 들어 그를 흘겨보고 입꼬리가 치켜 올리면서 참 세상을 모르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자기 회사가 얼마나 작은 규모인 회사인지 몰라서 감히 그를 스카우트한다는 말인가."네?"로젠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물었다. "노 대표님께서 연봉을 얼마나 주실 건가요?"노형원도 멍청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다소 비웃는 뜻을 알아들었지만 화내지 않았다. 시원 웨이브의 크기는 크지 않았고 대기업들과 비교할 수 없으며 나름대로의 단점이 있다.하지만, 지금 로젠과 여기 앉아서 서로 친구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히 조건을 협상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다."물론 우리 시원 웨이브의 크기가 아직 크지 않아서 당신에게 주는 대우가 아마 대기업들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에요.""그렇다면 노 대표님은 무슨 근거로 내가 당신들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해요?"그의 손가락은 술잔을 잡고 무
그의 난처한 얼굴을 무시한 로젠은 세손가락을 그의 눈앞에 보이며 말했다.“세 번째, 나는 친구 같은 거 안 만듭니다!”말을 마친 그는 외투를 챙겨 입고 몸을 일으켰다.“결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노십시오.”“......”체면이 구겨진 노형원은 화가 잔뜩 나있었다.그는 로젠과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안면이 있는 사람이 이렇게 자신의 체면도 생각하지 않고 무시할 줄 그는 꿈에도 몰랐다!비록 그의 능력이 아주 출중하다지만, 이 세상에 훌륭한 조향사가 한 사람 뿐인가? 세계적으로 대단한 조향사와 비겨보지도 못하는 주제에....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난 그는 술잔을 비웠다. 로젠이 간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그의 눈동자에 익숙한 그림자가 밟혔다. 한소은?그녀도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강시유가 회사에 출근한 첫날 그에게 울면서 하소연했다.눈을 가늘게 뜬 그의 자리에서 그녀의 옆모습이 아주 잘 보였다. 홀로 자리에 앉아 휴대폰으로 열심히 타자를 하는 그녀는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화장실 방향을 힐끗거린 노형원은 강시유가 아직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은 것을 확인한 후 한소은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휴대폰을 손에 꼭 쥔 한소은은 김서진과 즐겁게 문자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집 근처 편의점에 내려오는 동안 누군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 은밀하게 숨은 위치에 앉아 누구에게도 들킬 일이 없었다. 그녀가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들면 그가 보이고 그도 자신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공공장소에서 대범하게 같이 앉을 수는 없지만 가까이에 앉아 휴대폰으로 문자를 주고 받을 수는 있었다.휴대폰 화면에 있는 의미심장한 글씨를 본 한소은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뭐야?그의 반응을 살피려고 고개를 든 한소은의 눈앞에 익숙하고도 낯선 얼굴이 나타났다.“한소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뒤로 젖힌 한소은은 깜짝 놀랐다.그녀의 놀란 표정을 본 노형원은 즐거웠다. 그를 발견한 그녀가 아무
“아니요, 너무 싫네요, 도와주지도 않고요.”“제 도움이 필요해요? 지금 갈까요?”그는 그녀와의 관계를 만 천하에 알리고 싶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오지 마세요!”한소은이 다급하게 보낸 삼연타 거절 이모티콘, 그녀의 당황한 모습에 김서진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도움이 필요하면 말해요!”그는 그녀에게 답장을 했다.진짜로 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밖에서 노형원은 그녀의 손끝 하나 건드릴 수 없다. 그의 든든한 문자를 본 그녀는 달콤한 미소를 띠었다.노형원은 얼이 빠진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를 알고 지낸 몇 년 동안, 그는 그녀가 그의 곁에 있는 모습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실험복을 입은 그녀가 실험실에서 여러 가지 이상한 냄새를 묻치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너무 익숙했고, 그녀의 무표정한 말투와 표정이 너무 익숙해 질려버렸다.