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부엌에서 시꺼먼 연기가 나오기 시작했다.이게 과연 어찌 된 상황일까?“내가 가볼게요.”서지현은 걱정되는 마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부엌으로 향했다.그 뒤로 몇 분후...가족들은 단란하게 테이블을 둘러 모여 앉았고 서지현과 이진희는 음식을 가지고 나왔다.모두 여덟 가지 음식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게 되었는데 그 중 두 음식은 도통 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버렸다.윤도훈, 이천수 그리고 이원은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웃음을 참느라 여간 힘들지 않았다.남자들의 그러한 반응을 살피면서 서지현은 헛기침을 했고 멋쩍은 웃음과 함께 침묵을 깨뜨렸다.“자, 다들 어서 먹어. 우리 진희가 처음으로 만든 음식이니 다들 영광으로 생각하고 맛있게 먹어.”“여보, 내 생각이 맞다면 이 두 음식은 여보가 한 거 맞지?”윤도훈은 본채를 잃은 음식을 가리키고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맞아요! 맛있는지 어서 먹어봐요.”어여쁜 이진희의 얼굴에는 검은 자국이 여기저기 묻어 있다.아직 미처 허리춤에 질근히 묶고 있던 앞치마까지 풀지 않고 말이다.음식을 한 번 하는데 부엌은 화생방이 되고 이진희는 화생방을 겪고 나온 병사와 같았다.지저분해진 외모와 달리 이진희는 지금 초롱초롱한 두 눈으로 기대를 품고 있다.윤도훈의 반응을 기대하며 자기 음식에 대해 성취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처음으로 음식을 만드는 것이기에 첫 번째 음식을 사랑하는 이에게 주고 싶은 것이다.하지만 윤도훈은 시꺼먼 음식을 바라보며 도통 젓가락을 옮길 수가 없었다.역시 하느님은 공평한 듯싶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다고.“아버님, 어서 드셔보세요. 처남도 수저 들어요.”순간 머리가 번쩍 돌아가면서 윤도훈은 이천수와 이원도 끌어 당길 생각이었다.“매형 먼저 드세요. 우리 누나가 처음으로 만든 음식인데 당연히 매형이 먼저 드셔야죠. 매형 드시고 나서 먹을게요.”이원 또한 머리를 돌리면서 서로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그래. 진희가 자네 위해서 특별히 배운 건데 자네부터 먹어
멋쩍은 웃음과 함께 윤도훈은 다른 음식까지 맛을 보았다.이진희는 그 모습에 콧방귀를 뀌며 한 번 봐주기로 하고 정체 모를 음식을 도로 부엌으로 가져갔다.이원은 지금 한창 안타까워하는 눈빛으로 윤도훈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게 자기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우리 누나 절대 부엌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 하는데.’‘우리 매형 어떡하지? 아주 먹을 복이 터졌네? 하하하.’“자, 이건 내가 만든 거야, 어서들 먹어.”서지현은 자기 음식을 앞으로 가져가며 이진희의 ‘걸작’을 잊게끔 했다.그리고 이진희는 살짝 부끄러워하며 윤도훈을 흘겨보더니 그 옆에 함께 앉았다.밥 먹는 동안에 이천수과 서지현은 율이에게 음식을 집어 주느라 바빴고 율이에 대한 사랑이 훤히 보였다.율이도 처음에는 무척이나 긴장하더니 서서히 긴장을 풀며 두 사람과 점점 친해지기 시작했다. 애교도 부리면서.한창 먹고 있다가 이천수는 윤도훈과 이진희를 바라보며 기대하는 모습으로 물었다.“두 사람 결혼하고 나면 인제 정말 부부가 되는 건데, 같이 사는 거 맞지?”서지현도 딸에게 말했다.“진희야, 나랑 네 아빠는 네가 언제 도훈이랑 만난 건지 신경 쓰지 않아. 우린 이미 도훈이를 사위로 받아들였고 하루라도 빨리 손주 안겨줬으면 좋겠어. 엄마 말 알아들었지?”이에 이진희는 화들짝 놀라며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면서 무척이나 부끄러워했다.“엄마, 뭐라고 하시는 거예요... 아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이원은 옆에서 키득키득 웃으며 윤도훈을 향해 윙크까지 날리며 놀리는 모습이 가득했다.하지만 이 말을 듣게 되는 순간 신나게 음식을 즐기고 있던 율이는 급 우울해지기 시작했다.율이는 작은 손으로 자기 아빠의 커다란 손을 저도 모르게 꼭 잡았고 불안한 눈빛으로 윤도훈을 바라보았다.딸의 눈빛에 윤도훈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고 도려 율이의 손을 꼭 잡으며 안심을 주었다.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더니 천천히 운을 떼기 시작했다.“아버님, 어머님, 저 아이 가지 생각 없습니다. 율이만 있으면 되니 두 분
