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우는 코웃음을 쳤다.“너 지금 나를 가르치는 거야?”“의견을 드렸을 뿐입니다.”“진 비서...”이선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냉정하게 그를 훑어보았다. 목소리는 가벼우면서 차가웠다. 전에 있던 부드러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오랫동안 좋은 사람인 척 행동하다가 정말로 자기가 좋은 사람인 줄 아는 건 아니지?”그러자 진우진이 반박했다.“제가 좋은 사람인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님께서 강제로 심윤아 씨를 자신의 곁에 두려고 하는 건 당당한 일이 아닌 것 같네요.”이선우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진 비서 말은 그렇게 자신 있게 하지만 그래도 부모님을 위해서 윤아를 내 곁으로 데려다줬잖아?”이에 진우진은 더 이상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잠시 뒤 진우진은 겨우 입을 열었다.“네, 저 당당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대표님은 저보다 더 비겁한 걸요.”그러고는 말을 마치고 돌아서서 자리를 떠났다.이선우는 제 자리에 선 채로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무언가가 생각난 듯 눈빛이 점점 더 차가워졌다.옆에 있던 고민환도 무언가가 생각난 듯 물었다.“대표님, 이제 심윤아 씨도 돌아왔으니 저 사람은...”이선우는 그가 누구를 말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지금 그것을 신경 쓸 기분이 아니라 그에게 경고하듯이 눈빛을 쏘아붙이고는 이내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아직 그에게 진수현이라는 큰 골칫거리가 남아 있다. 원래는 심윤아를 자신의 곁으로 데려오고 나면 손을 쓰려고 했다.그런데 심윤아가 기억을 잃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만약 그녀가 정말로 아무것도 기억을 못하고 진수현까지 잊었으면 여기서 멈춰도 되지 않은가?이선우는 심윤아의 침대 옆으로 가서 앉아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았다.“만약 네가 깨어나서 순순히 내 말을 따라 내 곁에 남는다면 난... 그 사람을 놓아줄 수 있어.”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심윤아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들을 수가 없다.오후가 되어서야 심윤아는 비몽사몽 깨어났다.이제 깨어난 후의 기억은 있기 때문에 다시 일어났을 때 눈앞
“목이 불편한 것 말고 다른 곳은 불편한 데 없어?”심윤아는 그의 말을 듣고 자세히 느껴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없어.”그러자 코를 만지던 이선우는 왠지 마음이 켕겼다. 그때 당시만 해도 그는 그녀가 이런 일들을 생각하지 않게 하는 데만 신경을 썼지 자신이 손으로 내려친 후에 후유증이 남을 거라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목이 아프다는 그녀의 말에 이선우는 마음이 아팠다.“아니면 내가 주물러 줄까?”그는 말을 할 때 이미 허리를 굽혀 그녀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의 손이 그녀의 목에 닿으려고 했다.지난번에는 그가 심윤아를 부축하여 힘이 없었지만, 이번에 그녀는 앉아 있었기에 저항할 힘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손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옆으로 비켜 이선우의 손길을 피해버렸다. 그러자 이선우는 잠시 멈칫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선우가 노골적인 눈빛으로 쳐다보자 심윤아는 저도 모르게 그의 시선을 피하며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니. 주물러 주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하면 돼.”말을 마친 그녀는 손을 뻗어 통증이 느껴지는 부위를 부드럽게 주물렀다. 이선우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시 자리에 앉자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에야 이선우는 입을 열었다.“배고프지? 뭐 좀 먹을래?”정상적이라면 그녀는 어제 비행기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니 이미 무척 배고플 것이다. 다친 곳은 머리이니 뭐든 먹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심윤아는 고개를 저었다.“걱정해 줘서 고마운데 배고프지 않아.”“배고프지 않다고?”이선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너 아무것도 안 먹은 지 얼마나 지났는지 알아?” “뭐?”그의 질문에 심윤아는 조금 당황한 듯 손을 뻗어 배를 가리며 말했다.“근데 진짜 전혀 배고프지 않아.”왠지 모르게 심윤아는 먹고 싶은 욕구가 조금도 없었다. 이선우가 보기에도 그녀는 정말 먹고 싶지 않은 것 같았
