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비어있다고 하기보다는 마지막 페이지에 사진이 딱 한 장 있었는데 임유진의 사진이었다. 그녀가 잔꽃무늬 치마를 입은 사진이었는데 예전에 강지혁이 예쁘다며 그녀에게 달라고 했던 그 사진이다. 임유진은 이 사진이 그의 앨범에 들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앨범이 있던 자리 아래에 작은 은팔찌가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에 그녀는 앨범에만 집중해서 이 팔찌를 놓쳤다. 이 팔찌는... 임유진의 가슴이 갑자기 조여왔다. 그녀는 이것이 강현수가 항상 가지고 다니던 팔찌라는 것을 기억했다. 왜 혁이한테 있는 걸까? 아니, 이 팔찌는 강현수의 팔찌가 아니다!임유진은 작은 은팔찌를 집어 들었다. 이 팔찌는 디자인과 크기는 강현수의 팔찌와 같지만, 산화가 더 심해서 표면이 좀 더 어둡고 강현수가 자주 만지며 빛나게 했던 그 팔찌보다 덜 반짝인다. 그렇다면 이 팔찌는... 임유진은 외할머니가 남긴 보석함이 문득 떠올랐다. 원래 그 보석함에 있어야 할 한 쌍의 작은 팔찌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만약... 이 팔찌가 바로 그 팔찌라면?! 하지만 왜... 이게 혁이의 방에 있는 걸까? 임유진의 마음이 갑자기 불안해졌다. 마치 그녀가 모르는 무언가가 곧 일어날 것처럼. 그리고 이 수수께끼는 오직 혁이만이 그녀에게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임유진은 작은 은팔찌를 손에 쥔 채 방을 떠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 도착하자마자, 바깥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임유진이 빠르게 다가가 보니 한 여자가 안으로 들어가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몇 명의 사용인이 막고 있었고 그 여자 앞에는 강지혁과 고이준이 서 있었다.“대표님, 죄송합니다. 이 여자가 갑자기 여기에 나타날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잘 처리하겠습니다.” 사용인들에게 막혀있는 그 여자를 임유진은 이제 알아봤다. 그녀는... 임유진에게 최면 치료를 해주려 했던 안은영이었다!이때, 안은영은 임유진 쪽을 향해 있었기에 임유진이 나타나자마자 곧바로 외쳤다.“임유진 씨, 강 대표님께
안은영이 갑자기 난입해 소동을 일으킨 것은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상황을 임유진이 목격했다는 점이었다. 강지혁이 이후에 책임을 묻는다면 고이준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생각에 고이준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고 이어서 그는 조용해진 의사를 힐끗 바라보았다. 강씨 저택에 갑자기 나타나 이런 일을 벌인 건 두려움 때문일까? 직장을 잃어버릴까 봐 임유진에게 최면을 건 적이 없다고 증명하려고 급했던 것일까? 이런 이유는 너무 단순한 게 아닌가? 원래 그는 안은영을 해외 회의에 참석하게 하고 겸사겸사 휴가를 보내게 한 것뿐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고이준의 눈빛이 변하였다. 강지혁 곁에서 많은 일을 겪으며 한 가지 도리를 깨달았었다.‘비정상적인 일의 흐름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아마도 좀 더 조사를 해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때, 강씨 저택에서는 강지혁이 임유진에게 웃으며 말했다. “자, 아침 식사부터 하자.”“혁아,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임유진은 그와 함께 부엌으로 가지 않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 “방금 네가 본 것처럼, 네가 예전에 진료를 받았던 의사가 여기 와서 소란을 피웠어.”강지혁은 마치 별일 아닌 것처럼 가볍게 말했다. “나중에 더 좋은 의사를 찾아서 네 두통이 정확히 어떤 문제인지 다시 확인해볼게.”그는 다시 그녀의 손을 잡고 부엌으로 가려고 했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안은영 선생님을 알아? 내가 선생님을 찾아간 게 최면과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거야?”임유진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며 마음속의 의문을 털어놓았다. 강지혁의 얼굴에 있던 미소는 점점 입가에서 사라져 갔다. “오늘은 네 생일인데 꼭 이런 얘기를 해야겠어?”“혁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진심으로 알고 싶어!”