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차빈은 사악한 미소를 드러내며 곧 인파속으로 사라져 버렸다.1분 정도 지나자 윤도훈과 송은설은 또 다른 음식을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율이와 현이도 손에 밥 두 공기를 들고서.그렇게 네 사람은 마침내 앉아서 음식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송은설은 벤틀리 차 키가 놓여 있는 자리 즉, 윤도훈이 앉으려던 자리에 앉았다.아마도 힘들어서 가까운 자리에 앉으려는 모습이었다.이에 윤도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 키를 도로 가져오며 송은설 맞은편에 앉았다.가져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음식이고 같은 음식이기에 어디 앉으나 큰 문제는 없었다.이때 송은설은 김치찌개로 숟가락을 가져갔다.암암리에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노차빈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눈동자에 큰 동요가 일었다.“X발! 왜 네가 그걸 마셔?”“저놈이 마셔야지 왜 네가 마시냐고!”노차빈은 욕설을 퍼부으며 초조한 모습을 드러냈다.애꿎은 사람만 죽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같은 순간 윤도훈은 밥을 먹다가 무심코 송은설을 보게 되었는데 그의 검은 눈동자는 갑자기 깊게 가라앉았다.의문이 가득한 채 그윽한 두 눈으로 송은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뭐 하는 거예요? 왜 그렇게 봐요?”윤도훈의 시선에 송은설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그의 눈빛이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것 같아 불편한 느낌이 가득했다.하지만 윤도훈은 두말없이 송은설의 김치찌개를 자기 앞으로 가져오고 자기 김치찌개를 그녀에게 주었다.갑작스러운 상황에 송은설은 곤혹스럽기만 했다.온몸의 피부가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들어 다시금 물었다.“도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별거 아니에요. 은설 씨 김치찌개에 고기가 더 많은 것 같아서 그러는 거예요. 바꿔 먹어요 그냥.”윤도훈은 고개를 저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웃었다.‘뭐?’당황스럽기만 한 송은설은 윤도훈을 째려보며 오기를 부렸다.“싫어요! 저 그쪽이랑 바꿔 먹을 생각 없어요. 숟가락 대기만 해 봐요 아주.”‘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내가 이미 먹은 걸 왜 기어이 가져가면서 자기가
송은설은 윤도훈의 손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아무리 힘을 들여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어찌나 손에 힘을 주었는지 도통 빼낼 수가 없었다.그와 동시에 이상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는데 윤도훈의 손을 통해 자기 몸 속으로 들어와 퍼지는 것만 같았다.어찌 된 영문인지 알 길이 없는 송은설은 이성이 자기 손을 잡고 있어 그러한 반응이 생기는 줄만 알았다.어여쁜 얼굴은 수줍음과 수치스러움에 발갛게 달아올랐다.따뜻한 느낌이 온몸을 파고들자 형언할 수 없는 편안함도 감돌았다.‘송은설! 너 미친 거 아니야? 이 상황에서 이러고 싶어?’송은설은 속으로 자기를 비아냥거리며 두 눈을 부릅뜨고 윤도훈을 쏘아보았다.“변태! 도대체 뭘 하자는 거예요? 그동안 아무리 못났어도 매너 있는 남자인 줄 알았는데.”이에 윤도훈은 어이가 없어 입을 삐죽거렸다.“은설 씨 조금 전에 중독돼서 제가 친히 독을 풀어주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나 매너 있는 남자라고 한 적도 없습니다.”“참…”붉으락푸르락하며 송은설은 언성을 높였다.“그것도 변명이라고 하는 겁니까? 생각해 낸 이유가 고작 그거예요?”‘중독?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나 원 참 어이가 없어서.’“아빠, 혹시 지금 아내한테 질렸어요? 바꾸고 싶은 거예요?”이때 율이가 커다란 두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현이 또한 불만이 가득한 듯 덧붙였다.“아저씨 나쁜 사람이에요! 우리 고모한테 그러면 안 돼요.” 연달아 날아오는 ‘인신공격’에 윤도훈은 얼굴이 한껏 어두워졌다.한편 음식점 밖에서.노차빈과 수찬을 유리를 통해 그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쪽으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윤도훈이 아니라 송은설이 김치찌개를 먹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은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며 갈팡질팡했었다. 송은설에게 해독제를 가져다주어야 하는 건 아닌지.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건 그들이 바라는 결과가 아니니 말이다.한참 동안 망설이는 동안 윤도훈이 김치찌개를 바꾸며 독이 든 김치찌개를 모조리 마시는 것을 보게 되었다.“어라? 봤어요? 저놈 저 김치
