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들을 발견한 관리자는 예의 바르게 서준명에게 인사를 건넸다.“서 대표님, 어르신께서는 조금 전에 다녀갔습니다.”서준명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그 모습을 본 임지강은 관리자에게 매달려 애원했다.“주임님, 저 애가… 제 딸이거든요. 딸과 잠시 이야기만 하고 싶은데… 혹시 안 될까요?”관리자는 임지강의 애원에 답을 하는 대신 서준명을 바라보았다.서준명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임지강은 족쇄를 찬 다리로 절뚝거리며 복도를 지나 창가로 나왔다. 그리고 관리인들의 감시를 받으며 1미터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세희야… 잘 지내지?”“잘 지내죠.”“네… 엄마는?”신세희는 여전히 담담한 말투로 대답했다.“엄마도 잘 지내요.”임지강은 기쁜 얼굴로 손바닥을 마주 비볐다.“아빠가….”“난 당신 딸이 아니에요. 당신 딸은….”그녀는 고개를 돌려 병실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울고 있는 임서아를 가리켰다.“당신 딸은 저기 있잖아요. 아까 보니까 당신 딸도 폭행하던데.”한참이 지난 뒤에야 임지강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아빠가… 아빠가 다 잘못했어.”그건 애원의 눈빛이었다. 신세희에게 아빠가 잘못했으니 제발 이곳에서 내보내달라는 간청을 담은 눈빛.“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임지강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딸에게 지금 많이 후회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한참 지난 뒤에야 임지강은 입을 열었다.“아빠가 씻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는 거 알아. 이곳에서 내보내 달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 그냥 나중에라도 가끔 보러 와줄 수 있나 해서….”“아! 자주 올 필요는 없어. 반년에 한 번… 아니, 일년에 한 번이라도….”임지강은 애처로울 만큼 비굴한 말투로 물었다.하지만 신세희는 한치 동요도 없었다.“세상에 어느 아버지가 딸 학업을 방해하고 학교를 다니는 딸을 감옥에 집어넣나요?”“그건 그렇다 쳐도 내가 감옥에 있는 동안 한 번이라도 나 보러 온 적 있어요?”신세희는 담담한 미소를
그리고 보석으로 신세희를 감옥에서 빼내고 그녀를 이용했던 일, 그리고 임신한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일도 떠올랐다.이 모든 과정이 임서아가 먹는 약물처럼 마치 악몽과도 같았다.아무 관계가 없는 남이라도 이건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섰다.친아빠인 그가 자신의 딸을 이렇게까지 몰아세웠다니!정말 후회막급이었다.임지강은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벽에 머리를 부딪치려 했지만 그것마저 감호소 직원들에 의해 제지 당했다.감호소 관리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임지강 씨, 당신에게는 죽을 자격도 없어. 엄한 사람 해치지 말고 가만히 있어.”“제발 죽게 해주세요… 죽어야 속죄할 수 있다고요.”임지강이 절규하며 말했다.“미안하지만 당신은 자신의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어.”관리자가 말했다.임지강이 흐느끼는 소리는 신세희가 대문을 나갈 때까지 들렸다.신세희 역시 울고 있었다.서준명은 깊은 죄책감이 들었다.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세희야, 미안해. 내 생각이 짧았어. 난 네가 보고 마음이 조금 편해질 줄 알았는데….”신세희는 대답이 없었다.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그저 눈물이 났다.왜 눈물이 나는지도 알 수 없었다.불행한 동년 때문에 눈물이 난 걸까?아니면 이런 아버지를 만난 게 억울한 걸까?세상의 모든 추악함을 봤다는 서러움 때문일까?그녀는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그녀는 그렇게 조용히 흐느꼈다.서준명은 죄책감에 견딜 수 없었다.“미안해, 세희야….”‘내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어.’그는 미안하다는 말밖에 해줄 말이 없어서 안타까웠다.시내로 돌아온 뒤, 차에서 내린 신세희는 눈물을 훔치고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오빠, 고마워요. 나를 위해서 그런 거 알아요. 예전에는 그 사람들이 정말 미워서 죽이고 싶었거든요. 매일 저들을 죽이는 상상도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바라던 결말을 오빠 덕분에 드디어 봤잖아요. 고마워요.”“앞으로 다시는 저 인간들한테 너 데려가는 일 없어.”잠시 고민하던 그가
