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점심시간이 되어 도시락 가지러 가니 직원이 바로 보온 상자에서 도시락 하나를 꺼내 소희에게 건네주었다."소희 씨, 이게 소희 씨 거예요."비록 도시락 통이 전부 일회용이라지만 소희 건 3층으로 쌓인 도시락 통으로 딱 봐도 일반 도시락보다 훨씬 고급졌다.옆에 있던 이정남이 보더니 웃으며 물었다."이건 이 감독님이 주는 특별대우인 거야, 아니면 누군가가 특별히 너를 챙겨주는 거야?"이에 소희도 어리둥절하여 직원에게 왜 그녀의 도시락만 다른 사람과 다르냐고 묻자 직원이 웃으며 위에서 시킨 대로 나눠준 것일 뿐, 아무것도 모른다고 대답했다.소희는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도시락을 들고 밥 먹으러 갔다.그리고 도시락 뚜껑을 열자마자 이정남이 또 경탄했다.도시락의 제일 위층에는 연어, 쇠고기, 그리고 두 가지 야채가 담겨 있었고, 그다음 층에는 밥과 디저트, 맨 아래층에는 닭볶음탕이 담겨 있었다.이정남이 놀라서 말했다."우와! 케이스가 너무 남다른 거 아니야?"소희도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설마 정말 이 감독님이 준 특별대우인 건가?’‘내가 분명 감독님의 부탁을 거절했는데 이렇게 잘해준다고?’"일단 먹죠."계속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올 것 같아 소희는 아예 음식을 꺼내 중간에 놓았다.이정남도 사양하지 않고 쇠고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러더니 순간 눈빛이 밝아져 말했다."이건 맹성의 쇠고기잖아! 틀림없어.""음식 방면에 있어 정남 씨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죠."소희가 웃으며 말했다.그러자 이정남이 바로 도도한 태도를 드러냈다."그럼!"그렇게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을 먹기 시작했고, 소희는 속으로 여전히 생각하고 있었다.‘대체 누가 날 이 정도로 챙겨준 거지?’물론 소희는 그 모든 게 허진의 전화 한 통 때문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오전에 이 감독과 통화하면서 다시 촬영을 재개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허진은 임구택이 줄곧 이 감독의 작품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걸 알고 바로 임구택에게 전화 걸어 보고
마민영은 매니저, 메이크업 아티스트, 그리고 세 명의 조수를 데리고 왔다.매니저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웃으며 오래전에 이미 출연하기로 정해놓은 스케줄이 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출연 거부 하기가 뭐해서 부득이하게 이제야 오게 되었다고 설명했고, 이 감독은 속으로 많이 화가 났지만 결국 괜찮다고 말했다.소희는 마민영이 있는 분장실로 찾아가 오후 첫 신을 찍을 때 입을 옷을 골라주었다. 마민영은 잠에서 덜 깬 모습으로 하품을 하면서 소희가 말해주고 있는 스토리의 줄거리를 들었다.그러다 갑자기 짜증이 섞인 말투로 소희의 말허리를 잘랐다."졸려 죽겠네 진짜. 어제 게임하느라 밤을 새웠는데 왜 점심도 안 되어 깨웠어요! 이렇게 졸린데 뭔 촬영을 하라고!"매니저가 듣더니 얼른 마민영에게 입을 다물라고 눈짓을 했다.이에 소희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보지 못한 척 고른 옷을 조수 미나에게 건네주며 마민영에게 갈아입혀라고 했다.하지만 마민영이 옷을 한 번 쳐다보더니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뭐야, 옷이 왜 이렇게 구려? 난 안 입어. 당신 패션 디자이너 맞아? 보는 눈이 왜 이래?"미나가 듣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소희를 바라보다.이에 소희는 얼굴색 한 번 변하지 않고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럼 민영 씨 쪽에서 직접 준비해 온 복장이 있나요? 민영 씨가 선호하는 스타일이 따로 있으시다면 그 스타일에 맞춰 다시 상의해도 돼요."마민영의 조수가 마민영의 눈짓에 바로 이동 옷걸이를 밀어와 그들이 준비한 옷을 소희에게 보여주었다.옷걸이에 걸린 옷들은 전부 이름 있는 브랜드의 것들로 예복도 있었고, 심지어 거의 다 단번에 브랜드를 알아차릴 수 있는 클래식한 디자인들이었다.그래서 소희는 부득불 다시 마민영에게 설명했다."민영 씨, 이번 작품에서 민영 씨가 맡게 될 역할은 별장 가정부의 딸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주인집에서 생활하면서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다 나중에 노력과 견지로 모든 사람의 존중을 받아내고 창업하여 성공하게 되죠. 이야기의 뒷부분에 이르러서야
