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은 고이준에게 빨리 강지혁을 부축하라는 시선을 건넸다.하지만 고이준은 어색하게 웃더니 그녀에게 말했다.“그럼... 대표님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내일 아침 데리러 올 테니 혹시 밤사이 필요한 거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고이준은 자신의 명함을 신발장 위에 올려놓더니 친절하게 문까지 대신 닫아주고 그렇게 자리를 떠나버렸다.임유진은 그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튀어나왔다.고이준은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강지혁을 이곳에서 재우려고 작정한 모양이었다.강지혁과 이곳에서 하룻밤을?임유진은 이를 꽉 깨물더니 일단 그를 부축해 침대 쪽으로 향했다.고이준은 차에 올라타고 임유진의 집을 바라보더니 긴 한숨을 내쉬었다.생각해보면 그 역시 강지혁이 취한 모습을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그는 언제나 냉철하고 이성적인 그런 사람이었다.그런 사람이었기에 강문철의 엄격한 교육도 버텨내고 결국에는 강씨 가문을 이어받을 수 있었다.그런 강지혁이 오늘은 강현수와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을 마셨다. 두 사람 모두 지기 싫어하는 어린애 같았다.만약 그 모습이 매스컴을 타게 되면 사람들은 아마 경악을 할 것이다.강현수도 술자리에서 일어날 때 보니 강지혁과 다를 것 없었다.고이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강현수가 임유진을 사랑하게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게다가 제일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은 바로 강지혁이었다. 이미 헤어진 사람을 대체 왜 놓지 못하는 걸까.대체 임유진은 무슨 매력이 있어 두 남자를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술을 마시게 만드는 걸까!고이준은 이제 언젠가 임유진이라는 여자 때문에 S 시가 발칵 뒤집힌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다만 임유진은 강현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만약 그녀가 강현수를 사랑하게 되면...고이준은 가설만 제기했을 뿐인데 온몸에 소름이 돋아버렸다.이러한 가능성은 차라리 생각하지 않는 것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은은한 불빛 아래 임유진은 지금 침대 위에 고이
그 마음은 그를 사랑하게 되고부터 더욱더 커졌다.강지혁이 대단한 것도 알고 그녀보다 가진 것도 많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임유진은 그를 지켜주고 싶었다. 자신의 온 힘을 다해 그를 지켜주고 싶었다.만약 그가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를 전부 제거해서라도 그에게 안정감을 주고 사랑해주며 그녀에게 그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알려주고 싶었다.하지만 그 모든 것이 그녀의 광대 짓에 지나지 않았다.강지혁은 처음부터 그녀가 지켜줄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그에게 그녀는 그저 장기 말일 뿐이었다.임유진은 쓰게 웃더니 허리를 숙여 강지혁의 신발을 벗겨 주었다. 그리고 이대로 이불까지 덮어준 다음 그녀는 오늘 밤 소파에서 잘 생각이었다.그에게 이불을 덮어주려는데 하필이면 오늘따라 이불이 벽 쪽에 놓여 있는 바람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그의 몸을 넘어 이불을 가져와야 했다.그렇게 이불 끝자락을 짚고 다시 허리를 펴려는데 어느샌가 그는 눈을 뜨고 있었다.검은색 눈동자는 취기 때문인지 예쁘게 일렁거렸다.“유진아...”강지혁은 입을 열고 그녀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임유진은 순간 몸이 얼어붙어버렸다. 그러다 빠르게 다시 정신을 차리려는데 그가 두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얼떨결에 그녀의 상반신은 강지혁의 위에 엎드리게 되었다.임유진이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키자 그가 두 손에 힘을 주었다. 그 탓에 그녀는 또다시 그의 품에 안기고야 말았다.“유진아, 유진아... 강현수 사랑하지마...”그의 목소리에는 짙은 술향기가 배어있었다.“강현수는 물론이고 그 누구도 사랑할 생각 없어. 이제 만족해? 이불 덮어 줄 테니까 빨리 이 손 풀어.”임유진은 지금 한시라도 빨리 그의 품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그 누구도... 사랑할 생각이 없어?”강지혁은 혼자 그녀의 말을 되뇌더니 갑자기 몸을 옆으로 뒹굴어 임유진의 몸을 위에서 짓눌렀다.“그 말은 나도 사랑하지 않겠다는 뜻이야?”강지혁은 그녀에게 몸무게의
