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차에 올라타서 시동을 걸고 떠나며 점점 멀어져 갈 때까지 고장미와 그의 남자친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차가 보이지 않자 남자는 문득 깨달은 듯 추측했다."방금 그 남자가 등처가 아니야?"스타보다 더 잘생긴 데다, 몸매도 남자 모델처럼 좋았으며 또 소희의 비위를 그렇게 맞췄으니 아무리 봐도 등처가 같았다!‘틀림없어, 정말 부자라면 혼자 운전을 할 이유가 없잖아?’......이때, "등처가"인 구택은 차를 몰고 자신의 "스폰서"를 어정으로 데려다주고 있었다. 그는 소희의 손을 잡고 입을 열었다."청아 씨가 이사 갔으니 저녁에 아무도 소희 씨한테 밥해줄 사람 없잖아요. 내가 아주머니 한 분 청할게요."소희는 돌아보며 말했다."싫어요!""항의 무효에요, 난 단지 소희 씨에게 통지하는 거뿐이에요!" 구택은 앞을 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소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구택 씨도 나 이사 가는 거 보고 싶어요?"구택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이사요? 그럼 저녁에 배가 아플 때 다시 나랑 이사에 대해 말해봐요."소희는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보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한참 뒤, 소희는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정말 그럴 필요 없어요. 난 스스로 밥하는 거 배울 수 있으니까요. 설마 내가 만든 밥 맛없다고 싫어하진 않겠죠!"구택은 전에 탄 계란 프라이를 떠올리며 눈썹을 찌푸리고 말을 하지 않았다."응?" 소희는 아직도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럴 리가요!" 구택은 처음으로 이렇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우리 먼저 며칠 동안 요리해봐요. 정 안 되면 아주머니 부르고요!""그래요!" 이번에 소희는 흔쾌히 승낙했다.시내로 돌아오자 구택은 먼저 차를 몰고 마트에 갔다가 소희가 의혹해하는 것을 보고 설명했다. "밥하는 거 배운 다면서요? 그럼 지금 식재료 사러 가서 오후에 배우면 되잖아요.”소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회사에 안
소희는 눈썹을 찌푸렸다."10점 받으면 난 무적이라고요!"구택은 그녀의 득의양양한 모습이 너무 좋아서, 참지 못하고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득의하지 마요, 이것은 단지 추가 스킬일 뿐이니까요!"소희는 낮은 소리로 콧방귀를 뀌었다. "구택 씨는 아직 하나도 없잖아요!"구택은 눈에 웃음을 머금고 그녀의 손을 잡고 다른 식재료를 사러 갔다.물건을 다 산 뒤, 아이스크림 코너를 지나가자 소희는 멈추었지만 잠시 생각하다 결국 입을 열지 못하고 묵묵히 가버렸다.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했기에 소희는 간식 코너에 가서 초콜릿을 골랐다.그녀가 초콜릿을 안고 나왔을 때, 구택은 과일을 고르고 있었고 종업원에게 어떤 과일은 열성이냐고, 생리기에 먹을 수 있냐고 진지하게 물었다. 종업원은 구택을 마주할 때 다소 긴장했고, 그에게 몇 가지 과일을 소개하며 눈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이렇게 잘생기고 돈까지 많은 데다 이렇게 다정하다니, 정말 미치겠네!어떤 여자가 이런 행운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그녀는 소희가 구택의 곁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았을 때, 문득 하느님은 공평하다고 느꼈다!두 사람은 30분 동안 마트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한가득 샀다.집에 돌아오자 구택은 먼저 어제 만든 설탕물을 다시 끓여서 소희에게 먹인 후 소갈비를 썰어 찬물에 담갔다.