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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3 화

Penulis: 달코
손목을 덥석 잡아오는 조수아의 행동에 송미진은 아파서 눈을 찡그렸다.

“내 손 아직 다 안 나았어. 감히 내 몸에 손 대기만 해 봐. 배로 돌려줄 테니까!”

차가운 조소가 흘러나왔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은 두려울 것도 없다는 거 몰라요? 그렇게 몇 번이고 자꾸 시비를 걸어오는데, 거기에 응해주지 않으면 송미진 씨한테 너무 미안하잖아요. 저 때문에 팔 다친 걸로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하지 못하게 됐다면서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더 완벽하게 망가지는 게 오히려 더 나을지도 모르죠.”

말을 마침과 동시에 우둑, 하는 소리와 함께 송미진의 귀를 찌를 듯한 비명이 튀어나왔다.

“꺄아! 조수아, 너, 너 지금 내 손 부러트렸어? 내 손이 얼마나 비싼 손인지 모르는구나, 너! 니네 가문의 모든 재산을 다 탈탈 털어도 내 손 못 갚아내!”

“잘 됐네요. 어차피 갚을 생각도 없었으니까.”

다시 한 번 손에 힘을 주자 또 다른 손가락에서 우둑, 하는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한 번도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송미진은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눈물을 연신 흘려댔다.

“너 두고 봐. 나 절대로 너 가만 못 둬!”

조수아는 천천히 손에 힘을 풀며 음산하게 웃었다.

“나도 경고하는데 다신 날 건드리지 마. 아니면 나도 다음번엔 너한테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어.”

송미진을 뒤로 밀치며 조수아가 윽박질렀다.

“꺼져!”

뒤로 연거푸 밀려난 송미진은 극심한 통증에 말이 안 나왔다. 잠시 조수아를 마주 노려본 그녀는 뒤돌아서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초라하게 뒤꽁무니를 내빼는 송미진을 보며 조수아는 답답했던 속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육문주고, 송미진이고 다 저리 가라 그래! 날 화나게 만들면 상대가 누구든 덤벼버릴 거야!’

조수아는 이곳 화장실의 감시카메라가 고장났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번에 송미진이 자신을 고소하려고 해도 증거를 찾을 수 없을 것이었다.

억울하게 당하고만 있어야 되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송미진에게 직접 겪어보게 할 생각이었다.

화장실을 나서려던 조수아는 문득 머리가 어질해지며 눈앞에 별이 반짝였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해 저혈당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세면대에 손을 짚고 가방에서 사탕이라도 꺼내 먹으려고 손을 더듬거려 봤지만, 가방에 손이 닿자마자 조수아는 통제력을 잃고 뒤로 몸이 기우뚱거렸다.

이번에는 영락없이 대자로 바닥에 드러눕겠다 생각하던 찰나, 단단한 몸이 그녀의 뒤에 나타나더니 그녀를 안정적으로 안아들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흘러들어왔다.

“조수아, 괜찮아?”

조수아는 흐릿한 눈빛으로 육문주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러다 그가 있던 룸을 지나치면서 들었던 말이 또 생각나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육문주는 그녀를 안아들어 세면대 위로 앉히더니 질책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라 그랬어.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거야?”

낮아진 음성과 함께 남자의 손끝이 조수아의 눈꼬리를 다정하게 훔쳤다.

“나랑 같이 돌아가자. 그럼 모든 게 다 원래대로 돌아갈 거고, 너도 이렇게 힘들어하지 않아도 돼.”

방금 전 허연후를 포함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던 그는, 친구들한테서 조수아가 아이를 지운 게 남모를 사연이 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며, 혹시 조수아를 오해하고 있는 거 아니냐는 조언을 들었었다.

조수아는 고개를 돌려 처지려던 눈매를 감췄다. 육문주를 밀어낸 그녀가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야. 이거 놔.”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그녀가 아무리 밀어내봤자 잔뜩 삐진 고양이처럼 솜방망이를 휘두르는 걸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육문주는 그녀의 입술을 지그시 누르며 눈빛을 어둡게 빛냈다.

“내가 다른 남자한테 술이나 부으며 살라고 널 3년이나 아낀 줄 알아? 조수아, 이번 한 번만 좀 고집을 꺾어 봐. 그럼 예전의 일은 모두 다 없던 걸로 해줄게.”

조수아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 절대 안 돌아갈 거야. 그러니까 그만 포기해.”

다시 한 번 그를 밀어내며 내려서려던 조수아는 갑자기 몸에 힘이 풀리며 맥없이 육문주의 품에 쓰러졌다.

“조수아!”

