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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 화

작가: 달코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조수아, 내가 네 투정 안 받아줬다고 내 아이를 지웠다고 말하는 거야, 지금? 너 그렇게 맘이 독한 여자인줄 오늘 처음 알았네?”

조수아가 핏발선 눈으로 노려봤다.

“내가 안 그랬어! 아이를 죽인 건 당신이야!”

“여기에 적힌 거 안 보여? 어디서 궤변이야!”

“그거 다른 사람이 기록을 일부러 고쳐놓은 거라면 믿겠어?”

육문주는 손에 힘을 풀고 그녀의 새하얀 목을 수놓은 키스마크를 보며 가슴이 찔리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조수아는 제가 7년을 사랑하고, 3년을 옆에서 아낌없이 살펴준 남자를 처량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자신의 말을 한번도 믿어준 적이 없는 육문주의 행태에 증오심이 가득 차올랐다.

“문주 씨 다행이라고 여겨야 되는 거 아냐? 내가 아이를 빌미로 당신이랑 결혼하겠다고 억지를 부리지 않아서 말이야.”

“허황된 생각만 하는군. 애가 아직 살아있었어도 너랑 결혼하는 일은 없었을 거야.”

조수아야말로 아이가 없어진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나았어도 한평생 혼외자식이라는 별명을 달고 살았겠지, 아마.

조수아는 결연한 눈빛으로 육문주를 바라봤다.

“내가 당신 가문이랑 엮이기 싫어서 그랬어. 당신 같은 아빠를 두지 않게 하려고 애를 지운 거야. 이렇게 얘기하면 만족해?”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고통스럽다며 아우성을 질렀다. 육문주는 한번도 지금처럼 이렇게 화난 적이 없었다.

주먹을 들어 벽을 향해 내리꽂자 살갗이 벗겨지며 피가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지옥에서 걸어나온 것 같은 악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조수아, 너 나한테 빚진 거다.”

문을 차고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송미진이 작게 종종걸음을 치며 그의 뒤를 따라나왔다.

“문주 오빠, 오빠 많이 다쳤어. 내가 상처 치료해줄게.”

송미진이 아무리 뒤에서 애원해도 육문주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주차장까지 직진으로 내려간 그는 차에 올라 시동을 켜고 그대로 떠났다.

그의 머리속에는 온통 조수아가 두 사람의 아이를 지웠다는 생각으로 가득찼다.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아이조차 그렇게 험하게 대할 정도로 여자의 마음이 얼마나 악독한 건지.

핸들을 쥔 손에 힘이 실리면서 액셀을 밟는 다리에 또한 가속이 붙었다.

벽에 묻은 피를 한번, 그리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조수아를 한번씩 번갈아 쳐다본 허연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신파극도 두 사람의 모습처럼 격렬하지는 않겠네요. 서로 성질을 죽이고 얘기를 잘 해보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어요?”

땅에 떨어진 수술기록지를 힐끔 본 허연후가 계속해서 말했다.

“문주 말이 맞아요. 병원의 데이터는 아무나 못 고쳐요. 어떻게 된 일인지 저한테 얘기해 줄래요? 제가 대신 알아볼게요.”

조수아의 눈가의 맺힌 눈물이 끝내 흘러넘쳐 볼을 타고 내려왔다. 눈물을 훔친 그녀는 싸늘하게 식은 가슴을 부여잡고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라도 지키고 싶어서 한 말이었다. 자신을 마음에 담아 둔 적 없는 남자한테 증거를 굳이 찾아내서 결백함을 증명해도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라진 아이가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육문주는 일말의 동정도 내비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조수아는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 밖을 나섰다. 그때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전화를 받자 연성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선배.”

스피커 너머의 목소리가 초조한 기색을 띠었다.

“수아야, 아저씨 지금 정신을 잃고 쓰러졌거든? 빨리 이쪽으로 와봐야 될 것 같아.”

아직 육문주가 준 상처에서 벗어나오지도 못했는데 들려온 아버지의 위중 소식에 조수아는 머리가 새하얘지며 걸음걸이가 비틀거렸다.

그녀를 지켜보던 허연후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

“왜요, 조수아 씨 아버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겼답니까?”

조수아는 그제서야 허연후가 아버지의 주치의임을 상기해내고 얼른 말했다.

“저희, 저희 아버지가 지금 쓰러졌대요.”

“저랑 같이 지금 당장 가봅시다.”

반 시간 후, 응급실에서 나온 허연후가 마스크를 벗으며 말했다.

“당장은 위험상황에서 벗어났지만 경과가 아직 낙관적이지 못합니다. 지난번에 환자분께서 받으셨던 심장판막치환술이 제대로 된 회복이 안 된 상태에서 감염이 일어난 상황입니다. 병원에서 며칠 더 경과를 지켜보고 정 안 되면 수술을 다시 한 번 받아보셔야 할 것 같아요. 제가 다른 전문의랑 회진을 더 할 테니까 걱정 마세요.”

