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층에서도 아래층에서도 한소은은 이 교수를 찾지 못했다.이 교수가 전화도 받지 않아 한소은이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서서 어디로 갈지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신비스럽고 아무도 가지 못하게 했던 가장 높은 층이 떠올랐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가장 높은 층을 보며 다시 고민에 빠졌다.엘리베이터는 한층 한 층씩 내려오다 한소은이 있는 층에 도착하여 "땡"하는 소리와 함께 멈췄다.문이 열린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사람은 이 교수가 아니라 임상언이었다.두 사람 모두 이런 상황에서 만나게 되어 깜짝 놀랐다.먼저 반응한 사람은 임상언이었다. 그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한소은에게 말했다."좋은 아침입니다.""안녕하세요."한소은은 그를 쳐다보며 되물었다."임 사장님, 이렇게 일찍 출근하는 건가요? 아니면 여기서 밤이라도 샌 건가?""난……."하지만 임상언이 대답하기도 전에 한소은이 말했다."하지만 대주주로서 어느 쪽이든 정말 헌신적이네요!"두 사람이 말하는 사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 하자 임상언이 손으로 문을 막은 다음 안에서 걸어 나와 한소은을 바라보며 말했다."한소은 씨, 우리도 오랜 친구인데 그런 식으로 말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좋아요, 오랜 친구이니 당신이 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려고 고집하는지, 왜 투자했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정말 이 프로젝트의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시는 건가요? 그리고 이 실험의 진짜 목적이 뭔지 아시는 건가요?"한소은은 궁금했다.임상언은 처음부터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어 했다. 나중에는 더 이상 이 프로젝트에 대한 언급이 없어져 그가 포기한 줄 알았지만 직접 투자하고 대주주가 될 줄은 몰랐다.그리고 정확히 누구와 함께 시작했는지 한소은은 알 수 없었다.프로젝트팀을 설립할 때부터 이 교수와 직접 연락을 주고받았고, 초기 투자자는 김씨 그룹이었다. 나중에 김씨 그룹이 투자를 철회하고 임상언 대표가 합류했다.이 교수 뒤에는 다른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확신했지만, 그 사람이 누구인지, 무엇을 할지는 조금
"그러게요, 왜 그랬을까요?"임상언이 두 손을 벌리며 천진난만한 얼굴로 물었다.그의 말에 한소은은 어이가 없었다.한소은은 두 손을 꽉 쥐고 입술을 치켜올리며 말했다."당신의 말대로 당신은 상인이고 사업가예요.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대답해 줄 수 없어요. 김씨 가문이 투자를 철회한 이유에 대해 잘 생각해 봐요. 정말 이 흙구덩이에 발을 들일지도 잘 고민해 보시고.”한소은을 바라보던 임상언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다만 그의 눈은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인듯했다. 보일 듯 말 듯 한미소는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없게 했다.한소은은 임상언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말하고 싶지 않거나 어쩌면 말할 수 없는 것은 분명했다."위에서 내려오시는 거 같은데 이 교수님도 계셨나요?"한소은은 심호흡 한번하고 턱으로 위층을 가리키며 임상언에게 물었다.임상언은 한소은의 시선을 따라 위쪽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곧 내려올 거예요. 조금 일이 있어서 늦나 보네요.”"이 교수님과 당신 외에 다른 사람이 있었나요?"고민 끝에 한소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임상언은 잠시 당황하더니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김 대표가 대주주였는데 이 프로젝트에 어떤 사람이 참여했는지 모르나요?”"김씨 그룹은 계속 이 교수와 함께 일해왔어요. 처음에는 이 프로젝트가 이 교수만의 아이디어와 계획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의 뒤에서 모든 걸 지배하는 사람이 있더군요.""어느 부분에서 알게 됐나요?"임상언이 호기심에 물었다.대답 대신 반문하는 임상언을 본 한소은이 중얼거리듯 대답했다."그 말인즉, 정말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뜻이군요.”순간 멈칫했던 임상언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날 시험하는 거였군요? 하하……배후에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되면 그렇다 쳐요. 어쨌든 우리는 모두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모두 이 실험이 성공할 수 있도록 기원하고 있죠.""처음부터 난 이 프로젝트의 존재를 알고 있었어요. 당신이 많은 노력과 정성을 기울인 것도 알고 있고