애교를 부리는 모습도 보지 못하였고 섹시한 모습도 보지 못했다. 다정다감한 모습은 그녀와 더더욱 어울리지 않았다. 여자가 이렇게 재미없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의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녀의 조향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 그의 사업에 큰 도움만 주지 않았다면 그녀와 이렇게 오랜 시간 알고 지내지 않았을 것이다.방금 전, 그녀의 웃음이 그의 생각을 바꿔 놓았다.사랑스럽고 달콤한 웃음이 진짜 한소은이라고? 누구에게 보여준 웃음이지? 누구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일까? 그녀 앞에는 내가 있는데 왜 그녀는 나를 보지 않고 휴대폰을 보고 환하게 웃는 것일까?노형원은 그녀가 자신을 무시했다고 믿지 않았다. 답은 하나. 그녀가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그가 그녀 앞에 나타났을 때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자신을 무시하고 싶었다면 그런 표정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부러 자신의 눈길을 끌려고 하는 행동이 확실하다.헛기침을 한 그는 손을 들어 책상을 두드려 소리를 냈다. 한소은이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자 노형원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었다.이것 봐! 연기하기는! 아직도 날 좋아하면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한소은은 아니꼬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노선생님, 저의 기억이 맞는다면 노선생님께서 회사 향수, 오일 레시피는 강시유 씨가 직접 만든 것이라고 대외에 발표하지 않았나요? 왜 제가 손을 댔다고 하시는 거죠? 그리고, 제가 레시피를 건드렸다고 해도 원작자 강시유 씨가 계신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잖아요. 제가 무슨 복수를 했다고 하세요?”한소은은 침착하게 그의 말에 반격했다.노형원은 그녀가 할 말을 예측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한소은, 우리끼리는 이런 말 하지 말자. 너와 나는 알고 있잖아. 레시피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그래, 내가 너를 이용했어. 내가 미안해. 나도 너 때문에 망할뻔했잖아. 지금은 네가 신생 회사로 가서 더 좋은 기회도 만들어졌고. 강요는 하지 않을게. 앞으로 서로의 영역에서 깔끔하게 지내보자?”그는 이 방법이 그에게서 가장 큰 양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있었던 모든 일들은 이것으로 끝이 나고 누구의 잘못도 따지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가 아닐까?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눈앞에 서있는 이 남자를 본 한소은은 그런 그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그는 어떻게 이런 뻔뻔스러운 말을 당연하듯이 할 수 있을까? 그는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이 자신이 피해자인 것 마냥 말을 하고 있었다!“그러니까, 인정하는 거야? 시원 웨이브에서 출시한 오일, 향수 다 내가 만든 거 맞지?”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그녀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나...”노형원이 말을 하려던 그때, 그는 그의 등 뒤에서 누군가 한소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다.“한소은씨, 저 왔어요!”“......”입을 꼭 닫은 그는 한소은의 곁에 다가가는 사람을 보았다. 허리를 굽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린 그녀가 말했다.“딱 걸렸네요! 남자친구 빨리 소개시켜줘요...”웃으며 고개를 돌린 조현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노형원을 쳐다본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당신?!”그녀가 노형원의 얼굴을 본 순간 그가 한소은의 남자친구
