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고개를 돌려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는 신세희를 바라보았다.남자는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그의 아버지란 사람은 역시 이런 사람이었다.어릴 때 자신이 저지른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그와 그의 엄마, 그리고 동생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그런 그가 신세희를 비난하고 있다.2주 동안 신세희는 그와 거의 붙어서 보냈다. 시간이 될 때면 고윤희를 찾아 다녔다. 그런 그녀가 무슨 시간이 있어 외간남자를 만날까?부소경의 말투는 점점 온기를 잃었다.“다른 용건은 없죠?”“당연히 있지. 그 외간남자가 글쎄….”탁!부소경은 얘기를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신세희는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남편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물었다.“소경 씨,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아버님이랑 얘기해 보지 그랬어요.”부소경은 아내를 와락 끌어안았다.그러고는 한참 말이 없다가 아내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신세희도 고개를 들고 남자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인데 그래요? 나한테 얘기해 봐요. 같이 고민하자고요.”남자는 착하기만 한 이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서씨 어르신에게 그런 일을 당하고도 그녀는 그에게 서씨 어르신과 관계를 끊자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녀는 항상 그의 마음을 배려했다.가끔 부소경은 자신이 신세희를 지키는 게 아니라 신세희의 존재가 자신의 위로가 된다고 느꼈다.실제로 신세희는 그를 정신을 놓지 않게 지탱해 주는 기둥 같은 존재였다.그녀의 겉모습은 가녀리고 연약해 보이지만 속은 강한 여자였다.어떤 힘든 상황이 와도 그녀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6년 전, 가난에 찌들어 아이를 안고 거리를 방황하면서도 꿋꿋하게 버텨낸 그녀였다.어디 그뿐인가.위급한 상황에서 이 가녀린 몸으로 조의찬의 목숨을 구했다.조의찬도 가성섬에서 신세희와 신유리를 구한다고 뛰어들었지만 신세희가 조의찬을 구할 때 상황은 그때보다 더 위험했다. 그래서 조의찬이 신세희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게 된 것이다.그녀의 아름다운 영혼이 조의찬을 매료시켰다.서시언도 마찬가지였다.가성섬에
“누구시죠?”신세희는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잘 지냈어?”상대의 말투는 그녀의 오랜 지인 같기도 하고 그녀에게 깊은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신세희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했다.그녀는 옆에 있는 부소경을 힐끗 바라보았다.부소경은 살짝 당황한 그녀의 표정을 보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왜 그래?”그는 자신이 아버지의 전화를 말도 없이 끊어서 아버지가 신세희에게 전화간 줄 알았다.신세희는 난감한 얼굴로 전화를 부소경에게 넘겼다. 부소경은 냉기가 뚝뚝 흐르는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하지만 상대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는 전화를 끊어버렸다.그와 신세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신세희가 입을 열었다.“우리 오빠가 아닐까요?”신세희가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었다.서시언.“당신 오빠 아니야!”부소경은 약간 날이 선 말투로 대답했다.서시언의 목소리라면 그는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서시언의 재활 때문에 자주 통화를 했기 때문이다.게다가 서시언이 신세희를 걱정하는 말투는 조금 전처럼 음울하고 아쉬움이 많이 남는 말투는 절대 아니었다.멀리 떨어져서 들었지만 상대의 말투에서 후회와 아쉬움이 많이 느껴졌다.서시언은 달랐다.신세희에 대한 서시언의 마음은 가족에 가까웠다.부소경은 자신이 서시언에게 화가 났는지 아니면 그녀에게 전화를 건 남자에게 화가 났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그의 아버지가 한 말 중에 하나는 맞았다.그것은 신세희의 주변에 그녀를 흠모하는 남자가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조의찬, 서시언, 그리고 서준명까지. 서준명은 과거 신세희가 맡은 프로젝트의 총 담당자이기도 했다.