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아는 발버둥을 치지 않았다.그녀는 이미 삶에 대한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자신이 계부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과 믿었던 엄마가 자신을 팔아버렸다. 게다가 그녀는 어느 한 남자의 내연녀가 되기도 했다. 모든 사람이 그녀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욕을 하니 그녀는 정말로 이대로 죽고 싶었다.그녀의 마음은 이미 죽어버렸다.잔잔하기 그지없었던 바다 또한 쥐죽은 듯이 고요하였다. 바다는 그녀의 몸은 바다 깊은 곳, 먼 곳까지 이끄는 것 같았다.그렇게 얼마나 바닷속에 떠다녔을까.칠흑 같던 어둠이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밝은 빛이 수평선 위로 천천히 떠 올랐다.그녀는 드디어 빛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여전히 바닷속에 잠겨 있었다. 그녀는 발버둥을 치지 않았고 삶에 대한 의지와 욕구도 없었다.마치 정말로 죽은 사람처럼 가만히 있었다.그러다 물고기 잡으러 나선 어부가 그녀를 발견하게 되었다.“세상에, 저거 사람 아니여?”“정말로 사람이네!”어부는 배를 윤성아가 있는 방향으로 돌렸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들은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윤성아가 살아있었던 것이었다.“아가씨, 괜찮아?”“걱정하지 마. 괜찮아! 그렇게 가만히 있어 봐. 움직이지 말고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올라올 수 있을 겨.”“내가 지금 바로 구해줄 테니께!”윤성아는 마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어부가 바로 바다로 뛰어내렸다. 그리곤 윤성아가 있는 곳으로 헤엄쳐 그녀를 안고 이내 자신의 배로 올라왔다.어부는 대략 50대로 보였고 정직하고 무던하며 소탈한 모습이었다.어부는 이미 두 눈에 빛을 잃은 윤성아를 보며 마치 아버지처럼 걱정 가득한 모습으로 물었다.“아가씨, 왜 말을 안 혀?”“무슨 일인겨?”“설마 실수로 바다에 빠져든 건 아니지?”어부는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계속 말을 걸어왔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다 그녀가 갑자기 반응을 보였다. 아주 갑작스럽게 비통하게 울기 시작
그렇게 윤성아는 나엽과 함께 마을을 떠나게 되었다.마을을 떠나기 전, 나엽은 그녀를 구해준 신명철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잊지 않고 돈까지 두둑하게 챙겨주었다. 윤성아도 그런 그를 말리지 않았다.그녀는 그 빚을 기억하기로 했고 속으로 나중에 돈을 벌면 갚기로 생각했다.그렇게 날이 지나고...윤성아의 혀도 점차 회복되었다.그녀가 당했던 모든 것과 그로 인해 받았던 마음의 상처 또한 의사가 치료해 주고 있었고 나엽의 보살핌 하에 점차 나아지게 되었다.윤성아와 나엽은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퇴원한 후 그녀는 나엽의 별장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다.나엽에게 보답을 하기 위해 윤성아는 낮에는 끼니와 빨래, 청소 등 집안일을 해주었고 저녁에는 야간대학교에 신청하였다.윤성아는 계속 공부가 하고 싶었다.비록 예전 그녀의 학력은 고졸이었고 대학도 못 다녀보았지만, 이제는 달랐다.그녀는 이미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야간대 신입생이기도 했다. 그녀는 전에 못다 한 공부와 남들을 보며 부러워했던 대학 생활을 전부 해볼 생각이었다.그리고 더 충실한 나날을 보내기 위해, 대학교 등록금을 벌기 위해, 나엽에 빚진 돈을 갚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한 달 전, 윤성아는 베린 그룹의 비서직에 취직하게 되었다. 비록 그녀의 학력은 한참이나 부족했지만, 경력이 있었기에 다행히 취직 성공하게 된 것이었다.게다가 베린 그룹의 대표님은 꽉 막힌 사람이 아니었고 그녀의 가치 또한 높게 보고 있었다.윤성아는 그렇게 매일 야간대 수업을 들으면서 베린 그룹의 비서 업무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그녀는 나엽의 별장을 청소해 주거나 그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그녀는 아주 충실하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그녀는 마치 이미 과거의 모든 것과 작별을 하고 과거에 받은 모든 상처를 잊어버린 듯했다. 그러나...여전히 지금과 같이 고요한 밤이 찾아오면 윤성아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그녀는 자신을 팔아버린 윤정월과 도박쟁이 계부, 그리고 아픈 동생이 떠올