신세희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그게 뭔데요?”부소경은 어쩐 일인지 자꾸 뜸을 들였다.“올라와 보면 알아.”신세희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부소경은 전화를 끊어 버렸다.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엄선희와 민정아를 바라보며 물었다.“두 사람, 뭐 아는 거 있지?”엄선희가 웃으며 말했다.“남편이 이벤트 해주려나 보지. 부 대표님 같은 분이 이렇게 로맨틱한 사람인 줄 어떻게 알았겠어? 글쎄 우리한테 연락해서 세희 씨를 꼭 이 백화점으로 데리고 오라지 뭐야? 얼른 올라가 봐.”민정아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무슨 이벤트인지는 우리도 몰라.”신유리도 엄마를 재촉했다.“엄마! 빨리 가보자!”신세희는 딸의 손을 잡고 일행과 함께 백화점 위층으로 향했다.6층은 이 백화점의 맨 위층이었다.일층에서는 화장품이나 액세서리를 팔고 2층과 3층은 패션, 4층은 가구매장이고 5층은 카페나 식당이 있었다.신세희도 이곳을 몇 번이나 방문했지만 5층위에 또 층이 있는 줄은 몰랐다.6층에 도착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다른 층과는 다르게 아주 조용한 분위기가 풍겼다.복도를 지나 안으로 들어간 신세희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곳은 가구매장이었다.가구라고는 하지만 일반 가구를 파는 곳은 아니고 원목 재질의 유명 디자이너 작품들로만 구성되었다.신세희는 목재에 대해 잘 모르지만 가구들을 만져보고 둘러보니 이곳 물건들이 무척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한 번 보면 절대 잊지 않을 디자인과 아늑한 느낌을 주는 가구들이 가득했다.멀리서 부소경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재빨리 그에게 다가가서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소경 씨, 가구들이 참 좋아 보이네요. 하지만 딱 봐도 몇천만 원은 훌쩍 넘을 것 같은데요?”부소경이 웃으며 말했다.“건축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가구에 대해서도 잘 아네.”“당연하죠.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잖아요.”부소경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이곳 가구들은 외국에서 수입한
옆에 있던 신세희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돈을 지불한 뒤, 부소경은 그제야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아래층으로 가서 장모님 드릴 선물도 좀 사자. 여긴 내가 다 처리하고 뒤따라갈게.”신세희는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걸음을 돌리던 신세희는 부소경이 고른 소파 위에 앉아서 멍 때리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가까이 다가간 신세희는 상대를 알아보고 미간부터 찌푸렸다.“당신이 왜 여기 있어요?”얼굴이 수염으로 뒤덮인 구경민이 말했다.“그게… 소경이가 장모님한테 가구를 사드린다고 해서 따라왔어요. 사실 이 가구세트는 내가 추천한 거예요.”하지만 신세희는 고맙게 느껴지지 않았다.“그럴 시간에 윤희 언니나 찾지 않고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이때, 어린 신유리가 구경민의 앞에 달려오더니 잔뜩 화가 난 말투로 말했다.“경민 삼촌! 열흘 안에 우리 윤희 이모 찾아와! 찾지 못 하면 다시는 삼촌한테 안기지 않을 거야! 뽀뽀도 금지할 거야! 얼굴도 안 돼! 흥!”그러던 아이가 눈물을 글썽였다.구경민은 볼이 퉁퉁 부어서 자신을 노려보는 아이가 무척 사랑스러웠다.그는 매번 신유리를 만날 때면 아이를 안고 이마에 뽀뽀를 하거나 얼굴을 쓰다듬었다.그런데 그렇게 좋은 짓을 앞으로는 할 수 없다니!그 순간 구경민은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마치 꿈을 꾸고 있는 느낌이었다.고윤희가 떠올랐다.그녀는 줄곧 아이를 원했었다.하지만 그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항상 외면했다.만약 그들의 첫 아이를 지우지 않았더라면 아마 유리보다 조금 더 컸을 것이다.만약 그들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면 그녀는 이렇게 종적을 감췄을까?“웃음이 나와?”신유리는 다짜고짜 짧은 다리를 들어 구경민의 명품 구두를 짓밟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반짝이던 구경민의 구두는 볼품이 없어졌다.“삼촌 나빠! 빨리 윤희 이모 찾아오라니까! 당장 일어나! 이거 우리 외할머니한테 선물할 소파야!”여섯 살 어린애가 고집을 부리면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천군만마를 호령하는 구경민도 신유리