그리고 가장 최근에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던 남자, 반호영.부소경의 쌍둥이 형제, 반호영!부소경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반호영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반호영을 찾을 생각이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엄선우는 이내 정색하며 공손히 대답했다.“사모님, 사실 제가 오늘 늦잠을 잤는데 오는 길에 급하게 김밥을 먹다가 좀 체한 것 같습니다.”그러자 신세희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병원에 가보는 게 좋지 않아요? 운전은 소경 씨한테 맡기고 어서 병원에 가봐요!”부소경은 차갑게 식은 얼굴로 신세희를 품에 끌어안으며 무언의 항의를 했다.차는 곧 신세희의 회사에 도착했다. 차가 멈추자 회사로 들어가는 구서준과 서준명이 보였다.서준명도 사실 회사에 출근하는 게 오랜만이었다.할아버지가 몸져누우면서 줄곧 병원에서 할아버지를 보살피고 있었다.서씨 가문은 효를 중요시하는 가문이었다.그래서 요즘 회사 업무는 거의 구서준이 맡아서 처리하고 있었는데 금요일이 된 오늘에야 서준명이 회사에 나타난 것이다.우연인 건지, 세 사람은 회사 입구에서 서로 마주쳤다.오랜만에 신세희를 만난 서준명은 무척 들떠 있었다.“세희야.”다시 만났을 때, 그들은 이미 사촌남매가 되어 있었다.서준명은 만감이 교차했다.처음 신세희를 만났을 때부터 그녀가 자신의 동생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동생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물론 신세희 모녀는 그의 할아버지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혈연관계만 따지면 그들은 여전히 가족이었다.“점심에 뭐 먹을래? 오빠가 사줄게.”서준명은 동생을 굉장히 아끼는 오빠처럼 자상하게 행동했다.한편 신세희는 팔목 통증 때문에 말도 할 수 없었다. 부소경이 그녀의 팔목을 꽉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뿐이 아니었다. 부소경은 냉랭한 눈빛으로 서준명과 구서준을 쏘아보며 말했다.“최근에 매출이 별로 오르지 않았던데 어떻게 된 거지?”“삼촌, 그게… 나랑 서준이가 딱히 잘못한 게 아니라….”“난 서 대표한테 물었어!”부소경은 날카로운 말투로 조카의 말을 잘랐다.서준명은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부소경에게 물었다.“형이 회사 주주도 아니잖아요?”하지만 부소경은 계속해서 억지를 부렸다.“회사 매출 지금의 두 배로 올리지 못하
신세희는 멈칫하며 고개를 들고 서준명을 바라보았다.혹시라도 그가 자신을 데리고 서씨 어르신을 만나러 갈까 봐, 거부감이 앞섰다.그녀는 담담한 말투로 서준명의 요청을 거절했다.“죄송하지만 그 집 어르신을 만나달라는 요청이라면 제가 좀….”하지만 서준명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그런 게 아니야! 할아버지가 너한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거 나도 알아. 나도 그 생각만 하면 할아버지가 밉거든. 어쨌든 할아버지 병문안을 가자는 얘기는 아니었어.”신세희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됐어요. 고마워요, 오빠.”“너 나를 뭐라고 불렀어? 오빠?”“처음부터 서 대표님은 나를 동생으로 생각했잖아요.”“맞아!”서준명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신세희가 물었다.“그래서 가고 싶은 곳이 어디예요?”“지금 가보면 알아!”서준명이 말했다.하지만 신세희는 요지부동이었다.“중요한 일이에요? 하지만 난 오늘 할 일도 많은데… 내가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다른 부서까지 피해를 보는 거라.”그러자 서준명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참, 깜빡하고 있었네. 내 동생 워크홀릭이었지? 너 같은 직원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럼 점심 휴식 시간에 잠깐 나가자.”신세희도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말을 마친 그녀는 먼저 엘리베이터에 탔다.서준명이 가자고 한 곳이 그렇게 궁금하지는 않았다.그녀는 오늘 당장 처리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였다.최근 서씨 어르신과의 분쟁 때문에 2주를 쉬고 고윤희를 찾느라 또 며칠 쉬었기 때문에 밀린 일들이 많았다.내일은 주말이라 어떻게든 오늘 안에 남은 일들을 마무리해야 했다.사무실로 돌아온 신세희는 온 정신을 업무에 몰두했다.그래도 업무보조가 민정아라서 그나마 다행이었다.민정아는 점점 업무에 적응하고 있었고 배우는 것도 빨랐다.오전 내내 그녀는 신세희가 원하는 서류나 물건을 빠른 시간 안에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신세희가 그리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못 그린 초안도 어느 정도