안효주는 안씨 가문 둘째 딸이라는 신분으로 원이림과 약속을 정했다.베린 그룹과 한연 그룹은 애초에 줄곧 협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마침 의논할 아주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었다.연락을 받은 원이림은 비록 안효주의 약속을 받아들였지만 안진강이 왜 자신의 딸을 보내려고 했는지 다소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가 알기로는 안진강은 안효주를 전혀 자신의 회사에 들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녀에게 회사를 물려줄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시간은 흘러 오후가 되었다.어느 한 카페에서.원이림은 소문으로만 전해 듣던 안씨 가문의 둘째 딸을 보았을 때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이 윤성아를 만난 줄 알았다.그는 다소 확신이 서지 않는 목소리로 물었다.“윤 비서?”안효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원 대표님, 전 윤 비서가 아닙니다.”“저는 안효주라고 해요. 일전에 연락 드린 한연 그룹 대표님의 딸이에요.”“...”원이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안효주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안효주가 윤성아와 너무 닮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다만 둘은 또 차이가 있었다.비록 얼굴은 거의 똑같았지만 몸에 밴 습관이나 그에게 주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안효주는 운성 안씨 가문의 둘째 딸이었고 태어날 때부터 다이아 수저를 들고 태어난 사람이었다.그녀에게서는 재벌가 아가씨라는 오만함이 느껴졌다.그러나 윤성아는 성격이 차가운 사람이었다. 비록 겉으로도 차가워 보였지만 열정이 가득한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이 그녀에게 한 번만 잘해줘도 윤성아는 배로 은혜를 갚는 사람이었다.윤성아는 아주 청순하고 순결해 보였고 마치 아무런 색도 물들지 않은 하얀 백합꽃 같았다. 너무나 아름다운 나머지 아껴주고 지켜주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했다.“네, 확실히 아니네요.”원이림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는 자리에 앉아 쌀쌀하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태도를 보이며 안효주를 향해 이어서 말했다.“그래서 한연 그룹의 둘째 딸이 저에겐 무슨 용건이 있는 거죠?”안효주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
그러나 강주환의 입술이 안효주의 입술에 바로 닿기 직전에 멈춰버렸다. 그는 또 안효주 몸에서 전에 맡았던 역겨운 냄새를 맡게 되었다. 그것은 향수가 아닌 그녀의 체향이었다...안효주는 강주환이 향수 냄새를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이미 지난번에 질색하며 그녀에게 뿌리지 말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안효주 또한 그의 말대로 향수를 뿌리지 않았다.하지만 사람마다 느껴지는 체향은 다 달랐다.4년 동안 강주환은 이미 윤성아의 체향에 익숙되어 있었고 그녀의 체향만 맡아도 그는 흥분되는 것 같았다.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여자의 체향은 그때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강주환은 칠흑 같은 두 눈으로 눈앞에 있는 여자를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아무리 연기를 하고 있다고 해도 체향까지 달라질 수 없지는 않나?'그의 마음속엔 다시 의심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안효주는 여전히 눈을 감고 그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 닿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입술은 닿지 않았다.그녀는 눈을 뜨고 강주환을 보며 말했다.“왜 그래요?”“아무것도.”강주환은 차갑게 식은 얼굴로 그녀를 밀어냈다. 키스를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것이었다.안효주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바로 부드러운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주환 씨, 식사는 하셨어요? 나가서 뭐 좀 먹고 올까요?”“그래.”강주환은 안효주를 데리고 나왔다. 하지만 안효주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여전히 차가웠다.식사를 마친 후, 그는 안효주를 데려다주고 바로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주환 씨.”그러나 안효주가 그를 붙잡아 세웠다.“앞으로 저 혼자 여기에 두지 않을 거라면서요. 또 어디를 가는 거예요?”“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너 먼저 들어가서 자.”말을 마친 강주환은 안효주의 손을 뿌리치고 나가버렸다.안효주는 이를 뿌득 갈았다. 그녀는 오늘에야말로 강주환을 차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대체 뭐가 문제인 거지?'...한편 베린 그룹.윤성아는 운성 안씨 가문에