한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멍해졌다."…….""당신이 말한 대로 지금 내가 그곳에 가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거예요. 서진 씨도 할 일이 있고 저도 제 일이 있으니까요. 이 교수님이 위에 계신다고 했으니 곧 내려오실 거라 실험실에 가서 기다리려고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서둘러 가는 한소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임상언의 얼굴에 걸렸던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지며 들리지 않는 한숨을 쉬더니 작게 고개를 저었다.한소은은 김서진이 걱정되긴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런 걱정은 아무 소용이 없고 자신도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어린 아들은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하다. 부모님 둘 다 곁에 없으면 아들이 불안하고 무서워해서 할까 봐 한소은은 걱정하고 있었다.실험실에 들어온 한소은은 실험하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녀는 이 실험실에서 처음 진행한 실험부터 지금까지 얻은 모든 데이터를 정리하여 분류하기 시작했다.사실 이전에도 정리한 적이 있었지만,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서 작업했기 때문에 약간 뒤죽박죽이었다. 지금 모든 데이터를 한데 묶어놓으니 최근 자기의 추측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이러한 독초는 절대로, 더 이상 연구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현재 실험에 포함되지 않아야 한다.한창 데이터를 취합하고 있을 때 이 교수가 들어왔다. 아마 임상언이 이 교수에게 한소은이 연구소로 왔다는 걸 알려주었을 것이다."한소은 씨, 나를 찾고 있다고 들었어요.""이 교수님."한소은은 고글을 벗고 돌아서서 심각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뇌공등과 다른 독초에 대해……""이제 더 이상 당신이 책임질 일이 아니니 걱정할 필요 없어요."이 교수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현재 책임지고 있는 데이터 정리만 끝나면 가서 쉬세요."그의 말을 들은 한소은은 말문이 막혔다."????"‘가서 쉬라고?’전에는 꼭 돌아와야 한다고, 없으면 안 된다고 이 교수가 몇 번이고 자기를 설득했었다.
"한소은 씨, 흥분하지 마세요. 가서 쉬라는 건 당신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에요. 당신은 이미 많은 일을 했어요. 실험도 성공했으니 다음 단계는 쉬울 거라고 믿어요. 당신이 실험에 대한 공헌은 의심할 여지가 없고, 쏟아부은 노력도 우리는 잊지 않을 거예요!"이 교수는 한소은이 연구소에서 쫓겨난 것에 화가 났다고 생각해 재빨리 설명했다.하지만 한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 교수님, 제가 실험실에 남아있든 없든 이 실험을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실험이 계속하는 건 결코 인류를 위한 일이 아니에요.""아니요, 결과가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이 교수 역시 깊은 회의에 빠졌었지만, 자기의 초기 아이디어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아직 1차 시도 단계일 뿐이에요. 난 이 프로젝트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믿어요."“모든 성공에는 수천, 수만 번의 실패가 쌓여야 해요. 그리고 당신은 이미 성공했잖아요? 얼마 전에 성공한 완제품은 거식증에 걸린 아이가 식욕을 되찾고 밥을 먹게 했어요. 우린 그저 그 아이의 머리맡에 오일 몇 방울을 떨어뜨린 꽃 화분을 놓아둔 것뿐이었어요."이 얘기를 꺼내니 이 교수는 다시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약 효과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고 그 효과는 너무 놀라웠다.물론 아직 실험 단계여서 엄격한 임상 시험 없이는 보편적인 적용을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몰래 시험해 볼 수밖에 없었다."벌써 누군가에게 사용한 거예요?!"이 교수의 말에 한소은은 충격을 받고 의자에서 일어났다."흥분하지 마세요, 그냥 시도한 것뿐이고 성공했어요!"그녀의 반응을 본 이 교수는 서둘러 말했다."실패했으면 어쩌려고 했어요?!"한소은은 화를 내며 되물었다. 그녀는 그들이 그렇게 대담할 줄은 정말 몰랐다.실험은 성공했지만, 이것은 자기가 향수나 오일을 만들던 것과는 달랐다. 그것들은 향료였지만 이것은 약이다! 사람을 치료하거나 병에 걸리게 할 수도 있는 약이다!약이라 해도 어떤 사람에게는 약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독이 될 수
