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여전히 온화한 미소로 대답했다.“확실합니다. 윤성아 씨는 지금 이미 임신 8주 차입니다.”윤성아가 임신하기 어렵다는 상태도 사실이었다.“임신하기 어렵다는 말은 임신하지 못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윤성아 씨가 임신하셨잖습니까, 아닌가요?”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녀는 손을 들어 아직 평평한 배 위에 올렸다. 배 안에서 미세하게 움직이는 아이에 윤성아는 그대로 통곡하게 되었다. 의사는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고 알릴 것을 말해준 뒤 바로 나가버렸다.윤성아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동시에 기쁜 듯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나엽 씨, 저 임신했대요. 방금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이미 배 속에 아이가 있대요!”윤성아는 일전에 송유미에 의해 혀가 잘리고 아이도 유산했었다. 그런 그녀를 먼저 찾은 것도 나엽이었다. 그는 그때 당시 윤성아의 곁에서 그녀의 치료를 도왔고 두 눈으로 직접 그녀가 아이를 잃은 고통에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도 봤었다. 그녀는 하마터면 우울증을 앓을 뻔했었다.그리고 지금, 그도 윤성아만큼 기뻤다.“맞아요. 성아 씨는 임신했어요. 성아 씨, 지금 이미 강주환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되었어요. 아이도 가졌고요. 나중에 성아 씨 몸이 완전히 회복된다면 아이와 함께 성아 씨가 바라왔던 삶을 살 수 있을 거예요.”신은 공평했다.예전 윤성아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었으면 그만큼 신은 윤성아에게 더 큰 보상을 내렸다. 그녀는 강주환에게서 벗어난 것도 모자라 아이까지 가지게 되었다. 앞으로 아이와 함께 평화로운 일상을 보낼 수만 있다면, 그건 신이 내려준 제일 큰 보상일 것이다!평정심을 되찾은 윤성아는 나엽에게 그녀가 정신을 잃은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그러자 나엽이 입을 열었다.“그날 밤 우리가 크루즈에서 뛰어내린 후, 성아 씨는 바로 파도에 휩쓸려 버렸어요. 저도 파도에 휩쓸려 성아 씨와 점점 더 멀리 떨어지게 되었고요. 성아 씨 곁으로 어떻게든 가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우연
나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아픔과 슬픔이 담긴 눈빛을 보였다.‘정말 그럴까요? 소식이 없이 지낸 지 벌써 5년이나 되었는데 정말로 돌아올까요?! 정말로 제가 찾을 수 있을까요?'이내 그의 눈빛에 서렸던 안개가 걷히고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 분명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전 그에겐 돈과 권력이 없었다. 그리고 나중에 연예계로 발을 들였을 땐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이젠 달랐다. 모든 사람이 그가 이미 죽어버렸을 거라고 믿고 있었고 심지어 그의 매니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언론에는 이미 그가 연예계를 은퇴했다는 기사가 뜨게 되었다.이건 좋은 일이었다. 5년 동안 열심히 산 끝에 나엽은 돈과 권력을 어느 정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에겐 시간도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만의 그녀를 찾아 떠나도 되었다. 그는 분명 그녀를 찾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깊은 밤, 병실은 아주 고요했다.윤성아는 일주일간 의식 없이 잠들어 있었던 탓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크루즈에 무서운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결국 그녀는 선실에 갇혔던 나엽을 구하고 함께 바다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거센 파도에 휩쓸려 그녀는 정신을 잃게 되었을 때, 어렴풋이 남은 정신으로 생각했었다. 이대로 죽는 걸까 하고 말이다.하지만 그녀는 지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임신도 했다. 윤성아는 저도 모르게 손을 여전히 평평한 배 위로 올리며 살살 어루만졌고 눈가엔 어느새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목멘 소리로 말했다.“아가야, 또 엄마한테 찾아온 거야?”일전에 임신했을 때, 그녀는 아이의 존재를 모른 채 유산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임신하게 되었고 아이가 하늘에서 엄마를 선택할 때 다시 한번 그녀를 선택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서 또다시 임신한 거라고 여겼다.윤성아는 분명 전에 배 속에 있었던 아이가 그녀가 너무 슬퍼하는 모습에 다시 한번 그녀를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했디. 촉촉해진 눈가엔 어느새 눈물 한 방울이 볼을