“더군다나 윤 비서는 지금 안효주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 심지어 안효주보다 더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얼굴이지. 이런 상황에 안효주가 어떻게 나올 것 같아? 그 여자는 모든 걸 알고 있음에도 윤 비서를 콕 집어 말했지. 그 기회를 틈 타 윤 비서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겠어?”원이림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난 이미 분명히 말했어. 윤 비서는 우리 베린의 사람이고 난 당연히 윤 비서를 지킬 의무가 있어. 이번 프로젝트를 절대 윤 비서가 맡을 일은 없을 거야. 별 다른 용건이 없다면 그만 나가 봐.”윤성아는 하는 수 없이 대표이사실을 나가게 되었다.대표이사실을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던 원이림은 그녀가 문을 닫고나서야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하... 겉으로는 차갑고 쉽게 다가갈수 없는 분위기를 내면서 이렇게 단순한 모습을 보이면 내가 지켜주고 싶어지잖아.”사실 원이림은 윤성아를 그녀가 취직하기도 전부터 알고 있었다.다만 윤성아가 그들이 예전에 우연히 만났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다.그날은 비가 엄청 내리던 날이었다. 원이림의 차는 갑자기 도로에서 고장나게 되었고 그는 바로 개인 비서에게 연락해 차를 맡겼다.급한 일이 있었던 그는 차를 그자리에 내버려 둔채 비를 뚫고 달렸다.그는 너무나도 급하게 달렸던 나머지 맞은 편에서 자전거를 탄 윤성아를 발견하지 못했고 윤성아는 그대로 넘어지게 되었다. 그는 바로 그녀에게 물었다.“괜찮아?”그때의 윤성아는 기껏해야 예닐곱살로 되어 보였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인 듯했다.비가 너무 세게 내리고 있었던데다가 그녀가 빨리 집으로 가고 싶었던 마음에 자전거 페달을 밟는 속도도 빨라지게 된 것이었고 갑자기 나타난 원이림에 급하게 자전거를 세웠다. 그녀는 미처 피하지 못한 채 그만 넘어지고 말았고 바닥에 세게 부딪히게 되었다.그때의 계절은 여름이었기에 옷도 아주 얇게 입었었다.원이림은 피가 나는 그녀의 손바닥과 팔꿈치, 그리고 다리 관절 부분을 발견하게 되었다.“미
원이림이 답했다.“에이, 그렇게까지는 아니죠.”원승진이 화낼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전혀 두렵지 않다는 어투로 말했다.“전 그냥 아버지한테 제가 배워온 훌륭한 전통을 보여드리고 싶었을 뿐이죠. 최대한 늦게 결혼하고 늦게 아이를 갖는 거죠.”말을 마친 그는 전화를 끊어버렸다.그의 머릿속엔 또다시 한연 그룹과의 협력이 떠올랐다.그는 안효주가 대체 갑자기 왜 윤성아를 콕 집어 말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그는 윤성아를 지켜주고 싶었고 더 많은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으며 이유도 모른 채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당하는 꼴은 더더욱 보고 싶지 않았다.그는 내선전화로 자신의 개인 비서에게 연락했다.“안씨 가문의 상황을 알아 와. 특히 그 집 둘째 딸에 대해서.”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금요일 저녁이 되었다.윤성아는 퇴근 후 나엽의 별장으로 돌아왔다.그녀가 별장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소파에 널브러져 이미지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모습으로 TV를 보고 있는 나엽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심지어 과자 한 봉지까지 들려 있었다.그의 행동 하나부터 열까지 전혀 그 유명한 톱배우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윤성아는 당장이라도 휴대폰을 꺼내 그런 그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싶었고 SNS 계정에 올리면 분명 엄청난 인기를 끌 것으로 생각했다. 나엽에게 푹 빠진 팬들은 분명 갭 차이가 큰 자신의 연예인을 더욱 좋아하게 될 것이었다.인기척을 들은 나엽은 윤성아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그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잔뜩 토라진 아이처럼 말했다.“성아 씨, 왜 이제야 오는 거예요? 배고파서 죽을 뻔했잖아요!”윤성아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게 되었다.그녀는 티 없이 맑은 두 눈으로 나엽을 보면서 말했다.“어린아이처럼 왜 그래요? 배고프면 알아서 먹으면 되잖아요.”나엽의 눈꼬리가 추욱 내려갔다.“나도 그러고 싶은데, 내가 만든 건 성아 씨가 만든 것보다는 맛이 없단 말이에요
자신이 예전에 언니한테 했던 일을 만약 부모님이 알게 된다면 분명 그녀를 지금처럼 좋아해 주지 않을 것이었다.애초에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보다 안효연을 더 좋아했다.게다가 그녀가 한 짓이 까발려지게 되면 그녀가 감방에 가게 될 가능성이 아주 컸고 인생도 그렇게 망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살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안효주의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절대 자신의 언니를 산채로 부모님의 곁으로 돌아오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하지만...‘그럴 리가 없어!'안효주의 표정이 점차 냉정해졌다. 그녀는 일전에 이미 윤성아의 출신을 샅샅이 조사를 해보았기 때문이다. 윤성아는 영주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었고 윤정월의 혼외자식이었으며 어릴 때부터 영주시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랬기에 윤성아는 절대 그녀의 언니일 리가 없었다!