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후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여자애에게 물었다.“너 혹시 삼장병 있니?”여자애는 입을 벌리고 소리를 내려 했지만, 온몸에 힘이 빠져 눈을 깜박이는 것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이 상황에 허연후는 여자애의 가방 속에서 약통을 꺼내 설명서를 보고서야 자기의 추측이 정확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그는 약통에서 알약 두 알을 꺼내 여자애에게 먹이고 진지하게 말했다.“너 지금 위급한 상황이야. 바로 병원 가야 해.”그리고 여자애를 품에 안고 차를 주차해둔 곳으로 달려갔다. 여자애는 허연후의 옷자락을 쥐고 젖먹
한지혜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우리 인우는 정말 착한 애라니까. 걱정하지 마. 누나는 이미 기분이 충분히 좋아졌어. 얼른 돌아가서 네 친구 만나러 가보자.”두 사람은 즉시 돌아가는 길에 들어섰다.병원에 도착해서야 두 사람은 허연후가 먼저 병원비를 대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인우가 허연후에게 연신 감사 의사를 표시하며 물었다.“허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병원비 얼마에요? 제가 보내드릴게요.”허연후는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반문했다.“고인우 씨는 그 여자애와 무슨 관계죠? 왜 이렇게나 도움을 많이 주시
보육원에서 데려왔다는 얘기를 듣자 허연후는 동작을 잠깐 멈추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동생 허가은도 보육원에서 입양된 아이였기에 그곳에 묘한 감정을 품었다.몇 년간 허씨 가문은 수많은 자선 활동을 통해 불쌍한 아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어주었다.허연후는 하지연이 불쌍하게 여겨져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집안 형편은 어떤가요?”고인우가 고개를 저으며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집안 상황이 아주 나빠요. 지연이 아버지께서는 도박하시다가 사람을 때려서 감옥에 갖혀 있어요. 그뿐만 아니라 엄청난 빚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연이
“저는 그냥 인우를 마음속에 묻어두고 싶어요. 저만 묵묵히 좋아하면 돼요. 절대로 알려주지 마세요. 인우가 알면 부담만 될 거에요.”하지연의 말을 듣고 난 한지혜는 그녀가 가엽기만 했다. 이렇게나 마음씨 착하고 일찍 철이 든 여자아이에게 비참한 인생이 주어졌다는 것에 불만을 느꼈다.한지혜는 안쓰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약속했다.“알았어. 인우에게는 비밀로 해줄게. 그보다 너에게 좋은 소식이 있어. 너를 도와준 그 의사 선생님 있잖아. 마침 심내과 의사 선생님이셔서 너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싶대. 그래서 네 치료비는 그분이
하지연이 울음을 터뜨리자 허연후는 동작을 멈추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심장병이 걱정되어 그래?”하지연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허연후의 잘생긴 얼굴을 바라보며 가벼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허 선생님, 팔에 남은 흉터는 어떻게 된 거예요?”“옛날에 동생이 얼음 구덩이에 빠져서 구하려다가 긁힌 거야. 근데 그건 왜 물어?”“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요.”하지연이 도리 머리를 치고 애써 웃음을 자아냈다.무슨 영문인지 그녀는 허연후의 흉터를 볼 때마다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린 것처럼 가슴 한구석에 아릿한 고통이 퍼졌
안 그래도 긴장해 있던 두 사람은 이 말 한마디에 넋이 나갔다.순간 세상이 멈춘 듯 심장도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10여 초가 지나서야 정신을 차린 육문주는 책상에 엎드려 컴퓨터 화면에 놓여있는 초음파 사진을 보며 물었다.“잘못 보신 거 아니죠?”“그럴 리가요. 확실해요. 여기 이것이 아기집인데 두 개잖아요. 쌍둥이인 게 확실해요.”확답을 받은 육 문 주는 감격에 겨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육문주는 조수아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숙여 입술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수아야, 들었어? 쌍둥이래. 여보, 당신 너무 대단하다. 쌍둥
곽명원은 웃으며 회답했다.[잘난 척은. B 시 전체가 너의 그 잘난 척을 다 담아내지 못할 지경이다. 하지만 수아 씨 체면을 봐서라도 축하하지. 너의 그 허영심을 만족시켜 줄게.]허가은의 응급처치를 마치고 문자를 확인한 허연우는 지친 몸을 이끌고 벽에 기대어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며 입가에 웃음을 띠고 문자를 보냈다.[너무 기뻐하지 마. 아직 일러. 둘 다 아들이면 너는 고생고생해서 키워놓고 미래의 아들 장모님한테 전부 빼앗기는 거야. 날 봐 봐, 아직 딸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너희 아들을 사위로 낚아왔잖아. 이런 게 재간인 거
허연후은 여동생이 어렸을 적 그림 그리기 좋아했었던 과거가 떠올랐다.항상 붓을 들고 허연후한테 그림을 그려주곤 했는데 그 모습이 서툴렀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웠다.매번 허연후가 허가은의 그림이 못생겼다고 놀려줄 때면 허가은은 웃으며 허연후의 목을 껴안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화내지 마. 내가 커서 그림 그리는 방법을 배우게 되면 오빠를 아주 멋지게 그려줄 거야.”하지만 허가은이 미처 크기도 전에 잃어버렸었다.허가은을 다시 찾았을 때는 이미 예전 여동생의 모습이라고는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허연후은 어릴 적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