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강지혁의 앞에 채 도달하기도 전에 고이준에 의해 앞길이 막혀버렸다.“비켜!”한지영이 고이준을 피해 옆으로 가려고 하자 고이준은 또다시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그렇게 한참을 씩씩거려도 강지혁과 임유진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지 못하자 그녀는 고개를 돌려 지금 막 차에서 내린 백연신을 향해 외쳤다.“빨리 이 사람 좀 어떻게 해 봐요!”그에 백연신이 천천히 다가오더니 고이준이 아닌 강지혁을 향해 말했다.“강지혁 씨, 내 여자친구가 임유진 씨를 데려가야 해서요. 비서 좀 물려주시죠.”하지만 강지혁은 굳게 입을 다문 채 아무런 대꾸도 없이 여전히 품 안에 있는 여인만 바라보았다.“당신이 뭔데 유진이를 안아? 헤어지자며, 유진이한테 헤어지자며!”한지영은 예의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는 태도로 강지혁에게 소리를 질렀다.그녀는 임유진이 버스 정류장에 혼자 처량하게 앉아 있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돈이 많으면 사귀는 것도 마음대로고 헤어지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야? 돈 없는 사람은 그걸 그냥 당하고만 있어야 해? 강지혁 당신은 이 관계를 게임으로 여겼는지 몰라도 유진이는 아니었어. 당신이 한 번이라도 유진이 생각을 했다면 이래서는 안 됐다고! 소민준 그 자식 때문에 상처받고 억울하게 옥살이한 걸 겨우 이겨낸 애한테 다른 누구도 아닌 강지혁 당신이 칼을 꽂아?!”한지영은 지난번 강씨 저택에 찾아가 그를 만나지 못해 미처 전하지 못했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뱉어냈다.강지혁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져 가자 고이준이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근 몇 년을 돌아봐도 강지혁의 바로 앞에 대고 이렇게 할 말을 다 한 여자는 아마 한지영이 처음일 것이다.고이준은 초조한 마음이 드는 한편 친구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한지영이 조금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고 비서, 비켜 서.”한참이 지나서야 강지혁의 입이 열렸다.고이준이 물러서자 한지영은 재빠르게 달려가 술에 잔뜩 취해 강지혁의 품에 쓰러진 친구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으으... 그만...
백연신은 서둘러 한지영에게로 다가가 그녀를 자신의 뒤에 숨겼다.“강지혁 씨, 지영이는 그저 친구를 위해 나선 것뿐이에요. 기분이 상했다면 나하고 얘기하시죠. 책임은 내가 집니다.”“연신 씨가 나설 필요 없어요. 책임은 내가 져요!”한지영이 백연신을 향해 외쳤다.“네가 뭘 책임져!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조용히 해!”백연신이 그녀를 향해 화를 냈다.“맞을 각오 돼 있으니까 날 때리든 반 죽여놓든 마음대로 하라고 해요!”“한지영, 조용히 하라고 했지! 나 미치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백연신은 항상 한지영 앞에만 서면 감정 컨트롤이 제대로 되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강지혁의 서늘한 시선이 백연신 너머의 한지영에게로 향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절대 쉽게 넘어가지는 않을 듯싶다.하지만 바로 그때, 잠들어 있는 줄 알았던 임유진이 한지영의 어깨에 머리를 비비적거리며 말했다.“우리 지영이는... 내가 지켜줄 거야...”술에 취해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도 자신을 지키겠다는 친구의 한마디에 한지영의 눈시울이 붉어졌다.강지혁은 그런 임유진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리고 옆에 있던 고이준도 다급하게 그의 뒤를 쫓아갔다.한지영은 강지혁이 떠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등이 식은땀으로 가득 찼다는 걸 깨달았다.“너 다음번에도 오늘처럼 운이 좋을 거라는 생각 하지 마.”백연신이 그녀를 향해 경고하듯 말했다.그가 굳이 짚어주지 않아도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그녀도 알고 있다. 강지혁이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자리를 뜬 건 아마 임유진 때문일 것이다.“타.”백연신은 한지영과 임유진을 뒷좌석에 태우고 임유진의 월세방으로 향했.집에 도착한 후 한지영은 임유진에게 잠옷을 갈아입혀 주고 침대에 눕혀준 뒤에야 백연신과 함께 집을 떠났다.다시 차로 돌아와 두 사람은 나란히 앞 좌석에 앉았다. 백연신이 뭐라고 얘기를 꺼내기 전에 한지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나도 내가 오늘 무모했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아까