신세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서 대표님, 도대체 어디로….”그러자 서준명은 안심하라는 듯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세희야. 가보면 너도 마음이 훨씬 편해질 거야.”신세희는 생각에 잠겼다.마음이 편해질 수 있는 곳?고윤희를 찾았다는 건가?아니면 서시언이 돌아왔나?신세희는 기대를 품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그렇게 서준명은 차로 30분을 달려 교외의 편벽한 곳으로 왔다.신세희는 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길 모퉁이를 돌자 높은 담벼락이 보였다.문 앞에는 치료감호소라고 쓰여진 간판이 있었다.신세희는 의아한 얼굴로 서준명을 바라보았다.“여기 맞아. 병에 걸린 범죄자들을 가두고 치료하는 곳!”“걔… 죽은 거 아니었어요?”최근 한 달, 신세희는 바쁘게 보내느라 자신의 최대 적이었던 사람들의 생사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신세희에게는 복수보다 더 중요한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다.“일단 안으로 들어가자.”신세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서준명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치료감호소 내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안은 매우 조용했는데 이곳에 온 사람들 대부분이 중증 환자들이었다.일부는 이곳에 온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죽는 경우가 다반사였다.신세희는 사방이 꽉 막히고 쥐 죽은 듯이 고요한 좁은 복도를 걷고 있자니 음침한 느낌마저 들었다.“여기 느낌이 마치….”신세희는 서준명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정신병원 같아요.”서준명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뭐, 비슷하지.”그들은 대략 5분을 더 걸어서 한 병실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안에서는 음침한 비명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마치 밤중에 귀신 우는 소리 같기도 했다.“선생님, 저… 언제 죽어요? 왜 아직도 살아 있어요?”의사는 아주 담담한 말투로 대답했다.“당신은 죽지 않아. 이식 수술을 받았거든.”“그런데 왜 이렇게 힘들죠?”“응, 수술 부작용 때문에 그래.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선생님, 저 매일 밤 악몽을 꾸어요. 너무 무서운 악몽이요.
임서아는 어깨를 움찔하더니 초점이 없는 눈으로 문밖에 선 노인을 바라보았다.“외할아버지?”임서아는 힘없는 목소리로 상대를 불렀다.그리고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서씨 어르신에게 다급히 다가갔다.“외할아버지, 서아를 가장 예뻐해 주셨잖아요.”서씨 어르신은 무표정한 얼굴로 임서아의 배를 걷어찼다.“내가 예뻐한 건 내 외손녀야. 넌 내 핏줄도 아니지 않니?”임서아는 고통스럽게 고개를 떨어뜨렸다.서씨 어르신은 고개를 돌려 기침을 하고는 임서아에게 또박또박 말했다.“넌 처음부터 네가 가짜라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어떻게든 나를 속이려고 온갖 거짓말로 너 자신을 포장했지. 그리고 우리 가족들을 선동해서 진짜 내 핏줄을 죽이려고 했어! 세상에 어떻게 이런 파렴치한 인간들이 있지?”말을 마친 어르신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평생 나는 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는 위치에서 살았단다. 너 같은 가짜를 위해 양심에 찔리는 일도 서슴지 않았지. 너희는 내 권력을 이용한 거야. 하지만 나를 이용해서 내 진짜 외손녀를 공격할 때, 어느 날 너희에게도 내가 똑같이 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니?”임서아는 겁에 질린 눈빛으로 서씨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외할아버지….”“난 네 외할아버지가 아니래도!”서씨 어르신은 경멸에 찬 눈빛으로 임서아를 바라보고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난 전국 각지를 뒤져서 너에게 맞는 신장을 구했어. 너를 그렇게 쉽게 죽게 내버려두기 싫었거든. 네가 예뻐서 널 살린 게 아니란 말이야!”“네가 먹는 약이 어떤 약인지 넌 모르지? 이건 면역 억제제라는 건데, 대략 50년 전에 만들어진 약물이야. 네 목숨은 보전할 수 있겠지만 부작용은 상상을 초월하지.”임서아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울며 어르신에게 매달렸다.“외할아버지,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아요. 잠을 잘 수도 없고요. 눈만 감으면 악몽이 찾아와요. 관절 마디마디가 아파서 걸을 수도 없어요. 밥도 먹을 수 없고요. 먹으면 토하거든요.”“저 정말 배 고파요. 억지로 삼킨 음