나가면서 소희는 마침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와 마주치게 되었다. 마른 몸매에 큰 키를 가진 남자는 잘생겼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괜찮은 편이었다.동시에 남자도 맞은편에서 걸어오며 소희의 얼굴을 아래우로 훑어보고는 하찮다는 눈빛으로 차갑게 한 번 웃고는 고개를 돌려 휴게실로 들어갔다.그러다 마민영을 보자마자 지훈은 미소를 지었다."우리 동생, 축하해. 제일 잘 나가는 감독과 합작하게 되었으니 이번에 반드시 대박 날 거야.""하지만 오자마자 나에게 이런 낡아빠진 옷을 입으라고 주는 거 있지? 너무 짜증나!"마민영의 투정에 지훈이 의자에 앉아 옷들을 한 번 훑어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그렇네. 하지만 우리 동생의 기질이 뛰어났으니 아무리 평범한 옷이라도 몸에 걸치기만 하면 바로 고급스러워 보일 거야."마민영은 그제야 얼굴에 웃음을 띠고 지훈에게 물었다."또 이모의 부탁으로 왔어?""네가 강성에서 적응하지 못할까 봐 엄마가 직접 해성에만 있는 떡을 만들었어."지훈이 말하면서 자신의 비서에게 떡을 담은 통을 마민영에게 건네주라고 했다."역시 이모밖에 없다니까."마민영이 웃으며 떡통을 건네받자 지훈이 바로 휴대폰을 꺼냈다."움직이지 마, 사진 찍어 엄마에게 보내주게. 안 그러면 또 나를 의심할 거야."이에 마민영이 포즈까지 취하고는 당부했다."예쁘게 찍어줘.""우리 동생이 이렇게 타고난 미모를 가지고 있는데 안 예쁠 리가 있겠어?"지훈이 무심코 아첨하는 말을 한마디 내던진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럼 떡도 전달해 주고, 네 얼굴도 봤으니 난 이만 가볼게."마민영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잘 가. 나 대신 이모한테도 안부를 전해주고.""알았어."촬영 현장에서 나와 차에 올라탄 지훈은 바로 마민영의 사진을 한마디의 글과 함께 개인 계정에 올렸다.[사촌 여동생이 새 제작팀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새 드라마 대박나셈!]지훈도 강성에서 꽤나 이름 있는 재벌 2세라 매번 개인 계정에 사진을 올리면 엄청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다.그리고
반시간 후, 두 사람은 레스토랑에 도착하게 되었고, 소동은 꽃을 한쪽에 내려놓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사실 저 지훈 씨한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지훈이 소동에게 와인을 따라주며 웃었다."우리 사이에 뭔 부탁이야. 할 말이 있으면 그냥 해.""저 작업실을 차린 건 지훈 씨도 알고 있잖아요. 하지만 요즘 많이 힘들어 우리도 겨우 유지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지훈 씨 사촌여동생분한테 부탁해서 저를 디자이너로 그 제작팀에 꽂아달라고 하면 안 될까요?"“그랬구나."지훈은 사실 진작 소동이 부탁하고 싶어 하는 일을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놀란 척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난감한 표정을 드러냈다."그렇지만 그들 제작진에 이미 패션 디자이너가 있는 것 같던데?""민영 씨처럼 잘 나가는 배우한테 단독으로 디자이너를 붙여 주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민영이 오늘 처음 그 제작팀에 합류한 거라 바로 개인 디자이너를 요구하는 건 말이 안 되겠지만......"지훈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천천히 소동의 손을 잡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네가 나한테 부탁하는 일이니까, 내가 반드시 도울게."소동은 손을 빼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더욱 달달하게 웃었다."정말 고마워요!""우리 사이에 고맙긴."지훈의 그윽한 눈빛에 순간 소름이 돋은 소동은 당장이라도 지훈의 손을 뿌리치고 싶었지만 지훈이 또 나중에 다른 일로 자신을 협박할까 봐 급히 웃으며 말했다."그럼 지금 바로 민영 씨에게 전화해서 물어봐주실 수 있을까요?""그래. 민영이 내 말을 엄청 잘 따라."지훈이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손을 거두고 휴대폰을 꺼내 마민영에게 전화를 걸었다.소동은 그제야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책상 위에 놓은 손을 다리 위에 올렸다.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연결되었고, 지훈이 바로 입을 열었다."민영아, 너희 제작팀의 패션 디자이너 어때?"[말도 마, 너무 구려! 의상도 싸구려 구식만 찾아와서는 인물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서 그