그 말에 윤도훈은 크게 감동이라도 한 듯싶었다. 덤덤했던 두 눈에 큰 요동이 일어날 만큼.“여보, 고마워.”“흥!”이진희는 삐친 듯이 콧방귀를 뀌며 누구나 한 번쯤은 시선을 머물 법한 얼굴을 한쪽으로 돌렸다.어둠이 내려앉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화려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이진희는 깊은 생각에 잠겨 보였다. 조금 전까지 반짝이던 두 눈은 어느새 짙은 어둠에 빠졌고 스스로 조롱하는 듯한 비웃음까지 보였다....그 후로 일주일 동안 윤도훈와 이진희는 결혼식 전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었다. 청첩장도 모든 이들에게 돌리고 말이다.어느 날 오후, 남미숙은 정원에 홀로 앉아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남미숙에게도 두 사람의 청첩장이 예외없이 전해졌다. 그 청첩장을 지금 손에 꼭 쥐고 있다.일이 어찌 됐든 남미숙이 이진희 친할머니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고 이천수는 남미숙을 포함한 이씨 가문 가족 전체에 청첩장을 돌렸다.그동안 남미숙은 안색이 많이 좋아졌다. 유능한 사람에게 부탁하여 명혈문을 뚫었고 그와 더불어 음식과 한약으로 정성껏 몸을 가꾸었기 때문이다.“흥!”청첩장을 보자마자 남미숙은 이가 악물렸다. 눈매가 순식간에 곤두섰을뿐더러 언짢은 모습까지 보이면서.‘내가 말한 대로 하기는커녕 감히 기생오라비 같은 윤도훈이랑 결혼해?’자기 뜻에 따라 이진희를 허씨 가문에 시집보내지 않은 것도 화가 나는데 두 사람의 결혼식을 거창하게 올리려는 이천수네 일가에 속으로 불만이 가득했다.두 사람으로 인해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나 체면이 구겨진 남미숙은 날이 갈수록 두 사람에 대한 원망과 한이 가득해졌다.지난번 어찌어찌 기회가 되어 윤도훈에게 복수 아닌 복수를 하게 되었는데 그로 하여 한이 조금이나마 줄어들긴 했다.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모든 한을 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남미숙은 이미 이씨 가문 모든 이들에게 결혼식에 참석하지 말라며 명령을 내렸다. 이씨 가문 사람이라면 그게 누구든 단 한 명도 참석하지 못하게.그뿐만 아니라 이씨 가문과 우
“할머니, 우리 아빠 말이 맞아요. 아빠가 아니라 모두 엄마 뜻이었어요. 저도 아빠도 엄마 말리느라 엄청 고생했단 말이에요.”이은정도 옆에서 함께 부추기며 억울하다는 듯이 하소연하느라 바빴다.이에 남미숙은 여전히 차가운 모습을 보였다.“그게 사실이냐?”“하늘에 맹세코 모두 사실이에요. 제가 잘못했습니다.”“저 그동안 내내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지내왔어요. 제발 이 못난 아들한테 다시 한번만 기회 주세요. 효도해 드릴 수 있게.”이천강은 한 걸음 더 다가와 남미숙의 다리를 부여잡고 빌었다.그 모습에 이은정도 재빠르게 눈치를 채더니 남미숙에게 마사지를 하기 시작했다.“할머니, 저희도 억울해요. 그때는 복수에만 정신이 팔려서 판단력이 흐려진 거예요. 윤도훈한테 하도 복수하고 싶어서 엄마 계략에 넘어간 거라고요.”“저도 아빠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으니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상황이 어찌 됐든 우린 모두 피를 나눈 가족이잖아요.”환상의 쿵짝을 보여주는 두 사람의 미친 호흡에 남미숙은 서서히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그러졌던 얼굴도 점점 풀리면서.일생을 강하게 살아온 남미숙은 그 어느 곳에서나 체면을 가장 우선으로 여기는 사람이다.자기의 뜻을 거역하고 몇 번이나 체면을 구기게 만든 손녀 이진희에 대해 한을 품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큰아들인 이천수와 며느리 서지현까지 윤도훈과 이진희 편에 서게 되자 남미숙은 아들 내외까지 미워지게 된 것이다.이천수가 아무리 자기한테 지극정성을 다할지라도 한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한마디로 말하면 체면이 구겨졌기 때문이다. 이천수 일가로 인해 위신과 더불어 체면까지 잃었기에.이러한 마음을 품고 있던 이때 둘째 아들인 이천강과 손녀 이은정이 자기한테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며 무릎까지 꿇고 있자 다시 어깨가 으쓱해진 것이다.이씨 가문에서 자기는 여전히 둘도 없는 절대적 권력을 손에 지니고 있는 가주라는 생각까지 더해지면서.“너희들이 그동안 무슨 짓을 했는지 정녕 뉘우치고 있단 말이냐?”남미숙의 목소리
“잘하셨어요. 어차피 더 이상 우리 집안 사람도 아니잖아요. 남과 다름없는 그들한테 체면 따위 차려줄 필요 없습니다.”이천강은 ‘엄지척’까지 해가면서 고소한 듯 무척이나 좋아했다.남미숙 또한 차갑게 웃으며 도도한 모습을 보였다.“당연한 거 아니냐.”적의 적은 곧 친구라는 말이 있듯이 윤도훈과 이진희에 대해 언급하자 그들은 자연스럽게 한편이 된 것만 같았다.여세를 몰아 이은정은 눈동자를 데굴데굴 돌리더니 음흉한 기색을 드러내며 운을 떼기 시작했다.“할머니, 두 사람 결혼식 올리는 거 허씨 가문에서도 알고 있나요?”“허씨 가문? 아직 모를 건데.”갑작스러운 질문에 남미숙은 멈칫거렸다.“그럼, 저희가 허씨 가문에 알리는 건 어때요?”“그 집안에서 이 일을 알게 되면 난리 나지 않겠어요? 승재 도련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은데.”“염치없이 결혼식까지 올리는 걸 보면 이건 할머니뿐만 아니라 그 집안까지 도발하는 거라고요.”이은정은 음흉하고 희미하게 입가에 미소를 일렁이며 제의했다.“그러네요. 허씨 가문 도련님께서 이진희한테 마음 있어 하는 건 온 세상 사람이 다 알고 있는 일이잖아요. 심지어 결혼까지 하려고 댁으로 찾아온 적도 있잖아요.”