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다. 설마 너무 오바했나? 이럴 줄 알았으면 너무 호들갑 떨지 말았을 걸.’하지만 윤아가 임신한 와중에 수현이 다른 여자와 얽혀있는 것을 알았을 때 연수는 그저 윤아가 안쓰러웠고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다만 윤아를 돕고 싶었지 다른 생각은 없었다.“네?”연수가 눈을 피하는 것을 보자 윤아는 설마 들었을까 하는 마음에 심장이 덜컹했다.연수는 평소에 겁이 많기는 했지만 머리를 제법 빨리 굴렸다. 그래서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자마자 그녀는 빠르게 대처했다.“아, 사실은 어젯밤 일 때문에요.”연수는 머쓱한 듯 뒤통수를 쓱쓱 긁으면서 말을 이었다.“만약 저만 아니었어도 윤아 님이 이강훈 도련님에게 그런 소리를 듣는 일도 없었을 거잖아요. 그래서 되게 미안했거든요.”‘이렇게 말했으니 윤아 님께서 의심하지 않으시겠지?’역시나 연수의 말을 듣자 윤아의 안색은 조금 나아졌다.어젯밤 일 때문이었구나. 그런 거라면 이해가 되었다.이렇게 생각한 윤아는 옅게 웃음을 흘렸다.“어젯밤 일은 그냥 사고였어요. 교훈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잘 기억해 둬요.”“네.”연수는 힘껏 머리를 끄덕였다.“윤아 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 제대로 기억할게요. 다시는 그런 실수 하지 않을 거예요.”이렇게 장담한 후, 연수는 곧 화제를 돌렸다.“그래서 말인데요. 윤아 님, 점심에 뭘 드시겠어요? 제가 가서 사 올게요.”“됐어요.”윤아는 연수가 사 온 디저트를 들고 입을 열었다.“어제 일 때문이라면 이 케이크로 퉁 쳐요.”마침 배가 고팠는데 이 케이트면 족했다.연수는 윤아가 자기가 사 온 케이크를 먹는 것을 보자 속으로 아주 기뻤다. 윤아에게 어떤 것을 사주면 좋을지 몰라서 이 정교하고 예쁘게 만들어 진 케이크를 샀는데 마침 그녀의 입맛에 맞았다니, 제법 기분이 좋았다.점심을 사 오지 말라니 그러면 앞으론 윤아에게 작은 디저트나 준비하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말하기를 임신했을 때 맛있는 게 당긴다고 했으니까.아까 반응 빠르게 어젯밤 일을 언급해서 참 다행이었다.
오 년 전,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했던 선우와 비교했을 때 지금의 그는 더 듬직해졌고 사람들의 시선을 앗아가는 매력이 있었다.“이선우.”룸에 있던 사람들은 일어서서 그에게 인사했다.선우도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이면서 주위를 훑어보았다. 보고 싶었던 사람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살짝 허전했다.‘오늘 밤에 오지 않으려는 건가?’아닐 것이다. 수현도 아직 오지 않았다. 지금 상황으로 보아선 수현과 함께 오겠지.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 뒤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저기...”“소영아!”여자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룸에서 어떤 사람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소영은 그제야 제대로 찾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선우는 고개를 돌리고는 섹시한 옷차림을 한 소영을 힐끗 보고는 그녀를 향해 머리를 끄덕였다.소영의 눈동자엔 놀라움이 스쳤다. 그녀는 앞에 선 이 남자의 익숙한 눈매를 보자 누군지 금세 알아챘다.“이선우?”소영도 오래전부터 수현과 그의 친구들과 알고 지냈다. 약간 놀란 듯한 그녀의 물음에 선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손을 들어 안경을 위로 밀고는 인사했다.“오랜만이야.”소영의 일행들은 이렇게 젠틀하고 우아한 선우를 보자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와... 너무 잘생겼잖아.소영도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정말 오랜만이네. 선우 너 되게 많이 변했다. 하마터면 알아보지 못할 뻔했어.”이 말을 듣자, 선우는 잠시 멈칫했다. 안경 뒤의 눈동자엔 의아하다는 듯한 정서가 스쳤다. 그는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많이 변했다고?”그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기분에 크게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었다. 하지만 방금 그를 본 사람들의 표정은 매우 강렬했다. 수현의 여신님이라고 불리는 이 눈앞의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보니 몇 년간 많이 변한 듯싶었다.하지만 이렇게 많이 변했는데 누구는 그를 보면서 아무 반응도 없었다.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고 그냥 나라는 사람을 아예 신경 쓰
