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국의 말에 이천수 부부는 눈에 가시라도 박힌 듯 인상을 찌푸렸다.‘진희가 결혼을 한 적이 있어도 상관없다고?’‘우리 딸이 언제 이혼한다고 그랬어?’‘우리 딸이 뭐나 못나서 이혼해서 너랑 살겠어!’‘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네.’참다못한 서지현은 전에 다정한 모습과는 달리 다소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정국아, 우리 진희 지금 잘살고 있어. 지 남편이랑 정도 얼마나 깊다고. 네가 걱정할 바는 아닌 것 같아.”이에 임시원 일가는 뭔가 더 반박하려고 했으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아빠, 엄마, 저희 왔어요. 문 열어 주세요.”문밖에서 이진희가 두 사람을 외치고 있다.“우리 딸 왔구나.”서지현은 문을 열어주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이천수도 그 뒤를 따라갔다.이진희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순간 임정국의 검은 눈동자는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하루도 빠짐없이 귓가에 맴돌던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다.기대에 찬 눈빛으로 임정국은 대문 쪽을 지그시 바라보았다.문이 열리자 윤도훈과 이진희 그리고 두 사람에 손을 잡고 들어오는 율이가 보였다.물론 그 뒤에 이원도 함께 했다.이씨 가문의 도련님인 이원이 자기 누나와 매형 뒤에 쪼르르 쫓아다니니 왠지 모르게 신분이 한층 내려앉은 것만 같았다.“아버님, 어머님, 저희 왔습니다.”윤도훈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안녕하세요...”율이도 고개를 살짝 들고 이천수와 서지현을 바라보며 달콤하고도 바르게 인사했다.“어머, 네가 율이구나. 우리 율이 너무 예쁘네.”예쁜 율이를 바라보며 서지현은 함박웃음을 지었다.이천수 또한 자애로운 모습을 보이며 율이를 향해 한참을 웃더니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했다.부랴부랴 방으로 들어가더니 엄청나게 큰 인형을 안고 다시 다가왔다.“이건 우리가 율이한테 주는 선물이야. 율이가 좋아했으면 좋겠어.”윤도훈을 마음에 들어 하는 두 사람이기에 그의 딸인 율이도 예뻤던 것이다.“고맙습니다...”처음으로 만나는 것이라 율
그냥 하는 말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윤도훈을 비아냥거리고 있음이 분명하다.“우리도 어릴 때부터 진희를 봐와서 그러는 데 그냥 편하게 말 놓을게.”“직업은 뭐야? 어떻게 처가에 오는데 빈손으로 올 수 있어?”윤도후의 의사와 상관없이 장여정이 말을 놓으며 물었다.장여정도 임시원도 절세미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진희를 보고서 마음이 흔들렸다.이진희의 곁에 윤도훈이 아니라 자기 아들이 있었으면 했다.그 어디에 내놓아도 자기 며느리라고 광고를 해도 체면이 사는 얼굴이니 말이다.하지만 아주 흔하고 평범한 집안에서 자란 아들과 결혼을 했다니 한스러웠다.윤도훈에 비해 자기 아들이 훨씬 낫고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거슬리는 것이다.마치 윤도훈이 그들의 며느리를 빼앗아 간 것처럼.“제가 빈손으로 왔다고요?”윤도훈은 차갑게 웃으며 그들의 눈빛과 뉘앙스에서 이미 눈치를 챘다.‘뭔가 있구나.’그러더니 이천수와 서지현을 향해 말했다.“아버님, 어머님, 이제 곧 저와 진희 결혼식인데 제가 미처 폐백을 드리지 못했더군요. 그래서 오늘 찾아뵙는 김에 가지고 왔어요. 적지만 알찬 제 마음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이에 이천수와 서지현은 당황스럽기만 했다.‘폐백?’그들은 단 한 번도 윤도훈에게 폐백을 원한 적이 없다.윤도훈은 고아이고 데릴사위로 들어오는 것이기에 폐백 같은 건 응당 없어야 마땅하다고 여겼다.게다가 그 돈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기에 원하지도 않았었다.윤도훈의 입에서 먼저 얘기가 나오고 가져왔다고 하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긴 했다.“그런 거 필요 없어. 너희만 예쁘게 잘 살면 되는데.”이천수는 손을 흔들며 부담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서지현 또한 이진희를 째려보며 야단쳤다.“네가 시킨 거야? 그런 거 필요 없다고 분명히 말했었잖아.”윤도훈을 사위로 인정하게끔 이진희가 중간에서 꾸민 일로 생각했다.실은 윤도훈이 사위로 마음이 쏙 든 두 사람이기에 이런 건 정말로 필요 없었다.“네? 저 모르는 일이에요.”지금 가장 당황
