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례합니다, 대표님.”동 대표 부인은 하예정에게 초대장을 보낸 적이 없다. 그녀는 이모의 명의를 빌려서 함께 왔다.동 대표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실례라니요, 아니에요. 전씨 사모님이 오신 것만으로도 저희에겐 영광인걸요.”하예정은 이경혜가 동씨 가문 큰 따님을 위해 준비한 생일선물을 손에 들고 있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이모한테 드렸다. 이경혜가 곧이어 동씨 일가 큰 따님에게 선물을 건네며 가볍게 웃었다.“아가씨, 생일 축하해요.”동 대표 부인이 황급히 말했다.“사모님, 그냥 진주라고 부르시면 돼요. 우리 진주 생일 파티에 참석해 주셔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게다가 이렇게 과분한 선물까지 준비해 오시다니, 정말 너무 감사드려요.”그녀는 진주에게 이경혜가 준 선물을 얼른 받으라고 곁눈질했다.이경혜는 진주 세트를 선물했다.진주는 이경혜가 준 선물을 받으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이경혜가 딸과 조카만 데리고 올 뿐 성문철은 함께하지 않았다. 동 대표는 아내와 두 딸에게 사모님을 잘 모시라고 분부하고는 곧바로 다른 손님들을 맞이하러 갔다.동 대표 부인은 열정적으로 이경혜 일행을 반기며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동 대표 부인의 열정 속에 공손함이 담겨 있다는 걸 훤히 보아냈다. 이경혜의 옆에 있는 젊은 여인에게 유독 더 공손하게 대했다.많은 사람들이 하예정은 전태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동 대표 부인은 오히려 냉철하게 꿰뚫어 보았다. 하예정이 전태윤에게 어울리든 말든 그녀는 이미 전태윤의 합법적인 아내이고 전씨 일가의 사모님이다. 전태윤이 하예정의 신분을 공개할 때 애처가 타이틀을 위해 인터뷰를 받았다.전태윤이 이토록 사랑하는 여자이니 하예정의 사모님 자리가 얼마나 굳건한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전씨 일가 어르신들은 늘 생각이 깨어 있고 하예정도 전씨 할머니가 직접 고른 손주며느리 감이라고 한다. 어르신이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시는 한 하예정이 거지라 해도 감히 그녀에게 무례할 자가 없다.하여 동 대표 부인도 감히 그녀를 얕잡아보지 못하
여씨 사모님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든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했다.“성씨 사모님과 성소현 씨도 참 아량이 넓어요. 자신의 예비 사위를 외조카 딸에게 빼앗겼는데도 여전히 예정 씨를 데리고 여러 사모님께 소개해 주고 있잖아요.”그녀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조카가 아무리 좋아도 제 딸만 할까?누군가가 여씨 사모님에게 반박했다.“여씨 사모님, 말 좀 가려서 하세요. 전씨 도련님은 소현 씨의 마음을 받아준 적도 없고 무언가를 맹세한 적도 없어요. 단지 소현 씨가 일방적으로 좋아한 것뿐이에요. 다만 소현 씨도 아량이 넓은 건 사실이죠. 화끈하게 사랑했고 쿨하게 내려놨잖아요. 진실을 알게 된 후 두 사람을 진심으로 축복해 줬어요. 저도 그때 소현 씨를 다시 보게 됐어요.”“사모님은 저희 앞에서만 얘기하고 이만 멈추세요. 전씨 사모님의 출신을 사방에 알리지 말고요. 전씨 도련님은 여씨 일가에서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에요.”여씨 사모님은 입을 벌려 뭐라 말하려 했지만 결국 꾹 삼키고 더는 그런 사모님들과 논쟁하지 않았다.그녀는 원래 이 사교권에서 남들의 웃음거리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제수가 아주버님께 시집간 케이스니까.그녀의 원래 남편은 현재 남편의 친남동생이다. 부부가 딸을 낳고 두 살까지 키웠을 때 남편이 우울증으로 투신자살했고 나중에 그녀는 아주버님과 재혼했다.아주버님과 재혼한 후 그녀는 둘째 사모님에서 큰 사모님으로 거듭났고 시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남편이 세대주로 되었고 그녀는 여씨 일가의 안방마님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제수가 아주버님께 시집간 경우라 많은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했다.여씨 사모님은 아주버님과 재혼한 후 또 아들 하나, 딸 하나 더 낳았다. 한편 죽은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딸 여운초는 여씨 일가에서 투명 인간처럼 지냈고 그 집안의 도우미들보다도 못한 취급을 당했다고 한다.게다가 16살 때 병을 앓아 시력을 잃었고 실명하니 더 미움받았다. 그녀의 친모인 여씨 사모님마저 그녀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혼자 알아서 살게
