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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5 화

Penulis: 달코
조수아는 민첩하게 옆으로 몸을 비켜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 조금이 그녀의 발등을 덮치고 말았다. 발등이 얼얼해지는 통증에 저도 모르게 헛숨이 들이켜졌다.

고개를 들어 송미진에게 따지려던 조수아는 등 뒤에 있는 유리 선반을 향해 몸이 기우뚱거리고 있는 송미진을 발견하고 본능적으로 그녀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송미진은 그것을 뿌리치며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와장창!

깨진 유리에 팔뚝이 그인 송미진이 피를 주르륵 흘렸다.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선혈을 뒤로하고 육문주의 싸늘한 음성이 날아왔다.

“조수아, 이게 뭐하는 짓이야!”

육문주는 커다란 몸짓을 날래게 움직여 송미진의 곁으로 튀어가 그녀를 부축했다.

“괜찮아?”

창백하게 질린 송미진의 얼굴에 어느샌가 눈물로 흥건했고 두려운 듯 입술이 움칠움칠거렸다.

“문주 오빠, 조 비서님한테 뭐라고 하지 마요. 다 제 탓이에요. 제가 실수로 커피를 조 비서님한테 흘렸는데, 조 비서님이 제가 고의로 그런 줄 알고 저를 살짝 민다는 게 힘이 생각보다 많이 실려서 그런 거예요.”

조수아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을 모함하기 위해 본인의 몸마저 스스럼없이 자해하는 모습에 깜짝 놀란 조수아가 얼른 해명했다.

“제가 민 게 아니라 송미진 씨가 스스로 넘어진 거예요!”

육문주의 차갑게 식은 눈빛이 조수아의 몸을 아래위로 훑었다가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발등으로 향했다가 곧바로 떨어졌다.

“이따가 돌아와서 다시 두고 보자!”

송미진을 가뿐하게 들어올린 그는 빠른 걸음으로 탕비실을 나갔다.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조수아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그녀가 7년이나 사랑한 남자는 송미진과 자신을 두고 언제나 송미진의 편이었지 그녀의 말을 믿어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게 이제 기억났다.

노련하게 제 감정을 정리한 조수아는 절대 송미진의 꾀에 넘어가지 않겠다 다짐했다. 이미 육문주와 헤어진 마당에 이제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만, 이런 식의 모함은 조수아는 절대 참을 생각이 없었다.

조수아는 동료 직원인 이 비서를 찾아가 기술부에 있는 그녀의 남자친구에게 부탁해 방금 전 CCTV 녹화 영상을 복제해 줄 수 없냐며 부탁했다. 그것으로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조치를 마친 뒤 조수아는 곧바로 이번 사건에서 벗어나 다시 긴장된 회의준비로 바삐 돌아쳤다.

육문주와 진영택이 모두 자리에 없었고 나머지 회의 참석 인원들은 이미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의 정기회의는 할 수 없이 그녀가 직접 주관해야 했다.

조리 정연하게 각 부서에서 제기한 문제들을 기록하고 이번주에 해결해야 될 문제점들을 꺼내 각자 토론하는 자리가 육문주의 부재로 인해 비교적 경쾌한 분위기에서 마무리 되었다.

회의가 끝나고 몇몇 사람들이 남아 조수아의 유능함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대표님과 찰떡 궁합을 자랑하는 그녀에게 앞으로 자신들의 사모님이 될 수도 있지 않겠냐며 유쾌하게 장난을 걸어왔다.

사람들의 아첨에 조수아는 시종일관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저희는 그저 일적으로 함께 협력하는 관계이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닙니다. 그리고 저 곧…”

퇴사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회의실 문이 쾅! 하고 누군가의 발길질에 열렸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육문주가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처럼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으며 조수아를 향해 걸어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웃음 소리로 가득했던 회의실이 순식간에 숨도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사람들이 육문주를 향해 인사를 해왔다.

그러나 육문주는 그런 사람들이 눈에도 안 들어오는 듯 커다란 손으로 조수아의 손목을 붙잡고 살벌한 얼굴로 명령했다.

