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펜은 특별할 거 없었다.현아는 선물을 살 때 공정했다. 두 펜 다 같은 가격이었지만 설계가 달랐다.비서가 가져간 펜은 진작에 망가졌다.현아에 대해 다른 특별한 감정이 없었기에 현아가 선물한 펜은 비서에게 그저 일반 소모품이었다.소모품이니 망가지거나 불편하면 버리면 그만이다.하여 비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펜으로 바꿨다. 하지만 어느 날엔가 비서는 대표님이 아직도 그 펜을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했다.비서는 그 펜을 보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물었다.“대표님, 아직도 그 펜을 쓰시는 거예요? 저는 망가져서 바로 버렸는데. 현아 씨도 참. 프로젝트 성공해서 그렇게 많은 상여금을 받았는데 좋은 것 좀 사주지. 보세요. 모서리가 다 닳았네요. 새로 하나 사시지 그러세요?”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라 말에 존중이 담겨 있지는 않았다.말이 끝나자 주한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혹시 한가해요?”“…”비서는 혹시나 자기가 말이 너무 많이 해서 주한이 성가셔하는 줄 알고 더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하지만 시간이 오래 흘러도 주한은 계속 그 펜을 사용하고 어딜 가나 지니고 다녔다. 한번은 주한이 그에게 이렇게 물은 적도 있었다.“펜이 망가진 것 같은데 믿을만한 사람 찾아서 고쳐와요.”비서는 낡아빠진 펜을 받아 들며 말할 엄두를 못 냈다. 고쳐줄 사람을 찾으며 비서는 뭔가 깨달았다. 마치 마음의 호수에 누군가 돌을 던진 것처럼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그제야 비서는 그때 자기가 이 펜을 별 볼 것 없는 것이라고 했을 때 주한이 왜 그렇게 차가운 표정으로 쏘아봤는지 알 것 같았다.그가 말이 많아서 성가셔했던 게 아니라 눈치 없이 주한이 아끼는 물건을 함부로 말했던 것이다.하지만 비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회사로 찾아오는 예쁜 여자는 항상 있었다. 그 속엔 심지어 연예인도 있었다. 얼굴이 예쁜 것도 모자라 몸매도 죽여줬고 조건도 좋았다. 비서는 주한의 팔자가 참 좋다고 속으로 여러 번 감탄했다. 인성이 좋을
하지만 비서는 왜 주한이 현아에게 털어놓지 않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주한과 같은 신분에 현아의 마음을 얻기란 매우 쉬울 텐데 말이다.돈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참 읽어내기 힘들었다.…현아는 퇴사 리포트가 결제되었다는 소식에 매우 기뻤다. 지금까지 몸을 짓누르고 있었던 큰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평소에 출근할 때는 화장을 할 기분이 나지 않았지만 오늘 출근은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머리도 감고 화장도 옅게 했다.현아가 맡았던 업무는 새로 온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업무가 아니었기에 현아가 퇴사하면 타 부서의 사람을 옮겨와 인수인계해야 할 것이다.아니나 다를까 현아가 회사에 도착하자 누군가 그녀의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화장을 한 현아를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현아 씨, 화장했어요?”“…”현아는 오자마자 얼굴부터 보는 상대에 난감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현아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이렇게 물었다.“인수인계하러 오셨나요?”“네.”상대의 이름은 허연우였다. 현아의 말을 들은 연우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인사팀에서 현아 씨와 인수인계하라고 하더라고요. 잘 부탁드릴게요.”“동료 사이에 별말씀을요.”현아가 연우를 향해 웃어 보이더니 의자를 빼서 앉았다. 연우가 바로 커피 한잔을 들고 다가왔다.“현아 씨, 제가 가져온 커피예요.”현아는 연우가 커피를 가져다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연우의 표정에 바로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곧 현아의 자리를 대신해야 해야 했기에 가기 전에 필요한 사항을 전부 가르쳐줬으면 하는 것 같았다. 그래야 뒤에 실수도 적게 할 테니 말이다.“고마워요.”현아는 연우의 체면을 생각해 받아서 한 모금 마셨다.연우는 현아가 커피를 마시고 나서야 한시름 놓는 것 같았다. 사실 연우는 퇴사를 앞둔 현아의 태도가 좋지 않다거나 자기를 괴롭히면 어떡하나 걱정하면서 왔다.하지만 지금 보니 지내기 어려운 타입은 아닌 것 같았다.“이 수첩은 전에 제가 만든 거예요.”현아
