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모르는 일이죠.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진짜 사랑을 만난 걸 수도 있잖아요. 강현수 씨가 여자친구한테 이토록 지극정성인 거 처음 아니에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강현수 씨는 두 사람이 사귄다는 소문에 한 번도 부인하는 기사를 내지 않았잖아요. 이런 걸 종합해 보면 답 딱 나오지 않아요?”그럴싸한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임유진을 부러워했던 눈길이 지금은 동정으로 변했다.정한나는 신이 나서 더 떠들어댔다.“그리고 배여진 그 여자 드라마 촬영할 때 강현수 씨가 같이 가줬대요. 물론 드라마 배역도 강현수 씨가 준 거고요. 그렇게 물심양면인데 만약 정말 유진 씨한테 마음이 있었다면 솔직히 우리 로펌에 출근시키는 것보다 로펌 하나 차려줄 것 같지 않아요? 앗...”정한나는 실컷 떠들어대다가 마지막에 못 할 말을 했다는 양 미안한 얼굴로 임유진을 바라보았다.“미안해요, 유진 씨, 나도 그냥 해보는 소리예요. 그리고... 혹시 알아요? 정말 강현수 씨가 조만간 유진 씨한테 로펌이라도 차려줄지...”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 속에는 강현수가 너 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조롱으로 가득했다.정한나의 말에 주변 동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강현수가 정말 임유진을 좋아한다면 이런 곳에서 변호사 비서나 하게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그들은 임유진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모두 제자리로 가버렸다.임유진은 정한나의 말 따위 신경도 쓰지 않고 일에만 몰두했다. 정한나는 신이 나서 혼자 얘기하다가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자 다리를 절뚝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그때 누군가가 정한나를 향해 외쳤다.“어머, 한나 씨 지금 인기 검색어에 한나 씨 이름 올라왔어요!”그 말에 정한나가 뒤를 돌아 고개를 갸웃거렸다.기사를 확인한 동료들의 시선이 하나둘 정한나에게로 가서 꽂혔다.정한나는 다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기사를 확인했다. 인기 검색어에는 그녀의 이름뿐만이 아니라 세레나의 이름도 있었다.그 순간 그녀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덜덜 떨리는 손으로 동영상을 클릭
“한나 씨 우리한테는 유진 씨랑 사이좋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뒤에서 이런 짓을 해요?”“겉과 속이 다른 거죠. 뭐가 됐든 한나 씨 다시 봤어요.”동료들은 저마다 그녀에게 싸늘한 한마디를 내뱉고는 자리로 돌아갔다.정한나는 지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이대로 가다가는 임유진을 로펌에서 내보내기 전에 자신이 먼저 잘릴 판이었다.정한나는 자리에 앉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더니 결국 오늘도 월차를 내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한편 임유진은 정한나의 일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아까부터 손에 있는 자료들만 정리했다.며칠 뒤면 이재하의 재판이 열리게 된다. 소지혜는 여태 자신이 가해자라는 걸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경찰 측에서 재수사한 결과 그녀가 가해자라는 증거가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다.모든 일이...임유진은 문득 타자를 멈추고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어젯밤 그녀는 이 손으로 강지혁의 뺨을 내리쳤다. 그리고 강지혁은 이 손을 바라보며 아프지는 않냐고 물었다.아파도 맞은 사람이 더 아팠을 텐데 말이다.‘어제 약 먹고 나서 아픈 건 좀 나았을까...?’‘세상에, 왜 또 걱정하는 거야! 그만 걱정해. 아예 생각하지 마, 임유진!’임유진은 머리를 거세게 흔들며 강지혁의 걱정을 떨쳐냈다.강지혁은 그녀의 인생에 잠시 들른 손님과도 같은 존재일 뿐이다.그러니 그를 걱정할 이유가 없다!...강씨 저택.고이준은 지금 상당히 불안한 얼굴로 별채 앞을 서성거리고 있다.이곳으로 들어간 지 벌써 3시간째, 강지혁은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오늘 있을 중요한 미팅 몇 건은 부득이하게 전부 취소되어 버렸다.오늘 임유진의 집에서 나온 뒤부터 강지혁은 어딘가 이상해졌다.고이준은 지금 임유진에게 전화해 어젯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체 무슨 충격을 받아 강지혁이 모든 일을 제치고 별채에만 들어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강지혁은 평소 특별한 날짜가 아닌 이상 별채 쪽으로는 들어가지 않는다.그
