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경은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크게 놀랍지도 않은 내용이었다.구경민은 그런 친구를 힐끗 보고는 정색하며 물었다.“넌 알고 있었어?”“그 여자 우리 아버지랑 네 둘째 삼촌 도움받아서 반호영이 있는 곳에 보내졌잖아. 그리고 반호영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주장했지. 그런데 반호영은 그 아이가 자기 아이가 아니라고 확신했어. 그래서 화가 나서 좀 때렸다고 하더라고.”부소경은 덤덤하게 대꾸했다.“그 여자는 맞아도 싸지! 다시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아! 다시 내 눈에 보이면 죽여 버릴 거야!”구경민이 차갑게 말했다.지금의 그는 옛정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매번 그는 최여진에게 기회를 주고 용서해 주었다. 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때도 잔인하게 대하지는 않았다.하지만 최여진은 그 뒤로 너무 잔혹한 짓을 저질렀다.동부까지 가서 고윤희를 피 말려 죽일 생각을 하다니!한진수를 죽이고 겨우 마음 붙이고 잘 살아가려던 고윤희에게서 희망을 앗아갔다.이렇게 악독한 여자를 살려 둘 필요가 있을까?부소경은 담담한 표정으로 친구를 바라보며 물었다.“이 일 때문에 나 찾아온 거야?”구경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침에 전화하고 싶었는데 잘 자고 있는 임산부 깨울까 봐 전화 안 했지. 그래서 회사로 찾아온 거야. 너도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 여자 반호영 때문에 지금쯤 꼴이 말이 아닐 거야. 이제 더 잃을 것도 없는 미친 여자가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아?”부소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고 말했다.구경민은 뭔가 수심이 깊어 보이는 친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무슨 고민 있어?”부소경은 최여진은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데 반호영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그가 친구에게 생각을 털어놓으려는데 누군가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들어와.”방문자는 서시언이었다. 그는 요즘 F그룹과 손을 잡고 많은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기에 이곳에 자주 방문하는 편이었다.게다가 그의 여자친구인 최가희도 여기서 근무하고 있었기에 가끔은 매일이다시피 이
서시언은 눈치가 굉장히 빠른 사람이었다. 그도 현재는 한 회사의 대표로 부임했지만 부소경과 구경민이 아주 중요하게 상의할 일이 있다는 걸 알고 자리를 피해준 것이다.부소경의 사무실을 나온 서시언은 바로 최가희의 사무실로 왔다.그런데 최가희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서시언을 본 다른 동료들이 장난을 걸어왔다.“우리 잘생긴 서 대표님 오셨네요.”“대표님, 선물 없어요?”“선물이 부담되면 사탕 같은 것도 괜찮아요. 가희는 우리 부서에서 일을 가장 열심히 하고 외모도 가장 예쁜 보물 같은 존재니까요. 그런 인재를 홀랑 꼬셔 버리시다니! ”서시언은 웃으며 가방에서 수입산 초콜렛을 꺼내 부서 여직원들에게 주었다.어린 여직원들은 잔뜩 흥분해서 환호를 질렀다.“와!”“보기만 해도 군침 돌아요!”“가희 씨가 부럽네요.”“젊고 잘생기시고 돈도 많으시고, 그리고 착하고 성격까지 좋으시니 이렇게 완벽한 남자가 세상에 있을까 싶네요.”서시언은 여직원들의 칭찬이 조금 부담스러워서 어색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그런데 이때, 최가희가 자리로 돌아왔다.무슨 영문인지 그녀는 안색이 좋지 않았고 눈도 빨갛게 부어 있었다.그녀를 본 서시언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가희야 왜 그래? 혹시… 울었어?”최가희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우리 대표님 만나러 왔어요? 일은 잘 해결했어요?”서시언은 시간을 확인하고는 그녀에게 물었다.“점심 시간이 다 돼가는데 가자. 가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왜 오늘 기분이 안 좋은지 얘기해 보자.”그러자 최가희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가요. 오늘은 오빠 좋아하는 곳으로 가요.”그렇게 두 사람은 회사를 나섰다.그들은 F그룹 맞은편에 있는 한식당으로 갔다. 한정식 세트를 주문한 서시언은 메뉴가 준비되는 사이, 그녀에게 타이르듯 말했다.“살 빠진 것 좀 봐. 앞으로 다이어트 같은 거 하지 마. 이상한 시리얼 같은 것도 먹지 말고