“방안에 30분 동안 있으면서 가장 큰 수확은 바로 명함이에요.”성소현이 가볍게 웃었다.“다 그래. 서로 이익 때문에 왕래하고 있지. 얻을 게 없는 사람은 아예 상대하지 않아! 뭐 먹을래? 내가 가져다줄게.”“아까 본 디저트들이 정교하고 예뻐서 맛있을 것 같아요. 그럼 디저트 좀 갖다줘요. 가게에서 조금 먹고 와서 너무 배고프진 않아요.”단 음식을 좋아하는 그녀는 정교한 디저트들을 보자 군침이 돌았다.전에 심효진과 심미란을 따라 연회에 참석할 땐 심효진과 둘이 구석에 숨어 실컷 먹기만 했다. 그녀는 디저트가 역시 제일 맛있었다. 밖에서 파는 디저트들보다 훨씬 맛있었다.“알았어.”성소현은 와인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하예정을 위해 디저트를 챙기러 갔다.잠시 후 성소현은 빈손으로 돌아왔고 그녀 뒤에 동씨 일가의 도우미가 두 명 따라왔다. 도우미들은 손에 쟁반을 들고 있었고 쟁반 위엔 성소현이 자신과 하예정을 위해 고른 음식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여기 놔주시면 돼요. 고마워요.”두 도우미는 쟁반을 내려놓고 괜찮다고 말한 후 곧장 다른 사람들의 시중을 들러 갔다.두 자매는 구석에 숨어 실컷 먹었고 아무도 감히 그녀들을 방해하지 못했다. 성소현이 워낙 한 성격 하다 보니 그녀 마음에 안 드는 자가 가까이 오기만 하면 가차 없이 체면을 짓밟아 버린다. 그러니 누가 이런 장소에서 체면이 깎이고 싶겠는가?“예정아.”성소현이 갑자기 하예정을 툭툭 치며 똑같이 구석에 있는 여자아이를 보라고 곁눈질했다. 여자아이는 정교한 지갑에서 무언가를 한 팩 꺼내더니 자신의 술잔에 붓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몸을 돌려 인파들 속으로 들어갔다.여자아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소현과 하예정을 발견하지 못했다. 자신의 꼼수가 누군가에게 적나라하게 들켰다는 걸 전혀 몰랐다.“술에 뭘 넣은 거죠?”성소현이 말했다.“아마도 약 가루인 것 같아. 술에 뿌리니 바로 녹아들고 술 냄새가 가려져 마시는 사람은 전혀 다른 맛을 못 느낄 거야. 과연 누가 타깃일까? 진주 씨 성인식이자 생
하예정은 줄곧 여운별만 빤히 쳐다봤다. 그녀는 약을 탄 술을 아무에게도 안 줬고 본인도 마시지 않았다. 하예정은 그녀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살짝 궁금했다!곧이어 하예정은 답을 얻었다.그 술을 다른 사람에게 안 준 게 아니라 술을 마실 사람이 이제 막 도착했기 때문이다.스쿠터 한 대가 동가네 별장으로 질주해 왔는데 정원을 가득 채운 고급 차들 사이에서 스쿠터가 유난히 돌출되어 보였다.스쿠터를 타고 온 사람은 스무 살 남짓한 여자아이였는데 중점은 그녀가 아니라 뒷좌석에 앉은 여자였다. 그녀는 품에 꽃다발을 안고 스쿠터에서 내린 후 한 손에 지팡이를 짚고서 길을 살피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그녀는 맹인이었다!하예정은 술잔을 내려놓고 반듯하게 앉아 맹인 여자아이가 한 손에 꽃다발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맹인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잔디밭으로 걸어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그녀의 머릿속에 문득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할머니가 전이진에게 준 사진이자 그에게 정해준 신붓감이 바로 그녀였다. 할머니는 전이진에게 1년 안에 무조건 상대의 마음을 얻어 아내로 들여야 한다고 명령했다. 이행하지 못하면 뒷일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그랬다, 그 상대도 여씨 성이었다.여씨 그룹 오너 여 대표의 의붓딸이자 조카딸인 여운초였다.하예정은 동씨 가문의 연회에서 여운초를 보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여운초는 걸음이 매우 느렸다. 앞이 안 보이니까.주차한 곳은 여운별과 그리 멀지 않아 일반인들은 2분이면 걸어올 거리인데 여운초는 십여 분을 걸어서야 겨우 여운별 앞에 도착했다.“꽃 배달 좀 시켰더니 뭘 이렇게 늦게 와? 배달 속도가 이렇게 느린데 네 그 가게가 문을 안 닫는 게 기적이지 기적이야.”여운별은 여운초보다 여섯 살 어려 올해 갓 스무 살이다. 여씨 사모님이 제 아주버님과 재혼하고 낳은 첫 아이라 부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여씨 일가는 2천억 자산의 숨은 재벌 가문이다. 여운별은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아 이기적이고 교활한 성격으로 돼버렸다.그녀가 가장
여씨 사모님은 가까운 곳에서 몇몇 사모님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두 딸아이의 인기척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런 대처 없이 여전히 딴사람들과 수다를 떨었다.여운초는 한참 침묵하다가 결국 동생이 준 술잔을 받으며 물었다.“이거 마시면 꽃값 줄 거야?”“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내가 번복하겠니? 이 술만 마시면 20만 원 전부, 한 장도 빠짐없이 다 너 줄게.”“알았어.”여운초가 잔을 들어 입가에 갖다 대고 막 마시려던 참인데 누군가가 불쑥 손 내밀어 그녀의 술잔을 뺏어갔다.“이 술 마시지 말아요.”낯선 이의 목소리였다.여운초는 상대의 목소리로 위치를 찾고는 고개 돌려 의아한 표정으로 마주했다.여운초의 술잔을 뺏어간 사람은 다름 아닌 하예정이다.다들 재미난 구경거리를 보고 있을 때 하예정은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그녀는 여운별이 여운초의 술잔에 가루를 탄 걸 알고 있다. 