“회장님, 혹시 사기당하신 거 아닙니까?”수찬은 약병을 들고 의문이 가득한 채로 물었다.도통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는 노차빈은 멀쩡한 두 사람을 바라보더니 하얀 가루를 자기 손에 조금 부었다.이윽고 잠시 망설이다가 혀를 내밀어 하얀 가루에 천천히 다가갔다.노차빈의 돌발 행동에 수찬은 어안이 벙벙해졌다.“안 됩니다! 그러다가 중독이라고 되면 어떡하시려고 그러는 겁니까!”“저 둘을 봐, 내가 중독될 거 같아?”노차빈은 호통을 치고 난 뒤 그대로 하얀 가루를 입안에 넣었다.한참 동안 맛을 느끼더니 벌컥 화를 내기 시작했다.“왜 이렇게 달아? 천하의 노차빈이 다크 웹에서 사기당한 거야? 설마 가루우유는 아니겠지? 참나, 이거 먹고 중독될 리가 있겠어?”말하면서 노차빈은 다시 입에 하얀 가루를 넣었다.그러더니 다시 조금 부어서 수찬에게 건네며 말했다.“너도 한 번 맛 봐봐.”독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찬은 망설였지만 손을 내밀어 살짝 찍어서 맛보았다.과연 그 또한 노차빈처럼 벌컥 화를 내기 시작했다.“이게 무슨 독약이에요. 우유 맛 나는 가루인 것 같은데.”“얼마 주고 산 거예요? 근데 맛인 꽤 좋네요. 조금만 더 줘보세요.”그러자 노차빈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의 뺨을 후려치며 야단쳤다.“지금 이걸 먹을 때야? 정신 좀 차려!”“내가 들인 돈이 얼만데 가짜라고?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내가 사기를 당했다고? 말이 돼?”“이딴 걸로 감히 날 속여? 어쩐지 저놈한테 아무런 문제도 없더라니. X발! X나 열받아!”그렇게 한참을 욕한 노차빈은 열불이 터져서인지 피가 미친 듯이 흐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삽시간에 얼굴마저 새빨갛게 달아오르며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미처 반응을 하기도 전에 검은 피가 코, 입 그리고 귀에서 흘러나왔다.“아!”“회장님, 괜찮으세요?”수찬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 채 대경실색하며 소리를 질렀다.그러자 노차빈도 고통스러운 모습을 드러내며 피를 왈칵 뿜어냈다.“독약이... 맞았던 거야?”노차빈은
“아!”“여기 사람 죽었어요!”“살려주세요! 여기 죽은 사람 있다고요!”이윽고 음식점 밖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수군거리는 소리와 더불어 비명도 여기저기서 들려왔다.갑작스러운 소란에 윤도훈은 눈빛이 확 달라지면서 무언가 떠오른 듯했다.율이의 손을 잡고 걸음을 재촉하며 밖으로 나가 보았다.송은설도 현이의 손을 꼭 잡고 뒤를 따랐는데 의문과 두려움이 가득해 보였다.사건 발생 지점에 이르러 윤도훈은 쓰러진 채 온몸을 떨면서 피를 뿜어내고 있는 수찬과 노차빈을 보게 되었는데 살짝 놀란 모습이었다.“푸.”하지만 윤도훈은 그만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윤도훈은 단번에 두 사람이 중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너희들 짓이구나.’‘내가 괜찮은 거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맛 본건 아니지?’‘이런 바보들.’“지금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와요? 어쩜 사람이 그래요?”웃고 있는 윤도훈을 바라보며 송은설은 화를 내며 물었다.‘어떻게 웃을 수 있어? 소시오패스 아니야?’“그러게 말이에요!”“동정심이라곤 하나도 없어 보이네요.”“도와주지 못할 망정 웃기나 하고 말이에요.”“구급차, 구급차 불러주세요.”주위로 몰려든 사람들은 잔인한 윤도훈의 행동에 손가락질하며 구급차를 불렀다.윤도훈은 끝까지 웃다가 잠시 망설이더니 두 사람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이윽고 은침 몇 개를 꺼내 들더니 노차빈과 수찬의 몸에 찌르기 시작했다.양손으로 살짝 움켜 쥔 채 진용의 기로 해독을 하고 있는 것이다.킬러지만 다소 멍청해 보이고 그리 악한 사람인 것 같지는 않았다.오전에 자기 차에 폭탄에 있다며 율이한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보였으니 말이다.하물며 그들을 고용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내고 싶었다.“저 사람 뭐 하는 거야?”“침 놓고 있는 거 아니야?”“조금 전까지 웃고 있던 사람 맞아? 왜 이제 와서 좋은 사람 코스플레하는 거지?”윤도훈의 행동에 사람들은 또다시 수군거렸다.하지만 더 이상 앞으로 다가오는 이가 없었다. 불똥이 자기