“아빠….”임지강을 알아본 임서아는 다시 눈을 빛내며 그를 불렀다.“아빠, 외할아버지가 금방 나가셨어. 가서 얼른 외할아버지 좀 설득해 봐. 신세희 외할아버지이긴 하지만 신세희가 아빠 딸이기도 하잖아.”임서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지강은 발로 그녀를 걷어찼다.“누가 네 아빠야? 더러운 년!”임지강은 발에도 족쇄를 차고 있었기에 다리를 높게 들 수는 없었다.하지만 그의 발목에 찬 족쇄가 임서아의 머리를 강타할 뻔했다.임지강 역시 임서아를 쉽게 죽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지 방향을 조금 틀었다.임서아는 울며 임지강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아빠, 제발 나 좀 죽여줘!”임지강은 발로 임서아의 손을 짓밟으며 악에 받쳐 말했다.“더럽고 추한 모습으로 평생 살아. 살아서 네가 지은 죄를 다 갚아!”말을 마친 임지강은 다시 발을 들어 임서아의 무릎을 짓밟았다.임서아는 원래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았다.그녀는 고통에 신음하며 바닥에 몸을 웅크렸다.“흑흑….”이때, 안으로 들어선 허영이 임지강을 힘껏 밀치며 소리쳤다.“꺼져! 내 딸 때리지 마! 우리 딸….”“이런 미친 년이! 너 때문에 내 인생은 망했어! 내 이년을 그냥!”임지강은 허영의 머리채를 잡고 힘껏 흔들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허영의 머리카락은 임지강의 우악스러운 손에 우수수 빠졌다.허영도 지지 않고 몸을 비틀어 임지강의 팔을 깨물었다.임서아도 자신을 20년이나 사랑해 준 아빠의 다리를 깨물었다.그 모습을 전부 지켜본 신세희는 구역질이 올라왔다.저들이 짐승들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과거에 그녀를 죽이려고 덤비던 가족들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한때 가족이었던 셋은 서로 엉겨붙어 싸우며 바닥을 뒹굴었다.무척 가증스럽고 추한 모습이었다.가끔 그들의 앙칼진 욕설도 들려왔다.“임지강! 당신 미쳤어? 어떻게 딸한테 주먹질을 해? 서아 환자야! 어떻게 인간성도 없이 그럴 수 있어! 확 깨물어 죽여버릴 거야!”허영은 악에 받친 비명을 지르며 임지강을 힘껏 깨물었다.임지강도 허영의 머리
신세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들을 발견한 관리자는 예의 바르게 서준명에게 인사를 건넸다.“서 대표님, 어르신께서는 조금 전에 다녀갔습니다.”서준명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그 모습을 본 임지강은 관리자에게 매달려 애원했다.“주임님, 저 애가… 제 딸이거든요. 딸과 잠시 이야기만 하고 싶은데… 혹시 안 될까요?”관리자는 임지강의 애원에 답을 하는 대신 서준명을 바라보았다.서준명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임지강은 족쇄를 찬 다리로 절뚝거리며 복도를 지나 창가로 나왔다. 그리고 관리인들의 감시를 받으며 1미터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세희야… 잘 지내지?”“잘 지내죠.”“네… 엄마는?”신세희는 여전히 담담한 말투로 대답했다.“엄마도 잘 지내요.”임지강은 기쁜 얼굴로 손바닥을 마주 비볐다.“아빠가….”“난 당신 딸이 아니에요. 당신 딸은….”그녀는 고개를 돌려 병실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울고 있는 임서아를 가리켰다.“당신 딸은 저기 있잖아요. 아까 보니까 당신 딸도 폭행하던데.”한참이 지난 뒤에야 임지강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아빠가… 아빠가 다 잘못했어.”그건 애원의 눈빛이었다. 신세희에게 아빠가 잘못했으니 제발 이곳에서 내보내달라는 간청을 담은 눈빛.“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임지강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딸에게 지금 많이 후회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한참 지난 뒤에야 임지강은 입을 열었다.“아빠가 씻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는 거 알아. 이곳에서 내보내 달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 그냥 나중에라도 가끔 보러 와줄 수 있나 해서….”“아! 자주 올 필요는 없어. 반년에 한 번… 아니, 일년에 한 번이라도….”임지강은 애처로울 만큼 비굴한 말투로 물었다.하지만 신세희는 한치 동요도 없었다.“세상에 어느 아버지가 딸 학업을 방해하고 학교를 다니는 딸을 감옥에 집어넣나요?”“그건 그렇다 쳐도 내가 감옥에 있는 동안 한 번이라도 나 보러 온 적 있어요?”신세희는 담담한 미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