임유진이 말했다. 마음속이 혼란스러웠다. 자신과 관련된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응.”강지혁의 대답에 임유진의 마음속은 복잡한 감정이 뒤섞였다. “왜 그런 거야?” “왜냐고?”그는 갑자기 팔을 들어 임유진을 조심스럽게 안아 주었다. “그럼 너는 왜 의사를 찾아 최면을 받으려 했어? 강현수와의 기억을 되찾고 싶었던 거야? 그 기억이 그렇게도 아쉬웠어? 두 사람은 어렸을 때 단 하루만 같이 지냈을 뿐이야. 지금 네 곁에는 내가 있잖아.”강지혁의 목소리는 마치 평범한 일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차분했지만 임유진의 귀에 들리는 내용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는 심지어... 자신과 강현수가 어렸을 때 단 하루만 같이 지냈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마치 그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모르는 사람은 그녀였던 것처럼! 임유진의 몸이 굳어진 것을 느끼고 강지혁은 그녀를 더 세게 안았다. 그의 입술은 그녀의 귀에 닿으며 속삭였다. “그 기억 찾지 마. 나 하나로 부족해?”그녀는 반드시 그 기억을 되찾으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그 기억을 모두 묻어버리기로 했었고 그저 자신만의 작은 비밀로 삼으려 했을 뿐이었다. “나와 강현수 씨 사이는...”하지만 그녀가 말을 시작하기 무섭게 강지혁에 의해 말이 끊겼다. “됐어, 말하지 마! 나는 너와 강현수 사이의 어떤 것도 듣고 싶지 않아!”그는 임유진을 꽉 안고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혁아, 들어봐... 들어줘...”“이미 말했잖아. 너와 강현수 사이의 어떤 것도 듣고 싶지 않다고! 어제 두 사람이 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든 나는 그것을 모른 척할 수 있어. 하지만 앞으로 강현수와 어떤 연락도 하지 마! 강현수를 마음에 두지도 말고 생각하지도 말고 그리워하지도 마!”그의 팔은 마치 임유진을 완전히 자신의 몸속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강지혁이 양보할 수 있는 한계였다! 그는 여자 때문에 이렇게까지 양보한 적이 없었다! 그의 자존심, 그의 존엄이 모두 임유진에 의해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그녀를 갖고 싶었다. 임유진은 강지혁에
그래서... 이게 바로 강지혁이 말한 여기까지 하자는 뜻인가?!임유진은 눈앞에 있는 미완성 케이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때 그녀는 이 케이크를 볼 때 마음이 기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코가 시큰한 느낌이 든다. 여기서 끝나면... 이대로 끝나면, 그녀와 강지혁 사이에는 영원히 오해가 있을 것이다. 어찌 됐든 그녀는 얘기를 분명하게 해야 했다! “혁아, 나와 강현수 씨 사이는 정말...”임유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지혁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무겁게 내려앉아 모든 소리를 막았다. 강지혁은 그녀의 입술을 벌주듯 한 번 깨물었다. “내가 이미 말했잖아, 너와 강현수 사이의 일 다시는 언급하지 말자고. 두 사람이 예전에 어땠는지 상관없어, 너는 앞으로 내 옆에만 잘 있으면 돼.”입술은 분명 뜨겁지만, 임유진은 어쩐지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강지혁은 그녀의 설명을 신경 쓰지 않고, 그녀의 말을 믿지 않으며, 그가 원하는 것은 그저 그녀가 곁에 있는 것뿐인가? “그럼 내가 이미 기억이 돌아왔고 나와 강현수 씨가 겪은 어릴 때 일을 이미 다 기억해냈다고 해도 상관없어?”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이윽고 주변의 공기는 한순간에 얼어붙은 듯했다. 강지혁의 동공이 갑자기 급격히 수축하며 표정에 변화가 일었다. “너... 기억났어?”그의 목소리에는 눈치채기 어려운 떨림이 있었다. “응, 기억났어.”임유진이 말했다. 강지혁의 얼굴색은 갑자기 안 좋아졌고 까만 눈동자 속에는 그녀의 얼굴이 비쳤다. 그녀는 기억이 이미 돌아왔다. 임유진은 그녀와 강현수 사이의 모든 것을 기억해냈다. 그가 한 모든 것들이 헛된 노력에 불과했다!“하하... 하하... 하하하... 기억이 돌아왔었구나!”강지혁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그의 웃음소리는 임유진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런 웃음은 마치 무언가를 억누르면서도 동시에 무언가를 터뜨리고 싶은 듯한 모순된 느낌을 주었다. “혁아, 그만 웃어.”임유진이 소리쳤다. 그의 웃음소리가 갑자기
