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혜는 고인우에게 물을 건네주며 나긋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물었다.“얼른 물 마셔. 너 그러다 진짜 체하겠다.”고인우는 양 볼에 가득 찬 만두를 목구멍으로 넘기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물을 한껏 많이 마시고서야 비로소 만두를 전부 삼킬 수 있었다.허연후는 만두가 목에 걸려 힘들어하는 고인우를 보고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끌어올려 씩 미소 지었다.“더 드실래요? 제가 더 먹여 드릴게요.”한지혜가 미간을 찌푸린 채 허연후를 째려보며 경고했다.“인우 괴롭히지 마세요.”허연후는 무고한 척하며 자기가 상처받은 것처럼 억울한
허연후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여자애에게 물었다.“너 혹시 삼장병 있니?”여자애는 입을 벌리고 소리를 내려 했지만, 온몸에 힘이 빠져 눈을 깜박이는 것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이 상황에 허연후는 여자애의 가방 속에서 약통을 꺼내 설명서를 보고서야 자기의 추측이 정확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그는 약통에서 알약 두 알을 꺼내 여자애에게 먹이고 진지하게 말했다.“너 지금 위급한 상황이야. 바로 병원 가야 해.”그리고 여자애를 품에 안고 차를 주차해둔 곳으로 달려갔다. 여자애는 허연후의 옷자락을 쥐고 젖먹
한지혜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우리 인우는 정말 착한 애라니까. 걱정하지 마. 누나는 이미 기분이 충분히 좋아졌어. 얼른 돌아가서 네 친구 만나러 가보자.”두 사람은 즉시 돌아가는 길에 들어섰다.병원에 도착해서야 두 사람은 허연후가 먼저 병원비를 대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인우가 허연후에게 연신 감사 의사를 표시하며 물었다.“허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병원비 얼마에요? 제가 보내드릴게요.”허연후는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반문했다.“고인우 씨는 그 여자애와 무슨 관계죠? 왜 이렇게나 도움을 많이 주시
보육원에서 데려왔다는 얘기를 듣자 허연후는 동작을 잠깐 멈추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동생 허가은도 보육원에서 입양된 아이였기에 그곳에 묘한 감정을 품었다.몇 년간 허씨 가문은 수많은 자선 활동을 통해 불쌍한 아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어주었다.허연후는 하지연이 불쌍하게 여겨져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집안 형편은 어떤가요?”고인우가 고개를 저으며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집안 상황이 아주 나빠요. 지연이 아버지께서는 도박하시다가 사람을 때려서 감옥에 갖혀 있어요. 그뿐만 아니라 엄청난 빚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연이
“저는 그냥 인우를 마음속에 묻어두고 싶어요. 저만 묵묵히 좋아하면 돼요. 절대로 알려주지 마세요. 인우가 알면 부담만 될 거에요.”하지연의 말을 듣고 난 한지혜는 그녀가 가엽기만 했다. 이렇게나 마음씨 착하고 일찍 철이 든 여자아이에게 비참한 인생이 주어졌다는 것에 불만을 느꼈다.한지혜는 안쓰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약속했다.“알았어. 인우에게는 비밀로 해줄게. 그보다 너에게 좋은 소식이 있어. 너를 도와준 그 의사 선생님 있잖아. 마침 심내과 의사 선생님이셔서 너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싶대. 그래서 네 치료비는 그분이