“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을 거창하게 준비하고 있는 걸 보면 이건 허씨 가문을 상대로 도발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만약 이 일을 우리 쪽에서 허씨 가문에 흘린다면 꽤 볼만할 것 같은데요.”이은정에 말에 이천강 또한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맞장구를 쳤다.두 사람의 말을 듣고 난 남미숙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같은 마음을 보였다.“그래. 너희들 말이 맞다.”“당장 허씨 가문에 이 소식을 흘려야겠어.”말하면서 남미숙은 핸드폰을 꺼내 들어 허안강에게 전화를 걸었다.허승재가 이진희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허안강은 직접 아들을 데리고 찾아온 적이 있다. 두 아이의 혼인을 성사하기 위해서.그 일로 서로 연락처를 남기게 된 것이다.전화는 곧 연결이 되었고 허안강의 목소리
같은 시각.남미숙의 전화를 받고 난 허안강은 인상이 한껏 찌푸려졌다. 달갑지 않은 듯한 모습도 더불어 얼굴에 나타나면서.“또 무슨 일인데 그래?”허안강 옆에 있는 한 여인도 덩달아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여인의 정체는 바로 허안강의 첫 번째 아내이자 허승재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녀의 이름은 배정옥이다.“흥! 도운시 이씨 가문에서 전화가 왔어. 그 댁 어르신인데,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말만 하고 바로 끊어 버렸어. 윤도훈 그놈이랑 이진희가 3일 후에 식을 올린다고.”허안강은 차가운 목소리로 불쾌함을 드러냈다.이에 배정옥도 곧 불쾌한 듯 얼굴이 어두워졌다.“그게 무슨 뜻인데? 설마 우리보고 결혼식에 참석하라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사람을 업신여겨도 그렇지 어떻게 그럴 수 있어?”말하면 할수록 열이 훨훨 타오른 배정옥은 언성을 높이기까지 했다.“안 돼! 절대 가지 마! 어디 한번 가기만 해봐!”“우리 승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 꼴까지 봐야 하는 건데? 이진희 그년도 그래, 우리 승제를 그렇게 매몰차게 거절해 놓고 윤도훈이랑 올리는 식에 우리까지 부르고 싶은 거야? 우리 체면은 어떻게 하고? 이미 아버님 말씀대로 선물까지 들고 찾아갔었잖아. 그럼, 된 거 아니야? 우리가 뭘 더 어떻게 해야 속이 풀리는 건데? 진짜 너무 한 거 아니야?”자기한테 화를 풀고 있는 듯한 허안강의 모습과 소리에 허안강은 언짢았다.하여 말을 채 하기도 전에 손을 흔들며 더 이상 말 하지 못하게 했다.“그만해! 꼭 그런 마음으로 초대한 것 같지도 않아. 어쩌면 우리한테 잘 보이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 윤도훈 그놈 말이야.”“웃기지 말라고 그래!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지가 무슨 집안이 튼튼해 아니면 재력이 대단해? 그깟 무술 좀 할 줄 안다고 우쭐거리다가 언젠가는 코 다치고 말 거야.”“우리 승제 죽이겠다고 노래 부를 때도 순순히 넘어가 줬잖아. 그럼, 숨죽이고 조용하게 살 것이지 어디 감히 전화까지 하는 거지? 그것도 결혼식에 참석하라고
그리고 다음날 주말.윤도훈과 이진희의 결혼식이 성대하게 열리는 날이다.이른 아침 로얄관 별장 구역. 이진희는 자기 집 침실에서 분주하게 평생 기억에 남을 하루를 맞이하고 있다.메이크업 선생님이 지금 한창 이진희를 위해 신부 단장을 해주고 있다.모두가 바삐 돌고 있는 가운데 이진희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낯선 번호임을 확인하고 이진희는 두말없이 거부 버튼을 누르며 끊어버렸다.하지만 전화는 끊이지 않고 또다시 걸려 왔다.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진희는 눈살을 찌푸린 채 수신 버튼을 눌렀다.“누구세요?”이진희는 덤덤하게 물었다.“이진희 씨께 보여드릴 물건이 있습니다. 지금 바로 로얄관 별장 문 앞으로 오시기 바랍니다.”밑도 끝도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누구신데 그러는 겁니까? 보여주겠다는 건 또 뭐고요?”이진희는 의문이 가득한 채 또다시 물었다.“저 윤도훈 친구인데요, 그에 관한 비밀 같은 거 좀 보여드리고 싶어서 찾아온 겁니다. 10분 내로 바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자기 말만 하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진희가 그 어떠한 말도 더 이상 물을 수 없게.의구심이 들만한 이진희는 두 눈에 작은 요동이 일어났다.이윽고 더는 주저하지 않고 방에서 재빠르게 뛰쳐나왔다.“진희야, 너 뭐 하러 가는데?”일찍이 집으로 찾아와 1층 거실에 앉아 있던 이천수와 서지현은 급히 나가는 딸의 모습에 당황했다.서지현의 물음에 이진희는 대충 대답하고서 뒤돌아보지도 않고 달려 나갔다.“별거 아니에요. 금방 다녀올게요.”‘윤도훈에 관한 비밀?’이진희는 그 한마디에 바로 낚기고 말았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그것도 윤도훈에 관해서는 더더욱.몇 분 지나지 않아 이진희는 별장 구역에서 나오게 되었다.대문 동쪽 가드레일 옆에 누군가가 자기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지만 이진희는 이미 상대의 정체를 확인하고서 눈썹을 치켜세웠다.‘저 사람이 왜?’윤도훈과 전에 둘도 없는 친