소동은 당연히 거절하고 싶었지만 지훈이 화를 내며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까 봐 너무 두려웠다.그녀의 작업실은 이미 오랫동안 수입이 없는 상태에 처했고, 진연이 또 언제 경제적인 지원을 끊을지 모르는 상황이니 그녀는 반드시 스스로 방법을 찾아 작업실을 계속 꾸려나가야 했다.그래서 한참 생각한 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사실 지훈의 차에 다시 올라탄 그때부터 소동은 오늘 저녁 무조건 어느 정도 헌신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룸 안에서 지훈이 키스하려는 순간 소동은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지훈을 거절했다.진석 같은 눈부신 남자를 사랑한 적이 있으니 지훈 같은 평범한 남자가 눈에 들 리가 없었다.그렇게 받아주는 척하며 또 밀어내는 과정에서 지훈은 어느 정도 이득을 보게 되었고, 진심으로 소동을 사랑하고 있었던 지훈은 너무 강요하지 않았다.그러다 다 놀고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12시가 되었다.진연이 아직 자지 않고 거실에서 자신을 기다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소동은 놀라 급히 옷으로 목의 흔적을 가렸다.다행히도 진연이 너무 졸렸는지 자세히 보지도 않고 물었다."왜 이렇게 늦게 돌아온 거야?""제작진과 업무 이야기를 하느라 늦었어요."진연이 듣더니 즉시 정신을 차렸다."제작진, 어느 제작진?""지금 인기가 엄청 많은 이적 감독님의 새 드라마 있잖아요. 그분이 이번에 새로 뽑은 여주가 제작팀에서 안배해 준 디자이너의 안목이 별로라면서 개인 디자이너를 따로 뽑겠다고 했대요. 그래서 저를 찾아왔고요.""바로 얼마 전에 자살한 배우 이현이 있었던 그 제작진?""네!""하지만 내 기억으로는 그 제작진의 디자이너가 소희였던 것 같은데?""그럴걸요?"소동이 확실하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이에 진연이 다소 놀라워하며 다시 물었다."새로 뽑은 여주인공이 누군데? 정말 너를 개인 디자이너로 쓰겠대?""마민영이라는 배우요."진연이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알아! ‘반짝이는 마음’에서 부잣집 아가씨 역할을 했었잖아. 엄청 예쁘
다음날 아침, 일찍 차를 몰고 제작팀에 도착한 소동은 스태프에게 자신이 새로 온 마민영의 개인 디자이너라고 소개했고, 스태프는 바로 소동을 안으로 안내했다.하지만 아직 마민영이 출근하기 전이라 소동은 홀로 분장실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그러다 다들 분분히 각자의 업무를 시작하자 조용하게 옆에 앉아 마민영을 기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소희가 조수를 데리고 들어와서는 배우들에게 오늘의 의상을 안배하기 시작했다.분장을 하고 있던 배우들은 소희를 보자마자 잇달아 소희에게 인사를 했다. 다시 촬영을 시작한 이후로 다들 왠지 소희를 많이 존중하게 되었다.이미 2년 동안 소희를 보지 못한 소동은 순간 지난날의 원한이 밀려와 천천히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면서 잠시 후 소희와 만나게 되면 어떻게 미소 지으며 그녀에게 인사해야 할지 생각했다.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소희는 소동 쪽을 보지도 않았고, 의상을 전부 안배한 후 바로 나갔다.이에 소동이 눈알을 한 번 돌리더니 바로 일어나 복도까지 따라 나가서는 소희를 불렀다."언니, 오랜만이야!"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소희가 발길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소동을 알아보고는 의아해서 물었다."너 왜 여기에 있어?""아~ 나 마민영 씨가 특별히 초대한 개인 디자이너야. 앞으로 마민영 씨의 드라마 의상은 모두 내가 직접 코디할 거고."소동의 눈에는 득의양양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 그러면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언니가 해야 할 일인데 내가 빼앗아서 미안해.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민영 씨가 그러는데, 언니가 코디한 의상이 너무 별로래. 그래서 나더러 꼭 와서 도와달라고 어찌나 부탁을 하든지. 나도 거절하기 뭐해서 온 거야."소희가 담담하게 소동을 한참 쳐다보더니 갑자기 웃었다."잘됐네."덤덤하게 한마디만 내뱉고 떠난 소희의 뒷모습을 보며 소동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러다 곧 또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소희가 지금 분명 화 나 미칠 지경인데 일부러 참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극 중의 여
마민영이 다시 한번 소동을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따라와."마민영에게는 개인 휴게실이 따로 있었다. 휴게실 분장대 맞은편 캐비닛에는 어제 소희가 보내온 여주의 의상들이 담겨 있었고, 물론 마민영이 마음에 들어 하는 의상은 한 벌도 없었다.그래서 오늘 그녀는 특별히 자신이 평소에 자주 입던 옷들로 한 상자 더 가지고 왔다."민영 씨 정말 보는 눈이 있네요."소동이 그중의 치마 한 벌을 들고 말했다."저도 이 치마를 엄청 좋아하는데, 제가 입으면 핏이 안 살더라고요."200만 원에 달하는 치마를 들고 있는 소동을 마민영이 한 번 쳐다보고는 궁금해서 물었다."부모님은 뭐 하시는 분이지?""그냥 이런저런 장사하고 있어요. 하지만 회사 규모가 아무리 커도 저희 아버지 것이니까요, 전 아버지의 도움이 없이 혼자서 성공하고 싶어요."마민영이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돈 많은 집 아가씨였네. 