바로 이때, 나엽의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안효주, 성아 씨는 네 언니가 아니야. 그러니까 해칠 생각하지 마.”“그래, 맞아. 너도 아는구나? 우리 언니가 아닌 거 말이야.”안효주가 차갑게 웃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걸 알면서도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건데? 난 그냥 그 여자가 나랑 똑같이 생겼다고 하길래 궁금했을 뿐이야. 일부러 우리 언니 행세를 하고 다니는 건 아닌지 말이지. 그거 봐. 너도 그 여자한테 넘어갔잖아, 아니야?”어이가 없음을 느낀 나엽은 웃음만 흘러나왔고 이내 다시 증오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안효주, 넌 기억력이 나쁜 거냐, 아니면 머리에 문제가 있는 거냐? 성아 씨가 널 닮았다고? 하! 정말 어이가 없어서. 넌 네 얼굴이 어땠는지 기억 안 나냐? 아직도 모르겠어?”나엽은 적개심 가득한 어투로 안효주에게 현실을 알려주었다.“잊었나 본데, 네 얼굴은 애초에 네 거 아니잖아. 예전 너의 모습은 정말로 평범하기 그지없었지. 효연이 옆에 있으면 넌 영원히 효연이를 더 돋보이게 만드는 그런 못난 오리 새끼였다고!”그의 말에 안효주는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그녀의 외모는 확실히 평범하기 그지
그리고 한연 그룹이 계속 베린 그룹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냐, 안 하냐에 관해서 윤성아는 당연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기에 안효주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하지만 그녀는 안효주가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할 줄은 몰랐다.윤성아는 담담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안효주 씨, 전 한연 그룹이 아주 성숙한 기업이라고 생각해요. 협력에 관한 일에도 분명 더 적합한 회사를 고르려고 하겠죠. 한연 그룹과 베린 그룹이 이렇게 오랜 기간 협력해왔다는 건 그만큼 베린 그룹이 제일 적합하다는 뜻이죠. 만약 다른 말도 안 되는 사적인 이유로 한연 그룹에서 베린 그룹과의 협력을 거절한다면, 전 손실을 보는 쪽이 저희 베린 그룹뿐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거든요!”안효주의 성형 명령을 거절한 윤성아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는 얼굴로 안효주를 보며 마지막까지 말을 이어갔다.“그러니 협력에 관해서 안효주 씨가 더 명석한 선택을 하길 바랄게요.”말을 마친 윤성아는 예의상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나버렸다.안효주는 그런 그녀가 증오스러워 미칠 것 같았다.‘짜증 나는 년, 돈을 줘도 성형을 안 하겠다고?! 그렇게 나랑 같은 얼굴로 살겠다는 거야?! 감히?'윤성아가 성형도 한 적이 없이 안효연과 똑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더욱 짜증이 치솟았다. 그녀는 여러 차례 성형을 해서야 겨우 안효연과 똑같아지게 된 것이었다. 안효주는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고 윤성아에 대한 증오심이 더욱 깊어져만 갔다.‘빌어먹을 년이 강주환의 불륜녀였던 것도 모자라 이젠 나엽을 꼬시다니...'“제기랄!”안효주는 욕설을 내뱉었다.바로 이때, 룸의 문이 열렸다.강주환이었다. 그는 마침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안효주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녀가 내뱉은 욕설 또한 듣게 되었다.“왜 그래? 누가 널 화나게 한 건데? 예전에도 이렇게까지 화낸 적은 없었잖아.”안효주는 강주환이 나타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고 놀란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강주환이 문을 밀고 들어오는 순간 그녀는 바
남서훈은 싱긋 웃었다.아직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맥으로 정확히 짚어 낼 순 없었지만 느낌은...“아마 남동생일 거야.”“아... 남동생...”양나나는 눈을 굴리더니 남서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남동생도 좋은 것 같아요. 동생 태어나면 저랑 엄마가 동생한테 의술도 가르쳐주고 아빠랑 사업하는 것도 배우고요. 그리고 남자애는 너무 응석 받아줄 필요도 없고 내가 맘껏 부려 먹을 수 있잖아요.”자기 뒤꽁무니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누나, 누나 하고 부르는 장면을 상상하니 양나나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어떻게 생긴 남동생이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날까, 양나나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그러나 남서훈이 임신 다섯 달째로 접어드는 어느 날, 양나나는 실종됐다.양준회와 남서훈은 매일 안절부절못하여 속이 타들어 갔다.