“노 대표님, 여자친구 내버려 두고 왜 우리 한소은 씨를 집적거리고 있는 거예요? 소은 씨 지금은 우리 신생 사람이에요, 신생 사람을 그렇게 함부로 괴롭히면 쓰나? 남자답게 예의 지키시죠, 자기 집 마당을 지킬 생각하셔야죠, 자꾸 남의 집 마당의 풀을 탐내다간 자기 집 마당에 자란 풀을 남에게 뜯기는 법이니까요.”한소은은 조현아가 누군가를 이 정도로 비꼬는 모습을 처음 봤다. ‘웬 마당? 그럼 노형원이 토끼고 내가 풀이라는 건가? 비유할 데가 그렇게 없었나?’자신과는 그 어떠한 접점도 없던 사람에게 억울하게 한소리 들은 노형원은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아... 제가 소은 씨한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건지 생각났어요.”노형원을 향해 한바탕 퍼부은 조현아는 그제야 갑자기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건지 기억이 났다.그 말을 들은 한소은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뭔데요?”“......”대답을 하려던 조현아는 이상함을 눈치채곤 고개를 돌려 노형원을 바라봤다. 노형원은 여전히 두 사람을 바라보며 그녀들이 나누는 얘기를 듣고 있었다.“노 대표님, 아직 하실 말씀이라도 남은 건가요? 없으면 잠깐 자리 좀 피해줬으면 좋겠는데, 소은 씨랑 할 얘기가 있거든요.”“하실 말씀이 있다면 다음 회의 때 말씀하시죠. 우리는 회사가 다르기도 하고 경쟁 대상이기도 하니까요. 이렇게 남의 회사 영업기밀을 엿듣는 거 안 좋잖아요.”노형원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조현아가 다시 덧붙였다.그 말을 들은 노형원은 어이가 없어졌다. 자신이 언제 남의 회사 영업기밀을 엿들으려고 했다는 건지! 그저 옛 친구를 만나 잠깐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인데 그것도 안 된다는 말인가?!하지만 노형원도 체면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조현아의 이런 말을 듣고도 뻔뻔하게 계속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어쨌든 앞으로도 시간이 많았기에 기회도 많았다.“두 여성분이 사적인 얘기를 나누겠다고 한다면 저도 더 이상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한소은, 기회 되면 나랑 얘기 좀 하자.”두 사람에
목소리를 낮춘 조현아가 비밀스럽게 말했다.“불륜 장면을 목격했어요!”조현아의 말을 들은 한소은이 고개를 저었다.“이런 기호를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그 눈빛 뭐예요? 제가 무슨 일에나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줄 알아요? 소은 씨랑 연관된 일이 아니었다면 신경도 안 썼을 거라고요. 눈만 버리는 일을 뭐 좋다고.”한소은의 말을 들은 조현아가 발끈했다.“저랑 연관된 일이라고요?”한소은이 멍한 얼굴로 자신의 코를 가리키며 물었다.“소은 씨 전 남친의 현 여친이니까 연관 있는 거 아니에요?”돌고도는 관계에 한소은은 하마터면 반응하지 못할 뻔했다.“강시유를 말씀하시는 거예요?”조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설마 소은 씨 전 남친 여자친구 여러 명 달고 다니는 그런 사람 아니죠?”“뭘 봤는데요?”한소은은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지만 흥미진진한 얼굴을 한 조현아를 보니 왠지 장단을 맞춰줘야 할 것 같았다.“제가 방금 배탈이 나서 화장실에 갔잖아요, 그래, 이건 중점이 아니지. 중점은 제가 배탈때문에 화장실에 조금 오래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들어와서 토를 했다는 거예요...”“중점만 골라서 얘기해 줄 순 없어요?”한소은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지금 말하고 있는 거 다 중점이에요.”조현아가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토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이상한 건 제가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화장실에 변태가 들어온 줄 알고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이 밖에서 서로의 입술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어요.”“그러니까 토를 한 사람이 강시유이고 그 남자는 로젠이라는 거예요?”“대박! 어떻게 알았어요?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예요? 비밀 아니었어요? 제가 처음으로 발견한 거 아니었냐고요?!”조현아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그녀는 자신이 놀라운 비밀이라도 발견한 줄 알았다. 하지만 자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소은은 이미 모든 것을 추측해냈다.시무룩해진 조현아의 얼굴을 본 한소은이 다급하