이는 누가 봐도 좋은 취지가 아닐 터이니 여운초가 마시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가늠할 수 없다!여운초는 할머니가 전이진에게 정해준 신붓감이다. 몰랐다면 모를까, 다 알게 된 판에 더는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하예정은 선뜻 나서서 그녀를 지켜주었다.“하예정 씨, 이건 하예정 씨랑 상관없는 일이에요.”하예정을 본 여운별은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그녀는 하예정을 전씨 사모님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부르고 나면 자신이 이 시골 여자만도 못하다고 느껴질까 봐.“좀 전에 여운별 씨가 이 술잔에 약 타는 걸 봤어요.”말을 건넨 사람은 하예정이 아닌 성소현이었다.그녀는 하예정이 왜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미 나선 바에 그녀도 뒤처질 수 없어 함께 끼어들었다. 여운별 같은 레벨은 성소현의 안중에도 없다.그녀는 여운별의 음모를 바로 까발렸다.“성소현 씨,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른대로 해야죠. 내가 술에 약 타는 거 어느 눈으로 봤어요?”성소현이 턱을 치키고 거만하게 말했다.“내 눈 보이죠?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이런...
여운별은 실은 성소현과 하예정에게 도발하고 있었다.두 사람이 여운초를 한 번 도울 순 있어도 평생 도울 건 아니니까!여운별만 원한다면 아무 때나 여운초의 꽃 가게를 박살 낼 수 있고 여운초는 감히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지 못한다.여운초도 바보가 아니기에 성소현이 술에 약을 탔다고 한 이상 절대 그 술을 마실 리가 없다.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이 꽃은 그냥 너 줄게. 돈 안 받아도 돼.”말을 마친 그녀는 성소현과 하예정을 향해 차분한 목소리에 감격을 담아 감사의 뜻을 표했다.“여운초, 좋게 말할 때 듣지 그냥!”여운별은 면이 안 섰다.그녀는 여운초가 떠나려 하자 손을 뻗어 덥석 붙잡고 그녀 앞에 성큼 다가가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꽉 잡고 강제로 그 술을 들이부으려 했다.하예정과 성소현은 거의 동시에 나섰다.하예정은 주먹질 솜씨로 가뿐히 전세 역전하여 여운별의 손에서 여운초를 구해냈을 뿐만 아니라 여운별의 턱을 꽉 잡았다. 한편 성소현은 그 술잔을 뺏어와 재빨리 여운별에게 먹였다.여운별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결국 그 술을 몇 모금 마셨다.그녀가 술을 다 마신 후에야 하예정도 천천히 풀어주었다.성소현은 술잔을 바닥에 힘껏 내던졌다. 잔디밭이라 해도 잔이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고 줄곧 담담하게 딴사람들과 얘기 나누던 여씨 사모님도 그제야 화들짝 놀랐다.제 딸이 손해 보자 여씨 사모님은 곧장 다가왔다.“엄마, 우리 가요, 얼른 가요.”여운별은 자신이 술에 무슨 약을 넣었고 마시고 나면 어떤 후과가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고 개망신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이건 그녀가 여운초를 위해 준비한 계략인데 성소현과 하예정의 간섭하에 결국 스스로 그 술을 마셔버렸다.여운별은 초조한 마음에 빨리 떠나고 싶었다. 약발이 나기 전에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운별아, 너 왜 그래?”여씨 사모님은 초조하게 물었다. 여운초가 옆에 서 있자 그녀는 표독스럽게 째려보며 으름장을 놓았다.“여운초, 너 운
이때 이경혜와 동씨 사모님도 인기척을 듣고 얼른 방에서 나왔다.여씨 사모님은 감히 이경혜에게 맞설 엄두가 안 나고 보물단지 딸 여운별이 자업자득한 거라 마지못해 동씨 사모님께 미안하다고 사과한 후 도망치다시피 여운별을 데리고 동씨 저택을 떠났다.분위기가 잠잠해지자 여운초는 하예정과 성소현에게 고마움을 전했다.실은 그녀도 두 사람이 왜 저를 도와준 건지 몰랐다.엄마가 고함을 지를 때 그녀는 자신을 도와준 사람 중 한 명이 전씨 사모님이란 걸 알게 됐다. 요즘 전씨 사모님은 관성에서 제일 핫한 인물인데 이토록 정의로운 분이실 줄이야. 그녀에게 도움받을 거라곤 예상치도 못했다.사실 아무도 안 도와줘도 여운초는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다...새엄마 못지않게 사악한 친엄마와 새아빠 밑에서 살아가려면 조금씩 증거를 수집해야 하는 법... 여운초가 아무런 수단이 없었다면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도 없다.하예정이 걱정스럽게 물었다.“돌아가서 저들이 계속 귀찮게 굴면...”그녀는 방금 했던 말이 여씨 사모님에게 제대로 먹혔을지 몰랐다.여운초가 담담하게 말했다.“저들은 결코 진정으로 이득을 본 적이 없어요.”하예정이 두 눈을 반짝이다가 결국 작별을 고했다.“그럼 잘 있어요.”“고마워요!”여운초는 다시 한번 하예정과 성소현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그리고 차분하게 맹인 지팡이를 짚고 길을 살피며 앞으로 걸어갔다.이때 그녀의 점원이 달려와 그녀를 부축했다.곧이어 여운초는 그 스쿠터에 앉아 동씨 저택을 떠났다.여씨 일가의 두 자매가 한바탕 소란을 피운 후 밤이 깊어지자 많은 손님들이 뿔뿔이 흩어졌다.이경혜도 딸아이와 조카딸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그녀는 먼저 하예정을 발렌시아 아파트로 보내줬다.두 자매가 여운초를 도와준 일에 관해 이경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전태윤은 일찌감치 사랑하는 아내로부터 문자를 받고 발렌시아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이경혜의 차가 도착하자 전태윤은 가까이 다가와 먼저 차에 있는 이경혜에게 인사한 후 신사답