오전 10시 30분 즈음 윤도훈은 빨간색 페라리를 몰고 로얄관에 이르렀다.직접 이진희를 픽업하여 결혼식을 올리게 될 골든 하우스 호텔로 향했다.이천수, 서지현, 그리고 양유나를 포함한 신부 측 들러리도 뒤따라 도착했다.골든 하우스 호텔은 오늘 다른 손님을 받지 않고 오로지 두 사람의 결혼식만을 위해 분주히 돌아간다.호텔 전체에 결혼식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다.식을 올리게 될 가장 꼭대기 층은 여느 곳보다 화려하고 으리으리하다.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이천수와 서지현은 꼭대기 층 로비 입구에 서서 하객을 맞이하려고 했다.그리고 호텔 입구는 이원이 일행을 데리고 하객을 맞이하고 있다.시간의 흐름에 따라 슬슬 도착해야 할 하객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자 이원은 초조함에 인상까지 잔뜩 찌푸렸다.애타는 마음으로 로비를 들여다보니 몇 명만 덩그러니 앉아 있고 청첩장을 받은 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11시가 다 되어가는데 왜 다들 아직도 안 오는 거지?’“여보,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 왜 다들 오지 않은 거예요?”이원과 마찬가지로 이상함을 눈치챈 서지현이 불안해하며 물었다.“주말이라 차가 좀 밀리나 봐요. 아직 시간 넉넉하고 좀 더 기다려 봐요.”이천수가 말하는 순간 갑자기 하객을 맞이하고 있던 호텔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씨 가문 어르신께서 도착하셨습니다.”남미숙이 왔다는 말에 두 사람은 놀란 듯이 눈을 마주치더니 곧 입꼬리가 올라갔다.특히 아들인 이천수는 기뻐해 마지 못하며 한걸음에 달려갔다.서지현도 콧방귀를 뀌긴 하였으나 내심 기분이 좋아 보였다.오늘 같은 날에 남미숙과 다투고 싶지 않을뿐더러 그들의 사이가 이로써 좀 부드러워졌으면 했다.바로 이때 남미숙, 이천강, 이은정 세 사람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마땅히 집안 전체가 기뻐해야 할 날임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은 그런 모습이 일도 있었다.마치 고소하기라도 한 듯한 웃음과 더불어 조롱하는 빛도 얼굴에 아른거렸다.게다가 그들은 빈손으로 축의금도 신혼 선물도 준비하지 않고
한연란의 반문을 들은 윤도훈은 순간 멍해졌다. ‘이곳에 무언가 안 좋은 것이 있을 텐데, 한연란은 대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일까?’“설마, 이곳에 갇혀 있는 게 무슨 이득이라도 있단 말입니까?”윤도훈이 무의식적으로 물었다.그러자 한연란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제 막 들어오셔서 잘 모르는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아직 말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저희 한조 자유 수련자 협회 회장님을 만나 뵌 후에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윤도훈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굳이 더 캐묻지는 않았다. 대신 한연란의 다른 동료들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그들 역시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그들의 눈빛에는 여전히 경계와 신중함이 서려 있었다. 마치 방금 자신들을 도운 윤도훈조차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그들은 지하 통로를 따라 약 1리 정도를 이동한 후, 마침내 한조 자유 수련자 협회가 이곳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 만든 집결지에 도착했다. 그곳은 마치 수도원 같은 건물처럼 보였으나, 분명히 과거 흡혈귀 일족이 거주했던 지역인 만큼 일반적인 수도원은 아니었다.건물의 벽에는 각종 사악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곳곳에 흡혈귀의 섬뜩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음울하고 기괴했다.한연란은 윤도훈을 데리고 건물 안의 한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어르신 한 명과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어르신은 일흔을 넘긴 듯 백발의 머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중년 남자는 차분한 기운을 풍기며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생김새는 왠지 모르게 윤도훈에게 익숙한 느낌을 주었다.윤도훈은 그들을 몇 번 훑어보며 생각했다.‘이상하군.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묘하게 익숙한 기분이 드는 건 왜지?’이윽고 윤도훈은 두 사람 모두 금단 후기 수준의 강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러나 두 사람의 진기와 단전 안에는 흡혈귀 일족 고수들의 기운과 비슷한 기운, 즉 기혈의 힘이 섞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이들은 분명 금단
