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아, 내가 네 투정 안 받아줬다고 내 아이를 지웠다고 말하는 거야, 지금? 너 그렇게 맘이 독한 여자인줄 오늘 처음 알았네?”조수아가 핏발선 눈으로 노려봤다.“내가 안 그랬어! 아이를 죽인 건 당신이야!”“여기에 적힌 거 안 보여? 어디서 궤변이야!”“그거 다른 사람이 기록을 일부러 고쳐놓은 거라면 믿겠어?”육문주는 손에 힘을 풀고 그녀의 새하얀 목을 수놓은 키스마크를 보며 가슴이 찔리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조수아는 제가 7년을 사랑하고, 3년을 옆에서 아낌없이 살펴준 남자를 처량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자신의 말
손목을 덥석 잡아오는 조수아의 행동에 송미진은 아파서 눈을 찡그렸다.“내 손 아직 다 안 나았어. 감히 내 몸에 손 대기만 해 봐. 배로 돌려줄 테니까!”차가운 조소가 흘러나왔다.“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은 두려울 것도 없다는 거 몰라요? 그렇게 몇 번이고 자꾸 시비를 걸어오는데, 거기에 응해주지 않으면 송미진 씨한테 너무 미안하잖아요. 저 때문에 팔 다친 걸로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하지 못하게 됐다면서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더 완벽하게 망가지는 게 오히려 더 나을지도 모르죠.”말을 마침과 동시에 우둑, 하는 소리
송미진은 다친 손을 들어 육문주에게 보여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방금 전에 조수아에게 당한 뒤로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가 응급처치를 받고, 한시도 지체없이 다시 이곳으로 달려왔는데 이런 장면을 목격할 줄 송미진은 몰랐다.‘조수아가 아이를 지웠다는데도 왜 그렇게 그녀를 다정하게 대해줘? 내가 겨우 골머리를 앓아 생각해낸 방법이 결국 또 실패인 거야?’송미진은 훌쩍이며 슬금슬금 육문주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그녀가 가까이 붙기도 전에 육문주가 조수아를 뒤로 숨기며 몇 걸음 물러섰다.“그게 무슨 소리야. 조수아 여태까지 계속
육문주는 얼굴에 그늘을 드리운 채 우호적이지 못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기회를 준다고 할 땐 싫다더니, 지금은 또 후회되나 봐? 이제는 우리 할머니한테까지 손을 뻗어?”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는 조수아가 할머니를 돌아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할머니께서 말씀하신 손주가 이 사람이에요?”황애자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두 사람 아는 사이였어? 그럼 더 잘 됐네. 서로 감정 기초가 있으면 어색하게 눈치 볼 필요도 없지.”“할머니, 이제 가족분 오셨으니까 전 이만 가볼게요. 저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요.”
조병윤은 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그의 조카인 조자현은 잠시 도박을 하다가 빚을 지기는 했어도 돈도 이미 다 갚았기도 했고, 그리고 고작 그런 일로 검찰청 사람들까지 찾아올 정도는 아니었다. 작게 한숨을 내쉰 조병윤은 이 집사를 향해 말했다.“두 사람 들여보내. 어차피 마주할 거 피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야.”잠시 후 거실로 들어선 두 남자는 간단히 찾아온 이유를 설명한 뒤 조수아를 향해 말했다.“이번 사건은 상업적 기밀에 관련되어 있는 사건이기도 하고, 워낙에 엮여있는 금액이 커서 조병윤 씨가
“조 비서님 지금 대표님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신지 30분 됐습니다.”육문주는 가슴이 누군가에 의해 쿵하고 가격 당한 듯 울렁거렸다.“남은 스케줄을 다 뒤로 미뤄.”길쭉하게 뻗은 다리를 시원하게 뻗으며 사무실로 걸어가 문을 열고 들어서니, 벽 한면을 차지한 통창 앞에 익숙한 인영이 서 있었다. 검은색 티셔츠에 녹색 캐주얼 치마를 입고 수수한 모습으로 찾아온 조수아는 머리를 높게 틀어올린 채 가는 목을 시원하게 내보이고 있었다. 매끈하면서도 곧게 뻗은 하얀 다리를 보며 육문주는 마치 마음속 어딘가에 불이 지펴진 것
“그럼 당신이 원하는 게 뭔데?”육문주는 손끝을 그녀의 턱밑에 갖다대고 들어올렸다. 그리고 제 얼굴을 내려 두 사람의 코가 서로 맞닿게 비비적거렸다. 끈적거리고도 긴장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아이를 잃어버렸으면 다시 만들어서 돌려줘야지.”조수아는 팔을 뻗어 상대방을 세게 밀었다.“그건 불가능해!”“그럼 네가 아까 말했던 거, 나 하나도 못 들어줘.”“당신 적당히 해!”겨우 마를까 했던 눈시울이 또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노기 어린 시선에도 불구하고, 육문주는 잘생긴 미간을 들썩이며 앞으로 한발자국 다가섰다. 그리
허둥지둥 경찰서에 도착하니 한지혜가 손목에 수갑을 찬 채 취조를 당하고 있었다. 엄숙한 얼굴의 경찰을 마주보며 한지혜는 쉴새없이 본인을 위해 해명하고 있었다. 주눅들거나 하는 모습은 전혀 없어보였다.빠르게 걸어간 조수아는 담당 경찰을 향해 예의있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안녕하세요. 저는 여기 있는 한지혜 친구 조수아라고 하는데요. 혹시 제 친구가 무슨 일로 잡혀왔는지 알 수 있을까요?”경찰이 대답하기도 전에 한지혜가 먼저 입을 열었다.“어제 네가 그렇게 사라지고 성빈 오빠가 널 도와줄 방법을 찾아보겠다면서 아버지한테 가보겠다
천우는 더 이상 겁먹지 않고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박서준을 노려봤다.“흥! 이제는 고모님이랑 고모부님이 제 편이에요! 삼촌, 저 못 괴롭힐 거예요.”박서준은 천우의 기세에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네가 누가 편을 들어준다고 해서 내가 못 할 줄 알아? 밤에 네가 잠들면 몰래 널 택배 상자에 넣어서 고국으로 보낼 거야.”천우는 깜짝 놀라 윌리엄 요한의 목을 양손으로 꼭 껴안고 애원하듯 말했다.“고모부, 살려주세요!”윌리엄 요한은 천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웃었다.“걱정하지 마. 고모랑 내가 있잖아. 삼촌도 감히 널
