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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4 화

작가: 달코
송미진은 다친 손을 들어 육문주에게 보여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방금 전에 조수아에게 당한 뒤로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가 응급처치를 받고, 한시도 지체없이 다시 이곳으로 달려왔는데 이런 장면을 목격할 줄 송미진은 몰랐다.

‘조수아가 아이를 지웠다는데도 왜 그렇게 그녀를 다정하게 대해줘? 내가 겨우 골머리를 앓아 생각해낸 방법이 결국 또 실패인 거야?’

송미진은 훌쩍이며 슬금슬금 육문주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그녀가 가까이 붙기도 전에 육문주가 조수아를 뒤로 숨기며 몇 걸음 물러섰다.

“그게 무슨 소리야. 조수아 여태까지 계속 나랑 같이 있었는데.”

그의 발언에 송미진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렁그렁한 눈이 육문주에게 향했다.

“아니에요. 조 비서님 아까 전에 화장실에서 제 손가락 부러트렸단 말이에요. 진짜예요. 못 믿겠으면 감시카메라 영상 돌려보면 되잖아요.”

육문주는 곁에 멀뚱멀뚱하게 서있던 술집 직원한테 지시했다.

“들었지? 가서 감시카메라 영상 가져와 봐.”

10분 뒤, 나이트바 사장이 직접 찾아와 사과를 해왔다.

“죄송합니다, 육 대표님. 방금 확인했는데 화장실 감시카메라가 고장 나서 아무것도 못 찍었습니다.”

송미진은 눈에 불을 켜며 조수아를 가리켰다.

“분명 조 비서님이 일부러 그런 걸 거예요. 먼저 제 손을 부러트리고 그 다음 감시카메라 영상을 지운 게 틀림없어요. 지난번에 회사에서 그랬던 것처럼요.”

조수아의 입에서 가벼운 웃음이 흘렀다.

“송미진 씨, 제가 설마 똑같은 방법을 두 번이나 썼겠습니까?”

“이… 문주 오빠, 조 비서님이 제 손 부러트린 거 맞아요. 제발 저 믿어주세요.”

“난 확실한 증거만 믿어. 내가 방금 조수아가 계속 나랑 같이 있었다고 그랬잖아. 그런데 조수아가 어떻게 너한테 손을 댔겠어. 다음 번에 누군갈 모함하려거든 제대로 된 핑계를 대.”

조수아를 이끌고 육문주가 사라지자 송미진은 바닥에 발을 구르며 씩씩거렸다.

당장 조수아를 끌어내리려고 응급처치를 끝내자마자 돌아왔더니만, 감시카메라 영상도 없고 육문주도 어쩐 일인지 나서서 조수아를 감싸고 도는 탓에 송미진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대체 무슨 수법으로 문주 오빠를 단단히 홀렸지?’

송미진은 절대 조수아를 가만두지 않겠다 다짐했다.

한편, 조수아는 자신을 끌고 본인이 있던 룸으로 걸어가려던 육문주의 손에서 벗어나며 말했다.

“우리 아빠가 아직 병원에서 날 기다리고 있어. 그래서 가봐야 돼.”

육문주는 단번에 그녀를 끌어안으며 미간을 찡그렸다.

“내가 방금 그렇게 쉴드 쳐줬는데도 이렇게 가겠다고? 들어가서 좀 앉아있다가 가. 이따가 내가 병원에 데려다줄게.”

“싫어. 장난감 따위가 인간들이랑 어떻게 같이 앉아 놀겠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고작 장난으로 한 말에 끝까지 트집을 잡으며 제멋대로 구는 조수아의 모습에, 육문주는 조만간 그녀를 혼내줘야겠다며 생각했다.

술집에서 나온 조수아는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혼자 목적없이 발걸음을 옮기던 그녀는 어느새 그때의 그 요양원 앞까지 걸어오게 되었다.

가로등 아래에 선 그녀는 아담하게 지어진 프랑스식 저택을 보며 물밀 듯이 밀려오는 7년 전 기억에 몸을 맡겼다.

조수아가 너덜너덜해진 육문주를 봤던 게 바로 이곳에서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녀는 남자의 곁을 지키면서 그를 도와 어둠속에서 차츰차츰 한발자국씩 밖으로 걸어나왔었다.

순진한 그녀는 하늘이 육문주라는 사람을 자신한테 내려준 줄로만 알았다.

조수아는 두 사람이 서로의 구원이고, 서로의 인생속 제일 밝은 빛이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3년 전 육문주가 생명의 위협도 무릅쓰고 그녀를 구해줬을 때, 조수아는 한평생을 바쳐 이 남자를 사랑하겠노라 묵묵히 결심했었다.

그때의 그녀는 자신의 소중한 감정이 육문주의 눈에는 그저 갖고 놀기 딱 좋은 장난감처럼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나뭇잎이 우거진 나무 아래에 서서 물끄러미 눈앞의 정경을 눈에 담았다. 지나간 아름다운 옛 추억이 조수아의 심장을 칼로 후벼팠다.