소희는 뜨거운 설탕물을 마시며 옆에서 구택이 바삐 돌아치는 것을 보고 문득 자신의 요리 기술을 연습하는 게 아니라 구택의 요리 기술을 연습하는 거라고 느꼈다!소갈비를 담근 뒤, 구택은 손을 깨끗이 씻고 방으로 돌아가서 옅은 회색의 니트로 갈아입었다. 그는 소희가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을 보고 걸어가서 그녀의 곁에 앉으며 아주 자연스럽게 손을 그녀의 배에 눌렀다."아직도 아파요?”소희는 고개를 저었다."많이 좋아졌어요!"구택은 잠시 그녀의 배를 주무르다 텔레비전의 소리를 낮추며 소희의 턱을 쥐고 키스했다.오후의 햇빛이 들어오며 두 사람은 소파에 박혀 키스를 했다. 구택이 방금 갈아입은 옷은 소매가
소희는 그가 썰어 놓은 토마토 몇 조각을 그릇에 넣고 설탕과 함께 섞었다.구택은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게요?""먹으려고요, 엄청 맛있어요!"소희가 웃었다.구택은 눈썹을 찡그렸다."토마토는 생건데."소희는 숟가락으로 한 입 떠서 구택의 입가에 건넸다."먹어봐요!"구택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여전히 입을 벌리고 토마토를 먹었다. 달콤하고 신선한 토마토는 무르익은 토마토와 맛이 달랐다."맛있어요?" 소희는 두 눈을 반짝이며 그를 바라보았다.구택이 말했다."한 입 더 줘요!"소희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들은 너 한 입 나 한 입 먹으며 반 그릇 정도 하는 설탕 토마토를 다 먹었다.구택은 토마토를 볶았고, 소희는 옆에서 브로콜리를 잘게 썬 뒤 또 당근을 썰었다. 구택은 그녀가 아주 느리게 당근을 똑같은 두께와 크기로 써는 것을 보고 웃고 싶었지만 그녀를 상관하지 않았다.토마토 소갈비찜은 이미 삶기 시작했고 구택은 또 토마토 계란을 볶은 뒤 돈가스를 부쳤다.마지막으로 브로콜리를 볶는 것만이 소희의 강렬한 요구하에 구택은 그녀에게 맡겼다.구택은 이 요리가 간단하다고 느끼며 소희도 시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소갈비를 보러 갔을 때 소희는 브로콜리를 집어 호호 불더니 입에 넣은 다음 눈썹을 찌푸리고 그에게 물었다."나 몰래 소금 넣었어요?"구택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낮게 웃었다.소희는 끝까지 자신이 소금을 한 번 넣고, 구택이 또 한 번 넣어서 브로콜리가 이렇게 짜게 됐다고 우겼다!......마지막 네 가지 요리가 테이블에 놓여 있을 때, 소희는 굳은 표정으로 네 가지 요리를 보고 있었고 머릿속에는 잔잔한 호수 위에 하얀 백조 세 마리가 우아하게 놀고 있다가 갑자기 미운 오리 새끼 한 마리가 끼어든 화면을 상상했다.그녀는 왜 자신이 볶은 브로콜리가 검은색인지 도저히 모르겠다.구택은 그녀의 뒤에 서서 물었다."내 기술은 2점 추가했는데, 소희 씨는요?"소희는 한숨을 쉬며 의기소침한 표정을
진석이 물었다."학교에 수업이 적은 이상 작업실에 올 준비는 안 하는 거예요?"소희가 말했다."고민 중이에요!"진석은 웃으며 말했다."디자인 작업실에서 두 명의 디자이너 조수를 모집하려고 하는데, 아가씨는 자신이 처음부터 배우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다 했잖아요, 그럼 와서 한 번 시도해 보는 건 어때요? 졸업 전에 인턴십 하는 걸로요!"소희는 미간을 치켜세웠다."괜찮은 제안 같아요!""그럼 요 며칠에 한 번 와요. 마침 나도 있으니까 직접 아가씨 면접 봐줄게요!"소희는 방긋 웃었다."작은 조수인 내 체면도 참 크네요!"진석은 가볍게 비웃었다."아가씨가 올 수만 있다면, 내가 체면이 서는 거예요!"두 사람은 몇 마디 나누다가 소희는 내일 오후 "면접"보러 가겠다고 승낙했다!전화를 끊은 뒤, 소희는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을 비었다. 자신의 작업실에 가서 조수로 일하다니, 꽤 재밌는걸!휴대전화를 내려놓자마자 서인이 또 전화를 하며 밥 먹으러 가라고 불렀다.소희는 기지개를 켜고 손에 들고 있던 마크 펜을 내려놓고 일어나서 서인에게로 갔다.두 건물의 거리는 멀지 않아 소희는 몇 걸음 만에 도착했다. 