“내가 어떻게 심기를 건드렸는지 안 물어봐요?”전태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안 물어봐. 네가 어떻게 건드렸든 간에 난 영원히 네 편이니까.”그의 눈엔 아내가 곤 진리이다.“태윤 씨... 나 이렇게 믿어주고 예뻐해 주면 버릇 나빠져요.”“버릇 나빠지라고 이러는 거야. 그럼 나만 널 포용할 수 있고 넌 영원히 내 것이 되겠지. 아무도 내 와이프 못 뺏을 거야.”하예정은 실소를 터트렸다.“내가 태윤 씨 아내란 걸 알게 되면 누가 감히 날 넘보겠어요?”김진우는 그녀를 수년간 짝사랑했고 그녀가 유부녀란 사실을 알면서도 단념하지 못한 채 도리어 그녀가 전태윤과 이혼하고 본인에게 시집오길 바랐다. 심미란이 그에게 하예정의 초고속 결혼 상대가 전씨 집안 도련님 전태윤이라고 말한 후 김진우는 바로 철저하게 마음을 접었다.지난번에 김진우가 주말을 틈타 이틀 쉬며 집에 얼핏 다녀올 때 심미란이 효진이네 가족도 불러 김진우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심효진은 김진우가 많이 성숙하고 말수도 훨씬 줄어들었다고 했다. 사람들과 인사만 나눈 후 딱히 말이 없었으니까.심효진은 진우가 분명 아직도 하예정을 사랑하지만 전태윤에게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고 또한 감히 맞설 엄두도 안 날 거라고 했다. 그가 하예정에게 집착할 때 전태윤은 김씨 그룹에 압력을 가했으니 김진우가 아무리 사랑에 눈이 멀었어도 감히 본인의 가족 사업을 내걸 엄두는 안 났다.내기할 엄두도 안 나고 질 용기도 없다.오직 단념하도록 본인을 다그칠 수밖에...관성을 떠나 H시에 돌아가 출근하기 전에 그는 심효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10년 안에 아마도 연애나 결혼은 하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심효진은 사촌 동생이 매우 안쓰럽지만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성격상 동생을 도와 하예정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무너뜨리고 김진우와 잘 되게 엮어줄 리는 없으니까. 지금이야 전태윤이 하예정을 사랑하고 그녀에게 엄청 잘해주며 그녀를 위해 성소현한테도 머리 숙이고 누나라고 부른다지만 설사 전태윤이 하예정을
발 없는 말이 천리 가는 법, 모든 여자의 이상형인 고씨 가문의 주인, 고씨 그룹의 대표가 여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소문이 금세 강성 상류사회에 퍼졌다.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놀라 턱이 빠질 지경이였다.심지어 병원에서 정화의 병간호를 하고 있던 이 가주도 이 소문을 듣고 깜짝 놀랐다.병실 침대 옆에 앉아 있던 그녀는 갑자기 실소를 터뜨리며 말했다.“그런 거였군, 역시 그런 거였어.”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혼자 중얼중얼하는 아내를 보며 정화는 영문을 몰라 당황해했다.정화는 거세함으로써 수십 년간 해왔던 결혼 생활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고 또 자신의 오랜 희생과 맞바꾼 정가네 재부를 지킬 수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단지 아내 곁을 지키는 일만 남았을 뿐.하지만 그도 알고 있었다. 비록 수술을 했어도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생긴 틈은 결국 완벽히 봉합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내는 아이들을 생각해서 자신의 실체를 아이들에게 까발리지 않고 체면을 지켜준 것이었다.하지만 그녀가 기분이 나쁘면 언제든지 그와 등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니 병상에 누워 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마음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여보, 무슨 일 있어?”정화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상상도 못 할 빅 뉴스가 있어.”이 가주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십 년이나 늙어 보이는 데다가 이제 남자구실도 못 하는 정화를 바라보자니 이 가주는 깨 고소했다.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남편에게 물었다.“당신이 좋아하는 그 불여우가 고현에게 대시해도 왜 아무런 결과가 없는 줄 알아?”정화는 표정이 굳어지더니 해명에 바빴다.“여보, 나랑 윤정이는 정말 아무 사이 아니야. 사람들이 모함한 거라니까. 그날 밤, 우리 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는지 여보도 잘 알잖아. 게다가 다들 잘 아는 사람들이고. 윤정이는 내가 딸처럼 생각하는 아이야.”정화는 바람둥이가 분명했다. 바람을 피운 전적도 있고 또 항상 기회를 엿보는 사람이지만 윤정이한테까지