현아의 말에 연우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아, 아니에요. 그냥 평소에 어떤 업무를 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에요.”연우가 손톱을 뜯으며 말했다.“현아 씨, 혹시 화난 건 아니죠?”현아는 아직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못한 듯 고개를 저었다.“화낼게 뭐가 있다고? 일단 제가 준 서류들 보시고, 이 자료부터 처리해 주세요.”인수인계해야 하니 직접 움직이면서 배워야 한다. 속도가 빠를 수록 좋다. 연우가 빨리 배우면 현아도 빨리 이 회사를 떠날 수 있게 된다.회사에서 나가자마자 바로 귀국행 티켓을 살 생각이었다.하윤과 서훈을 만난 지 꽤 오래됐다. 사이가 서먹해진 건 아니겠지?현아의 생각은 안드로메다로 향했다.아직은 그저 퇴사 결제만 완료한 상태라 현아는 아직 연우와 인수인계를 해야 했다. 하여 중간보고하러 들어갈 때 현아는 바로 연우를 데리고 주한의 사무실로 들어갔다.연우는 현아의 뒤에 선 채 너무 긴장한 나머지 현아의 옷깃을 잡아당겼다.“괜찮아요. 대표님이 얼굴은 좀 차갑고 성질이 좀 더럽긴 하지만 다른 건 괜찮아요.”현아가 뒤를 돌아보며 웃었다.하지만 현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사무실 문이 열렸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얼굴이 차갑고 성질이 조금 더럽다, 누굴 말하는 거죠?”차갑지만 익숙한 목소리에 연우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현아는 말문이 막혔다. 이런 우연이 다 있다고? 그저 한마디 불평을 늘어놓았을 뿐인데 딱 걸린 것이다.하지만 뭐 대수롭지 않았다. 그를 비난한 것도 여러 번이고 전에 그가 윤아를 찾으러 갔을 때도 참지 못하고 까칠남이라고 불렀으니 말이다.그때 주한의 안색이 별로긴 했지만 딱히 현아에게 따지지는 않았다.그러니 주한은 현아가 보건대 꽤 좋은 사람이었다.“뭐 하러 왔어요?”주한은 현아 뒤에 선 사람을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 현아를 보며 물었다.현아는 당연하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업무 보고하러 왔죠. 아참.”현아는 뒤에 선 연우를 앞으로 당겨오며 소개했다.“저와 업무 인수인계하러 온
하지만 현아 앞에서 넋을 잃었다는 걸 인정하기는 싫었다.게다가 사무실에는 지금 다른 사람도 있었다.하여 주한은 현아 옆에 선 연우에게 이렇게 물었다.“이름이 어떻게 된다고 했죠?”연우가 얼른 대답했다.“저는 허연우라고 합니다.”“네. 어젯밤 잠을 잘 자지 못해서 그런지 조금 피곤한데 커피 한잔 부탁해도 될까요?”주한의 말은 어딘가 차가우면서도 거리감이 느껴졌다.아까 연우에게 확신에 찬 말투로 커피를 타 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던 현아가 이 말을 듣고 할 말을 잃었다.연우 역시 잠깐 멈칫하더니 현아와 눈빛을 주고받고는 얼른 커피 타러 나갔다.연우가 나가고 사무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현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주한을 보며 뭐라 디스하고 싶었지만 참고는 이렇게 물었다.“어제 잘 못 주무셨나요?”주한은 현아의 질문에 대답은커녕 오히려 되물었다.“화장했어요?”“?”현아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주한이 연우와 똑같은 질문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그저 옅게 화장을 했을 뿐인데 왜 이 사람들은 자꾸만 이걸 신경 쓰는 거지? 전에 그 정도로 게을렀던 건가? 그래서 화장 하나 한 걸로 이렇게 주목을 받는 걸까?화장하고 나와 기분이 좋아졌던 현아는 지금 오히려 난감해졌다. 그래도 주한 앞에서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화장하면 안 되나요?”현아의 말투에서 주한은 그를 향한 불만과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에 대한 책망을 느꼈다. 주한은 입술을 오므리더니 이렇게 물었다.“퇴사해서 기분이 좋은가 보죠?”전에는 출근할 때 거의 화장을 하지 않았던 현아였다.현아는 주한이 이런 질문을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마치 그녀의 퇴사가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하지만 주한은 이미 결제를 끝냈다.사원으로서 대표님 앞에서 기분이 좋다고 말하면 안 된다는 걸 현아도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말했다.“아니에요. 곧 떠날 텐데 회사에 좋은 인상과 좋은 모습을 남겨주고 가야죠. 아닌가요? 사실 회사를 떠나서 저도 아쉬워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못나 보일 수도 있다.주현아 역시 전에 이렇게 생각했었다. 사람은 자신의 안락한 보금자리에만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언젠가는 역경을 이겨나가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으니까.