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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4화

민정아에게도 콧대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 있었다. 이도 저도 아니면서 잘난 척하는 꼴이 우스우면서도 증오스럽더랬지.

월급으로 연명하는 평범한 회사원들은 감히 그녀에게 대항하지는 못했지만 모두 그녀를 혐오하고 있었다. 그리고 구서준처럼 돈이 많은 부잣집 도련님은 민정아 같은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집안의 메이드보다도 못한 여자였기에 구서준이나 서준명은 그녀를 매우 싫어하고 업신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자신을 낮추다 못해 아예 땅을 파고 들어갈 기세였다. 고요하지만 고집스러운 저항을 눈여겨보던 구서준은 문득 모두에게 배척받던 시절의 신세희를 떠올리게 되었다.

신세희는 늘 당당하고 무덤덤했지만 지금의 민정아는 달랐다. 그녀는 마치 놀란 햄스터처럼 불안해했다.

‘이건 너무 괴롭히고 싶잖아?’

민정아는 구서준의 흥미를 돋게 했다.

회사 여직원들과는 얽히고 싶지 않았던 그였지만 불현듯 그녀의 살짝 거친 입술을 맛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서울에서 제 잘난 멋에 한껏 거드름을 피우는 미녀들은 수도 없이 봐왔다. 그래서 이렇게 자존감도 낮고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벗어나려고 애를 쓰는 햄스터 같은 모습에 마음이 동한 것이다.

민정아를 사랑하는 건 아니었다. 사실 그런 감정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건 그저 일시적인 호기심뿐이었다.

그러나 고개를 반대편으로 홱 돌린 민정아는 잔뜩 긴장하며 얼굴을 붉혔다.

“안 돼요, 구 대표님. 더 이상 대표님께 그런 마음을 품고 있지 않아요. 그러니 제게 이러지 마세요. 전 지금 부모님께 쫓겨나서 마땅히 머물 곳조차도 없어요. 대표님이 저를 책임지지 않으실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고요. 그런데 만약에 제가 덜컥 임신이라도 해버린다면 제 처지가 너무 불쌍하잖아요. 죄송합니다. 저는...”

민정아는 자기가 진정으로 궁금했던 질문을 꾹꾹 눌러 삼켰다.

‘만약 그렇다면, 저와 결혼할 생각은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저는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하지만 그녀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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