그때 적막을 깨고 휴대폰이 울렸다.강지혁은 전화를 받고 상대의 말을 듣더니 담담하게 알겠다는 한마디를 내뱉고 다시 휴대폰을 집어넣었다.그러고는 시선을 돌려 다시 위패를 바라보았다.“저는 역시 아버지 아들이 맞나봐요. 한 여자를 자기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그 여자에게 버림받으면 살아갈 이유를 잃는 것을 보면. 하지만 저는 아버지처럼 죽을 생각은 없어요. 절대.”말을 마치고 강지혁은 별채에서 나왔다.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대기하던 고이준은 드디어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제야 활짝 웃었다.“대표님, 나오셨어요?”“노인네 병원으로 갈 거니까 차 대기시켜.”강지혁은 큰 표정 변화 없이 지시를 내렸다.“네, 알겠습니다.”몇 분 뒤, 강지혁을 태운 검은색 승용차가 강씨 저택에서 나와 병원으로 향했다.병원 VIP 병실.허약한 몸의 노인은 지금 병상에 누워 의사의 말을 듣고 있다. 노인은 자신의 몸상태를 나열하는 의사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는 건지만 말해.”의사는 조금 난감한 기색을 표하며 답했다.“많게는 6개월 정도고...”“적게는?”강문철이 되물었다.“적게는 4개월 정도로 보입니다.”“알았어. 이 교수가 제안했던 치료 받을테니 이만 나가 봐.”강문철은 의사와 간호사들을 전부 내보낸 후 옆에 있는 비서에게 말했다.“이따 지혁이 오면 깨워.”“네, 알겠습니다.”한때는 S 시를 주름잡았던 전설의 인물이 지금은 잔뜩 쇠약해진 채로 병상에 누워 삶의 끝을 기다리고 있다.강지혁이 병실로 들어왔을 때 강문철은 자고 있었다.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야윈 모습이었다. 약 때문에 머리카락도 많이 빠졌고 볼은 살이 없어 푹 꺼져있었다. 누워있는 그의 주위로 죽음의 기운들이 감싸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확실히 늙으셨네.’허약해진 강문철을 보며 강지혁은 어쩐지 복잡한 기분이었다.강문철의 비서가 지시대로 깨우려고 하자 강지혁이 제지했다.“좀 더 주무시게 놔둬. 깰 때까지 기다릴 테니까.
“제가 누구와 함께 있든 그건 제 일이지 할아버지가 관여하실 일이 아니에요.”강지혁은 담담하게 얘기했다.“콜록, 콜록...”강문철은 그 대답에 심기가 뒤틀렸는지 몸을 움직이다가 기침이 새어 나왔다.그는 천천히 숨을 고르다가 말했다.“그렇게도 네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고 싶으냐?”“왜요. 할아버지도 유진이가 내 목숨을 앗아갈 것 같으세요?”강지혁이 되물었다.강문철은 잠깐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강현수 그놈도 그 아가씨를 좋아하더구나. 걔는 아직 그 아가씨가 자기가 찾고 있던 여자인 걸 모르고 있다지? 만약 그놈이 그걸 알게 되면 너한테 승산이 있을 듯싶으냐? 네가 그때 헤어지기로 한 것도 그 아가씨가 언젠가 강현수 그놈 때문에 너를 배신할까 봐서가 아니냐?”강지혁은 강문철을 빤히 바라보았다.이 세상에서 아직 그를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눈앞에 있는 이 노인네가 틀림없다.“배신하지 못하게 하면 되는 일이죠.”“사람 마음이라는 건 그 누구도 모르는 거다. 너는 그 아가씨가 너를 배신하지 않도록 할 수 있을 것 같으냐?”강문철이 정곡을 찌르자 강지혁이 입을 다물었다.“임유진 그 아가씨는 너를 망가트릴 거야.”강문철은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내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건 맞지만 나는 죽어서도 강씨 가문이 그 여자 때문에 망하는 꼴은 못 본다.”“유진이한테 손댈 생각하지 마세요.”강지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병상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강문철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유진이 털끝이라도 건드리면 할아버지가 죽기 전에 강씨 가문을 내 손으로 무너트릴 겁니다.”“너!”그 말에 강문철이 도끼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강지혁의 눈은 절대 그저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무척이나 단호했다.“하, 그래... 콜록 콜록.”공들여서 키워낸 후계자가 고작 여자 하나 때문에 이때까지 강씨 가문이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버리려고 하고 있다.강문철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그래. 건드리지 않으마. 하지만 너도 언젠가 알게
