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을 쌓고 있던 장시원의 손은 요요의 대답에 순간 멈추었다. 그러다 한참 후에야 장시원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네 외할머니의 말이 틀렸어. 네 엄마는 그 아저씨와 함께 있게 되면 결코 행복해지지 않을 거야.”“왜요?”요요가 듣더니 바로 똘망똘망한 두 눈으로 장시원을 바라보며 물었다.이에 장시원이 당연하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둘이 맞지 않으니까.”너무 어른들 세계의 일이라 알아들을 수 없었던 요요는 잠깐 망연한 표정을 지고 있다가 다시 물었다.“그럼 아저씨는 우리 엄마랑 어울려요?”“아니. 네 엄마가 아저씨를 좋아하지 않거든.”말투는 여전히 덤덤했지만 그 말을 하고 있는 장시원의 눈빛에는 쓸쓸함이 섞여 있었다.“엄마한테 좀 잘해 줘봐요, 그럼 엄마가 분명 아저씨를 좋아하게 될 거예요.”“쳇, 됐거든요? 아저씨는 요요만 있으면 돼.”“걱정 마요, 아저씨. 제가 엄마 앞에서 좋은 말을 많이 해 줄게요.”요요가 어른 마냥 장시원의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했고, 그러는 요요의 모습에 장시원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뭐라고 할 건데?”요요가 눈동자를 한번 돌리더니, 손에 든 우유 떡을 장시원에게 보여주며 말했다.“엄마가 아저씨를 좋아하게 되면, 엄마도 아저씨가 사주는 우유 떡을 먹을 수 있다고요.”“하하하!”동글동글한 우유 떡을 고사리 같은 손에 집어 들고 진지하게 대답하는 요요의 모습이 너무 깜찍하여 장시원은 결국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똑똑똑-그런데 이때 밖에서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문을 열고 들어선 청아는 단번에 카펫에 앉아 요요가 한 말 때문에 호탕하게 웃고 있는 장시원을 발견했다.그리고 그 순간, 청아는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저렇게 행복하게 웃는 모습, 오랜만에 봐.’하지만 청아를 본 순간, 장시원은 다시 웃음을 거두었다.“엄마! 아저씨가 그러는데, 엄마가 아저씨를 좋아하게 되면 엄마에게도 우유 떡을 사준대요!”“…….”잠깐 멍해 있던 청아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 장시원이 화를 내기도
찌개가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자 청아는 얼른 옥수수를 작은 토막으로 잘라 냄비에 넣었다. 그러다 무심결에 고개를 돌려 장시원을 쳐다보니 그는 아직도 그 줄기상추를 씻고 있었다, 모든 줄기 틈새까지 빠짐없이 깨끗하게.이에 청아가 바삐 입을 열어 장시원을 제지했다.“됐습니다!”장시원은 그제야 줄기상추를 꺼내 좌우를 한번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청아에게 물었다.“껍질은 뭘로 벗기는데?”청아는 껍질 벗기는 칼로 한번 시범을 보였고, 장시원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청아가 배워준 대로 천천히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분명 잘 벗기고 있는데 청아는 왠지 불안 불안하여 장시원의 손만 주시하고 있었다, 자칫 했다간 손을 다치기라도 할까 봐.다행히도 장시원이 잡일을 해 본 적이 없는 도련님 치고는 머리가 좋아서 그런지 동작이 점점 능숙해졌다.그러나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청아는 다른 일을 하면서도 수시로 고개를 돌려 장시원 쪽 상황을 살폈다.“껍질 벗기는 칼이 예뻐, 아니면 내 손이 예뻐?”청아의 걱정 어린 눈빛에 손등까지 따끔해진 장시원은 결국 참지 못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청아를 행해 물었다.“네?”너무 뜬금없는 물음이라 청아는 순간 멍해졌다. 그러다 안절부절하게 상사의 의도를 한참 분석하다 조심스레 대답했다.“당연히 대표님의 손이 더 예쁘죠?”“그걸 물은게 아니잖아. 왜 자꾸 돌아보냐고.”청아가 듣더니 묵묵히 고개를 돌려 다시 자신의 일에 전념했다.‘관심해 줘도 이 태도야!’‘다시는 말 안 해!’얼굴에 억울함과 노여움이 너무 뚜렷하게 섞여 있어 장시원은 무시할래야 무시할 수가 없었다.하지만 장시원도 청아한테 쌓인 게 많았는지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런 표정을 드러낸다고 해서 오늘 일이 없어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무슨 일을요?”‘껍질 벗기는 칼과 비교했던 일?’장시원의 말투는 여전히 차가웠다.“그 의사와 맞선을 본 일.”“저희 선 안 봤어요!”“너희들 오늘 맞선을 봤는지 안봤는지에 대해서는 알고 싶