“나 학창 시절 때 누가 반에서 돈을 훔쳤던 일이 있었어요. 당신 그 범인으로 내가 지목됐죠. 선생님은 앞장서서 내가 범인이라고 단정을 지어버렸고 부모님마저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어요. 그저 딸이 저지른 일을 수습하기에 급급했죠.”그 상황이 떠올랐는지 한지영의 코가 시큰해졌다.“그때 내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상상이 가요? 내가 믿어왔던 세상에 배신당하는 그런 기분이었어요. 내가 아니라고 계속 얘기를 했는데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날 믿어준 게 유진이었어요. 나를 도와 돈을 훔쳐 간 애를 잡아주기도 했죠.”한지영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걸렸다.“그때 알았어요. 내 평생 친구는 유진이뿐이라고요!”백연신은 그녀의 말을 듣고는 조금 다른 감정이 들었다.고작... 어릴 때 있었던 그 작은 일 때문에 임유진을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다고?물론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사생아인 탓에 서로 모함하고 음해가 판을 치는 환경에서 자라왔기에 억울하고 분한 마음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다만 그런 성장 과정에서 백연신이 깨달은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억울한 상황에서는 열심히 결백을 얻을 게 아니라 조용히 힘을 길러서 그대로 갚아 주는 것이다.마치 지금 적기에 백씨 가문 실세가 되어 그를 음해했던 여자와 그 두 아들에게 본때를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그래서 유진 씨가 감옥에 들어갔을 때도 아무런 의심 없이 믿어준 거야?”백연신이 물었다.“네, 내가 아는 유진이는 절대 남을 해칠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유진이가 아니라고 하면 정말 아닌 거예요. 그리고 친구니까 이 정도의 믿음은 당연한 거 아니에요?”한지영의 말에 백연신은 그만 말 문이 막혔다.세상에는 모르는 사람보다 바로 그 친구라는 관계에서 배신당해 서로 죽네 사네하는 일이 많았다. 하여 단지 임유진이 어릴 적 그녀를 도와줬다는 이유 하나로 무모한 짓까지 자처하는 모습은 백연신의 눈에는 바보짓이나 다름없었다.하지만... 바로 그런 ‘바보’ 같은 모습 때문에
백연신은 한지영의 손을 감싸더니 동요 따위는 없는 얼굴로 얘기했다.“응, 그 상대가 강지혁이라 할지라도 나는 네가 원하면 할 거야.”그녀를 위해서라면,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백연신은 그 누구와도 적이 될 준비가 되어있다.한지영이라는 여자를 사랑하고 있으니까.이건 사랑이 틀림없다. 한지영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지만, 그 어느 감정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기지 못했다.그녀와 떨어져 있던 3년간, 처음에는 그 감정이 분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미 그는 그때부터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고 3년이라는 그리움이 더해져 그 사랑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지영아, 네가 원하는 거면 난 뭐든 해.”백연신의 말에 한지영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그의 눈빛, 그의 목소리가 마치 해일처럼 그녀를 덮쳐왔다....다음날, 임유진은 휴대폰 알람 덕분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보니 아직도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것이 숙취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머리맡에는 어젯밤 한지영이 남긴 메모가 있었고 이것으로 임유진은 자신을 집까지 데려다준 사람이 한지영이라는 걸 알게 됐다.또한, 메모 옆에는 새 옷과 새 신발이 놓여있었는데 이건 한지영이 그녀의 취직 기념으로 선물해 준 것이었다. 선물을 보자 임유진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왔다.과음한 탓인지 두통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녀는 서둘러 씻은 후 아침도 먹지 않고 바로 버스에 몸을 실었다.버스에 앉아 한숨을 돌리고 나니 어젯밤 일들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그릴앤바를 나선 후 얼핏 강지혁을 만나 이런저런 말을 한 것까지는 기억이 났지만, 그에게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임유진은 두통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아 관자놀이를 주물렀다.어젯밤 그녀가 뭐라고 했든 간에 이미 입 밖으로 꺼낸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었고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되짚어 봤자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어제 그를 만난 건 우연이었을 테고 앞으로 그런 우연