오늘 밤 약속 자리에는 원래 고현이 참석해야 했지만, 고현이 오후에 회사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에 고빈이 나서서 약속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고빈은 고현의 쌍둥이 동생으로 여러 방면에서도 매우 훌륭하지만, 고현과 비교하면 능력이 좀 떨어졌다.“제 형이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우리 형이 문제를 만드신 거예요. 그리고 그 문제가 저를 찾아온 거죠.”고빈의 말이 끝나자마자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그는 또 사람들에게 말했다.“또 전화가 왔네요. 왜 우리 부모님께 전화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저한테 전화를 걸어 뭐 하려는 건지. 저와 저의 형은 20년 넘게 형제로 살긴 살았지만, 함께 잠을 자 본 적도 없고 함께 샤워도 해보지 못했는데 제가 어떻게 우리 형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겠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형이라고 불렀는데...”고진호 부부가 고빈에게 사실 고현이 여자라는 것을 알려주었을 때 고빈은 이미 성인으로 되었다.하지만 고빈은 확인한 적 없었다.고진호 부부가 고현이 여자라고 하니 고빈도 그녀가 여자인 줄로만 알았다.‘우리 부모님이 날 속인 건 아니겠지?’“고 대표님은 대체 여자예요? 남자예요?”고빈은 해명했다.“우리 형이 오늘 밤 연회에 드레스를 입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참석했는데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네요. 저에게 우리 형이 호영 씨를 위해 치마를 입은 것이 아니냐고 질문하셨는데 우리 형은 호영 씨를 위해 치마를 입은 것이 분명해요. 호영 씨도 예전에 우리 형을 위해 치마를 입은 적 있거든요. 두 사람이 똑같은 행동을 한 것으로 보면 정말 한 가족답네요.”고빈은 말을 마치고 진미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진미리가 휴대전화를 꺼놓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고진호의 핸드폰에도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꺼져있었다.“어쩐지 저에게 전화가 오더라니, 우리 부모님께서 전화를 꺼놓으신 거였군요. 이미 예상하셨을 거예요.”또 다른 전화가 걸려오자 고빈은 바로 전화를 끊고 휴대전화의 전원을 꺼버렸다.전화가 터질 것만 같았다.고빈은 전화를 바지 주
“고... 고 대표님, 지금 고 대표님이 여자라고 하신 거죠?”송씨 가문의 딸 송은하는 말을 더듬으며 고현이 여자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고현과 송은하는 서로를 쳐다보았다.송은하는 그 사실이 전혀 믿기지 않아 이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고 고현이 제발 말해줬으면 했다.비록 송은하는 고현을 짝사랑하고 고현의 대답도 받지 못해 단념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고현이 남자이기를 바라고 있었다.적어도 자신의 안목이 문제가 없음을 증명하고 싶었다.만약 고현이 정말로 여자라면 송은하의 안목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될 것이고 따라서 고현을 남자로 착각해서 짝사랑하게 된 셈이다.송은하는 생각만 해도 어이가 없었다.그녀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전부 침착할 수 없었다.고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저는 여자예요. 믿지 마실지는 여러분 몫이지만요.”그녀는 더 설명하려 애쓰지 않았다.전호영 때문만 아니라면 고현은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설명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고현은 심지어 전호영의 손을 잡고 높이 들어 모두에게 말했다.“저와 호영 씨는 모두 정상적인 사람이에요. 호영 씨도 게이가 아니고 저도 게이가 아니에요!”많은 사람은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어르신, 제가 아는 지인을 봤는데 얼른 가서 인사드리고 올게요.”고현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소화할 시간을 주려고 했다. 그녀는 익숙히 아는 대표님을 보더니 몸을 일으켜 전호영과 함께 그 대표님께 인사하러 갔다.다만 고현이 인사하러 가는 그 대표도 그녀가 치마를 입은 모습을 보더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고현도 설명하기 귀찮아 태연한 모습으로 모두에게 인사하고 사업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다.예전에 고현은 연회에 참석할 때 다른 사람이 준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전호영과 함께한 뒤로 마시기 시작했다.전호영과 함께라면 하늘이 무너져도 고현은 걱정하지 않았다.전호영은 그 누구에게도 고현을 모함할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오늘 밤 사람들은 이 연회를
