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상관없었다.유리가 학교에 다닐 수 있고 살아있을 수만 있다면 다른 건 모두 상관없었다.스스로 납득한 신세희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부소경이 떠난 뒤 그녀는 커다란 침대에 축 늘어진 채 이리저리 뒹굴며 달콤한 잠에 빠졌다.더는 자고 싶지 않을 때까지 잠을 청한 신세희가 몸을 일으켜 욕실로 향했다.욕조는 입이 벌어질 정도로 커다랬고 없는 게 없었는데 웬만한 고급 스파보다 훨씬 세련되었다. 신세희는 넓은 욕조에 홀로 기대도 보고 앉아도 보며 욕조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부드럽고 따뜻한 물을 한껏 즐겼다.이곳은 온천 같기도 했다.다시 노곤해진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이 순간을 만끽했다.그녀는 대표실에 있는 부소경이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부소경도 절대 엿보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녀가 자기 말대로 잘 쉬고 있는지 살피려다가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된 것이었다.욕조에 삼십 분 동안 누워 있던 신세희가 온몸에 아롱진 물방울을 잔뜩 머금고 밖으로 나왔다.그녀는 맨발로 카펫을 사뿐히 밟으며 침실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가운도 입지 않고 타올로 물방울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신기한 장소를 구경하듯 서성이는 것이었다.한참 구경하던 그녀는 이내 그의 옷장을 활짝 열어젖혔다. 제멋대로 품이 넓은 셔츠를 꺼낸 그녀가 자기 몸에 훌쩍 걸쳤다.대표실에서 이걸 지켜보던 부소경은 기가 차 웃음을 터뜨렸다.흰 셔츠와 사랑에 빠지기라도 한 모양이었다.하긴, 자신의 셔츠를 입은 그녀는 확실히 매력적이긴 했다. 부소경은 품이 넓은 셔츠를 걸친 그녀가 통유리로 된 발코니에 놓여있는 등나무 의자에 기대있는 걸 멍하니 바라보았다.나른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왔다.그녀는 여유를 즐기는 얌전한 고양이 같았다.컴퓨터로 이 모든 걸 지켜보던 부소경은 선뜻 카메라를 끄기가 망설여졌다.등나무 의자에 잠시 기댔던 신세희는 이내 다시 침대로 돌아가 셔츠 차림 그대로 누워 잠을 청했다.점심이 되자 이씨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사모
부소경의 안색이 대번에 굳어졌다. 그가 이를 갈며 반문했다."뭐라고?"이 여자는 정말이지 그의 화를 돋우는 재능을 타고난 게 틀림없었다.신세희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구경민 씨는 선비같이 고고한 분위기를 풍기더라고요. 그 사람의 지위도 당신 못지않을 텐데 날 싫어하지 않을까요?"부소경이 신세희의 목을 덥석 움켜쥐었다."본인을 그런 식으로 매도하지 마!"그의 손에 잡힌 신세희는 말을 할 수도, 숨을 제대로 쉴 수도 없었다. 그저 옅은 신음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이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부소경이 손을 뗀 뒤에도 신세희는 한참 기침하고 나서야 진정할 수 있었다.이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네."부소경이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드레스숍 직원이었다."대표님, 말씀하신 사이즈와 스타일로 준비한 상품들입니다. 이분...께서 착용하실 건가요?"직원이 신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신세희는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지 듣지 않아도 훤했다. 부소경을 따라와 이곳에서 피팅하고 있었으니 아마 사람들은 자신을 사교계의 꽃쯤으로 여길 터였다.부소경은 대답 대신 직원에게 명령했다."갈아입혀요.""네, 대표님."친절한 미소를 머금은 직원이 신세희에게 말했다."고객님,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신세희가 고분고분 직원을 따라 피팅룸으로 들어갔다."어머, 고객님, 몸매가 너무 좋으시네요. 마르신 분인 줄 알았는데 체형도 적당하시고 볼륨감도 있으시고요."직원이 신세희에게 칭찬을 늘어놓았다.미처 예상치 못했던 터라 그녀의 얼굴에 또다시 홍조가 깃들었다.직원이 웃으며 말했다."부끄러워하시긴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대표님께선 저희 가게를 자주 방문하시는 편이에요. 중요한 파티에 참석할 때면 계약서를 작성한 여배우들을 파트너로 데리고 가시거든요. 하지만 대표님께서 그분들의 드레스 비용을 지불하는 건 아니에요. 모두 계약금에 포함되어 있거든요. 6년 사이에 대표님께서 사전에 저