고윤희의 연락을 받은 신세희는 비싼 가구를 선물 받았을 때보다 더 표정이 밝아졌다.그녀가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윤희 언니….”어디냐고 물으려던 그녀는 구경민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그래도 고윤희를 아는 사람은 구경민뿐이었다.서른 살이 넘은 성인이지만 고윤희는 여전히 생각이 단순했다.나가서 일을 해본 경력도 없었기에 돈이 필요한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구경민의 추측은 정확했다.고윤희는 그의 추측대로 돈 때문에 신세희에게 전화를 걸었다.“언니, 얼마나 필요해요?”신세희가 고윤희와 통화하고 있는 사이, 구경민은 부하 직원에게 연락해서 전화번호를 추적하라고 지시했다.한편, 고윤희와 한진수 모자는 시골로 내려가는 길에 있었다.가는 내내 그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한진수의 어머니가 갑자기 고열에 시달렸다. 그들은 가장 싼 버스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얼마 가지 않아 갑자기 한진수 어머니가 고열을 호소해서 차에서 내리게 되었다. 그들은 근처 마을의 진료소로 이동했다.한진수의 모친은 병세가 조금 호전되자 링거를 거부했다.그들이 가진 돈도 사실 얼마 없었다.세 성인이 거리에 나가서 구걸을 해도 뒤돌아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한진수는 어머니를 업은 채, 고속도로를 걸었다. 혹시라도 지나가던 화물차를 얻어 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그렇게 그들은 운이 좋게 시내로 가는 화물차를 얻어 타고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그런데 이번에는 고윤희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열물을 토했다.처음에는 그냥 멀미인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는 사흘이 지나도록 구토가 멎지 않았다.식사가 불규칙 적이라 먹다가 체한 게 분명했다.한진수는 그녀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고윤희는 단호하게 거절했다.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한진수는 오히려 그런 그녀를 위로했다.“괜찮아요. 어디 가서 아르바이트 며칠 하죠, 뭐. 공사장 일도 할 수 있어요. 예전에도 해봤거든요. 나 맷집 좋아요. 그러니까 병원에 일단 가요.”고윤희는 한진수의 고집을 못 이겨 현지
그러다가 이내 웃었다."임신이 뭐가 무서워요? 낳으면 그만이죠, 우리 어른 셋이 앞으로 아이 하나 먹여 살리지 못하겠어요?""그게... 이 애 가지면 안 될 것 같아요, 이 애 아빠가...""모르게 하면 그만이죠 뭐.""나도 이 애 가지고 싶지 않아요, 지워버리고 싶어요, 나...”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한진수를 바라보았다. 오는 길에 이미 열 번도 넘게 생각해 봤던것이다. 고윤희는 용기를 내 말을 꺼냈다."오빠, 고향으로 돌아가면 나와 결혼하지 않을래요?""내 나이가 이미 마흔다섯으로 윤희씨보다도 열 살 위인걸요. 그리고 난 거친 사람이라... 윤희 씨가 입은 옷은 너덜너덜해도 여린 아이 같은 게, 혹여나 윤희 씨를 망치지는 않을까 두려워요.""알겠어요, 오빤 날 싫어하시는 게 틀림없어요!" 고윤희는 울먹이며 말했다."아이고 바보 같은 소리는, 내가 이 처지에 늙은 어미까지 데리고서 싫어할 게 뭐가 있겠어요? 다만 깊은 산속에서 원시인의 삶을 사는 처지에 윤희 씨까지 따라 고생하게 할 순 없잖아요! 원래 내 생각엔 고향으로 돌아가서 윤희 씨한테 좀 부지런한 사람 찾아주려 했어요, 그리고 앞으로 우리 집이 윤희 씨 친정인 거예요. 윤희 씨가 아이를 낳으면 날 외삼촌이라 부르게 하고요! 난 윤희 씨와 결혼할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이미 결혼도 한번 했고 아이도 딸린 사람인 데다 나이도 이렇게 많은데, 윤희 씨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에요. 난…여태까지 결혼 같은 거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고윤희의 눈빛은 오히려 더욱 뜨거워졌다."전에 그 남자 앞에서 여태껏 감히 말을 꺼낸 적이 없지만... 나, 결혼하고 싶어요! 그래서 아이도 가지고 평범한 생활을 지내고 싶어요. 오빠 나랑 결혼하면 안 돼요?""….""오빠 나랑 결혼하지 않을 거면 나도 오빠랑 함께 가지 않을 것에요. 임신한 몸으로 오빠에게 영향 주기 싫어요!""그래요! 그래! 결혼해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결혼하는 거로 해요! 윤희 씨를 데리고 먼저 혼