그녀가 문에 들어섰을 때, 서인은 베란다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한낮의 햇빛조차도 그의 푸른 수염을 가진 사나운 기운을 부드럽게 할 수 없었다.소희를 보자 서인은 일어서서 그녀에게 물을 가져다주었는데, 걷는 데에 이미 큰 문제가 없었다."내일 이사 갈 거라서 너한테 말해주려고." 서인은 그녀에게 물을 건네주며 입을 열었다.소희는 물을 비틀어 열며 그를 바라보았다."어디로 이사 가는데? 네 그 대력 운반 회사로?"서인은 나른하게 소파에 기대어 그녀를 흘겨보았다."그 장명원이란 사람 말이야, 줄곧 내 사람과 맞서서, 보아하니 꼭 나를 부두에서 쫓아내려는 것 같아. 나는 원래 나으면 그를 상대하려고 했지만 그는 임구택의 사람이었으니 그냥 포기하려고!"소희는 눈썹을 치켜세웠다."무슨 뜻이야? 운반 회사 그만둔다면, 이문
서인은 담배에 불을 붙였고 연기 속에서, 그의 얼굴은 의기소침했고, 잘생긴 얼굴은 약간의 사악한 기운을 띠고 있었다."내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는 이상,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는 아내도 있고 딸도 있으니 내가 돌아가든 말든 상관없어!"소희는 입술을 오므렸다. 그녀는 사람을 설득하는 데 서툴러서 그냥 담담하게 한 마디 했다."네가 좋은 대로 해!"서인은 눈을 들어 그녀를 한 번 보았다."넌? 임구택과 함께 있으니 즐거워?"소희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응.""다들 즐거우면 그럼 됐어!"서인은 씩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가자, 밥 먹으러!"소희는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며 입술을 살짝 구부렸다."아직도 내가 미워?"서인은 이를 깨물고 두 손으로 허리를 짚으며 웃으며 한숨을 쉬었다."어제 내가 담배를 사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는데, 올라올 때 엘리베이터에 한 아빠가 그의 딸을 데리고 있는 거 봤거든. 그의 딸이 아마 말을 듣지 않아서인지 그는 엄청 화가 나서 그녀를 훈계했고, 그의 딸이 울기 시작하자 그는 즉시 당황해지며 얼른 안고 자신의 딸을 달랜 거 있지!"소희는 눈썹을 찌푸리며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몰랐다.서인은 웃으며 말했다."모르겠어? 내가 너 처음 봤을 때, 너는 겨우 몇 살이었고, 나도 네가 자란 것을 지켜본 거나 다름없잖아. 너의 사격술도 내가 가르쳤으니 아빠라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오빠인 셈인데, 내가 너를 미워하겠어 아니면 때리거나 욕을 하겠어? 네가 울고 불면 내 마음도 괴로울 텐데!"소희는 눈살을 찌푸리고 그를 바라보다가 어이가 없는지 아님 감동받았는지 그를 힐끗 훑어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너 요즘 빈둥거리면서 무슨 심리학에 관한 책이라도 본 거야?"서인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책장 안의 그 책들을 몇 권 보았는데, 꽤 괜찮더라고. 나도 가서 몇 권 사려고. 나중에 내 방에 책장 하나 만들어서 지식인 행세해야지!"소희, "…..."그냥 밥 먹으러 가자!두 사람
명원의 아버지는 일부러 엄숙하게 말했다."손님이 계시는데 어디서 큰 소리야! 좀 조용히 못 해!"운숙 이모라는 여자는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젊은이야 다 그렇죠. 그들 특유의 패기라니까!"장 부인은 웃으며 말했다."명원이는 너무 어린애 같다니깐요, 우리 미연이는 딱 봐도 듬직해 보이네요!"명원은 소파에 앉아 맞은편의 여자를 바라보았는데 그녀가 단발머리에 하얀 셔츠, 검은색 바지를 입은 채 디저트 가게의 점원처럼 단장한 것을 보고 그런대로 괜찮게 생겼지만 성격이 좀 싸늘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를 보자마자 고개를 휙 돌리더니 표정은 쿨했다.이때 운숙 이모는 웃으며 말했다."