“한번 시도해봐도 될 것 같은데?”장시원의 대답에 요요가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눈알만 팽글팽글 돌리고 있었다.한 어른과 어린아이가 나란히 의자에 앉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은 눈이 부실 정도로 조화롭기만 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청아의 마음속은 착잡하기만 했다.‘장시원이 만약 요요가 자신의 아이라는 걸 알게 되면 아마 엄청 기뻐하겠지?’‘하지만 그 사실을 장시원에게 알려주게 되면 난 요요를 잃게 될 거야.’‘그러니 난 반드시 이 비밀을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영원히 꺼내서는 안 돼.’……얼마 지나지 않아 반찬은 다 차려졌고, 세 사람은 처음으로 함께 한 상에 모여 앉아 밥을 먹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런 이상한 느낌도 없어 보이는 장시원과 요요와는 달리 청아는 아무리 해도 진정할 수가 없었다.다행히도 장시원은 밥 먹으면서 요요만 돌보느라 청아를 상대할 시간이 없었고, 점심시간은 그런대로 조용하게 끝났다.그러다 오후 3시쯤이 되어 팩스를 받은 청아는 장시원에게 가져다주려고 다시 대표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어느새 몸에 장시원의 양복 외투를 걸친 채 장시원의 품에 기대어 잠든 요요를 발견하고 청아가 놀라 급히 요요를 불렀다.“요요야.”“쉿! 자게 놔둬, 깨우지 말고.”장시원은 청아가 요요를 깨우기라도 할까 봐 손가락을 입술 쪽에 대고 조용히 하라고 눈치를 주었지만 청아는 여전히 미안해하며 말했다.“오래 안고 있으면 팔이 많이 힘들 겁니다, 제가 그냥 요요를 바깥에 있는 소파에 눕힐 게요.”“괜찮아, 깨우지 마. 팩스는 여기에 내려놓고, 가서 일 봐.”“네.”장시원의 말투가 너무 단호하여 청아는 결국 아무 말을 못하고 팩스만 탁자 위에 내려놓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그러다 문어귀에 도착했을 때쯤 청아는 여전히 시름이 놓이지 않았는지 다시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았다.장시원은 어느새 등을 소파에 기댄 채 왼팔로는 요요를 안고 있었고, 오른손으로는 팩스를 들고 열심이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또 가끔씩 고개를 숙
장시원이 차가운 눈빛으로 청아를 쳐다보며 덤덤하게 물었다.“뭐가 그렇게 두려운 건데?”“두, 두렵긴요! 저는 단지 아이를 데리고 회사로 가는 게 규칙에 어긋나는 것 같아서 그런 것뿐입니다.”‘거짓말.’장시원은 차갑고 예리한 눈빛으로 청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결국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요요랑 작별인사를 했다.“안녕, 요요야. 아저씨 생각하고.”“네! 아저씨도 요요와 엄마 생각 많이 하고요!”청아는 계속 차안에 앉아있었다간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아 얼른 요요를 안고 차에서 내렸다.그러고는 장시원의 차가 시선속에서 사라진 후에야 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갔다.장시원이 곁에 없으니까 청아는 확실히 긴장이 많이 풀린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무엇이 생각났는지 웃으며 요요를 향해 말했다.“요요야, 장 아저씨는 엄마의 상사야. 그러니까 아저씨 앞에서 그렇게 아무 말이나 해서는 안 돼. 아저씨를 너무 귀찮게 해서도 안 되고, 아저씨가 싫어할 수도 있으니까.”“하지만 아저씨는 요요의 친구인걸요?”“요요야,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함부로 말 해서는 안 돼.”“네…….”갑자기 기운 없이 청아의 어깨에 엎드려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는 요요의 모습에 청아가 웃으며 다시 물었다.“저녁에 뭘 먹고 싶어? 엄마가 해줄게.”분명 맛있는 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두 눈이 반짝반짝거렸던 요요인데 오늘따라 흥미가 없어 보였다.“엄마, 요요는 아저씨가 보고 싶어요. 아저씨를 우리 집으로 불러와 같이 저녁 먹으면 안 돼요?”“아저씨는 바빠!”“네…….”그렇게 청아가 요요를 안고 집에 들어서는데 마침 허홍연의 전화가 걸려왔다.허홍연의 말투에는 기쁨이 배어 있었다.[청아야, 하 선생과는 어떻게 되었어?]“저 하 선생님과 똑똑히 말했어요,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가능성도 없을 거라고.”[청아야! 너 왜 이렇게 고집이 센 거니? 하 선생의 조건이 얼마나 좋은데, 그것도 주동적으로 너를 쫓는 건데, 대체 왜 거절하는 거야? 너 그러다 앞으로 하