지금 시대에 신데렐라처럼 능력 있고 돈 많은 남자친구를 만난 여자들이 남자친구의 돈을 쓰는 것을 거부하고 자발적으로 고달픈 생활을 계속해나가는 예도 많지 않은가?이 여자 동료는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느꼈다. 방금 동료들 몇이 모여서도 어제 누가 계산을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아니에요.”임유진이 부정했다. 과거에는 그랬다 하더라도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네? 아니에요?”그 여자 동료는 임유진이 그렇게 단호하게 부정하는 것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한나 씨가 말했었는데...”“한나 씨가 내 남자친구가 누구라고 말하면 내 남자친구가 그 사람이 되는 건가요?” 임유진이 반문했다. 상대방은 그 말에 당황하여 말문이 막혔다. 임유진은 물을 가득 채운 컵을 들고 탕비실에서 나온 뒤, 자리로 돌아가 그녀에게 맡겨진 일을 시작했다. 그녀에게 사사로운 감정은 이미 과거일 뿐이고 지금 그녀가 해야 할 일은 열심히 일하면서 이 도시에서... 다시 한번 변호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이었다! 그것만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길이었다!한지영은 오전 내내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은 백연신의 얼굴과 그가 한 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말했다... 그녀의 수중에 있는 칼이 될 수 있다고, 심지어 그녀가 대적하고 싶은 상대가 강지혁이라 할지라도 상관없다고. 남자가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부류의 말들은 그저 달콤한 속삭임이 아닐까! 정말로 강지혁과 대적하려면 아마도 백선 그룹 전체를 다 걸어야 할 텐데, 조금이라도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손해 보는 거래는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백연신이 이런 말을 할 때... 그녀는 이 말이 마치 진짜인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백연신이 그녀를 위해 그가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어렵게 얻은 백선 그룹을 기꺼이 걸고, 그녀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용의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남자가 한
기껏해야 몇 개 주거지용 토지의 프로젝트를 따낼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주택가의 집들이나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지영 씨, 저기 안에 들어가서는 정신을 딴 데 팔면 안 돼. 오늘 만날 분들은 다 부동산 회사의 고위 인사들이야.”소장은 한지영에게 당부했다.“알겠어요.” 한지영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대답했다.일행이 로비로 들어섰을 때, 한지영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로비 안에 있는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했다. 바로 진세령이었다! 유진을 감옥에서 고생하게 만든 바로 그 여자, 진 씨 가문의 둘째 딸인 진세령을 한지영은 몹시 증오하고 있었다. 연예계에서 퇴출당했더라도 가문 덕분에 진세령은 여전히 진화 그룹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은 부잣집 딸로 돌아갈 수 있었다.지금 진세령은 특별히 주문 제작한 고급스러운 옷들을 입고 있었고 어깨 위로 떨어지는 긴 웨이브 머리와 섬세한 메이크업이 한껏 눈부셔 보였다. 그녀 주변에는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한지영 곁에 서 있던 소장도 웃음을 띠며 진세령에게 다가가 열정적으로 인사를 나눴다. 그제야 한지영은 진세령이 오늘 진 씨 가문 산하의 부동산 회사를 대표하여 경매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세령과 같은 신분을 가진 사람은 많은 이들이 아부하고자 하는 대상이다. 만약 진 씨 가문이 경매에서 성공한 다음 그 프로젝트를 따낼 수만 있다면 그 디자인 스튜디오의 입장에서는 올 한해가 걱정 없을 큰 일거리가 될 것이다!한지영은 평소 사무실에서 엄격한 모습의 소장이 연신 웃으며 진세령에게 아부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화 속에서 그녀는 진 씨 가문이 이번 경매에서 가장 인기 있는 토지를 반드시 손에 넣으려 한다는 것을 알아챘다.“소장님 스튜디오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만약 앞으로 협력할 기회가 있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하지만...”진세령의 말투가 바뀌면서 시선이 한지영에게로 향했다.“소장님 스튜디오에서 저와 거래를 하려고 한다면 적어도 제 취향은