잔뜩 화가 난 최가희를 보자 서시언은 덜컥 걱정이 돼서 조심스럽게 물었다.“무슨 일인데 그래?”최가희는 바로 전화를 끊고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미안해요, 오빠. 안 좋은 모습을 보였네요. 사실… 별거 아니에요. 정말 괜찮아요.”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고개를 떨어뜨렸고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고 서시언을 바라보며 말했다.“시언 오빠, 이제… 밥 먹어요.”서시언은 최가희의 손을 잡으며 간곡하게 말했다.“가희야, 난 네 남자친구야. 앞으로 결혼할 사이라고. 네 일이 곧 내 일이야.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모르지만 도움이 필요하면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어. 넌 나만 믿고 따라오면 돼. 나 그 정도의 능력은 있다고.”최가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정말 아무 일도 아니에요, 오빠.”“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나 피 말라 죽는 꼴 보고 싶어? 법원에 기소까지 한다는데 어떻게 아무 일도 아니야? 누가 널 귀찮게 해? 빨리 말해줘.”서시언은 초조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그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빤히 바라보던 최가희는 더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그녀는 힘없는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오빠, 사실 나에게는… 욕심 많고 돈만 밝히는 엄마가 있어요. 아빠랑 이미 이혼한 사이인데도 자꾸 연락해서 돈을 달라고 귀찮게 해요.”“네 엄마라고?”그는 많이 당황한 표정으로 최가희를 바라보았다.최가희와 알게 된지도 벌써 한 달이 되어가는데 그동안 그녀에게서 한 번도 엄마에 관한 얘기를 들은 적 없었다.가끔 아버지에 관한 얘기는 한 적 있었다.그녀의 아버지는 작은 와인가게를 하셨는데 도매도 하셔서 연매출이 꽤 괜찮았다. 최가희의 말로 분석해 보면 그녀는 재벌가에서 자라지는 않았지만 부족한 것 없는 풍족한 생활을 했을 것은 분명했다.그래서인지 최가희는 순수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 같을 때도 있었다.게다가 최가희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딸바보였다.딸을 위해서 요리를 배웠다는 가정적인
“아빠가 쫓아도 가지를 않고 어린 여자애를 길바닥에 내쫓으면 그 양아치들이 또 괴롭힐 게 뻔하니까 어쩔 수 없이 아빠 집에서 먹이고 재워줬대요.”“그렇게… 내가 생겼고요. 아빠 말로는 그 여자가 날 낳을 때 고작 18살이었데요.”“그러니까 이제 겨우 40세가 되었네요. 오빠는 모를 거예요. 나이 마흔 먹은 젊은 여자가 일하기는 싫어하고 매일 게으름만 부리는 것도 모자라서 어떻게 하면 아버지 재산을 조금이라도 자기 주머니에 넣을까 그 생각만 한다니까요?”“그럼 아버님은 이혼하기 전부터 가게를 하셨어? 아니면 이혼한 뒤에 가게를 열게 된 거야?”서시언이 물었다.그런데 최가희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두 사람은 혼인신고도 안 했어요. 아빠가 그때 경제적으로 좀 힘들었는데 성유미 씨는 힘든 생활 싫다고 나랑 아빠를 버리고 도망간 여자예요.”“가게는 그 여자가 집을 나가고 한참이 지나서 열게 된 거예요. 우리 가게는 성유미 씨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최가희는 많이 흥분한 상태였다.“손발 다 멀쩡하고 나이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착실하게 일해서 돈을 벌 생각을 하지 않고 공짜만 바라는지 모르겠어요! 아빠 그 가게 처음 시작할 때 정말 힘들었어요. 그렇게 힘들게 일군 가게인데 돈 좀 번다고 그 돈을 나눠달라는 게 말이 되냐고요!”“아빠가 준다고 해도 내가 싫어요! 그냥 싫어요!”고작 스물두 살 밖에 되지 않은 이 어린 여자는 말하다 보니 더 화가 나는지 눈물을 펑펑 터뜨렸다.다른 테이블 손님들의 시선이 모두 그들에게 쏠렸다.서시언은 이내 발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가려주고는 휴지를 꺼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알았어. 울지 마. 진정하고. 우리 차근차근 해결해 보자. 그래도… 엄마잖아.”“그 여자는 내 엄마 아니에요!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나한테 사랑을 준 적도 없다고요! 어릴 때 잠들기 전에 동화책을 읽어준 사람도 아빠였어요! 가끔은 엄마가 재워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는데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눈을 떴을 때 가