하지연이 울음을 터뜨리자 허연후는 동작을 멈추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심장병이 걱정되어 그래?”하지연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허연후의 잘생긴 얼굴을 바라보며 가벼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허 선생님, 팔에 남은 흉터는 어떻게 된 거예요?”“옛날에 동생이 얼음 구덩이에 빠져서 구하려다가 긁힌 거야. 근데 그건 왜 물어?”“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요.”하지연이 도리 머리를 치고 애써 웃음을 자아냈다.무슨 영문인지 그녀는 허연후의 흉터를 볼 때마다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린 것처럼 가슴 한구석에 아릿한 고통이 퍼졌
안 그래도 긴장해 있던 두 사람은 이 말 한마디에 넋이 나갔다.순간 세상이 멈춘 듯 심장도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10여 초가 지나서야 정신을 차린 육문주는 책상에 엎드려 컴퓨터 화면에 놓여있는 초음파 사진을 보며 물었다.“잘못 보신 거 아니죠?”“그럴 리가요. 확실해요. 여기 이것이 아기집인데 두 개잖아요. 쌍둥이인 게 확실해요.”확답을 받은 육 문 주는 감격에 겨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육문주는 조수아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숙여 입술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수아야, 들었어? 쌍둥이래. 여보, 당신 너무 대단하다. 쌍둥
곽명원은 웃으며 회답했다.[잘난 척은. B 시 전체가 너의 그 잘난 척을 다 담아내지 못할 지경이다. 하지만 수아 씨 체면을 봐서라도 축하하지. 너의 그 허영심을 만족시켜 줄게.]허가은의 응급처치를 마치고 문자를 확인한 허연우는 지친 몸을 이끌고 벽에 기대어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며 입가에 웃음을 띠고 문자를 보냈다.[너무 기뻐하지 마. 아직 일러. 둘 다 아들이면 너는 고생고생해서 키워놓고 미래의 아들 장모님한테 전부 빼앗기는 거야. 날 봐 봐, 아직 딸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너희 아들을 사위로 낚아왔잖아. 이런 게 재간인 거
아림은 알 듯 말 듯 큰 눈을 몇 번 깜박이며 작은 두 손은 서로 손가락을 마주 대고 실망한 듯 말했다.“아쉽다. 아저씨처럼 좋은 남자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은데.”아림은 차서윤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은 채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위로했다.“엄마, 걱정하지 마요. 내가 꼭 더 좋은 남편을 찾아줄래요.”차서윤은 웃으며 말했다.“됐어. 얼른 씻고 자. 엄마는 해야 할 일이 있어.”침대에 혼자 누워 있던 아림은 생각할수록 이해가 되지 않아 곧바로 일어나 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침대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천우는 전화를 받자
10여 분 뒤, 송학진이 방문을 밀어젖히자 차서윤이 거울을 보며 피가 흐르는 머리를 수건으로 닦고 있었다.방안은 한바탕 싸움이 일어난 듯 물건들은 여기저기 널려있었고 아림은 차서윤의 곁에 서서 눈물을 글썽이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두 모녀의 안쓰러운 모습에 송학진은 가슴이 아파 곧바로 다가가 아림을 품에 안은 채 차서윤을 보며 물었다.“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누가 널 이렇게 때렸어?”차서윤은 놀라며 물었다.“송 대표님, 여긴 어쩐 일이에요?”“대답부터 해. 누가 이런 거냐고?”차서윤은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저의
송학진은 두 아이 때문에 어이없어 웃음이 나왔다.결혼을 빨리하라고 아버지한테 결혼 재촉을 받고, 친구들한테는 솔로라고 비웃음당하고, 이제는 두 아이가 대신해서 결혼 상대를 찾아주기까지 하다니.거기다 원 플러스 원?송학진은 육문주한테 눈길을 돌리며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이거 다 네가 가르쳐 준 거지? ”육문주는 가볍게 코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내가 가르쳤으면 내가 가르친 거라고 말을 하겠지. 네 조카야, 아직도 몰라? 천우는 말로 죽은 사람도 살려.”“내가 죽은 사람이라는 뜻이야?”“아니, 넌 사람 축에도 못 가지.