과연 사실일까?고현은 원래 여자였는데 남자 분장하며 살았다고? 아니면 지금 남자인데도 치마를 입고 여자 행세를 하고 있단 말인가!모두가 고현 때문에 의문을 품었으나 아무도 감히 다가가서 물어보지 못했다.어떤 사람들은 고씨 가문과 사이가 매우 가까웠기에 고진호 부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고진호 부부는 휴대전화의 전원을 꺼놓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송국호의 안내로 별장 안으로 들어온 고현은 우아하게 자리에 앉았다.송국호의 며느리 김지윤은 고현을 몇 번이고 쳐다보면서 몇 번이나 말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 전부 배속으로 삼켰다.김지윤과 진미리는 함께 쇼핑도 하고 식사도 해본 사이라 꽤 친한 사이였다.“저한테 하시고 싶은 말 있으면 하셔도 돼요.”고현은 김지윤이 계속 자신을 뚫어지라 쳐다보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도 말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송국호도 그의 며느리 김지윤을 바라보았다.김지윤은 쑥스러워하며 말을 건넸다.“드레스가 너무 예쁜 것 같아서 그래요. 전 대표님께서 선물하신 건가요? 어디서 제작하신 거예요? 저도 맞추러 가야겠어요.”전호영이 웃으며 대답했다.“제가 선물한 치마가 아니라고 고 아주머니께서 사준 거예요.”전호영이 고현에게 치마를 선물해봤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그 뒤로 고현이 겨우 전호영에게 치마를 한 번 입어 보이긴 했지만, 그 치마들을 여전히 받지 않았다.고현이 받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전호영도 그녀에게 치마를 선물하지 않았다.고현은 오늘 밤 치마를 입고 연회에 참석할 계획도 전호영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만약 전호영이 알았더라면 그는 고현에게 더 예쁜 치마 몇 벌을 미리 선물했을지도 모른다.오늘 밤 고현이 입은 이 드레스는 예쁘긴 한데 등도 드러내놓지 않고 너무 보수적이었다. 다른 재벌가 딸들은 어깨나 등을 드러내놓는 드레스를 입었다.김지윤이 되물었다.“고씨 사모님께서 구매한 거라고요?”그녀는 고현이 입은 드레스가 전호영이 선물한 거로 알고 있었다.송씨 가문의 사람들도 남들처럼 고현이
송씨 가문의 어르신 송국호도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하지만 그들은 곧 정신을 차리고 변함없는 표정으로 앞으로 나아갔다.고현과 전호영은 이미 한 쌍의 커플로 되었다. 그들이 동성애자일지라도 두 가문의 어르신들 모두 의견이 없었기 때문에 외부 사람들이 좋게 봐주지 않는다고 해도 뭔 소용 있으랴!그 또한 두 사람의 자유였다.고현이 여자 분장하든 전호영이 여자로 분장하든 그건 그들의 자유였다.“전 대표님. 고 대표님.”별장 주인의 성씨는 송 씨로서 이름은 국호였다 그는 팔순이 넘었지만 정정하시고 강성 업계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송씨 가문은 업계에서도 명망이 꽤 높은 가문이다. 따라서 송씨 가문의 연회에 고현도 체면을 세워 주어 참석했다.“어르신.”두 사람 모두 예의 바르게 송국호에게 안부를 물었다.송국호는 웃으며 맞이했다.“고 대표님. 전 대표님. 안으로 들어오세요.”그는 두 사람을 별장 안으로 초대하면서 고현이 치마를 입은 모습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송씨 가문의 사람들은 송국호만큼 좋은 정신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고현을 가끔씩 힐끗 쳐다보았다.그들은 고현이 치마를 입은 모습이 남성 옷을 입은 것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고현은 도도하지만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평소 도도한 모습 때문에 그녀의 특유한 부드러움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고현이 치마로 갈아입고 여자로 변장하니, 마치 고현의 본래 모습인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고현이 여자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고현이 여자로 변장했지만, 그 분위기는 여전히 차가웠고 사람을 매혹하는 것도 여전했다.전호영은 고현의 손을 잡고 송국호의 안내로 화려한 별장 안으로 향했다.정원에 서 있던 사람들 전부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전호영 일행이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야 사람들은 정신을 차렸다.이때 어떤 재벌가 딸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저분이 정말 고 대표님이라고요? 내 눈이 멀어진 게 아니죠? 여자로 분장하시니 더 아름다워 보이는