둘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동원해 전 세계 각 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여전히 양나나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양나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그때 양나나는 이미 8살이었다.남서훈은 딸을 찾지 못해 날마다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그녀는 점점 야위어갔다.그걸 보는 양준회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는 아내를 꼭 끌어안고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나는 똑똑한 아이야. 당신이 의술과 독 쓰는 법도 잘 가르쳐줬으니까 별일 없을 거야. 나나는 너와 내가 낳은 딸이야. 전에 풍운파에 혼자 몰래 들어가서도 그 안을 마구 헤집고 다녔잖아.”아무튼 그는 양나나가 어디에 가서 어떠한 상황에 부딪히던 자신을 잘 보호할 거라고, 아무 일 없이 잘 살아 있을 거라고 남서훈을 위로했다.남서훈도 굳게 믿고 있었다. 양나나의 시체를 보게 되지 않는 한 그들의 딸은 세상 어딘가에 꼭 살아있을 거라고.그 후 넉 달이 지났다. 9달이 된 배는 불룩하게 튀어나왔다.양나나는 아직도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그러다 남서훈은 아들을 낳았다. 강보에 싸여 품에 안겨있는 아들을 보며 남서훈은 양나나를 그리워했다.“나나야,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네 뒤꽁무
그리고 바로 그날 오후.양준회와 남서훈, 그리고 백나연과 성진훤, 이렇게 네 사람은 백무산을 찾아갔다.그를 만나자마자 양준회와 성진훤은 백무산한테 사과부터 했다.어리둥절한 백무산은 그들이 왜 갑자기 찾아와서 사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 후 양준회는 남서훈의 어깨를 와락 감싸안았고 성진훤도 보란 듯이 백나연의 손을 꼭 잡았다. 성진훤은 원래 양준회처럼 백나연을 확 끌어안고 싶었지만 미래 장인어른이 될 사람 앞이라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손만 잡았다.백무산은 더 혼란스럽고 얼떨떨해졌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는 눈알이 튀어져 나올 듯하게 그들 넷을 번갈아 쳐다봤다.그때 양준회가 입을 열었다.“어르신, 우리 서훈이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남씨 집안의 특수한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남장을 했던 것이고, 백나연 씨와의 혼약도 그저 소동극이었습니다. 이 일은 서훈이한테 책임 묻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노여움이 있으시면 저한테 푸세요.”그 말에 백무산은 눈살을 찌푸렸다.남서훈이 여자라니... 어떻게 그런 일이?여자가 그의 딸과 약혼했다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다.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백무산은 불같이 화를 냈다.그러자 백나연이 나섰다.“아빠, 이 일은 서훈이 탓이 아니에요, 제가, 제가 꼭 도와달라고 했어요.”“뭐야? 널 도와줘?”“네.”백나연이 설명했다,“아빠랑 오빠가 자꾸 소개팅 주선하는 바람에 제가 너무 골치 아파서 서훈이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나랑 약혼하자고. 그럼 아빠랑 오빠가 나한테 선 자리를 더는 강요 안 할 거 아니에요. 서훈이는 싫다고 했는데 내가 억지 써서 해주기로 한 거예요.”백나연은 자기 잘못이라고 매우 강조했다.그녀의 눈빛에 아픔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전 그때 결혼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리고 저랑 서훈이는 서로 약속했어요. 누가 먼저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되든, 그때 되면 파혼하기로요. 절대 서로의 앞날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이제
그 순간 용준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은 그칠 줄을 모르고 펑펑 쏟아졌다.이게 얼마 만인가.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싶은 생각을 항상 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는 오늘 끝내 그녀를 안을 수 있었다. 팔을 뻗어 그녀를 껴안고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파묻은 채 용준은 또 한참을 울었다.예서는 그가 평생 사랑한 유일한 여자였다.그는 품속에 있는 그녀를 부드럽고 진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난 네가 고마워. 넌 너무 용감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용감해. 옛날 일은 이미 다 지나갔어. 넌 이것만 기억해. 난 널 사랑하고, 네가 있어야만 내가 살 수 있어. 네가 있으니까 내가 괴물로 변하지 않은 거야. 아니면 난 모든 걸 다 망가뜨렸을 거야. 스스로도 혐오하는 그런 나쁜 인간으로 돼버렸을 거야.”예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도 알고 있었다. 남자가 하려는 말이 뭔지 그녀는 모두 알고 있었다.