"이건 우리가 심혈을 기울여 얻어낸 데이터예요. 당신 혼자만의 것이 아니란 말이에요. 당신은 삭제할 권리가 없어요!"이 교수는 한소은의 손에서 컴퓨터를 빼앗고 싶었지만 나이가 많은 사람이 한소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두 사람이 컴퓨터를 두고 소란스럽게 싸우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이 교수님? 왜 그러세요?""빨리 컴퓨터 뺏어와, 이 여자가 실험 데이터를 망가뜨리려고 해!"사람들이 몰려들자, 이 교수는 서둘러 도움을 요청했다.그의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은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곧바로 달려와 컴퓨터를 빼앗으려 했다.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것을 본 한소은은 컴퓨터를 집어 들어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내팽개쳤다.둔탁한 소리와 함께 컴퓨터가 산산조각이 났고 모두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리고 이어진 치명적인 침묵.상황이 급변하자 사람들은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었다. 구경하던 다른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한소은은 연구소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고, 이 교수님도 전에는 한소은의 말을 들으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지금 두 사람이 싸우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컴퓨터를 부수고 실험 데이터를 모두 망가뜨렸다니?"미쳤어……."10초간의 침묵이 흐른 후 이 교수는 천천히 무릎을 꿇어 컴퓨터 잔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정말 미친 짓이야……."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여전히 입을 열지 못했다."그래요, 이건 미친 짓이에요!"한소은은 그 자리에서 차가운 눈빛으로 이 교수를 쏘아보며 말했다."이 실험 자체가 미친 짓이에요. 여러분 모두에게 말하건대, 이 실험은 계속되어서는 안 돼요. 이건 인류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며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올 뿐이에요! 실험팀을 이 자리에서 해체하고 모든 데이터를 파기해야 한다고요!""닥쳐!"이 교수는 고개를 들어 처음으로 적을 보는 것처럼 화난 눈빛으로 한소은을 바라보았다.전에 그녀에 대한 감사와 존중은 온데간데없었다.이 교수는 이를 갈며 한소은에게 말했다."이 실험은 내
"원철수씨, 충고하는데 이 실험을 계속하지 마세요."한소은이 어이없어하는 원철수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신이 나에게 지는 게 억울해서 더욱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는 거 알아요. 하지만, 굳이 이 프로젝트가 아니어도 되는 거잖아요? 이 실험은 정말…….”"그만 해요!"원철수는 차갑게 웃으며 한소은의 말을 끊었다."당신이 뭔데 내가 당신에게 지는 게 억울해서 이러는 거로 생각해요 난 단지 이 실험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계속하는 거예요. 연구소를 떠나고 싶다면 아무도 당신을 막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당신이 뭔데 실험 데이터를 모두 파괴하는 건가요? 당신이 뭔데!""……."그의 말을 들은 한소은은 더 이상 이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사람이 고집을 부린다면 어떤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한소은은 그들 앞에 멈춰 서서 차가운 표정의 원철수와 슬픔에 잠긴 이 교수를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무슨 대단한 인물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파괴한 것은 내가 얻어낸 실험 데이터고, 내가 만든 것이기 때문에 내 손으로 파괴하는 것은 아무도 이걸로 뭐라 할 자격이 없어요."말을 마치고 한소은은 곧장 실험실에서 나갔다.다른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이 교수와 한소은이 왜 사이가 틀어졌는지 궁금해하며 쑥덕거렸다."데이터, 내 데이터……."이 교수는 문득 슬픔에서 깨어난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컴퓨터 파편을 주우려 했다."이 교수님, 이 교수님……."원철수가 큰 소리로 불러도 이 교수를 깨울 수 없었다. 정말 방법이 없자 그는 있는 힘껏 그를 땅에서 끌어 올렸다."이 교수님! 이 컴퓨터는 이제 쓸모가 없어요! 파편을 다 주어도 조립할 수 없어요!""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해?"멍하니 그를 바라보는 이 교수의 눈빛은 생기가 없었고, 마치 갑자기 믿음을 잃은 것 같았다.그의 모습은 초라하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무력해 보였다."이 교수님, 데이터는 컴퓨터와 정보 기반에 있으니, 컴퓨터가 고장 났다고 해서 데이터가 완전히 복구할 수