이선우는 얼굴도 붉히지 않고 심윤아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약혼자?”그가 자신의 약혼자라니? 친한 친구 정도로만 생각했지 그와 이렇게 친밀한 사이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심윤아는 눈을 내리깔고 자신의 붉은 입술을 감쳐물었다. 만약 그가 정말 자신의 약혼자라면 왜 그의 접촉이 이렇게 꺼려지는 걸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안 믿어?”그 말에 심윤아는 고개를 들고 이선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다만 믿는지 안 믿는지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다.“윤아야, 네가 기억을 잃기 전에 우리 싸워서 사이가 틀어졌는데, 넌 나한테 토라진 상태였어. 그런데 기억을 잃었는데도 계속 화내고 있는 건 아니지?”“싸웠다고?”그러면 그녀가 신체적으로 거부감을 느낀 이유가 그와 싸워서란 말인가?“그래, 그만 토라져. 너 지금 병세 안정이 필요하니까. 이후부터는 내가 돌봐줄게, 응?”이유는 모르겠지만 심윤아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았다.“네가 내 약혼자라고? 진짜야?”말을 마친 그녀는 이선우의 얼굴을 응시하며 그의 반응을 살피려고 했다. 아쉽지만 이선우의 표정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고 평범해 보였다.“뭐야, 싸웠다고 약혼자도 인정하기 싫은 거야?”심윤아는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말을 하지 않자 이선우 역시 조용히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심윤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 넌 내 약혼자가 아니야.”이 말에 이선우는 마음이 뜨끔했다. 기억을 잃었는데 어떻게 약혼자가 아닌 걸 알았을까?어떻게 입을 열어 물어볼지 망설이는 순간, 심윤아가 그를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넌 전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야.”실로 가벼운 한마디였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그 가벼운 한마디는 이선우의 가슴을 꿰뚫어버리듯이 날카롭게 그의 마음에 꽂혔다.기억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어떤 말을 해야 그에게 상
심윤아는 미간을 살짝 구겼다.“난...”그녀는 이선우를 이렇게 대하는 게 그에게는 확실히 불공평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가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선우가 다가올 때면 심윤아는 자기도 모르게 옆으로 피했다. 이선우의 움직임도 그녀와 거의 가까워졌을 때 멈췄다. 그는 힘없이 한숨을 내쉬었다.“그래. 네가 지금 기억을 잃어 나한테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 너에게 받아들일 시간을 줄게.”이선우는 나지막이 말했다.“네가 나에 대한 감정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널 건드리지 않을 테니, 더는 내 정체까지 부정하지 말아줘. 응?” 그는 자신과 협상하는 것 같았다. 심윤아는 분명 조금 거부하고 있었다. 그녀는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정확히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고, 물론 알 수도 없었다.“조금 있다가 음식이 오면 먼저 밥부터 먹어, 응?”그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심윤아는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아직 배가 많이 고픈 것 같지는 않았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거부한다 해도 지금 당장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제일 좋기는 가족이 곁에 있어 주는 거였다.이런 생각을 하던 심윤아가 물었다.“그런데 내 휴대폰 어디 있어?”그 말을 들은 이선우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그녀가 이 상황에 휴대폰을 찾을 정도로 똑똑할 줄은 몰랐다.“네가 사고가 나서 병원에 올 때 없어진 것 같은데 못 찾았어.”“뭐?”“그때는 너를 병원에 데려오는 것만 신경 쓰느라 휴대폰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 아니면... 내가 다시 사줄까?”휴대폰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누군가가 바로 주워갔다는 말일 텐데 다시 사지 않고는 다른 방법이 없어 심윤아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그럼 우리 부모님 연락처 알려줄래?”“왜?”이선우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너 혹시 아버님께 사고 난 걸 말하려고?”“아버지?”“그래, 너 어릴 때부터