이날, 둘은 아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예서는 더는 용준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용준이 있으므로 하여 그녀는 더 빨리 회복될 것이었다.그렇게 예서가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을 때. 남서훈과 양나나는 한 번 나가 돌아다니기로 했다.한 거리의 상가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남자애 몇 명이 갑자기 튀어나와 양나나를 에워쌌다.그들은 매우 들뜬 소리로 말했다.“대장! 살아 있었어요?”“너무 잘 됐어요!”“대장, 대장을 그 사람들이 데려간 후로 우린 계속 대장의 소식을 기다렸어요. 대장도 그 애들처럼 상처투성이가 돼서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고요.”“지금은 어떤 상황이에요? 대장이 후계자가 된 거예요?”양나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 라고 대답했다.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남자애들한테 말했다.“난 후계자 되는 것에 관심 없어. 풍운파에 지금 남아있는 건 의술을 배우기 위해서야.”양나나는 시선을 남서훈한테 향하며 그들한테 남서훈을 소개했다.“이분이 내 스승님이야, 우리 스승님 엄청 대단해!”그날, 양나나는 그
지난 날에 발생한 그 끔찍한 과거를 스스로 입에 올리는 용준은 피가 흘러나올 듯이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고 감정이 폭발할 한계치까지 다다랐다.그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몇 분 후에야 그는 비로소 다시 입을 열었다.“그놈들은 죄다 죽여버려야 할 놈들이에요. 예서가 이쁘니까, 내 앞에서 예서를... 그때 예서는 이미 내 아이를 임신했는데...”용준의 온몸에서 난폭한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돌아서서 주먹으로 나무를 세게 한 방 내리쳤다. 그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그 큰 나무가 흔들릴 정도면 얼마나 센 펀치를 날렸는지 알 수 있었다.그의 손마디도 살이 찢겨나가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사람처럼 상처에 무덤덤했다. 아마도 손보다 마음이 더 아팠을 터였다.용준은 그때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심장이 뜯겨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예서가 피투성이가 된 채 텅 빈 눈으로 누더기 인형처럼 맥없이 쓰러져서 누워있던 참혹한 장면만 머릿속에 떠올리면 그놈들을 무참하게 도륙을 내고 싶었다.그리고 그는 그렇게 하였다.풍운파의 보스가 된 후 첫 번째로 한 일이 바로 예서의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그놈들의 범죄증거를 전부 찾아내 한 명도 빠짐없이 직접 처단했다.그때 그들은 무릎을 꿇고 울며불며 용서를 빌었다. 막다른 길에 몰려 살려고 해도 안 되고 죽으려고 해도 죽지 못할 때, 그들은 찌질이같이 눈물 콧물을 쥐어짜며 애원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정작 그들은 용준이나 예서한테 그런 자비를 베푼 적이 없는데 말이다.용준의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졌다.“그것들이 나와 예서의 모든 것을 망치고 날 시궁창에 몰아넣었죠. 여전히 난 이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생지옥에서 살고 있어요. 그것들은 백번 죽어도 마땅해요!”그러나 그놈들이 죽는다고 해서 상처가 아무는 것은 아니었다.용준은 피로 물든 주먹을 으스러지게 잡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들은 예서가 그들이 한
용준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고, 금호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그는 어둠이 없는 밝은 햇빛 아래에서 사는 반듯한 사람이었다.그러나 일부 국제조직에서는 용준을 불안하게 여겼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심지어 그가 의심되어 오랫동안 그에게 전자발찌를 채웠다.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는 범죄자 취급을 당했고, 그리하여 생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더더욱 생각지도 못한 건, 그 당시 그와 깊은 사랑에 빠져있었던 여자친구마저 누구한테 몹쓸 짓을 당하게 된 것이다.그러므로 용준이 점점 나쁘게 변하여 나중에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되었던, 모두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요 몇 년 동안 풍운파는 용준의 관리하에 동남아에서 제일 큰 폭력조직으로 성장하였고,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나 다 저지르는 편이었지만 딱 한 가지 철칙이 있었다. 그건 바로 노약자와 여자,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거였다.의리도 지켰다.하지만...“그건 중요하지 않아요.”남서훈이 말했다.“이 세상은 원래 흑과 백으로 나뉘는 게 아니니깐요. 동남아는 원래 상황이 어수선하잖아요. 