윤도훈은 이찬혁과 노차빈 등 봉화경비 소속 사람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용안관천술의 기운 추적법을 사용하여 그들의 흔적을 찾으려 했다.그러나 이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서는 기운 추적법조차 무용지물이었다.“이런, 어쩔 수 없군. 일단 하나하나 살펴보자. 이찬혁과 노차빈이 무사하기를 바랄 수밖에.”윤도훈은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을 했다.그때, 멀지 않은 거리에서 싸움 소리가 들려왔다. 윤도훈은 눈빛을 번뜩이며 빠르게 그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가 도착한 곳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고대 시체의 공격을 막아내며 싸우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앞장선 파란색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길고 날카로운 검을 휘두르며 빈틈없이 방어하고 있었다.다른 사람들도 고대 시체와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지만,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았다.윤도훈을 놀라게 한 점은, 그들이 모두 동양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용병처럼 보이지 않았으며, 사용하는 무기도 냉병기였다. 또한, 움직임은 염하의 수련자들이 사용하는 기술과 흡사했다.‘이런, 염하에서 온 모험가들이나 자유 수련자들인가?’윤도훈은 속으로 생각했다.사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험가나 무파나 가문의 지원 없이 활동하는 자유 수련자들이었다. 이들은 세계를 떠돌며 기회를 찾아 나서곤 했고, 어떤 흥미로운 소문이 돌면 먼 곳까지 찾아가기도 했다.그들의 움직임을 보니, 모두 진기를 운용하며 싸우고 있었지만, 그 진기에는 희미하게 붉은 빛이 섞여 있었다. 그 붉은 빛은 흡혈귀 일족의 기운과 비슷해 보였고, 윤도훈은 속으로 의문이 들었다.그러나 국외에 나와 이런 익숙한 동양인 얼굴들을 보자, 윤도훈은 그들을 도와주기로 결심했다.윤도훈은 빠르게 달려가며 그들을 공격하는 고대 시체들에게 일격을 가하기 시작했다.그 순간, 그 무리에 있던 파란 옷의 여인과 다른 사람들이 경계의 눈빛을 드러내며 윤도훈을 바라봤다. 갑작스러운 윤도훈의 등장에 놀란 듯, 몇몇 사람들은 고대 시체와 싸우는 것을 멈추고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윤도훈을 휘감았다. 그러나 망설임 없이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 들어섰다.눈앞의 풍경은 한순간에 붉은 기운으로 뒤덮였다. 사방이 핏빛 안개로 가득 차 있었고, 주변의 분위기는 마치 중세 MZ의 도시와도 같았다. 고풍스러운 성채와 중세풍의 건축물이 우뚝 솟아 있었으며, 멀리에는 커다란 시계탑이 보였다. 시계탑의 커다란 시계추는 이미 오래전에 멈춰 있었고, 그 위에는 어두운 붉은색의 흔적이 남아 있어 마치 피로 물든 듯한 인상을 주었다.바람이 휙 지나가며 희미한 피비린내가 코끝을 스쳤다.‘이곳이 바로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인가?’윤도훈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주변을 살피고, 환경 변화로 인한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잠시 후, 확인을 마친 윤도훈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고, 얼굴에는 조심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평소라면 윤도훈은 백 미터 내외의 모든 상황과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지만, 이곳에 들어온 순간 그의 감각은 마치 억눌린 듯 작동 범위가 크게 줄어들었다. 주변 10여 미터 정도의 상황만 감지할 수 있을 뿐이었다.동시에 윤도훈은 자신의 피가 이상하게 들끓는 느낌을 받았다. 그로 인해 그의 감정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기며, 내면에는 폭력적이고 살육적인 충동이 점점 커져갔다.윤도훈은 자신의 정신력을 사용해 이 감정을 억누르려 애썼다. 그는 용조의 검혼을 정련하며 정신력을 크게 단련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보다 감정 제어에 유리했다.그러나 이곳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동요는 윤도훈이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이 모든 것은 윤도훈을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또 다른 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몸속에는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힘이 자리 잡고 있었다.그 힘은 윤도훈을 더 강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살인 충동도 불러일으켰다. 이 힘은 그의 몸속에 있던 죽음의 힘과 유사했지만, 그보다 한층 더 높은 차원의 에너지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힘은 너무 강력해서 윤도훈조차 강제로 몰아낼