“윤아야, 밥 먹어.”조금 전 이미 그에게 대답했던 터라 심윤아는 그의 부축을 받아 침대에서 일어나 테이블 앞으로 왔다. 이선우는 그녀를 대신해 밥을 떠서 그녀의 앞에 가져다주었다.“여기.”“고마워.”심윤아가 밥그릇을 받자 이선우는 젓가락도 건넸다. 눈앞에 넘쳐나는 음식을 바라보던 심윤아는 결국 젓가락으로 밥을 한입 떠서 입에 넣었다. 밥은 별다른 맛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 본인의 원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씹는 순간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옆에 있던 이선우는 그녀가 반찬 없이 밥만 먹는 것을 보고는 젓가락을 들고 그릇에 몇 가지 반찬을 짚어주었다. 심윤아가 거절하기엔 이미 늦었다.“영양이 있는 걸 먹어. 맨 밥만 먹지 말고.”“고마워...”왠지 모르게 그녀는 그가 짚어준 그릇에 담긴 음식을 보자 속이 무척 더부룩했지만, 억지로 입에 넣었다.“우웩...”결국 음식이 입에 들어가자마자 심윤아의 입에서 주체할 수 없는 구역질 소리가 튀어나왔다. 손에 들린 그릇과 젓가락도 함께 테이블에 올려놓은 뒤 재빨리 입을 가리고 일어나 화장실 방향으로 뛰어갔다.“윤아야.”이선우는 깜짝 놀라며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쫓아갔다. 심윤아는 화장실 세면대에 대고 헛구역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그녀는 몹시 불편한 듯 세면대에 엎드려 담즙까지 토해냈다. 위는 텅텅 비어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아 계속 헛구역질만 했다. 이선우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이 그녀를 대신해 이 모든 걸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하지만 그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던지라 그저 손으로 심윤아의 등을 두드려줄 수밖에 없었다. 한참 후에야 심윤아는 진정됐지만, 온몸에 힘이 빠져 벽을 따라 거의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이선우는 재빨리 그녀를 안아 들고 화장실을 나왔다.“괜찮아?”그러나 그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심윤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눈을 감은 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이선우는 더는 그녀를 방해할 수 없어 그녀를 침
“응, 아마도.”“그럼 나중에 단호박죽 가져오라고 할까?”단호박죽?단호박죽 맛을 생각하니 심윤아는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아 승낙했다. 이선우는 곧장 나가서 고민환에게 지시했다. 그리고 자신이 의심하는 바를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고민환은 따라서 미간을 구겼다.“혹시 심윤아 씨 몸이 불편해서 생선이나 고기 같은 기름진 음식을 못 드시는 건 아닐까요? 앞으로 며칠 동안은 가벼운 식단으로 준비하면 어떨까요?”“그래, 우선 담백한 음식으로 준비해. 먼저 건강부터 챙기는 게 좋겠어.”하지만 단호박죽을 가져온 후에도 심윤아의 식욕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먹다가 토하지는 않았지만, 몇 입 먹지도 않았는데 더는 먹기 싫었다.이선우는 심윤아가 너무 적게 먹는 것을 지켜볼 수 없어서 심윤아가 그릇을 내려놓자, 그는 그릇을 집어 들고 죽을 한 숟가락 떠서 후후, 불어서 식히고는 그녀의 입에 가져갔다.“윤아야, 조금만 더 먹을래?”심윤아는 미간을 찌푸리고 입가에 가져다준 죽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눈가에는 혐오스러운 표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먹기 싫어.”“방금 너무 적게 먹었잖아. 밤에 배고플 텐데 한 입만 더 먹으면 안 돼?”심윤아는 눈을 감고 이선우의 말을 무시해 버렸다.“윤아야?”심윤아는 아예 몸을 돌렸다. 이선우는 하는 수 없이 그녀를 달래보았지만, 무슨 말을 해도 심윤아는 더 먹지 않았다. 결국 이선우는 그릇을 내려놓고 진우진에게 전화를 걸어 심윤아가 지난 이틀 동안 뭘 먹었는지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돌아온 대답은 심윤아가 근심 걱정이 가득해 이틀 동안 거의 먹지 않고, 비행기에서 억지로 조금 먹었다는 것과 출발하는 날 밤에 맥주 반 컵을 마셨다는 것뿐이었다. 많이 먹지도 않고 맥주 반 컵을 마셨다는 말을 들은 이선우는 머리가 아팠다. 한밤중에 차가운 맥주를 마셔서 위가 상한 건 아닌지, 그래서 지금 음식을 먹기 싫은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혹시 위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정밀 검사를 받아봐야 할 것 같았다. 이후 이선우는 심윤아게게