육문주는 아까부터 계속 제 가방을 향해 손을 허우적거리던 그녀의 손을 보며 무슨 상황인지 깨달았다.

조수아의 이마에 딱밤을 날린 육문주는 허탈한 마음에 중얼거렸다.

“너 진짜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고작 자신을 떠난지 며칠이나 됐다고, 툭하면 다치고 저혈당까지 와서 이렇게 맥을 못 쓰는 거야. 자신이 마침 이곳에 있지 않았더라면 조수아가 어떻게 됐을지 육문주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녀의 가방을 뒤져 사탕 하나를 찾아낸 육문주는 포장지를 까서 조수아의 입에 넣어준 뒤 다정하게 물었다.

“이제 좀 괜찮아졌어?”

조수아는 한참을 가만히 있은 후에야 조금씩 몸에 힘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세면대에서 뛰어내려 밖으로 향하려는데 뒤에서 뻗어나온 손이 그녀를 가로로 안아들었다.

“내려줘.”

육문주는 품에 안긴 사람이 어떻게 발버둥치든 아랑곳 않고 조수아가 나왔던 룸으로 그녀를 안고 들어갔다.

룸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곧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

“육 대표님께서 여긴 어쩐 일로?”

육문주는 조수아를 소파에 내려놓으며 싸늘한 눈빛으로 룸에 있던 사람들을 빠짐없이 훑어봤다.

“방금 조수아한테 술 먹인 놈 누구야?”

제 발 저린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최근에 조 씨 가문이 많이 어렵다고 해서 이틈에 예쁘게 생긴 조수아를 어떻게 해볼까 해서 술집으로 불렀던 그들이었다.

아무도 말을 않자 육문주는 곁에 있던 술집 직원한테 물었다.

“잘리기 싫으면 방금 내 물음에 사실대로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육문주는 B시에서 모두가 건드리기 무서워하는 최상급 재벌 가문의 후계자였다. 그는 충분히 말 한 마디로 사람 하나를 매장시키거나 다시 기사회생 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술집 직원이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조아리며 답했다.

“방금 여기 계신 여성분께서 총 열 잔의 술을 마셨는데요. 그중 석 잔은 장 대표님과, 두 잔은 이 대표님과, 나머지는 손 대표님과 마셨습니다.”

지명 당한 사람들이 연신 사과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육 대표님. 저희는 조수아 씨가 대표님 사람인 줄 모르고 그랬어요. 사과의 의미로 저희가 벌주 석 잔을 각각 마시겠습니다.”

말을 마친 남자들은 허겁지겁 잔에 술을 따르며 석 잔을 연달아 목구멍에 털어넣었다.

다 마신 사람들이 술병을 내려놓으려 하자 육문주가 살벌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동작 멈추라고 그랬어?”

남자들은 깜짝 놀라 다시 술잔에 술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육문주의 협박속에서 남자들은 마침내 술에 꽐라되어 소파에 널브러지고 말았다.

조수아의 곁으로 걸어간 그는 탐스러운 입술에 쪽하고 입맞춤을 한 뒤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너 대신 내가 복수했어. 이제 나랑 같이 집에 갈 거지?”

남자의 따뜻한 숨결이 조수아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칠흑같은 눈동자가 빛을 잘게 부숴 반사했다. 매력적인 입술이 예쁘게 호도를 그렸고, 목울대가 섹시하게 아래위로 꿀렁였다.

육문주는 그녀의 답을 기다리며 다시 한 번 입술을 내렸다.

“나랑 같이 돌아가자. 아이가 없어졌으면 다시 가지면 되지.”

자조 섞인 웃음이 조수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다시 그 집으로 들어가서 당신 장난감이 돼라고?”

육문주의 눈동자가 멈칫했다.

“다 들었어?”

“미안. 지나가다 우연히 듣게 된 거야. 난 내가 장난감인 줄도 여태 몰랐었네? 어쨌든 내 역할이 뭐였든 간에 다시 돌아갈 생각 없으니까 부디 나 좀 이대로 놓아줬으면 좋겠어.”

한마디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조수아는 심장이 떨려 미칠 지경이었다. 아무런 파문도 보이지 않는 눈동자 밑에 얼마나 격한 감정이 소용돌이 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었다.

육문주가 뭐라고 입을 떼려는데 룸의 문이 활짝하고 열렸다.

송미진이 검은색 롱치마를 입은 채 문가에 나타났다. 손에는 어느새 간단한 처치가 이루어져 있었다.

두 사람의 다정해 보이는 모습에 송미진은 조수아를 향해 속으로 욕을 지껄이며 겉으로는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문주 오빠, 조 비서님이 내 손가락 두 개를 부러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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