자신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그녀는 늘 무표정을 고수할 정도로 냉담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는 유독 자기 어머니 앞에서만 웃음을 보였다. 그녀가 웃을 때면 주변마저 달콤하고 말개지는 것 같았다. 마치 순수한 학생이라도 된 것처럼.그는 신세희의 냉담함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대부분 시간은 그런 상태라 이토록 부드럽고 나긋한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몹시 매혹적이고 고아했다.그는 홀린 듯이 신세희를 바라보았다."예뻐요?"신세희가 지나가듯이 물었다.지금까지 그녀는 한 번도 자신이 누군가에게 몸을 팔 거라고는, 이런 일에 종사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감옥에 수감된 2년 동안에도 그녀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었다.그녀는 그저 하숙민 아주머니에게서 열심히 건축 설계를 배웠을 뿐이었다.그러다 어느 날 감옥에서 나가게 된다면, 건축 설계로 생계를 유지하며 엄마를 잘 모시고 마음 맞는 남자친구도 사귀면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막연히 바라기도 했다.그러나 인생은 결코 그녀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어쩌면 임지강에 의해 보석으로 풀려나 부소경에게 영문도 모른 채 자기 몸을 내어준 날부터, 자신은 몸을 팔게 될 운명으로 결정 난 걸지도 몰랐다.이왕 이렇게 됐으니 좀 더 전문가다워질 필요가 있었다.물기를 머금은 듯한 몽롱한 눈동자로 부소경을 바라보던 신세희가 다시 물었다."예뻐요?""당장 갈아입어."부소경이 말했다.신세희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직원도 부소경의 행동이 의문스러웠다. 매우 민망한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상냥하게 말했다."괜찮습니다, 대표님. 굳이 이 상품으로 하지 않으셔도 아마 원하시는 고객님이 계실 겁니다. 다른 걸로 바꿔오도록 하죠."직원은 그의 눈 밖에 날 생각이 없었다.다른 옷을 준비하라는 부소경의 말을 들은 그녀가 급히 걸음을 옮길 때 부소경이 다시 말했다."내 말을 잘못 이해한 것 같군요.""네? 무슨 말씀이신지...""다른 옷으로 준비하되, 이건 팔지 말고 따로 포장하도록
부소경의 말을 들은 신세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피팅할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었다.피팅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더구나 이런 옷들은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에 불과했다.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사야 한다고 생각하자 신세희는 더욱 피곤해졌다."힘들어?"부소경이 물었다.신세희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괜찮아요."부소경이 직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골랐던 것들 모두 포장해줘요."속으로 쾌재를 부른 직원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대려 주십시오."다시 고개를 돌려 신세희를 바라본 그가 물었다."다른 옷들은 마음에 들어?"전부 그가 심혈을 기울여 고른 디자인들이었다. 세련되거나 청순한 것들 모두 그녀의 냉랭한 성격과 잘 어울리는 것으로 선별했다.고개를 살짝 숙인 신세희가 말했다."상관없어요.""......"신세희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미 입고 있잖아요. 많이 사는 건 낭비가 아닐까요."자신은 돈을 갚는 신세가 아니던가? 문득 드레스값도 갚아야 할까 봐 걱정되기 시작했다.하여 그녀는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오늘만 입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입을 일이 많을 테니까!"부소경이 언짢은 듯 언성을 높였다.아,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앞으로 시중들어야 할 남자가 적지 않을 터였다. 하루에 여러 명을 상대할 수도 있었으니 옷을 여러 벌 갈아입어야 하는 경우도 있을 테지.입을 꾹 다문 신세희가 부소경의 손에 이끌려 드레스숍을 나섰다. 뒤에서 상품을 준비하던 두 직원이 속닥거렸다."두 분 너무 잘 어울리시는 것 같아.""대표님은 노련하신데 여자분은 좀 어리신 것 같아. 저렇게 청순하게 입으시니 더 어려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한 20대 초반?""대표님 곁에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이 말을 듣게 된 신세희가 쓴웃음을 지었다.행복한 건가?사실 그녀에게 행복이란 아주 단순했다. 유리가 쑥쑥 자라고, 학교도 다니고, 서시언이 아직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것. 이거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었
또한 지나치게 체면을 차리는 것 같기도 했다."경민아, 난 네가 불러서 나온 거다? 근데 소경이가 내 체면을 뭉개버릴까 봐 걱정돼. 걔가 얼마나 칼 같은지 네가 나보다 더 잘 알 거 아니냐. 물론 나야 화해할 마음이 있다만, 걔가 날 용서하지 않으면 어떡하냐?"서른 살 남짓한 남자의 얼굴에는 가로로 긴 흉터가 나 있었다. 사나워 보이는 그의 옆자리에는 요염한 미인이 앉아 있었다."정문재."구경민이 날카로운 일침을 가했다."너한테 뭐라고 하는 건 아닌데, 부소경이는 너는 고사하고, 예전부터 형제처럼 지내온 내 체면조차도 세워주지 않는 녀석이야. 사람이 좀 독하긴 한데 그렇다고 뒤에서 칼을 꽂는 인간은 아니야. 근데 네가 한 짓을 생각해 봐. 네가 발목을 잡지 않았더라면 걔 어머니가 감옥에 갔겠어? 그분이 감옥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시지도 않았을 거야. 그런데 소경이가 어떻게 너랑 쉽게 화해할 수 있겠어?"