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은은 처음 진가연의 집에 갔을 때도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다.진가연은 식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많은 식물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약초도 많이 있었다.만약 약초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이상하지 않는데 진가연은 약초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그녀는 예전에 아주 진귀한 토침향을 한소은에게 주었다.진가연의 집에도 많은 진귀한 약초들이 있었다. 약초들은 같은 곳에 모아 서로 간의 냄새가 섞여서 독이 생길 수도 있다.물론 이것도 한소은의 추측일 뿐이다. 그녀는 그다지 확실하지 않다. 그래서 그녀는 어르신에게 물어봤다. 어르신은 박식하고 많은 곳을 돌아다녀서 아마도 이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어르신도 이런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는데, 그녀의 생각은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했다.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한 것은 진가연이 올바르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심리적 문제를 극복하면 성공이다.그다음에는 바로 진가연의 집에 가서 그 약초들을 제거하는 것이다.체내의 독에 대해 아직 모르니까 먼저 검사해 봐야 치료할 수 있다.한소은은 이런 것들에 대해 모두 진가연에게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소은은 아직 증거가 없고 말하면 진가연이 또 긴장할까 봐 오히려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천천히 하자.’한소은은 식단을 작성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김서진한테 전화가 왔다.한소은은 얼른 펜을 내려놓고 전화를 들어 목소리가 떨리기도 했다."여보세요?""여보, 잤어요?" 원래 그녀는 자신이 매우 강인한 여자라고 여겼지만 요 몇일동안 김서진과 연락을 안해서 매우 걱정했다.자신의 흥분된 감정을 억제하자,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했다."아직 안 잤어요.""미안해요. 많이 걱정했었죠?"김서진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이 말을 듣자마자 그녀는 더 이상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그녀는 매우 억울하게 말했다"내가 많이 걱정했잖아요!"그녀는 지금까지 계속 걱정했었다. 그러나 김서진의 목소리를 듣자 오래동안 쌓은 긴장
"아니요.”김서진이 말했다."CCTV를 다 봤는데 누가 독을 넣었는지 발견하지 못했고, 음식 찌꺼기도 검사해 봤는데 독극물을 발견하지 못했어요.""……음식이 아니라면 물인가요?"한소은은 잠시 생각하고 물었다.“그것도 검사했어요.”‘음식도 아니고 물도 아니라고요? 너무 이상하네…….”"그냥 사고 아니에요? 중독된 사람들은 어디에 갔었어요? 아니면 이상한 사람을 만났었어요?"한소은은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사상자가 생겨서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다 조사해 봤는데, 이 사람들은 모두 공장에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에요. 최근 며칠 동안 바깥 사람들과 접촉한 적이 없어요."김서진이 말했다."아직 조사하고 있으니까 곧 결과가 나올 거에요. 안심하세요!"신호가 안 좋아서 그의 목소리는 가끔 끊겼다."알았어요, 당신도 조심해요."요즘 거기에 반란이 일어나서 한소은은 많이 걱정했다."알아요, 난 괜찮아요!" 김서진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뭐라고요?" 그녀는 한쪽 귀를 막고 물었다."아니에요, 이쪽은 신호가 좋지 않아서 먼저 전화를 끊을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요!"김서진이 말했다."응응, 알아……."그녀는 말을 더 하려고 했지만 전화가 이미 끊겼다.신호가 확실히 너무 안 좋았다.한소은은 긴장이 조금 풀렸다.그녀는 도와주고 싶지만 여기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장거리 연애는 참 많이 힘든구나!’——주 부인은 집에 돌아와서 매우 흐뭇했다.‘역시 선생님은 남 다르시네.’‘선생님의 말씀이 맞네! 그 한소은은 가연이를 대상으로 실험하고 있네. 인성이 참…… 가연이도 너무 멍청하군.’주현철이 또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을 보고 주 부인은 기분이 나빠졌다."당신이 왜 또 술 먹어요! 그 무슨 프로젝트를 해야 하잖아요. 오히려 내가 바빠 죽겠네, 에휴!"