“그러면... 너도 날 버릴 거야?”강지혁은 입술을 달싹이다 힘겹게 이 말을 내뱉었다.버린다고?이 말이 임유진에게는 우습기 짝이 없었다.강지혁이 어떤 사람인데, 그리고 애초에 그녀는 그를 가진 적도 없다.“너 진짜 취했구나. 빨리 비켜. 지금 시간도 늦었...”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얼굴이 갑자기 아래로 확 다가왔다. 두 코가 거의 맞닿을 그런 거리였다.“취했다고?”강지혁은 웃는 듯 마는 듯한 그런 표정을 지었다.“나 안 취했어. 멀쩡해.”안 취했다고, 멀쩡하다고는 하지만 제정신이라면 그런 말을 내뱉을 리가 없다.“나 버리지 마. 응? 유진아...”그는 고통스러운 눈빛으로 그녀에게 애걸하듯 말했다.버리지 않겠다는 그녀의 한마디가 지금은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는 듯이 말이다.강지혁이 술에 취했다는 걸 알지만, 어쩌면 내일 아침이 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걸 알지만 임유진은 그럼에도 결국 이 말을 뱉어내고야 말았다.“이제 와서 그런 말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는데? 널 버리지 말아 달라고? 날 먼저 버린 건 너야!”그의 얼굴이 서서히 어두워져 갔다.하지만 임유진의 말을 계속되었다.“전에 너를 원했던 건 너를 내 가족으로 여겼기 때문이고 너를 사랑해서였어. 하지만 지금은 널 가족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널 사랑하지도 않아. 그리고 더 이상 나는 널 원하지 않아.”그렇다. 그를 사랑하지도 않고 그를 원하지도 않는다.이 말은 그에게 들려주는 말이기도 했고 그녀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말이기도 했다.강지혁의 눈가가 점점 빨갛게 변해버렸다.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그의 귀를 타고 들어와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그녀는 그를 사랑하지도 않고 그를 원하지도 않는다...순간 심연 깊숙이 있던 두려움이 그의 몸을 덮쳤다. 그는 마치 자신이 뭘 하든 눈앞에 있는 여자를 곁에 둘 수 없을 것만 같았다.강지혁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그녀는 이러면 안 된다!자신의 곁을 떠나면 안 된다!“읍...”임유진은 갑작
하지만 눈을 감고 아무리 기다려봐도 생각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몇 초 뒤 임유진이 슬며시 눈을 떠보니 강지혁이 그녀의 손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손 안 아파?”순간 임유진은 뭐라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와 코끝이 시큰해졌다.강지혁은 항상 이렇게 그녀를 누구보다 더 소중히 대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막상 그녀가 그 다정함에 푹 빠졌을 때는 그 누구보다 매정하게 버려버렸다.“날 사랑하는 게 아니면 나한테 키스하지도 말고 널 때린 손이 아픈지 안 아픈지도 물어보지 마! 네가 이럴수록 나는 네가 더 싫어지니까!”임유진은 그를 힘껏 노려보고는 그의 손에 잡힌 손을 거칠게 빼냈다.흐트러진 머리카락이 희고 붉은 얼굴에 몇 가닥 붙어있고 그 사이로 빨간 입술을 꽉 깨문 그녀의 모습은 누가 봐도 명백한 거부였다.강지혁은 순간 얼굴에 핏기가 가시고 몸도 비틀거리다가 속에서 뭔가가 올라올 것 같아 입을 꽉 틀어막은 채 허겁지겁 침대에서 내려 화장실로 달려갔다.그리고 문이 닫힌 순간 겨워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마셨으니 당연한 결과였다.임유진은 침대에서 내려와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그의 뺨을 내리친 그 감촉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았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내뱉었다.맞은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때린 사람이 이렇게 아픈 걸까.화장실에서 들리던 토하는 소리가 점점 멎어갔다. 하지만 강지혁은 어쩐 일인지 한참이 지나고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이에 임유진은 혹시 그가 화장실에서 쓰러진 건 아닌가 싶어 그쪽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너... 너 괜찮아?”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임유진은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강지혁, 내 말 들려? 혹시 잠든 거야? 셋 세고 문 열게.”그녀는 손가락으로 셋을 센 다음 혹시 몰라 한 번 더 노크했다.똑똑.“나 들어간다?”임유진은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급하게