나는 우리 미연이가 너무 듬직해서 탈이에요. 조금도 여자애 답지가 않잖아요. 나는 그래도 명원이 성격이 좋지.”장 부인은 즉시 말했다."여자는 좀 단정해야죠. 어차피 나는 그런 아이가 좋은걸요. 근데 미연이랑 명원이가 같이 지내면서 두 사람의 성격을 좀 중화시키면 우리도 소원이 없겠네요!"“그랬으면 정말 좋을 텐데요!”그들이 서로 아첨하고 칭찬하는 것을 듣고 명원은 단번에 자신의 부모님이 그를 부른 이유가 맞선을 보게 하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러나 상대방도 별로 내키지 않은 것 같으니, 차라리 그가 먼저 나서는 게 나을지도!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아빠, 엄마, 저 아직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말을 마치고 그는 몸을 돌려 가려고 했다."거기 서!" 장 부인은 호통쳤지만 간 씨네 가족들 면전에서 정말 화를 내지 못하고 그저 멋쩍게 웃었다."집에 손님이 있는데 어딜 가는 거야? 가서 미연이 데리고 화원에서 좀 돌아다녀.""엄마, 나 정말 일 있다고요!"명원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운숙 이모는 웃으며 말했다."명원이 바쁜 이상, 내버려 둬요. 괜히 지체하지 말고요!""아무리 바쁘더라도 오늘은 집에 있어!"장 부인은 화가 났고 명원에게 눈살을 찌푸렸다."빨리 가!"명원 아빠도 입을 열었다."네 운숙 이모와 미연이 처음으로 우리 집에 왔으
미연은 말투가 냉담했다."안심해요, 나는 명확하지 않게 생긴 사람한테 아무런 흥미가 없으니까요!"명원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그게 무슨 뜻이죠? 명확하지 않아? 그럼 당신은 뚜렷하게 생겼어요? 우리 엄마만 아니었으면, 나는 형제 하나 소개해 주는 줄 알았다고요!"미연은 말투가 차분했다."그럼 당신은 병원에 가야겠군요!""병원에 뭐 하러 가요?" 명원이 물었다."안과 가서 시력이나 검사해 봐요!"명원은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콧방귀를 뀌었다."남자는 여자와 싸우지 않는 법. 나도 당신과 따지지 않겠어요."말을 마친 다음 그는 떠나려 했다."거기 서요!"미연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명원은 고개를 돌려 짜증을 냈다."왜요?""앉아요!" 미연은 엄숙한 표정으로 턱으로 벤치를 가리켰다."또 무슨 할 말 있어요?" 명원은 냉담하게 미연을 바라보았고 미연은 담담하게 그를 바라보았다."이대로 가면, 난 돌아가서 장 부인에게 내가 당신 마음에 든다고 말할 거예요!"명원은 갑자기 안색이 변하더니 이를 악물고 천천히 걸어왔다."독한 여자군!"그는 다리를 꼬고 벤치의 의자에 두 팔을 걸치며 건들 건들한 말투로 말했다."말해봐요, 또 무슨 일 있어요?"미연은 침착한 얼굴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우리 사귀어요!""뭐라고요?!"명원은 이번에 안색이 완전히 변했고 고개를 돌려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미연을 바라보며 위아래로 그녀를 훑어보았다."저기요, 농담이죠?""아니요, 진심이에요. 우리 사귀자고요!"미연은 다시 한번 반복했다."왜요? 날 좋아하는 거예요? 농담하지 마요!" 명원은 이런 모습을 선보인 미연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절대 믿지 않았다.미연은 안색 변하지 않고 냉정하게 말했다."우리 엄마가 줄곧 남자친구 찾으라고 재촉하셨거든요. 장 부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만약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두 번째 맞선, 세 번째, 네 번째 맞선이 있을 거예요."그녀는 고개를 돌려 명원을 바라보았다."귀찮