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일들을 겪으며 충분히 힘들고 마음이 지쳤다.아마 너무 멀리 가는 바람에 지쳐 쉬고 싶어진 것일 수도 있겠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간 현아는 열심히 일했고 배주한을 따라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적지 않은 보너스를 받았으며 능력에 따른 높은 월급을 받아왔으므로 많은 돈을 모았다는 것이다.나중에 마음에 드는 직장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부모님 근처에 작은 가게 하나 정도는 차릴 수 있는 것이다.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렇게 사는 것도 행복할 것 같았다.주현아는 개인사를 입 밖에 꺼내지 않았고 배주한 역시 더 묻지 않았다.“본가에 가려고요?”“네.”배주한이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 더 말하려 할 때, 허연우가 커피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대표님, 커피 타왔습니다.”배주한은 어쩔 수 없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켰다,커피가 테이블 위에 놓였고, 두 사람의 보고가 끝날 때까지 배주한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보고가 끝난 뒤 현아가 연우를 데리고 사무실을 나올 때, 연우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현아 씨, 제가 타드린 커피가 입맛에 안 맞는 걸까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것 같아요.”확실히 조금 난처한 부분이긴 했다. 현아는 배주한이 그녀에게 직접 커피를 타오라고 분부할 줄은 몰랐다. 그러고선 결국 끝날 때까지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주현아는 위로의 말을 건네기로 했다.“금방 탄 커피는 뜨거워서 그러시는지 식힌 후에 마시는 것 같더라고요.”연우: “그런 거였군요. 저는 제가 커피를 잘 못 타서 그런 줄 알았어요.”“잘 못 탔어도 마셔봐야 맛을 알잖아요. 입에 대지 않으셨는데 잘 탄 건지 못 탄 건지 어떻게 알겠어요.”“그러네요. 하하. 현아
“이틀 후면 이제 약은 하루에 한 번만 발라도 되겠다.”“응. 네 덕분에 상처가 빨리 낫네.”심윤아는 남은 약들을 약상자에 정리해 넣었다.“약이 좋아서 그런 거야.”“약도 좋고 네 솜씨도 좋은 거지.”심윤아가 입술을 말아 물다가 입을 열었다.“이 비는 또 얼마나 오래 내릴까.”그녀의 말에 진수현이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확실하진 않지만, 추세를 보아하니 왠지 꽤 오래 내릴 것 같네.”아침에 깨어났을 때 진수현은 윤아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어제 윤아가 오늘 가자고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렇게 큰비가 내려 길을 막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서로의 속마음을 아는 듯하면서도 분명하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잠시 후 심윤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그럼 먼저 아침부터 먹으러 내려갈까?”“그래.”두 사람은 또 말없이 계단을 내려왔고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아침을 다 먹은 뒤에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폭우는 마치 무언가 쏟아내듯 끊임없이 내렸다.호텔에 묵고 있었으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불편한 것은 잠시 밖에 나갈 수 없다는 것.아침 식사를 마치고 두 사람은 호텔로 돌아왔고 심윤아는 소파에 기대어 자신의 핸드폰을 보았다.오늘 아침 식사 때, 진수현의 부하 직원이 윤아가 전에 쓰던 핸드폰을 가져다주었다.핸드폰을 받은 심윤아는 익숙하게 충전했고 몸이 기억하는 대로 비밀번호를 입력했다.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진수현은 그녀가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그래도 아직 몸이 기억하는 것들은 많이 남아있는 듯했다.핸드폰을 켠 심윤아는 이것저것 클릭하며 구경했고, 익숙한 느낌에 왠지 무언가 잃어버린 것을 되찾은 듯한 기분이 들어 저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이건 어떻게 찾았어?”“진우진 씨가.”“아침에 사람을 시켜서 보내왔는데 아마 막 생각이 나서 보낸 걸 거야.”“아침?”심윤아가 의아해했다.“비가 저렇게 많이 내리는데...”“응. 그런데도 가져다