이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 대해 윤도훈은 속으로 탐구해 보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현재 윤도훈이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적인 상고 윤씨 가문과, 언젠가 다시 마주하게 될 단맥종과 같은 위협을 생각하면, 힘을 키울 수 있는 어떤 기회든 놓치고 싶지 않았다.따라서 피의 조상의 심장을 얻으면 흡혈귀의 시조인 카인 마왕의 일부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은, 윤도훈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흡혈귀 황제 마리의 말 앞부분에는 아직 망설임이 있었지만, 그녀가 봉화경비라는 이름을 언급했을 때 윤도훈의 표정이 확연히 변했다.“봉화경비? 봉화경비가 왜?”윤도훈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이전에 윤도훈은 이미 이찬혁과 노차빈이 고액의 임무를 수락하고 해외로 떠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마리가 봉화경비를 언급하다니, 혹시 이게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역시나, 잠시 후 히드 공작이 말을 이었다.“봉화경비의 몇몇 인원이 저희 히드 조직이 의뢰한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 탐험 임무를 수락했습니다.”“다른 용병들과 함께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 들어갔죠. 하지만 지금까지 그곳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그 말이 끝나자, 윤도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변했다. 그는 냉혹한 눈빛으로 히드 공작을 바라보았고, 온몸에서 강렬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이 순간, 히드 공작은 등골이 오싹해졌고, 마치 얼음동굴에 갇힌 것처럼 차가운 공포를 느꼈다. 그는 서둘러 해명했다.“인정합니다. 히드 조직은 과거 선생님께 복수하기 위해 윤도훈 씨 주변 사람들의 정보를 조사했습니다.”“그래서 봉화경비의 배후가 바로 윤도훈 씨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맹세컨대, 이번 임무는 저희가 봉화경비를 유인한 것이 아닙니다.”“흥!”윤도훈은 크게 코웃음을 치며 공기를 흔들 정도의 낮은 음성을 냈다. 그 소리에 히드 공작은 귀가 아플 정도의 통증을 느꼈다.“내 사람들이 무사하길 바라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히드 조직은 완전히 몰락하게 될 것이고, 흡혈귀
“내가 하늘을 걸고 맹세하건대, 절대로 윤돈훈 씨를 속이지 않았습니다. 우리 흡혈귀 일족이 현재 가진 자원 중에는 정말로 당신의 눈에 들만한 것이 없습니다.” “믿지 못하겠다면, 다시 한번 흡혈귀 일족 영토로 가보세요. 제가 당신께 모든 것을 열어드릴 테니, 마음껏 찾고 원하는 것을 가져가세요.”“제가 이렇게 진심을 다하는 것은, 윤도훈 씨를 경외하며 우리의 원한을 완전히 끝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피의 조상의 심장에 대해 말씀드린 거고요.” “만약 관심이 없다면, 평범한 다른 자원을 드리겠습니다. 예를 들어 제 피를 빨아들이는 마법 채찍은 우리 흡혈귀 일족에서 가장 좋은 무기 중 하나입니다. 원하십니까?”마리는 약간의 체념과 억울함이 묻어난 표정으로 윤도훈을 향해 간절히 말했다.여자들은 본래 배우라는 말이 있듯, 흡혈귀 황제 같은 흡혈귀도 이 방면에서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특히 이렇게 불쌍한 척 연기를 하는 순간만큼은 더욱 빛을 발했다. 지금의 마리는 전혀 죄가 없는 순진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진심이 담긴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다.이 말을 들은 윤도훈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마리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마리도 숨을 깊이 들이쉬며 윤도훈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마치 조금의 거리낌도 없는 듯 보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네가 더 이상 좋은 것을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일단 믿어보지. 네 피를 빨아들이는 마법 채찍을 먼저 내놔. 그리고 피의 조상의 심장이 어디 있는지 말해.”흡혈귀 황제 마리는 윤도훈의 말을 듣고 깜짝 놀른 듯, 그 자리에서 표정이 굳었다.‘뭐지? 이 녀석, 정말로 내 피를 빨아들이는 마법 채찍을 원한단 말인가? 단순히 허세로 한 말인데, 이 자가 진심으로 그것을 원하다니?’이 피를 빨아들이는 마법 채찍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백 명의 대공 흡혈귀의 척추뼈와 피의 인내를 담은 강철이라는 특수 금속을 섞어 제작한, 매우 희귀한 성스러