이진희의 웃음에 임정국은 순간 넋이 나가버렸다.내숭 하나 없이 예쁘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지금 당장 두 사람을 갈라놓고 이진희의 곁에 있는 남자가 자기였으면 했다.하여 임정국은 교만한 모습으로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폐백을 인제야 다 모은 사람이 웃음이 나와요? 그 어렵게 모은 폐백은 지금 어디에 있어요? 안 보이는데.”윤도훈은 웃음을 멈추고 덤덤하게 대답했다.“들고 올라오라고 시켰어요. 이제 곧 도착할 겁니다.”“시켰다고요? 그게 얼마나 된다고 시키기까지 합니까? 설마 우리 가고 나서 드리려는 건 아니죠? 내놓기에 부끄럽나 봅니다? 근데 이거 어떡하죠, 우리도 여기서 밥 먹기로 했는데.”“우리도 한 번 보고 싶어. 네가 진희를 위해 얼마나 준비했는지. 아무리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해도 어느 정도까지는 해야 하지 않겠어?”장여정도 아들을 위해 옆에서 맞장구를 쳐 주었다.임시원은 내내 웃으며 망신당할 윤도훈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이천수와 서지현이 직접 말하듯이 윤도훈은 아주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했으므로 얼마 내놓지 못하리라 믿었다.그리고 지금 그들을 마주하고 있기에 윤도훈이 억지로 체면을 세우고 있다고 여겼다.일이 이 지경까지 번진 이상 임시원 일가는 이천수 일가의 체면을 봐주고 싶지 않았다.쥐구멍이라도 찾아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될 때까지 옆에서 지켜보고 싶었다.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이혼하게 하여 자기 아들과 결혼하게 하고 싶었다.“아저씨, 형님, 그만들 하시고 지금 가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이따가 세 분 체면이 엄청 구겨질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충격으로 심정지가 올 수도 있고요.”내내 듣고 있던 이원이 그만 참지 못하고 입을 삐죽거렸다.이에 임시원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가 이렇게 심하게 말할것으로 생각지도 못한 얼굴이다.임정국 또한 얼굴이 한껏 어두워지면서 화가 살짝 났다.“원아, 너까지 이 사람 편드는 거냐? 어렸을 때 나더러 네 매형이 되어달라고 졸랐던 거 기억 안 나?”그러
상자를 열 때마다 손끝이 떨리고 놀라움은 점점 더 짙어져 갔다.꿀꺽-임정국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기까지 했다.눈앞에 덩그러니 놓인 쥬얼리, 황금, 골동품 등을 보면서 다리가 후들거렸다.임시원, 장여정 또한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이... 이게 다 폐백이라고?”‘X발! 박물관이라도 턴 거야?’“도훈아, 지금 이게... 이게 다...”이천수마저도 말을 제대로 이어갈 수 없었고 토끼 눈을 하고 윤도훈에게 물었다.“아버님, 이건 제가 소소하게 준비한 폐백입니다. 얼마 안 되지만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윤도훈은 웃으며 말을 했고 그의 말에 다들 말 문이 턱 막혔다.소소하게 준비해? 이게?“이게 다 폐백이라는 것이냐?”이천수는 겨우 마음을 진정하며 다시 확인했다.“네, 모두 다 드리려고 가져온 것입니다. 아니면 제가 왜 힘들게 가져왔겠습니까.”윤도훈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우리가 받기엔 너무 귀중하고 많다. 나도 네 장모도 모두 받을 수 없단다.”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이천수는 연신 거절했다.“제 아내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귀하게 키우신 따님을 데리고 가는 데 이보다 더한 것도 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거절을 거절로 받아 치는 여유까지 부리며 윤도훈은 진지하게 말했다.이천수는 그만 멍해졌고 서지현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이미 상자 안에 든 물건들을 열심히 뒤지기 시작했다.“우리 진희하고 사위 대신 보관한다고 생각하고 그냥 받아요.”어깨가 한껏 으쓱해진 서지현은 임시원 일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시원 씨, 내가 그냥 재미 삼아 물어보는 건데, 정국이는 이게 가능해요? 몇 년 동안을 모아야 가능할까요?”이에 임시원은 헛기침을 하며 뻘쭘해 마지 못했다.임정국은 지금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천수 씨, 지현 씨, 저희 나중에 또 놀러 올게요. 오늘은 이만.”임시원 부부는 아들을 데리고 거의 도망가는 듯이 줄행랑을 쳤다.“저녁이라도 먹고 가요.”서지현은 웃으며 그들을