정문재가 풀이 죽은 채로 말했다."나도 걔네 형님들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그때 부씨 집안 세력이 보통이었냐?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우리 집안 남서부 사업은 진작에 망했어. 나라고 무슨 방법이 있었겠어.""그럼 지금이라도 잘못을 순순히 인정해."구경민은 전혀 봐주지 않았다."문재야, 내가 네 죽은 형과 전우 사이라서 이 자리를 마련한 거야. 너희들이 화해하는 것까지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어.""예예, 감사합니다, 형님!"정문재가 말했다.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부소경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앉아 있던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소경아."구경민이 반갑게 불렀다.그와 비슷한 또래의 두 남자도 웃으며 그에게 인사했다."소경아, 왔어?"부소경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신세희의 손을 여전히 놓지 않았다. 신세희의 표정도 더없이 차분하고 고요했다.그녀가 입고 있는 미니드레스는 룸 안의 다른 여자들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그녀들은 섹시하거나 매혹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반면 신세희는 망울
신세희가 내뱉은 말로 룸 안이 소란스러워졌다.부소경이 밖에서 어떤 여자를 데려왔는데 그 여자와 원한이 있는 것 같더라는 소문이 며칠 동안 운성 내에 파다하게 퍼졌다. 아마 저 여자가 그 당사자인 듯싶었다.이 자리에 데려온 걸 보니 부소경이 오늘 제 친우들에게 무슨 선물이라도 주려는 건가 싶었다.얼음장 같은 낯빛을 한 부소경이 신세희의 귓가에 대고 짓씹듯이 내뱉었다."그렇게 본인의 신분을 밝히지 못해서 안달 났어?"신세희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네."그 뒤로는 단 한마디도 없었다.이 자리까지 왔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사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그저 부소경의 지시에 따르면 그만이었다."......"부소경은 당장 신세희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었다.오늘 여기에 있는 사람 중 네 명은 그와 생사를 함께한 형제였다.당시 부소경은 부씨 집안에서 고립된 상태였다. 그는 집안의 고용인보다도 못 한 처지였으며 상속권조차 가질 수 없었다.부씨 집안과 관련된 사업에 손을 댈 수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부씨 집안의 하인 노릇을 할 수도 없었다. 겉보기에는 여전히 부씨 집안의 도련님이었으니까.부성웅의 아들이었음에도 당장 굶어 죽게 생겼다는 말이었다. 얼마나 고달픈 삶이었을지 누구도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나중에 유배되듯이 해외로 쫓겨났을 때야 그는 비로소 평온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어머니가 외국에서 괜찮은 직업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부소경은 난생처음 그의 형제와도 같은 구경민을 사귀게 되었다.두 사람은 함께 조직에 가입했고 지옥 같은 훈련을 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부소경은 구경민의 목숨을 구한 적도 있었다. 하여 두 사람은 생사를 같이한 친구가 되었다.후에 구경민은 귀국했지만 부소경은 여전히 외국에서 지냈다.또 나중에 부소경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둘째 삼촌과 셋째 삼촌에게 배척받아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던 정문재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정문재는 칼에 찔려 매우 위험한 상태였다. 얼굴의 상처도 그때 생긴 것이었다
그 사람들은 모두 그의 심복이었다.6년 전 부소경이 최후의 반격을 가하던 날 밤, 그가 부씨 가문의 모든 구성원을 거의 도륙 내다시피 했지만 F그룹은 미동도 없었고 조금의 영향도 받지 않았다.하루아침에 F그룹의 주인이 바뀌었다. 원래대로라면 남성은 물론 전국이 떠들썩해졌을 테지만 그가 부임한 첫날, F그룹에서 내로라하는 권력을 거머쥔 고위층 인사들은 마치 익숙하다는 듯 공손하게 그를 "부 대표님"이라 칭했다.부태성과 부성웅은 그가 만만치 않은 인물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부소경은 비록 F그룹에 몸담고 있지 않았지만 이미 그룹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가문의 기업은 사생아에게 절대 물려주지 않으며, 사생아는 어떠한 대우도 받지 못한다는 규칙이 산산이 깨졌다.부씨 가문의 씨를 말려버린 부소경은 겨우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큰엄마만을 살려두고 그들의 앞에서 평온하게 말했더랬다."난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닙니다. 사생아로 살기는 더더욱 싫었고요. 당신들이 날 태어나게 했으니 나도 내 배다른 형제들과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겠습니다. 그게 싫었다면 낳지를 말았어야지요. 