윤이는 예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지영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탁유미를 바라보았다. 아직 어리기는 해도 자신이 유치원을 다닐 수 있게 된 게 눈앞에 있는 낯선 이모와 아저씨의 덕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고맙습니다, 이모.”윤이는 또박또박 말을 내뱉었다. 귀에 있는 인공와우가 아니었으면 장애를 가졌다는 것을 모를 만큼 똑 부러진 아이였다.“고맙기는. 참, 나는 한지영이야. 지영이 이모라고 불러.”솔직히 한지영은 아이에게 자신을 누나라고 소개하고 싶었지만 임유진이 이모가 된 이상 누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민망했다.“네, 지영이 이모.”한지영은 배시시 웃으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볼을 콕 집었다.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들은 윤이는 볼을 핑크색으로 물들였다. 반응을 보니 한지영이 싫지는 않은 듯했다.아이는 앙증맞은 두 손으로 한지영의 목을 감싸더니 그녀의 볼에 쪽 하고 뽀뽀했다.한지영은 마치 아기천사에게 뽀뽀 받기라도 한 듯 활짝 웃더니 결국 못 참고 아이를 꼭 끌어안고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연이의 흰 볼이 단번에 빨갛게 달아올랐다.백연신은 두 눈을 반짝이며 주접을 떠는 그녀가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20살만 더 젊었어도 당장 침 발라 놓겠다고 했던 그녀의 말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아이에게 질투한다는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인지 그 역시 잘 알고 있지만 제멋대로 피어오르는 질투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결국 백연신은 한지영의 품에 안긴 연이를 한 손에 들어 올렸다.“다들 이제 식사하러 가시죠?”한지영은 갑자기 연이를 품에서 뺏어간 백연신에게 불만을 품었다가 그의 눈빛을 받고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백연신은 그들을 데리고 어느 고급진 한식집으로 들어갔다. 룸에 들어가 주문을 마친 후 그는 유치원 원장의 연락처를 탁유미에게 건넸다.“내일 윤이 데리고 가시면 됩니다. 아이의 상황은 미리 얘기해뒀으니 걱정하지 마시고요.”“고마워요. 정말 진심으로요.”탁유미는 재차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요 며칠 그녀의 줄곧 유치원 일 때문에 가슴 한편에
다행히 한지영은 강현수의 얘기에서 금세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식사를 마친 후 백연신은 먼저 제일 가까운 임유진을 데려다주고 그 다음으로 탁유미와 윤이도 현 거처에 데려다주었다.윤이가 차에서 내릴 때 한지영은 잊지 않고 또 한 번 아이에게 뽀뽀하고서야 품에서놓아주었다. 그러고는 손을 흔들며 유치원에 들어가는 날 근사한 선물을 주겠다며 기대하라고도 했다.백연신은 아이와 떨어지는 것이 무척이나 아쉬운 듯한 한지영을 보더니 빠르게 시동을 걸었다.“아직 얘기도 다 못했는데.”한지영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네가 이렇게까지 아이를 좋아할 줄은 몰랐네.”백연신이 정면을 주시하며 말했다.오늘 한지영은 아이에게 10번 가까이 뽀뽀했다. 평소 그에게는 잘 해주지도 않으면서 말이다.“너무 귀엽잖아요.”한지영은 아직 윤이가 눈앞에서 아른거렸다.“사실은 귀여운 것도 있지만 안타까운 마음도 커요. 유진이한테 들어보니까 감옥에서 태어났대요. 태어날 때부터 청각장애를 앓았고요. 그런 환경 속에서 저렇게 잘 키워낸 걸 보면 언니도 참 대단해요.”한지영은 진심으로 탁유미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만약 자신이 그 상황이었더라면 절대 그렇게 못 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감옥?”백연신이 조금 놀란 얼굴로 물었다.“네. 아, 그리고 윤이 아버지는 이경빈이에요.”이건 그녀가 임유진의 월세방을 갔을 때 우연히 탁유미의 사건 파일을 보고 알게 된 사실이다.“이경빈? 해성시 이씨 가문의 그 이경빈?”“네.”한지영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참 아이러니하죠? 아버지는 모든 걸 다 가졌는데 그 아들은 정작 감옥에서 태어나고 지금은 일반 유치원으로 들어가는 것조차 이렇게 힘들어하고 말이에요.”그녀는 탁유미와 윤이가 안쓰러웠다.두 모자가 그간 어떤 일을 겪어왔는지 일반 사람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테니까.백연신은 뭔가 얘기하려다가 다시 입을 닫았다. 어차피 이건 남 얘기고 그는 이경빈과 탁유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잘 모르기에 섣불리 얘기할 수 없
