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을 그렇게 환영해 줬던 동료들은 종잇장 뒤집듯 태도를 바꿨고 정한나는 이 모든 상황을 흐뭇하게 지켜만 보고 있었다.그녀가 원했던 장면이 바로 이거였다!임유진이 망신을 당하면 당할수록 그녀는 기분이 날아갈 듯 기뻤고 그동안 묵혔던 체증이 싹 내려가는 느낌까지 들었다.애초에 임유진만 아니었더라면 자신이 이전 로펌에서 해고되고 이곳저곳 헤매는 일도 없을 거라고 정한나는 그렇게 생각했다.그때 옆에서 쭉 지켜보던 남자 동료가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다들 그만해요.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같은 동료끼리. 그리고 유진 씨가 언제 회식비를 내겠다고 했어요. 오늘은 그냥 더치페이로 합시다.”그의 한마디에 신나서 떠들던 동료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쭈뼛거렸다.남자 동료가 말했듯 임유진은 단 한 번도 회식 턱을 내겠다고 한 적이 없었고 더군다나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 꾸준히 봐야 할 동료들이었기에 더치페이를 못 하겠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남자 동료는 일단 자기가 먼저 계산하고 이따 송금해 달라며 웨이터에게로 향했다.“계산할 필요 없으세요. 이미 어떤 분이 계산하셨거든요.”“네??”웨이터의 말에 룸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대체 누가 그 많은 돈을 선뜻 계산했단 말인가!“혹시 다른 테이블이랑 헷갈리신 건 아니에요? 저희 중 누구도 계산한 사람이 없어서요.”정한나가 물었다.“확실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웨이터는 옅게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룸을 빠져나갔다.룸에 남겨진 사람들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대체 누가 계산한 거지?그러다 문득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임유진에게로 향했다.임유진은 비틀거리다 간신히 가방을 들더니 조용히 읊조렸다.“계산... 다 했다고 하니까 이제 가도 되죠?”그러고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천천히 룸을 나갔다.머리는 점점 더 어지럽고 그녀는 이제는 눈앞의 길마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강지혁이... 계산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큰돈을 소리 소
누구지? 대체 누가 이런 말을 하는 거야?달콤하고 다정하기 그지없는 그 말에 임유진은 코끝이 시큰해지며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내가 평생 지켜줄게. 절대 너 억울한 일, 힘든 일 없게 내가 옆에서 널 지켜줄게.”‘아... 이건 혁이구나.’이건 강지혁이 그녀에게 해줬던 말이었다.강지혁이 해줬던 달콤한 말들은 마치 누가 재생 버튼을 누른 것처럼 임유진의 귓가에 맴돌았다.그만 생각해. 제발 그만 생각하라고...!임유진은 쭈그려 앉은 채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그때 희미하게나마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더욱더 선명하게 들려왔다.누구지?그녀의 눈에 검은색 구두가 들어왔다.천천히 고개를 들어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강지혁의 얼굴이다... 아까 그릴앤바 안에서 봤던 모습하고 똑같았다.취한 탓에 헛걸 보는 걸까? 이제는 환청뿐만 아니라 환각까지 보이는 걸까?임유진은 힘들게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너... 이제 내 앞에 나타나지 마.”그녀는 강지혁의 얼굴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간신히 마음을 정리하려나 싶다가도 그의 얼굴만 보면 또다시 마음이 일렁였다.한편 강지혁도 마찬가지로 눈앞에 있는 여인을 빤히 바라봤다.눈동자가 흐릿하고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것이 많이 취한 듯 보였다. 게다가 힘겹게 몸을 지탱하려고 애쓴다고는 하지만 금방이라도 바닥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강지혁은 한 발 앞으로 다가가 행여 임유진이 바닥에 넘어질까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다.그의 행동에 임유진의 미간이 찌푸려졌고 이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직도 아파?”그는 문득 자신이 잡은 곳이 아까 그녀가 다쳤던 왼쪽 허리라는 걸 깨닫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러다 임유진에게 가차 없이 폭력을 행사한 남자를 떠올리고 남은 한쪽 다리도 부러트릴 걸 그랬다며 이를 꽉 깨물었다.임유진은 몽롱한 눈으로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아직도 아프냐고? 어떻게 안 아플 수 있을까. 아까 맞은