말하면서 털썩 주저앉아 하인에게 차를 끓여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했다."뭐가 그리 급해?"주현철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우리는 무조건 이 프로젝트를 얻어낼 거야.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요!"주현철의 말을 듣고 주 부인도 매우 기뻐했다. 마침 하인이 차를 들고 컵을 가져왔다. 그녀는 손을 흔들었다."차 말고 나도 술 마실래!"말하면서 술병을 들고 자신에게 한 잔을 따라주었다."이제 우리 집도 운이 좋아졌네.""좋은 일도 계속 생기네.""뭐가?"주현철은 그녀를 바라보았다.술을 한 모금 크게 마시고 주 부인은 사레가 들렸다. 그녀는 여러 번 기침을 한 후 말했다."가연이가 오늘 의사 선생님에게 치료받았어요!""치료받았다고요?"이 말을 한 사람은 주현철이 아니라 주효영이었다.그녀는 방금 전에 샤워해서 머리가 아직 젖어 있다"효영아?!" 주 부인은 깜짝 놀랐다."너는 언제 돌아왔니, 왜 안 알려줬어! 당신도 왜 딸이 돌아왔는데도 나에게 한마디도 안 해요! 아이고, 진짜 좋은 날이네. 한 잔 더 해야지!"주현철은 중얼거렸다."나도 못 봤어. 효영아, 너 언제 돌아왔니, 왜 인사도 안 하냐.""술 마시고 있잖아요."주효영은 담담하게 말했다.“……저게 말이냐.""에휴, 술만 먹고 딸이 돌아온 것도 몰라요!" 주 부인은 남편을 두 대 치고 말했다."효영아, 뭐 먹고 싶어? 지금 바로 하인을 시킬게.""아니다, 오랜만에 돌아오니까 나가서 외식하자!"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딸의 팔을 잡으려고 했다.그러나 주효영은 피했다."뭐가 그렇게 신나요?""……."주 부인은 그제야 딸이 다른 사람에게 건드리는 게 싫어한다는 것을 생각났다."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아주 기뻐서 그렇지.”"오, 네 아버지의 장사도 잘되고 있어. 우리 집은 이제 대박 날 거야!"주효영이 반응 별로 없는 것을 보고 그녀는 계속 말했다."그리고 내가 진가연에게 의사 선생님을 찾아줬어. 역시 의사선생님이 아주 대단하셔. 진가연을 보자마자 중독됐다는 것을 알아냈어!""중독?!" 주현철은 놀라서 사레가 들릴 뻔했다."무슨 독에 걸렸어, 무슨 중독이야? 가연이가 중독됐다고?!"그는 너무 놀라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
"무슨 실험? 네가 한 말을 못 알아듣겠어." 눈을 깜빡이며 주현철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주 부인은 계속 말했다."내가 이전에 당신에게 말했잖아요, 가연이가 그 한소은이랑 친구해서 맨날 걔 집에 가서 밥 먹잖아요. 한소은이 다이어트를 해준다고 하는데 가연이가 그 말을 믿었어요. 근데 오늘 의사 선생님이 와서 한소은은 단지 의학에 대해 조금만 알고 있고 경험도 없어서 그냥 가연이를 대상으로 실험하고 있다고 하셨어요.""에휴, 계집애가 참 멍청하네. 우리 가족들 빼고 누가 잘해주겠어!"고개를 저으며 무엇을 생각한 듯 주 부인은 고개를 돌려 주효영에게 말했다."역시 우리딸이 최고야! 네가 똑똑해서 다행이야!"주효영은 입을 삐쭉거렸다."근데 옛날에는 엄마가 가연이를 많이 칭찬했잖아요.""……."주 부인이 조금 난처했고 말했다."네 고모부한테 잘 보여주려고 일부러 그랬지! 내가 이미 말해줬었잖아. 네가 내 딸인데 엄마가 당연히 네 편을 들어주지."그렇구나!" 허벅지를 두드리자 주현철은 드디어 이해됐다."그럼 나는 형부에게 말해야겠네. 김씨네 너무한 거 아니야? 우리 가연이를 대상으로 실험해!""그래요, 매형에게 잘 말해야죠, 이것만으로도 그 프로젝트를 김씨네에게 줄 수 없어요!"주 부인도 말했다."방으로 돌아갈게요!"주효영은 재미없어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효영아, 밥 먹으러 가야지!"주 부인은 얼른 그녀를 불렀다."안 가요! 나는 옷을 갈아입고 실험실로 갈게요." 주효영은 대답했다."왜……."입을 벌리자 주 부인은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왜 또 실험실이야! 애는 정말, 책벌레가 됐잖아! 당신도 뭐라 좀 해봐요!""뭐라 해?"땅콩을 먹으면서 주현철은 말했다.“효영이는 항상 잘하고 있잖아. 공부도 잘하고 일도 잘하잖아. 그냥 신경꺼라! 실험실가고 싶으면 가라고 해!""이러다가 결혼도 못 할 것 같아서 걱정이잖아요!"주 부인은 한숨을 쉬었고 어쩔 수 없었다.주효영은 고집이 아주 세서 주 부인의 말을 별