줄곧 소리 없이 옆에 앉아 청아의 표정을 관찰하고 있던 요요가 갑자기 청아의 무릎 위로 기어올라 청아의 목을 껴안고 다소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엄마, 외할머니도 엄마한테 화냈어요?”청아가 요요를 꼭 껴안고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엄마는 두렵지 않아.”“엄마, 우리 앞으로 다시는 외할머니 집에 가지 마요.”요요는 청아의 슬픔을 느꼈는지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 더 진지했고, 그러는 요요의 말투에 순간 목이 메어 오른 청아는 눈물을 꾹 참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뭐야, 왜 그래?”그런데 이때 마침 장 주머니를 들고 집으로 들어선 소희는 단번에 소파에 앉아 부둥켜안고 있는 두 모녀를 발견하고 급히 물었다.“소희! 외할머니가 엄마를 괴롭혔어요!”요요가 소희의 물음에 바로 고개를 들어 소리쳤다.이에 소희가 의아해하며 청아를 바라보았고, 청아가 아무 말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자 소희가 바로 청아의 곁으로 다가갔다.“너 오늘 그 집에 갔어?”“응.”청아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오늘에 일어난 일을 대충 말해 주었다.그리고 소희는 조용히 옆에 앉아 청아의 말에 귀를 귀울이다 청아의 말이 끝난 후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럼 넌? 그 하온이라는 의사를 좋아해?”“아니. 너도 내 상황을 잘 알고 있잖아, 난 남자친구를 찾아 결혼할 수 없어.”“네 아버지의 일을 떠나서 그 사람이 만약 요요를 받아들이겠다면? 그래도 고민해보지 않을 거야?”“응.”청아의 태도는 여전히 단호했다. 그녀는 요요의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을 꼭 쥐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결혼하게 되면 난 또 그 사람과 아이를 낳아야 할 거잖아, 그럼 그때 가서 요요는 어떻게 해?”“그래, 이미 결정이 났으면 더는 고민하지 마. 아줌마가 비록 어른이시긴 하지만, 너도 그렇게 매사에 타협할 필요 없어, 넌 그들을 위해 충분히 많은 걸 했으니까.”“응! 나도 알아. 그래서 난 절대 타협하지 않을 거야!”“그럼 기분 풀고! 내가 방금 가재랑 요요가 제일 좋아
“곧 도착할 거야.”소희가 웃으며 대답하고는 또 고개를 돌려 요요한테 물었다.“요요야, 곧 있으면 연희 이모가 네 선물을 들고 온다는데, 기뻐?”요요가 듣더니 즉시 흥분해하며 입구로 달려갔다.“연희 이모!”“아직 안 왔어, 요요야.”청아가 보더니 어처구니없어 웃으며 말했다.그리고 정확히 30분 후, 한 무더기의 물건을 들고 청아네 집에 들어선 성연희는 신발을 벗기도 전에 요요부터 찾았다.“요요는? 내 새끼 요요는?”요요가 자신의 이름을 듣더니 바로 부엌에서 달아나왔다.“연희 이모!”“어이구! 우리 요요! 보고 싶어 죽을 뻔했네!”성연희는 물건을 내려놓고 바로 요요를 안고 두 바퀴 돌았다.이에 요요가 기뻐하며 깔깔 웃었다.마침 접시를 들고 주방에서 나온 소희가 보더니 덩달아 한번 웃고는 성연희를 향해 말했다.“먼저 손부터 씻어, 밥 먹어야지.”“알았어. 일단 요요 선물부터 꺼내고.”성연희가 손을 씻고 돌아와서는 요요의 선물부터 찾아 꺼냈다바비 인형, 오르골, 여러가지 예쁜 스커트…….“게임 테이블도 있는데, 그건 너무 커서 택배로 보냈어. 요 며칠 사이에 도착할 거야.”성연희가 웃으며 오르골을 열어 요요에게 건네주었다.“요요야, 마음에 들어?”은은한 음악소리가 순간 오르골에서 울려 퍼졌고, 아름다운 서커스단 마차 안에는 작은 공주가 유니콘의 등에 올라앉아 음악에 따라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그리고 그걸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요요의 깨끗한 두 눈에는 흥분된 빛이 가득했다.“네! 마음에 들어요!”“너무 많이 샀어, 연희야. 이렇게 많은 스커트를 요요가 언제 다 입는다고 그래.”끊임없이 주머니 속에서 요요의 선물을 꺼내고 있는 성연희의 모습에 청아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고, 이에 성연희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예쁘고 깜찍한 게 있으면 요요에게 사주고 싶은 걸 어떻게 해? 나도 나 자신을 공제할 수가 없어.”그러면서 성연희는 또 상자 하나를 꺼내 청아에게 건네주었다.“자, 이건 네 선물.”“뭔데?”청아가 의아