백연신이 눈썹을 꿈틀거렸다.“왜, 내가 이경빈처럼 다른 사람 말만 듣고 네 말은 안 들을까 봐 겁나?”“연신 씨가 정말 그렇게 하면 난 절대 용서 안 할 거예요. 그때는 연신 씨를 철저하게 잊어버리고 바로 다른 남자랑 사랑...”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연신이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고 거칠게 입술을 부딪쳐왔다. 그녀의 말을 다 삼켜버릴 듯이 말이다.소유욕이 그대로 묻어나는 그런 키스였다.한지영은 처음에 괜히 발버둥 치다가 어느샌가 그의 키스에 푹 빠져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들어 백연신의 목에 둘렀다.그렇게 짧고 굵었던 키스가 끝이 나자 그녀의 얼굴을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두 눈은 촉촉하게 젖어있었다.“너는 나를 잊지도 못할 거고 다른 남자와 사랑도 못 할 거야.”한 치의 의심도 없는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한지영은 키스의 여운을 느끼며 호흡을 고르다가 괜히 심술을 부렸다.“그걸 연신 씨가 어떻게 확신하는데요?”그러자 백연신의 입술이 또다시 그녀의 입술을 탐해 왔다.한지영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가 이끄는 대로 끌려갈 뿐이었다. 그와의 키스는 정신을 잃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그렇게 또 정신없는 키스가 끝이 나고 두 사람의 입술이 천천히 떨어졌다. 한지영은 왠지 자신의 입술이 따갑게 부어오른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이래도 네가 날 잊을 수 있을 것 같아? 나 말고 다른 남자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백연신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한지영은 입술을 두 손으로 가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또 쓸데없이 입을 놀렸다가는 입술이 남아나지 않을 수도 있다.백연신은 아무 말 없는 그녀를 보더니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앞으로 그런 말은 하지 마. 사귀기로 한 날 약속했잖아. 절대 헤어지지 않기로. 앞으로 쭉 함께 있을 거라며.”한지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그냥...”“알아. 혹시 나중에 내가 이경빈처럼 네가 아닌 다른 사람 말을 믿을까 봐
올 것이 왔다. 이제 더는 피할 수가 없다.“뭐라고 쓰여 있는데...?”탁유미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사실 그녀는 우편물을 봤을 때부터 무슨 내용일지 예상하고 있었다.탁유미는 쓰게 웃으며 답했다.“이경빈이 나한테서 양육권을 빼앗겠다는 내용이요.”“그럼 빨리 유진 씨한테 얘기해. 우리 도와준다고 했잖아.”탁유미 엄마가 다급하게 말했다.탁유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에 든 우편물을 바라보았다.임유진이 도와준다고 해도 그녀에게는 감옥살이했던 경력도 있고 현재 경제적인 상황을 봤을 때도 이경빈이 압도적으로 유리하기에 이길 가능성은 현저히 적었다.하지만 이 말을 솔직하게 얘기하면 걱정할 게 뻔하니 엄마한테는 알리지 않기로 했다.“엄마, 유진 씨한테는 내가 얘기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이만 주무세요.”탁유미는 애써 괜찮은 척 말했다.“아니면 이경빈한테 한 번 더 빌어보는 건 어때? 솔직히 꼭 윤이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소용없을 거예요.”탁유미는 엄마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이경빈이 얼마나 냉랭한 사람인지 알고 있기에 그런 희망은 품지 않는다.설사 정말 그녀가 무릎을 꿇고 사정한다고 해도 그 남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게 분명했다.“엄마, 나 윤이 절대 안 뺏겨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탁유미는 쌔근쌔근 자고 있는 윤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그녀에게 있어 윤이는 목숨과도 같은 존재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든 양육권만큼은 꼭 사수할 것이다....“공수진 씨, 대표님께서는 현재 회의실에서 미팅 중이십니다.”이경빈의 비서가 깍듯한 태도로 공수진을 대했다. 회사 사람들은 공수진이 조만간 이씨 가문 안주인이 된다고 확신하는듯했다.“그럼 사무실로 가서 기다릴게요.”공수진은 미소를 지으며 대표이사실로 향했다. 그녀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는 직접 구운 쿠키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여유로운 겉모습과는 달리 공수진은 지금 상당히 불안한 상태였다.특히 탁유미가 이경빈의 아이를 낳았다는 말을 듣고 그 불안은 점점 더 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