만약 강지혁이 임유진을 믿는다면, 그녀가 그의 아버지 사진 앞에서 한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맹세를 믿어야 했다!만약 강지혁이 임유진을 믿는다면,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강지혁이라는 것을 믿어야 했다! 만약 강지혁이 임유진을 믿는다면, 할머니의 팔찌를 숨기고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의도적으로 막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믿지 않았다, 임유진은 마치 온몸이 차가운 얼음물에 잠긴 것처럼 느껴졌다. 강지혁의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믿으라고 했지만, 강현수가 그녀를 업고 오는 모습을 봤을 때, 그녀가 기억을 찾기 위해 그를 속이며 병원에 여러 번을 갔을 때, 그는 자신이 그녀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기분은 정말 최악이었다! 임유진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네가 나를 믿는 게 어렵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까? 강현수는...”“됐어! 내가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강지혁의 손이 갑자기 그녀의 목을 움켜쥐며 모든 소리를 막았다.“강현수는 너를 믿는 거야? 그래서 강현수는 너와 함께 할 수 있는 거야?”강현수, 강현수... 그녀의 마음속에 강현수는 마치 낙인처럼 새겨져 있어 그를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것일까? 그는 강현수를 임유진에게서 지우려고 번번이 시도했지만, 결코 완벽하게 지워낼 수 없었다. 그녀의 가느다란 목이 그의 손가락 사이에 있었고, 그가 조금만 힘을 주면 그녀의 목을 바로 꺾을 수 있었지만... 그의 손은 계속 떨고 있었다. 심하게 떨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그를 이렇게 화나게 했다면, 그는 주저하지 않고 손을 쓸 텐데 그 사람이 임유진일 때는, 그녀를 조금이라도 다치게 하는 것이 그에게는 고통스러운 일로 느껴졌다!“혁아, 겁쟁이가 무엇인지 알아? 바로 네가 누군가를 미워하면서도, 결국 그 사람을 다치게 하지 못하는 거야.” 아버지의 목소리가 다시 그의 귓가에 울려 퍼진다! 그렇다, 다칠까 봐 겁나는구나! 겁이 나는
“너... 지쳤어?” 임유진은 더듬거리며 마치 그의 말만 반복할 수 있는 로봇처럼 말했다. “그래, 나 지쳤어. 그래서 우리 사이는 끝났어!” 강지혁이 말했다. 너무 지쳤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이렇게도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든다면, 이렇게 떨리고 불안하게 지낼 것이라면, 그는 차라리 사랑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녀의 마음속에 언제나 강현수를 위한 자리가 있다면, 그 나머지 몫은 그에게 필요 없었다.아버지가 자신의 눈앞에서 죽었을 때, 그는 이생에서 절대로 아버지처럼 자신을 배신한 여자 때문에 목숨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임유진은 몸이 굳은 채로 일어섰다. 그가 바로 그녀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멀게만 느껴지는 걸까? 어젯밤, 그는 그녀와 너무나도 친밀했고 그녀는 자신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느꼈지만 지금은... 마치 거대한 풍자처럼 느껴진다. 단지 지쳤기 때문에 헤어지자는 건가? 그렇다면 그들의 관계는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혹시 그는 이 모든 것을 단지 게임처럼 여기고 있었는데 그와 달리 그녀는 그 속에 빠져들었던 게 아닐까. “만약... 나는 헤어지고 싶지 않다면?”그녀의 자존심은 이미 오래전 감옥에 갇혔을 때, 남들에 의해 완전히 짓밟혔다. 그리고 출소 후, 강지혁은 그녀가 잃어버린 자존심을 조금씩 다시 맞춰줬다. 지금, 그녀는 그 조각난 자존심으로 이 말을 꺼냈다.그녀는... 강지혁을 사랑한다! 그녀는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더는 너를 사랑하고 싶지 않아.” 강지혁은 극도로 무관심한 목소리로 말한 후, 마치 조금의 미련도 남지 않은 듯 부엌을 나갔다. 그녀를 혼자 남겨두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게 했다. 뼛속까지 시린 추위가 몸속에서 파도치듯 퍼져나갔다, 7월의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임유진은 추위에 떨었다. 그녀는 자신이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뜨거웠