“그 어떤 고용병도 염하국에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고 하던데... 이제 와 보니 알 것 같아.”노차빈은 달갑지 않아 하며 결연의 뜻을 보였다.“날 죽이라고! 우리 회장님 건드리지 마!”“닥쳐! 우리 애 말고 날 죽여! 내가 두목이야!”수찬과 노차빈은 서로 자기를 죽이라며 제법 애틋한 모습을 보였다.이에 윤도훈은 입가에 헛웃음이 일었다.‘와, 애들봐라, 지들이 무슨 영웅인 줄 아나.’탁탁-윤도훈은 두 사람을 향해 각각 한 대씩 귀싸대기를 날리며 하찮다는 듯한 눈빛과 함께 입을 열었다.“이번엔 내가 눈 감아 주는 데 다음은 없어. 당장 꺼져!”수많은 이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보는 앞에서 두 사람을 죽인다는 건 사실 좀 그러하다.게다가 왠지 모르게 멍청한 두 킬러에 대해 살의가 깊지도 않았다.윤도훈의 말을 듣고 두 사람은 멍하니 넋을 놓았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기에.두 사람을 순순히 보내줄 것이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못 한 표정이다.“왜? 넌 왜 괜찮은데? 너도 분명히 먹었잖아!”“나도 수찬이도 네가 먹은 그 독약 맛봤다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 근데 X발 넌 왜 아무런 문제도 없냐고!”‘그냥 순순히 가지 왜 따지고 난리야.’윤도훈은 어이가 없어서 두 사람을 멀리 차버렸다.“이런 바보들...내가 먹어서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해서 너희들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니? 인제 알겠어? 그럴 수 없다는 거? 그 수준으로 날 죽일 생각하지 말고 좀 더 혹독한 훈련을 하고 나서 다시 찾아오든지 해.”말을 마치고 윤도훈은 율이의 손을 다시 잡았다.넋을 잃고 서 있는 송은설과 현이를 향해 웃으면서 말이다.“그만 가죠. 저기로 가서 놉시다.”그 말에 정신을 되찾으며 송은설은 얼굴이 약간 달아올라 어색함도 살짝 베어 있었다.맑고 투명한 두 눈에는 의문이 가득해 보였다.“조금 전에 기어이 내 김치찌개 마신 것도 내 손을 잡은 것도 모두 해독해 주려고 그런 거예요?”피가 미친 듯이 뿜어나오고 온몸을 떨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서 송
윤도훈은 율이를 데리고 현이와 송은설에게 인사를 하고 난 뒤 먼저 놀이동산을 떠났다.집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저녁 식사 자리를 위해 ‘꽃단장’을 하기 시작했다.윤도훈은 지난번 이진희가 선물해 준 케주얼한 복장을 입고 율이는 작은 공주님처럼 예쁘게 차려입었다.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원이 부하를 데리고 오기를 기다렸다.현금, 황금, 쥬얼리 및 골동품 등이 가득 담겨 있는 상자를 차에 옮기 위해.이원이 집으로 오고 모든 걸 차에 실은 뒤 그들은 함께 이진희 부모님이 살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이천수와 서지현은 ‘J 빌리지’라는 운성시에서 꽤 고급스러운 곳에서 살고 있다.같은 시각, 딸과 사위를 맞이하기 위해 두 사람은 아침부터 분주히 준비하고 있었다.약속 시간이 임박해 오자 저도 모르게 자꾸 밖을 살피게 되었다.“여보, 애들 오는 거 같지 않아요? 소리 들리는 것 같은데.”그 말에 이천수도 귀를 쫑긋거렸다.“그러네요. 내가 한번 나가 볼게요.”아직 시간이 좀 남은 것을 보고 서지현도 부엌에서 나와 손을 닦으며 따라 나갔다.문을 열자마자 한 중년 부부에 젊고 멋진 남자가 계단으로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선물도 가득 들고.세 사람을 보고 난 뒤 이천수도 서지현도 멍하니 있다가 놀라워하며 기뻐해 마지못했다.“어머, 시원 씨네 아니에요?”“넌 정국이 아니니? 언제 이렇게 컸어? 길에서 보면 못 알아보겠어.”이천수와 서지현은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웃으며 환하게 인사했다.상대도 마냥 반가워하며 인사하느라 바빴다. 임정국이라고 하는 멋진 청년도 두 사람에게 깍듯이 인사를 올렸다.“이게 얼마 만이에요.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한바탕 인사치레하고 난 뒤 이천수는 세 사람을 집안으로 모셨다.집으로 들어온 그들은 소파에 앉아서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지금 두 사람이 살고 있는 J 빌리지는 이제 새로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전까지만 해도 임시원네 일가와 10여 년 동안 이웃으로 지내왔었다.그땐 사이가 보통 좋은 것이 아니었다.