그래, 지훈처럼 세력 있는 가문의 도련님이 평범한 가정 출신인 여인을 좋아할 리가 없지.’"지훈이 오빠가 소동 씨를 좋아하지?"마민영의 물음에 소동은 얼굴이 빨개져 바삐 해석했다."저와 지훈 씨는 친구일 뿐입니다.""남녀 사이에 뭔 친구야? 연인이 아니면 곧 연인이 될 사이만 있는 거 아닌가?"마민영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는 더 이상 둘의 사이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나 지금 메이크업 받으러 가야 하니까, 옷이나 골라 놔.""네!"조수한테서 마민영이 찍을 씬을 확인한 소동은 바로 세련된 티셔츠와 같은 브랜드의 청치마를 준비했다.그리고 메이크업을 받고 소동이 준비한 옷까지 갈아입은 마민영은 순간 청춘의 느낌이 물씬한 소녀로 변했다.마민영이 아주 만족스러웠는지 웃으며 칭찬했다."괜찮네. 어제 소희가 고른 것보다 훨씬 예뻐. 안목 인정.""이런 브랜드에서 만들어낸 옷들만이 민영 씨의 완벽한 몸매를 돋보이게 할 수 있거든요."마민영이 듣더니 눈썹을 올린 채 냉소했다."소희는 딱 봐도 가난한 집 애 같았어, 품위가 뭔지 전혀 몰라.
5분도 안 되어 소희가 촬영장에 나타났다."이 감독님, 저를 찾으셨어요?"소희를 본 순간 이 감독의 태도가 많이 누그러졌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오늘 민영 씨에게 코디한 옷이 씬이랑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안 들어?"소희가 모니터를 한 번 보더니 바로 고개를 저었다."이건 제가 코디한 게 아니라 민영 씨가 따로 청한 개인 디자이너 분이 코디한 겁니다.""뭐? 그걸 왜 아무도 나한테 말 안 했어?"이 감독이 눈살을 찌푸린 채 조감독에게 분부했다."마민영 씨의 개인 디자이너도 호출해!"이 감독의 호출에 소동이 곧 나타나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감독님, 부르셨어요?"이 감독이 눈썹을 올리며 되물었다."오늘 의상이 그쪽이 코디한 건가?""네!"소동의 순진한 태도에 이 감독의 얼굴색이 순간 굳어졌다."대본 제대로 보기나 했어? 마민영 씨가 맡은 역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는?"소동이 순간 멍해졌다. 대본을 보기는커녕 조수에게 대충 내용만 물었으니까."민영 씨가 맡은 역할은 별장 가정부의 딸이야. 평소에 엄청 절약하면서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간고하게 사는 역할인데, 감히 브랜드를 입혀? 이 드라마가 이대로 방영되었다간 나의 감독길이 이대로 끝난다는 거 알아 몰라!"이 감독이 차가운 얼굴로 소동을 향해 소리쳤다.그리고 처음 이렇게 누군가에게 혼나 보는 소동은 얼굴이 붉어져 바삐 해석했다."저, 저 아직 대본을 자세히 보지 못했습니다.""대본도 안 읽어보고 뭔 제작팀 디자이너를 해!"화가 제대로 치밀어 오른 이 감독은 인정사정없이 계속 호통을 쳤다."너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아마추어가 감히 내 제작팀으로 기어들어 와?"이때 마민영이 다가와 바삐 물었다."왜 그래요?"소동이 마민영을 보더니 바로 눈시울을 붉히며 울먹였다."감독님께서 제가 코디해 준 의상이 이번 씬이랑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전 아주 괜찮다고 생각하는데요?"마민영의 대답에 이 감독이 화를 내며 말했다."민영 씨
다음 날.아침 열 시도 채 되기 전에 조백림이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밤 임구택과 소희의 싱글 파티를 넘버 나인에서 열어!]장시원이 답했다.[확실히 싱글 파티라고 부를 수 있어? 구택에게 가서 물어봐, 싱글이라고 말할 면목이 있냐고.]그러자 구택이 쿨하게 답했다.[자녀까지 둔 어떤 사람은 여전히 싱글이라고 떠들고 다니던데, 내가 뭐 어때서.][내가 언제 그런 소리 했다고! 모함 그만하고 메시지 빨리 취소해!]이때 청아가 등장했다.[임구택 사장님, 저랑 잠시 통화 가능할까요?][물론이죠. 그리고 소희도 바로 옆에 있어. 내 사랑 앞에서 전부 털어놓고 진실만 말할게요.]시원이 분노 이모티콘을 보내며 말했다.[임구택, 내가 신랑 들러리인 거 잊었어? 이렇게 날 곤란하게 해도 돼?]구택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왜 그렇게 초조해?]시원은 더 이상 답이 없었다. 아마 서둘러 청아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해명하고 있는 듯했다.이때 성연희 등 여러 사람이 동시에 메시지를 보냈다.[백림, 파티 나눠서 하는 게 어때? 임구택 사장님은 당신들이 맡고, 우리 소희는 내가 맡을게!]연희의 말에 백림이 말했다.[나눠서 하는 건 괜찮지만 많은 사람이 가족을 데려오겠다고 신청할걸.]시원이 전화를 마치고 돌아와서 말했다.[연희 씨, 저희 청아도 가족 동반 신청할게요!]이에 명성도 거들었다.[연희도 가족 동반 신청할게요.][나도 소희 가족으로 동반 신청.][우리 집 간미연도 가족 동반 신청이요!]백림은 계속해서 유정을 태그하며 말했다.[유정, 이제 네 차례야!]유정은 장난스럽게 응수했다.[다들 남자가 신청하길래 나도 나서야 하는 거야?][우린 각별한 사이잖아. 네가 날 제일 사랑하니까 당연히 너도 신청해야지!]유정은 그에게 발차기 이모티콘을 날렸다. 모두가 단체 채팅방에서 떠들썩하게 농담을 주고받다가 저녁 계획을 확정하고 각자 할 일을 하러 떠났다.구택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돌아서서 소희를 끌어안고 그녀의 옆 얼굴에 키스를