“어떻게 뻔뻔하게 이런 말을 하지? 나가라고 하면 또 어쩔 건데?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진세령 쪽에서 그녀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그녀를 위해 나섰다.“나가라고? 어느 법에서 내가 여기 들어오면 안 된다고 규정했는데? 나더러 나가라고? 분명히 말하는데, 나는 당신의 행동에 대해 고소할 수 있어!”한지영은 완강하게 말했다“고소한다고? 좋아, 네가 나를 어떻게 고소할지 한번 보자고!”말하며 상대방은 자신의 곁에 있는 두 명의 건장한 부하들에게 지시했다.“이 사람을 당장 쫓아내 버려, 괜히 세령 씨를 기분 상하게 하지 말고!”두 명의 건장한 부하가 다가와서 각각 한지영의 두 팔을 잡고 한지영의 밖으로 끌어내려고 했다.동 소장과 다른 동료들은 아무도 감히 한지영의 편을 들어주지 못했다.진세령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띠었고 시선은 조롱하듯 한지영을 쳐다보면서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이 결국 나가줘야겠네. 임유진은 보호자가 있지만, 그게 당신에게도 해당하는 건 아니니까. 앞으로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날 때마다 나는 당신을 내쫓을 거야.”한지영은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하지만 이런 장소에서 그녀는 진세령에게 맞서 싸울 방법이 없었다. 그녀가 발버둥 칠수록 자신을 더욱 굴욕적이고 창피하게 만들 뿐이다.왜... 진세령과 같은 사람들은 좋은 가정 배경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마음대로 굴욕을 주고 괴롭혀도 되는 것일까?마치 옛날에 그녀가 임유진의 손톱을 하나하나 뽑아냈던 것처럼.그녀도 진세령에게 이렇게 굴욕을 당하고 그저 참아야만 하는 걸까? 단지 상대가 거대한 진 씨 가문의 딸이기 때문에?한지영이 저항하기를 포기하려고 할 때,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래요? 제 여자친구가 언제부터 다른 사람들 마음대로 드나들어야 하는지 몰랐네요.”한지영은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이 목소리는...이윽고 긴 실루엣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백연신이다!한지영은 눈앞에 나타난 이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는
백연신이 일부러 여유롭게 손을 털면서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은 사과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군요. 여자친구가 이런 모욕을 당했는데 남자친구로서 당연히 기분을 풀어줘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남들이 보고 웃지 않겠어요?”남자는 지금 맞아서 바닥에 고꾸라져 있었는데 방금 주먹에 맞은 부위가 너무 아파서 말을 할 겨를이 없었다.백연신은 다시 진세령 쪽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그럼 당신은요? 진 씨 가문의 둘째 따님, 당신은 사과할 생각이 있어요?”겉보기에는 예의 바르게 물어보는 것 같지만 그 말투는 위험성이 다분했다. 심지어 진세령은 만약 자신이 거절한다면 아마 이미 맞아서 바닥에 쓰러진 그 남자와 같은 최후를 맞이할 것이라고 느꼈다.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절대 여자라고 봐주지 않을 것이다. 진세령은 이미 눈앞의 이 남자를 알아보았다. 바로 백씨 가문의 새로운 가주로서 자리에 오른 지 이제 반년이 넘은 백연신이였다. 사생아의 신분으로 백씨 가문을 손에 넣은 사람이니 그 수단과 계략은 더 말할 것 없이 독한 사람일 것이다.백씨 가문은 현재 기세가 등등하여 적극적으로 S시의 시장을 개척하고 있지만, 진 씨 가문은 최근 몇 년간 발전이 그리 좋지 못했고 손에 있는 몇 개 큰 프로젝트에서도 손실을 보았다. 얼마 전 아버지도 몇 개 프로젝트를 백씨 가문과 협력하고자 한다고 말씀했었다. 하지만 백연신의 여자친구가... 바로 임유진의 그 친구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진세령은 낯빛이 어두워지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녀는 이 세상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작다고 느꼈다. “사과 안 하려는 겁니까?”백연신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진세령은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아까는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분께...” “한지영, 제 여자친구의 이름은 한지영입니다.”백연신이 말했다.“한지영 씨, 실례가 많았습니다.”말을 마치고 진세령은 하이힐을 밟으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한지영은 아직도 정신이 채 돌아오지 않았다. 백연신이 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