"응, 저기 가연 아줌마……."김준은 새끼손가락으로 안쪽을 가리켰다."소은 언니, 이제 왔어?"진가연은 미소를 지으며 식탁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식탁 위의 음식은 하나도 손대지 않은 것 같았다. 아직 식사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한소은은 조금 놀랐다. 보통 이 시간에 진가연은 식사를 빨리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다."뭐야, 오늘 메뉴가 마음에 안 들어?"한소은은 진가연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메뉴는 모두 피하고 마음에 드는 메뉴 중에서 적절한 메뉴를 선택하려고 모두 직접 골랐다."아니, 전혀!"진가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지만 언니와 함께 식사하고 싶어서.""?"한소은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식탁에 놓인 음식을 바라보았다.버섯 닭 다리 살, 계란 두부찜, 민물고기찜, 그리고 청경채 볶음을 보니 모두 식어 있었고 해 놓은 지 오래된 거 같아 보였다.한소은은 전에 진가연의 식사 시간을 정해 주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는 그 시간을 엄격하게 따르고 있었다. 오늘 이 시간은 진가연이 저녁을 먹기에는 조금 늦은 시간이었다.그러나 한소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자를 꺼내 김준을 먼저 앉히고 나서 가장자리에 앉은 다음 말했다."아주머니, 음식 좀 데워 주세요."진가연은 맞은편에 앉아 한소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소은 언니, 지난 이틀 동안 언니 집에서 밥 먹었잖아. 이렇게 신경 써줘서 정말 고마워."그러자 한소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갑자기 왜 예의를 갖추고 그래? 월말에 식비를 받겠다고 했잖아!""언니가 내게 농담한 거란 거 알아. 말로는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모두 나를 위해 그러는 거라는 것도 알아. 지난 이틀 동안 정말 몸이 편안해졌어. 이젠 몸도 예전만큼 피곤하지 않은 것 같고, 먹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덜해.""그렇다면 다행이네."한소은은 진가연이 자기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주저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하는 것 같았다.그래서 한소은
한소은은 희미하게 웃으며 진가연에게 되물었다."누가 그렇게 말했어?진가연의 얼굴에 부자연스러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그녀의 피부는 매우 하얗기 때문에 그런 급한 기색은 조금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분명했다."아니, 그냥 물어본 거야."사실 진가연은 이런 식으로 한소은에게 질문하는 것이 친구에 대한 불신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자기가 그 사람의 말을 순진하게 믿었을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소은에 대한 의심이 솟아올랐다.그 남자는 자기가 중독된 거라고 말했었다. 그 남자의 확신에 찬 말투에 진가연은 자기의 몸에 대해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원철수가 그랬어?"생각해 보니 진가연과 마주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원철수 뿐이었다. 진가연앞에서 자기에 대한 온갖 비하 발언을 할 수 있는 사람도 그뿐이었다.한소은은 그처럼 소심한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 분명 자기는 그 남자와 갈등을 겪은 적도 없는데 성별에 대한 편견 때문에 자기에게 온갖 무례하고 모욕적인 구타를 하는 것이 지루했다.한소은이 단번에 알아맞히자 진가연의 얼굴이 약간 붉게 변했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부드럽게 말했다."미안해, 언니.""미안해할 거 없어, 넌 그냥 평범한 사람들처럼 의심을 품은 거야, 사람에게 조금 경계심을 가지는 건 좋은 거야."한소은은 위로의 뜻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예전에 한소은 또한 사람들에게 온 마음을 다해 잘해줬었다. 그 결과는 가장 가까운 사람의 배신이었다. 사람을 신뢰한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적절한 경계는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건 나쁠 게 없었다."미안해, 언니를 의심하지 말았어야 했어! 어쨌든 언니는 내게 잘해줬고, 지난 며칠 동안 정말 몇 년 만에 가장 행복했어. 살이 영원히 빠지지 않더라도 지난 며칠 동안 얼마나 행복했는지 평생 기억할 거야!"한소은이 이럴수록 진가연은 더욱 미안해했다. 그 남자의 몇 마디에 넘어가 친구를 의심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죄책감이 더욱 커졌다."바보야, 누가 살이 안 빠진댔어?"한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