무장세력과 폭력조직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일시적으로 바꿀 수도 없어요. 오히려 풍운파와 같은 조직이 있다는 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양준회가 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떤 측면으로 보면 용준은 꽤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둘은 원수지간이다. 양준회가 그의 아버지를 죽였다. 비록 지금까지는 아무 짓을 안 했어도, 또 그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풍운파를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다스린 용준이 지금은 어떤 사람인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리하여 양준회는 안심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남서훈과 같이 풍운파를 즉시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나나도 여기 있어요.”남서훈이 예상치도 못한 폭탄을 터트렸다. 양준회는 깜짝 놀랐다.양나나가 여기에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그는 바로 말했다.“그럼 나나도 같이 떠나면 돼.”갇힌 두 달
강하영이 부케를 내던지는 일순간 우양주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부케를 향해 몸을 날렸다. 공중에서 부케를 잽싸게 낚아채는 그의 모습이 정지화면인 양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부케를 손에 쥔 그다음 순간, 그는 부케와 함께 바다에 떨어졌다.모두가 경악했다.강하영은 크루즈 난간 쪽으로 달려가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남자를 보며 입을 떡 벌리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선원들이 즉시 튜브를 던졌고, 또 어떤 사람들은 즉시 뛰어내려 구조하려 했지만 강주환이 그들을 말렸다.왜 구하지 말라는 건지 이해 안 된다는 듯한 눈빛으로 윤성아는 강주환을 쳐다봤다.그러다 팔로 물살을 가르며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우양주가 크루즈 위에 있는 강하영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는 걸 듣고 왜 그러는지 알 것만 같았다.“여보, 어쨌든 내가 부케 받았으니까 당신 나랑 결혼식 치러야 돼요! 안 그러면...”그 뒤엔 위협적인 말이 따라야 하는데 우양주도 무엇으로 강하영을 협박할 수 있을지 몰랐다. 남은 건 자신의 이 몸뚱이 하나뿐인데...“안 그러면 나 안 올라갈 거야. 여기 바다에 계속 있을 거야, 결혼식도 못 하는데 그냥 빠져 죽지 뭐.”강하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바다에 빠진 남자를 까만 눈동자로 차분하게 내려다보며 끝내 입을 열었다.“빠져 죽고 싶으면 그렇게 해요. 안 말려요.”“...”우양주는 서럽게 그녀를 쳐다봤다.역시나 아내는 매정했고 자신에 대해 애정이 없었다.그러나 그때 윤성아 곁에 서있는 강주환이 무덤덤하게 한마디 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이 바다에 상어가 출몰한다고 했어요. 식인 상어.”강주환은 고개를 돌려 강하영한테 말했다. “지금 아직 상어가 오지 않아서 그렇지, 나타나기만 하면 한꺼번에 열 몇 마리씩 무리 지어서 나올 거예요. 그게 게네들 습성이라. 이야... 쟨 아마 그러면 뼛조각도 남지 않겠네.”“...”그 말에 강하영이 급해 났다. 말투도 전처럼 차분하고 담담하지 않았다.난간에 기대어 우양주를 향해 내리 소리 질렀다.“뭐
미리 준비한 축사를 울먹이며 끝까지 다 읽고는 원이림을 향해 볼멘소리를 했다.“너 이 놈 자식, 내가 죽을 때까지 네가 결혼하는 걸 못 보는 줄 알았다. 아이고...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너도 이제 가정이 생겼어.”“너 똑바로 들어. 은진이한테 평생 잘 해줘야 돼, 아내한테 잘 하는 건 우리 집안 내력이야. 나도 네 엄마 말을 엄청 잘 들었어. 너도 똑같아, 알겠니? 오늘부터는 은진이한테 더 잘해야 돼, 말도 잘 듣고, 은진이부터 생각하고 배려해 주고. 은진이가 조금이라도 맘고생을 하게 되는 날엔 내가 너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알겠어?!”원이림은 새카만 눈동자로 여은진을 깊게, 애틋하게 들여다보며 그녀와 깍지를 낀 두 손에 힘을 더 주었다.“걱정 마세요. 난 평생 우리 여보 맘고생 안 시킬 거예요.”여보라는 호칭이 지금 이 시각부터 명실상부하게 되었다.원이림은 그녀의 손을 잡고 크루즈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데이지 꽃을 바다로 뿌렸다. 하얀 꽃잎들이 파도에 실려 멀리 떠내려갔다.둘은 거기에 선 채 눈물을 머금고 울먹이며 말했다.“어머니, 아버지. 저 너무 행복해요. 우리 너무 행복해요.”결혼식의 마지막을 장식할 부케 토스하는 시간이 다가왔다.강주환과 윤성아, 그리고 나엽과 안효연은 모두 기혼자로서 나가지 않고 구경만 했다. 하객 중에 미혼인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우양주도 강하영의 손을 잡고 그리로 향했다.강하영은 몸을 뒤로 빼면서 말했다.“우린 결혼했는데 왜 부케를 받으러 가요? 다른 사람한테 갈 좋은 축복을 왜 우리끼리 받겠다고 달려들어요, 쓸데없이. 그렇게 할 일 없고 힘이 남아돌면 내가 다른 일 하게 해 줄게요.”“무슨 일?”강하영은 푸른 바다를 향해 눈을 힐끔 하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신 수영 좋아하잖아요. 내가 엉덩이 확 걷어찰 테니까 바다로 들어가서 수영이나 할래요?”“...”저번에 강하영과 같이 수영하면서 그녀가 자신한테 새빨간 수영팬티를 사줘 창피를 당하고 나서부터 우양주는 수영하는
