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뭐라고 그러셨어요? 할머니가 저를 문주 씨 옆에 붙여둔 거라고요?”“당연하지. 아니면 육 대표님이 정말 백마 탄 왕자처럼 쨔잔하고 나타나서 널 구해준 줄 알았어? 생각해 봐. 육 대표님 같은 다망하신 분이 어떻게 난데없이 그렇게 구석진 곳에 갔겠어. 나랑 네 오빠가 미리 함정을 파서 육 대표님을 그곳으로 이끌지 않았다면 네가 3년이나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아? 그런 것도 모르고 괜히 육 대표님한테 시집가고 싶어서 욕심을 부리는 게 네 주제에 가당키나 해? 너처럼 낯 부끄러운 줄 모르는 엄마를 둔 사람을 B시에
조수아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그거 빼고 다 들어줄 수 있어.”“내가 필요한 건 이거 하나뿐인데?”“문주 씨, 내가 불순한 목적이 있어서 당신한테 접근했다 쳐. 그래도 3년이나 당신 곁에서 그렇게 챙겨줬으면 나는 할 도리는 다 했다고 보는데, 아니야? 날 이렇게 놓아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육문주는 고집스런 눈빛과 계속해서 열었다 닫혔다 하는 입술, 그리고 갸름한 턱라인을 보며 목울대를 꿀떡 움직였다. 단숨에 조수아를 안아 허벅지에 앉힌 그는 턱을 그녀의 어깨에 댄 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어떻
“그렇다면요? 대표님께서 저를 직접 수술대로 끌고가서 아이를 지워버리게 하려고요?”치켜든 고개에 조금씩 빨개지기 시작한 눈동자가 자리했다.살이 홀쭉하게 빠진 조수아의 얼굴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던 육문주가 물었다.“그렇게 중요한 걸 왜 나한테 안 알려줬어?”“알려주면? 그럼 하루라도 더 빨리 애를 지우려고?”“맘대로 내말 해석하지 말고 제대로 들어.”육문주는 미운 말만 뱉는 얄미운 입을 그러쥐었다.“어차피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고 애 낳을 거, 굳이 내가 임신했다고 그래서 문주 씨가 관심이나 가질까?”그녀의 고집스런
“조수아, 내가 네 투정 안 받아줬다고 내 아이를 지웠다고 말하는 거야, 지금? 너 그렇게 맘이 독한 여자인줄 오늘 처음 알았네?”조수아가 핏발선 눈으로 노려봤다.“내가 안 그랬어! 아이를 죽인 건 당신이야!”“여기에 적힌 거 안 보여? 어디서 궤변이야!”“그거 다른 사람이 기록을 일부러 고쳐놓은 거라면 믿겠어?”육문주는 손에 힘을 풀고 그녀의 새하얀 목을 수놓은 키스마크를 보며 가슴이 찔리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조수아는 제가 7년을 사랑하고, 3년을 옆에서 아낌없이 살펴준 남자를 처량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자신의 말
손목을 덥석 잡아오는 조수아의 행동에 송미진은 아파서 눈을 찡그렸다.“내 손 아직 다 안 나았어. 감히 내 몸에 손 대기만 해 봐. 배로 돌려줄 테니까!”차가운 조소가 흘러나왔다.“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은 두려울 것도 없다는 거 몰라요? 그렇게 몇 번이고 자꾸 시비를 걸어오는데, 거기에 응해주지 않으면 송미진 씨한테 너무 미안하잖아요. 저 때문에 팔 다친 걸로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하지 못하게 됐다면서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더 완벽하게 망가지는 게 오히려 더 나을지도 모르죠.”말을 마침과 동시에 우둑, 하는 소리
송미진은 다친 손을 들어 육문주에게 보여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방금 전에 조수아에게 당한 뒤로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가 응급처치를 받고, 한시도 지체없이 다시 이곳으로 달려왔는데 이런 장면을 목격할 줄 송미진은 몰랐다.‘조수아가 아이를 지웠다는데도 왜 그렇게 그녀를 다정하게 대해줘? 내가 겨우 골머리를 앓아 생각해낸 방법이 결국 또 실패인 거야?’송미진은 훌쩍이며 슬금슬금 육문주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그녀가 가까이 붙기도 전에 육문주가 조수아를 뒤로 숨기며 몇 걸음 물러섰다.“그게 무슨 소리야. 조수아 여태까지 계속
육문주는 얼굴에 그늘을 드리운 채 우호적이지 못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기회를 준다고 할 땐 싫다더니, 지금은 또 후회되나 봐? 이제는 우리 할머니한테까지 손을 뻗어?”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는 조수아가 할머니를 돌아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할머니께서 말씀하신 손주가 이 사람이에요?”황애자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두 사람 아는 사이였어? 그럼 더 잘 됐네. 서로 감정 기초가 있으면 어색하게 눈치 볼 필요도 없지.”“할머니, 이제 가족분 오셨으니까 전 이만 가볼게요. 저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요.”
조병윤은 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그의 조카인 조자현은 잠시 도박을 하다가 빚을 지기는 했어도 돈도 이미 다 갚았기도 했고, 그리고 고작 그런 일로 검찰청 사람들까지 찾아올 정도는 아니었다. 작게 한숨을 내쉰 조병윤은 이 집사를 향해 말했다.“두 사람 들여보내. 어차피 마주할 거 피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야.”잠시 후 거실로 들어선 두 남자는 간단히 찾아온 이유를 설명한 뒤 조수아를 향해 말했다.“이번 사건은 상업적 기밀에 관련되어 있는 사건이기도 하고, 워낙에 엮여있는 금액이 커서 조병윤 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