소희는 남궁민을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나 임구택을 정말 사랑해. 전에 말했잖아, 우리 이미 결혼한 상태야. 이번 결혼식은 그저 형식일 뿐이야.”남궁민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럼...”소희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심명이 장난친 거야.”남궁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심명에게 짧게 눈길을 보내며 깨달은 듯 얼굴을 굳혔다. 화가 나고 민망한 듯이 다시 한번 심명을 노려봤다.십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심명은 남궁민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눈치채고 슬며시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구택에게 말했다.“궁금하지 않아요? 저 둘이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는지.”구택은 평온한 표정으로 차를 마시며 대답했다.“아니, 전혀요.”심명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자신감이 넘치는 건가?”구택은 담담하게 말했다.“아뇨, 내 아내를 믿는 거죠. 알다시피, 네가 소희가 나에게 시집가는 걸 못마땅해하는 건 알고 있어요.”“그렇지만 이런 식의 얕은 수작, 조금 저급하지 않나?”심명은 천천히 찻잔을 들었다. 그의 손은 하얗고 긴 손가락이 우아하게 뻗어져 있어 그 모습이 여성보다도 더 우아해 보였다. 찻잔을 손에 든 그 모습은 기품이 넘쳤고 차갑게 빛나는 매력이 묻어났다.심명은 찻잔을 가볍게 들어 마시며 미소 지었다.“걱정 마요. 난 단지 소희를 축복해 주기 위해 온 거고 다른 의도는 없으니까. 작은 장난일 뿐이니.”“어차피 소희는 당신을 좋아하니까, 나 역시 소희가 당신과 행복하게 살길 바라고 있고.”“만약 누군가가 이 결혼을 방해하려고 한다면, 내가 먼저 그 자리를 정리할 거거든요.”구택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역시 똑똑하시네요.”심명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한층 더 농담조로 말했다.“적어도 남궁민보다는 더 똑똑하긴 하죠.”잠시 후 소희와 남궁민이 걸어왔고, 소희는 말했다.“대화는 끝났어. 이제 가자.”심명은 남궁민의 냉랭한 시선을 알아차리고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구택은 남궁민에게 택시를 불러
임구택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고, 얇은 입술이 일자로 굳어졌다.“무슨 뜻이지?”남궁민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사장님은 분명히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을 거예요. 그저 소희를 놓아주기만 하신다면, 조건이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제가 무조건 받아들일게요.”구택은 자리에서 일어나 남궁민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솔직히 말할게요. 당신이 소희를 배신했던 일에 대해 나는 영원히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다만 소희가 널 친구로 생각하고 있기에, 나 역시 소희와 똑같이 너를 친구로 대하는 거예요.”“네가 결혼식에 와서 진심으로 축복해 주겠다면 환영하겠지만, 다른 의도가 있다면 미리 말해 두지. 강성이든 삼각주든, 어디든 내 말이 통하는 곳이니.”남궁민은 일어나 구택과 비슷한 키로 그를 응시했다. 그의 눈빛에도 결연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자신의 강함을 내세워 여자를 옭아매는 것뿐이라면, 그게 이디야의 수준인가 보군요.”그 말을 남긴 채 남궁민이 먼저 걸어 나갔고, 구택은 순간 당황했다. 이게 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남궁 가문에서 후계자를 정할 때는 정말 지능 검사를 안 하는 건가?...그가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 전채 요리가 이미 나와 있었다. 세 사람은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묘했다. 그나마 소희가 아까 미리 경고해 둔 덕분에 큰 언쟁은 벌어지지 않았다.식사 중간, 남궁민은 한참을 떠들며 C국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는 어렸을 적 외할머니가 자주 C국 음식을 만들어 주셨다며 자신은 C국 음식을 먹고 자란 셈이라고 덧붙였다.구택이 냉정한 얼굴로 말했다.“남궁민 씨의 약혼녀가 Y국 사람이라던데, 앞으로는 Y국 음식을 더 즐기게 되겠군요.”남궁민이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저와 린다는 이미 파혼해서요.”구택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지만 내가 아는 바로는, 당신 아버지가 다시 선택한 약혼녀도 Y국 황실의 사람이라던데요.”남궁민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그는 더