“운성시? 윤도훈?”“윤성시! 윤도훈!”장로는 이를 악물며 외치더니 온몸에서 포악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나... 나으리, 저 좀... 내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우두머리로 온 현씨 가문 수하는 지금 목이 조여 있는 상황이다.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고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것만 같다.하여 그는 마지막 한 가닥의 숨을 부여잡고 고통을 견디며 애원하고 있다.함께 온 다른 이들도 장로의 기세에 억눌려 벌벌 떨고 있다.“내려줘?”“내가 피 같은 내 제자를 보내줬건만, 감히 시신으로 돌려보네?”“저승으로 가는 내 제자 외롭지 않게 너도 함께 가도록 하거라!”말을 마치자마자 장로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손에 힘을 가득 들인 채 현씨 가문의 수하를 죽여버렸다.“아!”“도망쳐!”남은 현씨 가문 수하들은 사색이 되어 살려고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그러나 몇 걸음 가기도 전에 마찬가지 입장이 되어 버렸다.핏빛 장로의 실력은 예측할 수 없으며 공포스러운 에너지만으로 손쉽게 그들을 폭발시켜 버릴 수 있다....서지현은 오늘 집으로 온 딸과 사위 그리고 아들을 맞이하여 직접 요리를 하기로 했다.“엄마, 쉬고 있어요. 제가 음식 준비할게요.”이진희도 오늘 유난히 기분이 좋은 관계로 요리 솜씨를 뽐내고 싶어 하고 있다.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윤도훈은 기대하는 눈빛을 드러냈다.절세미인 이진희가 직접 하는 요리라니, 생각만으로도 들뜨고 기대되었다.지금껏 아직 그녀가 직접 만든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오늘 드디어 우리 여보가 만든 음식 맛볼 수 있는 거야?’그러나 기대하는 윤도훈과 달리 이천수, 서지현, 이원은 놀라워 마지 못했다.“누나. 밥할 줄 알아요?”놀란 표정으로 이원이 이진희에게 물었다.이천수와 서지현도 잇따라 의문을 드러냈다.태어날 때부터 공주님 대접을 받으면서 자란 이진희이기에 부엌에 들어가는 일도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그런 이진희가 직접 음식을 준비하겠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다들 왜 그래요? 요즘 배운 게 있어서
갑자기 부엌에서 시꺼먼 연기가 나오기 시작했다.이게 과연 어찌 된 상황일까?“내가 가볼게요.”서지현은 걱정되는 마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부엌으로 향했다.그 뒤로 몇 분후...가족들은 단란하게 테이블을 둘러 모여 앉았고 서지현과 이진희는 음식을 가지고 나왔다.모두 여덟 가지 음식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게 되었는데 그 중 두 음식은 도통 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버렸다.윤도훈, 이천수 그리고 이원은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웃음을 참느라 여간 힘들지 않았다.남자들의 그러한 반응을 살피면서 서지현은 헛기침을 했고 멋쩍은 웃음과 함께 침묵을 깨뜨렸다.“자, 다들 어서 먹어. 우리 진희가 처음으로 만든 음식이니 다들 영광으로 생각하고 맛있게 먹어.”“여보, 내 생각이 맞다면 이 두 음식은 여보가 한 거 맞지?”윤도훈은 본채를 잃은 음식을 가리키고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맞아요! 맛있는지 어서 먹어봐요.”어여쁜 이진희의 얼굴에는 검은 자국이 여기저기 묻어 있다.아직 미처 허리춤에 질근히 묶고 있던 앞치마까지 풀지 않고 말이다.음식을 한 번 하는데 부엌은 화생방이 되고 이진희는 화생방을 겪고 나온 병사와 같았다.지저분해진 외모와 달리 이진희는 지금 초롱초롱한 두 눈으로 기대를 품고 있다.윤도훈의 반응을 기대하며 자기 음식에 대해 성취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처음으로 음식을 만드는 것이기에 첫 번째 음식을 사랑하는 이에게 주고 싶은 것이다.하지만 윤도훈은 시꺼먼 음식을 바라보며 도통 젓가락을 옮길 수가 없었다.역시 하느님은 공평한 듯싶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다고.“아버님, 어서 드셔보세요. 처남도 수저 들어요.”순간 머리가 번쩍 돌아가면서 윤도훈은 이천수와 이원도 끌어 당길 생각이었다.“매형 먼저 드세요. 우리 누나가 처음으로 만든 음식인데 당연히 매형이 먼저 드셔야죠. 매형 드시고 나서 먹을게요.”이원 또한 머리를 돌리면서 서로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그래. 진희가 자네 위해서 특별히 배운 건데 자네부터 먹어