룸에 있던 누군가가 물었다.“선우 환영식에 진수현 와?”“오겠지. 둘이 얼마나 사이가 좋았다고.”“그런데 왜 아직 안 온 거야?”그러게. 왜 아직 오지 않은 것일까?소영은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한눈 보았다. 여기에 오기 전 수현에게 어디까지 왔냐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장이 없었다. 그래서 소영은 그가 운전하느라 답장하기 어려웠다고 추측했다.하지만 시간이 이렇게 오래 지났고 또 자신도 도착했는데 수현은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고 답장도 없었다. 소영은 조금 걱정되었다.친구는 소영이 핸드폰을 들고 있는 것을 보자 좋은 꾐수가 생각났다. 그러고는 사람들 앞에서 높은 소리로 말했다.“소영아, 네가 한번 수현 씨에게 전화 걸어보지 않을래? 네 전화라면 분명 받을 거야.”이 말을 듣자, 소영은 저도 모르게 그 친구를 보았다. 친구는 그녀에게 눈짓을 건네며 빨리 전화 치라고 했다.사실 소영도 친구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그녀와 수현의 관계를 증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하지만... 전에 보낸 메시지에도 답장하지 않았던 수현이 전화를 치면 받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만약 수현이 받지 않는다면 사람들 앞에서 큰 창피를 당하는 일이었다.이렇게 생각한 소영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됐어.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데 수현 씨 아마 엘리베이터에 있지 않으면 운전하고 있을 거야. 전화 쳤다고 해도 받지 않을 수도 있어.”안타깝게도 룸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다.“아 뭐 어때. 한번 쳐봐.”“그러게, 소영아. 네가 수현 씨 마음속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우린 다 알고 있어. 네 전화라면 운전하면서도 분명히 받을 거야.”이렇게 말하자 다들 떠들면서 소영더러 빨리 전화를 치라고 부추기고 있었다.소영은 조금 난처했다. 그녀는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 저도 모르게 맞은 쪽에 있는 선우를 보았다.하지만 선우는 이 떠들고 있는 상황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듯 머리를 숙인 채 핸드폰 스크린만 보고 있었다.“소영아, 한 번만 쳐
만약 둘이 정말 다른 감정이라도 있었으면 사귄 지 오래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입고 나타났을 때 다들 살짝 안타까워하며 참지 못하고 소영을 바라보았다.소영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둘이 이렇게 입고 나타난 순간 그녀의 체면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일이 쉽게 좌우지할 수 없게 되니 혼란스러움만 점점 커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뭘 어찌할 수도 없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한 일을 만들어서는 안 되었다.이렇게 생각한 소영은 윤아의 곁으로 다가가 친밀하게 그녀의 팔짱을 끼었다.“괜찮아요. 안전하게 도착한 거면 돼요. 윤아 씨 저와 함께 앉을래요?”윤아는 소영의 진짜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그녀가 사람들 앞에서 가면을 쓰고는 연기하기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녀가 가까이 다가올 때 윤아는 눈을 감았다 뜨고는 거절하는 대신 소영의 옆자리에 앉았다.이 장면을 보자 사람들은 놀라워했고 시선을 가끔 소영과 윤아의 얼굴에 두면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수현도 자연스럽게 선우의 옆자리에 앉았다.“왔어?”이 말은 수현이 앉은 후 한 거지만 선우의 시선은 줄곧 윤아에게 머물러 있었다,“응.”수현은 선우를 한눈 훑어보았다. 선우가 어디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뭔가 떠오른 듯 그 쪽에 시선을 돌렸는데 역시 윤아가 있었다. 순간 표정이 굳어졌고 눈동자엔 차가운 한기가 맴돌았다.서늘한 시선이 자신에게 닿은 것을 느낀 윤아는 고개를 돌리자마자 수현과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멈칫하고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아끼는 여자 옆에 앉은 게 불만이라 이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본다고 생각되었다. 쳇, 이럴 줄 알았으면 사람들 앞에서 거절할 거 그랬다. 다만 수현이 그 장면을 보았다면 더 화낼 게 뻔했지만 말이다.소영도 수현을 보고 있었다. 그가 들어와서 자리에 앉자마자 처음으로 본 사람이 윤아인 것을 알아채자,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불안은 더 커져만 갔다.그녀는 눈을 내리깔고는 입술을 깨물면서 손을 꽉 맞잡았다.네 사람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고 이