남궁민은 얼른 말했다.“서희, 나 아무 말도 안 했어!”소희가 눈을 살짝 들어 그를 쳐다보자, 남궁민은 그제야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이제 셋 다 말없이 침묵이 흘렀다. 그러던 찰나에 임구택의 전화가 울렸다. 그는 화면을 잠깐 확인하더니 소희에게 말했다.“전화 좀 받고 올게. 네가 먼저 주문하고 있어, 금방 올 거야.”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다녀와.”구택이 전화를 받으며 나가자, 남궁민도 잠시 눈빛을 빛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소희에게 말했다.“나도 화장실 좀 다녀올게.”남궁민 또한 방을 나갔다.이제 방 안에는 소희와 심명만 남았고, 소희는 그에게 말했다.“그만 좀 그 사람 자극해.”심명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이러는 이유는 단 하나야. 그 사람에게 네 곁엔 언제나 널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려는 거지. 위기의식을 좀 심어주려고.”소희는 어이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난 그런 거 필요 없어.”심명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알았어, 네 말대로 할게. 하지만 네가 알았으면 좋겠어. 내가 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불편할 거야.”“그걸 피하려고 나와 연을 끊고 영영 남처럼 지내겠어?”소희는 고개를 저었다.“아니, 그럴 일 없을 거야.”심명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래, 이건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일 거야.”소희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 진지하게 말했다.“이젠 여자친구를 사귀어 봐.”심명은 갑작스러운 말에 마시던 주스를 거의 뿜을 뻔했고, 소희는 재빨리 휴지를 건넸다.심명은 못마땅한 얼굴로 휴지를 받아 들고는 말했다.“그런 말로 날 상처 주려고? 네가 임구택 때문에 이렇게 나한테 비수를 꽂을 수 있는 거야?”소희는 휴지를 더 건네며 말했다.“나 진심이야. 진지한 연애를 해봐.”심명은 차갑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래서 날 잊어버리게 하려는 거지? 정말 못됐어.”소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좋아, 연애하지 마. 평생 연애도 하지 말고, 나중에 네가 늙으면 나랑
소희가 메시지를 보낸 지 3초 만에 임구택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차 안에서 소희는 깜빡거리는 전화 화면을 잠시 응시했다. 남궁민이 불편해할까 싶어 임구택이 무슨 말을 할지 걱정되어 잠깐 망설이다 전화를 끊고, 대신 메시지를 보냈다.[하고 싶은 말 있으면 문자로 해.][왜 전화 끊었어? 그 사람은 왜 왔어?]소희는 첫 질문은 넘기고 대답했다.[아마 우리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온 것 같아.][그런데 왜 굳이 그 사람한테 밥까지 사?][손님이니까 예의를 지켜야지.]그러자 구택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그럼 어디로 가는지 주소 보내.]소희는 예정된 식당 주소를 보냈다. 그 사이 앞좌석에서는 심명과 남궁민이 여전히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고, 소희는 눈을 감아버렸다.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소희는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구택을 발견했다. 그는 날렵하고 우아한 맞춤 정장을 입고, 시계를 확인하다가 휴대폰을 꺼내 소희에게 전화를 걸려던 참이었다.심명도 구택을 발견하곤 얼굴을 찌푸리며 소희에게 물었다.“왜 임구택까지 불렀어?”소희가 대답했다.“구택도 남궁민을 알아.”심명은 불편한 표정으로 몸을 돌리며 가려고 했다. 그때 남궁민이 비웃으며 말했다.“뭐죠? 얼굴 보기도 전에 도망가려는 건가요? 그러니까 좋아하는 여자를 남에게 뺏긴 거죠.”소희는 남궁민을 향해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무슨 말이야?”심명은 얼굴이 굳어지며 남궁민에게 한 대 더 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다가 소희의 물음에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좋아, 임구택이 왔으면 잘됐네. 나도 오랜만에 얼굴을 볼 수 있겠군.”구택은 이미 소희를 보고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는 소희의 손을 먼저 잡은 뒤 남궁민과 심명을 번갈아 보았다. 이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은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남궁민이 입을 열기 전, 소희가 먼저 소개했다.“내 남자친구, 임구택.”남궁민은 이미 이디야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손을 내밀며 태연하게 말했다.“사장님, 반가