이천수의 말에 임정국은 곧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오랜만에 옛 이웃을 만나게 되어 기분이 좋은 서지현은 그들에게 남아서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오늘 저녁에 애들 밥 먹으러 올 거예요. 괜찮으면 다 같이 먹죠.”풀이 잔뜩 죽어 있던 임정국은 그 말에 다시 기가 살아나면서 부모님이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흥분했다.“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할게요.”임시원과 여정은 아들을 힐끗 보더니 그의 속셈을 알아차렸다.하여 고개를 끄덕이며 이 집에 남아서 함께 식사하려고 했다.이천수는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임정국을 바라보며 물었다.“정국아, 외국에서 여자 친구 사귀지 않았어? 이렇게 멋진 총각이.”그러자 임정국은 손사래를 치며 제법 진지하게 대답했다.“아니요. 외국에서 여자 친구 사귄 적 없습니다. 아저씨, 그때는 제가 너무 어려서 말을 하지 못했었는데 인제 제법 나이도 들고 하니 용기 내어 볼까 합니다. 실은 저 어릴 때부터 진희 좋아했습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그때 그 마음이 변한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 돌아온 목적도 진희와 만나기 위해서인데 반대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말을 마치고 임정국은 잔뜩 기대한 얼굴로 이천수와 서지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그게... 좀 힘들어 같아. 진희는 이미 결혼했어.”이천수는 입가에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예상치 못한 답에 임정국은 어찌 반응해야 할 지 몰랐다.도저히 믿어지지 않은 얼굴로 겨우 입을 열었다.“네? 이미 결혼을 했다고요? 그럴 리가요... 진희는 저와 동갑이고 이제 겨우 26살이잖아요. 제 기억이 잘못된 건가요?”“아니, 우리 진희 24살이야. 성인이 결혼하겠다는 데 잘못된 건 아니잖아.”서지현은 웃으며 덤덤하게 대답해 주었다.하지만 자기 딸에게 다른 감정을 지니고 있는 임정국의 말을 듣고 난 뒤 두 사람은 왠지 모르게 마음속으로 반감이 일었다.어느새 두 사람은 이미 윤도훈을 자기 사위로 받아들인 게 아닌가 싶다.“진희가 벌써 결혼했다고요? 너무 이른
임정국의 말에 이천수 부부는 눈에 가시라도 박힌 듯 인상을 찌푸렸다.‘진희가 결혼을 한 적이 있어도 상관없다고?’‘우리 딸이 언제 이혼한다고 그랬어?’‘우리 딸이 뭐나 못나서 이혼해서 너랑 살겠어!’‘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네.’참다못한 서지현은 전에 다정한 모습과는 달리 다소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정국아, 우리 진희 지금 잘살고 있어. 지 남편이랑 정도 얼마나 깊다고. 네가 걱정할 바는 아닌 것 같아.”이에 임시원 일가는 뭔가 더 반박하려고 했으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아빠, 엄마, 저희 왔어요. 문 열어 주세요.”문밖에서 이진희가 두 사람을 외치고 있다.“우리 딸 왔구나.”서지현은 문을 열어주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이천수도 그 뒤를 따라갔다.이진희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순간 임정국의 검은 눈동자는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하루도 빠짐없이 귓가에 맴돌던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다.기대에 찬 눈빛으로 임정국은 대문 쪽을 지그시 바라보았다.문이 열리자 윤도훈과 이진희 그리고 두 사람에 손을 잡고 들어오는 율이가 보였다.물론 그 뒤에 이원도 함께 했다.이씨 가문의 도련님인 이원이 자기 누나와 매형 뒤에 쪼르르 쫓아다니니 왠지 모르게 신분이 한층 내려앉은 것만 같았다.“아버님, 어머님, 저희 왔습니다.”윤도훈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안녕하세요...”율이도 고개를 살짝 들고 이천수와 서지현을 바라보며 달콤하고도 바르게 인사했다.“어머, 네가 율이구나. 우리 율이 너무 예쁘네.”예쁜 율이를 바라보며 서지현은 함박웃음을 지었다.이천수 또한 자애로운 모습을 보이며 율이를 향해 한참을 웃더니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했다.부랴부랴 방으로 들어가더니 엄청나게 큰 인형을 안고 다시 다가왔다.“이건 우리가 율이한테 주는 선물이야. 율이가 좋아했으면 좋겠어.”윤도훈을 마음에 들어 하는 두 사람이기에 그의 딸인 율이도 예뻤던 것이다.“고맙습니다...”처음으로 만나는 것이라 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