"그건……."이 교수는 조금 당황했다.어쨌든 뇌공등에 대한 연구는 중단되었다. 그는 옆에 앉아있던 임상언을 주저하는 눈치로 바라보았다.최근 두 번의 회의에 임상언이 모두 참석했다. 그렇다는 건 보스가 이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이다.임상언은 다리를 꼬고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느릿하게 담배를 물고 있는 그의 시선이 자기를 향하고 있지 않자, 이 교수는 하는 수 없이 다시 고개를 보스에게로 돌렸다.“보스, 뇌공등과 다른 독성이 강한 약초에 대해서……”"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다른 유능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실험이 성공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요."임상언이 갑자기 눈꺼풀을 치켜들고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러자 이 교수가 깜짝 놀랐다.그는 이 문제에 대해 전혀 몰랐던 이 교수는 임상언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을 찾았다니요? 누굴 찾았다는 말입니까? 아무도 내게 연구원을 교체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이 교수님, 지금 맡은 프로젝트에만 집중하세요. 교수님은 너무 순응적인 스타일이라 이런 일에는 어울리지 않으니…… 더 이상 관여하지 마세요."임상언은 담배 재를 털어내고 연기를 뿜어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이것은 이 교수더러 더 이상 그 연구에 신경 쓰지 말라는 걸 의미한다, 뇌공등이든 다른 약초든 상관없이 모두 이 교수가 심혈을 기울여 연구하던 프로젝트다. 그는 자기 눈으로 성공하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이 교수는 많은 연구와 데이터를 거쳐 지금의 성과를 얻어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손을 떼라니!“그 결정에 찬성할 수 없어요. 모든 프로젝트는 내 아이디어이고 내가 생각해 낸 사고방식과 창의인데 이제 와서 관여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건 옳지 않다고 봐요. 만약 내가 없는 사이 연구에 문제가 생기기라도 한다면 누가 책임진다는 말인 가요?”임상언은 입술을 꾹 다물고 이 교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당신이 계속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하면 어떤 결과가 나와도 당신 혼자서 감당하겠다는 뜻입니까?""…….
이때 갑자기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밖에서 한 사람이 걸어들어왔다."이 교수님.""그 사람이 너야?!"이 교수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네가 왜 ……""왜요, 반갑지 않으세요?"여자는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이 교수 앞으로 걸어갔다.다만, 그녀의 미소는 조금 차가운 분위기를 내뿜었다."아니, 언제부터……"그런 그녀를 보며 이 교수는 약간 혼란스러워했다.해외 명문대를 졸업한 엘리트 주효영, 그녀는 실제로 연구소에서 다른 연구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었다.이 교수도 그녀를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자신의 프로젝트에 참여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전 이 교수님이 생각하신 것보다 훨씬 일찍 이 프로젝트에 참가 했어요."주효영은 아무 거리낌 없이 복면을 쓴 남자의 맞은편으로 곧장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이건……."이 교수는 보스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한번 돌리고는 다시 임상언을 바라보았다.그들의 반응을 본 순간, 이 교수는 알아차렸다.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자기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한순간 자기를 기만했다는 배신감이 가슴으로 밀려오자, 이 교수는 한껏 언짢은 말투로 말했다."이 프로젝트는 내가 제안한 것이고, 내 모든 걸 쏟아부었어요. 어떤 사람을 초대하고 어떤 사람을 선택할지, 적어도 내 의견을 물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당신은 이 프로젝트의 제안자이자 최초로 시작한 사람이지만……."임상언은 잠시 멈칫하다 이 교수를 쳐다보며 말했다."보스의 지원과 내가 투자하지 않았다면 오래전에 프로젝트가 무산되었을 거라는 걸 잊지 마세요!"다시 말해, 여기서 가장 발언권이 없는 사람은 바로 이 교수라는 말이다.임상언은 매우 완곡하게 말했다. 이제는 당신의 동의를 거치지 않아도 되고 당신을 내쫓고 싶다면 언제든 내쫓을 수 있다고 말할 뻔했다.이 교수는 임상언의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리고 분노로 가득 찼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이때 주효영이 어색한 상황을 깨기 위해 입을 열었다."이 교수님, 제 이력서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자격