‘뭐 좀 먹으라고?’그의 관심에 윤아는 마지못해 웃으며 말했다.“난 다 괜찮아.”사실 입맛이 전혀 없었는데 윤아 자신도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설마... 거식증?’‘아니면 요 며칠간 기억을 잃은 탓에 좀 실감이 나지 않는 건가?’요컨대 이때 윤아는 선우에게 이끌려 집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속이 텅 비어 있는 것 같아 도무지 편하지 않았다.그리고 무언가 중요하게 할 일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에 초조했지만 그게 무엇인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그러나 기억을 잃은 윤아는 이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선우의 숙소로 돌아오자 하인들이 모두 마중을 나왔다. 그들은 모두 긴장해서 서 있었다. 일전에 집사가 그들에게 윤아에 대한 일을 언질을 주었다. 윤아가 사고를 당하며 머리를 부딪쳐 다쳤고 이때의 기억은 사라졌으니 앞으로는 선우의 약혼녀라고 말이다. 그리고 모두 윤아의 앞에서 괜한 내색을 해서는 안되고 함부로 말을 해서도 안된다며 신신당부했다.기억상실증에 걸린 윤아를 함께 속이라는 격이었다.사람을 속이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닌 건 모두 알지만 그들은 단지 선우가 돈을 주고 고용한 한 무리의 일꾼일 뿐이고 사건의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고용주는 그 많은 돈을 썼고 그들은 고용주의 뜻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그들 중 윤아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윤아가 어떤 여자인지 궁금해하고 있다. 도대체 어떤 여자길래 선우를 좋아하지 않는지, 얼마나 대단한 여자길래 그 대단한 선우가 기억을 잃은 틈을 타 비열하게 차지하려 할 정도인지 말이다.윤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녀의 외모는 최고의 관심거리였다.차 한 대가 정문에서 멈추었고 운전기사가 먼저 차에서 내렸다.기사가 문을 열어주자 선우가 잇따라 내렸고 그대로 한쪽으로 돌아서 반대편 문을 열었다. 그는 세심하게 손을 뻗어 지붕을 가린 채 차에서 내리는 한 여자를 태연하게 감쌌다.사람들은 그의 행적을 따라다녔고 마침내 그 여자의 생김새를 똑똑히 보았다.수수하게 차려입은
이러한 횡포에 윤아는 약간 불쾌감을 느껴 선우을 올려다보며 두 사람이 함께 지내는 방식이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녀는 재빨리 손을 뺐다.이미 차에서 내린 뒤라 선우는 그녀를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그녀를 부축하러 쫓아오지도 않았다.“방으로 데려가 쉬게 하세요.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는지 확인해 볼게요.”선우가 떠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윤아는 하인의 뒤를 따라 앞으로 걸어갔다.하인이 그녀를 방으로 데리고 간 후에 공손히 몇 마디 하고는 다시 물러났다.방에는 혼자만 남아 있었고 윤아는 주위를 둘러보았다.주위의 환경이 전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마치 이곳에 처음 들어온 것처럼 말이다. 윤아는 비록 예전의 기억은 없지만 잠재 의식적으로 만약 자신이 실제로 이곳에 살았었다면 방금 들어왔을 때 인상이 있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아주 조금이나마.하지만 전에 생각하던 고통이 윤아는 조금 무서워서 더 이상 곰곰이 생각하지 못하고 신발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침대에 눕자마자 눈이 절로 감겼다.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녀는 피곤해서 시도 때도 없이 자고 싶어 한다.아마 머리를 다친 후유증이겠지, 하고 윤아는 생각했다.그렇게 윤아는 선우가 그녀를 찾아올 때까지 잠을 잤다.선우가 문을 밀었을 때 그녀는 자고 있었고 그가 문을 밀치는 동작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윤아야.”선우가 그녀를 여러 번 밀치고 나서야 그녀는 유유히 깨어났고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봤다.“왜 그래?”“밥 먹어. 까먹었어? 돌아올 때 우리 약속했잖아. 집에 있는 셰프한테 맛있는 거 해달라고 할게.”그가 이렇게 일러 주자 윤아는 비로소 생각이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밥도 먹어야지.”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몸은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선우은 곧바로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했다.“괜찮아?”눈앞이 캄캄할 뿐인 윤아는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괜찮아. 빈혈이 좀 있는 것 같아.”‘빈혈?’그녀를 부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