성연희는 이번에 출장 가서 엄청 중요한 거래처와 성공적으로 거래를 성사하게 되었다고 유난히 기뻐했다. 이에 소희와 청아도 진심으로 같이 기뻐해주고 술을 마시며 별의별 이야기를 나눴다.그러다가도 옆에서 조용히 밥을 먹고 있던 요요가 뜬금없이 세 사람의 대화에 한마디씩 끼어들면 세 사람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그렇게 밤은 점점 무르익어 갔고, 세 사람의 전쟁터는 어느새 주방에서 거실로 옮겨졌다. 연희는 계속 술을 마시고 있었고, 소희는 아이스크림, 청아는 감자칩을 먹고 있었다.하지만 먹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대화는 끊길 줄 몰랐다, 요요가 버티지 못하고 청아의 품속에서 잠들었는데도 세 사람은 자는 시간이 아까웠는지 늦은 밤이 되도록 계속 이야기를 나눌 만큼.그러다 술에 많이 취한 성연희는 결국 상에 엎드려 잠들었고, 소희는 잠든 성연희를 청아네 작은 침실까지 업고 가서 눕히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방으로 돌아온 후, 소희는 베란다의 소파에 앉아 새벽의 강성을 바라보았다.소파 옆에는 플로어 스탠드만 켜고 있었고, 어슴푸레한 불빛 아래 줄곧 맑기만 했던 소희의 눈동자에는 약간의 황홀함이 묻어 있었다.그렇게 한참 새벽의 바람을 쐬어도 잠이 오지 않자 소희는 휴대폰을 꺼내 통신기록을 뒤졌다.임구택이 소희에게 건 마지막 한통의 전화는 8일전으로 멈춰 있었다.청원에서 돌아와, 소희가 디자인 원고를 마저 그려야 한다며 임구택의 저녁 데이트를 거절했던 날.그리고 그날 소희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임구택이 갑자기 전화가 와서는 한마디만 했다.[소희야, 다음에 헤어질 때 한 번만 나 좀 돌아봐 줄래?]꽤 오래 전의 기억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소희는 여전히 그때 당시 임구택의 부드러운 말투와 목소리가 선명하게 떠올랐다.그때 소희는 잠깐 멍해 있다가 알겠다고 아주 간결한 대답을 내뱉었지만, 임구택은 그것 마저도 엄청 만족스러웠는지 웃으며 전화를 끊었었다.하지만 심명이 갑자기 나타나 두 사람 사이에 폭탄을 터뜨려 놓고 가는 바람에 두 사람 사이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장시원이 듣더니 궁금해하며 물었다.하지만 임구택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술만 따라 마실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날 소희와 심명이 안고 있던 장면을 생각하기만 하면 임구택은 당장이라도 가서 심명을 죽이고 싶을 지경이었다.“소희한테 전화 안 해?”임구택이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표정으로도 일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던 장시원은 더는 캐묻지 않고 휴대폰을 그의 앞으로 밀어주며 물었다.그러나 임구택은 움직이지 않았다.“이 한밤중에 급한 일이라도 생겼으면 어쩌려고?”“…….”맞는 말이긴 했다.임구택은 바로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휴대폰을 집어 들고 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거신 전화는 전원이 꺼져 있어…….]‘전원이 꺼져 있다고?’임구택이 눈살을 찌푸리고 다시 한번 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여전히 전원이 꺼져 있는 상태였다.불길한 예감에 순간 안색이 어두워진 임구택은 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양복 외투를 잡고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이에 장시원이 황급히 떠나는 임구택의 뒷모습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무 조급해하지는 마, 소희가 네 번호를 차단했을 수도 있으니까.”“…….”소희의 집으로 향하는 길에 임구택은 시름이 놓이지 않아 또 소희에게 전화를 두 번이나 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원이 꺼진 상태였다.임구택은 페달을 끝까지 밟아 제일 빠른 속도로 경원주택단지에 도착했다. 그러다 다시 소희에게 전화를 걸어보려고 휴대폰을 꺼내는데 문득 소희 침실의 불이 켜져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뭐야, 집에 있었어?’‘그런데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지?’‘배터리가 다 떨어진 거야, 아니면 정말로 나를 차단한 거야?’‘하지만 집에 있는데 휴대폰 배터리가 다 떨어질 리는 없는 거잖아? 그럼 정말로 나를 차단했다는 거네?’임구택의 얼굴색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그러다 몇 분 후, 소희 침실의 불은 꺼졌고, 임구택은 그걸로 소희가 집에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하지만 임구택은 날이 거의 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