강지혁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가만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혁아, 나 이제 네 생각하는 거 그만할래. 이제는 매일매일, 네 생각했던 거 그만둘래...”임유진은 취기를 빌어 그동안 묵혀뒀던 말들을 전부 다 전하려는 듯했다.“너한테는 한 사람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지 않는 게 그토록 쉬운 일이었구나. 우리는 대체... 누가 누구를 배신했던 걸까...? 맞다, 오늘은 고마워... 나 구해줘서 고맙고... 계산해준 것도 고마워. 하지만 난... 이제 너한테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아니다. 하나 있네. 이제 더는 네 생각 안 하고 너한테 이렇게 들러붙지도 않을게... 나 그 정도로 질척거리는 사람 아니야... 걱정하지 마...”임유진은 알까? 그녀가 내뱉은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강지혁의 심장에 꽂히고 있다는걸...강지혁은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턱하고 막혀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이미 헤어졌는데, 이제 더는 사랑하지 않는데 대체 왜 그녀는 아직도 그의 모든 감정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 수 있는 걸까?취기 때문에 어눌한 임유진의 말이, 임유진의 바보 같은 웃음이, 임유진의 모든 행동이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알겠으니까 그만 말해.”강지혁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듯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그러면... 딱 한 마디만 더 할게. 마지막으로 딱 한 마디만...”임유진은 천천히 발끝을 들더니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살포시 포갰다. 그녀의 술 냄새와 온기가 천천히 그의 입술 위에 퍼져갔다.강지혁은 어떠한 반응을 해야 하는지도 잊어버린 듯 몸이 돌처럼 굳어버렸다.반면, 임유진은 이 모든 키스에 그녀의 감정 전부를 담으려는 듯 그를 잡고 열심히 입을 맞췄다.키스가 길어지자, 강지혁의 심장은 점점 더 거세게 뛰기 시작했고 그녀의 허리를 감싸던 손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그는 지금 두려워하는 걸까? 도대체 무엇을?눈앞에 있는 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여자일 뿐이었지만 그는 지금 세상 그 무엇
하지만 강지혁의 앞에 채 도달하기도 전에 고이준에 의해 앞길이 막혀버렸다.“비켜!”한지영이 고이준을 피해 옆으로 가려고 하자 고이준은 또다시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그렇게 한참을 씩씩거려도 강지혁과 임유진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지 못하자 그녀는 고개를 돌려 지금 막 차에서 내린 백연신을 향해 외쳤다.“빨리 이 사람 좀 어떻게 해 봐요!”그에 백연신이 천천히 다가오더니 고이준이 아닌 강지혁을 향해 말했다.“강지혁 씨, 내 여자친구가 임유진 씨를 데려가야 해서요. 비서 좀 물려주시죠.”하지만 강지혁은 굳게 입을 다문 채 아무런 대꾸도 없이 여전히 품 안에 있는 여인만 바라보았다.“당신이 뭔데 유진이를 안아? 헤어지자며, 유진이한테 헤어지자며!”한지영은 예의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는 태도로 강지혁에게 소리를 질렀다.그녀는 임유진이 버스 정류장에 혼자 처량하게 앉아 있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돈이 많으면 사귀는 것도 마음대로고 헤어지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야? 돈 없는 사람은 그걸 그냥 당하고만 있어야 해? 강지혁 당신은 이 관계를 게임으로 여겼는지 몰라도 유진이는 아니었어. 당신이 한 번이라도 유진이 생각을 했다면 이래서는 안 됐다고! 소민준 그 자식 때문에 상처받고 억울하게 옥살이한 걸 겨우 이겨낸 애한테 다른 누구도 아닌 강지혁 당신이 칼을 꽂아?!”한지영은 지난번 강씨 저택에 찾아가 그를 만나지 못해 미처 전하지 못했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뱉어냈다.강지혁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져 가자 고이준이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근 몇 년을 돌아봐도 강지혁의 바로 앞에 대고 이렇게 할 말을 다 한 여자는 아마 한지영이 처음일 것이다.고이준은 초조한 마음이 드는 한편 친구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한지영이 조금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고 비서, 비켜 서.”한참이 지나서야 강지혁의 입이 열렸다.고이준이 물러서자 한지영은 재빠르게 달려가 술에 잔뜩 취해 강지혁의 품에 쓰러진 친구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으으... 그만...