곰곰이 생각하던 심윤아가 문득 진수현을 흘겨보았다.“다 네 탓이야.”“응?”“어제 돌아가자고 제안했을 때 들어줬으면 오늘 여기 안 갇혀도 됐잖아.”그녀의 말에 진수현이 한참 동안 묵묵히 바라보았다.“하늘의 뜻일 수도 있잖아.”“뭐?”“너희를 다시 만나보게 하려는.”그의 말이 심윤아를 침묵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한참 동안 말이 없던 심윤아가 입을 열었다.“왜 자꾸 만나보라고 부추겨?”질투 안 나? 기분 나빠야 하는 거 아니야?왜 자꾸 한번 만나보라고 권유하는 거지? 심윤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둘이 만나봐야 내 마음이 개운해지니까.”그녀의 질문에 진수현이 내놓은 답이었다.그제야 심윤아는 진수현의 뜻을 이해했다.두 사람이 만나보지 않으면 심윤아가 돌아간 이후 계속 마음에 둘까 봐 걱정되었던 것이다. 계속 마음에 두어 그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게 하는 것보다야 한 번 만나게 하여 괜찮다는 것을 확인토록 하는 것이 나은 것이다.물론 진수현은 이러한 생각이지만 이선우는 다른 속셈이었다.그가 심윤아를 보려 하지 않는 것은 그녀가 자신을 계속 마음속에 두길 바라기 때문이다.비록 진수현은 아직도 그가 타협한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는 결국 타협했고 다시는 심윤아에게 손을 대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이선우는 다른 속셈을 가지고 있었다.심윤아를 곁에 두지 못할 바에야 영원히 자신을 기억하고 마음에 두게 하는 것이다.앞으로 여생 동안 심윤아가 다른 남자를 마음에 둘 것을 생각한다면 이는 진수현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진수현의 뜻을 알아챈 심윤아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근데 그 사람이 날 만나고 싶지 않다잖아.”“한 번 더 시도해 봐. 정 싫어한다면 나중에 다시 기회 잡고.”심윤아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아, 어머님한테 연락해서 물어봐. 거기도 비가 오는지.”심윤아가 무언가 떠오른 듯 진수현에게 말했다.“그래.”진수현은 그녀의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이곳의 폭우가 이선희와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까 봐 걱
하지만 앞으로 그들이 잘살게 하려면 회사 일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상처도 나았고 심윤아도 잠들었으니 진수현은 이 기회를 틈타 얼른 회사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서재는 쥐 죽은 듯 조용했고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 들렸다....심윤아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이미 비가 그치고 도로의 질서가 조금 나아진 뒤였다. 교통질서를 위해 많은 인원이 출동했음에도 일부 지역의 고인 물은 여전히 빠지지 않고 있었다.하지만 진수현과 이야기를 나눈 뒤 심윤아도 더 이상 서둘러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어쨌든 윤이한테는 늦어서 5일 안에 돌아가겠다고 약속했고 오늘은 고작 이튿날이었다. 만일 진수현이 여전히 걱정한다면 이 며칠 내에 무조건 한번은 이선우와 만나야 했다.심윤아는 침대에 기대어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휴대폰에는 적지 않은 채팅 기록이 있었는데 그중 양이 가장 많은 건 절친 주현아와 한 톡이었다.심윤아는 자신이 이전에 올린 게시물들을 구경하기도 했다.윤이와 훈이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았을 때는 저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짓게 되었다.지금 살아있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이 이렇게 예쁜 아이들을 둘이나 낳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는가.거의 죽을 뻔했기 때문에 심윤아는 아이들에게 유난히 각별했다.그녀는 인스타 피드를 내려 계속 구경했다. 심윤아가 게시물을 올리는 빈도는 그리 높지는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놀러 갈 때면 사진을 올리곤 했는데, 그 중 의아하게 사적인 내용이 보이자 심윤아는 얼른 클릭해 보았다.클릭한 후에야 심윤아는 이 게시물을 본인만 볼 수 있게 설정했다는 것을 발견했다.다시는 어리석게 굴지 말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그 내용을 지켜보던 그녀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사라지고 의문이 생겼다.더 이상 어리석게 굴지 말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고?이 게시물의 내용은 도대체 무슨 뜻이지?심윤아가 급히 날짜를 살펴보았는데 뜻밖에도 올해, 그러니까 몇 달 전이었다.그 촘촘한 타임라인을 본 심윤아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