물론 당신들은 이미 그 대가를 치렀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후회하긴 너무 늦어버렸군요. 이젠 사생아를 낳지 않는 방법밖에 없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부태성과 부성웅은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그들은 바로 부소경의 존재를 인정했다. 부소경이 F그룹 최고 권력자임을 승인했으며 그를 부씨 집안의 명실상부한 자손으로 받아들였다.그가 이 모든 걸 이뤄낼 수 있었던 건 그의 잔인함과 통제력 덕도 있었지만 더 많이는 그의 인맥과도 관련이 있었다.모두 그더러 성정이 잔악무도해 혈육조차 봐주지 않는다며 손가락질했다.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본다면 그의 혈육 중에서도 그를 먼저 죽이려 들지 않았던 자가 없었다.형제들이 목숨을 걸고 부소경을 도운 덕분에 오늘의 영광과 성공을 거머쥘 수 있었다. 부소경의 친우들은 모두 특정 지역에서 권력을 장악한 거물들이었다.부소경은 이 나라의 핵심 국
부소경이 표정을 잔뜩 구기고 있을 때 구경민은 하마터면 꺽꺽거리며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본인만큼 부소경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이도 드물었다.부씨 집안의 억압 속에서 보란 듯이 반격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건 그가 결코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셈이었다.그들 형제가 함께 손을 잡고 몸집을 부풀렸다고는 하나 그 핵심은 여전히 부소경이었다.그런데 6년 동안 모두를 벌벌 떨게 했던 잔인한 사람에게 마침내 그의 고삐를 틀어쥘 만한 여인이 나타난 것이었다.구경민은 무표정한 신세희가 단 한마디로 부소경의 말문을 턱 막히게 했음을 똑똑히 보아냈다.부소경이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자 구경민이 장난스레 응수했다."그렇군요, 세희 씨. 소경이가 여기로 데려올 만한 접대부라면 아주 대단한 사람이겠는 걸요.""어... 감사합니다?"구경민이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저 여잔 대체 뭔데?"고개를 돌린 정문재가 옆자리의 구경민에게 대뜸 질문했다.구경민이 코웃음 쳤다.“뭐긴, 소경이가 단단히 감긴 모양이지."두 사람은 한가롭게 술잔을 주고받으며 부소경을 지켜보았다.사실 그들은 잔뜩 기대 중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부소경이 그를 용서하지 않을까 봐 전전긍긍하던 정문재였지만, 구경민과 장진혁이 그의 편을 들어주겠다는 확신이 서자 정작 지금은 부소경이 형제들 앞에서 어떤 추태를 보일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남성에서 부소경은 권력의 상징으로 불렸으며 소문만으로도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인물이었다.그러나 생사고락을 함께한 형제들 앞에서는 꽤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곤 했다.부소경의 추태를 잔뜩 기대하고 있을 때 마침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큰엄마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부소경에게 있어서 그녀는 딱히 중요한 인물은 아니었다.하숙민이 부성웅의 정부로 전락하게 된 건 큰엄마의 농간 때문이었다.그녀에 대한 감정은 증오로 점철되어 있었다.하지만 큰엄마는 늙었고 그녀의 세 아들도 연이어 세상을 등졌다. 만약 부소경이 자신의 권력으로 고통을 홀로 견
눈 깜빡할 사이에 신유리는 어느덧 18살이 되었다.벌써 대학교에 다닐 나이었다.그녀의 남편 부소경은 곧 쉰 살을 앞둔 사람이라 구레나룻이 하얗게 변해버렸다.그녀와 부소경 두 사람이 함께 파란만장을 겪은 시간도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갔다.너무 빨랐다."영감."신세희가 그를 불렀다.부소경은 고개를 돌려 신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날 뭐라고 불렀어?"신세희는 웃으며 대답했다."이제 영감 아니에요? 당신은 곧 50대이고 나는 이제 겨우 40대인데, 난 할멈이 아니지만 당신은 그냥 토종 영감이잖아요! 봐봐요, 당신 지금 구레나룻도 하얗게 변해버렸잖아요. 결혼식 날에 염색 좀 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싫어! 난 남들이 나를 와이프밖에 모르는 남자라고 얘기하길 바란단 말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나를 가꿔줄 생각은 절대 하지 마!"부소경은 자신보다 10살은 어려 보이는 와이프에게 말했다.하늘도 무심하지!신세희는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늙지 않았다!40대에 들어선 사람이 어찌 늙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부소경은 자신의 젊은 와이프를 보며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그는 와이프와 결혼식을 올릴 날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그리고 마침내 그날은 경치가 예쁘고 날씨가 맑게 갰으며 딱 좋은 기온에 바람도 없었다.그날 두 신인은 남성 최고급 호텔에서 더블 결혼식을 올렸다.결혼식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남성 및 글로벌 인사들이었다.