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874화

정강민한테 폭행 당하고 눈앞이 흐릿해지던 고윤희는 구세주를 만났다는 듯 구경민의 다리에 매달려 애원했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 나 좀 살려줘요. 나 좀 데려가 줘요. 시키는 건 다 할 테니까요. 나 좀 데려가 줘요. 네?”

구경민의 녹색 제복과 롱코트, 그리고 강렬하고 정직한 인상은 그녀에게 말 못 할 안정감을 주었다.

정강민은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었다.

구경민이 자기를 죽이기라도 할까 봐 그저 바닥에 앉아 뒤로 슬금슬금 후퇴했다.

고윤희 앞에 몸을 낮춘 구경민의 롱코트는 바닥에 닿아 먼지투성이 되었지만, 구경민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입가에 피를 흘리며 벌벌 떠는 두 팔로 자기의 다리에 매달린 그녀를 바라보았다.

“살려주세요... 저 힘든 일도 할 수 있어요. 먹여주기만 하면 다 할 수 있어요. 제발요, 나 좀 살려주세요.”

고윤희는 구경민을 애타게 바라보았다.

구경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요즘, 구경민은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5년을 만난 여자친구가 갑자기 구경민을 버리고 남아메리카주에 있는 찾기도 힘든 나라로 가버렸다.

떠나기 전에 최여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구경민에게 말했다.

“오빠, 나갈게. 오빠한테 기다려 달라 말할 자격이 없어. 하지만 난 지금 오빠랑 결혼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 나 이제 스물셋이야. 오빠를 떠나서 더 큰 세상을 보고 싶어.”

“여진아, 장난치지 마.”

최여진이 말했다.

“장난 아니야. 이제 오빠와는 질려. 나 혼자 정리하고 싶어.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 부모님을 떠나서, 오빠를 떠나서 멀리 가고 싶어. 그곳에서 전원 생활을 하면서 야채도 심어보고 싶고 꽃도 키우고 싶어. 나 찾아올 생각은 하지 마. 나 숨는 거 엄청 잘하잖아. 그러다가 내가 지겨워지면 돌아올 수도 있어. 그때까지도 오빠 옆에 다른 여자가 없으면 나와 결혼해서 애도 낳자. 어때, 오빠?”

구경민은 최여진보다 다섯 살 연상이다.

그 해, 최여진은 스물셋, 구경민은 스물여덟이었다.

최여진이 열여섯 살 때부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최신 챕터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