이틀 후.서지현이 하이오스 그룹의 냉동 기지로 안전하게 돌아온 후, 윤도훈과 이진희는 이번엔 또 다른 불상사를 막기 위해 24시간 동안 그곳을 지켰다. 서지현이 해동된 후에는 더 이상 어떤 사고도 발생하지 않도록 확실히 하기 위해서였다.그날, 윤도훈과 이진희는 앨리스의 소개로 그녀와 성시아의 스승을 만났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간 유전학의 권위자, 스타인 박사였다.두 사람은 윤시율을 데리고 이 학계의 거물을 만났다. 아이의 몸에 걸린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 만에 하나라도 희망이 있다면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에서였다.윤도훈은 생각했다. 상고 윤씨 가문의 이 저주는 몇 세대 간 무작위로 나타나며 마치 유전적 성질을 가진 듯 보였다. ‘그렇다면 이 저주를 가문의 손을 빌리지 않고, 과학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스타인 같은 세계 최정상급 인간 유전학자를 만날 기회를 얻게 된 만큼, 윤도훈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운 좋게도 앨리스는 스타인 박사의 가장 총애 받는 제자였고, 그녀의 소개 덕분에 박사는 앨리스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게다가 스타인 박사는 윤시율의 상태를 듣고 나서, 그 저주에 대해 큰 흥미를 보였다.이윽고 하이오스 그룹에 있는 앨리스의 사무실에서, 두 사람은 윤시율과 함께 스타인 박사를 만났다. 스타인은 허름한 옷을 입고 두꺼운 안경을 낀 노인이었으며, 외모로만 봐도 학문 연구에만 몰두하고 일상적인 생활은 거의 무시하는 전형적인 과학자였다.잠시 후, 스타인 박사는 다양한 장비를 이용해 윤시율을 전반적으로 검사했다.윤시율의 혈액과 골수를 채취해 분석과 연구를 진행했으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결과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동시에 스타인 박사는 이 유전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 다. 물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윤도훈과 이진희도 이 상황을 죽은 말을 살리는 심정으로 받아들이며, 스타인이 최선을 다해주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워했다.스타인 박사가 윤시율을 검사실로 데리고 가 여러 검사
흡혈귀 황제 마리는 흡혈귀 일족의 여왕으로서 윤도훈에게 충분한 경고와 함께 수백 구의 흡혈귀 일족 강자들의 시체를 남겨주었다. 그 후 윤도훈은 그렇게 흡혈귀 일족의 영역을 떠났다.흡혈귀 일족의 영토 전체는 비통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공기 속에는 짙은 피비린내와 죽음의 기운이 맴돌았다. 원래 흡혈귀 일족들에게 이런 냄새는 매우 황홀한 향기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흡혈귀 일족들에게 두려움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사냥감의 피비린내와 자신의 동족이 죽은 뒤 퍼지는 피비린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한편, 흡혈귀 황제 마리의 마음속에는 공포와 경악을 넘어 깊은 슬픔과 증오가 자리 잡았다. 한 명의 대공이 목숨을 잃었고, 다른 공작과 백작 등의 흡혈귀 일족 중추 세력도 절반 이상이 희생되었다. 이로 인해 흡혈귀 일족은 큰 손실을 입었고, 이 모든 것은 염하에서 온 윤도훈을 건드린 결과였다.조금 전, 윤도훈 앞에서 타협을 선택했던 마리는 자신의 증오심을 잘 숨겼다. 하지만 이러한 피의 원한을 그녀가 어찌 갚지 않을 수 있겠는가?윤도훈이 떠난 지 한 시간이 지난 후.흡혈귀 일족의 영토 안에 위치한 한 밀실.흡혈귀 황제 마리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몸에 묻은 피와 무력함의 흔적을 깨끗이 씻어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요염하고 위엄 있는 여왕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또한, 마리 앞에는 한 잘생긴 뱀파이어 공작이 무릎을 꿇고 그녀의 부츠에 입맞추고 있었다.“히드 공작,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의 상황은 어떻지?”마리는 자신의 발을 거두며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마리 여왕님, 제가 은밀망을 통해 여러 방식으로 배포한 임무를 이미 많은 전 세계 용병과 모험가들이 수락했습니다. 지금 고대 지역으로 몰려든 인간들의 수가 이미 천 명에 달했습니다.”“그중에는 세계정화 교단과 늑대인간 무리 같은 멍청이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두들 그 신비로운 보물을 목표로 하고 있지요.”“제 생각에 두 달도 채 안 돼, 피의 조상 고대 시체에게 바칠 제물의 수