신세희와 부소경, 엄선희와 서준명은 모두 친척이 적었지만 네 명의 친척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은 덕이 남성 호텔 마당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두 신인 커플이 사람들의 시야에 나타났다. 비록 젊은이는 아니었지만 새로웠다.엄선희의 부모는 기쁜 마음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의 엄선희가 또다시 돌아왔다.2년 동안 여러 번 수정을 마친 덕에 엄선희는 원래 모습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돌아왔다. 엄씨 어르신과 엄씨 부인은 이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이번 결혼식의 모든 주최와 비용은 신세희와 부소경이 부담했다.엄
엄선희는 자신의 아이를 껴안은 채 고개를 들어 친 엄마를 바라보았다.그 순간 마음이 벅차올랐다.감격과 억울함 때문에 그녀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그녀는 엄마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이윽고 엄씨 어르신도 두 모녀를 꼭 끌어안았다. 한 가족이 성공적으로 상봉했다.아니, 이제는 다섯 명이고, 서준명까지 더하면 총 여섯 명이었다.여섯 가족은 함께 부둥켜안고 있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이들은 참지 못하고 그만 눈물을 마구 흘렸다.간호사도 눈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한참 지나서야 엄씨 어르신과 엄씨 부인은 엄선희를 놓아주었다."됐어, 얘야, 이제 집으로 들어가자. 우리 집으로!"나금희는 고개를 들어 엄선희를 바라보았다. 비록 원래 얼굴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그녀의 아이가 맞았다. 사오 년 전에 실종됐던 아이를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그동안 엄선희는 희귀병을 앓게 되었지만 우연히 받은 치료 때문에 성공적으로 완치되었고 이로 인해 피와 혈액형이 바뀌게 되었다.엄선희는 죽을 운명이었지만 가짜 엄선희 덕분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아무튼 그녀의 딸 엄선희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행운아였다.4,5년 동안 겪은 고난,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중에 파란만장을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그 고난이 아이의 재산으로 될 이고 앞으로 아이는 이를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아낄 줄 알며 모든 걸 알게 될 것이다.아주 좋았다.엄선희의 복귀에 엄씨 가문은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온 남성 사람들이 서준명의 아내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윽고 전해진 소식은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서준명과 엄선희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는 것이었다."이 일은 이미 남성 전체에 퍼졌어요. 결혼식은 대체 언제 할 것 같아요?"여유시간에 신세희가 장난식으로 엄선희에게 물었다.엄선희는 옆에 앉아있는 반명선을 보며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명선 씨가 내 얼굴을 다시 원상 복구시켜 주겠대요. 하지만 천천히 되돌리려면 2년은 걸린대요. 난
모든 일을 마치고 난 뒤 서준명은 갑자기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왜 그래, 아들?"서씨 부인은 이미 세 아들을 잃었고 남은 아들이라곤 서준명 한 명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들이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어머니, 그냥 운명이 장난치는 것 같아서요.. 모든 게 다 하늘의 뜻이었군요, 모든 게 다 하늘의 뜻이었어요!"서준명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서씨 부인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왜 그러니, 얘야?"서준명은 울다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어머니, 이제야 알겠어요. 하늘이 왜 엄선희 씨한테 사오 년 동안 이런 수고를 겪게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아요. 하늘은 비록 그녀에게 잔인한 고문을 내렸지만 마지막엔 결국 해피엔딩을 선물했잖아요. 그러지 않았다면 진짜 죽은 사람은 우리 엄선희 씨 아니겠어요? 나의 엄선희를 살렸잖아요."아들의 말에 서씨 부인은 감격 어린 말투로 말했다."그래, 결국 마지막에 행운을 맞이한 사람은 바로 우리 엄선희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하느님도 아껴주시는 엄선희. 준명아, 빨리 선희를 데려와, 그동안 그 애가 얼마나 수고가 많았겠니."서준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몸을 돌리자마자 그는 두 아이를 발견했다."아빠, 우리 엄마를 데려오려는 거예요?"단이가 서준명에게 물었다.