그 말을 들은 서시언은 아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불가사의한 일이었다.아직 최가희의 생모를 만나지도 못했는데 벌써 만나기가 싫어질 정도였다.세상에는 참 다양한 엄마가 있다 싶었다.신세희처럼 책임감 강한 엄마가 있는 반면에 성유미처럼 모성애가 아예 없는 엄마도 존재했다.마흔 살이면 그와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날 텐데 그는 언젠가 최가희를 데리고 성유미를 찾아가서 따지고 싶었다. 과거의 잘못은 그렇다 쳐도 이제 자신이 있으니 이런 무책임한 엄마가 최가희를 괴롭히는 걸 두고만 볼 수 없었다.“정말 너무하네. 아버지가 그렇게 잘해주셨는데 바람을 피우다니!”서시언이 분개한 얼굴로 말했다.최가희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사실 성유미 전에 아버지는 결혼을 한번 하셨어요.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안 생겼는데 그 여자가 아빠한테 원인이 있다고 하면서 아빠랑 이혼했거든요. 아빠는 상실감에 그 뒤로 여자를 다시 안 만났다가 성유미를 만났을 때는 이미 서른 살이었어요.”최가희는 씁쓸한 표정으로 서시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그때 아빠랑 엄마가 사귀기로 했을 때 아빠 나이가 오빠랑 비슷했어요. 그래도 우리 아빠 정말 잘생기고 부지런한 사람이었어요. 오빠를 좋아하게 된 것도 오빠한테 아빠랑 닮은 구석이 많았기 때문이에요.”“그런데 우리 아빠… 정말 너무 불쌍해요. 다시 여자 만날 생각도 없었는데 성유미를 구해주고 잠깐 집에 와서 있으라고 한 것뿐인데 성유미는 우리 아빠가 잘생기고 자상하게 대해주니까 달라붙기로 한 거예요.”“그런데 그 여자는 스물 아홉 정도 되었을 때 아빠가 힘들게 모은 돈을 가지고 자기보다 다섯 살이나 연하인 남자랑 같이 새살림을 차렸죠!”“그때 아빠는 화병에 하마터면 돌아가실 뻔했어요. 당시 아빠 나이가 40대 중반이었거든요? 그 여자는 아빠가 늙어서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다른 남자에게 간 거예요!”“정말 죽여도 시원치 않을 여자예요! 이제 돈도 다 떨어지고 그 남자도 자신을 버리니까 뻔뻔하게 아빠를 찾아오고 날
서시언은 어이가 없었다.하지만 그렇다고 아이에게 손을 댈 수도 없었다.최가희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말했다.“미안해, 유리야. 내가 오늘 기분이 별로 안 좋아서 표정이 이상했나 봐. 언니가 사과할게.”신유리는 시큰둥하게 대꾸했다.“알았어.”최가희는 서시언에게 고개를 돌리며 또 말했다.“시언 오빠, 유리 챙겨줘요. 이 큰 회사에 애 혼자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을 수도 있어요. 난 일하러 들어가 볼게요. 나 괜찮아요. 퇴근하면 전화할게요.”“알았어. 유리가 한 말 너무 신경 쓰지 마. 애가 어려서 철이 없어.”최가희는 웃으며 대답했다.“알죠. 괜찮아요, 오빠. 들어가 볼게요.”서시언은 고개를 끄덕인 뒤, 최가희가 사무실로 들어가는 뒷모습까지 바라보았다.그런데 발등에서 갑자기 통증이 느껴졌다.고개를 숙이고 보니 신유리가 두 발로 그의 구두를 힘껏 짓밟고 있었다.“신유리!”화가 난 서시언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둘이 연애하지 말라고 했잖아. 왜 내 말을 안 들어?”신유리 역시 잔뜩 화가 난 눈빛으로 서시언을 빤히 올려다보았다.“아이는 어른들 일에 간섭하는 거 아니야.”“내 삼촌이니까!”“삼촌도 안돼.”“저 언니 싫어!”항상 신유리를 예뻐하고 아끼던 서시언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정말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열 받아서 애를 엎드려 놓고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리고 싶었다.여기가 애 아빠 회사인 게 뭐?그런 건 아무 상관도 없었다.너무 화가 났다.그는 손을 번쩍 들었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에 그만두었다.결국 마음이 약해진 것이다.신유리는 서시언이 목숨처럼 사랑하는 아이였다.그러니 어찌 그런 아이에게 손을 댈 수 있을까?그는 쭈그리고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를 달랬다.“유리야, 이렇게 외삼촌 연애하는 거 자꾸 방해하면 외삼촌 혼자 쓸쓸하게 늙어야 해. 알아?”그러자 아이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최가희랑 연애하지 말라고 했지 다른 여자 만나지 말라는 말은 아니었는데? 세상에 여자가 최가희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신유리가 가리킨 곳에는 남루한 차림으로 구석진 곳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한 여인이 있었다. 