원이림은 안경 뒤로 보이는 온화한 눈빛으로 윤성아를 보며 얘기했다.“날 좋아하지 않은 것도, 내 감정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도 다 정상적인 일이야. 그래도 우린 아직 친구잖아, 그렇지? 난 내가 노력하면 언젠가 너도 날 좋아할 거라 믿어!”그는 아무런 거리낌 없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물론 만약 끝까지 네 마음에 들지 못하게 되었다면, 그건 내가 부족한 탓이라는 거겠지. 그때면 나도 포기할 거야.”어찌 됐든 지금은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할 생각이었다.원이림은 그윽한 눈길로 윤성아를 보았다.“우린 이미 친구가 되었으니까 예전처럼 나한테 선을 긋지 말아줬으면 해. 너무 거리감이 느껴져. 너도 더는 우리 회사 직원도 아니잖아, 아니야? 그러니까 더는 날 대표님이라고 부르지 마.”원이림은 기대감이 있는 눈길로 윤성아를 보았다.“앞으로 날 이림이라고 불러줘. 내 가족과 친구들은 다 그렇게 날 부르거든.”“...”윤성아는 다소 어색했다. 하지만 진심과 기대가 담긴 그의 두 눈을 보니 그녀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이림 씨.”“응.”원이림은 바로 대답했다. 그는 큰 손을 들어 윤성아의 머리에 올려두더니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애틋함이 묻어나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착하네...”“...”강주환을 제외하고 그녀에게 이런 다정한 행동을 한 사람도, ‘착하지...'라는 말을 한 사람도 별로 없었기에 그녀는 너무나도 어색했다. 다행히 원이림은 바로 손을 거두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윽한 눈길로 휠체어에 앉은 윤성아를 보며 말했다.“기억해. 앞으로도 그렇게 불러줘, 알았지?”“네.”“아, 그리고 또 한 가지 더.”“네?”윤성아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원이림이 그녀에게 말했다.“난 이미 아버지께 네가 내 약혼녀라고 말해뒀어. 네 배 속의 아이도 내 아이라고 했고. 미안해, 너한테 먼저 상의하지 않아서.”원이림은 어쩔 수 없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우리 아버지는 이미 70세가 되셨어. 고집이 세고
윤성아는 아주 긴장해졌다.“이림 씨, 저 연기를 잘 못 해요. 이따 아버님이 만약 처음 언제 만났냐고 물어보시면 어떡하죠? 아이에 대해서는요? 제가 어떻게 대답해야 하죠? 만약 제가 말실수라도 하면 어떻게 해요? 게다가...”원이림은 다정한 눈길로 윤성아를 보며 말했다.“괜찮아. 아버지는 잘 속으시는 분이야. 별로 그렇게 신경 쓰진 않으셔. 어쨌든 너무 긴장하지 마. 그냥 나한테 맡기면 돼.”그렇게 두 사람이 탄 차는 원씨 가문 본가로 들어가게 되었다. F국에선 원이림의 가문은 명망이 높은 가문이었다.초기에 원씨 가문은 F국 전체를 장악하는 가문이기도 했었고, F국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대를 잇는 자손 중 망나니가 생기면서 점점 후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이빨 빠진 호랑이에 속했다. 더군다나 원씨 가문에 다시 정상적이고 능력이 뛰어난 자손들이 생기면서 점차 원씨 가문은 F국에서의 위치를 되찾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백 년을 이어온 가문이었고 이런저런 일들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시대가 점점 발전함에 따라 원씨 가문은 또 한 번 멸문의 위기에 놓였었다. 그렇게 그 후로 그들은 은거에 가까운 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원씨 가문의 직계 가족도 점차 적어졌다. 그들은 역사의 무대에서 은퇴하였고 더는 F국의 모든 것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소소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원씨 가문의 권세는 여전히 F국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F국에 있는 원씨 가문 본가는 아주 크고 거대했다. 커다란 정원 안으로 들어가면 몇 세기 전부터 있었는지 모를 거대한 성이 하나 있었고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쳐 여전히 화려하고 역사적인 느낌이 물씬 풍겨 보는 사람마저 감탄하게 했다. 물론, 정원 안에는 현대적인 인테리어도 많이 추가되었다. 인공분수라든지, 정자라든지 말이다. 정원의 경치는 아주 아름다웠고 경호원의 훈련장소와 각종 분야 도우미의 전용 숙소도 있었다. 그리고 사이사이로 인공지능 시스템도 설치되어 있었다.