서준명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미미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엄마 안 데려오면 내가... 진짜 아빠 때릴 거예요!"미미는 점점 박력 넘치는 모습으로 컸다.게다가 오빠도 그녀의 편을 들어줬기 때문에 서씨 가문 마당에서 고양이랑 다투든 강아지랑 다투든 그녀는 줄곧 이기는 쪽이었기 때문에 미미는 자신이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했다.서준명은 웃으며 미미를 품에 껴안았다."아빠는 맞는 거 무서워해. 그러니까 미미가 아빠 때리면 아빠는 아파서 울 거야. 그래서 아빠가 미미 말에 따를거야. 오늘 당장 엄마 데려올게, 어때?"두 아이는 엄마를 데려온다는 말에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엄마를 데려오기 전에 먼저 할머니와 할아버
죽기 직전까지도 가짜 엄선희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그녀는 두 눈을 똑똑히 뜬 상태로 자신이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지켜보았다.그녀는 자신의 계획이 이대로 틀어질 줄 미처 몰랐다. 결혼식만 마치면 진짜 엄선희를 대신해 남성에서 상류사회를 누리는 서씨 가문 사모님으로 될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총살당하고 말았다.과연 누구일까?그녀는 이유를 알기도 전에, 울 틈도 없이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녀의 아쉬움은 결국 그녀의 몸에 영원히 파묻히고 말았다.얼마나 억울했으면 심장이 멈췄음에도 불구하고 두 눈을 감지 못한 걸까?서준명도 깜짝 놀랐다.그는 원래 미란다 무리를 한꺼번에 쓸어버릴 계획이었기에 오늘 경찰들도 이들을 죄다 잡아갈 생각으로 온 것이었다. 하지만 서준명은 이 타이밍에 미란다가 암살당할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범인은 대체 누구일까?서준명은 당황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경찰들은 오늘 이곳에서 범인들을 완벽히 체포하려던 계획이었기에 츄리닝으로 무장한 경찰도 있었고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든 경찰도 많았다. 모두 미란다를 잡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이었다. 하지만 미란다 대신 미란다에게 총을 쏜 범인을 잡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차 안에 있던 구릿빛 피부 뚱보는 엄선희를 사살하려던 자신의 치밀했던 계획을 뚫고 이토록 많은 경찰들이 나타날 줄은 미처 몰랐다.그는 작전도구를 숨기기도 전에 경찰에게 그만 체포당하고 말았다.정말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미란다가 엄선희 얼굴로 성형하여 그녀의 신분을 도용한 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인해 초라하게 마무리되었다.경찰은 구릿빛 피부 뚱보를 잡고 취조하고 나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는 해외에 있는 서준명의 세 형님이 엄선희를 죽이라고 보낸 사격수였다.이 남자는 남성에서 오랜 시간 동안 서씨 가문을 노리고 있었다.하지만 내내 엄선희를 발견하지 못했다.그러다가 어렵게 엄선희가 나타나 기회를 잡고 죽이게 되었으나 손쉽게 경찰에게 체포당하고 말았다.이게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서준
두 여직원은 봉쇄형 유리차를 끌고 나왔다. 유리차 안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어있었다. 다이아몬드는 유리를 뚫고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가짜 엄선희는 홀린 듯이 반지를 바라보았다.주얼리샵 맞은편에 주차하여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구릿빛 피부 뚱보도 덩달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구릿빛 피부 뚱보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세상에! 저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길래 저토록 비싼 반지를 선물하는 거야! 저 여자는 죽어 마땅해! 죽어 마땅하다고!"한편 주얼리 샵안, 서준명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가짜 엄선희를 바라보았다."내가 선물한 반지는 어때, 마음에 들어?"가짜 엄선희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좋아, 여보 너무 좋아! 너무 마음에 들어!""이 반지는 원래 4년 전에 선물하려던 건데, 아쉽게 됐네, 그때는...""괜찮아, 여보. 지금도 마찬가지잖아? 비록 4년정도 늦게 선물 받았지만 결국 내 손에 끼워줬잖아. 이게 정말 최고 아니겠어?"가짜 엄선희는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빨리 껴봐, 보여줘!"서준명이 제촉하며 말했다."하하. 알겠어!"말을 마친 서준명은 반지를 꺼내 정중하게 가짜 엄선희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그순간 가짜 엄선희의 마음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두근거렸다.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나른한 기분이었다.서준명!