하얗게 질린 조수아가 간신히 감사인사를 건넸다.

허연후가 낮게 웃으며 답했다.

“전 의사입니다. 환자를 살리는 건 제 의무이죠. 그 개자식이랑은 전혀 상관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요.”

조수아는 억지로 웃어보였다.

“알아요. 그래서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아니에요. 감사인사는 조수아 씨 아버님께서 깨어나신 뒤에 밥 한 끼 사는 걸로 대신하죠.”

“네.”

“그럼 환자분께서 심리적인 자극을 받지 않게 옆에서 잘 지켜드리세요. 감정적으로 너무 큰 파동이 일게 되면 병세 호전에 안 좋습니다.”

허연후가 떠난 후 조수아는 아버지의 침대 앞에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병세 가중에 의문을 표했다. 옆에 있던 연성빈을 향해 조수아는 질문을 던졌다.

“선배, 우리 아빠 혹시 전에 누구 만났나요?”

연성빈이 굳은 미간으로 답해왔다.

“내가 여기 왔을 때 송미진 그 여자가 마침 병실에서 나왔었어. 내 생각에 그 사람이 아저씨한테 네가 유산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조수아는 주먹을 움켜쥐며 살벌한 눈빛을 빛냈다.

아버지는 그녀를 언제나 금이야 옥이야하며 키웠었다.

그런 아버지가 같은 날에 무려 자신의 딸이 제 가족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육문주에게 3년이나 애인노릇을 하고, 그리고 유산까지 했었다는 뼈아픈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번이나 연속으로 이어진 타격을 신체가 허약하신 아버지가 버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타이밍 맞춰 자신의 아버지한테 이 모든 사실을 폭로하고, 육문주한테 가짜 수술기록지까지 갖다바치는 송미진에 조수아는 진절머리가 났다.

벼랑끝까지 내몰린 그녀는 속으로 송미진의 이름을 되새기며 칼을 갈았다.

한편, 나이트바 안.

송미진은 완벽한 전승을 경축하고 있었다.

성공적으로 육문주가 조수아를 미워하게 만들고, 조수아의 아버지가 더 위독하게 만들고, 또 조 씨 가문의 사업까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으며, 송미진은 이번에야 말로 조수아가 어떻게 빠져나오는가 두고보자며 흐뭇한 마음을 즐겼다.

‘그러게 누가 내 남자를 뺏으래?’

송미진의 눈동자가 표독스럽게 변하며 입가에 경멸의 웃음이 떠올랐다.

화장실에 들른 그녀는 마침 세면대에 대고 토를 하던 조수아를 발견하고는 혀를 끌끌 차며 조롱했다.

“저런, 아이도 다 없어졌는데 설마 입덧하는 거야? 참말로 안타깝군. 창자까지 다 게워내도 문주 오빠가 당신을 마음아파 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러게 누가 애를 지우랬어?”

조수아는 오늘 아버지의 회사를 살리려고 이곳에 거래처 사람을 만나러 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작정하고 그녀한테 술을 들이붓는 탓에 조수아는 지금 과음한 상태였다.

여기에 더 최악인 것은 화장실을 오며 어떤 룸 앞을 지나갈 때, 안쪽에서 들려온 육문주와 다른 사람의 대화내용이었다.

육문주는 제 친구들한테 조수아는 그저 제가 잠시 갖고 논 장난감이었으며, 한 번도 그녀를 사랑한 적이 없었노라 말했다.

거기에서 충격을 받고 이제 화장실에서까지 송미진이 찾아와 시비를 걸자 조수아는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그쪽이 사람 시켜서 제 수술기록을 고치고 우리 아빠한테 제가 유산했었던 사실을 이른 거죠?”

송미진이 그게 뭐 어쨌냐는 듯한 얼굴로 웃었다.

“그래. 그래야 문주 오빠가 당신을 버리고, 그쪽 집안도 엉망진창으로 무너질 테니까. 그러게 누가 주제를 모르고 내 남자를 뺏으라고 했어? 난 분명 문주 오빠한테서 떠날 기회를 줬어. 근데 당신이 내 말을 안 들었잖아. 그럼 내가 무슨 짓을 하든 그걸 감수해야지.”

천천히 조수아에게로 다가가던 송미진이 의기양양한 얼굴을 했다

조수아는 이가 갈렸지만 겉으로는 차갑게 웃어보였다.

“송미진 씨, 사회생활을 하면서 본인이 저지른 짓을 언젠간 그대로 갚아야 된다는 소리 들어본 적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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