윌리엄 요한의 신사적이면서도 절제된 감정 표현은 육연희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의 눈빛에는 깊은 진심이 담겨 있었고,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도 느낄 수 있었다.그의 시선을 받는 순간, 육연희는 마치 불길에 휩싸인 듯 마음이 뜨거워졌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어색하게 말했다.“아이가 보고 있으니, 좀 신경을 써주세요.”윌리엄 요한은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알겠어. 아내 말은 무조건 들어야지.”그는 살짝 장난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윌리엄 요한의 절제된 태도와 배려는 육연희의 마음을 깊이 흔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감정을 숨기려 애쓰며 담담히 말했다.“잘 잤습니다. 그런데 당신은요? 눈이 충혈된 것 같은데, 못 주무셨나요?”윌리엄 요한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입가에 미소를 띠며 낮게 웃었다.“연희야, 네가 내 걱정해 주는 거야?”그는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뺨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다정한 눈빛을 보냈다. 그의 진지하고 깊은 시선은 보는 이를 빠져들게 했다.육연희는 그의 눈을 피하려 했지만, 그 시선에 갇힌 듯 도망칠 수 없었다.그녀는 그의 충혈
임혜나는 두 사람이 서로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며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발을 세게 구르며 외쳤다.“박서준, 두고 봐. 이 두 대 그냥 넘어가진 않을 거야!”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홱 돌아서 나가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천우의 귀여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아줌마, 가져온 아침 가져가세요. 안 그러면 제가 또 ‘쓰레기’를 버리러 가야 하잖아요.”이미 화가 치밀어 있던 임혜나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분통이 터졌다. 결국 봉투를 성큼성큼 집어 들고, 쾅쾅거리는 하이힐 소리를 내며 저택을 떠났다.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곽
“서준아, 우리 어릴 땐 정말 좋았잖아. 너도 나 잘 챙겨줬고, 뭐든 나한테 양보해 줬어. 그런데 왜 지금은 이렇게 차갑게 대하는 거야?”박서준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그땐 내가 널 여동생으로 생각했으니까. 우리가 계속 남매처럼 지냈다면 여전히 잘해줬을 거야. 하지만 네가 원하는 건 그 이상이라, 난 줄 수 없어.”임혜나는 사람들 앞에서 거절당하자, 얼굴이 창백해졌다. 손을 꽉 움켜쥐고 눈물이 맺힌 채로 박서준을 쳐다봤다.“그래도 그 약속은 잊지 마. 너 서른 살까지 결혼 안 하면 나랑 결혼하기로 했잖아. 그건 너도 우리
곽서연은 방금 입안에 넣은 우유를 뱉을 뻔하다가 그대로 목에 걸려 심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천우는 깜짝 놀라 작은 손으로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누나, 이 아줌마 때문에 놀란 거예요?”곽서연은 한참 동안 기침을 멈추지 못해 눈물까지 찔끔 흘렸다. 얼굴은 창백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붉게 달아올랐다.그녀는 천우를 진정시키려 애쓰며 겨우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너무 급하게 마셔서 그런 거야.”박서준은 기침을 멈춘 곽서연을 보며 무표정하던 얼굴을 살짝 누그러뜨리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누가
“너무 좋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내가 조금 더 커서 어른이 되면 이야기하자.”“알겠어요. 누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이 비밀 꼭 지킬게요. 삼촌한테 누나가 삼촌 아내 되고 싶어 한다는 말 절대 안 할게요.”“제발 그 얘기는 하지 말자!”곽서연은 당황한 표정으로 천우의 입을 막고 서둘러 계단을 내려왔다.아래층에서 박서준이 이미 아침 식사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내려오자, 박서준은 약간 놀란 듯 말했다.“뭐 그렇게 꾸물거려? 배 안 고파?”곽서연은 식탁 쪽으로 다가가 차려진 음식들을 보고 감탄했다
천우는 박서준의 목소리를 듣자 깜짝 놀라 손으로 입을 막았다. 까맣고 큰 눈이 반짝이며 박서준을 바라봤다.박서준은 천우를 번쩍 들어 올려 작은 엉덩이를 한 번 툭 치고 웃으며 물었다.“삼촌이 늙었다고? 다시 말해봐!”천우는 금세 작은 목소리로 살살 빌며 말했다.“안 할게요. 삼촌, 제발 용서해 주세요.”“그래? 네가 무서워하는 것도 있구나. 근데 말 안 들으면 어쩌지?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다 없으니까, 삼촌이 혼내줄 거다.”천우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두 손을 맞잡고 간청했다.“말 잘 들을게요! 삼촌도 많
박서준은 곽서연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눈길이 머물렀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 물었다.“온 지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벌써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거야?”곽서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제가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 건 2년 전이었어요. 여기 온 것도 그 사람 때문인데, 막상 만나 보니 그 사람이 절 전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박서준은 한숨을 쉬며 그녀의 이마를 톡 치고는 단호하게 말했다.“2년 전이면 네가 몇 살이었냐? 공부나 열심히 할 생각은 안 하고 쓸데없는 데 신경을 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