명원은 소녀의 뒷모습을 보고 싸늘하게 웃었다.‘손 한 번 잡았다고 화를 이렇게 내다니, 역시 레즈비언이군. 이제 마음이 좀 놓이는걸!’그는 기분이 매우 좋아서 미연의 뒤를 따라 문으로 들어갔고, 거실에 도착한 후 큰소리로 말했다."엄마, 운숙 이모!"장 부인은 명원의 앞뒤 태도가 뚜렷하게 달라진 것을 보고 속으로 즐거움을 참지 못했고 이 일에 희망을 느꼈다.간 부인은 미연을 한 번 보더니 웃으며 일어섰다."우리는 아직 일이 있으니 더 이상 방해하지 않겠네요. 다음에 다시 찾아올게요!""벌써 가려고요?" 장 부인은 친절하게 만류했다."하인은 이미 저녁 식사를 차리고 있으니 남아서 식사하고 가요.""아니에요, 다음에요!" 간 부인은 부드럽게 웃었다.장 부인은 간 부인이 사실 돌아가서 미연의 태도에 대해 물어보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자신도 명원에게 급히 물어보고 싶었으니 이심전심으로 두 사람은 더 이상 견지하지 않았다.명원은 따라서 일어나 예의를 갖추었다."운숙 이모, 미연 씨, 제가 바래다 드릴게요!"장 부인은 명원이 호칭까지 바꾼 것을 보고 더욱 기뻐하면서 얼굴과 눈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별장 문을 나서자 명원은 그제야 문 앞의 벤츠가 간 씨네 차이며, 또 미연이 스스로 운전해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차에 올라가며 선글라스를 끼고 깔끔하게 시동 거는 것을 보며 명원은 뜻밖에도 그녀의 옆모습이 아주 멋있다고 느꼈다.그는 그녀가 남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럼 두 사람은 정말 친구로 지낼 수 있을 텐데!간가네 사람들을 보낸 뒤, 장 부인은 즉시 명원을 끌고 가서 참지 못하고 물었다."어때? 나는 이 아가씨가 참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생긴 것도 괜찮고, 성격도 듬직하고!"명원은 속으로 생각했다. 너무 듬직해서 탈이지!장 부인은 그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즉시 물었다."너 지금 이게 무슨 표정이냐? 도대체 그 아가씨 마음에 드는 거야 아닌 거야?"명원은 얼버무리며 말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
유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말했다.“맞아요. 내가 간호까지 해줬어요. 감사 인사는 필요 없고요.”구은정은 잠시 말이 막혔다. 그러다가 그는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은정의 큰 키와 묵직한 분위기만으로도 압도적인 기운이 느껴졌다.이에 유진은 본능적으로 한 걸음씩 물러섰다.“유진아, 대체 언제까지 나 피할 거야?”은정이 묻자, 유진은 당황해서 반문했다.“내가 뭘요?”“너 어젯밤 내가 아픈 틈을 타서, 키스도 하고, 만지기도 하고, 맘껏 했잖아. 다 잊은 거야?”유진은 말문이 막혔다. 은정은 다시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날 좋아하면서 왜 인정 안 해?”유진은 등을 문에 기대고 은정을 올려다보았고, 눈빛에는 불쾌한 기색이 스며 있었다.“그렇게 나오실 줄 알았으면, 어젯밤 동정 따윈 하지 말 걸 그랬네요.”“동정?”은정은 눈썹을 치켜올렸다.“그럼 뭐겠어요, 삼촌?”유진은 코웃음을 치며 은정의 가슴을 밀치고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걸어 나갔다. 복도에는 유진의 비아냥 섞인 목소리만 가볍게 울렸다.“아플 땐 약 꼭 챙겨 드세요. 헛소리는 고열 때문일 수도 있으니까요.”엘리베이터에 탄 유진은 곧장 떠났고, 은정은 그 자리에 서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이마를 찌푸리며, 눈매는 점점 더 어두워졌다.오전 10시.강성의 어느 프라이빗 클럽.서선영은 넓은 챙이 달린 프렌치 스타일 모자를 쓰고, 스카프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조용히 안으로 들어섰다.서선영은 한 룸의 문을 열고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을 확인하자, 모자를 벗으며 차가운 표정을 드러냈다.“요즘 회사 안에 당신을 지켜보는 눈 많아. 그런데 이 타이밍에 날 만나면 어쩌자는 거지?”최이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며칠간 이어진 불안과 압박 속에서 예전의 자신감은 사라졌고, 초췌한 인상만 남아 있었다.“내 문제 어떻게 해결할 건데?”서선영은 침착하게 말했다.“변호사 제일 좋은 사람으로 붙여줬잖아.”최이석은 비웃었다.“증거가 빼박인데? 최선이란 게 결국 내가 돈 다