“남궁민은 어디 있어?” 소희가 물었다. 심명이 옆으로 비켜서자, 소희는 소파에 다리와 팔이 묶인 채 앉아 있는 남궁민을 보게 되었다.둘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소희는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남궁민은 반가움에 찬 얼굴로 말했다.“소희, 드디어 다시 만났네!”소희는 다가가 직접 그의 묶인 끈을 풀어주며 물었다.“여긴 어쩐 일로 왔어?”남궁민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짙은 갈색 눈동자에는 온화한 빛이 감돌았다.“당신을 보러 왔지!심명은 이 광경에 속이 뒤틀리는 것처럼 불편해하며 눈살을 찌푸렸다.“말하려면 제대로 해. 그 지독한 표정은 뭐야? 나도 아직 여기 있거든.”남궁민은 심명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오직 소희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사실 예전부터 찾아오고 싶었어. 그런데 한동안 강시언의 일을 돕느라 조금 늦었거든.”소희는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설마 새해에 그 메시지 보낸 게 당신이었어?”남궁민은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나야!”소희는 살짝 웃으며 물었다.“지금 어디서 묵고 있는데?”“호텔에 있어.”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계를 확인하고 말했다.“그럼 점심은 내가 대접할게.”“좋지!” 남궁민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가 사는 곳이니, 네가 주인이지.”그때 심명이 갑자기 끼어들며 소희에게 애교 섞인 불만을 표했다.“나도 같이 갈래! 그런데 왜 나한텐 밥 사준다고 안 해?”남궁민이 비웃으며 말했다.“여긴 네 구역이라며. 자기 땅에서 뭘 또 사달라고 하는 거야?”“우리 둘 사이에 당신이 끼어들 일 아니거든요!” 심명은 이를 악물자, 소희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둘 다 그만 좀 해. 점심은 내가 두 사람 다 대접할 테니까.”두 사람은 동시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고, 서로를 한 번 흘겨보더니 고개를 돌려 버렸다.점심시간이 다가와 세 사람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소희는 차를 가져왔고, 남궁민은 아까까지 묶여 있었기에 당연히 소희의 차에 탔다. 그는 앞좌석 문을 열
소희는 놀란 듯 말했다.[남궁민? 어디 있어?]“지금 내 곁에 있어. 네가 오랫동안 미행을 당하는 걸 보고 그를 데려왔어.”“그자가 혹시라도 너를 괴롭히는 거라면, 내가 당장 그를 돌려보내 버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 심명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고, 소희는 어이가 없어 말했다.[주소 좀 보내줘. 내가 곧 갈 테니까 그 사람한테 손대지 마.]“알았어!” 심명은 기쁘게 대답한 뒤, 덧붙였다.“운전 조심하고 서두르지 마. 네가 올 때까지 기다릴게.”소희는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심명은 소희와 곧 만나게 될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즉시 주소를 보냈다. 그러자 남궁민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심명을 쳐다보았다.“이제 내가 소희의 친구라는 걸 알았으니, 얼른 나 좀 풀어줄래요?”심명은 남궁민이 자신을 소희의 전 남자친구라 소개한 이후로 불편함이 가득했기에, 냉소하며 말했다.“소희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뭘 그렇게 서두르나요? 얌전히 기다려요.”남궁민은 손이 뒤로 묶여 있었지만, 다리는 자유로워 스스로 소파로 걸어가 앉았다. 그는 심명의 표정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소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심명은 남궁민을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소희랑 어떻게 알게 된 사이에요?”남궁민은 손발이 묶여 있는 상황에서도 기품이 느껴지는 얼굴로 눈을 한 번 깜빡이며 무시하듯 말했다.“내가 왜 대답해야 하죠?”심명은 냉소하며 말했다.“그럼 내가 소희가 오기 전에 널 영영 소희를 볼 수 없는 곳으로 보내버릴 권리도 있다는 거 잊지 마요.”남궁민은 심명이 실제로 그렇게 할 사람이라는 걸 알고, 결국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우린 꽤 오래된 친구예요.”“꽤 오래됐다고요? 그럼 내가 소희를 만난 시기보다 더 이른 시절이라는 건가요?”“당연히 그렇죠!” 남궁민은 소희와의 만남을 자랑스럽게 회상하며 말했다.“그때 소희가 나한테 총을 건네줬거든요.”심명은 비웃으며 말했다.“자기 보호도 못 하는 주제에 전장에 나간 걸 자랑이라고 해요?”“난 그래서 그 생사를 함께한 친