흡혈귀 황제 마리는 윤도훈이 아직도 멈출 생각이 없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윤도훈 씨, 도대체 어디까지 하려는 거예요? 당신 장모님은 무사하시잖아요. 설마 지금 와서 말을 바꾸려는 거예요? 원한에는 원인이 있고, 빚에는 주인이 있죠. 오거스라는 사건의 주범은 이미 죽었어요.”흡혈귀 황제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녀의 2미터가 넘는 키마저 분노로 인해 약간 떨리고 있었다.“네 흡혈귀 일족들이 외부에서 제멋대로 날뛰며 암흑 조직을 지원하고, 내 장모를 납치하고, 내 아내를 끌어들이려 했지. 방금도 나를 죽이려 했으면서, 주범 하나 죽이는 것으로 끝내겠다도?”“내가 윤도훈이라 너무 호락호락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 모든 원한을 깔끔히 정리하려면, 너희 흡혈귀 일족이 나에게 배상을 해야겠지. 그렇지 않나?”윤도훈은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띠며 강하게 마리를 압박했다. 이것은 국제 관례였다. ‘패배자가 승자에게 보상을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도대체 어떤 배상을 원한단 말인가요?”흡혈귀 황제 마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분노 섞인 어조로 물었다.“너희 흡혈귀 일족에 어떤 보물이 있는지 보자고. 내가 눈여겨볼 만한 걸 내놓아라.”윤도훈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그 말이 끝나자, 흡혈귀 황제 마리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흡혈귀 일족의 가장 큰 보물이라면, 바로 저입니다. 그런데 이거 어쩌죠? 제가 윤도훈 씨와 하룻밤을 같이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겠어요?”자신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강자를 상대하면서, 마리는 윤도훈과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한편, 그 말을 들은 윤도훈은 흠 하며 잠시 멈칫하더니, 흡혈귀 황제 마리의 몸을 훑어보았다. 솔직히 말해, 그녀는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매혹적인 인물이었다.2미터가 넘는 키에도 전혀 투박하거나 둔탁하지 않았고, 오히려 독특한 매력을 뿜어냈다. 1미터 이상의 다리, 매혹적인 허리와 골반의 곡선, 그리고 빠져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진희는 사실 흡혈귀 일족의 영토로 보내지지 않았다. 이전에 오거스는 단지 윤도훈을 이곳으로 유인해 흡혈귀 일족의 더 강력한 강자들이 그를 상대하게 하려는 계략을 꾸몄을 뿐이었다.그러나 뜻밖에도 윤도훈의 강함은 흡혈귀 일족 전체가 어찌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하이오스 그룹으로 돌려보내라니?”윤도훈은 날카로운 눈빛에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도훈 씨, 하이오스 그룹으로 보내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어쨌든 장모님께서는 여전히 냉동 상태에 있으시니까요. 안심하세요. 하이오스 그룹과 히드 조직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며, 단지 로이가 히드 조직의 일원일 뿐입니다.”오거스는 바닥에 엎드린 채 쓴웃음을 지으며 설명했다.윤도훈은 코웃음을 치며 약 30분가량 그곳에서 기다렸다. 그동안 흡혈귀 일족 대전당 전체는 무거운 긴장감 속에 조용했다. 다른 사람들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듯한 분위기였다.온몸이 피로 뒤덮이고 살기를 내뿜는 윤도훈이 그저 조용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모두에게 강렬한 압박감을 주었다.잠시 후, 오거스가 부하들에게서 회신을 받은 뒤, 윤도훈은 이진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도훈은 이진희에게 하이오스 그룹의 인체 냉동 기지에 가서 서지현이 무사히 돌아왔는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윽고 확실한 답변을 들은 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도훈 씨, 장모님은 이미 무사히 복귀하셨고, 도훈 씨도 아무련 부상을 입지 않으셨으니, 이제 그만 떠나주실 수 있겠습니까?”그 순간, 흡혈귀 황제 마리는 윤도훈을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윤도훈은 마리의 능력조차 능가하는 실력을 가진 염하인이다. 따라서 그가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흡혈귀 황제 마리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은 윤도훈을 죽일 능력은 없는데, 상대는 흡혈귀 일족을 멸망시킬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마리는 윤도훈이 어서 떠나주길 바랐다. 이 재앙과도 같은 존재를 빨리 보내고 싶어 했다.“떠나라고? 내 장모를 함부로 납치하고, 내 아내를 잡으려 들고,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