“안 가요, 이불 가지러 가는 거예요.”유진은 목소리를 낮추어 조심스럽게 말했는데, 달래듯 한 말투였다. 그제야 은정은 그녀를 놓아주었다.유진은 방 안에 있던 에어컨을 끄고, 은정의 침실로 향해 이불을 가지러 갔다. 유진은 처음으로 은정의 침실에 들어섰다.외부와 같은 인테리어 분위기, 차분하고 단정하지만 지나치게 냉정한 느낌이었다. 그 방처럼, 그 역시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따뜻함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유진은 이불을 안고 잠시 방 안을 둘러본 뒤 거실로 돌아왔다. 그녀는 이불을 은정에게 덮어주고, 소파 앞에 쭈그려 앉아 한참을 바라보다가, 스탠드 조명을 끄고 조용히 돌아서려 했다.그 순간, 은정의 낮고 흐릿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울렸다.“유진아, 안 간다고 했잖아.”유진은 뒤돌아봤다. 어두운 거실 속에서 은정의 눈빛은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를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졌다.그 눈빛엔 서운함과 외로움이 함께 담겨 있는 듯했다. 몇 초간 정적이 흐른 뒤, 유진은 조용히 돌아와 은정에게 말했다.“조금만 안쪽으로 가요.”은정은 곧바로 소파 안쪽으로 몸을 옮겼다. 유진이 옆에 눕자마자, 은정은 유진을 품에 끌어안았고, 이내 그의 뜨거운 입맞춤이 쏟아지는 듯했다.유진은 눈을 감고, 몇 초 뒤엔 어색하지만 조심스레 반응을 보였다. 그 작은 반응 하나에도 은정은 순간 멈칫했다가, 곧 환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더 뜨겁고 격렬하게 키스했다. 제어 불가능한 감정이 담긴 입맞춤이었다.유진은 마치 물속에 잠긴 듯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무의식적으로 몸을 피하려 하자, 은정의 손이 유진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았다.어둠 속, 낮고 거칠게 갈라진 은정의 목소리가 귀에 와닿았다.“우리 침실로 갈까?”유진은 얼굴이 새빨개져 그의 품에 파묻혔다.“적당히 해요.”은정은 알았다. 지금 조금만 더 약하게 굴면, 유진은 진짜 넘어올 수도 있다는걸. 하지만 동시에 은정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침대까지 가면, 진짜 더는 참지 못할 거
유진은 은정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데 놀라 잠시 멍해졌다. 그러고는 작게 중얼거리듯 말했다.“잘못한 거 알면 고치면 되죠. 전 일단, 예전 일은 용서할게요.”유진은 해열제를 찾아내고는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다행이다. 할머니가 미리 약들을 챙겨두셨거든요.”노정순이 각 약의 효능과 복용량을 따로 포스트잇에 적어 붙여놓았고, 유진은 방금 몇 번이고 확인했다. 이 정도면 문제없을 것이었다.유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가 따뜻한 물을 받아왔고, 해열제를 구은정에게 건네며 말했다.“아까 의사 선생님한테 전화했어요. 감기몸살일 가능성이 크대요. 우선 이거 먹어요. 열이 안 내리면 병원 갈 거예요.”은정은 눈앞에 놓인 약을 보며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체온 안 재봐도 돼?”“체온? 만져보면 알죠!”유진은 다시 은정의 이마를 만지고, 곧바로 자기 이마와 비교해 봤다, 그러고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요. 안 재도 돼요. 확실히 열나요.”하지만 은정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약 안 먹어도 돼. 