고현이 남자로 분장하는 것이 얼마나 성공적이고 인상 깊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운전기사와 경호원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들은 고현은 분명 남자인데 전호영과 동성연애를 하고 있으니 전호영을 위해 여자로 분장한다고 생각했다.그들은 보기 싫어도 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고현이 원래 여자였다면, 다들 그들이 눈이 멀었다고 하지 않겠는가?그들이 8년을 따라다니던 대표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는 눈이 먼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다.경호원들이 한숨을 내쉬는 모습에 고현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고현은 자신이 여자 신분을 회복하여 모두를 놀라게 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다들 그녀가 전호영을 위해 여자 분장을 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아마도 머리를 길러야 할 것 같다고 여겼다.그녀의 긴 머리가 허리에 닿을 때면 사람들은 분명 그녀가 여자라는 것을 믿을 것이다..아니다. 나중에 사람들은 그녀가 전호영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여자로 변장하기 위해 긴 머리를 기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휴. 어차피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고현은 늘 여의치 않았다.어쨌든 그녀가 여자라는 진실을 말했으니 믿거나 말거나 사람들의 몫이었다.연회가 열리는 별장에 도착하자 별장의 주위에는 각양각색의 고급 차들로 가득 차 있었고 별장의 대문도 활짝 열려있었다.그리고 사람들이 별장 정문 앞에서 손님들의 주차를 도와주고 있었다.별장 안에는 오늘 저녁 연회에 참석하러 오신 손님을 접대하는 사람도 있었다.고현마저 체면을 살려 연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보면 오늘 저녁 연회가 엄청나게 크고 호화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회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모두 강성의 명망 있는 사람들이며 연회를 주최한 주인도 강성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그런 신분이 아니라면 고현도 체면을 새우 주지 않을 것이다.고현이 자주 타던 그 마이바흐 차는 강성 상류사회 사람들도 익숙히 잘 알고 있다.고현의 차가 다가오는 것을 보더니 입구에 있는 사람이 급히 마중 나와 운전 기사에게 별장 안에 주차 공간이 있으니
진미리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전화기가 꺼져도 찾아올 수 있잖아요. 우리가 낳은 사람이 원래 딸이잖아요. 두려울 게 뭐가 있어요.”말은 이렇게 했지만, 진미리는 결국 휴대전화를 꺼내 전원을 꺼버렸다.오늘 밤 연회에 참석하는 강성 상류층 사람들이 얼마나 놀랄지는 말할 것도 없고 고현의 경호원들과 고씨 가문의 노동자들도 고현이 치마를 입은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씨 가문의 집사는 수없이 말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 삼켜버렸다.경호원들도 멍한 정신 상태에서 정신을 차린 후,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도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하지만 경호원들이 전호영을 바라보는 눈빛이 매우 불만인 것으로 보면 그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아마 전호영이 고현을 비뚤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고현에게 여자 행세를 시켰다고 생각할 것이다. 전호영 이 나쁜 놈이 고현을 괴롭혀도 너무 괴롭힌다고 속으로 욕했을 것이다.하지만 고현과 전호영이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을 보면서 여느 사랑하는 연인들과 다를 바 없다고 느껴 경호원들은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경호원들은 고현은 이미 전호영에게 속아 넘어가 진정한 게이로 되었다고 여겼다.너무 아쉬웠다!고현처럼 훌륭한 회사 대표가 전씨 가문의 전호영에 의해 삐뚤어졌으니 이 얼마나 해를 끼치는 일인가!전호영은 신사처럼 고현을 위해 차 문을 열어 그녀가 차에 올라타도록 부축했다. 고현이 부축하지 않아도 된다는데도 전호영은 부축해야 한다고 고집했다.경호원들은 눈이 망가질 것만 같았다. 정말 전호영을 한바탕 때리고 싶었다.도도하고 카리스마가 넘쳤던 고현은 전호영으로 인해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이 안 되도록 망가지고 있었다.그나저나 고현이 치마로 갈아입으니 경국지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너무 아름다워 눈을 뗄 수조차 없었다.고현은 성격이 냉담했기에 여자로 변장하면 고귀하고 도도하게 보였다.그녀가 차에 올라타자마자 경호원들에게 나지막이 말했다.“호영 씨를 그렇게 노려보지 마세요. 마음속으로 호영