여은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예쁘게 미소 지었다.“나 다 알아요.”지난 1년 동안 그가 어떻게 해왔는지 잘 아는 그녀는 더 이상의 맹세와 언약 같은 건 필요 없었다.“응!”여은진을 안은 채로 원이림은 그녀의 여린 입술에 쪽쪽거리며 뽀뽀를 했다.장내의 플래시 세례가 정신없이 터지는 가운데 그는 돌아서서 무대 아래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한테 당찬 목소리로 선포했다.“오늘 저의 이 행복한 순간을 지켜본 여기 계신 모든 증인 분들한테 제가 선물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저희 베린 그룹에 가셔서 선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달 20일에 저와 은진이의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니 여러분들께서 모두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여은진을 안고 시상대를 내려가려 했다.여은진이 내려달라고 했지만 그는 내려놓지 않았다. 그렇게 안은 채로 시상식장을 걸어 나와 차에 올라탔다.럭셔리한 롤스로이스가 천천히 내달리고 있었다.여은진은 아직도 그의 품에 안긴 채로 있었다.“이번 달 20일에 결혼한다고요? 그럼 열흘밖에 안 남았는데, 너무 촉박하지 않아요?”그녀가 눈을 들어 바라보며 물었다.“아니, 전혀.”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떨구며 원이림이 말했다.“시간이 모자라지만 않았으면 내일에라도 당장 결혼식 치르고 싶어.”반년이 넘는 동안, 그는 매일 결혼식에 관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결혼반지, 웨딩드레스, 그리고 결혼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디테일한 사항들을 전부 준비하고 체크했다. 그녀가 결혼을 동의하는 그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그 순간이 끝내 다가왔다.웨딩사진을 찍는 것 외에는 크게 시간을 들일 일도 없었다.다만 여은진이 임신했기 때문에 너무 빠듯하게 스케줄을 잡지 않고 싶었을 뿐이다.결혼식에 참석할 하객을 초대하는 일도 있긴 하지만 10일이면 충분했다.촉박하지 않을뿐더러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여보, 우리 지금 바로 혼인신고 하러 가.”원이림은 한시라도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기사한테 얘기하여 구청으로 가자
원이림은 금방 샤워를 마친 여은진한테로 다가가 그녀의 팔을 끌어당겨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다음에는 당연히 침대로 향했다.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수순을 밟아갔다.한창 격렬해지려던 찰나, 원이림은 짧게 비명을 질렀다. 크게 지르진 않았다. 본능적으로 소리를 내질렀지만 그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여은진이 알아차리지도 못한 새에 살에 푹 찔린 그 가는 물건을 빼내야겠다고 머릿속으로 빨리 반응했다.하지만 역시 늦었다.여은진이 몸을 일으켜 스탠드를 켰고, 어두웠던 방안은 환한 빛으로 채워졌다.이어 급히 그를 살피던 여은진은 원이림의 엉덩이에 바늘이 하나 꽂혀있는 걸 발견했다.짧고 가는 옷을 꿰맬 때 쓰는 그런 바늘이었다.여은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남자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바늘에 찔릴 수 있어요? 침대에 왜 바늘이...”“...”꽂힌 바늘을 빼며 원이림은 이야기를 얼버무렸다.“괜찮아, 그냥 바늘인데 뭐. 별로 아프지도 않아.”그러고는 또 다짜고짜 몸을 뒤집으며 여은진을 몸 아래로 깔았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손을 뻗어 스탠드를 끄고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 잠깐 벌어진 에피소드를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진행 중이었던 일을 마무리하려는 의지였다.하지만 여은진은 그의 키스를 받아내면서도 오후 그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난데없이 침대에 나타난 바늘을 함께 떠올렸다. 정신을 쏙 빼놓으려는 지금의 행동도 분명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잠깐만.”여은진은 원이림을 밀어내고 다시 한번 스탠드를 켰다.의심이 부풀어 오른 눈으로 빤히 그를 노려봤다. “똑바로 말해요. 아까 그 바늘로 수작 부린 거 맞죠? 말해요, 몇 개나 찔렀어요?”“...”끝내는 발각되었다. 원이림은 이실직고했다. 강주환이 원흉이라고, 그가 시켜서 했다고 불었다.“여보, 나 며칠 전에 운봉 비즈니스 회담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강주환을 만났어. 그 자식이 날 비웃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하라고 아이디어를 내줬어. 바늘로 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