‘더는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지 않을 거야. 이곳에서 있었던 모든 기억들을 다 잊어야 해.’

조수아는 목에 걸린 두 개의 반지를 벗어서 손바닥에 올렸다. 뜨거운 눈물이 반지 위로 떨어지며 젖어갔다.

쓰게 웃은 그녀는 쭈그리고 앉아 나무 밑에 구멍을 파서 반지를 그 안에 파묻었다. 반지를 덮으면서 점점 사라져가는 두 사람의 심장박동을 보며, 조수아는 어깨를 끊임없이 들썩였다.

조수아는 병원과 회사를 오가며 바쁜 나날을 연달아 며칠 보냈다. 아버지의 병세도 어느 정도 안정되고 회사도 다시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퇴근 후 연성빈과 한지혜와 만나 밥이나 먹을까라는 생각에 그녀는 차를 몰고 주차장을 나서다가 얼마 못 가 휘청거리며 그녀의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던 한 할머니를 발견하고 급하게 급정거했다.

다행히 차는 제때에 멈춰 섰지만 그럼에도 할머니는 바닥에 넘어졌다. 그것도 조수아의 차 앞바퀴 옆에 붙어서 말이다.

조수아의 첫 번째 반응은 ‘아, 이거 공갈사기구나.’ 였다.

망설임 없이 휴대폰을 꺼내 경찰에 신고하려던 조수아는 밖에서 들려오는 할머니의 신음소리에 차마 마음이 모질지 못해 차에서 내려 할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무릎을 꿇어앉은 그녀는 다정하게 걱정의 말을 꺼냈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구급차 불러 드릴까요?”

할머니는 충격이 큰지 바닥에 주저앉아 겁먹은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며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고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이 옆에서 한 마디씩 보탰다.

“아가씨, 내비 둬. 딱 보니까 부딪힌 척 연기해서 돈 뜯어내려는 것 같은데. 아가씨 차에 스치지도 않았는데 넘어진 게 이상하잖아.”

“제 차에 블랙박스 있어서 증거 다 있으니까 괜찮아요. 그래도 넘어지셨는데 병원에 가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연세도 많아 보이시는데 어디 부러지기라도 하면 안 되잖아요.”

사람들의 만류에도 조수아는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서 전신검사를 했다. 다행히 약간 껍질이 벗겨지고 혈압이 조금 높은 것 외에 할머니는 아주 건강했다.

조수아는 할머니한테 드실 것도 사다드리고, 마실 것도 챙겨 주면서 한참을 할머니 곁을 지켰다.

“할머니, 이제 괜찮으시죠? 가족분한테 전화해서 할머니 모셔갈 수 있게 하려고 그러는데 가족분 번호 좀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할머니는 겨우 진정이 되는 듯하더니 조수아의 예쁘장한 얼굴을 보며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가야, 내가 너한테 너무 많은 폐를 끼쳤구나. 이 은혜를 내가 어떻게 보답하면 좋을까?”

할머니가 정정하신 말투로 말을 건네오자 조수아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다친 곳 없으시면 됐어요. 고마워하시지 않으셔도 돼요.”

“어떻게 그래. 아까 전화하는 거 들어보니까 회사가 좀 힘든 것 같던데. 이렇게 하자. 내가 딱히 뭐 해줄 것도 없고 그래서, 우리 손주한테 얘기해서 일거리 몇 개 좀 주라고 할게. 우리 손주가 아주 큰 그룹의 오너거든. 거짓말 아니고 진짜야.”

조수아는 일회용 컵에 뜨거운 물을 받아다가 할머니한테 건네주며 웃었다.

“마음만 고맙게 받을게요. 회사 일은 제가 잘 처리할게요. 지금은 그저 가족분들 번호만 하나 알려주시면 돼요.”

“안 돼. 난 빚지는 걸 못 참는 성격이야. 우리 손주한테 얘기해서 꼭 이 은혜를 갚으라고 할 거야. 참 우리 손주가 생기기도 잘 생기고, 돈도 많은데 아직 솔로거든. 성격이 약간 좀 모난 데 있어서 그렇긴 한데, 아가씨만 괜찮다면 우리 손주 좀 거둬주지 않을래? 그럼 나중에 우리 손주 재산이 다 아가씨 재산이 될 수 있어.”

할머니는 조수아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손주한테 전화를 걸었다.

남자를 소개받을 생각이 없었지만 일단은 가족이 온다는 소리에 조수아는 할머니와 함께 근처 커피숍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30분 뒤, 그녀가 매우 잘 알고있는 남자의 모습이 저 멀리 나타나기 시작했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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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줄거리가 재밌네요 잘읽고 있습니다
goodnovel comment avatar
소사랑
뭔 증거도 없이 잘만 믿더니만 뭔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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