천우는 웃으며 말했다.“아림이가 삼촌을 무서워할까 봐 그런 거잖아요. 외삼촌, 이쪽은 제 친구 아림이라고 해요. 우리 아림이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치마를 사주고 같이 피자 먹어요.”송학진은 그제야 어린 소녀 쪽을 바라보았다.이목구비가 정교하게 생긴 여자아이는 살결이 희고 검고 반짝이는 큰 눈에는 어떤 아픔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여자아이가 좀 낯이 익다고 느껴진 송학진은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송학진은 허리를 굽혀 아림을 똑바로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그렇게 날 보고 있었어? 날 알아?”아림은 눈
육문주가 선생님 곁에 서 있던 아림이를 바라보자 어린 소녀는 바지가 흠뻑 젖어있었고 상의도 우유 때문에 얼룩이 져 있었다.등교 첫날부터 이런 문제를 일으키는 천우 때문에 육문주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그는 허리를 굽혀 아림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가 집에 가서 천우 혼내줄게. 그리고 새 옷 한 벌 사줘도 될까?”아림은 검고 반짝이는 큰 눈을 몇 번 깜박거리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천우 탓하지 마세요. 제가 동의해서 한 거예요.”육문주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
천우는 선생님의 손을 잡고 육문주와 조수아를 향해 손을 저으며 말했다.“엄마 아빠 잘 가요. 빨리 동생들 보러 가요. 나 이만 들어갈게요.”말을 마치고 천우는 돌아서서 선생님과 함께 떠났다.태연자약한 천우의 모습에 늘 냉정하던 육문주는 코끝이 찡해져 옆에 있던 조수아를 바라보며 목이 멘 소리로 말했다.“여보, 천우는 괜찮은데 왜 내가 슬프지?”조수아도 아쉬운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진 채 육문주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천우가 울지 않아서 다행이야. 만약 여기서 울고불고 난리 치면 우리가 마음 아파서 어떡해.”두 사람은 문
아이를 재우고 있던 육문주는 천우의 소리에 화를 내며 그를 노려보고 말했다.“쌍둥이들 겨우 잠들려 그러는데, 네가 소리 지르는 바람에 또 깼잖아.”쌍둥이들은 천우의 말을 알아들은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천우를 바라보며 작은 입을 헤벌리고 웃었다.천우는 다가가서 쌍둥이들의 손가락을 잡으며 말했다.“둘째야, 너는 형이 될 거고, 막내 너는 누나가 될 거야. 나는 또 동생이 하나 더 생기는 거야. 너무 기쁘지 않아?”방금까지도 잠이 들락 말락 하던 쌍둥이들은 천우의 말에 이불을 걷어차고 팔다리를 흔들어대며 마치 이 일을 기뻐하며
육연희는 또다시 배우진과의 아이가 생기자 마음이 기쁘면서도 어딘가 씁쓸했다.두 사람은 5년을 헤어져 있다가 결국 다시 만났고 이제는 아이까지 생겼다.오랜만에 느껴지는 행복감에 육연희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소리 없이 울고 있는 육연희를 본 배우진은 가슴이 아파 죽을 것만 같았다.몇 년 전에 잃은 그 아이 때문에 육연희가 혼자서 얼마나 힘든 나날을 보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배우진은 큰 손으로 육연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연희 착하지. 울지 마. 자꾸 울면 아이한테 안 좋아.
육연희의 이상한 행동에 배우진은 걱정스럽게 물었다.“연희야, 왜 그래?”육연희는 빨개진 눈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괜찮아. 최근에 아이스크림을 너무 많이 먹어서 위가 안 좋아졌나 봐.”배우진은 마음이 아파 육연희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으며 말했다.“내가 집에 없으니까 밥도 제대로 안 먹었나 보네. 앞으로 그러면 안 돼. 지켜볼 거야.”배우진은 육연희의 어깨를 감싸 안고 식당으로 들어가 의자를 끌어당겨 육연희를 자리에 앉혔다.장숙희는 육연희가 좋아하던 음식을 한 상 차려놓고 간장 게장을 육연희의 앞에 가져다 놓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