그녀는 혼이 나간 듯 천천히 상담실에서 나왔다. 이 세상이 자신한테 이 정도로 잔인할줄 몰랐다. 이때 가까이 다가온 한진수가 물었다. "괜찮아요?""나중에 우리가 아이를 가질 수 없다 하여도 오빠는… 나와 결혼할 거예요?""이미 임신했잖아요, 왜 아이를 가질 수 없겠어요? 그리고... 난 몸도 아주 건강해요, 예전에 아들이 있었어요, 그러니 아이 가지는 건 문제없을 거예요."고윤희는 눈물을 흘리며 한진수를 바라보며 말했다."하지만, 이 애 지우면, 앞으로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가 없대요...""그러면 낳으면 되죠! 윤희 씨 자식인데, 엄마로서 잔인해지먼 안되잖아요? 이 아이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아빠가 나일테니 앞으로도 틀림없이 나를 아빠로 여길 거예요.""….""남들은 다 낳는 공보다 키우는 공이 더 크다고 하니 안심해요, 앞으로 우리 친자식인 거예요."말을 마친 한진수는 고윤희를 부축하며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막 병원을 나서자마자 한진수는 문득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방금 친구한테서 돈을 빌린 거예요?”"맞아요, 수술비 36만 원만 빌려 달라고 했는데 180만 원을 보내줬어요."한진수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러면 우선 36만 원만 남겨두는 걸로 해요. 그중 20만은 여비로 충분하고, 나머지 16만 원은 만일에 대비하여 남겨둬요, 그 나머지는 돌려주고요. 지금 우리 형편에 180만 원이나 빚을 지면 언제 갚을 수 있겠어요?""좋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이렇게 결정을 내린 후, 고윤희는 다시 신세희에게 전화를 걸었다.다른 한편, 신세희는 여전히 쇼핑몰 6층에 있는 가구점에 있었다. 원래는 돈을 지불하고 떠나갈 생각이었는데, 바로 전에 고윤희로부터 걸려 온 전화 때문에 발목이 잡혀버렸다. 옆에서 구경민은 한창 부하들을 시켜 고윤희를 찾고 있었다. 그는 소파에 앉아서 몇 분마다 전해오는 부하들의 보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30분도 안 되어 부하들은 범위를 현성까지 많이 좁혔다.
그는 아주 손쉽게 차를 부를 수 있었다.30여 분 뒤, 차는 작은 현성을 떠나 한진수의 고향으로 떠나갔다. 그리고 또 30여 분 뒤, 구경민의 부하들도 병원에 도착했다.구경민의 명령 없이는 함부로 병원 안에 들이닥칠 수가 없어 먼저 구경민에게 전화부터 걸었다."이미 병원 밖에 도착해서 병원도 포위하였습니다.""알았으니 샅샅이 찾아봐, 안에 있는 의사랑 환자들 놀라게 하지 말고. 지금 바로 갈테니 몇 시간이면 도착할 거야."통화를 마친 구경민은 부소경과 신세희와 작별을 고했다. "내일 큰어머니한테는 못 간다고 전해줘."말을 마친 구경민은 돌아서서 가버렸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혼이 빠져나간 것만 같던 구경민은 지금 마치 바로 전쟁터에라도 나가려는 듯 분초를 다투었다. 신세희는 뒤에서 구경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휴, 이럴거면서 왜 그랬을까? 윤희 언니, 꼭 무사해야 돼요."신세희는 돌아서 부소경을 바라보며 말투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녀는 속으로 사람의 일생에 얼마나 많은 재산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한 식구가 함께 평온하고 건강하게 사는 것으로 생각했다. "소경 씨, 우리 가요."부소경이 신유리를 안고 떠나가려는 찰나, 바로 앞 입구에서 세 명의 쌍둥이 소녀가 뛰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세 쌍둥이는 같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세 살쯤 되어 보였다.세 쌍둥이는 작은 언니가 있는 것을 보고 신유리 쪽으로 달려왔다. 재잘재잘 웃으며 휘청거리는 모습이 귀엽기 그지없었다. 뒤에는 그들의 부모로 보이는 사람이 뒤따르고 있었다."맏이야, 둘째 그리고 셋째야! 너희 셋 그렇게 빨리 뛰어다니지 마, 알았지? 엄마, 아빠는 너희들을 찾기 어려운걸."어린 세 쌍둥이는 여전히 말을 듣지 않고 계속하여 신유리를 향해 달려왔다. 이렇게 귀엽게 똑같은 어린이 복을 챙겨입은 세 여자 쌍둥이는 신세희와 부소경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특히 여섯 살 된 신유리는 눈을 반짝이며 소리쳤다."와! 귀요미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