백연신은 서둘러 한지영에게로 다가가 그녀를 자신의 뒤에 숨겼다.“강지혁 씨, 지영이는 그저 친구를 위해 나선 것뿐이에요. 기분이 상했다면 나하고 얘기하시죠. 책임은 내가 집니다.”“연신 씨가 나설 필요 없어요. 책임은 내가 져요!”한지영이 백연신을 향해 외쳤다.“네가 뭘 책임져!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조용히 해!”백연신이 그녀를 향해 화를 냈다.“맞을 각오 돼 있으니까 날 때리든 반 죽여놓든 마음대로 하라고 해요!”“한지영, 조용히 하라고 했지! 나 미치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백연신은 항상 한지영 앞에만 서면 감정 컨트롤이 제대로 되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강지혁의 서늘한 시선이 백연신 너머의 한지영에게로 향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절대 쉽게 넘어가지는 않을 듯싶다.하지만 바로 그때, 잠들어 있는 줄 알았던 임유진이 한지영의 어깨에 머리를 비비적거리며 말했다.“우리 지영이는... 내가 지켜줄 거야...”술에 취해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도 자신을 지키겠다는 친구의 한마디에 한지영의 눈시울이 붉어졌다.강지혁은 그런 임유진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리고 옆에 있던 고이준도 다급하게 그의 뒤를 쫓아갔다.한지영은 강지혁이 떠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등이 식은땀으로 가득 찼다는 걸 깨달았다.“너 다음번에도 오늘처럼 운이 좋을 거라는 생각 하지 마.”백연신이 그녀를 향해 경고하듯 말했다.그가 굳이 짚어주지 않아도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그녀도 알고 있다. 강지혁이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자리를 뜬 건 아마 임유진 때문일 것이다.“타.”백연신은 한지영과 임유진을 뒷좌석에 태우고 임유진의 월세방으로 향했.집에 도착한 후 한지영은 임유진에게 잠옷을 갈아입혀 주고 침대에 눕혀준 뒤에야 백연신과 함께 집을 떠났다.다시 차로 돌아와 두 사람은 나란히 앞 좌석에 앉았다. 백연신이 뭐라고 얘기를 꺼내기 전에 한지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나도 내가 오늘 무모했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아까
“나 학창 시절 때 누가 반에서 돈을 훔쳤던 일이 있었어요. 당신 그 범인으로 내가 지목됐죠. 선생님은 앞장서서 내가 범인이라고 단정을 지어버렸고 부모님마저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어요. 그저 딸이 저지른 일을 수습하기에 급급했죠.”그 상황이 떠올랐는지 한지영의 코가 시큰해졌다.“그때 내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상상이 가요? 내가 믿어왔던 세상에 배신당하는 그런 기분이었어요. 내가 아니라고 계속 얘기를 했는데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날 믿어준 게 유진이었어요. 나를 도와 돈을 훔쳐 간 애를 잡아주기도 했죠.”한지영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걸렸다.“그때 알았어요. 내 평생 친구는 유진이뿐이라고요!”백연신은 그녀의 말을 듣고는 조금 다른 감정이 들었다.고작... 어릴 때 있었던 그 작은 일 때문에 임유진을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다고?물론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사생아인 탓에 서로 모함하고 음해가 판을 치는 환경에서 자라왔기에 억울하고 분한 마음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다만 그런 성장 과정에서 백연신이 깨달은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억울한 상황에서는 열심히 결백을 얻을 게 아니라 조용히 힘을 길러서 그대로 갚아 주는 것이다.마치 지금 적기에 백씨 가문 실세가 되어 그를 음해했던 여자와 그 두 아들에게 본때를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그래서 유진 씨가 감옥에 들어갔을 때도 아무런 의심 없이 믿어준 거야?”백연신이 물었다.“네, 내가 아는 유진이는 절대 남을 해칠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유진이가 아니라고 하면 정말 아닌 거예요. 그리고 친구니까 이 정도의 믿음은 당연한 거 아니에요?”한지영의 말에 백연신은 그만 말 문이 막혔다.세상에는 모르는 사람보다 바로 그 친구라는 관계에서 배신당해 서로 죽네 사네하는 일이 많았다. 하여 단지 임유진이 어릴 적 그녀를 도와줬다는 이유 하나로 무모한 짓까지 자처하는 모습은 백연신의 눈에는 바보짓이나 다름없었다.하지만... 바로 그런 ‘바보’ 같은 모습 때문에