이 말을 할 때 소영은 수현의 마음을 시험해보려는 의도였다.요즘 수현의 행동이 너무 이상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윤아가 진 신세로 협박하지만 않았으면 윤아가 수현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더 웃긴 건 윤아가 그녀의 연적이라고 해도 약속을 지키는 점에선 믿을 만하다는 거였다. 그렇지 않으면 소영이 갖은 수단을 써가면서까지 윤아더러 신세 지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아니나 다를까, 소영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룸안의 사람들은 더 떠들었다.“어떤 신분인데?”다들 웃으며 물었다.“소영아, 설마 유부남 신분이라고 말하는 거야?”“세상에, 저 둘 가짜 결혼이잖아. 쇼윈도라고. 수현 씨 마음속엔 너뿐이라는 거 누가 몰라.”“그러게. 저 두 사람이 소꿉친구잖아.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 그러니 둘 사이에 어떻게 사랑이 생기겠어.”한마디에 한마디를 이어 말하는 소리를 들은 수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저도 모르게 윤아를 보았다.윤아는 담담한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과일 주스를 홀짝거렸다. 한입 마셔보니 제법 맛있자 기분이 좋은지 눈동자마저 반짝거렸다. 그리고는 또 한 모금 홀짝이더니 꿀꺽꿀꺽 마셨다.수현: “...”윤아는 임신하고 나서부터 입맛이 이렇게 바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예전엔 이런 과일 주스를 즐겨 마시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너무 맛있었다.일 분도 지나지 않아 주스는 한 방울도 남지 않았다.소영의 친구인 박나래도 이런 윤아를 발견하고 눈썹을 찌푸렸다. 그녀가 이렇게라도 민망함을 감추려 한다고 여겼다.오늘 저녁 이룸에서 대부분 사람은 술을 시켰고 술을 마실 수 없는 일부분의 사람들은 과일 주스를 시켰다. 그중에 윤아도 있었고, 소영도 술을 마실 수 없다며 우유를 시켰다. 윤아는 그 냄새가 별로였다.하지만 뜻밖인 것은 선우 앞에도 과일 주스가 놓여있었다. 술을 마시지 못한다며 웨이터를 불러 주스를 시켰다.윤아는 주스를 다 마시고는 컵을 손에 들고는 조금 아쉬워했다.민망하긴 했지만, 웨이터에게 한 잔 더 달라
“주연아...”소영은 친구의 팔을 끌어당기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그만 말해.”“소영아, 왜 날 끌어당기는 거야? 난 그저 윤아 씨와 사이좋게 얘기 나누고 있었을 뿐인데. 윤아 씨도 이런 거 신경 쓸 정도로 속 좁지 않죠?”황주연이 이렇게 말하고 있을 때 윤아는 저만치에 있는 와인잔을 들고 살랑살랑 흔들었다. 와인잔 속 붉은색 액체는 불빛 아래에서 일렁이며 아름다운 빛깔을 내고 있었다.이러는 윤아를 보자 주연의 안색은 황급히 변했다.“어머, 뭐 하려는 거예요?”윤아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의아한 눈빛으로 주연을 보았다. 잠깐 후 그녀는 알겠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왜요? 내가 뿌리기라도 할까 봐요? 걱정하지 말아요. 난 속 좁은 사람이 아니니까. 와인과 그쪽 얼굴이 사이좋게 부딪치는 일은 없을 거예요.”윤아는 비록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비꼬아서 말한 덕분에 주연의 표정은 더 안 좋아졌다. 참지 못하고 화내려 했을 때 옆에 있던 소영이 그녀의 팔을 잡으며 눈짓을 건넸다. 주연은 그제야 진정했지만 불쾌한 티를 팍팍 내며 입을 삐죽 내밀었고 눈엔 살기로 가득했다.“윤아 씨, 미안해요. 내가 주연이 대신해서 사과할게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예요. 그러니까 용서해 주면 안 돼요?”이 말을 듣자, 윤아는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당연히 용서해야죠. 난 마음이 넓은 사람이니.”강소영: “...”쌍년!소영은 가만히 주먹을 꽉 주웠다.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소영 옆의 갈색 머리 여자가 비꼬면서 입을 열 때부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나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역시 그 여자는 그들을 실망하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상했던 만큼 스케일이 크지는 않아 조금 아쉬웠다. 본처인 윤아가 너무 담담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저 갈색 머리 여자가 아무리 비꼬면서 윤아의 기를 채우려고 팔짝 뛰어도 상대방이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한마디에 철퍼덕 땅바닥에 엎어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다들 속으로 갈색 머리 여자를 멍청하다고 욕했