원승진은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떠나는 모습을 아쉽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당부하듯 윤성아를 향해 말했다.“성아야, 시간만 나면 날 보러 와야 한다.”그는 아주 자상한 아버지였고 고집이 센 어르신이기도 했다. 칠순이 된 그는 젊었을 때보다 더 자손을 돌보는 것을 원했고 아이들이 그의 곁에 있어 주기를 바랐다. “네, 꼭 올게요.”연이은 나날, 윤성아는 줄곧 원이림의 별장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녀가 임신 20주 차가 되었을 때, 다시 한번 원이림과 함께 원승진을 만나러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두 부자 사이에 깊은 오해가 있음을 눈치채게 되었다.원승진은 나이가 많았기에 원이림과 다투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의 오해는 풀리지 않았고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오해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원승진을 다시 한번 만나러 가게 된 그 날, 두 사람은 대판 싸우게 되었고 서재에서 나오던 원이림의 안색은 잔뜩 어두워진 채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그녀를 데리고 나와버렸다. 나중에 그녀는 원이림이 어머니와 누나가 뜻밖의 사고 당한 일로 원승진과 싸우게 되었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젊었을 때의 원승진은 지금보다 더 고집이 센 편이었고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 탓에 누군가의 원한을 사게 되었고 보복으로 원이림의 어머니와 누나가 세상을 뜨게 된 것이었다. 원이림은 줄곧 이 일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원승진을 미워하고 있었다.윤성아의 칠흑 같은 두 눈동자가 원이림에 향했다.“이림 씨를 제일 아끼고 사랑했던 어머님과 누나가 아버님의 하나뿐인 아내이자 딸이라는 것은 안 생각해보셨어요?! 아버님의 슬픔이 이림 씨보다 덜하진 않았을 거예요. 게다가 분명 후회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살고 계셨을 거예요.”“...”원이림은 그런 생각을 안 해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는 줄곧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고집스러운 결정으로 어머니와 누나가 보복을 당했기 때문이었다.“우리 다시 돌아가요.”윤성아는 따스한 빛을 담은 두 눈으로 그를 보았다.
하지만 안씨 가문에서는 그와 안효연의 사이를 반대한 적이 있었다. 그 탓에 안효연은 집안사람과 싸우게 되었고 사고를 당하게 된 것이었다. 만약 그가 지금 바로 안씨 가문에게 알려 안효연을 데려가게 한다면, 나엽은 두 번 다시 안효연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 그는 이기적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저 안효연의 곁에서 안효연을 지켜주고 돌봐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일단 안효연의 기억부터 되찾아 주려고 했다. 그리고 남은 일은 안효연이 기억을 되찾은 후에 다시 해결하려고 했다.윤성아가 말했다.“어떻게 도와주면 되는데요?”나엽은 윤성아에게 말했다.“성아 씨는 효연이랑 똑같이 생겼잖아요. 그 사람들도 쌍둥이라고 생각할 거예요.”나엽은 윤성아를 안효연의 쌍둥이 동생인 척 데려가 안효연을 F국으로 데려올 생각이었다.윤성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나엽의 계획은 안효연을 속이는 것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그건 사기잖아요.”“하지만 성아 씨, 이건 그냥 사기가 아니에요. 하얀 거짓말이죠. 효연이를 여기로 데려오기만 하면 바로 큰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해줄 거예요. 기억을 되찾으면 효연이도 모든 걸 알게 될 거예요. 효연이는 성아 씨를 탓하지 않을 거예요!”나엽은 애원하는 눈빛으로 말했다.“제발 도와줘요. 그냥 딱 한 번만 효연이 동생인 척해줘요. 저랑 같이 효연이를 이곳으로 데려와요, 네?”윤성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제가 같이 가 드릴게요.”비록 그녀는 안효주인 척 연기하는 것이 싫었고 거짓말하는 것도 싫었지만 이 모든 건 나엽과 안효연을 도와주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하기로 했다.“고마워요, 성아 씨.”나엽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더욱더 마음이 조급해졌다.“그럼 우리 지금 바로 운성시로 가요. 가서 효연이를 데리고 와요!”“그래요.”윤성아와 나엽은 그렇게 함께 운성시로 가게 되었다.이때의 운성시는 겨울이었다. 윤성아와 나엽이 비행기에서 내렸을 땐, 운성시에선 눈이 내리고 있었다. 큰 눈이 거위 털처럼 흩날리고 있었고 마치 운성시