백연신은 한지영의 손을 감싸더니 동요 따위는 없는 얼굴로 얘기했다.“응, 그 상대가 강지혁이라 할지라도 나는 네가 원하면 할 거야.”그녀를 위해서라면,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백연신은 그 누구와도 적이 될 준비가 되어있다.한지영이라는 여자를 사랑하고 있으니까.이건 사랑이 틀림없다. 한지영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지만, 그 어느 감정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기지 못했다.그녀와 떨어져 있던 3년간, 처음에는 그 감정이 분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미 그는 그때부터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고 3년이라는 그리움이 더해져 그 사랑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지영아, 네가 원하는 거면 난 뭐든 해.”백연신의 말에 한지영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그의 눈빛, 그의 목소리가 마치 해일처럼 그녀를 덮쳐왔다....다음날, 임유진은 휴대폰 알람 덕분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보니 아직도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것이 숙취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머리맡에는 어젯밤 한지영이 남긴 메모가 있었고 이것으로 임유진은 자신을 집까지 데려다준 사람이 한지영이라는 걸 알게 됐다.또한, 메모 옆에는 새 옷과 새 신발이 놓여있었는데 이건 한지영이 그녀의 취직 기념으로 선물해 준 것이었다. 선물을 보자 임유진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왔다.과음한 탓인지 두통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녀는 서둘러 씻은 후 아침도 먹지 않고 바로 버스에 몸을 실었다.버스에 앉아 한숨을 돌리고 나니 어젯밤 일들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그릴앤바를 나선 후 얼핏 강지혁을 만나 이런저런 말을 한 것까지는 기억이 났지만, 그에게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임유진은 두통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아 관자놀이를 주물렀다.어젯밤 그녀가 뭐라고 했든 간에 이미 입 밖으로 꺼낸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었고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되짚어 봤자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어제 그를 만난 건 우연이었을 테고 앞으로 그런 우연
지금 시대에 신데렐라처럼 능력 있고 돈 많은 남자친구를 만난 여자들이 남자친구의 돈을 쓰는 것을 거부하고 자발적으로 고달픈 생활을 계속해나가는 예도 많지 않은가?이 여자 동료는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느꼈다. 방금 동료들 몇이 모여서도 어제 누가 계산을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아니에요.”임유진이 부정했다. 과거에는 그랬다 하더라도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네? 아니에요?”그 여자 동료는 임유진이 그렇게 단호하게 부정하는 것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한나 씨가 말했었는데...”“한나 씨가 내 남자친구가 누구라고 말하면 내 남자친구가 그 사람이 되는 건가요?” 임유진이 반문했다. 상대방은 그 말에 당황하여 말문이 막혔다. 임유진은 물을 가득 채운 컵을 들고 탕비실에서 나온 뒤, 자리로 돌아가 그녀에게 맡겨진 일을 시작했다. 그녀에게 사사로운 감정은 이미 과거일 뿐이고 지금 그녀가 해야 할 일은 열심히 일하면서 이 도시에서... 다시 한번 변호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이었다! 그것만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길이었다!한지영은 오전 내내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은 백연신의 얼굴과 그가 한 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말했다... 그녀의 수중에 있는 칼이 될 수 있다고, 심지어 그녀가 대적하고 싶은 상대가 강지혁이라 할지라도 상관없다고. 남자가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부류의 말들은 그저 달콤한 속삭임이 아닐까! 정말로 강지혁과 대적하려면 아마도 백선 그룹 전체를 다 걸어야 할 텐데, 조금이라도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손해 보는 거래는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백연신이 이런 말을 할 때... 그녀는 이 말이 마치 진짜인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백연신이 그녀를 위해 그가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어렵게 얻은 백선 그룹을 기꺼이 걸고, 그녀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용의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남자가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