순간, 룸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차가운 공기로 가득했다.아까 떠들던 사람도, 강 건너 불구경하던 사람도 지금은 그저 침묵만 유지했다.수현은 자리에 앉아 갈색 머리 여자를 차갑게 쏘아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은 마치 날카로운 검처럼 사람을 베어버릴 것만 같았다.그 갈색 머리 여자는 소영의 친구 황주연이었다. 수현의 눈빛에 주연의 거만한 기세는 순간 수그러들었고 목을 움츠리고 감히 고개를 들 엄두를 못냈다.아까 실수로 수현과 눈을 마주쳤는데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았다. 주연은 너무 두려워서 소영의 뒤에 숨었다.지금 소영은 더 이상 웃음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그녀는 자기 몸 뒤에 숨은 주연을 한눈 보고는 별수 없어 수현에게 사정했다.“수현 씨, 화내지 마. 주연은 그저 성격이 시원시원해서 입바른 소리를 자주 해. 대신 나쁜 애가 아니라서 악의는 없어.”이렇게 말한 후, 그녀는 또 주연에게 사과하라고 말했다.“주연아, 빨리 윤아 씨에게 사과해. 얼른.”주연은 내키지 않았다. 윤아에게 사과하는 일은 그녀 자신을 죽이는 것보다 더 괴로웠다. 하지만 수현의 그 사나운 눈빛을 떠올리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윤아를 보며 이를 악물면서 말했다.“내가 잘못했어요.”“윤아 씨, 주연이 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화 풀어요. 네?”윤아는 조용히 앉아있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다.대신 수현이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올리며 차갑게 쏘아붙였다.“사과만 하면 끝인가? 아까 뭐 하려 했지?”이 말에 주연은 황급히 변명했다.“아, 아무것도 안 하려고 했어요.”“손찌검하려고 했잖아. 아닌가?”“아니에요. 난 그저...”“수현 씨.”소영이 황급히 수현을 불렀다. 분명 사정까지 했는데 수현은 왜 아직도 주연을 물고 놔주지 않는 걸까.소영의 부름에 수현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마음이 미세하게 흔들렸다.눈앞의 여자는 붉어진 눈시울을 하고 있었는데 당장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았다.애초에 목숨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그를 구해준 사람이었다. 또한
주연은 황급히 소영의 옷자락을 잡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소영아...”사실 그녀가 감히 이렇게 날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소영이 수현의 마음속에서 흔들릴 수 없는 무게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소영이 그에게 사정하면 수현은 분명 따지지 않을 거라 여겼다.하지만 오늘 이렇게 망할 줄은 전혀 몰랐다.“소영아, 나 도와줘.”주연은 소영의 옷자락을 잡으며 낮은 소리로 빌었다.소영의 속도 얼기설기 엉켜있었다. 주연을 도와주면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수현의 마음속에서의 무게를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수현의 의지는 너무 강했다. 심지어 그녀에게 시선도 주지 않을 정도였다.저쪽 끝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양훈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강소영, 말리지 마. 수현이 지금 엄청나게 화난 상태야. 말려도 소용없어.”이 말을 듣자, 소영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수현을 한눈 보았다.그는 눈을 축 내리깔았는데 검고 긴 속눈썹이 눈동자에 담긴 감정을 절반이나 감춰주었다. 하지만 온몸에서 풍기는 사나운 아우라는 감추지 못하고 선명히 드러났다.그는 지금 화내고 있었다.소영은 이제야 뼈저리게 느꼈다. 만약 이때 계속 주연을 위해 사정한다면 그녀가 수현 마음속에서의 이미지가 안 좋아 질 수도 있다는 것을.이렇게 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반드시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했고 그 누구에게도 발목을 잡혀서는 안 되었다.이렇게 생각한 소영은 주연의 손을 내치면서 나긋나긋하게 말했다.“미안해, 주연아. 오늘 저녁엔 먼저 돌아가는 게 좋을 거야.”이 말에 주연은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소영을 바라보았다. 소영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그녀에게 눈짓을 건넸다.소영이 이렇게 쉽게 자신을 내칠 줄 몰랐던 주연은 아주 불만스러웠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욕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그 누구에게도 밉보여서는 안 되었고 그들의 눈엣가시로 될 수는 없었다. 심윤아만 빼고.‘심윤아!’주연은 독기 가득 들어찬 시선으로 사납게 윤아를 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