“그럼 걱정이 아니라 오지랖이라고 생각해.”임유진은 말을 마치고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한 다음 그를 침대까지 힘들게 끌고 와 눕혔다.강지혁은 확실히 어딘가 안 좋은 건지 침대에 눕자마자 마치 새우처럼 몸을 옆으로 웅크렸다. 잘생긴 얼굴은 고통 때문인지 잔뜩 일그러졌고 이를 꽉 깨문 탓에 얼굴에 힘줄이 튀어 올랐다. 그리고 그의 두 손은 복부를 꽉 감싸고 있었다.임유진은 문득 전에도 위경련 때문에 그가 이렇게 아팠던 것이 떠올랐다.혹시 또 위경련인 건가?사실 오늘을 돌이켜보면 그럴 만도 했다. 술을 많이 마신 것도 모자라 강현수와 술을 마실 때 그는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았으니 아마 공복에 술만 들이켰을 것이다.“너 위 아파?”임유진이 묻자 강지혁은 입을 꾹 닫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저 조금 젖은 눈동자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고 비서님한테 연락해서 너 병원 데려가라고 할게.”“됐어.”그때 강지혁이 힘겹게 힘을 열었다.“너 나 안 사랑한다며, 나 원하지 않는다며, 내가... 싫다며? 그러면 내가 아픈걸 보고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임유진은 눈앞에 있는 남자를 훑어보았다.지금의 그는 무척이나 약해져 있고 얼굴은 창백한 것이 툭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그녀는 기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강지혁, 난 너랑 달라.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아도, 원하지 않아도, 심지어는 증오할 만큼 싫어해도 그 사람의 아픈 모습을 보고 기뻐하지는 않아.”임유진이 담담하게 말했다.“고 비서님한테 연락하는 게 싫으면 여기서 잠깐 기다려. 약 사올 테니까.”그녀는 말을 마치고 휴대폰과 열쇠를 들고 월세방을 나갔다.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작은 공간에 강지혁 혼자 남겨졌다.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왜 그녀의 말에 전혀 기뻐할 수 없는 거지?지금 약 사러 간 건 마음속에 남은 연민 때문인 걸까?그 순간 위가 또다시
임유진... 유진아...이렇게 아픈데 왜 머릿속에는 온통 그녀의 이름과 그녀의 웃는 얼굴만 떠오르는 것일까.왜 그녀의 사랑하지 않는다는 그 한마디에,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그 한마디에 이토록 절망스러운 것일까.커다란 물웅덩이에 온몸이 빠진 기분이다. 어떻게든 발버둥 쳐보려고 해도 점점 더 깊게 가라앉아 기어코 질식해버릴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다.그때 문이 열리고 이쪽으로 오는 발걸음 소리와 물건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그녀가 돌아온 걸까?늦은 밤에 그를 위해 약을 사러 갔다가 돌아왔던 그때처럼?그날 힘겹게 눈을 뜨고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을 때 그는 처음으로 심장이 거세게 뛰는 것을 느꼈다.임유진이라는 여자를 사랑하게 된 건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약 먹어. 약 먹고 나면 괜찮아 질 거야.”임유진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울려 퍼지고 이내 가녀린 손이 몸을 부축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강지혁은 코끝에서 스치는 익숙한 그녀의 향기에 천천히 두 눈을 떴다.두 눈에 그녀가 가득 담긴 순간 공허했던 마음이 단숨에 뭔가로 꽉 찬듯한 느낌이 들었다.그리고 신경세포 하나하나가 이 여자를 갖고 싶다고, 이 여자를 곁에 두고 싶다고 소리치고 있었다.임유진은 약을 강지혁의 앞에 내려놓고 말했다.“이건 한 알만 먹으면 되고 이건 두 알 먹어야 해.”그녀가 약을 손에 올려놓고 건네주자 강지혁은 약을 보지도 않고 받지도 않으며 오로지 그녀의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임유진은 그 눈빛이 어쩐지 가슴을 꾹 짓누르는 것 같았다.“왜? 혹시 약 먹기 싫어서 그래?”전에 그가 약 먹는 걸 싫어한다는 말을 그녀는 기억하고 있다.“만약 내가 앞으로 평생 누나가 원하던 동생이 된다고 하면? 그래도 날 버릴 거야?”강지혁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임유진의 몸이 굳어버렸다. 그녀는 손에든 약을 가만히 내려다보더니 “응.”이라고 답했다. 그러고는 어딘가 초연한 웃음을 지었다.“나한테 너는 동생이 될 수 없어.”임유진은 강지혁과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담담하게 얘기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가시지 않을 것 같던 통증도 서서히 가라앉았다.강지혁은 천천히 몸을 일으킨 후 침대에서 내려와 임유진의 곁으로 다가왔다.숨소리가 고른 것을 보니 이미 잠이 든 것 같아 보였다.그는 허리를 숙이고 부드럽게 그녀를 끌어안아 침대 위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그녀가 춥지 않게 옆에 있던 이불도 덮어주었다.