이 교수는 향수에 대해 잘 몰랐다. 그저 한소은이 지난 2년 동안 향수 업계에서 선도적인 조향사이고 국제적으로도 유명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주효영도 그렇게 대단하다는 말을 듣고 그녀를 위아래로 한번 훑어보았다."효영, 왜 전에 말하지 않았어?""그냥 그렇게 소문이 난 것뿐이에요. 이런 걸 굳이 입에 담을 필요조차 없어요."주효영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마치 모든 일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그런 그녀의 모습에 이 교수는 할 말을 잃었다."이 교수님, 이제 제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자격이 충분한가요?"주효영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그만하면 충분하지만…….""하지만 당신은 이미 한소은이란 사람에게 세뇌당했군요!"그동안 침묵하던 가면을 쓴 남자의 조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벌써 이런 핑계 저런 핑계 대면서 세 번이나 미뤘잖아요. 더 진행하지 못할 것 같으면 다른 사람에게 맡겨요!""아뇨, 할 수 있어요, 할 수 있어요!"이 교수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의견 없어요! 나도 실험이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이에요!”"그럼 효용이……""당신이 할 수 없는 실험은 주효영이 맡을 거예요!"가면을 쓴 남자가 입을 열었다."이제부터는 실험에 관한 모든 것은 주효영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그의 말은 이제 주효영에게 모든 권한이 위임되었음을 의미한다.이 교수는 주효영이 보스에게 인정받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임상언이 찾은 사람이 바로 주효영이라는걸 알게 되고 나니 이 중에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궁금해했다."네!"그는 감히 보스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서 고개를 끄덕였다"이 교수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손을 내미는 주효영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가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이 교수는 망설였지만, 여전히 그녀의 손을 잡아 악수했다.--원철수는 이날도 밤을 새우고 연구실을 나섰다.최근 많은 진전이 있어서 곧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현재 그는 사람들이 단기간 의식을 잃게 만드는
사실 원철수는 지난 이틀 동안 자기가 이루어 낸 성과를 자랑할 사람을 찾지 못해 기분이 좋지 않았었다. 하지만, 우연히 한소은을 만나고 나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웬일로 이렇게 일찍 연구실에 왔어요? 우연으로 한 번 성공하고 나서 다시는 오지 않을 줄 알았어요."원철수는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쯧, 아직 모르죠? 맞아, 나도 거의 성공까지 갔어요. 게다가 당신이 오랫동안 연구함에도 성공하지 못한 걸 내가 해낼 거라는 말이에요. 난 당신을 뛰어넘을 거예요!"한소은은 그에게 시간을 낭비하기 싫었다. 이런 무의미한 비교를 할 기분도 아니었다."이 교수님은요?""이렇게 이른 시간에 이 교수님은 아직 안 일어났을걸요!"정확히 말하자면, 이 시간에는 연구소에서 야간 근무를 하는 몇 명을 제외하고는 자기처럼 밤을 새우며 헌신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원철수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이렇게 말했다.“말 돌리지 마요. 내가 성공할 거라고 믿지 않는다는 거 알지만, 진짜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줄게요!"“지난번에 점혈을 당해 오랫동안 말을 못 했던 일을 잊은 거예요? 한 번 더 점혈 당하고 싶으세요?”원철수가 재잘대는 게 시끄러웠던 한소은이 손가락 두 개를 치켜들며 점혈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했다.그러자 원철수가 입을 꾹 다물었다.무의식적으로 두 걸음 뒤로 물러선 원철수는 입술로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한소은의 행동에 흠칫 놀라며 심장이 벌렁거렸다."당신……. 나한테서 떨어지세요! 무슨 요술 같은 걸 사용할 생각 말아요! ? 저번에 그 일은 눈속임이나 무슨 마술이라는 거 다 알아요. 어쩌면 마취제일지도 모르겠군요.”"……."원철수의 말에 한소은이 재밌다는 듯 피식 웃었다.‘요술이라 생각할 정도면서 무술주의 점혈이라는 걸 왜 생각하지 못할까?’하지만 한소은은 그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았다."내가 요술을 할 수 있다는 거 알았으니 내 앞에서 재잘거리지 좀 마요. 덩치 산만한 남자가 하루 종일 여자만 업신여겨 보면서 말만 할 줄 안다니!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