고현은 전호영의 팔짱을 끼고 핸드폰을 넣은 가방을 들며 전호영에게 말했다.“호영 씨, 우리 출발해요.”“경호원들과 함께 가시겠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당연하죠. 아니면 제가 고현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건데요?”분명히 그녀는 고현이지만 오늘 밤 여자 신분으로 연회에 참석하기 때문에 아마 많은 사람이 그녀가 고현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을 것이다. 경호원들을 거느리고 나타나야만 경호원들의 낯익은 얼굴을 통해서라도 그녀가 고현이라는 사실을 믿을 것이다.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밖으로 나갔고 꽃에 물을 주고 있던 고진호 부부는 두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고현이 여전히 자신이 고른 드레스를 입고 있는 것을 본 진미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딸의 짧은 단발머리를 보자 진미리는 결국 한숨을 쉬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가발을 그렇게 많이 샀는데 하나도 착용하지 않는다니... 휴.”진미리는 다시 고현의 발을 보았다. 고현의 치맛자락이 좀 길다고는 하지만 그녀가 걸을 때 무슨 신발을 신고 있는지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고현이 여전히 구두를 신고 있는 것을 본 진미리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입을 열었다가도 바로 삼켜버렸다.어쨌든 연회에 참석할 사람은 고현일 텐데, 다른 사람이 비웃어도 두려울 게 뭐가 있겠는가!미래의 사위도 개의치 않은데 진미리가 아무리 걱정해도 뭔 소용 있으랴!진미리는 못 본 척하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아저씨, 아주머니.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전호영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고 고현은 오늘 밤 치마를 입고 연회에 참석하려고 했다. 그녀는 더는 사람들이 전호영이 동성애자라고 뒤에서 비난하는 것이 싫었다.그녀는 그를 위해 치마를 입으려 했다!전호영은 드디어 고현이 그를 위해 여자의 신분을 드러내게 되는 날을 기다려 왔다.전호영이 기분 나쁠 리가 없었다.그는 헤벌쭉 입이 찢어질 정도로 웃었다.“그래, 다녀와.”고진호는 웃으며 말을 건넸다.두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고현이 입을 열었다.“호영 씨는 너무 뻔뻔스럽네요.”전호영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제가 뻔뻔스럽지 않았다면 고현 씨의 마음을 훔치지 못했을걸요. 우리 큰형을 따라 배웠거든요. 우리 형이 형수님에게 구애한 적 없지만 뻔뻔스럽게 자신의 미래 아내를 쫓아다녀야 한다고 저에게 말했거든요. 우리 큰형도 옛날에 체면을 중요시하게 여겼지만, 우리 형수님과 지내면서 점점 뻔뻔스럽게 되었어요.”전태윤 부부가 금방 결혼했을 때 많은 갈등이 있었고 냉전도 자주 했었다.전호영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감히 더 깊이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때로는 전태윤 부부가 싸움이 심해질 때면 전씨 할머니까지 나서야 했다.고현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전 대표님께서 호영 씨가 자신을 뻔뻔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아마 호영 씨는 이 세상에서 없어질지도 몰라요.”고현은 전씨 가문의 형제들이 맏형 전태윤을 유난히 존중했고 또 가장 두려워한다고 전해 들었다.전태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여전히 차갑고 도도한 모습이지만 하예정 앞에서는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전씨 가문은 형제들은 서원 리조트에서 함께 산 덕분에 사촌 형제지간일지라도 정이 아주 깊었다.따라서 맏형 전태윤의 지위도 높았고 그의 형제들도 그를 잘 따랐다.“큰형이 지금 여기에 없는데요 뭐. 그리고 제가 한 말도 사실인걸요. 우리 형도 형수님이 생긴 뒤로 뻔뻔해졌거든요. 우리도 따라 한 것뿐이에요.”고현은 여전히 웃으며 말을 건넸다.“호영 씨가 뻔뻔한 사실을 남에게 밀지 마세요. 그만하고 우리 얼른 가요. 호영 씨, 네가 오늘 제가 드레스 입고 하이힐을 신는다면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요? 제가 비웃음을 당해도 괜찮겠어요?”전호영은 그녀가 벗은 하이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제가 뭘 더 신경 쓰겠어요? 제가 언제 다른 사람이 비웃을까 봐 두려워했었나요? 저는 남들 시선이 두렵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사람이에요. 남들이 시선이 신경 쓰였다면 오늘 같은 달콤함도 없었을 거예요.”전호영은 다른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