강지혁의 시선은 임유진의 얼굴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아까 그의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만약 그녀와 모든 게 끝이 나면, 그러면 그는...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그는 아까 살 이유가 뭐였는지 잊어버렸다.강지혁은 과거의 자신을 비웃듯 실소를 터트렸다.그의 생사는 여전히 그녀의 손에 달려있었다.헤어지기만 하면 인생의 주도권을 다시 돌려받고 그녀의 영향에서 벗어나 한낱 여자의 배신 때문에 목숨까지 포기해 버리는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을 줄로만 알았다.하지만 그건 오만한 생각이었다.그는 줄곧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고 단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그저 정신승리일 뿐이었다....다음 날, 고이준은 아침 댓바람부터 강지혁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임유진의 집 앞으로 왔다. 그러자 거기에는 벌써 강지혁이 대기하고 있었다.어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강지혁의 뺨에 빨간 자국이 남아있다는 것이었다.고이준은 그걸 보더니 숨을 헙하고 들이켜고는 그의 눈치를 살폈다.그 빨간 자국은 누가 봐도 누군가의 손바닥 자국이었다.강지혁이 임유진에게 뺨을 맞았다는 사실에 고이준은 지금 상당히 놀라버렸다.S 시에서 강지혁의 얼굴에 손을 올리고 자국까지 남길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상대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쥐도 새도 모르게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다.하지만 상대가 임유진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지난번 임유진의 친구 한지영도 강지혁의 뺨을 때리고서 별 탈 없었으니 임유진이 때린 건 아마 벌써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을 수도 있다.잔인하고 매정한 강지혁이 임유진 앞에서는
언젠가 임유진이 강현수에게 활짝 웃어주며 다정하게 포옹하고 자신과 했던 것들을 강현수와 하며 심지어 강현수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릴까 봐 두려웠던 것일까?이러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강지혁은 견딜 수가 없다.사랑이라는 건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그런 거라는 걸 그는 톡톡히 느꼈다....임유진은 알람 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은 어느새 소파가 아닌 침대 위에 있었다.강지혁이 침대까지 옮겨다 준 걸까? 물어볼 것도 없이 그 가능성밖에 없었다.하지만 지금 방 안에는 강지혁이 어디에도 없다.머리맡 작은 탁자 위에 올려놓았던 약이 없어진 걸 보니 그래도 다행히 약은 먹은 것 같았다.다만 나머지 약은 가져가지 않고 탁자 위에 그대로 있었다.지금쯤 아픈 건 다 나았을까?임유진은 속으로 그를 걱정하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아침이 되었으니 고이준도 함께 있을 테고 정말 아픈 거라면 진작에 병원을 갔을 테니 그녀가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었다.임유진은 상념에서 빠져나와 서둘러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로펌으로 출근했다.사무실에 도착하니 직장 동료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힐끔힐끔 그녀를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녀를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이들도 있었다.그러다 평소 궁금한 건 못 참던 여자 동료가 임유진의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유진 씨 정말 강현수 씨랑 사귀는 거예요? 어제 퇴근했을 때 유진 씨 데리러 온 거 보고 다들 부러워죽겠다며 난리예요. 우리뿐만이 아니라 강현수 씨를 노리고 있는 연예인들도 엄청나게 부러워할걸요?”임유진은 한껏 과장하며 부러운 표정을 짓는 동료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뒤에 쓸데없는 사족을 많이 붙이는 건 그녀가 강현수와 사귀는 사이가 맞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이다.아무 말 없는 임유진을 보며 여자 동료가 다시 뭐라 얘기하려고 입을 열려던 그때 옆에 있던 누군가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어머, 한나 씨, 왜 그래요?”정한나는 다리를 절뚝이며 사무실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