남궁민은 코웃음을 치며 느긋하게 말했다.“나랑 소희의 관계? 나는 소희의 전 남친이자, 생사를 함께한 친구...”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명은 벌떡 일어나 그의 얼굴을 위험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당신의 소희의 뭐라고요? 방금 잘 못 들었으니까 다시 말해봐요.”남궁민이 태연하게 말했다.“나는 소희의 전...”퍽! 심명의 주먹이 그의 얼굴에 꽂혔다. 심명의 매력적인 눈매는 분노로 붉게 물들었고, 섬뜩하고 냉혹한 기운이 감돌았다.“내가 아는 한, 소희에게 전 남자친구가 있다면 그건 나뿐이에요. 감히 나의 소희를 핑계 삼으려고 하다니, 죽여서 내쫓아버릴 줄 알아요!”남궁민은 입가에 상처가 생겨 피가 맺혔다. 이를 악물고 심명을 노려보며 말했다.“여기도 법과 인권이 있는 나라니 조심해요. 내가 당신을 고소할 거니까. 아니, 지금 내 인신 자유를 불법으로 제한하고 있으니 꼭 법적 조치를 취할 거예요!”심명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느긋한 태도로 말했다.“이곳은 내 구역인데, 당신이 뭘 하든 내가 겁낼 줄 알아요?”그리고 옆에 있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데려가서 실컷 두들겨 패. 사실대로 말할 때까지 계속.”남궁민은 심명이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난 진짜로 서희를 알아요. 그래서 C 국까지 찾아온 거라고요!”심명은 남궁민이 서희라는 이름을 말하는 걸 듣고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며 경계심이 더해졌다.“찾으러 온 이유가 뭐죠?”남궁민은 오만하게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말했잖아요. 우리는 친구이자, 생사를 함께한 사이라고.”“생사를 함께 했다고요?” 심명은 비웃으며 말했다.“그럼 당신이 우리 소희를 구한 적이라도 있다는 건가요?”“서희가 날 구했죠.” 남궁민은 자부심이 서린 표정으로 답했다.“또한 우린 함께 싸운 적도 있다고.”심명은 소희의 과거에 대해 일부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말에 약간의 신빙성을 느끼기 시작했다.“남자가 여자에게 구원받았다니, 정말 큰 은혜를 입었네.”남궁민은 심명의 비꼬는
지엠 본사 아래 주차장에 도착한 소희는 차를 세우고 내려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몇 대 떨어진 곳에 파란색 페라리가 멈춰 서더니, 연한 파란색 정장을 입고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그가 소희 쪽을 바라보며 걸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남자는 몸을 돌릴 겨를도 없이 목덜미에 통증을 느끼며 눈앞이 깜깜해졌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곧이어 검은 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다가와 검은색 롤스로이스로 끌고 가 태웠고, 차는 신속히 사라졌다.소희는 차 뒤쪽을 돌아가며 누가 자신을 미행했는지 확인하려 했으나, 페라리가 주차된 자리까지 가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차의 주인 역시 사라진 상태였다.소희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혹시 자신이 오해했나 싶었다. 그저 우연히 그곳에 주차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떠나버린 걸까?더 이상 찾을 수 없자, 소희는 신경을 쓰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화영을 만나러 갔다.화영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화영은 회의 중이었다. 소희는 소파에 앉아 게임을 하며 기다렸다.약 30분 후, 화영이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소희는 소파에 기대어 쿠션을 안고 잠들어 있었다.소희는 소리에 금세 눈을 떴다. 화영인 걸 확인하고 다시 눈을 감은 채 잠을 깨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영은 소희에게 커피 한 잔을 준비해 건네주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지자 화영은 소희의 머리칼을 쓸어주며 웃으며 말했다.“며칠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구택 사장님이 자제를 좀 하셔야겠어.”소희는 긴 속눈썹이 살짝 떨리며, 눈가에 핀 연한 홍조가 스며들었다. 그녀는 커피잔을 손에 들고 물었다.“설탕 넣었지?”“넣었어. 세상에, King이 달콤한 걸 좋아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화영이 웃저, 소희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먼저 마시고, 다 마시면 드레스 피팅하러 가자.” 화영이 말에, 소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투덜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