조현아는 멀어지는 한소은을 보며 그녀가 참 털털하다는 생각을 했다. 옛정에 얽매이지 않고 내려놓을 줄 알 뿐만 아니라 금방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인생이야말로 진정 자유로운 인생이었다.레스토랑에서 마주치지 않았다면 한소은은 강시유가 자신과 같은 호텔에 머무르고 있는 줄도 모를 뻔했다. 하지만 그럴 만도 했다, 이 호텔이 그나마 좋은 호텔에 속했기에 품평회에 참석한 이들 대부분이 이곳에 머물렀다. 그저 층수와 방 구조가 다를 뿐이었다.한소은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홀로 김서진의 방이 있는 층으로 향했다.올라올 때는 몰랐는데 올라오고 보니 이 층이 유난히 조용하다는 것을 그녀는 발견했다, 마치 다른 방에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게다가 복도에는 두터운 카펫까지 깔려있어 그 위를 밟아도 거의 소리가 없었다.김서진은 문도 닫지 않고 한소은을 기다리고 있는듯했다.“이 층 전체를 예약한 거죠?”한소은이 문 앞에 서서 복도의 양쪽을 바라보며 확신하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네, 조용히 해요.”김서진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있어서 이는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인 듯했다.“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거예요?”김서진이 한소은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겨 안더니 그녀의 귓불을 살짝 깨물며 벌을 내렸다.그러자 한소은이 간지러움에 목을 움츠리며 말했다.“다른 사람도 있어서 너무 가까이 붙어있기 좀 그랬어요, 다른 사람한테 들킬까 봐.”“다른 사람? 나는 못 봤는데, 비루먹은 개는 봤지, 짜증 나게.”그 말을 하는 김서진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마치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싫증 난다는 듯이.예전에는 기껏해야 무시를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 얼굴이 한소은 앞에 나타나면 김서진은 노형원을 저 멀리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저 현아 씨 얘기하고 있는 건데.”한소은이 김서진의 손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가 질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한소은이 웃음을 참으며 다시 덧붙였다.“서진 씨가 가자마자 현아 씨가 왔어요. 그리고...
“잘 아네요?”한소은이 웃으며 김서진의 맞은켠에 앉았다. 그리고 턱을 괴곤 그를 올려다봤다.“모르는 게 뭐예요?”김서진은 여유롭게 포트의 물을 비워내며 말했다.“모르는 것도 많아요. 예를 들면… 소은 씨가 나를 사람들에게 공개할 시간 같은 거?”김서진의 진지한 모습에 한소은이 웃었다.“김 대표님같이 겸손하신 분도 이런 걸 신경 쓰고 계실 줄은 몰랐네요.”“겸손도 어느 방면인지 봐가면서 떨어야죠.”김서진이 찻잔을 그녀의 앞에 놓아주며 말했다.“이런 방면에서는 겸손하기 힘드네요.”사랑하는 사람은 전 세계에 알려 모든 이들이 알게 해야 했다. 한소은은 자신의 것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그 누구도 감히 탐 내지 말아야 했다. 다른 이는 그녀를 부러워할 권리밖에 없었다.김서진의 말을 들은 한소은이 두 손으로 찻잔을 움켜잡으며 행복감을 느꼈다. “아, 그리고 그 두 사람 옆에 요즘 로젠이라는 사람이 얼씬거리던데 소은 씨 그 사람 가까이하지 말아요.”김서진이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뜨거운 차를 금방 입에 댔던 한소은은 그 말을 듣자마자 동작을 멈추곤 물었다.“왜요?”로젠이라는 사람은 확실히 이상했다.요즘 어디에서나 로젠이라는 사람을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노형원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라고 생각해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는 강시유와 미묘한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품평회에 특별 게스트로 등장하더니 지금 김서진은 로젠을 멀리하라고 일깨워주고 있었다. 이 사람, 도대체 무슨 신분일까?“해외에서 막 뜨기 시작한 조향사인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보이긴 해요, 상도 여럿 탔었고. 하지만… 말도 많은 사람이에요, 남의 걸 훔쳤다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고 작품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보도를 본 적도 있어요.”포트를 내려놓은 김서진이 자리에 앉더니 찻잔을 잡고 생각에 잠겼다.“반 년 사이에 해외에서 소리 없이 자취를 감췄던 이가 여기에 왔을 줄이야. 그리고… 도덕이 좋지 못한 사람이에요.”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