남성 두 번째 재벌이자 남성 귀공자인 서준명이 드디어 그녀에게 값비싼 반지를 선물한다고?와! 그녀는 너무 행복했다!…그 순간 가짜 엄선희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그녀는 행복에 젖어 서준명이 그녀를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듣지 못한 게 아니었다.그녀 자신을 엄선희라 생각하고 다닌 탓에 서준명이 그녀의 본명을 외칠 때에도 눈치채지 못했다.서준명이 또다시 물었다."미란다 씨, 행복해?""응? 당신..은..?"가짜 엄선희는 그제서야 서준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자 순간 그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그녀는 겁에 질린 나머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홀 안 세 테이블에 빽빽이 앉아있던 사람들은 이 상황을 보고 깜짝 놀랐다.그들은 아직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눈치였다.왜 엄선희가 가자마자 경찰들이 몰려든 걸까?사람을 체포하러 온 게 아닐까?"아니에요, 형사님, 저희는... 남성 서씨 가문 도련님 서준명 씨의 친구들입니다. 서준명 씨 아내를 구해준 보답으로 집 두 채를 선물한다고 했는데, 혹시 잘못 찾아오신 건 아닌가요?"바로 그때 진미리가 용감하게 나서서 경찰들에게 물었다.아무도 진미리의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몇몇 경찰들이 나서서 그들의 휴대폰을 몽땅 수거했다.한 명도 빠짐없이.진미리는 참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저희는 서준명 씨의 친구예요. 서준명 씨는 남성에서 유명한 사람이잖아요. 당신들이 우리를 잡으러 왔다는 사실을 서준명 씨가 알면..."한 경찰이 차갑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저희가 잡으러 온 것은 바로 서준명 씨 친구들인 당신들입니다!""네? 왜요?"진미리는 의아했다.사실 그녀는 법을 잘 알지 못했기에 자신의 여동생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자신의 동생은 서준명의 아내와 똑같은 얼굴로 성형했고 서준명도 동생을 아내로 받아들였는데 이를 사기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돈도 한 푼 뺏지 않았는데?게다가 살인 방화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신분만 도용했을 뿐인데, 아니, 서준명이 가짜 엄선희를 아내로 인정했으니 신분 도용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신분 도용도 아니었다.때문에 지금 진미리와 그녀의 공범들은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경찰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진미리를 바라보았다."자신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어찌 당신도 모르나요?"진미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우리는 서준명 씨의 친구들이에요. 게다가 서준명 씨는 남성에서 유명한 사람이고요. 서준명 씨도 당신들이 우리를 잡으러 왔다는 사실을 아나요?""알죠, 서준명 씨가 신고했으니까!"진미리와 그녀의 동료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들은 하나같이 동상처럼 굳
"2천억이라니! 서씨 가문 형제들과 완전히 등 돌리려는 셈 아닌가! 서준명이 엄선희를 저토록 사랑하다니! 저 여자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어! 반드시 죽일 거란 말이야!"구릿빛 피부 뚱보가 공손한 태도로 서준명의 큰형에게 물었다."사장님, 명령만 내리세요! 저 여자를 어떻게 죽일까요! 지금 당장 없애버릴까요!""안돼!"서준명의 큰형이 다급히 말렸다."지금은 죽일 타이밍이 아니야. 보는 눈이 많아서 자리를 피하기 어려울 거야. 나한테 충성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는데 너까지 잃을 수는 없어. 밖에서 처리하고 발 빼기 쉬운 곳으로 골라. 지금은 아니야!"구릿빛 피부 뚱보가 곧바로 말했다."알겠습니다, 사장님. 사장님 말씀에 따를게요. 그럼 시끌벅적한 장소를 골라 저 여자를 죽여버릴게요!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통화를 마친 뒤 구릿빛 피부 뚱보는 은밀히 홀 안의 상황을 관찰했다.한편 서준명은 가짜 엄선희와 함께 사람들에게 술을 권하고 있었다.한 명 한 명 빠뜨리지 않고 모두에게 물었다.모두 전에 가짜 엄선희에게 도움을 줬던 사람들이었다.서준명은 전에 이 사람들에 대해 전부 조사를 마쳤었다. 사기조작단과 마찬가지였다!총 서른 명 정도였는데, 그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은 가짜 엄선희의 가족들이었다.오빠와 언니, 형수와 형부, 그리고 고모 일곱 명과 이모 여덟 명.남은 건 그녀와 오랫동안 함께 근무해 온 부하들이었다.서준명은 마음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정말 비겁하기도 하지!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가족들과 친구들까지 동원하다니. 하지만 그들이 억울한 게 뭐가 있을까? 그들은 모두 가짜 엄선희가 계획한 사기단에 가담한 공범들이다.그들이 엄선희에게 입힌 피해는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그들은 그의 두 아이까지 해치려고 했다!서준명이 어찌 그들을 또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술을 한 바퀴 권하자마자 서준명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그는 곧바로 휴대폰을 떠내 연락을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시죠