“따라와!”

조수아를 끌고 회의실을 나온 그는 그녀를 질질 끌고 가는 와중에도 아직 울긋불긋하게 달아올라 있는 조수아의 발등을 내려다 보더니 좋지 못한 말투로 으르렁거렸다.

“멍청하기는.”

곧바로 조수아를 안아든 육문주는 성큼성큼 주차장으로 향한 뒤 조수석에 그녀를 앉혔다. 그리고 앞쪽 글로브박스를 열어 아직 개봉조차 않은 화상 전용 연고를 꺼내 들었다.

뚜껑을 연 육문주는 연고를 짜내 손에 덜은 후 조수아의 발등에 조심스레 발라주기 시작했다. 딱딱하게 굳은 미간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조수아는 많이 아픈지 고운 눈썹을 찡그리며 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손가락마저 움칠움칠 굽어드는 모습에 육문주는 손끝에 힘을 더 빼고 빠진 데 없이 꼼꼼히 데인 상처에 연고를 발랐다. 그러고는 한쪽 눈썹을 들어 웃을 듯 말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이렇게 둔해서야 정말 날 떠나서 잘 살 수 있겠어?”

무릎을 펴고 선 그는 연고를 조수아의 품에 던지며 말했다.

“아침 저녁으로 한 번씩 발라주고 물 묻히지 마. 제대로 안 발랐다가 흉져서 울면서 나한테 찾아오지 말고.”

눈매를 드리운 조수아가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답했다.

“살 수 있는지 없는지 시험해보면 알지.”

육문주는 고집스레 앙다문 입술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투정 부리는 건 뭐라고 안 하는데 왜 송미진까지 괜히 끌어들여. 걔 우울증 있는 거 몰라서 그래? 너한테 위협되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도 왜 내 말 못 믿어.”

고마운 마음이 조금이나마 생겼던 게 그의 한 마디에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문주 씨,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 송미진 씨 민 적 없어. 그 여자 일부러 넘어지고 나한테 죄를 뒤집어 씌운 거야. 못 믿겠으면 감시카메라 돌려보던지.”

“나 그렇지 멍청하지 않아. 하지만 송미진은 혈액응고장애도 있고 또 Rh식 혈액형이라서 피를 많이 흘리면 안 돼. 아까 병원에서 연락 왔는데 지금 혈액 창고에 재고도 없어서 네가 가서 헌혈해야 돼. 그러면 송 씨 가문에서 너한테 피해 주지 않게 내가 조치하고 이 일은 이쯤에서 그만두는 걸로 해.”

원래는 쿡쿡 찌르는 정도로만 아팠던 가슴이 이제는 생으로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너무 아프다 못해 숨까지 쉬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육문주가 지금 자신을 끌고 송미진한테 헌혈하러 가려고 한다. 지난주에 방금 유산 수술을 마치고, 수술 도중에 과다 출혈로 인해 아직까지도 한약을 먹으며 몸조리를 하고 있는 자신을 말이다.

조수아는 육문주를 쳐다보며 얼굴을 흐렸다.

“내가 만약 지금 피를 헌혈할 몸이 못 된다고 하면? 그래도 나 억지로 끌고 갈 거야?”

“너 신체검사 결과보고서 아무 문제 없잖아. 그리고 고작 400CC 헌혈하는 걸로 몸에 별로 영향도 없어. 너한테 책임이 있든 없든 송미진의 아버지가 이번 일로 대노해 조 씨 가문에 손을 쓰게 되면 나도 그걸 못 막아.”

조수아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유산으로 피를 그렇게나 많이 흘렸을 때는 전화도 받지 않다가, 송미진이 고작 팔을 베었다고 저렇게 호들갑을 떨며 조 씨 가문까지 들먹이는 육문주의 꼴을 보니 조수아는 더 이상 실망할 게 없다 생각했는데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400CC는 몸에 크게 무리가 없겠지. 그럼 2000CC는 어떨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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