뜨거운 물 좀 마시면 곧 나을 거야.”“안 돼요. 꼭 먹어야 해요.”유진은 단호하게 약을 내밀었으나, 은정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유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혹시 약 먹는 거 무서워요?”은정은 유진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약을 받아 입에 털어 넣더니, 물을 크게 한 모금 마시고 꿀꺽 삼켰다.그 급한 모습이 너무 긴장돼 보여서, 유진은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진짜 약 먹는 거 무서운 거였네.’아프기도 하니까, 그냥 웃지 않기로 했다.유진은 다시 몸을 돌려 거실 테이블 위의 약상자를 정리하려고 했다. 약을 넣으려다 상자 뒷면에 적힌 문구가 눈에 띄었다.유진은 고개를 돌려 물었다.“관장약? 관장이 무슨 뜻이에요?”은정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하더니, 갑자기 얼굴이 확 굳어졌다. 그러고는 몸을 숙여 목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려 했다.유진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배를 쥐고 웃기 시작했다. 소파에
유진은 몇 걸음 더 다가가 남자를 내려다보며 물었다.“술 마신 거예요?”은정은 눈을 천천히 떴다. 목소리는 낮고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유진아.”유진은 얼굴을 굳히며 반쯤 무릎을 꿇고 앉았다.“대체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셨어요?”은정의 짙고 어두운 눈동자가 곧장 유진을 바라보았고, 그 시선에 유진의 마음이 한없이 흔들렸다.유진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여전히 거칠고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너 볼 수 있다면, 죽어도 괜찮아.”그 말에 유진의 눈가에 눈물이 갑자기 맺혔으나, 눈이 붉게 물든 채로 말했다.“그럼 안심해요. 죽어도 나는 쳐다도 안 볼 거니까요.”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돌아서려 했지만 유진의 손목이 갑자기 꽉 붙잡혔다. 힘이 세서 도무지 빠져나갈 수 없었다.유진은 차갑게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놓으세요.”그러자 은정은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나 열 나는 거 같지 않아? 만져봐.”유진은 순간 당황했다. 은정은 머리를 쿠션에 기댄 채, 유진의 손을 잡아 자기 이마 위에 올렸다.뜨겁게 달아오른 열기에 유진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그녀는 손바닥 전체를 이마에 붙이며 다시 확인했다. 정말 점점 더 뜨거웠다.“아픈 거예요?”유진이 놀란 목소리로 묻자, 은정은 유진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답했다.“그런 것 같아.”“어디가 더 아파요?”유진이 걱정스레 물었다.“머리가 아파. 그리고...”은정은 유진의 손을 내려 가슴팍 위에 얹었다.“여기도 많이 아파.”셔츠 너머로 느껴지는 단단한 근육과 거친 심장 박동. 쿵, 쿵, 쿵, 그 격한 두근거림이 고스란히 유진의 손바닥에 전해졌다.유진은 놀라 손을 황급히 빼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구은정.”은정은 깊게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내 이름 그렇게 불러주는 거, 제일 좋아.”속으로는 바랐다. 언젠가 유진이 다시 자신을 사장님이라 부르는 날이 오기를.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일어서서 단호하게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