서준명의 말에 진미리는 쑥스러운 말투로 말했다."휴, 어떻게 매번마다 서준명 씨한테 신세를 지겠어요, 아무... 아무것도 아니에요.""어머, 언니, 어려운 일 생기면 언제든지 얘기 하세요. 제 남편은 남성에서 두 번째로 능력 있는 남편이에요. 못 하는 게 없다니까요."가짜 엄선희는 고개를 들어 애교 섞인 말투로 서준명에게 말했다."내 말이 맞지, 여보?"서준명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가짜 엄선희를 보며 말했다."자기 생각은 어때? 당신이 선택한 남편인데 틀릴 리가 있을까?""당연히 없지!"가짜 엄선희는 행복한 표정으로 서준명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서준명은 가짜 엄선희를 품에 안자 순간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이 가짜 엄선희는 확실히 진짜 엄선희와 아주 닮았다. 만약 이 엄선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한 상태로 있었다면 서준명은 당연히 그녀를 그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진짜 엄선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진짜 엄선희라면 그에게 이런 요구를 건네진 않았을 것이다.엄선희는 태어날 때부터 공주님처럼 자라 고생한 적이 없지만 탐욕스러운 사람은 아니었다.엄선희는 돈에 아무런 개념도 없는 여자였다.게다가 사치품도 사지 않는 사람이었다.심지어 그녀는 아주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기에 단 한 번도 자신의 능력범위를 벗어나는 가격의 사치품에 손대지 않았다.서씨 가문에 시집와서도 그에게 이것저것 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자신의 남편을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하는 짓도 절대 하지 않았다. 남편의 자금을 외부에 흘러 나가게 하는 것도 모자라 난감한 일까지 시키다니!엄선희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이 가짜 엄선희는 탐욕스럽기 그지 없었다!그럴수록 너무 괘씸했다!하지만 이럴수록 서준명은 더더욱 표정을 가다듬고 가짜 엄선희를 보듬어 주었다."여보, 이 사람들을 사심 없이 도와주는 걸로 봐서 전에 당신한테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맞지? 그럼 나도 고마움을 전해야지. 이분들이 없었다면 평생 내 아내를 보지 못하고 살 뻔했으니까
가짜 엄선희는 자연스럽게 동의했다.3일 후, 그들은 남성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호텔에서 엄선희의 은인들을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다. 그들 중 일부는 외지에서 온 사람도 있었고, 남성 현지인도 있었다. 서준명이 사람들을 대충 살펴보자, 익숙한 중년 여성이 있음을 발견했다.그 중년 여성은 미루나와 같은 집에 살며 미루니에게 DNA 검사를 제안한 여자였다.서준명은 가짜 엄선희와 손을 잡고 그 중년 여성에게 다가갔다. "저를 아직 기억하십니까?”가짜 엄선희는 즉시 그 중년 여성을 소개했다."여보, 여긴 나한테 많은 도움을 준 언니 중 한 명이야. 이름은 진미리. 이 언니는 내가 유산했을 때를 포함해 항상 날 보살펴 줬어. 내 생각에는 이 언니에게 집 두 채는 드려야 할 것 같아!” 그러자 진미리라는 중년 여성이 즉시 손을 흔들었다. "아니요, 정말 괜찮습니다. 선희 씨를 돌봐주었던 것도 제 공덕의 하나라고 할 수 있죠. 절대 돈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에요.” 진미리는 말을 하며 서준명을 바라보았다. “서준명 씨, 사실 저는 오랫동안 미루나에게 관심을 가졌어요. 나는 그 여자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때 엄선희 씨는 일이 있어 남성에 오지 않았기에 준명 씨와 미루나가 마주치는 걸 정말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DNA 검사를 하라고 권한 거고요. 요즘은 DNA가 가장 정확하잖아요? 그러니 DNA 검사를 하고 나니 미루나가 가짜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잖습니까. 요즘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니, 겉모습도 전혀 다르고,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억지로 남의 아내인 척하는 건 무슨 심보란 말입니까? 정말 말이 안 됩니다, 준명 씨와 선희 씨의 부모님 모두 현명하셔서 다행이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 미루나에게 정말로 당할 뻔했습니다. 그럼 선희 씨도 힘들어서 울다 지쳐 쓰려졌겠지요…” 진미리의 말을 들은 서준명은 침착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럼 집을 두 채 드리면 될까요?” 서준명은 이미 사람을 보내 확인을 마친 상태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