눈가는 여전히 건조했다.지금의 그녀는 울지도 못하는 걸까?...아마도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은 사랑을 받지 못하도록 정해진 것 같다. 소민준에게 버림받은 경험이 아직도 교훈이 되지 못했나 보다. 그녀가 강지혁을 사랑하게 될 줄이야! 임유진과 강지혁은 원래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었다. 그날 밤, 그를 집으로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교집합도 없었을 것이다. 얘기를 해보면 결국은 그녀가 먼저 그를 건드렸던 것이고 그 결과 게임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그저 그녀가 다시 한번 자신의 처지를 명확히 인식하는 계기가 된 것뿐이다. 임유진은 한 걸음 한 걸음 주방을 나왔다. 이 시각의 강씨 저택은 아주 조용했고 심지어 사용인조차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이러한 상황도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많은 난처한 상황을 피할 수 있을 테니까. 그녀는 모든 기가 다 빨린 듯 겨우 침실로 돌아왔다. 기분은 떠날 때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그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뿐이야.”그녀는 화장대 앞에 서서 거울 속의 여자에게 중얼거렸다. 거울 속의 여자는 화장이 번지지 않았고 흰색 드레스를 입고 있어 그 예쁜 얼굴이 돋보이게 했다. 하지만 얼굴색은 유난히 창백했고 눈동자에는 짙은 자조와 억눌린 씁쓸함이 가득했다. 다시 혼자가 되었을 뿐이다. 마치 감옥에서 막 나왔을 때처럼. 혼자 살아가야 하고 모든 일에 스스로 노력해야 하며 설사 가장 밑바닥에서 살아가더라도 간신히 살아남아야 한다. 사실... 두려워할 게 없다. 그녀는 이미 이전에 모든 것을 겪었으니까, 그렇지 않은가? 임유진은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일어나 옷장을 열어 처음 왔을 때 월세방에서 가져왔던 옷으로 다시 갈아입었다.그녀는 이 옷들을 아직 버리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최소한 그녀는 자신의 것을 입고 떠날 수 있으니, 그에게 빚진 것 없이 말이다. 그녀는 벗어둔 옷들을 깔끔하게 접어놓고 방을 다시 정리했다.처음에 월세방을 나올 때 가져온 물건들은 별로
그들 사이의 게임은 이로써 끝이 났다!28번째 생일, 그녀는 오늘 또다시 하늘이 얼마나 무심하고 잔혹한지 깨닫게 되었다.임유진은 가녀린 몸으로 두 개의 캐리어를 끌면서 힘들게 계단을 내려왔다. 그렇게 드디어 이 집을 나서려는데 마침 집사와 마주쳐버렸다.집사는 임유진이 조금 낡은 듯 보이는 옷을 입은 채 어딘가로 떠나듯 캐리어를 들고 있는 모습에 깜짝 놀라 물었다.“유진 씨, 지금 어디 가는 겁니까?”“이곳을 떠나려고요. 저희 이제 헤어졌으니 제가 여기 머무를 이유도 없겠죠.”뭐라고?!집사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깜짝 놀란 듯 보였다.헤어졌다고? 두 사람이?! 그럴 리가!오늘은 임유진의 생일이라 강지혁이 집사에게 저녁 만찬은 특히 신경을 써달라고 직접 지시까지 했는데 이게 갑자기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게다가 임유진의 얼굴을 보면 거짓말 같지가 않아 더더욱 혼란스러웠다.임유진은 제자리에 굳은 듯 서 있는 집사를 뒤로하고 다시 캐리어를 끌고 한 걸음 한 걸음 강씨 저택을 나왔다.임유진이 사라지고 나서야 집사는 정신을 차린 듯 강지혁의 비서 고이준에게 전화를 걸어 이 상황을 알렸다.전화를 받은 고이준은 집사와 마찬가지로 놀란 얼굴을 했고 시선을 옆으로 돌려 강지혁을 바라봤다.헤어졌다고? 두 사람이?!두 눈이 제대로 달린 사람이라면 강지혁이 임유진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만큼 한 여자에게 진심인 강지혁의 모습은 처음이었으니까!헤어질 만한 이유라고 한다면 그건 아마... 오늘 예상치 못하게 벌어졌던 일 때문일 것이다. 오은영을 내보낸 후 두 사람은 얘기를 나눴고 그러다 몇 분 후 강지혁 혼자 이곳으로 왔다.고이준은 만약 임유진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분명히 이곳을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곳은 강지혁과 그녀가 처음 만난 곳이었으니까. 또한, 강지혁의 아버지 강선우가 얼어 죽은 곳이기도 하다.매년 강선우의 기일이면 강지혁은 어김없이 이곳을 찾았다.하지만 오늘은 기일도 뭣도 아니었고 다년간