멋쩍은 웃음과 함께 윤도훈은 다른 음식까지 맛을 보았다.이진희는 그 모습에 콧방귀를 뀌며 한 번 봐주기로 하고 정체 모를 음식을 도로 부엌으로 가져갔다.이원은 지금 한창 안타까워하는 눈빛으로 윤도훈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게 자기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우리 누나 절대 부엌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 하는데.’‘우리 매형 어떡하지? 아주 먹을 복이 터졌네? 하하하.’“자, 이건 내가 만든 거야, 어서들 먹어.”서지현은 자기 음식을 앞으로 가져가며 이진희의 ‘걸작’을 잊게끔 했다.그리고 이진희는 살짝 부끄러워하며 윤도훈을 흘겨보더니 그 옆에 함께 앉았다.밥 먹는 동안에 이천수과 서지현은 율이에게 음식을 집어 주느라 바빴고 율이에 대한 사랑이 훤히 보였다.율이도 처음에는 무척이나 긴장하더니 서서히 긴장을 풀며 두 사람과 점점 친해지기 시작했다. 애교도 부리면서.한창 먹고 있다가 이천수는 윤도훈과 이진희를 바라보며 기대하는 모습으로 물었다.“두 사람 결혼하고 나면 인제 정말 부부가 되는 건데, 같이 사는 거 맞지?”서지현도 딸에게 말했다.“진희야, 나랑 네 아빠는 네가 언제 도훈이랑 만난 건지 신경 쓰지 않아. 우린 이미 도훈이를 사위로 받아들였고 하루라도 빨리 손주 안겨줬으면 좋겠어. 엄마 말 알아들었지?”이에 이진희는 화들짝 놀라며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면서 무척이나 부끄러워했다.“엄마, 뭐라고 하시는 거예요... 아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이원은 옆에서 키득키득 웃으며 윤도훈을 향해 윙크까지 날리며 놀리는 모습이 가득했다.하지만 이 말을 듣게 되는 순간 신나게 음식을 즐기고 있던 율이는 급 우울해지기 시작했다.율이는 작은 손으로 자기 아빠의 커다란 손을 저도 모르게 꼭 잡았고 불안한 눈빛으로 윤도훈을 바라보았다.딸의 눈빛에 윤도훈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고 도려 율이의 손을 꼭 잡으며 안심을 주었다.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더니 천천히 운을 떼기 시작했다.“아버님, 어머님, 저 아이 가지 생각 없습니다. 율이만 있으면 되니 두 분
그 말에 윤도훈은 크게 감동이라도 한 듯싶었다. 덤덤했던 두 눈에 큰 요동이 일어날 만큼.“여보, 고마워.”“흥!”이진희는 삐친 듯이 콧방귀를 뀌며 누구나 한 번쯤은 시선을 머물 법한 얼굴을 한쪽으로 돌렸다.어둠이 내려앉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화려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이진희는 깊은 생각에 잠겨 보였다. 조금 전까지 반짝이던 두 눈은 어느새 짙은 어둠에 빠졌고 스스로 조롱하는 듯한 비웃음까지 보였다....그 후로 일주일 동안 윤도훈와 이진희는 결혼식 전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었다. 청첩장도 모든 이들에게 돌리고 말이다.어느 날 오후, 남미숙은 정원에 홀로 앉아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남미숙에게도 두 사람의 청첩장이 예외없이 전해졌다. 그 청첩장을 지금 손에 꼭 쥐고 있다.일이 어찌 됐든 남미숙이 이진희 친할머니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고 이천수는 남미숙을 포함한 이씨 가문 가족 전체에 청첩장을 돌렸다.그동안 남미숙은 안색이 많이 좋아졌다. 유능한 사람에게 부탁하여 명혈문을 뚫었고 그와 더불어 음식과 한약으로 정성껏 몸을 가꾸었기 때문이다.“흥!”청첩장을 보자마자 남미숙은 이가 악물렸다. 눈매가 순식간에 곤두섰을뿐더러 언짢은 모습까지 보이면서.‘내가 말한 대로 하기는커녕 감히 기생오라비 같은 윤도훈이랑 결혼해?’자기 뜻에 따라 이진희를 허씨 가문에 시집보내지 않은 것도 화가 나는데 두 사람의 결혼식을 거창하게 올리려는 이천수네 일가에 속으로 불만이 가득했다.두 사람으로 인해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나 체면이 구겨진 남미숙은 날이 갈수록 두 사람에 대한 원망과 한이 가득해졌다.지난번 어찌어찌 기회가 되어 윤도훈에게 복수 아닌 복수를 하게 되었는데 그로 하여 한이 조금이나마 줄어들긴 했다.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모든 한을 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남미숙은 이미 이씨 가문 모든 이들에게 결혼식에 참석하지 말라며 명령을 내렸다. 이씨 가문 사람이라면 그게 누구든 단 한 명도 참석하지 못하게.그뿐만 아니라 이씨 가문과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