기사는 놀라 바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강주환은 바로 문을 열고 익숙한 형체가 보이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하하.”강주환은 씁쓸한 듯 웃었다. 이번에도 환각이 생긴 거라 생각했다. 윤성아를 잃어버린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그동안 그는 윤성아와 닮은 사람만 있으면 바로 달려가 확인했다. 하지만 번마다 그의 허상이었다. 그녀가 너무 그리운 나머지 환각이 생기게 된 것이었다. 강주환은 씁쓸한 얼굴로 몸을 틀어 다시 차에 탔다. 그의 얼굴엔 허탈감과 공허감이 남아있었다.“다시 운전해.”기사는 감히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의 말대로 바로 시동을 걸었다.이때, 강주환이 아까 허상을 보았던 곳에서는 나엽과 윤성아, 그리고 안효연이 밀크티 가게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윤성아와 안효주는 손에 각각 따뜻한 밀크티를 손에 들고 있었고 나엽은 두 사람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애틋하고 그윽한 눈길로 안효연을 보고 있었다. 세 사람은 밀크티 가게에서 나와 계속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높은 건물을 지나쳐 옆으로 방향을 틀자 드디어 나엽이 말한 식당에 도착하게 되었다. 식당 주인은 40대의 여사장이었다. 여사장은 기억력이 아주 좋았다. 비록 나엽과 안효연은 몇 년 동안이나 찾아온 적이 없었지만 바로 한눈에 나엽과 안효연을 알아보았다. 다만 살짝 머뭇거렸다. 여사장은 안효연의 이마에 생긴 흉터 때문에 안효연과 똑같이 생긴 윤성아를 안효연으로 착각하게 된 것이었다.“하하, 그때도 두 사람이 그렇게 사이가 좋더니, 그간 찾아오지 않은 게 이미 결혼한 거였어요? 심지어 아이까지 생겼네요?! 축하해요!”여사장은 넉살 좋은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나엽과 안효연이 결혼하고 아이까지 생긴 것에 아주 기뻐했다. 심지어 특별히 축하의 의미로 두 개의 요리를 더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나엽은 바로 안효연의 손을 잡으며 여사장에게 설명했다.“잘 못 보셨어요. 임신한 사람은 효연이 동생이에요. 이 사람이 효연이에요.”여사장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
하지만 그는 그래도 안효연의 기억이 돌아오기를 바랐다. 18년간의 기억을 잃고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있으니 어딘가 부족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안효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다정한 두 사람이 곁에서 걱정하고 있으니 마음속 어딘가가 따스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녀도 얼른 기억을 되찾고 싶었다. 하지만 기억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녀가 기억해내려고 하면 할수록 극심한 두통이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는 두통이 느껴졌다. 안효연은 결국 미간을 찌푸렸고 아프다고 말하지도 않았지만, 나엽은 바로 알아챘다.“효연아, 그만 생각해. 괜찮아, 언젠가는 생각날 거야.”그는 큼지막한 손으로 그녀의 작은 손을 감쌌다.“지금 우리는 그냥 산책하고 있는 거야. 야경만 구경하면 돼.”안효연은 웃으면서 대답했다.“그래.”곧이어 세 사람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윤성아도 두 사람과 같이 가고 싶었지만 이미 임신 40주 차가 지난 그녀는 배가 너무나도 무거웠다. 그녀는 결국 더는 걸을 수가 없다고 판단해 자신 때문에 두 사람의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바로 나엽에게 말했다.“효연 언니랑 계속 산책하면서 둘러봐요. 난 먼저 호텔로 돌아가 볼게요.”나엽은 바로 윤성아가 힘들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여 그와 안효연도 윤성아와 함께 호텔로 돌아가려 했다.“괜찮아요.”윤성아는 거절했다. 그녀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두 사람은 계속 산책하고 계세요. 여긴 호텔이랑 멀지 않으니 저 혼자서도 찾아갈 수 있어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요.”하지만 만삭이 된 그녀의 모습에, 조금 전까지 눈이 내린 탓에 길이 아주 미끄러웠기에 나엽과 안효연은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그래서 두 사람은 먼저 윤성아를 호텔로 데려다주기로 했고 다시 나와서 산책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나오기로 했다.“정말로 괜찮아요.”윤성아는 웃으면서 말했다.“제 몸은 제가 더 잘 알아요. 갈 때 조심히 갈 거고, 힘들면 쉬다가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요. 게다가 호텔도 멀지 않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