머리는 산발이 되고 얼핏 보기에는 흰머리도 조금 보였으며 최소 40대 정도로 보였는데 살이 너무 빠져서 기괴해 보이기까지 했다.거리를 청소하는 청소부일까?하지만 그녀는 유니폼도 입지 않았고 청결 도구도 들지 않은 채, 그냥 그곳에서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노숙자 같기도 했다.서시언은 물론 노숙자를 비난하거나 폄하할 생각은 없었다.과거에 그와 신세희가 어린 유리를 데리고 셋이 방랑 생활을 할 때도 노숙자와 별반 다름이 없었다.그래서 노숙자를 보면 더러워서 피한다기보다 안쓰러운 마음이 더 들었다.그렇다고 해서 굳이 일면식도 없는 노숙자를 아내로 맞을 수는 없지 않은가?서시언도 남성에서는 꽤 잘나가는 재벌2세였고 외모나 능력이나 어디 하나 빠지는데 없었다.나이가 조금 있다고 해도 고작 서른두 살이니 노총각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예쁜 여자 만나서 예쁜 사랑을 하겠다는데 죄는 아니지 않은가?신유리는 삼촌인 자신을 상대로 왜 저런 사람을 여자친구로 점 찍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서시언 입장에서는 울지도 웃지도 못할 상황이었다.그는 다시 신유리를 한대 때리고 싶은 욕구를 꾹 참아야 했다.“야, 신유리! 내가 그렇게 못났어? 왜 저런 사람을 추천한 거지? 내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어?”신유리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천진난만한 눈빛으로 외삼촌을 바라보며 물었다.“저 사람 마음에 안 들어?”“당연하지! 내 취향 아니야!”“그런데 나는 좋은걸.”신유리의 말에 서시언은 어이가 없었다.할 수만 있다면 버럭 화를 내며 그렇게 좋으면 네 아빠한테 소개하지 그러냐고 따지고 싶었다.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아이 아빠는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여동생의 남편이었다.서시언은 너무 화가 나서 머리속이 뒤죽박죽이 되었다.“삼촌, 저 이모 불쌍하지 않아? 저렇게 쭈그리고 앉아 있는 걸 보면 자꾸 엄마가 생각난단 말이야.”신유리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예전에 유리
그들은 함께 6년을 생활했다.아이는 그 시간을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지금은 엄마, 아빠랑 같이 생활하지만 삼촌만 혼자가 된 것 같아 자신이 기억했던 행복한 가정을 삼촌에게 선물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신유리는 정말 순수하게 그런 가정이 삼촌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서시언은 자신의 생각이 부끄러워졌다.결국은 그가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서시언은 자세를 낮추고 신유리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삼촌이 잘못했어. 삼촌이 유리 생각을 모르고 미워할 뻔했어. 유리는 세상에서 제일 착한 아이인데 말이야. 삼촌을 생각해서 그랬던 거지?”신유리는 눈동자를 또르르 굴리더니 손가락으로 서시언을 가리키며 말했다.“삼촌, 드디어 유리 마음을 이해해 준 거야? 유리 잘했지? 저 아줌마 꽤 괜찮지?”서시언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잘했어. 좋아. 정말 좋아.”‘유리야, 잘한 건 잘한 거고 저분은 딱 봐도 40대 이상으로 보인다고! 삼촌 겨우 서른두 살이야!’서시언은 정말 삼촌이 저런 노숙자 아줌마와 결혼하기 바라냐고 묻고 싶었지만 결국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그는 그저 부드럽게 아이를 달래주었다.신유리는 잔뜩 신이 났는지 서시언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삼촌, 저 이모한테 인사 한번 해보자. 겉모습은 저래도 삼촌이 우리 아빠가 엄마한테 했을 때처럼 화장품이랑 예쁜 옷을 사주면 저 이모도 엄마처럼 예뻐질 거야!”서시언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이런 것까지 고민하고 있었어?정말 유별난 집착이었다!신유리가 계속 억지를 부리며 그 여자한테 인사하라고 강요하자 서시언은 고개를 저으며 아이에게 물었다.“잠깐만, 유리야. 너 저 아줌마 어떻게 알았어?”서시언은 저쪽에 있는 노숙자 여인이 신유리의 부탁을 받고 저기서 대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갔다.그런데 뜻밖에도 유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담했다.“모르는 사람인데?”서시언은 너무 황당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아니, 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